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8/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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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16년에 있었던 세르브르 상륙 작전은… 듣고 계십니까?”

    이벨린은 밀려드는 하품을 간신히 참았다. 벌써 일주일째였다. 루카스가 그녀를 진지하게 가르치기 시작한 것도.

    “…….”

    문제는 하나같이 너무 기초적인 내용뿐이라는 거였다. 사교계의 필독서는 데뷔 전 마땅히 떼야만 하는 것들이었고, 특히나 이벨린은 모든 면에서 남들보다 앞서야 한다는 카스타야 후작의 일방적인 주장 아래 열 살 무렵부터 달달 외우던 책들이었다. 누구도 그런 것을 흥미롭게 들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도 새벽부터 지금까지 하녀 일로 내내 혹사당한 뒤에는.

    “아가씨.”

    루카스의 목소리가 좀 더 엄격해졌다. 이벨린은 반쯤 감겨있던 눈을 뜨고 시침을 뚝 뗐다.

    “듣고 있었어요.”

    “그렇다면 이어서 설명해 보십시오.”

    이벨린은 몇 분 전 펼쳐 놓은 책으로 시선을 떨어트렸다. 머리를 쥐어 짜낼 필요도 없었다. 악마의 뿔과 꼬리를 가진 군대가 해안가로 몰려드는 그림은, 그 200년 전의 주간지마다 첫 페이지에 게시되던 마담 콘도르의 역작이었다.

    “세르브르 상륙 작전…. 해협을 따라 방어선을 친 해군을 뚫지 못해 실패했죠. 그 덕에 위대한 헨리는 귀족원으로부터 지탄을 받아 황위에서 물러났고, 대륙의 패권도 바뀌었고요.”

    “맞습니다.”

    “에스페다 해군성이 지금의 위상을 갖게 된 해전이기도 하죠. ‘신께서 도왔다’ 마지막 전투를 끝내고, 그 유명한 지벡 제독께서 겸손하게도 하신 말씀이고요.”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로, 목소리만은 작위적인 발랄함으로 말을 이었다.

    “브리타냐에서는 아예 역사서에 언급조차 안 되지만요. 레알 코르도바 같은 황립 학술원에서는 어떤 관점으로 가르치나요?”

    “에스페다인들이 자부심을 가지는 것과 달리, 세르브르의 승리는 정말 운적 요소가 맞물려 있다고 생각하는 교수님들도 계십니다. 지벡 제독의 말처럼요. 그만큼 수적으로도, 물류적으로도 열세였으니까요.”

    “이 역사서에 적혀 있는 것보다 그 관점이 더 궁금한데요.”

    “아가씨께서 아셔야 할 것은 정론이면 충분합니다.”

    그는 품속에서 회중시계를 꺼내 보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벌써요?”

    루카스는 이벨린의 얼굴을 흘긋 바라보았다. 원체 표정 변화가 드문 여자이긴 했지만, 저 얼굴이 좋아 죽겠다는 것쯤은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쉬운 듯 말했지만, 책과 필기구를 챙기는 손에는 어떤 미련도 없어 보였다.

    “참고할 책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몬티피오레의 <세계사> 나 데로사의 <전쟁과 이면>이면 괜찮겠군요.”

    “고마워요.”

    “전하의 집무실 옆 서고에는 이제 금서가 된 책들도 있죠. 숨겨진 역사나 독특한 관점에 대해 탐구하시려거든 열람해 보시는 것도 괜찮을 겁니다.”

    “…그런 걸 제가 봐도 돼요?”

    이벨린의 미심쩍어하는 시선에 루카스는 희미하게 입술을 움직였다. 그러다 제가 웃었다는 것에 지레 당황해 입술과 콧등을 손바닥으로 감싸며 대답했다.

    “제게 질문하시는 것보다는, 그쪽을 확인해 보시는 게 원하는 답을 찾을 확률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벨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가 씩 웃었다. 다 안다는 듯 미소가 얄궂었다.

    “충고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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