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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호의 상속녀인데 추리게임이라니-7화 (7/121)

7화. 캠벨 저택의 비밀 (2)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쪽지를 일단 손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일단은 쪽지의 나머지 절반을 찾아볼 심산이었다.

손가방 입구를 탁 닫은 나는 몸을 숙여 책상 서랍을 살피기 시작했다.

다행히 열쇠 구멍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 서랍 세 개가 나란히 닫혀 있었다.

비어 있는 첫 번째 서랍과 시스템창이 반응하지 않는 문서들만 가지런히 들어 있는 두 번째 서랍을 지나 세 번째 서랍을 열었을 때 눈에 들어온 것은 작은 목탄연필 한 자루였다.

왠지 쓸 만해 보이는 자태에 손을 뻗어 쥐어보니 시스템 문구가 떠올랐다.

[ ‘목탄연필’을 획득했다. ]

획득을 한 건 좋다. 이제 이걸 어디다 쓰느냐가 문제인데….

나는 몸을 숙인 상태 그대로 눈만 움직여 책상 위를 다시 훑어보았다.

조금 전에 보았던 메모지 더미가 시야를 사로잡았다.

몸을 벌떡 일으킨 나는 방금 닫은 손가방에서 쪽지를 도로 꺼내 메모지 더미 위에 가져다 대보았다.

절반이 찢어져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모양이 꼭 맞았다.

나는 쪽지를 옆으로 치워놓은 뒤, 목탄연필을 비스듬히 눕혀 메모지 더미의 제일 윗면에 부드럽게 문질러보았다.

슥삭거리는 듣기 좋은 소리와 함께 검게 칠해지는 종이 위로 눌러쓴 자국이 희미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 ‘글씨 자국이 남은 메모지’를 획득했다. ]

나이스!

나는 주먹을 꾹 쥐고 쾌재를 부르며 종이 위의 글씨 자국을 향해 눈길을 기울였다.

예언서의 열쇠 = 성 조나단 병원 204호

성 조나단 병원이면 튜토리얼에서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목을 졸린 뒤 실려 갔던 그 병원 아닌가?

혹시나 싶어 지도를 열어 확인해보니 역시나였다.

어째 지도에 추가된 곳인데도 별일 없이 나서게 되더라니, 다시 가게 될 곳이라 그랬던 거였군.

그보다 예언서라는 건 진짜 뭐지?

“남작님.”

머리를 긁적이며 메모지를 노려보고 있자니, 어느샌가 서재로 돌아온 밀리엄이 나를 불렀다.

동생 방에서 찾아낸 것인지, 손에 웬 두툼한 노트 같은 걸 들고 있는 채였다.

“그건…”

“동생의 일기장인 모양입니다. 별 쓸모는 없을지도 모르지만 챙겨두고 싶어서요.”

제법 오래되어 보이는 자주색 노트를 앞뒤로 돌려보며 밀리엄이 씁쓸하게 중얼거렸다.

나는 또다시 그가 게임 캐릭터라는 사실을 잊은 채 불편한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다.

이게 다 변태 같은 제작진 때문이다.

뭘 저렇게까지 알차게 빼앗아놔서 보는 사람을 싱숭생숭하게 만드느냔 말이야…….

나는 수심에 잠긴 미남의 얼굴을 보며 내심 고개를 설설 내저었다.

내가 저를 보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밀리엄이 설핏 얼굴을 찡그렸다.

그러고는 한다는 말이.

“이 참에 말씀드리겠습니다만, 제 눈치 같은 걸 보실 필요는 없습니다. 저는 정말로 괜찮으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괜찮을 턱이 있나. 전혀 안 괜찮다고 얼굴에 써 붙이고 있는 건 둘째치더라도, 여긴 게임 속 세상이고 댁은 전작 주인공씩이나 되는 거물인데.

밀리엄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냉정하게 생각했을 때 사실이 그러했다.

쉽게 극복해버릴 상실 따위를 무슨 재미로 부여했겠는가.

잃어버려도 괜찮을 수 있는 거였다면 애초에 빼앗길 일조차 없었을 것이다.

“괜찮다니 다행이지만, 켄트우드 씨.”

그러니까 당신은 괜찮을 리가 없어. 언젠가 괜찮아지더라도 최소한 지금은 아니지.

“저는 당신이 좀 안 괜찮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나도 모르게 말해놓고 보니 아차 싶었다. 좀 전까지 내 걱정을 불쾌해하는 것처럼 보였던 사람에게 할 말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기 때문이다.

내 말에 밀리엄이 잠시간 말없이 눈을 깜빡였다.

그러는 와중에도 내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채였기 때문에, 조금 어색해진 나는 슬쩍 눈을 굴리며 열심히 자기변호를 했다.

뭐… 못할 말을 한 건 아니잖아? 나는 당당하다.

아무튼 그렇게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던 밀리엄이 갑자기 실소를 터뜨리며 중얼거렸다.

“그런가요.”

뭔가 생각이 많아진 표정이긴 하지만 딱히 좀 전보다 더 기분이 상한 것 같지는 않다.

거기서 일단 안심한 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안심도 잠시, 곧이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이 찾아왔다.

으. 이런 분위기 옳지 않아.

어쩐지 조금 전부터 밀리엄이 미묘한 시선으로 날 보고 있는 터라 더 문제였다.

나는 어떻게든 이 어색한 분위기를 깨야겠다는 강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때마침 애당초 우리가 캠벨 저택을 찾아온 공통의 목적이 떠오른 것은 다행인 일이었다.

“참, 여기 좀 봐주시겠어요? 조금 전에 이런 걸 찾았는데…….”

나는 밀리엄에게 책상 안쪽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고, 그는 곧장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내 손이 가리키고 있는 메모지 더미 제일 윗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예언서의 열쇠라.”

“좀 뜬금없죠?”

“……혹시 메이슨 교단을 아십니까?”

[ 1. 아니요. 처음 들어요. ]

[ 2.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 ]

정말이지 난데없는 질문에 난데없는 선택지였다.

나는 예언서 어쩌고 하는 뜬구름 잡는 메모 내용에 대해 어딘가 짐작 가는 구석이 있는 듯, 턱을 매만지며 미간을 살짝 찌푸린 밀리엄을 가만히 보았다.

“어디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것도 같은….”

할 말을 고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당연히 알죠! 따위의 새파란 거짓말을 해야 하는 선택지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대답을 고르든 필연적으로 밀리엄의 설명이 이어지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밀리엄이 여전히 반쯤은 생각에 잠겨 있는 듯한 말투로 설명을 시작했다.

“저도 얼마 전에야 들었지만, 꽤 유서 깊은 종교단체라고 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갑자기 공격적으로 교세를 확장중이라는 모양인데….”

말끝을 흐린 밀리엄이 책상 위의 메모 쪽으로 다시 한번 시선을 옮기며 말을 이어갔다.

“그 메이슨 교단의 경전이 일종의 예언서 형태를 띠고 있다고 하더군요.”

[ 키워드 ‘메이슨 교단’ 획득 ]

갑분 오컬트 전개에 이어 이번엔 웬 종교단체가 등판했다.

나는 얼떨떨한 기분으로 덩달아 메모지를 내려다보며 뺨을 긁적였다.

“캠벨 남… 백부님이 메이슨 교단의 신자셨던 걸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지만 이 메모를 쓴 사람이 돌아가신 남작님이라면,”

“그리 신실한 교인은 아니셨을 수도 있겠네요.”

내 말에 밀리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미간은 계속 찌푸린 상태였다.

그는 메모지를 거의 씹어먹고 싶은 사람처럼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저는 왠지 이번 사건이 메이슨 교단과 무관하지 않으리란 추측이 드는데, 남작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 1.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

[ 2. 메모 하나 가지고 그러는 건 너무 억측 아닐까요? ]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나는 고민하지 않고 선택지를 골랐다. 당연히 그게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건 의견이나 생각이라기보다 확신에 가까웠다.

밀리엄이 어느 지점에서 저렇게 빠른 속도로 메이슨 교단과 사건을 연결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다른 곳을 더 살펴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뭔가 다른 단서가 나올지도 모르니까요.”

“그래요. 그게 좋겠습니다.”

고개를 주억거린 밀리엄이 책상 반대편으로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그러고는 서가들을 살피기 시작했다.

나는 일단 서재를 전체적으로 쭉 둘러볼 심산인 듯한 밀리엄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인 이 서재에서 찾아야 할 단서가 고작 이 작은 메모 하나일 가능성은 얼마나 될까.

‘예언서의 열쇠 = 성 조나단 병원 204호’

메모지의 내용은 마치 이 다음에 내가, 혹은 우리가 가야 할 장소를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예언서의 열쇠를 찾으러 가는 게 다음 전개라면 일단 예언서가 이쪽 손에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마침 온갖 책들이 빼곡하게 들어찬 서재에 있다.

이 상징성을 감안해서라도, 우선은 여기서 예언서를 찾아보는 게 맞지 않을까?

나는 서재를 가득 채우고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책들을 빙 둘러보았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득해졌다.

물론 게임에서 바라는 것은 서재의 책들을 한 권 한 권 일일이 확인해보는 무식한 방법이 아닐 것이다.

그런 걸 인게임으로 구현했을 리도 없고.

그러니 뭔가 다른 단서가 분명히 있을 텐데…….

“남작님.”

“네?”

“잠깐 이리 와보시겠습니까?”

한동안 서재 안을 뚜벅뚜벅 걸어 다니기만 하던 밀리엄이 별안간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그가 서 있는 쪽으로 가보니, 그는 커다란 서가 앞에서 미심쩍은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에요?”

“여기 말입니다. 이 바닥이요.”

밀리엄의 말끔한 구둣발이 대리석 바닥을 툭툭 두드렸다.

“이 서가 앞의 바닥만, 두드렸을 때 다른 바닥과 미묘하게 다른 소리가 나는 것 같아서.”

뭐라고?

나는 황급히 한 칸 옆의 서가로 가서 바닥을 두드려본 뒤, 다시 밀리엄이 서 있는 자리로 돌아와 같은 일을 반복했다.

“어…….”

확실히 소리가 달랐다. 이 서가 앞만 유독, 뭐라고 해야 할까.

“유난히 울림이 깊지 않습니까?”

“맞아요, 꼭 속이 비어 있는 것처럼….”

거기까지 말을 꺼낸 나는 나도 모르게 휙 고개를 들어 밀리엄을 바라보았다.

밀리엄 또한 미묘하게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나는 밀리엄과 몇 초간 아무 말 없이 눈을 맞췄다가 이내 천천히 시선을 움직여, 웅장하게 서 있는 서가를 멍하니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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