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6화 (66/151)
  •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아다닌 줄 알아?]

    “…….”

    [너와 코라가 사라지고 나서 정말 미친 듯이 찾아 헤맸어. 네가 파견 간다고 했던 수녀원에 내가 몇 번이나 편지를 썼는지 모르겠다. 요 몇 달간 난 정말 제정신이 아니었어.]

    “…….”

    [네가 간다던 수녀원에선 널 본 적도 없다고 하지, 베네딕트 수도원에선 네 기록조차 말소되었지…. 맙소사, 이벨린. 난 그동안 사람이 아닌 유령을 좇는 기분이었어. 윈스포드의 어디에도 네가 머물렀던 흔적은커녕 널 기억하는 사람조차 드물었어. 특히, 틸리 수녀님마저 돌아가신 뒤론….]

    [틸리 수녀님께서 돌아가셨다고?]

    그녀가 겨우 반응할 수 있었던 건 고작 그런 것이었다. 그러나 카터는 순간적으로 흠칫 입술을 짓씹으며 시선을 피했다. 감정이 격해져 깜박 말실수라도 한 사람처럼. 이제 좀 더 급해진 것은 그녀였다.

    [대체… 그게 무슨 말이야? 틸리 수녀님이 돌아가셨다니.]

    낭패감이 그득 서린 얼굴로 몇 번 한숨을 내쉬던 그는, 결국 포기하듯 입을 열었다.

    [네가 사라졌다는 걸 알고 난 뒤로 그분도 근심이 깊으셨어. 불안해 보이시기도 했고…. 난 그분께서 그렇게 망가지신 걸 처음 봤어.]

    “…….”

    [네 행방을 수소문하고 다니셨는데 그날도 새벽에 나가셨던 것 같아. 항구 근처에서… 발견되셨고.]

    시체로. 차마 그가 말하지 못하고 흐린 단어는 도리어 더 의미를 강조하는 꼴이었다.

    [그 뒤론 널 영영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네가 살아 있기만을 바랐지. 무사히 살아 있다는 걸 알기만 해도 괜찮겠다고… 죽 그렇게 널 찾았어.]

    그의 눈 아래 어둑하게 자리한 슬픔이 보였다. 상실과 고통을 절절히 겪은 자의 우묵한 눈이었다. 만약 그녀가 정말로 ‘이벨린’이었다면, 그를 끌어안지 않고는 못 배겼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미안하게도, 저 미련한 진심이 버거웠다. 그녀가 아닌 ‘이벨린’을 보는 저 눈도.

    [윈스포드로 돌아가자. 내일 오전 배를 타고, 당장.]

    […그럴 수 없어.]

    [왜? 설마… 에스페다의 황태자 때문이야?]

    부정할 수도, 마냥 긍정할 수도 없는 물음이었다. 이벨린이 곤란한 얼굴로 침묵하자 카터의 안색이 일변했다. 그녀의 손목을 붙잡은 손에 강하게 힘이 들어갔다.

    [네가 지금 어떤 일에 휘말린 건지 알기나 해? 이 나라로 무기들이 비밀리에 수입되고 있어.]

    그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브리타냐뿐만이 아니야. 시페론, 아델란트, 발레리앙, 벨파냑…. 지금 이 연회장에 득시글대는 각국의 사절들이 죄다 고작 서임식 하나만 보고 모인 것 같아? 조만간 황제가 황태자를 아주 내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자자하다고.]

    “…….”

    [제발, 이벨린. 이런 상황에서 에스페다의 황족과 연관된다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몰라서 그래?]

    카터의 준수한 얼굴이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이 일그러졌다.

    [그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대체 지금 네가 입은 그 옷이며, 백작 영애라는 그 신분은 다 뭔데….]

    참담하게 가라앉은 카터의 시선이 그녀가 걸친 것들을 위에서부터 아래로 훑었다.

    윈스포드가 명문가라고는 하지만 고작해야 작은 도시의 시장직이나 역임하는 가문이었다. 제국의 부에는 댈 것은 못 되었다.

    그녀가 걸친 보석 중 하나만 팔아도 윈스포드의 한 달 치 예산은 너끈히 나올 것이다.

    네가 그동안 사라졌던 것이 고작 돈 때문이었냐고. 말없이 그녀를 응시하는 카터의 시선에 선득한 날이 섰다.

    이벨린은 팔을 뒤틀며 그가 잡고 있던 손에서 벗어났다.

    [지금은… 정말 설명할 수가 없어. 널 설득할 방법도 모르겠고.]

    “…….”

    [그냥 모르는 척해 주면 안 될까? 우리가 어떤 접점도 없는 것처럼, 여기서 처음 만난 것처럼….]

    “…….”

    [이런 말이 이기적이라는 건 알지만, 제발 부탁이야.]

    그는 몇 번이나 마른 손으로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모르는 문제를 만난 사람처럼 눈이 까맣게 죽어 들었다.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널 책임지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래? 내가 네가 원하던 것만큼 부자가 아니라서?]

    [세상에, 그런 비약이 어디 있어.]

    [그러면 대체 왜! 네가 이런 꼴로 여기에 있는데!]

    그녀는 순간, 정말로 울고 싶어졌다.

    하필이면 카스트로를 자극하려 일부러 몸매를 좀 더 강조하는 옷을 입은 날이었다. ‘이벨린’에게 이런 옷을 입힌 것도 미안했지만, 카터는 이런 꼴을 죽어도 보이고 싶지 않았던 두 사람 중 하나였다.

    이벨린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겨우 입을 뗐다.

    [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래. 네게… 말할 수 없어서 미안해.]

    [이벨린. 너 설마, 무슨 협박 같은 걸 당하고 있는 건 아니지?]

    [그건 아니야. 내가 한다고 한 일이고, 좋아서 하는 거야.]

    “…….”

    [너한테 못 할 짓이란 건 알지만… 나가서 착각했다고 말해 줄 수 있을까?]

    말하면서도 그녀는 초조하게 커튼이 내려진 테라스 바깥을 흘긋거렸다. 파르디타에게 말했던 20분 중 절반이 지났을 시점이었다. 여기서 시간을 더 끈다면 무슨 변명을 해도 우스운 꼴이 될 터였다.

    이벨린의 불안은 이제 거의 손으로 잡힐 지경이었다. 카터는 망연히 어깨를 늘어트렸다.

    […일이 다 끝나면 무슨 일이었는지 말해 주긴 할 거고?]

    [물론… 물론이야. 이젠 정말 얼마 남지도 않았어. 일이 다 끝나면 어차피 브리타냐로 떠날 생각이었어. 배편도 끊어 두었어. 정말이야….]

    “…….”

    [그러니까 제발, 이번 한 번만 모른 척해 줘.]

    이벨린은 절박하게 그의 팔을 붙잡았다. 그는 여전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는 얼굴로 이마를 짚었다. 이윽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그래, 시간을 주도록 할게. 비탈리 영애껜 내가 착각한 것으로 이야기하지.]

    [저, 정말?]

    [그리고 일주일 뒤 연회가 끝나는 날 저녁에 곧바로 여길 떠날 거야. 그때 너도 나와 같이 갈 거고.]

    일주일. 그건 너무 짧았다. 항변하기 위해 입을 연 순간, 카터가 손을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았다.

    [그게 내가 인내할 수 있는 마지막이야. 그 안에 네가 해야만 한다던 그 일을 모두 정리해. 그렇지 않으면.]

    “…….”

    [네가 백작 영애 따위가 아니라, 윈스포드 출신의 고아라는 걸 모두가 알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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