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화. 레드 헤링 (2)
쓰러진 제임스 로웰은 곧장 병실로 옮겨졌다.
연락을 받고 달려온 담당의는 나와 밀리엄을 향해 ‘혹시 이 환자분과 아시는 사이냐’고 물어왔다.
당연하지만 여기가 게임 속이고 전작을 플레이했네 어쩌네 하는 이야기는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밀리엄의 눈치를 살폈다.
의사의 질문을 받은 밀리엄은 여전히 조금 넋이 나간 듯한 얼굴로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그런 셈입니다’ 하고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그런 밀리엄의 대답에 의사와 간호사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밝아졌다.
이어진 간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제임스 로웰이 성 조나단 병원에 실려 온 것은 1년쯤 전의 일이었다.
그 대목에서 밀리엄이 믿을 수 없다는 듯 ‘1년 전이란 말입니까?’ 하고 되물었기 때문에, 나는 <레드 헤링>에서의 사건이 적어도 1년보다는 더 이전에 일어났으리라는 예상을 할 수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실려 와 꼬박 두 달 만에 정신을 차렸을 때 제임스는 자기가 무슨 사고로 다쳤는지는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어버린 상태였다고 한다.
자기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그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담당의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기억상실증 연구를 명목으로 입원비를 대준 덕분에 지금까지 병원에 머물 수 있었다고.
그렇게 장기입원을 하는 동안 꽤나 정이 든 모양인지, 의사와 간호사들은 제임스와 아는 사이라는 밀리엄의 말에 정말로 안심하고 기뻐하는 듯 보였다.
말로는 연구 때문이었다지만, 어디의 누군지도 모르는 신원불명의 환자를 위해 자기 봉급을 깎아가며 장기입원비를 대주었다는 사람 좋은 중년 의사가 허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저희끼리는 그냥 존 씨라고 부르고 있었는데, 진짜 성함이 몹시 궁금하네요.”
“…제임스입니다. 제임스 로웰.”
“아, 그렇습니까? 그런데 어쩐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
“들어보셨을 수도 있겠습니다. 한때 신문에 꽤 자주 오르내리는 이름이었으니까요. 명탐정 제임스 로웰이라고.”
나는 ‘명탐정’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을 때 미묘하게 일그러지는 밀리엄의 미간을 포착했다.
딱딱하게 굳은 시선은 언제 머리를 부여잡고 괴로워했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잠들어 있는 침대 위의 제임스를 향해 있었다.
의사는 그러고 보니 신문에서 본 기억이 난다며 무릎을 탁, 쳤다.
곧이어 병실에 들어와 있던 간호사 중 하나가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외쳤다.
“세상에, 몇 년 전에 살해당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는데!”
“2년 전이었죠.”
그가 담담하게 대꾸했다.
<블루 달리아>가 <레드 헤링>으로부터 2년이 지난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소리였다.
10년 만에 나온 후속작치고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내심 고개를 주억거리고 있는데, 방금 그 간호사의 말소리가 이어서 들려왔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살아 돌아오다니 기적 같은 일이네요.”
간호사의 감상적인 한 마디에 밀리엄이 조금 더 깊이 인상을 썼다.
그는 의사와 간호사들을 등진 채 침대 앞에 서서, 제임스에게 못 박아둔 시선을 거두지 않고 나직이 중얼거렸다.
“기적이라. 확실히 그렇군요.”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문제의 ‘기적’을 대단히 기꺼워하는 듯한 목소리는 아니었다.
제임스 로웰의 갑작스러운 기절을 두고 의사는 알던 사람을 만난 충격으로 뇌가 반응한 게 아닐까 싶다며, 깨어날 즈음 기억이 돌아와 있을 가능성에 대해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밀리엄과 함께 그 말을 들은 나는 제임스가 정말 모든 것을 기억하는 상태로 깨어나는 장면과, 눈을 뜨고도 여전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장면을 하나씩 상상해보았다.
가능한 한 낙관적으로 예측하고자 하는 의사 선생님에게는 죄송스럽게도 나는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했다.
기절 한 번에 허무하게 극복시켜버릴 거였다면 굳이 기억상실 소재를 집어넣지도 않았을 거라는 묘한 확신이 들어서였다.
그러니 아마 일어난다고 해도 아까 전과 같은 소리나 해대지 않을까?
솔직히 어느 쪽이든 지금 밀리엄이 떨어진 혼란 가운데서 그를 건져 올리기엔 역부족일 것 같지만.
나는 착 가라앉은 분위기로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는 듯 침대 앞을 지키고 있는 밀리엄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까 휴게실에서 보였던 태도와는 온도 차이부터가 극심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딱히 진정이 되었다거나 마음의 안정을 찾은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런 밀리엄을 앞에 두고서 나는 베로니카로서 내가 ‘제임스 로웰’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다고 설정하는 것이 좋을지를 생각했다.
<레드 헤링> 사건의 진상이나, 밀리엄과 제임스 사이에 일어났던 일 같은 건 당연히 모르는 게 맞으니 혹시라도 실수로 아는 티를 내지 않도록 조심해야겠지.
하지만 저 의사나 간호사들이 그런 것처럼, 명탐정 제임스 로웰이라는 인물 자체는 대충 들어 알고 있었던 것으로 해두는 게 자연스러울 것 같다.
너무 관심이 있었던 것처럼 굴었다가 괜한 실수를 하는 건 또 곤란한 일이니, 2년 전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방금 듣고 얼핏 떠올린 정도로 하고….
“선배님!”
그렇게 나름대로 열심히 설정을 짜고 있는데, 별안간 병실 문 쪽에서 아는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멜리사 위브였다.
“남작님 병실에 계시지 않아서 여기저기 물어보니 여기 계실 거라기에.”
예의 수사국 제복을 입고 병실 안으로 또각또각 들어서는 멜리사를 보고 나서야 나는 오늘 그녀가 날 찾아오기로 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밀리엄이 의사소견서까지 받아가며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그은 덕분에 수사국에 직접 출두하게 되는 일은 없었지만, 어쨌든 나 또한 사건의 중요 참고인 중 하나로서 수사에 협조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아까 복도 산책을 나갔던 것도, 멜리사가 와서 사건에 대해 이것저것 캐묻기 전에 미리 기분전환이나 해두자는 밀리엄의 제안 때문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제임스 로웰이 등판하는 바람에 새카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나 때문에 외근을 나온 멜리사에겐 미안한 일이었으므로, 나는 우선 그녀에게 사과부터 건넸다.
“죄송해요, 수사관님. 오시기로 한 걸 제가 잠시 잊고 있었네요.”
“아, 아닙니다. 남작님. 별로 오래 찾아다니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두 분 다 왜 여기 계십니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친 멜리사가 침대 위의 제임스를 슬쩍 건너다보며 물어왔다.
“어, 그게요. 이 환자분이 휴게실에서 쓰러지시는 바람에 저희가 음…….”
“제임스 로웰이다, 멜리사.”
내가 어떻게든 ‘베로니카 캠벨이 말하기에 수상쩍지 않은 언어’로 상황을 설명하려다 반쯤 실패한 순간, 밀리엄의 딱딱한 목소리가 대뜸 공기를 가르고 등장했다.
멜리사는 다짜고짜 그게 무슨 말씀이시냐는 듯 고개를 기울였다.
그러나 밀리엄은 다른 설명을 덧붙여주지 않았다.
나는 멜리사가 잠시 눈을 데구르르 굴리다가, ‘제임스 로웰…’ 하고 중얼거렸다가, 이내 서서히 입을 벌리며 경악하기까지의 변화를 가만히 지켜보았다.
입을 허 벌린 채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멜리사가 별안간 빽 소리를 질렀다.
“제가 아는 제임스 로웰이요?!”
“네가 나 모르게 아는 제임스 로웰이 없다면.”
“2년 전에 에드워드 녹스에게 살해당한 그 사람 말씀하시는……?”
“그래. 놀랍게도 이렇게 살아 있지만.”
그 말에 멜리사가 빠른 걸음으로 침대 앞까지 다가왔다.
턱, 하고 침대 난간을 짚은 그녀는 동그래진 눈으로 제임스 로웰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잠시 다물렸던 입이 다시 어벙벙하게 벌어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 진짜 제임스 로웰…….”
왕국 최고의 명탐정이었다는 설정 덕분인지 멜리사 또한 제임스의 얼굴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헛것을 본 사람처럼 몇 번이고 눈을 비비며 고개를 설설 내젓다가 돌연 휙 하고 밀리엄을 보았다.
“이 사람이 어떻게 살아 있죠?”
“그건 모르겠다. 쓰러지기 전에 본 바로는, 본인 이름도 기억을 못 하는 모양이라.”
“기억상실이란 말씀이세요?”
그걸 어떻게 믿느냐고 말했던 주제에 밀리엄이 영 내키지 않는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멜리사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서 있는 의사를 향해 진짜냐고 물었고, 의사는 ‘제 소견으로는 그렇습니다’ 하고 대답해 그녀를 또다시 경악하게 만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다 있냐고 당황하던 멜리사 위브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입을 열었다.
“일단 사망 처리부터 정정하라고 공문을 보내야겠네요.”
“그래야겠지.”
“경호 인력을 붙이는 게 좋을지도….”
“그건 왜?”
“그야… 탈옥한 에드워드 녹스가 완성하지 못한 범죄랍시고 또 타깃으로 삼을 수도 있잖습니까.”
나는 멜리사가 ‘에드워드 녹스’의 이름을 꺼내기 무섭게 움찔하는 밀리엄을 보았다가,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것 같은 기분에 멀뚱히 눈을 깜빡였다.
한 번. 두 번. 세 번. 멍청하게 이어진 깜빡임 끝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다.
잠깐만. 방금 분명히…….
[ 키워드 ‘에드워드 녹스의 탈옥’ 획득 ]
나는 기울어진 시야 중앙에 떠오른 시스템 문구를 확인하며, 조금 전 멜리사가 그랬던 것처럼 천천히 입을 벌렸다.
에드워드 녹스의 탈옥.
서늘한 들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