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30화 (30/121)

30화. 레드 헤링 (3)

‘자정의 교살자’.

<레드 헤링>을 기준으로 수년 전, 열한 명이나 되는 사람의 목숨을 앗아갔으나 끝내 그 정체가 밝혀지지 않은 연쇄살인마.

사건은 결국 미제로 종결되었고, 그 사건은 양친을 잃은 밀리엄 켄트우드가 수사관으로의 진로를 결정하는 중대한 계기가 되었다.

희생된 이들을 위해서도 그 뒤에 남은 이들을 위해서도,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실현되어야 마땅하다는 곧은 신념.

그리고 언젠가 부모를 죽인 범인을 잡아내고 말겠다는 포부.

그런 것들을 안고서 수사관이 된 밀리엄 켄트우드에게, 문제의 ‘언젠가’는 그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형태로 찾아왔다.

‘에드워드 녹스. 그가 바로 자정의 교살자입니다.’

밀리엄 켄트우드는 결국 ‘자정의 교살자’ 사건을 재수사하지도, 그의 손으로 진범을 잡지도 못했다.

명탐정 제임스 로웰이 문제의 진범을 추리해내어 밀리엄의 눈앞에 대령해주기 전까지는.

물론 밀리엄은 무조건 자기 손으로 범인을 잡아내고 말겠다고 결심할 만큼 극단적이고 꽉 막힌 타입의 캐릭터는 아니었다.

다른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그는 부모의 원수를 알려준 제임스 로웰에게 크게 고마워하며, 에드워드 녹스를 ‘합법적으로’ 잡아넣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것이다.

밀리엄 켄트우드는 그런 인물이었으니까.

하지만 제임스 로웰은 밀리엄에게 그런 식의 선택지를 허락하지 않았다.

<레드 헤링>에서 제임스 로웰은 저택에 초대한 살인자들을 하나씩 죽여나가는 한편, 에드워드 녹스를 범인으로 몰기 위해 조작한 증거들을 현장에 남겨두었다.

그리고 밀리엄을 충동질한 것이다.

그 거짓들이야말로 밀리엄이 에드워드 녹스를, 부모의 원수를 잡아넣을 유일한 방법이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기회인 양.

어차피 그는 자신보다도 훨씬 많은 사람들을, 심지어는 무고하기까지 한 사람들을 죽인 살인자가 아니냐고.

이런 함정에 빠지는 것을 억울해할 자격 따윈 없는 인간이라고 말하면서 말이다.

결국 제임스 로웰의 속삭임에 넘어가 결말에서 진실 대신 부모의 복수를 선택한 밀리엄은, 제임스가 남겨둔 증거들을 따라 에드워드 녹스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레드 헤링>은 그렇게 진범 제임스 로웰 대신 범인으로 몰려 체포된 과거의 연쇄살인마 에드워드 녹스가 사형선고를 받으면서 끝난 이야기였다.

그랬던 만큼 나는 에드워드 녹스가 당연히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야기가 사형집행일도 아니고 ‘선고일’에 수사국을 떠나는 밀리엄의 뒷모습으로 끝난 것이, 후속작으로 이어지는 떡밥이었다니.

머릿속이 절로 복잡해졌다. 전작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건 밀리엄의 존재뿐인 줄 알았는데.

죽은 줄 알았던 제임스 로웰이 기억을 잃은 채로 생환하질 않나, 에드워드 녹스는 일찌감치 탈옥해서 여태 잡히지 않은 상태라질 않나.

장장 10년 만에 출시한 후속작이라, 전작을 플레이하지 못한 신규 유저들을 고려해서 일부러 전작과의 연결성을 최소화한 줄 알았더니….

[ 9. 에드워드 녹스의 탈옥 ]

2년 전, 그레이스톤 저택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사형선고를 받은 에드워드 녹스가 형 집행 직전 탈옥한 사건.

병실 침대에 앉아 착잡한 마음으로 키워드 설명을 내려다보던 나는 이내 수첩을 접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안젤리나 캠벨의 일기장을 읽고 있는 밀리엄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함께 병실로 올라온 멜리사가 내게 이것저것 묻는 내내 내 곁에 앉아 멜리사에게 이런저런 훈수를 두던 그는, 그녀가 돌아간 뒤에도 계속 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참이었다.

나는 그에게 아까 전의 일을 어떤 식으로 묻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울지를 고민해보았다.

밀리엄이 느끼고 있을 혼란을 고려하면, 솔직히 아예 묻지 않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기는 했다.

하지만 그런 광경을 봐놓고 아무것도 묻지 않는 건 너무 부자연스러운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느라 한참 동안 그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자니, 내 시선을 느낀 것인지 밀리엄이 일기장에 박고 있던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리며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내가 또 괜한 눈치를 보게 만든 모양이군요. 미안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동생의 일기장을 조심스럽게 덮어 자기 무릎 위에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끝으로 조금 헤진 듯한 일기장 끄트머리를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별 이상한 인간이 다 있다 싶지는 않습니까?”

“그 이상한 인간이란 게 혹시 본인 말하는 거예요?”

“다짜고짜 환자를 몰아세워서 기어이 기절까지 하게 만들었잖아요.”

그러는 자기도 몰릴 데까지 몰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는 건 모르는 모양이지.

나는 한숨을 쉬며 베개에 기대고 있던 몸을 바로 세웠다.

“제임스 로웰 씨는 갑자기 아는 얼굴을 본 쇼크로 기절한 거라잖아요. 당신이 몰아세워서가 아니고요.”

“그렇다고 내가 취한 행동이 달라지는 건 아니잖습니까. 당신은 그걸 봤고.”

그는 내가 자기를 대단히 글러먹은 인간으로 봤으리라는 상상에 빠진 사람처럼 말했다.

그런 주제에 내가 먼저 무언가 물어봐 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리로도 들리는 말이었다.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그냥 이걸 기회 삼아 슬쩍 물어보는 게 좋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솔직히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그의 평생에 가장 큰 트라우마 중 하나로 남았을 2년 전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아무리 그래도 있는 그대로 전부 털어놓지는 못할 테니까.

“이상한 건 모르겠고… 로웰 씨와 무슨 일이 있었기에 당신이 그런 반응을 보이는지 궁금하기는 해요.”

내 말에 밀리엄이 눈을 살짝 내리깔았다.

나는 그가 한숨처럼 꺼내는 말에 신경을 집중했다.

“그 사람을, 믿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신당했나요?”

“…믿을 사람을 제대로 고르지 못했던 내 잘못이지만요.”

“에이, 아니죠. 속인 사람 잘못이지.”

나는 휙휙 손사래까지 쳐가며 그의 자학을 열심히 부정해주었다.

나름대로는 애정 어린 부정이었는데, 내 손짓에 밀리엄이 푸스스 웃음을 터뜨렸다.

“고자질하는 어린애가 된 기분이네요.”

“까짓 고자질 좀 하면 어때요? 내가 가서 로웰 씨를 혼내줄 것도 아닌데.”

한때는 좀 혼내주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더랬지.

<레드 헤링>을 플레이할 때도 나는 제임스 로웰보다 밀리엄 켄트우드를 더 좋아했다.

결말을 보고 나서는 더더욱 그랬다.

솔직히 말해 흑막 속성이 더해지면서 제임스 로웰이라는 캐릭터가 보다 확실한 매력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지만, 내게는 제임스의 반전보다도 밀리엄의 고뇌와 선택이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요컨대 애정캐였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이럴 때는 응당 이쪽으로 팔이 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나는 ‘믿었는데 배신을 당했다’는 아주 깔끔한 진실만을 말하는 밀리엄을 조금 짠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그가 아까 전 제임스의 병실을 나서면서 의사에게 ‘저 사람이 깨어나면 꼭 캠벨 남작님의 병실로 사람을 보내달라’고 부탁하던 것을 떠올렸다.

“로웰 씨가 깨어나면 어쩔 생각이에요?”

그래서 불현듯 그렇게 물었더니, 밀리엄이 난처한 눈을 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을 지경으로 엉켜버린 실타래를 앞에 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이윽고 ‘아….’ 하는 탄식 비슷한 것이 이어졌다.

“그걸 잘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가 살아 있으리란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어서….”

그는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어이가 없다는 듯 허탈한 실소를 흘렸다.

나는 일기장 위에 얹어져 있던 그의 손이 꾹 말려들어가는 것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하기야 머릿속이 복잡하긴 하겠지.

어쩌면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고.

어차피 범인인 제임스 로웰이 죽어 처벌받을 인간이 없어진 마당이니, 그 자리에 에드워드 녹스를 대신 세우는 것이 제 신념을 꺾는 일일지언정 대단한 불의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런 선택을 비웃기라도 하듯 정작 에드워드 녹스는 죗값을 치르지 않은 채로 도망쳤고, 결국 제임스 로웰은 살아 돌아왔으니까.

어떻게 보면 이건 밀리엄이 이를 악물고 행했던 <레드 헤링>에서의 선택 자체가 완전히 부정당한 것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참 어렵네…….

나는 붕대로 둘둘 감아놨는데도 뜨끈한 온기가 전해지는 목덜미를 슬슬 매만지며 생각했다.

특별한 신념도 커다란 굴곡도 엄청난 사건도 없이 그냥저냥 평탄하고 평범한 삶을 살아온 나에게, 밀리엄이 처한 상황과 그가 느끼고 있을 복잡한 감정에 제대로 된 해결책을 제시해주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지금은 내가 그와 제임스의 과거사에 대해 온전히 전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서는 안 되는 상황이기까지 했다.

아, 어려워! 진짜 어려워! 이 쓸데없이 어려운 2D 남자! 쓸데없이 어려운 게임!

“그… 참, 그러고 보니 말이에요.”

결국 한참 동안 밀리엄을 들여다보며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내가 선택한 길은, 부끄럽게도 화제를 바꾸는 것이었다.

나는 무슨 일이냐는 듯 눈썹을 들어 올리는 밀리엄을 향해, 부러 산뜻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까 위브 수사관님을 배웅하러 나가서 둘이 뭔가 이야기하는 것 같던데, 무슨 얘기했는지 물어봐도 괜찮아요?”

“아, 그거요. 그러고 보니 전해준다는 걸 깜빡했군요.”

“나도 알아야 하는 이야기였나요?”

“나만 알 필요는 없는 이야기였죠. 멜리사가 수잔 로이드 때문에 적잖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더군요.”

“범행은 순순히 인정했다고 들었는데요. 따로 골머리 썩으실 일이 있나?”

“그게… 범행은 인정하면서 동기에 대해서는 계속 입을 다물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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