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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의 주인-67화 (67/76)
  • #67화. 사냥 (2)

    자신을 향해 위협적으로 달려오는 상대를 목격한 중우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신음을 흘렸다.

    “어? 어어?? 어어어!!”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그가 다급히 벗어나려 했으나, 나 팀장이 기민하게 앞을 막아섰다. 중우가 손발을 어지럽게 허우적거리며 빈틈을 찾으려 애썼다.

    그 순간, 독경이 목표물의 뒷덜미를 두툼한 손으로 콱 움켜잡으며 쾌활하게 물었다.

    “박중우 팀장, 어디에 숨어 있다 이제 나오시나?”

    “아, 그게....”

    중우가 안경 너머로 눈알을 크게 굴렸다. 독경이 보란 듯 그의 목덜미를 더욱 세게 쥐었다.

    “대가리 굴리지 마, 내 손에 죽기 싫으면. 현상현 어디 있어?”

    “그, 그건... 저도 잘....”

    중우가 뒷덜미를 바짝 옥죄는 통증에 미간을 찌푸리더니, 더듬거리며 말을 얼버무렸다.

    독경이 시원치 않은 대답에 손아귀에 더욱 힘을 가하려는 찰나, 전화가 걸려 왔다. 선하였다. 그는 받을까 말까 잠시 고민하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나 지금 바쁘.... 뭐?”

    그가 심드렁하게 전화를 받다 수화기 너머에서 흐르는 당혹스러운 음성을 듣고는,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뭐, 뭐라고?? 다시 말해 봐....”

    저답지 않게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에, 주변에서 대기하던 보안 팀장과 직원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로를 보았다.

    그때, 중우가 방심한 사이 느슨하게 풀린 손을 뿌리치며 달아나려 시도했다. 그러나 나 팀장이 퇴로를 차단했다.

    “아악!!”

    전화를 끊은 독경이 살벌한 독기를 온몸에서 뿜어내며, 중우의 뒤통수를 낚아채 바닥으로 내동댕이쳤다. 그러고는 삐딱하게 서서 구둣발로 그의 목을 꾹 짓눌렀다.

    “끄으윽....”

    종잇장처럼 힘없이 바닥에 널브러진 몸에서 고통으로 가득 찬 신음이 샜다.

    직원들은 지나치게 난폭한 공격에 아연실색했으나, 흉흉한 기세에 눌려 감히 말릴 엄두를 못 냈다.

    독경이 잘 벼린 칼끝 같은 눈을 사냥감에게 들이대며 입을 열었다.

    “현상현 어디 있는지 말해. 안 하면 목 부러진다.”

    그의 무쇠처럼 단단한 허벅지 근육에 바짝 힘이 들어가며, 아직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이마에도 힘줄이 불뚝 솟았다.

    중우가 고통에 몸부림치며 눈을 허옇게 까뒤집었다.

    ***

    주인은 남자들의 손에 이끌려 낡고 지저분한 목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에는 판자며 벽돌 같은 잡동사니들이 여기저기 나뒹굴고 있었는데, 먼지가 뽀얗게 쌓인 것으로 보아 방치된 지 오래된 창고 같았다.

    그들은 그녀를 나무 의자에 앉히고는 손목을 뒤로 꽉 묶어 고정한 뒤, 문 앞을 지키고 섰다.

    주인이 요동치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쓰며 입을 열었다.

    “이렇게까지 할 필욘 없잖아요. 저랑 대화하려는 거 아니었어요?”

    그녀는 독경이 어떻게든 자신을 찾아내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시간을 벌고 싶었다.

    “하, 대화라.... 걱정 마, 입은 안 막을 거니까. 어디 한번 잘 놀려 보시지. 그 혓바닥으로 꼬드긴 사람이 어디 한둘이야?”

    상현이 조롱 섞인 말을 던지고는, 외투를 벗어 한쪽에 툭 걸쳐 두었다.

    잠시 뒤 그가 낡은 의자를 질질 끌고 와 그녀의 맞은편에 앉더니, 느긋하게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오빠....”

    오랜 침묵 끝에, 주인이 나긋하게 그를 불렀다.

    상현이 대답 없이 그녀를 가만히 응시했다. 흐릿한 담배 연기 사이로 보이는 눈이 스산하다 못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왜?”

    “여기까지 하세요. 더 바닥으로 내려가지 말고.”

    “더 내려갈 곳이 있긴 한가?”

    그가 코웃음을 치며 조소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꼴이 됐을까? 너랑 네 그 잘난 개새끼 때문 아닌가?”

    상현이 고개를 삐뚜름하게 기울이며 주인을 응시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그녀가 크고 깊은 새까만 눈으로 상대를 꿰뚫어 보았다. 건방지기 짝이 없었다.

    상현은 처음부터 저 눈이 싫었다. 자기 확신에 가득 찬 당당한 저 눈이. 그것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 중 하나였다.

    “저랑 이독경을 죽일 뻔한 것도, 김 실장님을 처리한 것도, 아버지의 신뢰를 잃은 것도, 모두 제 탓인가요? 정말 그래요? 오빠가 한 잘못은 하나도 없어요?”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추궁에 그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와 우뚝 섰다.

    “그래서? 본인이 자초한 일이니, 알아서 책임져라? 내 탓은 아니다? 뭐, 그런 걸 말하고 싶은 건가?”

    상현이 허리를 굽혀 주인과 얼굴을 맞댔다. 그러고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거칠게 잡아당겼다. 굵은 손가락 사이로 흑단 같은 머리카락이 거칠게 엉켰다.

    “그래, 네 말이 옳아. 다 내가 벌인 거지. 근데, 그렇다고 해서 널 봐줄 마음은 없어. 너희가 아니었으면 별문제 없이 넘어갔을 일들이었으니까. 넌, 언제나 그랬지. 혼자 깨끗한 척, 정의로운 척, 고고한 척. 역겹게....”

    상현이 무심하게 중얼거렸다.

    본가로 들이닥친 여자가 소동을 피우던 그날, 그는 저보다 한참 어린 배다른 여동생에게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을 느꼈다.

    질질 끌려가는 여자의 옷과 구두를 작은 손으로 챙겨 들며,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른들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아이가 대단한 무언가를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저 약간의 동정심과 부당한 상황에 대한 희미한 적의만 있었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여자애는 망설임 없이 단호하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실행에 옮겼다.

    그것이 아주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던 상현의 불편한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얼굴이 화끈거리며 달아올랐다.

    스스로가 저 어린애만도 못한 등신처럼 느껴져 환멸이 났다. 그리고 그 어쩔 수 없는 자괴감을 가라앉히기 위해, 화살을 제 어린 동생에게로 돌렸다.

    모든 것이 다, 너 때문이라고.

    문득 떠오른 옛 기억에, 상현은 흰자위를 번들거리며 머리채를 더욱 세게 거머쥐었다. 주인의 턱이 위로 들리며 헉 소리가 절로 튀어나왔다.

    “근본 없는 개새끼랑 붙어먹으면서 뒤로 협잡질이나 하는 주제에, 감히 나한테 설교를 해?”

    그 말에 이번에는 주인의 기세가 사나워졌다. 그녀가 마주한 얼굴에 침을 퉤 뱉었다.

    “나한텐 뭐라 해도 상관없지만, 이독경은 그만 모욕해. 너 같은 쓰레기보단 훨씬 나으니까. 걘 적어도 너처럼 약한 사람은 안 건드려.”

    짝!!

    분을 이기지 못한 상현이 그녀의 뺨을 세게 때렸다.

    주인의 눈앞에 번쩍 불꽃이 튀더니, 이내 얼얼한 통증이 얼굴에 엄습했다. 입안이 터졌는지 비릿한 쇠 맛도 감돌았다.

    “이년이 보자 보자 하니까, 막 기어오르지? 내가 만만한 모양인가 본데, 이제부턴 어림도 없을 거야. 기대해도 좋아.”

    상현이 주인의 목을 비틀기 시작했다. 그녀의 얼굴이 빨갛게 익으며 호흡이 가빠졌다. 그러나 헐떡이는 입에서는 쉬지 않고 독설이 터졌다.

    “개새끼는, 너야....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비겁하고... 나약한 새끼....”

    주인의 충혈된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지만 그녀는 상대의 얼굴을 직시했다. 고통스러울지언정 두렵지는 않았다.

    “넌, 절대로... 도망... 못, 가.... 반드시... 죗값을....”

    기묘하게 뒤틀린 입가에서 가시처럼 뾰족한 말들이 튀어나와 박혔다. 상현은 자신이 우위에 있음에도, 궁지에 몰리는 것처럼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독한 년, 죽어!!”

    상현이 질 수 없다는 양 가녀린 목을 더욱 꽉 잡으며, 다급하게 외쳤다. 그 순간, 주인이 웃었다.

    형형하게 부릅뜬 두 눈과 기이하게 일그러진 입매가 너무나도 소름 끼쳐, 그는 제 손에서 힘이 빠지는지도 몰랐다.

    “헉, 혀, 현... 상현.... 허억, 넌 끝났어....”

    그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그녀가 가슴에 손을 얹으며 숨을 몰아쉬다 나직이 읊조렸다.

    입가에는 여전히 미소가 서려 있었다. 악귀처럼 광기와 희열에 젖은 웃음이었다.

    “뭐, 뭐라고...?”

    상현이 망연자실한 얼굴로 되물었다. 주인이 발작적인 웃음을 크게 터뜨렸다.

    “하, 하하.... 넌 끝났다고, 이 개자식아!!”

    쾅!!

    그 순간 판자벽 틈으로 한 줄기 빛이 들더니 무시무시한 굉음이 폭발하며, 건물 한쪽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그 뻥 뚫린 공간으로 차 한 대가 전조등을 켜며 들이닥쳤다. 뒤이어 뿌옇게 피어오르는 먼지 사이로 커다란 검은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인영은 상현에게로 곧장 달려오더니, 그 반동을 이용해 긴 다리로 그를 단번에 걷어찼다.

    퍽 하는 둔탁한 타격음과 함께, 상현이 바닥에 나자빠졌다.

    “이 쥐새끼 같은 놈이 감히 누굴!!”

    검은 인영이 바닥에 바짝 엎드려서 신음을 흘리는 상대에게 재빨리 다가갔다. 꽉 다문 잇새로 신의 노여움만큼이나 위압적인 음성이 흘러나왔다.

    검은 인영이 다시 구둣발로 상현의 복부를 가격했다.

    “컥!!”

    상현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터졌다.

    “죽여 버리겠어, 죽여 버리겠어....”

    살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가 음산한 주문처럼 반복됐다. 주인이 갑자기 등장한 검은 사내를 쳐다보며 애달프게 외쳤다.

    “이독경!!”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흥분과 분노로 까뒤집힌 눈동자가 서서히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내 평정을 되찾은 새까만 눈이 맹목적으로 주인을 향했다.

    그 시선 끝에는 그토록 찾아 헤맨 여인이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흐트러진 몰골로 앉아 있었다.

    “아!”

    독경이 한숨을 탁 뱉더니 무릎을 털썩 꿇고 앉아, 주인의 얼굴과 몸을 구석구석 살폈다.

    “선배, 괜찮아요?”

    그러고는 피가 통하지 않을 만큼 꽉 묶인 손목부터 빠르게 풀었다.

    그러다 문득 주인의 부푼 뺨과 터진 입술에 다시 눈이 닿자, 독경이 입안을 잘근잘근 씹어 물었다.

    “죽여 버리겠어. 현상현, 이 쥐새끼.”

    그때였다. 상현 일행을 보안 직원들과 함께 제압한 선하가 새된 고함을 질렀다.

    “형님, 뒤에!!”

    “이독경!!”

    공기를 찢는 선하의 외침에 주인이 고개를 번쩍 쳐들었다. 그와 동시에 독경도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몸을 일으킨 상현이 바닥에서 주운 예리한 나무 조각을 그의 왼쪽 어깨에 힘껏 박았던 것이다.

    주인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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