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12화 (12/121)
  • 12화. 어느 오후 (2)

    나는 눈을 깜빡이다가 손튼 부인에게서 밀리엄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기울이고 있었다.

    “이상한 일이라니요?”

    손튼 부인은 ‘으음…….’ 하며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이내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일주일 전부터였나, 가게 안쪽 창고에서 자꾸 인기척 같은 게 느껴져서…….”

    “부인, 그건 조금 이상한 일 정도가 아니잖습니까!”

    밀리엄이 테이블 모서리를 손으로 짚고 아예 손튼 부인 쪽으로 몸을 돌려 앉으며 걱정스레 외쳤다.

    하긴 말하자면 어르신 혼자 있는 가게에 도둑이, 그것도 상습적으로 드나들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아닌가.

    그건 조금 이상한 일 정도로 끝낼 문제가 아니지…….

    나는 뭔가 없어진 물건이 있는지, 경찰에 신고는 하셨는지 따위를 진지하게 캐묻는 밀리엄을 가만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그러나 밀리엄의 걱정을 가만히 듣고 있던 손튼 부인은 고개를 내저었다.

    “뭔가 없어지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랬다면 진작 신고를 했겠지. 사실은 오히려 없던 게 생겨나고 있었답니다. 다 떨어져가서 새로 주문을 넣으려던 재료 같은 것들 말이에요.”

    이야기는 뜻밖의 전개를 향해 흘러갔다. 그게 뭐람. 우렁각시인가?

    “그래서 어제 저녁에 큰맘 먹고 창고 구석에 숨어서 지켜봤지요.”

    “부인…….”

    밀리엄은 왜 그런 위험한 일을 하셨느냐고 말하고 싶은 듯한 얼굴로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용감무쌍한 손튼 부인은 그게 뭐 대수냐는 듯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고는 아이들에게 구연동화를 해주는 유치원 선생님처럼 실감 나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

    “그러다 마침 인기척이 느껴지기에 봤더니, 빨간 털옷을 입고 커다란 자루를 짊어진 남자가 빈 선반 위에 뭔가를 내려놓고 있지 않겠어요?”

    “……예?”

    “너무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라, 혹시 죽은 남편의 유령이 날 놀래켜주려고 장난을 치고 있나 하는 생각도 들더라고.”

    다음 순간 나는 느긋하게 웃어 보이는 노부인의 시선이 벽에 걸린 시계 쪽으로 흘끔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시계를 확인한 손튼 부인의 미소가 더욱 깊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밀리엄의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손튼 부인에게 향해 있던 눈길을 돌려 밀리엄을 보았다.

    조금 전까지의 심각함 따위는 씻은 듯이 사라진 잘생긴 얼굴 위로 잔잔한 웃음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변함없이 짓궂으시군요, 손튼 부인.”

    “어머나, 켄트우드 씨.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저는 이 집 창고에 조명이 없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짐짓 야속하다는 듯 물어오는 손튼 부인을 향해 밀리엄이 빙긋 웃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고는 동의를 구하는 표정으로 내게 눈짓을 했다.

    느닷없이 날아온 시선에, 나는 창고에 조명이 없는 것과 방금까지 손튼 부인이 늘어놓은 이야기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잠시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아, 그렇구나.

    내가 깨달았다는 것을 확인했는지, 밀리엄은 다시 시선을 돌려 손튼 부인과 마주했다. 그리고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남자의 옷이 빨갛다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두운 창고 안에서 촛불을 들고 숨어 계셨다면 그 남자가 부인을 발견했을 텐데요.”

    조명이 없는 창고에 숨어서 상황을 지켜보려는 사람이 촛불 같은 걸 들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말인즉 손튼 부인이 문제의 남자를 목격했을 때 사위는 지극히 어두운 상태였다는 뜻이고, 그런 상황에서 상대가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을 구별해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요컨대 밀리엄의 논지는, 손튼 부인의 이야기가 그 자체로 모순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빨간 털옷을 입고 커다란 자루를 짊어진 남자라니, 부인. 날씨가 많이 서늘해졌다곤 하지만 아직 전나무 노인이 선물 주머니를 들고 나타나기엔 이른 계절이 아닙니까.”

    밀리엄이 웃으며 말했다.

    전나무 노인? 낯선 단어에 고개가 절로 기울어졌지만 그 또한 잠시였다.

    빨간 털옷을 입고 커다란 선물 주머니를 든 채 겨울에 나타나는 노인…….

    산타클로스를 모티브로 했다는 것이 너무도 극명해서 나까지 웃음이 나왔다.

    농담처럼 이어진 밀리엄의 지적을 잠자코 듣고 있던 손튼 부인이 이내 후후, 하고 덩달아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을 들킨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싱겁게 들켜버렸군요. 급히 지어낸 이야기라곤 하지만 나도 참 철두철미하지 못하다니까.”

    손튼 부인은 감이 다 죽은 모양이라며 고개를 설설 내저었다.

    그런 그녀를 웃는 낯으로 지켜보던 밀리엄이 관찰하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그래도 만족스러워 보이십니다.”

    “그야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까요.”

    “목적이 있으셨습니까? 그냥 저희를 놀리시려는 건 줄 알았는데요.”

    “에그… 내가 암만 할 일이 없기로서니, 이유도 없이 젊은이들을 놀리거나 하지는 않아요.”

    허공에서 손을 휘휘 흔든 손튼 부인은 이내 멋쩍은 얼굴로 해명을 이어갔다.

    “두 사람을 좀 더 오래 붙잡아두고 싶어서 되는 대로 늘어놓아본 거지요. 이렇게들 빠르게 먹을 줄은 몰랐거든.”

    “저희를 붙잡아두고 싶으셨다고요? 왜 굳이…….”

    “실은, 켄트우드 씨와 꼭 만나게 해주고 싶은 사람이… 아, 마침 왔네요.”

    딸랑, 하는 종소리와 함께 가게의 문이 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문과 마주 보고 앉아 있던 나는 새로운 방문객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어림잡아 열네댓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였다.

    “저 왔어요, 손튼 부인! ……어어?”

    맞은편에서 손튼 부인을 향해 씩씩하게 인사를 한 소녀는, 소리를 듣고 문 쪽으로 고개를 돌린 밀리엄을 발견하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서 오렴, 안나. 와서 누가 오셨는지도 보고.”

    고개를 돌리고 있어서 얼굴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안나?’ 하고 중얼거리는 밀리엄의 목소리에서는 어떤 놀라움 같은 것이 묻어났다.

    “세상에, 켄트우드 씨!”

    이름이 안나인 듯한 소녀는 거의 비명을 지르듯 밀리엄을 부르며 빠르게 테이블을 향해 다가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밀리엄이 의자 등받이를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완전히 의자에서 일어났을 때 안나는 이미 손튼 부인 곁에 서서 눈을 반짝이며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손튼 부인, 이 애가 어떻게…….”

    “얼마 전부터 가게 일을 도와주고 있답니다.”

    나도 나이가 드니 혼자 일하기가 힘에 부치지 뭔가요?

    그렇게 말한 손튼 부인은 홀홀 웃으며 앉아 있던 의자를 슬그머니 내 쪽으로 옮겼다.

    안나에게 밀리엄과 둘이 이야기할 만한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함인 듯 보였다.

    나는 밀리엄을 향한 반가움을 숨기지 못한 채 재잘거리는 소녀를 한 번, 놀라움과 대견함이 섞인 눈으로 소녀를 내려다보며 열심히 이야기에 대꾸해주는 밀리엄을 한번 보았다.

    그리고 내 곁에 바싹 붙은 손튼 부인에게로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돌연 어떤 생각 하나가 뇌리를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뿌듯한 얼굴로 두 사람을 바라보던 손튼 부인이 내 시선을 느꼈는지 고개를 돌렸다. 여전히 입가에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채였다.

    나는 최대한 두 사람에게 들리지 않을 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손튼 부인을 불렀다.

    “저, 부인.”

    “네, 남작님.”

    “혹시 밀, 켄트우드 씨가 여기 데려왔던 첫 번째 숙녀분이…….”

    “호호, 남작님께서도 눈썰미가 아주 좋으시군요.”

    노부인의 눈매가 초승달 모양으로 보기 좋게 휘어졌다.

    그녀는 계속 밀리엄과 안나 쪽에 시선을 집중한 채, 내가 그랬듯 두 사람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자그마하게 자초지종을 속삭여주었다.

    그녀가 전해준 바에 따르면 안나는 한때 이 근방에서 소매치기나 좀도둑질을 해가며 먹고 살던 빈민가 아이들의 대장쯤 되는 소녀였다.

    신입 수사관 시절, 여느 때처럼 가게에 들렀다가 몰래 빵을 훔치던 안나를 붙잡은 밀리엄은 아이를 지역경찰에게 넘기거나 직접 체포하는 대신 가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손튼 부인에게 제대로 사과드리라며 안나를 훈계했다.

    그러고는 안나를 데리고 테이블에 앉아 온갖 빵이며 디저트를 잔뜩 주문했다.

    기이하다면 기이하고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그것들은 전부 안나의 몫이 되었다.

    손튼 부인은 밀리엄이 안나를 한참 붙들어 놓고 온갖 달콤한 것을 먹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그날 이후, 안나가 거짓말처럼 도둑질을 그만두었다고 말했다.

    안나는 이전처럼 행인들의 지갑을 노리거나 가게의 빵을 훔치는 대신, 자길 따르는 아이들과 함께 동네 사람들의 이런저런 심부름이나 허드렛일을 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한편의 동화 같은 이야기였다.

    다정한 사람들이 등장해 선의와 인류애를 말하고, 도무지 현실감이 들지 않지만 그래도 현실이길 바라게 되는.

    손튼 부인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안나의 머리를 쓰다듬는 밀리엄의 옆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가뜩이나 멀끔하게 잘생긴 얼굴이 왠지 좀 더 잘생겨 보이는 건 방금 들은 미담의 영향일까?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자니, 밀리엄에게 재잘재잘 이야기를 늘어놓는 안나의 목소리 한 줄기가 별안간 귓가에 날아와 꽂혔다.

    “어제는 아리아 성녀님을 만났어요. 성녀님이 동네 아이들에게 빵 나눠주는 걸 도와달라고 하셔서….”

    “성녀님?”

    “네! 메이슨 교단의 성녀님이요. 켄트우드 씨는 모르세요?”

    “아니, 모르지는 않는데…….”

    느닷없이 튀어나온 메이슨 교단의 이름에 밀리엄이 일순 내 쪽을 보았다.

    나 또한 곧장 그를 보았기 때문에 눈길이 바로 마주쳤다. 그러나 자리가 자리인 만큼 피차 무어라 말을 꺼내지는 않았다.

    그렇게 잠시 마주 닿았던 시선은 안나의 이야기가 다시 이어지면서 금세 본래의 자리로 돌아갔다.

    아리아 성녀님이라.

    예언서로도 모자라 성녀까지 존재하는 진짜배기 사이비 교단이구나…….

    나는 목덜미를 긁적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고개를 내저었다.

    맛있는 디저트를 먹고 훈훈한 이야기를 들은 평화로운 오후에 할 만한 생각은 아니었다.

    시스템창이 한 번도 열리지 않았을 정도로 스토리상 별 의미 없는 시간이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게임 캐릭터가 아닌 인간이고, 인간에겐 이런 식의 휴식이 필요한 법이니까.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