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2화 (142/151)
  • 절정은 끝없이 밀려들었다. 그는 그녀의 모든 요구에 충실히 응했고, 때로는 그녀가 요구하지 않은 너머까지도 빠짐없이 충족시켜 주었다. 몇 번이나 몸을 겹쳤는지는 셀 수조차 없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잘근잘근 깨물리고, 빨린 탓에 저릿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도저히 더는 버티지 못하겠다고, 그렇게 까무룩 정신을 놓아 버린 것이 지난 새벽의 일이었다.

    “으응….”

    엘레나는 작은 투정을 터트리며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밤새 짓무를 정도로 울어 댄 탓에 눈은 뻑뻑해서 잘 떠지지도 않았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걸까? 하루? 이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주변이 조금 밝아져 있다는 것만은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푹신한 이불에 파묻힌 채로 기지개를 슬슬 폈다. 온몸에 남아 있는 노곤한 만족감 때문일까? 육체적으로는 아주 피로할 텐데도 묘하게 개운했다.

    “깼어?”

    눈을 비비던 손이 부드럽게 붙잡혔다. 그러다 눈에 상처라도 내겠다고, 조심스러운 당부를 속삭인 비센테가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 맞추는 것이 느껴졌다.

    “일찍 일어난 것 같은데. 언제 일어났어?”

    엘레나는 제 목소리가 잠기다 못해 가닥가닥 갈라지는 것처럼 들린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럴 만도 했다. 지난밤, 끝도 모르고 신음을 질러 댔으니까….

    “물 가져다줄게. 잠시만.”

    “아냐. 괜찮아.”

    “하지만 엘레나. 목이 쉬었는데.”

    “이대로 있자. 조금만….”

    그녀는 겨우 눈을 뜨고는 비센테의 허리를 양팔로 꽉 감았다. 그 미약한 힘마저 귀엽다는 듯 머리 위에서 나직하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평화로운 순간이었다. 그가 그녀를 제 가슴에 비스듬히 고쳐 안자, 귓가에 그의 규칙적인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왔다.

    그대로 눈을 감고 있자니, 방금 일어났는데도 잠이 몰려들었다. 그의 체취를 느긋하게 들이마시는 동안, 비센테는 나른한 손길로 베개 위로 흐트러진 엘레나의 갈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어제….”

    잠깐의 침묵 후에 먼저 입을 연 것은 엘레나였다.

    “왜 화가 났던 거야?”

    “음.”

    그가 곤란한 듯 미소짓는 게 보였다. 이 대화의 주제가 내키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숨길 이유도 없는 듯했다. 그는 조금 갈등하다가 이내 포기한 듯 말했다.

    “네 유혹에 넘어간 내 자제력에 실망해서.”

    “그건…. 입을 맞추는 것뿐이었잖아.”

    “그래도. 네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굳이 위험을 무릅쓸 이유가 없었어.”

    “…그게 위험씩이나.”

    “정결해지고 난 다음에 해도 될 일이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화가 났었던 거야?”

    엘레나의 솔직한 질문에 비센테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베개에 뺨이 눌린 채로 진지하게 되묻는 여자의 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아무리 근엄한 척 눈매를 가늘게 떠도 말이다. 비센테는 나직한 웃음을 흘리며 이어 말했다.

    “처음에는. 그래도 네가 느낄 정도로 티가 났을 줄은 몰랐는데.”

    “안 났어.”

    “…….”

    “평소보다 더 내 욕망만 우선시하기에. 또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보다, 짐작이나 했을 뿐이야.”

    “…….”

    “너는 가끔, 그런 식으로 스스로에게 벌을 주듯 가혹하게 구니까.”

    그녀는 비센테의 허리를 놓아주고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리려는 이불을 끌어 올려 가슴의 앞을 가린 채, 그가 받쳐주는 쿠션에 푹신하게 등을 기댔다.

    “어제 이야기하려던 것 말이야.”

    그녀의 말에 생각에 잠겨 있던 비센테가 시선을 다시 들었다.

    “응.”

    “가브리엘라가 유폐되어 있던 궁에서 탈출했었던 사건 말이야. 어제 그 여자를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어.”

    “그렇군.”

    “붙잡아야 할까?”

    “글쎄.”

    비센테는 턱을 매만지며 엘레나를 바라보다가 픽 웃었다.

    “네가 그렇게 물어본다는 건 마음이 약해졌다는 소리겠지.”

    그 말에 엘레나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가브리엘라는 그녀에게 살갑게 구는 여자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모질거나 매정하게 구는 여자도 아니었다. 엇나가는 제 아들을 걱정한 참인지 가끔은… 그녀에게도 친절을 가장했었고.

    그게 전부 가장인지 아니면 일말의 진심이 섞였는지는 그 여자만이 알리라.

    “뜻대로 해.”

    “…그래도 괜찮아?”

    “제 오라비도, 남편도, 자식도, 친우였던 이들도, 가문의 영광도 모두 사라졌어. 아들도 없으니 정당성을 내세울 길도 없고. 그저 한낱 평민에 불과한데 무엇이 무서우려고.”

    “무기 징역수로 궁에 가두어 두는 대신, 수도원에 종신 서원하게 하는 방법을 제안해 보려고….”

    “그렇게 해. 네 마음이 그것으로 편하다면.”

    엘레나는 기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로 조금 더 여유를 즐기던 그녀는 문득 무언가를 떠올리고, 그의 가슴에 묻고 있던 얼굴을 조금 들어 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어제 코라와 시에나에게서 편지를 받았어.”

    “그래?”

    “코라는 다음 달 중으로 여행을 끝내고 에스페다로 들어온다는 모양이야. 이제 뱃멀미는 지긋지긋하대. 앞으로는 에스페다에 정착해서 미술을 전공하고 싶다고 하기에, 궁정 화가 중 한 명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도록 조치해주려고.”

    “잘했네.”

    “익명의 후원자가 누구인지 최근 들어 부쩍 궁금해하더라. 그리고… 시에나께서는 시력이 조금씩 돌아오고 계시대. 아마도 마음이 부쩍 편해지신 덕이겠지.”

    “다행이군.”

    “그리고 우리더러 아이는 언제쯤 가질 생각이냐고 물어보시던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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