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독의 주인-14화 (14/76)
  • #14화. 밀회 (2)

    “이렇게 하면 될까요?”

    그 말에 서툴지만 세심한 손동작을 멀거니 감상하던 주인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 으응....”

    “그럼 이건 손님께 드릴게요.”

    갓 익은 사과처럼 빨개진 얼굴을 내려다보며, 독경은 입꼬리를 슬며시 실룩거렸다. 어쩐지 놀림을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든 주인이 불퉁한 표정으로 상대를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는 그저 태연하게 휘파람을 불며 자리를 뜰 뿐이었다. 그녀가 밉살스럽기 짝이 없는 뒤통수를 따갑게 째려보았다.

    “아까, 일부러 그런 거지?”

    영업을 마감한 후, 주인이 창고 사물함에서 가방을 꺼내는 독경에게 다가갔다.

    “네.”

    독경이 순순히 시인했다.

    “왜?”

    주인이 불만스럽게 되물었다. 그러자 그가 어깨를 가볍게 으쓱거리며 대꾸했다.

    “선배는 다른 여자들이 절 뚫어지게 보면 기분 좋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독경이 일을 시작한 뒤, 여자 손님이 부쩍 늘어난 상황이 거슬리던 그녀였다. 주인이 싸늘하게 내뱉었다.

    “싫어!”

    “저도 마찬가지예요.”

    독경이 옅게 미소 지으며 창고 불을 탁 껐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큰 눈망울이 작은 전구처럼 반짝거렸다.

    주인 앞에 우뚝 선 그가 팔을 죽 뻗더니, 앞치마 매듭을 능숙하게 풀어 벗겼다.

    “선배....”

    독경이 주인의 뺨을 자신의 큰 손으로 감싸며, 낮은 음성으로 불렀다. 그녀가 뺨을 다 가리고도 한참이 남은 손을 제 손으로 포갰다.

    “오늘, 안 들어가면 안 돼요?”

    애끓는 마음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가 허공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안 되는 거 알잖아.”

    주인이 일렁거리는 슬픈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독경이 체념한 듯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제 입술을 그녀의 입술에 살포시 댔다.

    부드럽게 입술을 몇 번 비비던 그가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그녀의 몸을 거칠게 끌어안으며 혀를 밀어 넣었다.

    “음....”

    주인이 나직하게 신음하며 두 팔로 그의 목덜미를 껴안았다. 독경이 키스를 멈추지 않은 채, 그녀를 창고 구석에 있는 탁자 앞으로 몰아갔다.

    잠시 뒤 그가 그녀를 번쩍 들어 탁자 위에 앉히고는, 벌어진 다리 사이로 미끄러지듯 제 몸을 구겨 넣었다.

    독경의 단단한 하체가 주인의 아랫배와 딱 맞닿았다.

    “하아, 선배.”

    독경이 아주 느릿하게 제 허리를 그녀의 몸에 치대며 중얼거렸다. 그의 하반신이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주인에게도 또렷이 전해졌다.

    그녀가 양손으로 그의 골반을 꽉 붙들었다.

    “이독경, 안 돼....”

    “아아....”

    독경이 어금니를 꽉 깨물며 주인의 어깨에 얼굴을 깊숙이 파묻었다.

    주인이 자신의 본능과 격렬하게 싸우는 독경의 볼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갑옷을 두른 것처럼 다부진 몸이 오늘따라 유독, 애달파 보였다.

    그녀가 그의 뒷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물었다.

    “배고프지? 우리 칼국수 먹고 갈래?”

    학교 정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두 사람의 단골집을, 주인이 뜬금없이 꺼냈다.

    이런 상황에서 그런 말을 올리다니. 독경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얼떨떨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미안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마주하는 그녀를 보며 거북함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래요, 문 닫기 전에 빨리 가요. 오랜만에 사장 할머님 뵙겠네요.”

    독경이 천천히 포옹을 풀며 말했다. 주인이 서글프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주인이라고 해서 독경의 불만이 달가울 리는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날 밤, 멈출 수밖에 없었다. 멈춰야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날, 두 사람은 선로를 벗어난 열차처럼 어긋난 방향으로 끝을 향해 돌진할 것이 뻔했기에.

    강의실 한구석에 앉아 수업을 준비하며 주인은 자신과 그의 인내심에 경의를 표했다.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으면 좋으련만. 손만 뻗으면 닿을 곳에 정인을 두고도 감내해야 하는 일은 혈기 왕성한 그들에게 예상보다 훨씬 더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때, 누군가가 강의실 안으로 저벅저벅 들어오더니 단상 위에 올랐다. 학과 조교 중 한 명이었다.

    그는 칠판에 커다랗게 휴강이라고 적어 놓고는, 웅성거리는 학생들을 슥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교수님께서 오는 길에 갑자기 일이 생기셔서, 오늘 수업을 취소하셨습니다. 대신 과제는 다 제출하라고 하셨으니, 아직 못 한 분들은 자정까지 이메일로 보내 주시기 바랍니다. 보강 일정은 나중에 공지하겠습니다.”

    조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주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곧장 휴대 전화를 꺼내 독경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독경, 어디야?>

    답장은 바로 날아왔다.

    <집이요. 이제 나가려고요.>

    <나 지금 너희 집으로 가도 돼?>

    읽음, 표시가 사라지기도 전에 전화가 걸려 왔다. 수화기 너머에서 씩씩거리는 거친 숨결이 들렸다.

    [당연한 걸 왜 물어요? 지금 당장, 빨리 와요!]

    원하는 대답을 얻어 낸 주인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그 순간, 앞자리에 앉아 있던 윤희가 뒤를 돌아보았다.

    “우와! 세 시간이나 공강이네. 우리 뭐 하지? 쇼핑이나 갈까?”

    “미안, 윤희야. 나 일 있어서 먼저 갈게. 이따 보자!”

    차분하던 평소와 달리 허둥지둥하며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친구를 보며, 윤희가 쯧 하고 혀를 찼다.

    휴대 전화 너머로 희미하게 들리던 웃음소리를 곱씹으며, 독경은 방 안을 서성거렸다. 마음이 들뜨고 초조했다. 한시라도 빨리 주인을 보고 싶었다.

    평소답지 않게 몹시 안절부절못하던 그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그녀를 만나기 위해 밖으로 나섰다. 그러자 골목길 끝에서 익숙한 외양이 뛰어오는 모습이 단박에 들어왔다.

    참지 못한 독경이 달려가 그녀를 마중했다. 주인이 그의 너른 품으로 뛰어들며 물었다.

    “왜 나와 있어?”

    “빨리 보고 싶어서요. 근데 수업은 어쩌고 왔어요?”

    “오늘 휴강이래. 그것도 세 시간짜리! 근데 네 수업은 어떡해?”

    “난 상관없어요. 자체 휴강하죠, 뭐. 하하!”

    그가 유쾌하게 웃음을 터뜨리고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당기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독경과 주인은 현관문이 채 닫히기도 전에, 맹렬하게 입을 맞부딪히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입술을 문지르고 혀를 뒤엉킬 때마다, 물기 가득한 마찰음이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그는 마치 오랫동안 굶주린 짐승처럼 허겁지겁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어찌나 가슴을 꽉 움켜쥐었는지, 투박한 손가락 사이로 말랑한 살점이 비죽 튀어나왔다.

    한 손으로 잘록한 허리를 받친 독경이 다른 손으로 가슴을 양껏 주무르는 동시에, 뾰족한 송곳니로 목덜미를 잘근잘근 씹었다.

    이와 손이 무자비하게 스친 자리마다 주인의 연한 피부가 빨갛게 부풀어 올랐다.

    잠시 뒤 그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의 다리를 억지로 벌리더니, 그 사이로 제 탄탄한 허벅지를 밀어 넣었다.

    그러고는 느릿하게 무릎을 쳐올리며, 상대의 성기를 조금씩 압박하기 시작했다.

    “아, 아앗.... 흣....”

    주인이 정신없이 몰아쳐 오는 감각에 짙은 신음을 흘리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었다. 격정적인 쾌감이 척추를 타고 올라 머리 꼭대기까지 찌릿찌릿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독경이 전보다 더욱 집요하고 섬세하게 음부를 자극했던 탓이었다.

    딴딴한 허벅지를 앞뒤로 움직이며 거칠게 비벼 대다, 이내 빠르게 위로 들어 올리더니 다시 속도를 천천히 늦추며 혼을 쏙 빼기를 여러 번 반복했다.

    그때마다 주인은 난생처음 느끼는 쾌감에 당황하며 빠져나오려 했지만, 꼼짝할 수 없었다.

    아니, 정확히는 그의 허벅지 위에서 속절없이 몸이 위로 들리다 앞뒤로 흔들리며 앓을 뿐이었다.

    독경은 주인에게 알려 주고 싶었다.

    그녀가 손끝으로 자신의 등줄기를 쓸어 올릴 때마다 솜털이 바짝 서던 짜릿함을. 낮은 신음을 흘리며 귓불을 잘게 씹을 때마다 바들바들 떨리던 흥분감을. 풍만한 가슴에 얼굴을 파묻을 때마다 뺨에 닿던 몽글한 안락함을.

    그녀로 인해 느끼는 이 선명한 감각들을 고스란히 되돌려 주고 싶었다.

    내가 너로 인해 얼마나 펄떡이며 살아 숨 쉬는지를.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강렬한 욕망이 얼마나 주체할 수 없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지를.

    너와 하나가 되기를 얼마나 간절히 열망하는지를 말이다.

    어느새 허리께까지 내려온 독경의 손이 주인의 탄력 있는 엉덩이를 마구 쥐고 흔들며 희롱하다, 이내 바지 단추를 툭 끌렀다.

    “자, 잠깐만!!”

    주인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그의 손을 다급하게 붙잡았다. 독경이 격앙에 까뒤집힌 눈으로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늦었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두툼한 손이 불쑥 속옷 안을 비집고 들어갔다. 뜨끈하고 보드라운 살점 틈으로 미끈한 액이 줄줄 흘렀다.

    “하!”

    독경이 헛웃음을 터뜨리며 속옷을 확 내렸다. 그러고는 그녀의 가는 다리 한쪽을 제 허리에 얹어 사타구니를 활짝 벌렸다.

    “앗!”

    주인이 휘청거리는 몸을 그에게 기대며 양손으로 어깨를 붙잡았다. 그사이 그는 지퍼 사이로 길고 굵은 성기를 꺼내 음부에 문지르며 끈적한 액을 골고루 묻혔다.

    그리고 마침내 모든 준비를 마쳤다는 생각이 들자, 그는 움찔거리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내벽으로 느릿하게 잠식해 갔다.

    “아.... 하으....”

    조금씩, 아주 조금씩 몸 안으로 단단한 무언가가 버겁게 침입했다. 그녀가 긴 속눈썹을 바르르 떨며 오늘따라 유독 붉게 달은 입술을 슬며시 벌렸다.

    “후우.”

    독경이 피가 몰리는 것 같은 압박감에 짙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주인의 작은 반응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눈조차 깜박이지 않은 채 몽롱하게 풀린 얼굴을 주시했다.

    그는 알고 싶었다. 어디를 어떻게 자극해야 그녀가 희열을 느낄 수 있는지, 어떤 속도로 몰아붙여야 쾌락의 정점에 오를지.

    마른 몸을 꿰뚫을 것처럼 뿌리 끝까지 밀어 넣던 독경이 아주 조심스럽게 허리를 올려붙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주인이 놀라지 않게 천천히 속도를 높이다 유연하게 돌리기도 했다.

    “아으....”

    그녀의 하얗고 기다란 손끝이 자신의 탄탄한 어깨를 점점 더 꽉 붙드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 그녀를 배려하는 신중한 동작이, 오히려 그에게는 감질나는 자극만 남겼던 것이다.

    독경이 갑자기 제 성기를 쑥 빼더니, 곧장 세게 들이박았다.

    “윽!!”

    주인이 비명을 지르며 그의 어깨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없이 각진 턱을 꽉 문 채 미친 듯이 허리를 치댔다.

    “아읏, 흣.... 이, 이 독경... 살살....”

    그녀가 거의 울먹이듯 애원했다. 그러나 이미 시작된 질주를 멈출 수는 없었다.

    “하, 선배.... 하아... 좋아요, 너무....”

    독경이 맞물린 잇새로 중얼거리며, 헐떡였다.

    어느새 주인의 손톱이 그의 살을 깊이 파고들 때쯤, 독경은 그녀의 상체를 옴짝달싹 못 하게 누르며 마지막으로 격렬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 아앗....”

    “아아, 선배....”

    두 사람의 호흡이 점점 더 거칠어졌다. 독경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히며 굵은 핏줄이 불뚝 솟아올랐다. 그와 동시에 주인의 아래턱이 덜덜 떨렸다.

    이윽고 폭죽이 터지듯 절정에 이르렀다.

    그 마지막 순간조차도 독경은 주인의 얼굴을 핏발 선 눈으로 똑바로 바라보며 아랫배와 가슴에 뜨겁고 비릿한 액체를 한 움큼 토해 냈다.

    그녀에 의해 천국을 맛보았으니, 그녀도 똑같이 다다라야 했다. 그리고 열락의 문을 열고 함께 들어가는 이는 오로지 자신뿐이어야 했다.

    주인이 느른하게 눈꺼풀을 깜박이며 평온한 표정으로 잠든 독경을 지켜보았다.

    조금 전까지 붉게 달아오른 얼굴로 뜨거운 숨결을 토하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얌전한 모습이었다.

    그녀는 절정에 이르는 순간까지도 제게서 눈을 떼지 않았던 그의 끈질긴 시선이 부끄러웠지만, 동시에 기뻤다.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에 오롯이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그 덕분에 주인은 사지가 벌벌 떨릴 만큼 황홀한 쾌감에 사로잡힐 수 있었다. 무서울 정도로 소름 끼치는 경험이었다.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 같은 기묘한 기분. 극한의 흥분에 다다르면 자신의 몸을 스스로가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녀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모든 기력을 쏟아 낸 몸은 독이라도 퍼진 것처럼 축 늘어졌다. 기분 좋은 탈력감이었다.

    주인이 손을 들어 땀에 달라붙은 그의 앞머리를 부드럽게 쓸어 넘겼다. 그러고는 막 손을 거두려는데, 독경이 가로로 긴 눈을 슬며시 뜨며 나직이 읊조렸다.

    “좋아요, 좋으니까 계속 만져 줘요.”

    독경은 보호자의 손길을 갈구하는 강아지처럼 막무가내로 머리통을 들이밀었다. 주인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그의 머리카락을 장난스럽게 흐트러뜨렸다.

    독경이 주인의 가녀린 몸을 양팔로 우악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한참이나 이리저리 뒹굴다 문득,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근데, 학교 안 가 봐도 돼요?”

    주인이 여상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있을래.”

    그녀는 태어나 처음으로 ‘규칙’이라는 것을 어겼다. 스스로에게 엄격한 사람에게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다.

    주인이 몸을 일으켜 휴대 전화의 전원을 일말의 망설임 없이 껐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며 독경은 기쁨을 감출 길이 없었다.

    그녀가 자신과 함께 있기 위해 포기한 것이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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