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6화 (56/151)

의식은 성공적이었다. 그냥 성공적이기만 한 게 아니라, 한 점의 의혹조차 남기지 않았다. 봉인되었던 기도실이 문이 도중에 열렸던 것도, 그녀가 기도실로 돌아간 직후 대신관이 다시 봉인을 한 것도, 이사벨라와의 기묘했던 만남도.

목격자는커녕 사소한 시비를 거는 사람조차 없었다. 모든 것이 기묘하게도 순조로웠다.

그 대단한 엘 레테아에서, 황태자의 땅에서 두 번째로 중요한 증표가 사라졌는데도.

그럼에도 이벨린은 추수제를 미처 다 보지도 못하고 도망치듯 벨몬테로 돌아왔다.

그녀가 한 행위는 어떤 말로 포장해도 도둑질이었다. 원론적으로는 그 ‘인장’이 본래 비센테가 물려받았어야 할 물건이고, 그에게서 황좌를 도둑질한 것이 지금의 황제라는 것부터 따져야 옳겠지만.

솔직해지자면, 이제는 닳아 없어진 도덕의식보다도 비센테를 마주하는 것이 더욱 껄끄러웠다. 생각보다 이사벨라의 말이 마음에 깊게 박힌 탓이었다.

“2황자, 너무 믿지 마요. 당신 생각처럼 그렇게 반듯하기만 한 청년은 아닐 테니까.”

이벨린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었다. 이사벨라의 말이 구역질처럼 치밀 때면 이렇듯 두통이 밀려들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알고서 하는 말일까?

이벨린은 피로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성큼 안으로 들어서던 엔리케는 이벨린을 발견하고 가증스럽게도 놀란 얼굴을 했다.

하인으로부터 그녀가 와 있다는 것을 뻔히 전해 들었을 텐데도.

그가 이벨린을 향해 에스페다 궁정식으로 우아하게 허리를 굽혀 인사했다.

“레녹스 백작 영애.”

“반가워요, 엔리케. 저까지 예의를 차려드려야 할까요?”

“그러실 필요는 없죠. 사실 좀 놀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아가씨와 재회하게 될 줄은 몰랐거든요. 솔직히 믿기….”

“못 믿겠으면 직접 봐요. 가져왔으니까.”

이벨린은 길어지는 대화를 자르듯 테이블에 인장을 올렸다. 청동이 대리석과 부딪치며 맑은 소리를 냈다. 엔리케가 놀랍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이것이 정말로.”

“나는 약속을 지켰어요.”

“그럼 이젠 제가 약속을 지켜야 할 차롄가요?”

순순히 진행된 이야기에 이제는 이벨린이 당혹스럽게 눈을 깜박였다.

“진위 여부도 따져보지 않고요?”

“설마 영애께서 이렇게 당당하게 가짜를 내놓으셨으려고요.”

“…….”

“감별이야 천천히 받으면 되고.”

그녀가 말문이 막혀 있는 사이에 엔리케는 증표를 손수건으로 감싸듯 집어 올렸다. 이벨린이 날카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는지, 품속에 넣으려다 도로 테이블 위에 올려 두었다.

“사실 좀 당황스럽긴 하네요. 정말로 성공해서 돌아오실 줄이야.”

엔리케의 어조는 묘했다. 이벨린은 재빨리 상체를 곧추세우고 서부의 증표를 제 손바닥으로 덮었다.

“설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겠단 말씀은 아니시겠죠?”

“그럴 리가요. 그 여자의 소재는 벌써 파악했습니다. 처음엔 정보원들을 풀어 스베아부터 뒤졌는데 그럴 필요도 없었더군요. 줄곧 벨몬테를 떠나지 않았던 모양이니까.”

“그게 무슨….”

“아, 마침 저기 오는 모양입니다. 양께서 출발했다는 소릴 듣고 부랴부랴 준비했죠.”

이벨린은 당혹스럽게 엔리케가 가리키는 쪽을 바라보았다. 응접실의 큼직한 창문을 통해 막 마차 한 대가 저택 앞에 멈춰 선 것이 보였다. 이벨린은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서서 창문으로 다가갔다. 이윽고 마차의 문이 열리고, 늙은 여자가 마부의 부축을 받아 내려섰다.

“어때, 마음에 드십니까?”

엔리케의 장난스러운 음성도 순간은 들리지 않았다. 힐다는 그녀의 기억과 별반 달라지지도 않은 모습이었다. 주름진 얼굴과 손, 굽은 등과 하얗게 센 머리….

“정말 힐다잖아….”

이벨린은 제가 무엇을 뱉는지도 모른 채 중얼거렸다. 그 순간, 그녀의 읊조림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노파가 휙 시선을 들었다. 눈과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놀랍게도 노파의 얼굴엔 진한 미소가 피어 있었다.

***

이벨린은 문고리를 잡은 채로 망설였다. 정말로 힐다가 그녀를 알아볼 수 있을까? 아니면 어떻게 하지? 꿈에서 있었던 일을 오랜 시간이 지나 갑자기 떠올리는 게 말은 되는 거고? 생각을 거듭할수록 자신의 생각과 완전히 다른 대답을 얻을까 봐 덜컥 겁이 났다.

애초에 그 기억은 정말로 있었던 것인지 확실하지도 않았다. 만약 힐다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끌려온 거라면? 단순한 착각이면 어떻게 하지?

최악의 상황에는 ‘엘레나’가 ‘이벨린’의 몸을 제 것인 양 강탈했다는 비밀을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셈이었다.

물론, 그녀의 기억 속에서 힐다는 좋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의 약점으로 누굴 협박할 성정은… 글쎄. 사실 그녀는 힐다가 다른 사람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끊는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저, 살아남기도 바쁜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니까 처음부터 정체를 드러낼 생각은 말고 차분하고 이성적이게, 힐다가 대체 뭘 알고 있는지부터….

“언제까지 그 앞에 있으시려고요.”

문에 가로막혀 둔탁하게 들리는 힐다의 목소리에는 웃음기가 그득했다. 재미있거나 기대되는 선물을 앞둔 아이의 목소리처럼 천진하게 들리기까지 했다. 이벨린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가, 단호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힐다는 창가 쪽에 놓인 긴 카우치에 앉아 있었다.

“…….”

이벨린은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신기한 기분에 휩싸인 채 힐다를 바라보았다. 한쪽으로 길게 땋아 내린 머리카락, 주름진 손등이나 늘 웃음 띤 얼굴, 병이 진행되며 탁해진 한쪽 동공까지.

모두 다 기억 속 그대로였다.

그들이 헤어진 지, 정확하게는 카스타야 가문이 멸문한 지 고작 2년밖에 지나지 않았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인데도. 그녀는 조급한 감정을 숨기려 활짝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당신이 힐다인가요? 이야기는 많이 전해 들었어요.”

목소리는 그녀의 귀에도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이벨린은 마른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때까지 가만히 웃고만 있던 힐다가 쭈글쭈글한 입을 열었다.

“그렇게 깨물면 입술이 못나진다고, 제가 분명히 몇 번이나 일러드렸는데.”

“…….”

그녀는 뭐라고 대답하려다가, 말문이 막힌 채로 벙긋거렸다. 머릿속으로 차근히 계획했던 대화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복잡하던 머릿속은 도리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이벨린은 망연하게 그녀를 불렀다.

“…힐다?”

“예, 아가씨. 이 힐다가 아가씨를 몰라볼 리 없지요.”

대답은 당혹스러울 정도로 분명했다. 그녀가 주저했던 것과는 달리, 힐다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어 보였다. 세월을 짐작하기 힘든 노인의 눈이 그녀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발갛게 부르튼 손이며 퉁퉁 부어오른 발목, 야윈 몸….

이윽고 힐다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우리 아가씨….”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이벨린은 조금 당혹스럽게 바라보았다.

“왜 사람을 보자마자 울어.”

그녀는 서둘러 카우치로 다가가서 힐다의 뺨을 제 손으로 쓸어 올렸다. 타박하듯 말했지만, 어느새 그녀의 눈가에도 눈물이 고여 있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얼마나.”

이벨린은 힐다를 끌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문밖에는 엔리케가, 그 너머에는 비센테의 하인들이 있었다. 새로운 몸이나 영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기엔 부적절한 장소였다.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안 그래도 ‘카스타야 영애’의 유모를 찾아달란 부탁으로 엔리케에게 의심을 샀을 터였다. 방에서 나갔을 때 힐다와 제 눈이 둘 다 눈물로 퉁퉁 부어 있다면 수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물론, 영혼이 다른 사람의 몸에 깃드는 게 흔한 일이 아니니 단번에 진실에 근접하긴 어렵겠지만, 적어도 과거에 둘 사이에 무언가가 있으리라는 것까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울지마, 힐다. 제발.”

이벨린은 입술을 꽉 깨물고, 힐다의 눈물을 마저 닦아 주었다.

“이럴 시간이 없어. 난 궁금한 게 있어서 힐다를 찾은 거야.”

“뭐든 말씀하세요.”

“어떻게… 나인 줄 알았어? 설마 사람들의 말처럼 영혼을 보는 거야?”

힐다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뇨. 아가씨. 제겐 그런 능력은 없어요. 누구에게도 그런 능력은 없을 거예요.”

“그러면? 어떻게 바로 알아본 거야?”

조용히 시선을 마주한 힐다의 눈은 어딘지 모르게 슬프고, 고통스러워 보였다. 힐다의 말간 눈이 이벨린의 머리 위를, 목덜미를, 어깨와 팔을, 무릎을, 그리고 다시 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녀가 주름진 입을 다시 열었다.

“영혼을 보는 것이 아니라, 아가씨의 영혼에 매인 마력의 흔적을 봅니다.”

이벨린은 하마터면 헛웃음을 터트릴 뻔했다. 차라리 영혼이나 귀신을 본다는 말을 믿지. 마력이든 마법이든 모두 1500년도 전에 사라진 것을 가지고…. 그러나 힐다의 표정은 전에 없이 진지했다.

이벨린은 저도 모르게 덩달아 진지해진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게 정말이야?”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지요.”

“…정말 마력의 흔적이 보여? 내 영혼에 묶여 있고?”

“예. 그건 영혼을 묶는 아주 끈질기고 오래된 마법이자, 지독한 저주이자, 사특한 집념이죠…. 그런 것과 묶인 사람은 제 인생에서 단 두 명밖에 보지 못했습니다.”

“두 명이라면.”

힐다가 쪼글쪼글한 손가락을 들어 그녀를 정확하게 가리켰다. 이벨린은 침을 꼴깍 삼켰다.

“그러면… 다른 한 명은?”

“그 저주를 건 사람이에요, 아가씨.”

“저주를 건 사람….”

이벨린은 눈을 느릿하게 깜박이며 망연하게 힐다의 말을 반복했다. 대화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이 황당한 말이 진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그녀가 겪은 일을 마법이나 저주를 빼고 설명이 가능하기나 할까….

그녀는 머릿속에 마구잡이로 떠오른 질문들을 거르지 않고 내뱉었다.

“내 영혼이 이 몸에 들어온 게 저주라는 거지? 대체 누가 그런 저주를 걸었어?”

“저주는 말씀드렸듯 마법이자 염원이기도 해요. 저주라는 표현이 듣기에 거북했다면 잊어버리세요. 적어도 아가씨에겐 이건 축복이니까.”

“…….”

“마력은 용의 산물이에요. 지금은 마지막 용이 죽은 지 2천 년이 지나 모든 마법이 이 땅을 떠났지만… 어떤 마법은 여전히 피와 영혼에 스며 있기도 하지요. 특히, 용의 자손들에게는….”

용의 자손. 비유일까? 아니면 말 그대로의 뜻일까.

에스페다의 초대 황제가 금색의 용으로 비유되는 것처럼….

힐다는 말을 멈추고 숨이 찬 듯 몇 번 기침을 뱉었다. 그리고 힘겹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강력한 약속은 가끔씩 제멋대로 굴기도 하죠.”

“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저주라는 말이 순식간에 축복이니, 마법이니, 약속이니 하는 모호한 꺼풀을 뒤집어썼다. 그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에 도리어 반감이 치솟았다. 그래서 이게 정말 축복이라는 건지, 마법이라는 건지, 약속이라는 건지, 저주라는 건지….

조금 더 명확하게 물어보려는 찰나, 힐다의 주름진 손이 이벨린의 손목을 꼭 붙잡았다. 색이 다른 두 개의 눈동자가 모조리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잘 들어요, 아가씨. 마법이든, 저주든, 약속이든 뿌리는 똑같아요. 사람의 의지가 마력에 깃드는 거예요. 때문에 마법은 말과 같고, 그 때문에 의도가 왜곡되거나 변질되기도 하죠.”

“…그게 무슨.”

“이런 마법을 예전에 본 적이 있어요. 정확하게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죠. 무한히 반복하는 삶을 사는 사람에게서….”

이벨린의 주위를 둘러보는 힐다의 눈에는 선명한 감탄이 어려 있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일 리 없는 황홀경을 마주한 사람 같았다. 쪼그라든 손바닥이 성령을 내리는 신관처럼 이벨린의 머리 위에 올려졌다.

“이건 정말 강력한 의지에요. 아가씨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죠. 아주, 끈질기고 집요한 약속.”

“…….”

“그에게는 저주겠지만.”

이제는 힐다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에 대해서조차 종잡기가 어려웠다. 그간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걸까? 그녀가 아는 힐다는 신비스러운 면은 있어도 평범한 노인이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말을 두서도 없이 뱉는 사람이 아니라.

이런 말을 정말 신뢰해도 괜찮은 걸까? 습관처럼 힐다를 믿고 털어놓기는 했지만, 사람의 정신은 한순간에 무너지기도 하는 얄팍한….

“아가씨의 시간이 점점 더 빠르게 흐르는 것이 보여요.”

이어지던 생각을 툭 자른 것은 어딘지 모르게 초조하게 들리는 힐다의 목소리였다. 이벨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아무리 강력한 의지도 옮겨지면 부서지기 마련이지요. 아가씨의 몸과 영혼의 연결은 곧 끊어질 겁니다. 진짜를 찾지 않으면, 무엇도 돌이킬 수 없어요.”

그녀는 숨을 훅 들이쉬었다. 깊게 생각할 필요조차 없이 ‘진짜’라는 말이 가진 의미는 명확했다.

‘엘레나 데 카스타야’의 몸이 어쩌면, 여태 살아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게, 정말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녀는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도리질을 쳤다. 도무지 믿기지 않는 이야기다. 세간에 알려지길 황태자의 약혼녀는 죽어 화장까지 당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여러 차례 확인해 봐도 똑같았다. 애초에 비센테가 유폐를 당한 것부터 그녀가 죽어서인데…. 물 흐르듯 흘러가던 생각이 다다른 곳은 의외의 지점이었다.

정말로, 그녀가 ‘그녀’의 죽음을 확인했던가?

서쪽 탑에 유폐되었을 때의 마지막 기억은 사실 불분명했다. 시야가 흐릿했으니까. 바로 앞에 있던 비센테의 표정조차 제대로 분간하지 못했을 정도였으니까.

깨달음을 얻기 시작하자 손발이 차갑게 식었다. 그녀는 정말로 제 죽음이 기억나지 않았다. 독을 먹었고, 다른 자의 몸에서 깨어났고, 세간이 ‘엘레나 데 카스타야’가 죽었다고 하니 그대로 믿었다….

“명심하세요.”

반복되는 읊조림은 흡사 정말로 마녀의 축복 같았다.

“모든 아름다운 약속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미래가 보입니다. 제때 돌아가지 않으면 아가씨는 그대로 소멸할 거예요. 안식도, 위안도 없이 부서져 사라질 거예요. 존재했던 적조차 없던 것처럼.”

“…….”

“아가씨 스스로 알아내야 해요. 생각보다도 더, 아주 가까이에 있을 거예요. 이 힐다의 말을 반드시 기억해 두세요.”

힐다는 두려운 것 같기도 했고, 그저 이벨린을 염려하는 것 같기도 했다. 두서없이 횡설수설한 가운데에서도 이벨린의 손이며 뺨을 쓸어내리는 손이 애달프게도 떨리고 있었다. 절절한 염려였다. 그녀가 혈육에게도 받지 못했었던.

“이걸 받아요.”

문득 받아 들고 보니 목걸이였다. 옷 안쪽으로 집어넣을 수 있도록 체인이 길면서 얇았고, 끝에는 손가락 두 마디 크기의 크리스털 병이 매달려 있었다.

병 속 파란 액체가 빛을 받을 때마다 사파이어처럼 반짝였다. 언뜻 보기엔 그저 보석인 듯싶을 정도로 감쪽같았다.

“언제든 몸에 지니고 다녀요. 어느 순간이든, 어느 곳에 가든.”

“…이게 뭔데?”

“필요한 순간이 오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예요.”

그녀를 바라보는 힐다의 눈에 다시금 눈물이 어렸다. 그러나 고이기만 하고 흘러내리지는 않았다. 그녀가 뿌듯한 눈으로 이내 웃었다.

“마님께서 아가씰 가졌을 때부터 이 순간을 기다려 왔어요. 이제야 전승자로서의 제 일도 끝났군요.”

“…….”

“부디, 행운을 빌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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