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0화 (140/151)
  • 그 노골적인 함의에 엘레나의 입이 딱 다물렸다. 흉흉하게 치솟은 아래에 그가 조금 면구한 듯 웃었다.

    “안 되겠다. 씻고 올게.”

    엘레나는 저를 놓아주고 물러나려는 비센테의 옷깃을 붙잡았다. 힘주어 잡아당기자 그는 저항 없이 그대로 끌려 내려왔다. 엘레나는 조금 고집을 부렸다.

    “그전에 잠깐만…. 입은 맞춰 주어도 되잖아. 입술까지 지저분한 건 아니니까.”

    “…시작하면, 그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잖아.”

    그가 겨우 인내하듯 끊어 말하며 엘레나의 손을 제게서 떼어 냈다. 그녀의 제안을 듣는 것만으로도 제 목울대가 핏대가 바짝 섰다는 것을 인지조차 못 하는 눈치였다.

    그렇게 욕망을 참아 내는 비센테의 모습은 늘 유달리 아름다웠다. 엘레나는 홀린 듯 그의 옆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

    굳게 다물린 입술, 내리뜬 채 붉어진 눈가와 거세게 오르내리는 단단한 가슴, 갑옷 아래로 감추고 있을 매끄럽고 탄력적인 복부…. 갑옷 위로 그녀의 손길이 닿을 때마다, 신이 공들여 빚어 놓은 조각 같은 얼굴에 곤란한 기색이 어렸다. 예민하게 반응한 근육들이 움찔, 떨리는 것마저 기꺼웠다.

    조금 더, 조금만 더 아래로…. 천진하게 나아가는 그녀의 손을 그가 급히 붙잡았다.

    “엘레나.”

    당혹으로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였다. 이 와중에도 비센테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지 않았다. 지나치게 철저한 저 성품을 강직하다고 해야 할지, 모순적이라고 해야 할지….

    ‘정작, 자고 있었을 때는 마음껏 보았을 거면서.’

    그에게 손목이 붙잡힌 채로 손바닥을 펼치자, 그가 순종하듯 그녀의 손바닥에 제 뺨을 묻었다. 몇 달 새 거칠게 상한 뺨을 몇 번 쓸어 준 엘레나는 그가 제 시선을 피하지 못하도록 고개를 그녀 쪽으로 돌려 붙잡았다. 그제야 가까스로 눈과 눈이 마주쳤다.

    “그게 어때서?”

    “어떠냐니….”

    “자제하지 마. 할 필요 없어.”

    “…….”

    “봐, 이미 더럽혔잖아. 흙먼지투성이인 손으로 날 붙잡았으면서.”

    “그건….”

    “사과나 듣자고 하는 말이 아니야. 날 더 더럽혀도 좋다는 뜻이었어.”

    “…제발, 엘레나.”

    기막힌 듯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탄식처럼 그녀의 이름을 내뱉었다. 들끓는 욕망을 가까스로 감추며 애원했다.

    “너는… 군에서 버티는 게 어떤 것인지 몰라서 그래. 단 한 순간도 널 그리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부디 그러지 마.”

    “뭘 그러지 말라는 거야.”

    “…부추기면 너만 힘들어져. 굶어 비루해진 놈처럼 널 탐할 거야. 부끄럽지만 이성으로 자제할 자신이 없어.”

    “애원하고 싶은 건 나야, 비센테.”

    애원. 엘레나의 입에서 그 말이 내뱉어진 순간,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있던 비센테의 손에서 힘이 빠졌다. 엘레나는 감히 저를 다시 붙잡을 생각조차 못 한 채 망연히 늘어진 그의 손목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

    갑옷의 이음새가 당겨지며 살갗이 조금 드러났다. 엘레나는 말캉한 입술을 그의 맥박이 요동치는 곳에 꾹, 가져다 눌렀다. 이빨을 세워 긁었다. 머리 위에서 그가 급히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그동안, 비센테 네가, 너무 부족했어….”

    온몸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채로 굳어 있던 비센테의 기색이 급변한 것은 순간이었다.

    손등을 덮은 갑주를 거칠게 풀어낸 그가 맨손으로 그녀의 턱을 붙잡아 올렸다. 촉촉하게 젖어 있는 엘레나의 눈을 마주한 순간, 그의 홍채가 좁아 들며 자글거리는 불씨를 피워 냈다.

    “나는, 분명히 경고했어.”

    욕망으로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를 긁었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열망은 거의 만져질 것처럼 선명했다. 비센테가 지금 당장 그녀를 원하고 있었다.

    어쩐지 조금 벅차올랐다. 떨어져 있는 시간 동안 그녀가 그를 원했듯, 그 역시 그녀를 간절히 원했다는 게 느껴져서. 서로가 서로를 같은 마음으로 아끼고, 살핀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엘레나.”

    그의 재촉에 엘레나의 고개가 허락하듯 떨어지자, 비센테의 엄지손가락이 그녀의 아래턱을 붙잡아 잇새를 벌렸다. 그가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거친 입술이 그녀의 말캉한 입술을 잡아먹듯 뒤덮었다.

    밀려드는 아주 뜨겁고, 녹진한, 숨.

    “아….”

    벌어진 잇새를 빠듯하게 채우며 그가 침범해 들어왔다. 잘 익은 과육처럼 흐무러진 살덩이를 녹녹하게 휘감고, 짓씹고, 질척하게 빨아 올렸다. 혀뿌리가 아릿하게 달아올랐다. 입술을 맞붙인 채로 그녀는 잘게 신음했다.

    “읏, 응….”

    그는 엘레나의 신음마저 모두 받아 삼켰다. 평소의 부드러움은 온데간데없이, 거칠고 갈급하기만 한 입맞춤이었다. 그런데도 이상할 정도로 온몸에 열이 올랐다. 그가 만지는 곳마다 불씨가 피어오르는 듯했다.

    “흐으….”

    좁아 든 목울대로 밭은 신음이 흘렀다. 그의 단단한 손가락이 그녀의 부드러운 뺨을 거칠게 쓸어올렸다. 축축이 젖어 든 눈을 반짝 뜨자, 짙게 달아오른 청보라색 눈과 마주했다. 여유라고는 한 톨도 없이, 껍질을 낱낱이 벗어던진 날것의 욕망을 그득 담은.

    당혹해서 호흡을 놓치자 숨은 금세 달렸다. 바르르 떨리는 엘레나의 등줄기를 그가 침대 위로 내리눌렀다.

    “으응….”

    얽힌 혀 사이로 그녀는 투정처럼 조그만 신음을 흘렸다. 이렇게나 가깝게 붙어 있는데도 그가 그리웠다. 아직 부족했다. 그의 단단한 살결과 빈틈없이 맞닿고 싶었다.

    그녀는 그의 몸을 더듬으며 갑주의 이음새를 풀어냈다. 빗장뼈를 더듬어 그 아래로 내려가자, 그가 그녀의 손을 움켜쥐었다. 손깍지를 낀 채로 침대 위로 다시금 내리눌렀다.

    “손버릇이 그새 나빠졌어.”

    “널, 두고… 어떻게… 참아.”

    “못 하는 말도 없어졌고.”

    “그래서 싫…어?”

    “싫을 리가….”

    그대로 엘레나의 허벅지를 벌려 붙잡은 그가, 그녀의 종아리를 제 어깨에 걸쳤다. 차고 단단한 갑주에 맨 살갗이 닿는 느낌이 생경해 그녀가 몸을 살짝 떨었을 때였다. 그가 고개를 숙인 것도 거의 동시였다.

    “비, 비센테…!”

    엘레나는 경악하여 새된 비명을 질렀다. 그대로 아연해져서 비센테의 머리카락에 제 손가락을 얽었다.

    충격을 받은 와중에도 자극은 착실하게 전해졌다. 그의 입술이 맞닿아 있는 부분에서부터, 아랫배와 등줄기를 지나, 목덜미까지 지근지근한 감각이 번졌다. 그 자극에 가느다란 허리가 저절로 허공으로 들뜨며 휘어졌다. 그가 그녀의 엉덩이를 잘했다는 듯 받쳐 올렸다. 그대로 박제하듯 벌려 고정한 채로 조금 더 탐욕스러워졌다.

    “아, 흑….”

    눈앞에 불꽃이 튀는 듯했다. 그의 혀가, 그가, 그의 입술이, 그의 커다란 손이…. 그가 제게 하는 모든 짓이 믿기지 않았다. 메울 수 없는 갈증으로 말라붙었던 곳마다 그가 능란하게 스며들었다. 달콤한 샘물이라도 길어 내듯, 질척이는 소리가 요란했다.

    “안, 으흐, 안… 안 돼….”

    지독한 수치였다. 억누르려고 해도 가느다란 신음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엘레나는 팔뚝으로 제 눈을 가린 채 흐느꼈다.

    “비센, 비센테…. 그, 그만….”

    아래에서부터 밀려드는 감각은 이슬비에 조금씩 젖어 드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에는 그저 수치스러웠다가, 예민한 살갗에 닿는 숨이 화상이라도 입을 듯 뜨거웠다가, 이내 녹진하고 부드러운 쾌감이 차곡차곡 쌓였다. 살갗이라고는 고작, 한 뼘 남짓이 닿아 있는 것뿐인데도 충족감이 지나쳤다.

    “아, 읏….”

    허벅지를 쥔 그의 손에 조금 더 힘이 실렸다. 온몸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비센테는 그녀가 얼마나 버둥거리든 놓아주지 않고 집요하게 괴롭혔다. 아득한, 어쩌면 천박하기까지 한 자극에 발끝마저 곱아 들었다.

    “아으응….”

    조금 더, 조금만 더 그가 닿아 있기를 바랐다. 그녀는 제 스스로 보채는 줄도 모르고 보챘다. 이윽고 자극은 조금 더 깊고 내밀해졌다. 이윽고 거세게 빨린 순간, 그녀는 결국 길고 날카로운 신음을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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