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51)

서쪽 탑. 황궁의 서쪽, 한때는 감시탑이었으나 이제는 고위 정치범들을 가두는 감옥으로서나 기능한 지 오래였다.

가까워지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확 죄어드는 것 같았다. 아랫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전하, 저는….”

“네가 몸을 되찾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말했었지. 뭘 알고 말한 건가?”

이미 과거의 공포에 서서히 잠식되기 시작한 머리로는, 카스트로의 말을 제대로 알아들을 수조차 없었다. 그녀는 점점 헐떡이기 시작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어요.”

“네 몸이 어디에 있는지 정말 못 느끼겠어?”

그가 그녀의 귓가에 제 입술을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그러니까, 그녀의 몸. 엘레나는 꼭 감았던 눈을 떴다. 그제야 생각이 가까스로 굴러가기 시작했다.

“제, 몸이… 여기에 있다고요?”

카스트로는 그녀의 반응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피는 것만 같았다. 속눈썹의 움직임이나, 입술을 오므리는 것에서 진실과 거짓을 가려낼 수 있다고 믿는 사람처럼.

이윽고 그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처음엔 널 아주 믿진 않았거든. ‘엘레나’를 비슷하게 흉내 내며 접근한 계집이 한두 명도 아니고…. 그런데, 너처럼 그 애의 영혼이라고 주장한 여자는 처음 봐.”

“…….”

“여태껏, 너처럼 ‘몸’에 대해 언급한 여자는 없었어.”

“…….”

“‘그것’에 대해 아는 사람은, 현재로서는 둘뿐이니까. 네 시녀였던 계집과 나.”

“…아멜리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혹시라도 그 계집이 알려 준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네 말을 듣고 같이 놀라는 꼴을 보아하니 정말 몰랐던 것 같더군.”

그가 말을 멈추는 것과 동시에 그들은 서쪽 탑의 입구에 아주 가깝게 다가섰다. 탑을 엄중하게 지키고 있던 기사들이 카스트로를 보고 경례를 올려붙였다.

뒤이어 곧바로 문이 열렸다. 철문, 철창, 그 뒤로 어둑한 복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언젠가의 기억처럼 눅눅한 습기와 불쾌한 쇠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가지.”

그들이 문을 지나치자마자 철문이 등 뒤에서 다시 닫혔다. 어둑한 감옥 안, 카스트로. 그녀는 간신히 몇 걸음을 떼었다가 멈춰 섰다. 몇 번의 심호흡이 간절했다. 안 그래도 짧던 인내심이 순식간에 닳아버린 카스트로가 짜증스럽게 되물었다.

“도무지 움직이질 못하는군. 왜?”

“그저… 제 몸이, 흐, 아직 여기에 있을 줄 몰랐어요.”

최대한 무덤덤하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목소리 끝이 살짝 떨렸다. 카스트로는 아주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것처럼 코웃음을 쳤다.

“네가 죽었다는 소문 덕에 비센테가 유폐되었어. 굳이 몸을 옮겨가며 네가 살아 있다고 떠들썩하게 알릴 필요는 없지.”

“…….”

“해서. 서운한가?”

“아니, 아니에요. 정말, 후, 그런 게 아니라….”

“그러면 서둘러.”

지하실로 내려가는 계단은 아주 가팔랐다. 그녀가 갇혀 있던 상층부와 달리, 감옥이라기보다는 죽은 자들이 머무는 무덤 같았다.

그들은 곧 지하실의 가장 밑바닥에 닿았다. 굳건한 철문이 하나 있었다.

문은 큼직한 자물쇠로 잠겨져 있었다. 카스트로가 제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자물쇠를 풀고 문을 열었다. 철과 돌이 긁히며 내는 소음에 엘레나는 저도 모르게 어깨를 떨었다.

“…….”

큼직한 방이었다. 사방에 횃불이 걸려 어둡지는 않았으나, 기온이 묘하게 서늘했다. 방의 한가운데에 석관이 놓여 있었다. 그래, 관. 죽은 자들이 시체를 담아 두는 바로 그것.

그녀가 미심쩍은 듯 발걸음을 늦추자, 카스트로가 문간에 기대선 채로 고갯짓을 했다.

“가 봐.”

“…….”

“어서, 엘레나. 네 몸이잖아.”

그녀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천천히 방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바라마지않던 순간이기도 했지만, 정작 이 순간이 닥치자 두려움부터 엄습했다. 어쩌면 그녀는 이 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아주 끔찍하거나 아주 이상하거나. 분명 둘 중 하나일 테니까.

어쩌면 제 모습을 제 눈으로 바라보는 그 순간 세상이 끝날지도 모르겠다고. 그녀답지 않게도 그런 미신적인 생각까지 치밀었다. 엘레나는 혹시라도 관 안을 덜컥 들여다보지 않도록 주의했다.

그리고 마침내.

“…….”

관 속에 누워 있는 ‘엘레나’는 그야말로 핏기라곤 하나도 없었다. 창백하다 못해 새파래진 피부 아래로 핏줄이 그대로 들여다보였다. 카스트로의 말이 하나는 맞았다.

‘이건’ 정말로 살아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가슴팍이 조용히 오르내리는 것을 제외하면….

그녀는 덜컥 인상을 찡그렸다. 기분이 아주 이상했다.

그녀의 반응을 유심히 관찰하던 카스트로가 미간을 좁혔다.

“이대로는 별 반응도 없겠군. 손을 대 봐.”

“네?”

“직접 접촉해 보라고. 네 몸을 되찾아야지.”

이상한 논리였다. 몸을 만지면 순식간에 영혼이 되돌아갈 거라고 생각한 건지. 어차피 저자를 이해할 수 있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터였다. 엘레나는 내키지 않는 태도로 손을 뻗었다.

저 기분을 거슬렀다가 어떤 끔찍한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까….

그녀는 각오를 단단히 다지고 손끝으로 제 뺨을 살짝 쓸었다.

“…….”

피부에 닿는 촉감은 단단했다. 차가웠고, 사람이라기보다는 도자기를 만지는 것처럼 매끄러웠다. 숨을 쉬고 있으니, 살아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데.

왜 그가 이것을 ‘어쩌지도’ 못하고 있었는지 알 것만 같았다.

“어떻지?”

“솔직히… 이상해요. 이렇게 제 몸을 보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그리고? 원래의 몸으로 돌아갈 것 같다든가 하는 느낌은?”

그녀는 잠시 그 상태로 기다렸다가, 고개를 저으며 손을 뗐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아쉽게 됐어. 확실한 변화가 생기리라고 기대했는데. 느낌은 어때? 주기적으로 살펴야 하나?”

“그것도 모르겠어요. 저도 정말,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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