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에필로그 (19/19)
  • 에필로그

    쯔쯔쯧.

    “세상이 망조군, 망조.”

    솔리아는 넌지시 들리는 한탄에 고개를 들었다. 마을 예배당의 전반적인 책임을 맡는 미사엘 사제의 음성이었다.

    “망조요?”

    “아, 솔리아 자매님. 아직 계셨습니까?”

    설마 신도가 남아 있었을 줄은 미처 몰랐는지 그는 겸연쩍은 표정을 지었다. 괜히 큼, 하고 목을 가다듬으며 제가 보인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환기한다. 그런 사제의 손에는 오늘 아침 발행된 신문이 들려 있었다. 이곳과 가까운 왕도 내의 대소사가 두루두루 실렸을 신문이.

    “무슨 안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왕도의 바티칸 지하 감옥에서 탈옥범이 생겼다는군요. 왜, 얼마 전에 잡혔다던 그 연쇄 살인범 말입니다.”

    설명은 짧았으나 솔리아는 어렵지 않게 알아들었다. 며칠 전, 왕도에서 그간 잡힐 듯 잡히지 않던 극악무도한 연쇄 살인범이 붙잡혔다. 그 범행의 횟수가 스무 번을 족히 넘었다고 했지. 살인을 저지르고 사체를 어디에 묻었는지 알 수 없어 지금도 그 흔적을 찾는 데에 치안대가 고초를 겪는 중이라고 들었다.

    “폭동에, 살인에, 테러에…… 나라가 점점 흉악하게 물들고 있네요. 주신께서 이 사태를 얼마나 슬퍼하며 지켜보고 계실지.”

    미사엘 사제가 어두운 얼굴빛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기이한 일 천지인지라, 신전 직속 신분인 그도 만만치 않은 고생인 듯싶었다. 솔리아는 그 고단함을 어렵지 않게 짐작했다.

    사제의 탄식대로 세상은 병들어 가고 있었다.

    처음 시작은 에브뢰 성도였다. 거룩하고 성스러운 축제인 성제의 날, 성도의 땅이 불바다가 되었던 사건 말이다. 자그마치 몇 달이나 이어진 화재 진압에 성공한 그곳에서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그곳에 존재했던 모두가 목숨을 잃었으며, 그렇기에 화재의 연유 또한 알아낼 길이 없던 비극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세계 곳곳에서 끔찍한 범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갑자기 지나가는 사람을 죽이는 일부터 거대한 폭발을 일으키는 마도구를 이용한 대규모 테러까지. 그 범위는 눈살 찌푸려지는 수준부터 입이 떡 벌어지는 정도까지 각기 다양했다.

    그러한 범죄를 저지르는 이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적인 특징이 있었다.

    “그 연쇄 살인범도…… 루브룸인가요?”

    “그렇습니다.”

    루브룸, 직역하면 붉은 눈.

    갑자기 이성을 잃은 채 살심을 내세워 폭주하는 이들은 다들 하나같이 핏빛 눈동자를 하고 있었다. 그들이 일으키는 폭거가 어찌나 흉흉한지, 오죽하면 그들을 지칭하는 별도의 칭호까지 붙을 정도였다.

    루브룸의 등장으로 세계를 아우르는 평화가 전례 없이 빠르게 붕괴되어 갔다. 이러한 루브룸이 무서워 두문불출하는 자도 적잖았고, 한술 더 떠 이들을 추앙하는 이른바 루브룸스라는 비밀스러운 단체도 생겨났다.

    이 같은 사태를 단지 흘러가는 사회의 풍조로 여길 수만은 없는 건, 이들의 등장으로 말미암아 멸망한 국가가 벌써 세 곳이나 되기 때문이었다. 세 국가 모두 소왕국인지라 제국이 몰락한 것만큼의 피해와 살상이 벌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기세로 가다가는 제국이 그러한 꼴을 맞이한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일이었다.

    “제가 자매님을 붙잡고 별소리를 다 했군요. 이만 돌아가시나요?”

    “아, 네.”

    솔리아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전한 미사엘은 이윽고 안쪽에서 바구니 하나를 들고 나왔다. 그 안에는 갓 찐 듯 포실포실한 김이 피어오르는 감자가 들어 있었다.

    “이거, 괜찮으면 가지고 가세요.”

    “감사해요, 사제님.”

    그렇지 않아도 오늘 저녁거리가 마땅치 않아 걱정이었던 솔리아는 금세 반색을 표했다. 그런 그녀를 향해 미소를 지어 주던 미사엘은 잊고 있던 걸 떠올리기라도 했는지 참, 하고 말문을 뗐다.

    “그러고 보니 조만간 성기사님의 기일이군요.”

    바구니를 안아 들던 솔리아가 멈칫했다. 곧 그녀의 낯빛이 씁쓸하게 변했다. 성기사님의 기일. 그건 교황 성하를 바로 곁에서 모시다가 그만 영예로운 죽음을 맞이한 솔리아의 오라버니를 일컫는 것이었다.

    그녀의 슬픔을 인지하고 아차, 한 미사엘이 얼른 덧붙였다.

    “그분은 주신의 곁에서, 이렇게 잘 성장해 준 솔리아 자매님을 무척이나 자랑스럽게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축복을 빌어 주는 전언에 어렴풋한 미소로 화답한 솔리아는 이내 예배당을 빠져나왔다.

    생계를 책임지던 오라버니, 루벤이 죽고 솔리아의 집안은 형편없이 기울었다. 본래 장례식 이후 그가 적을 올린 신전 측에서 그들의 생계를 책임져 주기로 했으나, 얼마간 후 일어난 대화재로 인하여 최소한의 보장도 받지 못하게 되었다.

    불바다로 변한 성도를 간신히 빠져나오며 챙긴 거라고는 옷가지, 그리고 굴러다니는 은화 몇 닢이 전부였다.

    솔리아와 그의 형제들은 오라비의 관과 더불어 몸져누우신 어미까지 그곳에 두고 올 수밖에 없었다. 뒤도 돌아보지 못하고 떠난 그들의 발자취에는, 그 비통한 심정을 담은 눈물이 자국으로 남을 만큼 흩뿌려졌다.

    그리하여 정착한 이곳은, 성도와 왕도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셀레베 마을이었다.

    “야, 거지!”

    예배당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별안간 날아온 돌멩이가 솔리아의 이마를 퍽! 가격했다.

    “아!”

    따끔한 고통에 솔리아는 이마를 부여잡았다. 살갗을 어루만졌다가 떼어 낸 손바닥에는 피가 묻어났다. 그녀는 눈을 치켜뜨며 제게로 다가온 기척들을 노려보았다.

    “또 예배당에 다녀온 거냐?”

    “얘 거기서 매일 기도드리잖아.”

    “이건 뭐야?”

    “감자네? 아아, 또 사제님이 불쌍한 거지에게 적선을 해 주셨네 보네.”

    솔리아를 둘러싼 이들은 셀레베 마을에 거주하는 다른 집 아이들이었다. 그녀는 제게서 바구니를 앗아 가려는 이들의 손길에 완강히 저항했다. 그러나 원체 못 먹고 자란 그녀가 그들에게 대항할 힘이 있을 리 만무했다.

    “내놔!”

    솔리아에게 돌을 던진 남자애가 그녀의 어깨를 뒤로 밀쳤다.

    “아얏!”

    결국, 그녀는 뒤로 넘어지며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꼬리뼈가 찌르르 울리는 고통에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러나 문제는 아픈 게 아니었다. 넘어지는 반동으로 어떻게든 뺏기지 않으려고 버티던 바구니가 더러운 땅바닥에 엎어진 것이었다.

    “안 돼……!”

    오늘 저녁으로 먹기 위해 가져가던 건데. 이걸 받고 기뻐할 둘째, 셋째 오라비의 얼굴이 그녀의 망막 위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그녀에게서 바구니를 빼앗아 가려다가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든 아이들은 절망에 빠진 솔리아를 앞에 두고 낄낄대며 웃었다.

    먼지가 묻은 감자를 허망하게 응시하던 솔리아가 그들을 홱 째려보았다.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뭐야. 비렁뱅이가 고집 피우는 바람에 애먼 음식만 버렸네.”

    “야, 거지. 이런 걸 받았으면 재깍재깍 우리한테 바쳐야 하는 거 아니야? 너희 집이 우리 부모님한테 빌려 간 돈이 얼마인데!”

    셀레베 마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들은 그래도 나름 솔리아의 가족을 잘 대해 주었다. 그러나 가장의 부재와 더불어 어린아이로밖에 이루어지지 않은 집단이었으므로 현실의 냉혹함은 생각보다 빠르게 부닥쳐 왔다.

    이러한 한적한 마을에서 일자리가 넘칠 리 없으니 당연히 돈을 마련할 방법도 없었다. 그러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돈이 필요했다. 하여 솔리아의 둘째 오라비인 코튼이 마을을 전전하며 돈을 빌리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 경우가 상당히 숱하게 이어지자 이제 마을에서는 그들을 미천한 비렁뱅이 취급했다. 부모들은 적어도 대놓고 그러지는 않았으나, 아이들의 경우는 그 적대감을 뚜렷이 드러냈다.

    “이 녀석들!”

    돌연 거센 호통이 들렸다.

    바깥에서 한 차례 인 소란을 들은 듯, 어느새 예배당을 나서 이쪽으로 달려오는 미사엘 사제가 보였다. 솔리아를 중심으로 동그랗게 모여 있던 아이들은 이크, 하고는 꽁지 빠지게 달아났다.

    “자매님, 괜찮으십니까?”

    미사엘 사제는 그녀가 일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이윽고 그의 눈동자가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바구니에, 다음으로 붉은 상흔이 생긴 그녀의 이마에 닿았다.

    “세상에, 피가……. 예배당으로 다시 가죠. 치료해 드리겠습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사양하지 않으셔도…….”

    솔리아는 입을 일자로 꾹 다문 채 고개를 저었다. 미사엘 사제는 잠시 그녀를 물끄러미 응시하다가 알겠다며 선선히 물러났다. 그에게 허리를 꾸벅 숙인 솔리아는 급히 발을 내디뎠다.

    그녀는 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집이 있는 방향이 아닌 마을 뒤편의 동산으로 향했다. 한참을 힘차게 내달리던 솔리아의 걸음이 이내 땅에 깊숙이 심어진 어느 십자가 앞에 멈춰 섰다.

    그 십자가에 성서의 언어로 적혀진 건 바로 그녀의 첫째 오라비 이름이었다. 루벤. 평민의 신분이나 뛰어난 실력으로 1급 성기사가 되었던 자랑스러운 오라비.

    그립고도 그리운 이름을 손끝으로 쓸던 솔리아는 그 앞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돌멩이에 얻어맞은 이마는 지끈거렸고, 눈가는 홧홧하게 달아올랐고, 마음은 지끈거렸으나 그래도 괜찮았다. 하늘로 떠난 첫째 오라비가 저와 함께 있어 주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그녀가 혼란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종종 찾아오는 휴식 장소였다.

    ‘울지 말자, 울지 말자, 울지 말자…….’

    나란히 세운 채 두 팔로 끌어안은 무릎에 얼굴을 묻은 채로 한참을 되뇌었다. 미사엘 사제의 권유를 물릴 수밖에 없었던 건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아서였다. 잔뜩 훼손된 자존심에 더하여 창피하게 우는 모습까지 남에게 대놓고 보여 주고 싶진 않았다.

    그렇게 몇 분간 스스로를 달래고 또 달래었다. 그래도 나름 효과가 있었는지 왈칵 눈물을 터뜨릴 듯 달아오른 눈가가 조금씩 가라앉았다.

    “후우.”

    솔리아는 한참 만에 고개를 들어 올렸다. 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허리까지 내려오는 그녀의 갈색 머리칼을 어루만지듯 쓸고 지나갔다.

    ‘어?’

    눈앞이 환해지고서야 그녀는 제 시야를 멋대로 침범한 어둑한 음영을 발견했다. 고개를 조금 더 들어 올렸다. 오라버니의 무덤을 대신하여 세워진 십자가 옆으로 뻗어진 두 발이 보였다.

    솔리아의 눈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더듬더듬 상승했다.

    거기에는 그녀와 동년배로 보이는 웬 소년이 서 있었다. 눈부신 역광이 스며들어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다. 솔리아는 저도 모르게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그러자 빛이 딱 알맞은 기울기로 파고들어 제 앞에 선 소년의 모습을 또렷이 밝혔다.

    ‘와…….’

    속에서 무의식적인 감탄이 터져 나왔다. 이제야 제대로 보게 된 소년이 대단히 수려한 외양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꼭 화려한 외피로 남을 속이려는 것처럼 지나치게 아름다운 낯이었다.

    부는 바람에 살랑이는 흑발은 촘촘한 밤하늘 같았고, 하얀 피부는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백옥처럼 부드러워 보였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슬을 품은 잎사귀처럼 찬란한 진녹빛 눈동자였다. 빛을 등진 채로 있음에도 그 동공에는 윤기가 충만했다.

    “너.”

    불현듯 소년이 입을 열었다. 그건 명확히 상대방을 지칭하는 말이라서 넋이 나가 있던 솔리아는 화들짝 정신이 돌아왔다. 그녀는 헐레벌떡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나 이 너른 동산에는 저와 소년, 단 둘뿐이었다.

    “어디선가 본 적이 있어.”

    벽처럼 우두커니 서서 환한 햇살을 막고 있는 소년이 뜻 모를 말을 건넸다. 솔리아가 어떤 반응을 건네기도 전에 그의 입에서 아, 하는 미약한 탄성이 나왔다.

    “어머니의 기억에서 보았던 것 같아. 관을 붙잡고 울던…….”

    “어, 어머니?”

    솔리아는 그의 말을 더듬더듬 따라 물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때, 소년이 천천히 다리를 굽혀 앉아 그녀와 시선을 일직선으로 맞추었다. 청명하게 반짝거리는 녹안은 사람의 움직임을 속박하는 기이한 힘이 있었다. 그래서, 솔리아는 소년의 손이 어느새 제 뺨에 닿은 걸 조금 늦은 후에야 깨달았다.

    그것은 스킨십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만큼 사소한 접촉이었다. 그럼에도 생경하기 짝이 없는 타인인지라 그녀는 그 손을 찰싹! 하고 다급히 쳐 냈다.

    “지, 지금 뭐 하는 거야!”

    “바람만 불어도 무너질 듯 휘청대는 빈약한 나무집…….”

    “……?”

    “깨진 그릇에, 찢어지면 꿰매 입기 바쁜 옷가지에…….”

    소년의 눈동자가 미끄러지듯이 움직여, 붉은 상흔이 새겨진 솔리아의 이마에 닿았다.

    “남에게서 동정을 구해야지만 유지되는 구차한 삶이라니, 가엾어라.”

    “……뭐?”

    솔리아는 어안이 벙벙한 낯으로 소년이 꺼낸 말을 한참 동안 곱씹었다. 곧 그것이 아스스한 소름을 자아냈다.

    이 애, 나를 알고 있나?

    그게 아니라면 숨이 절로 턱턱 막히는 비루한 제 삶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걸까. 아니면 혹시 아까 아이들에게 괴롭힘당하는 걸 본 걸까? 그도 아니면…….

    혼란에 잠긴 그녀를 응시하는 소년의 눈동자가 깊게 일렁였다. 이윽고 유려한 입매가 고운 선을 그리며 벌어졌다.

    “너, 나와 거래하지 않을래?”

    “…….”

    “내가 그 구질구질한 지옥에서 벗어나게 해 줄게.”

    소년의 번뜩이는 녹색 눈동자 위로 희미한 붉은 기가 감돌았다.

    <다만, 악에서 구원하소서 외전 完>

    (공금)ⓒsky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