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벅차게 차오른 신음을 가까스로 삼켰다. 모든 것이 지나치게 자극적이었다. 햇살이 환한 곳에서 이런 짓을 한다는 것도, 침실이 아닌 공간에서 그와 붙어먹고 있다는 사실도.
“아….”
지난 3년간 황후로서, 그와 부부로 살아왔지만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비센테는 단 한 차례도 그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었다. 그녀가 원하기 전에는 제 욕망마저 단속하기 급급했던 남자였다. 하물며 이렇듯, 적나라한 자세로는.
“늘 절반이나 겨우, 받아먹던 것을… 전부 삼켰어. 느껴져?”
절반이나 겨우 받아먹었다고. 그동안은 차마 제 눈으로 본 적이 없어 그의 말이 진실인지 알 방법이 없었다. 다만, 평소보다 몇 배로 더 버겁게 느껴진다는 것만은 확실했다.
엘레나는 그의 목덜미에 이마를 묻은 채로 잘게 신음했다. 그게 기껍다는 양 그녀의 머리 위로 끊어질 듯 나직한 웃음이 흘렀다.
“네가 이 정도로, 좋아할 줄 알았다면… 진작 이럴 것을 그랬지.”
귓가에 속살거리는 음성은 분명 파렴치한인데, 눈을 떠 보면 제 근사한 남편이었다. 엘레나는 그 간극에 어찌할 바 모르는 채로 착실히 달아올랐다.
“흐윽….”
“아무리 맛있어도 숨은 쉬어야지….”
그 말과 동시에 가냘픈 여체가 들어 올려졌다가, 다시 끌어 내려지듯 주저앉혀졌다. 아주 깊숙한 한계까지 그가 거세게 밀려들었다. 여태 단 한 차례도 닿은 적 없던 미지의 극단까지.
“하… 으….”
해일처럼 밀어닥치는 쾌락에 벌어진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눈앞에, 새하얀 극지의 설원이 펼쳐진 듯했다. 허공으로 들어 올려진 발끝이 곱아 들었다. 그대로 끝으로 치달았다. 고작, 그가 한 번 짓쳐 올린 것만으로도.
“……!”
여운에 가늘게 떨리는 여체를 그가 그대로 붙잡아 밀어 붙었다. 아, 응, 응, 이거, 이상, 이상해…. 엘레나의 흐무러진 애원조차 들리지 않는다는 양, 평소였다면 진작 그녀의 체력을 배려해 물러났을 상황임에도.
신음을 참느라 입술을 잘근 짓씹자, 그가 제 손가락으로 그녀의 젖어 든 입을 벌리고 혀를 눌렀다. 타액이 이미 흥건했다.
“아, 으… 흐…!”
그가 몰아붙일 때마다 그녀는 깊디깊은 지저와 천국을 빠르게 오르내렸다. 모든 게 비현실적이었다. 저를 가볍게도 받쳐 든 남편의 힘도, 이렇게 드레스 자락만 겨우 걷어 올린 채 짐승처럼 해 대고 있다는 것도, 문 하나를 두고 바깥에는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것도.
“비, 비센… 테….”
눈물에 젖어 성긴 눈꺼풀을 들어 올리자 그의 일그러진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했다. 일렁이는 목울대와 찡그린 미간, 악다문 턱에서는 습관적인 절제가 묻어났다. 그가 가라앉다 못해 갈라지는 듯한 음성으로 애원을 막았다.
“안 돼.”
그제야 그가 어떤 욕망을 참아 왔는지가 보였다. 지나치게 고조된 쾌감에 두려워진 그녀가 무심코 몸을 물리자, 비센테가 그녀의 허벅지를 붙잡아 더 바짝 제게 붙였다.
“아!”
“버텨, 엘레나.”
조금도 봐주지 않겠다는 듯 속살거리는 음성과 달리 몸짓은 부드러웠다. 조금도 잔인하지 않게 밀려들면서, 더없이 부드럽게 헤집으면서.
그녀의 육체에 조금이라도 해가 될까 봐, 이 와중에도 끝까지 제 욕망을 마음껏 풀어내지도 못하고.
“너는 가끔,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가혹하게 구니까.”
이제야 깨달았다. 가끔이 아니었다. 항상, 늘, 단 한 번도 빠짐없이, 몸을 겹치는 순간마다…. 비센테는 그 자신에게 끔찍하게 가혹했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처음이라고 달랐을까?
‘그래도 함께 끝까지, 다 이르렀을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면 동관에서의 첫날 밤, 그 서늘하던 방 안에는 흔적이 지나칠 정도로 없기는 했다.
‘그땐, 뒤처리를, 잘했으리라고만….’
“여유로워 보이는군.”
다른 생각을 하는 그녀가 괘씸하다는 듯 비센테가 엘레나의 귓불을 잘근 짓씹었다. 그대로 몸을 바짝 붙이고 짓누르듯 깊숙이 비벼 댄 순간, 힘겹게 이어지던 생각마저 뚝 끊어졌다. 뭉글뭉글 뭉쳐 있던 쾌감을 짓이겨 터트리는 듯한 감각에 신음조차 내지 못한 채로 입술이 벌어졌다.
그녀는 뻣뻣하게 굳은 몸을 바르르 떨며 또 한 번의 극에 이르렀다. 끝도 모를 파도에 휩쓸리듯.
“하으….”
연이어 몰아친 감각에 축 늘어진 정신을 깨우듯, 비센테가 그녀의 하얗게 드러난 목덜미를 잘근 깨물었다. 그 자극에 그녀는 축축이 젖어 든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겨우 입을 열어 애원했다.
“이, 이제… 못, 못 하겠… 어….”
“이보다 더한 것을 열 달이나 품겠다고 한 건 너였어, 엘레나.”
다정하여 더욱 서럽게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그의 입술이 아래로 내려가 부푼 살갗을 깨물었다. 예민해진 몸에 버릇처럼 열이 올랐다. 머리가, 이대로 어떻게 되어 버릴 것만 같았다.
절망적인 것은 오로지 그녀만이 홀로 극에 다다르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시간이 지날수록 더 빠르게.
“네 체력에 대해 신뢰할 수 있게끔 각오를 보여 주어야지.”
저렇게나 괴물 같으니 애써 붙여놓은 제 체력이 형편없어 보일 만도 했다. 여태 그녀의 체중을 버텨 내고 있으면서, 그렇게나 움직여 놓고 숨 한 번 흩트리지도 않았으니까. 인간의 규격을 벗어난 기준을 누구에게 맞추려 드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빈정거리는 생각은 오래 이어지지도 못하고 흩어졌다.
“흐, 아, 으응….”
연이은 열락으로 거칠어진 숨이 집무실의 공기를 덥혔다. 어느 순간부터는 이성을 놓았던 것 같다. 차라리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대로 온몸이 모조리 녹아서, 서로가 한 몸인 양 엉겨 붙을 때까지. 계속, 계속….
그래, 그렇게 일생을 보내도 기꺼울 것 같았다. 상황도, 시간도, 장소도 잊고. 오로지 서로만을 한 품 가득 끌어안은 채로.
착실하게 반응하는 엘레나의 살결에 그가 입술을 거칠게 묻었다. 인내하는 듯한 신음이 흥분을 고조시켰다. 치받는 힘이 조금 느긋해졌다고 느껴진 찰나였다. 다정을 이기지 못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던 비센테가 불현듯 입을 열었다.
“네게 아이를 포기해 달라고 말했던 것부터가… 사실 염치 없는 말이었어.”
“으, 흣.”
“너는 이미 내 곁에 있기 위해 많은 것을 포기하고 있는데.”
내내 빠르게 몰아치던 것이 느릿해지자 더 생생한 자극으로 느껴졌다. 그녀는 겨우 비센테의 목에 팔을 감은 채로 밀려드는 감각을 버텨 냈다.
제대로 된 생각은커녕, 그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게 고작인 정신에 재차 그의 고해가 흘러들었다.
“그래서 그동안 내 스스로가 역겨우면서도 기꺼웠어. 내가… 네 대단한 약점이라도 된 것 같아서.”
“아….”
“네가 무슨 감정으로 떠나지도 못한 채 견디고 있는지 알면서도, 그런 것으로나마 네가 삶의 의지를 불태우는 것이 좋아서.”
그렇지 않다고. 너는 내 대단한 약점이 아니라, 자랑이라고…. 그렇게 말해 주어야 하는데 입에서는 지쳐 뭉그러진 신음 소리만 흘러나왔다. 도저히, 제대로 된 언어를 뱉어낼 수가 없었다.
문득, 그녀를 붙잡고 있던 비센테의 손끝이 떨리는 게 느껴졌다.
“그러니까 너를 죽여서라도 내게 살아갈 희망을 만들어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마.”
그녀를 직시하는 청보라색 눈동자는 조금 서러워 보였다.
“우리 아이를 그런 이유로 낳고 싶어 하지도 말고.”
“…….”
“나도, 이제는 살아 볼 테니까.”
아주 힘겹게 뱉어낸 비센테의 말에 엘레나의 눈이 둥글게 커졌다. 이제는 살아 보겠다고. 그 뜻은 네가 없는 세계라 해도 이제는 견뎌 내 보겠다는 말과도 같았다. 그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더 온전하게 사랑하기 위해서. 더 이상 끔찍했던 과거에 매달리지 않고 이겨 내기 위해서.
고통스러웠던 세월은 어떻게든 흔적을 남기기 마련이었다. 비센테에게도, 엘레나 자신에게도. 아주 행복하다가도 문득 비센테가 잃어버린 세월을 헤아리면 죄스러웠고, 비센테 또한 오랜 상실감에 지쳐 그녀의 안위에 지나치리만큼 집착적이었다.
여섯 살, 그리고 열아홉. 그 시절부터 시작되었던 지난했던 시절, 상처투성이였던 겨울이 끝나 가고 있었다. 그의 말대로 이제는 달라지고 성장해야만 할 때였다. 봄을 맞아 흐드러지게 잎을 틔워 내는 나무처럼…. 누구보다도 힘들었을 세월을 무위로 돌리며 비센테가 말갛게 웃었다.
“응?”
어느새 흠뻑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녀는 홀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응…. 비센테….”
“사랑해, 엘레나. 세상 무엇에도 감히 견주지 못할 만큼.”
그녀는 더 견디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목이 벅차게 메었다.
“나도….”
좋아한다거나, 깊이 애정한다거나…. 훗날 비센테에게 깊이 남을 상실감이 두려워, 그것 이상으로는 감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말이었다. 이제는 이 말을 내뱉는 것이 두렵지 않았다.
“나도 사랑해, 비센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곧았다. 평행선처럼, 미세하지만 결코 좁혀들지 않던 틈이 그제야 완전히 접붙었다. 엘레나는 환희에 젖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제 그들은 괜찮을 것이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