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3화 (123/151)

그녀는 아연한 얼굴로 가까스로 고개를 저었다. 비센테가 그녀의 머리맡을 짚으며 체중을 실었다. 침대가 기우뚱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비센테가 그녀의 위로 그늘졌다. 손목이 아프지 않게 붙잡혔다.

“지금이라도 그만두고 싶으면 이야기해.”

그만두고 싶을 리가. 엘레나는 대답 대신 팔을 뻗어 비센테의 목덜미를 안았다. 본능처럼 다리를 벌리자, 아래로 그가 서서히 밀려들었다.

“아윽…!”

그녀는 제대로 된 신음조차 못 낸 채 고통으로 바르작댔다. 너무 아팠다. 그를 제대로 받아 낼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그만두지 않기를 바랐다. 그가 저를 있는 힘껏 안고, 상처 내고, 돌이킬 수 없는 흔적을 새기기를 바랐다. 이 몸에, 이 영혼에.

“흐읏….”

이를 악문 채 버티는 그녀의 입에 그가 제 손가락을 물렸다. 차라리 그녀의 입술을 너덜너덜하게 짓씹는 대신 저를 아프게 하라는 것처럼. 둥글게 말려든 채 바르르 떨리는 그녀의 등을 그가 천천히 다독였다. 애원하듯 조금씩, 조금씩 잠겨 들었다.

눈물로 성긴 속눈썹을 들어 올리자, 비센테의 얼굴도 일그러져 있는 게 보였다. 드물게, 확신이라곤 전혀 없는,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로.

“많이 아프지…. 제발, 숨 좀 쉬어 봐.”

“아으….”

“더 하면 안 되겠어. 네가 너무 작고, 약해서 다칠 것만 같아….”

“안 돼…. 끝까지, 그냥 끝까지…. 아파도 되니까….”

그녀는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줄도 모른 채 애원했다. 그를 전부 안고 싶었다. 그에게 전부를 내주고, 그의 전부를 받고 싶었다. 그녀는 본능처럼 제 다리로 비센테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

꽉 조여드는 힘이 버거운지 비센테가 끊어지는 듯한 신음을 흘렸다. 침대를 짚은 그의 손등 위로 새파란 핏줄이 툭 불거졌다.

“으, 비센, 테…. 흐윽….”

그가 간신히 틈을 벌리고 파고들 때마다, 버거운 충족감이 벅차게 밀려들었다. 빠듯한, 빈틈없이 채워지는 감각에 엘레나는 고통에 허덕이면서 몸부림쳤다. 매끄러운 땀이 송골 맺혀 온몸이 미끈했다.

“그래, 엘레나.”

그가 달래듯 연신 그녀의 이마와 단단한 가슴팍에 짓눌렸던 뺨에 입 맞췄다.

더는 죽어도 못 버티겠다고 생각한 순간, 그가 몸을 단번에 쳐올렸다. 전신이 고통으로 파드득 떨렸다. 눈물이 젖어 성긴 속눈썹이 뻑뻑했다.

겨우, 그를 끝까지 받아 냈다. 얼얼한 감각에 도리어 희열이 밀려들었다. 그와 이어졌다는 충만함이 뿌듯하게 차올랐다.

“아, 비센, 비센테….”

그녀는 수치도 모른 채 그의 탄탄한 가슴팍에 제 달뜬 이마를 비볐다.

거의 애원하듯 빌었다. 이대로 나를 가져 줘. 너를 내가 가질 수 있게 해 줘. 네가 나를 안고, 나는 너를 안을 수 있게 해 줘…. 제발, 날 더 해쳐도 되니까. 아주 망가져도 되니까….

두서없이 이어지는 애원에 그가 느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흐윽…!”

그 순간, 엘레나는 제가 했던 애원조차 잊었다. 아래에서 거대한 맥박이 꿈틀대며 뛰는 것 같았다.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생생했다.

아파, 정말로,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아….

고장 난 것처럼 줄줄 흘러내린 눈물이 뺨을 흠뻑 적셨다. 비센테가 그녀의 젖어 든 뺨을 혀로 핥았다. 원망하듯 그의 가슴팍을 마구 떠밀자, 그가 그녀의 손을 붙잡아 제 미끈한 목에 얹게 했다.

“천천히 숨, 쉬어, 엘레나.”

달래듯 연신 내려앉는 입맞춤이 다정했다. 반쯤 돌아 버린 눈을 하고서도, 오로지 그녀가 먼저라는 것처럼….

엘레나는 겨우 손톱을 세워 그의 어깨를 붙잡았다. 온몸이 흔들릴 때마다 비센테의 어깨와 목덜미를 마구잡이로 할퀴는 꼴이었다. 그런데도 그는 어떤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비센테가 제 탄탄한 복부를 그녀의 아랫배에 좀 더 가까이 붙였다.

기이하게도, 점점 아랫배에 뭉글뭉글한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녀의 반응이 달라졌다는 것을 느끼자마자 그가 몰아쳤다.

“아으, 응…!”

눈앞을 부옇게 가릴 정도로 습윤한 숨이 터져 나왔다. 달뜬 신음이 둥근 천장에 부딪혀 웅웅 울리며 그녀의 귀로 되돌아왔다. 세상이 뒤집어질 듯 흔들렸다. 이런 것을, 그녀는 알지 못했다.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이, 도덕이, 진리가, 세계가 산산이 깨어졌다. 부서지고, 무너지고, 망가진 끝에 재정립되었다.

비센테의 얼굴대로, 그의 육체대로….

“으, 응…!”

젖은 입술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제 것이 아닌 양 달콤했다. 더 그를 깊숙이 끌어안지 못해 안달이었다. 뒤늦게 찾아온 수치심에 그녀는 간신히 얼굴을 가렸다.

“네 얼굴, 가리지 마.”

그의 목소리에서 서툰 흥분이 묻어났다.

그도 저만큼이나 흥분했다고, 서로가 서로의 처음이라고.

그걸 깨달은 순간, 전신이 뭉그러지는 것 같은 고양감이 밀려들었다. 그가 치받을 때마다 배 속에서 잔뜩 부풀어 오른 쾌감이 툭, 투둑, 터져 올랐다.

마지막 남은 이성으로 입술을 깨물어 참자, 그가 손가락으로 그녀의 입술을 벌렸다.

“참지 마, 엘레나. 너는 무엇도, 참을 필요 없어….”

그녀는 그 열락에 완전히 휩쓸렸다. 허리째 들어 올려졌다가 덜걱 내려앉을 때마다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더는 참을 수도 없이, 해일처럼….

그녀는 짐승처럼, 긴 신음을 내질렀다.

***

새벽녘. 엘레나는 다섯 번 울리는 종소리에 겨우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사위가 푸르스름했다.

자지러지게 울어 댄 탓에 눈이 그야말로 퉁퉁 부르터 뻑뻑했다. 속눈썹은 달라붙어 잘 떠지지도 않았다. 그녀는 녹진하게 늘어진 몸을 가까스로 일으켰다. 비센테는 그녀의 허리를 안은 채 깊게 잠들어 있었다.

베개에 반쯤 파묻힌 채로도 그야말로 그림처럼 완벽한 낯이었다. 엘레나는 그의 이마에 흐트러진 금발을 살살 쓸어넘겼다.

“…….”

긴 밤, 도대체 얼마나 흘레붙었는지…. 중간부터는 그 수를 세는 것도 잊었다. 거의 짐승의 교미나 다름없었다. 그렇게나 해 댔으니 남아날 체력이 없으리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몸은 생각보다도 훨씬 멀쩡했다.

그에게 물고 빨린 곳이 아릿한 것을 제외하면 근육통은커녕 허리의 둔통마저 적었다. 그렇게나 격렬했는데도.

그가 제 체중을 그녀에게 의지하지 않고 온전히 두 팔로 버텨 낸 덕분일 터였다. 아주 가끔, 흥분을 억누르느라 그녀의 손목을 쥐고 버틸 때를 제외하면.

그 억센 악력조차 기꺼웠다고 하면, 너는 대체 무슨 표정을 지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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