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1화 (141/151)

엘레나는 뜨거운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몸을 푹 묻은 채 꾸벅 졸았다.

며칠간 서류를 검토하느라 제대로 쉬지도 못한 몸으로, 전장에서 갓 돌아온 비센테를 자극하기까지 했으니…. 결국 이렇게 기진맥진 늘어지고 만 것도 처음부터 끝까지 제가 자초한 셈이었다.

‘그 와중에 철저하게도 저는 끝까지 하지도 않았고….’

입술만은 깨끗하니, 그 입술로 정말 온갖 짓을 다 해 대면서. 그렇게나 봉사하듯 굴면서 정작 저는 무엇 하나 만족스럽게 욕망을 분출하지도 못했다. 저 혼자 녹진하게 늘어진 엘레나의 몸을 끝까지 챙겨, 이 욕조 속으로 밀어 넣은 것도 비센테였다.

“자면 안 돼.”

등 뒤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엘레나는 다시 잠에서 화들짝 깨어났다. 살짝 새어 나온 침인지, 목욕물인지 모를 것을 손등으로 닦아 내자 머리 위로 나직한 웃음이 터졌다.

비센테의 헐벗은 가슴에 기대 있던 그녀의 등을 타고 웃음이 자잘한 진동으로 번졌다.

“네가 부추겼으니, 책임도 끝까지 져야지.”

그가 그녀의 허리를 그가 두툼한 양팔로 가볍게 끌어안았다. 둥근 귓바퀴에 번지는 그의 숨결은 억눌린 신음 같았다. 아래에 흉흉하게 느껴지는 존재감이 그녀의 엉덩이를 찔렀다.

그녀는 망연히 그 부피감을 느끼다가, 문득 지난 새벽 내내 고민하던 화제를 떠올렸다.

“아, 그러고 보니…. 말해 줘야 할 것이 있었는데….”

“무엇인데?”

그가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그러모은 후, 드러난 하얀 어깨에 입 맞추며 되물었다. 부드러운 입술이 녹진하게 젖은 살결을 간지럽혔다. 그녀가 몸을 뒤틀자, 그가 순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엘레나는 그를 탓하려 욕조를 붙잡은 채로 뒤를 돌아보았다. 느슨하게 욕조에 기대앉아 있던 비센테가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매끄러운 미소를 지었다.

“왜?”

그녀는 순간 따지려던 상황도 잊고 홀린 듯 그를 바라보았다. 커다란 욕조임에도 그의 체구를 다 담지 못하고 빠져나온 무릎과 꽉 짜인 복근, 벌어진 가슴과 젖은 머리카락….

엘레나는 물기가 묻어나는 날렵한 콧날과 턱선에조차 잠시 시선을 빼앗겼다. 멍하니 입을 벌리자, 비센테가 기다렸다는 듯 그녀의 턱을 붙잡아 그대로 입술을 집어삼켰다.

“으응….”

커다란 손이 내려와 부푼 살을 움켜쥐었다. 가느다란 신음이 습한 대기 중으로 번졌다. 연이은 자극으로 말캉하게 부르튼 입술이 이윽고 젖은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아, 할, 말… 있었는데….”

“그렇게 돌아본 네 잘못이지.”

“아… 나, 지금….”

“지금?”

그는 두 번 묻지 않았다. 흥분으로 바짝 달아오른 엘레나의 몸 상태를 기민하게 눈치챈 듯, 그가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양손으로 붙잡았다. 그대로 살짝 들어 올려지더니, 이윽고 비센테가 뒤에서부터 빠듯하게 밀려들었다.

버거운 감각에 엘레나의 입술이 바르르 떨렸다. 엘레나는 욕조의 끝을 붙잡은 채로 그 뜨거운 자극을 견뎌 냈다.

“아, 흐….”

“숨 쉬어. 너무, 읏, 좁아서…. 네 남편을 끊어 먹지 말고….”

단정하던 그의 목소리에 기묘한 열기가 스몄다. 그녀는 늘 이 순간을 사랑했다. 비센테가 여유를 잃고 그녀에게 짐승처럼 흘레붙는 이 순간을, 고결함을 내려놓고 한낱 사내처럼 정염에 굴복하는 이 순간을.

그가 허리를 짓쳐 올리자 엘레나의 청회색 눈동자에 물기가 그득 고였다. 격한 움직임에 욕조의 물이 요동쳤다. 얕게 찰박이는 물소리가 욕실의 벽을 타고 울렸다.

“으…흣….”

엘레나는 평소보다도 빠르게 흥분했다. 전희만으로도 몇 번이나 가벼운 절정에 올랐던 만큼, 비센테가 저를 붙잡는 손길에도 몸은 기대감으로 부풀었다.

그러나 가파르게 신음하는 그녀와 달리 비센테는 정작 평소처럼 느긋해 보였다. 그가 그녀의 목선을 따라 입술을 미끄러트리고는, 귓바퀴를 깨물며 속삭였다.

“할 말이라던 것, 계속해 봐. 듣고 있으니까.”

“으, 너무, 아… 어떻게…. 집중, 이 떨어져서….”

“그러면 집중력을 잃지 않도록 좀 더 연습해야겠군. 집무실에서도 이러면 곤란할 테니.”

“네가 건… 드리지만 않으… 면, 으흑….”

“그건 불가능하고.”

엘레나는 헐떡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여유가 달랐다. 그가 밀려드는 족족 신음을 삼키기나 바쁜 저와 달리, 그는 오로지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를 살피며 매달렸기 때문이다.

여기가 더 좋은지, 이곳을 어떻게 하면 더 느끼는지. 하나하나 차근히 실험당하는 실험체가 된 기분이었다.

낱낱이 파헤쳐진 그 이해를 바탕으로, 그녀를 기어이 열락의 끝으로 몰아붙이려는 듯.

“집, 무실?”

“이 와중에, 그것을 또 들어서.”

정확히 그녀가 만져 주었으면 했던 부분을 그가 단단한 손가락으로 붙잡아 비틀었다. 그녀는 순간 신음조차 못 낸 채로, 등줄기만 바르르 떨었다. 도드라진 척추뼈 위로 그가 점점이 입을 맞추는 게 느껴졌다.

엘레나는 그제야 그가 조금쯤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에게, 어쩌면 그 자신에게.

“으흣….”

그러나 곧 휘몰아친 열락에 생각은 흔적도 없이 녹아 사라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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