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의 주인-66화 (66/76)
  • #66화. 사냥 (1)

    다짜고짜 귀에 박히는 날 선 비난에 상현은 잠시 어안이 벙벙하다, 곧바로 받아쳤다.

    “본론부터 똑바로 말해, 이 새끼야!”

    [너, 조만간 출국 금지 명령 떨어질 거야! 살인 교사 혐의도 추가됐다고, 이 미친 새끼야!!]

    “뭐??”

    상현이 사색이 된 얼굴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들의 표정이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현 회장이 결국 뒷덜미를 잡으며 풀썩 쓰러졌다.

    아내인 박은아와 가사 도우미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아수라장 속에서 통화 상대가 침통하게 말을 이었다.

    [여기도 정권 바뀌고 다들 건수 잡는 데 혈안이 돼 있어서, 분위기가 살벌하다. 내가 알려 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야. 더 이상은 나도 손쓰기 힘들어.]

    “뭐? 이 미친 새끼야! 내가 사는 술은 좋다고 다 받아 처먹어 놓고, 이제 와서 발뺌이야? 내가 이대로 혼자 죽을 거 같아?”

    상현이 지인을 향해 악을 바락바락 쓰며 협박했다. 상대도 지지 않고 거칠게 독설을 날렸다.

    [그러니까 너도 적당히 했어야지! 정도를 모르니까 이 지경까지 온 거잖아! 곧 언론에도 들어갈 거니까, 명령 떨어지기 전에 빨리 어디든 뜨라고! 네가 X되면, 나도 X되는 거야. 이 개새끼야!!]

    그가 제 할 말을 거침없이 쏟아 내고는 가차 없이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상현이 대답 없는 전화기만 붙든 채 숨이 넘어갈 듯 씩씩대다, 다급하게 측근을 호출했다.

    “야, 박중우! 지금 빨리 해외로 나가는 비행기 아무거나 예약해. 그래, 중국이든 일본이든 태국이든 제일 빠른 걸로 예약하라고!!”

    통화를 마친 그가 분에 못 이겨 휴대 전화를 던지려 팔을 번쩍 들었다.

    그러나 세상과 연결된 유일한 끈인 작은 기계를 차마 내던지지는 못하고 부들부들 떨다, 이내 툭 떨궜다.

    그러고는 소파에 무기력하게 앉아 숨만 고르고 있는 현 회장과 박은아를 싸늘하게 내려다보며 통보하듯 말했다.

    “당분간은 해외에 있을 겁니다. 아버지는 아버지 방식대로 하시고, 전 제 방식대로 하죠.”

    상현이 서늘할 만큼 무감한 얼굴을 한 채 뚜벅뚜벅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무렵, 주인도 독경에게 상황을 전달받았다.

    [선배, 조만간 현상현한테 출국 금지 명령이 떨어질 거예요. 혐의가 추가됐거든요. 근데, 이 쥐새끼가 숨어 버렸어요. 내부에서 미리 정보를 받은 게 분명해요.]

    분한지 어금니를 빠드득 무는 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생생하게 들렸다. 그녀가 손끝으로 아랫입술을 천천히 매만지며 물었다.

    “최대한 사리고 있다 어떻게든 빠져나가려 할 거야. 못 나가게 막아야 하는데 어쩌지?”

    [일단, 공항 쪽에 몇 사람 보냈어요. 저도 그쪽으로 곧 갈 거고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잡을 거예요.]

    독경이 결의에 찬 어조로 안심하라는 듯 말했다. 주인이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래, 조심해. 무슨 일 생기면 바로 연락 주고.”

    [네.]

    통화를 마친 그녀가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흉터가 남은 왼손을 쥐었다 펴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러고는 무언가를 결심했는지 주먹을 꼭 말아 쥔 채, 휴대 전화를 들었다.

    꽤 오랜 신호 끝에 상대가 전화를 받자, 주인은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고는 아주 느리지만 신중하게 입술을 뗐다.

    “오빠, 우리 좀 만날까요?”

    ***

    상현은 공항 인근 호텔에서 대기하다 수속이 임박할 무렵 출발하려는 계획을 세운 뒤, 곧장 방에 틀어박혔다.

    그가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보며 어서 빨리 시간이 흐르기를 기도하고 있을 때,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상현은 불길한 기운을 물씬 내뿜는 전화를 받을까 말까 한참을 망설이다, 통화 버튼을 눌렀다. 수화기 너머로 차분하고 우아한 여자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렸다.

    [오빠, 우리 좀 만날까요?]

    그러나 상현에게는 진절머리 날 정도로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기가 막힌 그가 으르렁거리듯 물었다.

    “너 미쳤어? 무슨 개수작이야? 너 때문에 내가 지금 어떤 꼴인데!”

    [그래서, 그러니까 협상을 하자는 거예요.]

    주인의 태도는 얄밉게도 담담하기 그지없었다. 상현이 인상을 팍 찡그렸다.

    “헛소리 말고 꺼져! 안 그럼 네 모가지를 분질러 버릴 거니까!”

    그가 분노에 찬 고함을 내지르고는 전화를 뚝 끊어 버렸다. 얼마 뒤, 공항에서 먼저 대기 중이던 중우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다.

    [큰일이다, 상현아. 김주환 본부장이 눈치채고 여기까지 직접 왔어!]

    얼마나 다급했는지 그는 또다시 존댓말도 잊은 채 침울하게 소식을 전했다. 상현이 이를 박박 갈며 제 머리카락을 신경질적으로 쥐어뜯었다.

    근본 모를 개새끼에게 발목을 잡혀 이도 저도 못 하는 제 처지가 원통해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의 핏발 선 눈이 강렬하게 동요하다, 이내 형언할 수 없는 광기에 사로잡혔다.

    문득, 어떤 생각이 스쳤다.

    그 새끼가 앞길을 막는다면, 나도 똑같이 막아 보리라. 상현이 높낮이 없는 목소리로 중우에게 명령을 내렸다.

    “현주인 그년, 지금 회사에 있는지 확인해 봐.”

    주인은 회사에 들러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하고는, 퇴근 시간에 맞춰 지하 주차장으로 향했다.

    독경은 불안정하고 급격하게 변하는 상황에 출근을 만류했으나, 그녀는 모른 척할 수 없었다.

    현 회장과 상현이 모두 부재한 와중에, 정상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이가 자신뿐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 줄 사람이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그녀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게다가 선하가 늘 동행해 주었기에 별문제가 없으리라는 믿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미처 도착하기도 전에, 검은 차 한 대가 선수를 쳐 주인에게 접근했다.

    끼익.

    차는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며 그녀 앞에 멈추더니, 뒷문을 툭 열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낯익은 사람이 불쑥 얼굴을 내밀었다.

    “날 만나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는데, 연락도 없이 와서 놀랐나?”

    상현이 비릿하게 웃으며 눈짓을 보냈다.

    곧이어 앞 좌석에서 인상이 험악한 남자들이 내리더니, 휴대 전화를 빼앗아 바닥에 산산조각 내고는 그녀를 차 안으로 우악스럽게 밀어 넣었다.

    “이거 놔!!”

    주인이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힘에 못 이겨 떠밀리듯 차에 올라탔다. 숨을 헐떡이며 옆자리에 앉은 그녀를 지그시 응시하던 상현이 입을 열었다.

    “전에도 생각했지만 말이다. 정말로 처음이 어렵지, 다음은 어렵지 않겠더라고.... 그러니까 얌전히 있는 게 좋을 거야.”

    무심한 어조로 지껄이는 위협에 주인은 온몸의 피가 차게 식는 것을 느꼈다.

    강석과 같은 결말을 독경이 아닌, 자신이 맞을 것만 같은 불길함이 등줄기를 타고 스멀스멀 올랐다.

    잠잠해진 분위기가 퍽 마음에 들었는지, 그가 평온하게 눈을 감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너 자신을 미끼로 삼아서 날 꾀려 한 모양인데.... 어쩌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네 그 깜찍한 개새끼는 지금 날 찾느라 정신이 팔려 있거든. 네가 지금,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 전혀 모를 거야.”

    그러고는 웃음기를 머금은 채, 짤막한 한마디도 잊지 않고 덧붙였다.

    “아! 이제 핸드폰도 없으니 위치 추적도, 녹음도 못 하겠네?”

    주인이 침음을 조용히 삼켰다. 그리고 잠시간 놀란 가슴을 진정시킨 뒤, 입을 열었다.

    “분명히 만나기 싫다고 했잖아요? 이렇게 찾아올 시간 있어요? 한시가 급할 텐데....”

    그 말에 상현이 한쪽 눈꺼풀을 슬쩍 들어 그녀를 오시했다. 마주친 눈길이 섬뜩했다.

    “그렇지. 계획대로라면 지금쯤 비행기를 탔어야 했는데....”

    그가 어금니를 으득 씹었다. 노기 띤 기세가 밖으로 줄줄 새어 나와, 차 안 공기를 숨 막히게 뒤덮었다.

    “근데, 그 개새끼가 공항에서 진을 치고 있는 바람에 못 탔거든. 그래서 이왕 이렇게 된 거 네 제안이 뭔지 들어나 볼까 하고 왔지.”

    “악!!”

    주인의 비명이 허공을 날카롭게 갈랐다. 상현이 그녀의 머리채를 포악하게 틀어쥔 것이다.

    그가 그녀에게 제 낯짝을 들이대며 귓가에 나직이 속삭였다.

    “머리 잘 굴려야 할 거야. 네 제안이 별로면, 나도 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거든.”

    주인을 태운 검은 차가 시내를 빠져나와 한적한 도로 위를 재빠르게 달렸다.

    ***

    그사이, 독경은 형형한 눈으로 공항 내부를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늘 단정하던 셔츠며 머리카락이 거칠게 흐트러져 있었다. 하지만 호흡만큼은 평소처럼 일정한 간격을 유지했다.

    그가 짜증이 한가득 묻어나는 어조로 중얼거렸다.

    “쥐새끼가 잘도 숨었네?”

    그때, 옆에 서 있던 일만의 보안 팀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의문을 드러냈다.

    “혹시 다른 공항으로 간 건 아닐까요?”

    “아아, 가장 이른 시간대가 여기라.... 다른 쪽 직원에게는 연락 없었나?”

    “네, 아직....”

    독경이 보안 팀장과 대화를 나누며, 커다란 손으로 이마까지 내려온 앞머리를 슥 넘겼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경계를 늦추지는 않았다.

    그때, 그의 매섭게 치켜뜬 눈에 이상한 물체가 포착됐다. 짙은 색 양복을 입은 남자가 선글라스와 모자로 얼굴을 가린 채, 주위를 살피며 살금살금 걷고 있었던 것이다.

    꽤 먼 거리였지만 어딘가 몹시 수상쩍은 남자를 그는 단숨에 알아보았다. 상현의 최측근, 중우였다.

    “찾았다, 쥐새끼!”

    독경이 기이한 희열감에 들뜬 얼굴로 씩 웃으며, 보안 팀장의 어깨를 툭 치고는 턱짓을 했다. 그도 목표물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다부지게 끄덕였다.

    “가시죠.”

    보안 팀장의 말에 그가 유희 거리를 발견한 포식자처럼 장난스럽게 입맛을 다시며 천천히 사냥감을 향해 접근했다.

    그동안 다른 곳을 뒤지던 직원들도 속속들이 합류했다. 독경이 신중하게 걸음을 옮기며 손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두 사람은 입구를 막고, 나 팀장과 한 사람은 후방으로, 난 전방으로 간다. 여기서 놓치면 죽을 각오 하도록!”

    그의 작전에 따라 검은 정장의 남성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중우가 미묘하게 경직된 공기의 흐름을 느꼈는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독경이 초원 위의 치타처럼 우아하지만 엄청난 탄력을 내며 치고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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