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2화 (122/151)

“넌 언제나 그랬어. 더하거나 뺄 것 없이 너인 그대로 완벽해.”

그는 놀랍게도 진심인 것처럼 보였다. 엘레나의 눈이 둥글게 커지자,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톡 기대듯 가져다 댔다.

“네가 이보다 더 다쳤든, 멀쩡하든 상관없어. 물론, 네가 다치면 내 마음이야 찢어지겠지만.”

“…….”

“너는 지금 이대로도 충분해.”

쓸모 있는 것이라곤 외모뿐이라고, 언젠간 가문을 망하게 할 계집이라고, 계산적인 성정이라 가까이 두기에 끔찍하다고, 사람의 호의를 진심으로 받을 줄 모른다고, 사내와 권력에 미친 계집이라고….

평생 정답인 줄로만 알고 기꺼이 뒤집어썼던 폭언들이, 그제야 하나둘 씻겨 나갔다. 이대로도 충분하다고, 귀한 사람이라고…. 진심이든 아니든, 그 한마디가 더할 나위 없이 고맙고 기꺼웠다.

그녀는 비센테의 손등 위로 제 손끝을 조심스럽게 가져다 댔다. 이 순간을 조금도 망치고 싶지 않았다. 제 초라한 떨림이 그에게 전해질까 두려웠다.

“어느 순간에도 내가 널 사랑해, 엘레나.”

사랑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해도 귀로는 난생처음으로 듣는 단어였다. 세상에 존재하기는 하나, 대체 어떤 억양으로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몰랐던 말이었다. 들어 본 적 없었으니까. 그래서 더 완벽했다.

누구도 아닌 네가 처음으로 해 주는 말이라서, 네 목소리로 배울 수 있어서, 네가 날 여태 사랑해서. 다른 누구도 아닌, 비센테 네가….

벅찬 감정이 먹먹하게 차올랐다.

눈물이 그득 고인 채 일그러진 그녀의 눈두덩이에 그의 입술이 닿았다. 달래듯 지극히 조심스러운 접촉이었다. 이윽고 그녀의 얼굴을 천천히 덧그리며 아래로 내려갔다. 말랑한 눈 밑 살에, 콧잔등에, 뺨에, 귓불에, 턱의 끄트머리에….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무엇이라도 되는 것처럼, 그래서 도저히 아껴주지 않고는 못 배기겠다는 것처럼.

고작 저 같은 여자가 이만한 애정을 받아도 되는 걸까? 이렇게까지… 충만해도 되는 걸까?

“…아.”

고개를 뒤로 젖히자, 그가 그녀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뜨거운 숨결이 쇄골을 따라 연한 피부 위로 흩어졌다. 절절 끓는 것 같은 그의 체온에 비해 그녀의 몸은 아직 서늘했다. 그래서 더 자극적이었다.

그의 입술이 불티라도 되는 것처럼. 살갗 위로 절절 끓는 쇳물이라도 뚝, 뚝 떨어진 것처럼. 엘레나는 자잘한 신음을 뱉었다.

그녀의 손이 본능처럼 그의 머리카락을 헤집었다. 그가 입술을 살짝 떼고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아프게 했어?”

고작 입술이나 조금 가져다 댄 것만으로도 너를 아프게 하였느냐고. 염려와 욕망으로 흐트러진 아름다운 얼굴을 본 순간, 도리어 안달이 난 것은 그녀였다.

엘레나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눈물이 그득 고인 눈으로 비센테를 바라보며 애원했다.

“아니… 제발, 멈추지 마….”

“…….”

“너라면, 날 더 아프게 해도 괜찮으니까….”

그녀의 애원에 그의 상체가 한 번 크게 들썩였다. 잠시 숨을 쉬는 법까지 잊었던 것처럼. 그녀를 안고 있던 몸에 뻣뻣하게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

다음 순간, 커다란 손이 흐트러진 앞섶 사이로 들어와, 도톰하게 부푼 살을 움켜쥐었다. 단단한 손바닥으로 세게 문지르며 뭉그러트렸다.

그가 그녀의 목덜미를 아프도록 빨아올렸다. 짓누르고, 핥아 올리고, 반복적으로 짓씹었다.

마치 짐승이라도 된 양.

그녀의 반응을 집요하게 살피는 청보라색 눈동자가, 잔인한 욕심으로 반들거렸다.

“응….”

입술이 닿은 곳에서부터 아릿한 자극이 물결치듯 흘러내렸다. 그녀는 그의 단단한 어깨에 매달린 채 착실하게 그가 주는 감각을 느꼈다.

어느새 몸이 서서히 뒤로 넘어갔다. 목덜미에서 쇄골, 반역자의 낙인 위… 그리고 점점 더 아래로 내려가며 입맞춤이 이어졌다. 이윽고 그가 부푼 살결을 머금었다.

“아…!”

잘근잘근 짓씹다가 노긋해지도록 빨아들였다. 자극이, 지나쳤다. 비센테는 그녀가 움츠러든 것만으로도 마치 도망가려 했다는 듯 제 몸으로 몰아붙였다.

치맛자락을 들추고 들어온 손이, 여린 허벅지를 붙잡아 벌렸다. 그녀는 기겁하며 그의 팔을 붙잡았다.

“비, 비센테, 이, 이건…!”

“제대로, 풀어 둬야지. 아니면 네가 고생할 텐데….”

겨우 입을 뗀 그가 대답했다. 애써 욕망을 억누르듯 나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생경했다. 마주 보는 눈동자엔 자글거리는 불티뿐이었다. 망설임도, 머뭇거림도 없었다.

손가락이 닿아 있는 부분부터 저릿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아… 으응!”

입술이 연약한 꽃잎처럼 벌어졌다. 그녀는 잘게 신음하며 그에게 나긋한 몸을 가져다 더 붙였다. 쾌락으로 조금씩 말려들기 시작한 혀를, 그가 제 입술로 덮듯이 삼켰다.

혀를 빨아들이고, 어르듯 얽고, 입 안의 연한 살갗을 핥듯이 간질였다. 등줄기를 따라 기분 좋은 소름이 돋았다.

이런 입맞춤은, 완전히 처음이었다.

배꼽 아래가 찌르르 울렸다. 해갈되지 못한 쾌감이 부글거리며 조금씩 그 아래로 뭉쳤다.

어떻게 좀 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생각하려던 찰나였다.

“……!”

흐트러진 하녀복이 완전히 아래로 끌어 내려졌다. 보얗게 드러난 자그마한 나신을 그가 천천히 침대 위로 눕혔다. 엘레나는 헐떡이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발긋해진 뺨과 턱에 연신 입을 맞춘 그는 이윽고 셔츠를 벗었다. 근육으로 완벽하게 조형된 두툼한 상반신이 달빛 아래에 모습을 드러냈다.

“…….”

성화나 신화 속에서 저 홀로 툭 튀어나온 듯, 인간적인 부분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조각 같았다. 순간은, 그의 대단한 얼굴보다 몸에 시선을 빼앗겼을 정도로. 군인들은 다 저런 걸까?

반사적으로 그녀 스스로의 몸을 훑어본 순간, 그녀는 제가 지금 얼마나 형편없는 꼴인지를 인지했다.

비센테가 반복적으로 괜찮다고 속삭이며 걸어 두었던 마법이, 두 눈을 가렸던 장막이 떨어져 나가는 듯했다. 순식간에 발갛게 물든 얼굴을 그녀는 고작 제 손등으로 겨우 가렸다.

“그렇게… 보지, 마….”

“왜.”

“흉측, 흉측한… 꼴이니까….”

그가 그녀의 손을 부드럽게 잡아 올려 열 개의 손가락에 전부 입을 맞췄다. 조금도 서두르지 않고, 아주 소중하게.

“예뻐. 감히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짓, 말….”

“네가 내 눈에 예쁘지 않았다면, 이렇게 반응할 리도 없었겠지.”

그가 그녀의 손을 붙잡은 그대로 아래로 내렸다.

그 흉흉한 부피감에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물론 그가 저보다 몸이 한참은 크다는 것은 진작 알았고, 그래서 모든 게 다 거대하리라는 것까지도 짐작했지만….

“놀랐어?”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