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9화 (49/151)

***

파르디타는 마차에서 멀어지는 이벨린의 뒷모습을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금세 핏발이 서 붉어진 눈동자가 아려왔지만, 그녀는 눈썹 하나조차 깜박이지 않았다. 고운 입술이 사정없이 짓이겨졌다.

괘씸하고 발칙한 년.

어디서 굴러먹다 왔는지도 모를 계집이, 감히.

여자의 대단한 재산이야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진짜겠지만, 신분에 대해 세간에 알려진 바는 단 셋이었다. 여자의 모친이 시모라 가문의 먼 친척이라는 것, 레녹스 백작 가문을 승계받았다는 것, 그리고 황태후가 그 신분을 증명한다는 것.

그 외의 것은 모조리 베일에 싸여 있었다. 브리타냐의 사교계에서 지내는 친구들에게 편지를 몇 번이나 보내봐도 그녀를 안다는 사람조차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스물두 해 만에 갑자기 땅에서 솟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처음에는 비센테가 잘 꾸며진 연극배우를 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카스트로는 여태껏 죽은 엘레나에게 진심이었고, 저 되바라진 계집은 엘레나를 꼭 빼닮았으니까.

그러나 이벨린의 예법은 진짜였다. 하루 이틀 배운 것으로는 감히 흉내 낼 수조차 없는 몸가짐, 태생부터 타고난 것 같은 기품, 우아함, 시선과 하인을 부리는 손끝, 사소하게는 와인 취향까지…. 이벨린에게는 ‘값비싼 것’이 아닌, ‘제대로 된 것’을 골라낼 줄 아는 안목이 있었다.

시시때때로 여자를 죽여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는 것과는 별개로, 그 고상한 취향만큼은 인정했다.

그 계집의 방에 들어서기 직전까지는.

“아가씨. 저예요.”

“들어와.”

파르디타의 허락에 하녀가 조심스럽게 마차 위로 올라탔다. 문을 닫는 손이며 어깨가 잔뜩 위축되어 있었다. 하녀가 맞은편 좌석에 조심스럽게 앉자마자 파르디타는 제 손바닥을 펼친 채 내밀었다. 하녀가 퍼뜩 놀라며 고개를 들자, 파르디타가 부드럽게 을렀다.

“네 손 잠깐 줘 봐. 확인할 게 있으니까.”

하녀의 얼굴에 공포와 의문이 어렸으나 잠시였다. 하녀는 사색이 된 얼굴로도 얌전히 제 손부터 내밀었다. 제가 모시는 아가씨께서 인내심이 그리 깊지 않다는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소라면 그녀의 손이 어떻든 거들떠보지도 않으실 분이, 대체 무슨 바람이 불어서는….

“제 손은, 왜….”

“하녀들의 손은 어떤지 궁금해서.”

“…….”

“생각보다도 더 거칠고, 보잘것없고, 구질구질하구나.”

고작 몇 분이나 들여다봤다고 질려 버린 것 같은 얼굴이었다. 밀어내는 손길에 하녀는 다시금 얌전히 제 손을 무릎 위에 올렸다. 성의 없이 하녀를 내려다보던 눈매에 달콤한 빛이 어렸다.

“루시, 네가 해 주어야 할 일이 있어.”

루시는 숨을 삼켰다. 파르디타 아가씨가 저렇게 달콤한 목소리로 말할 때는 보통,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저지르려고 할 때뿐이었다.

“…말씀하세요.”

파르디타가 제가 끼고 있던 귀고리를 빼어 루시의 손에 올렸다.

“브리타냐에 다녀올 사람이 필요해. 사람을 하나 찾을 거거든. 실종된 여자… 음, 그러니까 기억을 잃은 여자가 가족을 찾는다는 글을, 브리타냐의 신문마다 기고하는 방식이면 괜찮겠어.”

“글이라면, 대체 어떤 글을….”

“갈색 머리카락, 청회색 눈동자, 예쁘장한 얼굴, 나이는 스물에서 스물둘. 누구든 여자에 대해 아는 것이 있다면 제보해 줄 것. 사례금은 150 페세타.”

루시의 둥그런 눈이 접시처럼 커졌다.

“아가씨, 그건….”

파르디타는 문득 생각난 것처럼 제 손가방 안에서 허름한 가죽 장갑을 꺼내 들었다. ‘이벨린 로즈 레녹스’의 그 화려한 방 안, 유독 이질적인 물건이라 처음부터 시선을 잡아끌었다.

파르디타는 루시의 무릎 위로 장갑을 던졌다. 다 떨어져 가는 장갑의 옆면, 빛바랜 ‘윈스포드 잡화점’이라는 태그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턱을 괸 채 무심히 바라보던 파르디타가 툭 내뱉었다.

“윈스포드의 신문사들. 거기서부터 시작해.”

“…….”

“이 구질구질한 물건의 출처가, 몹시 궁금해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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