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헤레브가 어둠으로 물든 그녀의 생에 한 줄기의 빛처럼 등장한 이후, 그녀는 조금 변했다. 모성애란 내내 그녀를 짓누르던 무기력에서 탈피하게 만드는 대단한 힘을 가진 것이었다.
아기는 이제 요람보다 제 어미의 품에 안겨 있는 시간이 더욱 길었다. 헤레브는 자지러지게 울다가도 레니에만 보면 눈물을 뚝 그칠 만큼 어미 바라기였다. 그것 때문에 그녀는 더욱더 그를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약한 것이 여기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는 저밖에 없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듯해서 말이다.
칸이 침실에 머무는 시간이 극도로 적은 편이라서, 레니에는 저조차도 깃든지 몰랐던 외로움에 하루하루 끝없이 젖어 들어가고 있었다. 그러니 느닷없이 생겨난 아기의 존재가 그녀의 가슴속에 깊숙이 파고든 건 무리도 아닌 일이었다. 심지어 그 아기는 악마에게서 느낄 수 없는 온기와 평화마저 지니고 있었다.
처음의 경계와 두려움은 누그러지고 그를 대신하여 익숙함과 자연스러움이 자리를 잡았다. 서로가 서로의 삶 속에서 완벽한 조각처럼 맞물리고 있었다.
그러한 과정에서, 아기에게 젖을 물리게 되는 것도 어느 정도는 당연한 일이었다.
* * *
어느 날이었다.
별안간 문이 벌컥 열려 놀란 레니에는 모유 수유 중인 아기를 단단히 고쳐 안았다.
등장한 건 당연하게도 칸이었다. 애초 이 침실에 허락도 없이 들어올 수 있는 자가 저 악마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왜 소스라친 건지 모르겠다.
아니, 생각해 보면 여기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 바로 저자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가 자신에게 어떻게 접근하여 마음속 굳은 심지를 완전히 무너뜨렸는지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녀는 그 칼바람 같은 인물 앞에서 지켜 내야 하는 사명감을 가진 것처럼 아기를 꼭 껴안았다. 두려움과 긴장으로 점철된 심장이 욱신 조여들었다.
그런 그녀와 달리 태연자약하게 등장한 칸은 휘적휘적 다가와 침대에 걸터앉았다. 새빨간 그의 시선이 제 주먹만 한 아기의 얼굴을 스쳐 지나가, 이내 그가 볼 때마다 입맛을 다시는 레니에의 젖가슴에 꽂혔다.
칸은 별안간 젖먹이를 덥석 들어 올렸다.
“……!”
아무리 보아도 신중하게 안는 꼴이 아니라서 레니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질렸다. 저 자그마한 생명체는 그가 조금만 힘을 주어도 바스라질 만큼 약하고 가녀렸다. 혹 아기가 잘못될까 봐 레니에의 가슴은 견딜 새도 없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하는 거야……! 헤레브를 내려놔!”
“헤레브?”
그는 낯선 이름을 느릿하게 혓바닥 위에서 굴렸다. 레니에는 경계심이 잔뜩 깃든 얼굴을 한 채로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고작 호명했을 뿐이지만, 그 주체가 악마라는 데에서 그녀는 가시 같은 긴장감을 떠안아야 했다.
“……아기 이름이야. 내가 원하는 걸로 지어도 된다고 했잖아.”
“흐음.”
찬찬히 숨을 들이마시는 칸의 눈동자가 매끄럽게 번들거렸다. 이름에 대해서 별다른 이견은 없는지, 그는 한쪽 눈썹을 꿈틀거리는 것으로 반응을 마쳤다. 그가 시선을 돌리기 무섭게 이마에 뿔이 돋아난 여시종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시종은 칸의 손에 짐 더미처럼 대롱대롱 안겨 빽 울어 대는 아기를 건네받아 조용히 물러났다.
그 과정은 레니에가 한껏 벌어진 앞섶을 추스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그녀가 정신을 차린 건 칸의 짙은 그림자가 제게로 드리울 때였다.
이제라도 앞섶을 가리려고 했으나 한발 늦었다. 칸은 그녀의 어깨를 툭 밀어 눕히고는 날랜 짐승처럼 그 위로 올라탔다. 출산 후 본격적으로 젖이 돌아 묵직해진 젖가슴이 위아래로 출렁거렸다.
그가 유륜 근처를 빙글빙글 문지르자 큰 자극이 없음에도 젖구멍으로 하얀 물기가 방울방울 맺혔다. 적당히 뜸을 들이다가 젖무덤을 꽉 움켜쥐니 먹음직스럽게 고인 백탁액이 미미한 포물선을 그리며 주륵 흘러나왔다.
레니에가 난색을 표하며 눈을 데구루루 굴렸다.
“뭐, 뭐 하는…….”
칸은 대꾸 없이 혀를 내민 채로 고개를 기울였다. 위로 솟아오르는 유즙을 꿀꺽 삼킨 그는 그 맛이 맘에 드는 듯 혀를 이용해 유두를 감아올렸다. 이윽고 농염하게 달아오른 정점에 흡착하여 그것을 검질기게 빨아들였다.
“흣!”
젖샘을 손끝으로 눌러 가는 그의 무자비한 유린 아래에서 오른쪽 유두가 얼얼하리만치 빨렸다. 그는 제 입 안 점막에 젖꼭지를 비비고 혀로 빙빙 돌리며 계속해서 자극을 더했다. 그때마다 유선을 따라 감돌던 젖이 바깥으로 딸려 나와 그의 입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는 게 소름 끼치도록 선연히 느껴졌다.
“전에 말했을 텐데. 애한테 젖 줄 생각하지 말라고.”
그는 입 안에 감도는 맛을 즐기는지 쩝쩝거리며 낮게 읊조렸다. 침상에 볼을 문지르며 헐떡거리던 레니에가 눈을 뾰족하게 떴다.
“그럼, 흡, 애는 뭐, 뭘 먹으라고……. 굶겨 죽이기라도 할 셈이야?”
아주 오래간만에 길게 나온 항변이었다. 축 늘어져 있기만 하던 모습과 달리 제법 호전적인 태도. 그 달라진 점을 알아챈 듯 칸의 미끈한 눈썹이 꿈틀거렸다.
“네 모유 안 먹어도 잘 자라.”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내가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던 모습은 그새 다 잊었나 보지.”
칸의 말에 레니에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저 말은 제 소중한 아기가 틀림없이 악마의 자식이란 소리와 같았다. 사람과 달리 음식 따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의미였으니.
그녀는 그 말을 부정하듯 눈을 질끈 감았다.
아기는, 제 자궁을 갈라 나온 아기는 아무리 봐도 사람의 형상이었다. 그러니 아무리 이곳이 악마의 소굴이라 할지라도 제가 사람처럼 키우기만 한다면 그 본성을 깨우지 않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주 오래전 게일의 설명에 의하면 아직 희망을 버리기엔 이르다.
생각에 거기까지 다다른 레니에는 제 위에 올라탄 그를 밀쳐 내고 침상 바깥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갔다.
이 집요하고 악취미적인 악마가 제 자식을 위한 모유를 남겨 둘 리가 없었다. 그러니 아기에게 먹일 양분을 지켜 내기 위해서라면 조금이라도 발버둥을 쳐야 했다. 하지만 침대 가장자리에 다다르기도 전에 발목이 붙잡혀 쭈욱 끌어당겨졌다.
“어딜 가. 아직 제대로 맛도 못 봤는데.”
엎드린 그녀의 몸을 바로 눕힌 칸이 젖가슴을 향해 수려한 얼굴을 디밀었다.
“안 돼, 안 돼……!”
“오늘따라 왜 귀엽게 굴지?”
그녀가 해백해진 낯으로 저항하는 걸 지그시 내려다보며 칸은 한 치의 인정머리도 없이 지껄였다.
“가만히 있어. 살살 빨아 줄 테니.”
“흑, 흐으.”
다시 도망가지 못하도록 레니에의 다리를 제 허리에 감싼 그가 어느새 발기한 하복부를 마찰해 오며 유두를 쪽 빨아들였다. 유려한 입술선이 젖꼭지를 머금고 오물거리듯 섬세하게 움직였다. 레니에는 흐느끼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둥글게 휘었다.
종전에 오른편을 얄궂게 괴롭혔으니 이번엔 왼편인 모양이었다. 모유 뱉을 준비를 하듯 뾰족하게 선 유두가 축축하고 물컹한 살덩이에 희롱당할 때마다 그녀는 발발 떨었다. 그가 힘을 주어 흡입할 때마다 유방즙과 더불어 영혼이 빨려 나가는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칸은 그녀가 내뿜는 진액에 매료되어 젖꼭지를 게걸스레 물고 빨았다.
무슨 맛인지 정확히 알 수가 없으나 일단 목 뒤로 넘기고 나면 머리 전체가 얼얼해질 만큼 달큰했다. 그건 모유가 대체로 이렇다기보다는 모유의 주인이 그녀였기에 가능한 일일 거라고 그는 확신했다.
“아응, 흐으으…….”
왼쪽은 진미를 맛보듯 씹고 핥아 대고, 오른쪽은 손으로 잡아당겨 비벼 댄다. 말랑하게 차오른 양쪽 젖샘은 내부를 감도는 허연 모유를 잘도 뿜어냈다. 그것은 밑으로 질척하게 흘러 흔적을 남길 겨를도 없이 모조리 칸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마침내 쭙, 소리 나게 입술을 떼며 고개를 들었다. 양껏 희롱당한 젖구멍이 건들기 무서울 정도로 아릿아릿했다. 아기가 빨던 힘과는 차원이 다른 흡입력이 유두를 땡땡 붓게 만들었다.
칸은 엄지손톱만 하게 부푼 돌기를 음험에 빠진 눈으로 희롱했다. 제가 반기는 액을 줄줄 흘려 가는 저것의 모양새가 군침이 돌 만큼 아찔했다. 배 속이 열기로 점철된 양 빠듯하게 꼬여 가기 시작했다.
레니에가 한 거라고는 하지 말라는 만류와 반항뿐이었는데도 그녀는 진이 쭉 빠졌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날의 해괴한 행위는 시작에 불과했다.
이후로 그는 시도 때도 없이 그녀의 옷자락을 풀어 헤치고 알이 굵어진 젖꼭지를 물었다. 아기를 보느라 챙겨 입은 비단 가운은 그의 침입과 함께 번번이 침대 밑에 뱀의 허물처럼 늘어지게 됐다.
“하아, 흣.”
볼이 홀쭉해질 만큼 빨아들여 목을 축이다가 더 나올 것이 없나 후벼 파듯 혓바닥을 요사스럽게 놀렸다. 그 선득한 촉감에 전신이 움찔움찔거렸다.
그때마다 레니에는 살갗을 간지럽히는 흑발의 머리통을 밀어내려고 번번이 애를 쓰며 발끝을 바동거렸다. 그래 봐야 얄궂은 신경전이 늘 이 악마의 승리로 끝난다는 걸 잘 알면서도 반항을 멈출 수가 없었다.
소동물의 앙탈 같은 몸짓에 픽 웃은 칸이 레니에의 젖가슴을 움켜쥐더니, 풍만한 살덩이를 리드미컬하게 주물렀다.
“아흐, 응.”
바짝 발기한 유두를 손끝으로 툭툭 튕겨 주자 아직도 안에 고인 게 한참이라는 양 우유같이 번드르르한 액상을 질질 뱉어 냈다. 동그란 둔덕을 지나서 백옥처럼 하얀 뱃가죽을 타고 모유가 질척하게 길을 남겼다.
그는 노련하면서도 음란한 손길로 젖무덤을 자극하여 끝없이 유백색의 액체를 내뿜게 만들었다.
“아, 파아……!”
끝내 가슴 끝에서 번지는 알알한 통증을 참지 못한 레니에가 신음처럼 헐떡거렸다.
“하지, 흐, 마. 아기, 아기가 깨면…….”
휘장 바깥의 요람에서 곤히 잠들어 있는 아기를 떠올리고 급히 만류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칸은 모유에 중독되어 버린 양, 일단 그것으로 혀를 적시지 않으면 당장 죽기 일보 직전이 되어 버리는 양 그녀의 젖을 도통 놓아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적색으로 퉁퉁 부은 유두는 그가 매일 물고 씹어 대느라 부기가 빠질 틈도 없었다.
“하지, 말, 으흣!”
그는 그녀가 자꾸 저를 밀어내는 게 못마땅했는지 대뜸 아래로 향하여 검은 문신을 할짝거렸다. 원치 않으나 치밀어 오르는 성감에 레니에는 허리를 바짝 치든 채 그의 어깨를 꾹 쥐었다. 의지를 배반한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어 갔다.
그는 날렵한 콧대로 둔덕 아래를 노긋하게 비벼 주다가 슬그머니 올라와 다시 젖꼭지를 답싹 물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통증만 가득하던 가슴 위로 이제는 찌르르한 열기가 퍼지고 있었다. 그가 성감 고조 마법으로 자극한 탓이었다.
“으, 읏, 싫어! 싫어…….”
마법의 안 좋은 점은 바로 당하는 객체의 정신만큼은 또렷하게 남는단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 몸이 이성을 무시한 채 그가 건드리는 대로 반응하는 걸 그녀는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단 말이다.
그게 정말 역겨워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 지경이었다.
“하지 마, 싫다고……!”
항변을 하고서야 깨달은 건 요 며칠 입 밖으로 내뱉는 거부가 잦아졌다는 사실이었다.
출산 전까지 레니에는 일생 최악으로 심약해진 상태였고 그때는 정말 죽음의 문을 단 한 발짝만 남긴 상황처럼 나날이 무기력했다.
다음 날 숨이 끊겨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그러나 출산을 하고서 아기를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의지는 다시 감돌기 시작했다. 더 이상 희망을 가지는 건 두려웠다. 이 악마가 제게 그러지 않았는가. 인간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는 게 재미있다고.
그러니 희망을 품은 걸 들키지 않으려거든 이전처럼 행동해야 함을 아는데도 뜻대로 되지가 않았다. 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남김없이 오독오독 씹어 삼키지 못해 혈안이 된 이 악마가, 번번이 자신을 자극하는 탓이었다.
“내 신부는 앙탈도 심하지.”
칸이 커다란 손을 내려 문신을 뒤덮었다.
“어리광 부리는 것도 좋지만, 몇 번을 말했더라.”
이윽고 그 부위를 짓누르듯이 험하게 문질렀다.
“……흑!”
“내가 박고 싶을 땐 박는 거라고.”
문신에 자극이 가해지니, 정체 모를 신열이 신경을 타고 전신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눈이 크게 뜨이고 턱이 달달 떨리며, 몸 곳곳에 힘이 필요 이상으로 들어간다. 가만히 있는 데도 허리가 붕 떠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원을 그렸다.
그러니 당연히 어떻게든 맞붙이려고 애쓰던 허벅지는 힘이 빠질 수밖에. 굳센 기세는 어디 갔느냔 듯 다리가 조금씩 조금씩 벌어졌다. 꼭꼭 숨겨 둔 가랑이가 물에 흠뻑 젖은 채로 그의 앞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칸은 머뭇거림 없이 보지 속에 손가락 두 개를 밀어 넣어 안을 가볍게 뒤흔들었다. 레니에가 교성을 내지르며 괴로운 환락에 몸부림치는 사이, 그의 손가락은 음액으로 번들번들하게 침수했다.
그는 바지춤을 내리고 퉁, 튕겨 나온 성기에 끈적한 애액을 옮겨 발라 위아래로 흔들었다. 좆 대가리가 비좁진 동굴을 당장 탐하고 싶다는 양 사납게 벌름거렸다.
그는 귀두를 한 손으로 감싸 밑으로 꾹 잡아당겼다. 홈처럼 아주 살짝 우묵하게 팬 요도 구멍이 음경의 껍질 바깥으로 드러났다. 그는 그것을 레니에의 음핵 위에 맞춰서 부드럽게 문질러 주었다.
붉게 충혈된 돌기가 그것의 구멍과 맞닿아 차지게 마찰되었다. 칸은 레니에의 머리맡을 짚은 팔에 힘을 주며 완벽한 강약 조절로 클리토리스를 비빚댔다.
“흣, 아으응.”
겉으로 보기에는 단순히 핏줄 선 남근을 음부에 비벼 대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애무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귀두의 작은 틈새에서 새어 나오는 걸쭉한 선액이 레니에의 아래애서 쏟아지는 물과 만나 개울처럼 엉덩이골을 타고 흘렀다.
충분한 애무가 이루어진 뒤, 칸은 선액으로 끈끈하게 젖은 성기를 차츰 밀어 넣었다.
“하응……!”
“아랫입 채워 줄 테니까 적당히 칭얼거려.”
그건 꼭 저만의 즐거운 취미 생활을 방해받은 이가 내는 신경질을 닮아 있었다. 그는 유백의 액체가 방울방울 스민 선홍빛 돌기를 혀로 핥으며 벌어진 그녀의 가랑이에 대고 일정한 박자로 허리를 쳐올렸다.
“하아! 응, 으!”
“너도, 큿, 별반 다르지 않은걸. 내 자지에 환장해서 밑구멍으로 맛있게 빨아 대잖아.”
“흑! 아, 아!”
“그럼 내 심정을 좀 알 것 아니야. 응?”
그건 전부 성감을 고조시키는 고약한 그의 심보 탓인 것을.
흉흉하게 치든 눈으로 그를 노려보던 레니에는 별안간 휘장 바깥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인식하고 흠칫 놀랐다. 그녀가 이제야 눈치챈 기척을 그는 진즉 알고 있었는지 조금도 개의치 않고 다시 모유를 빠는 데에 열중했다. 그 기괴한 열정에 레니에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왕이시여.”
휘장 바깥의 그림자는 기척으로 모자라 음성까지 보태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비론이었다.
칸의 너른 어깨를 움켜쥔 레니에의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그의 수하 앞에서 섹스 장면을 보여 준 적은 수도 없이 많았으나, 그녀는 여전히 그 적나라한 노출에 적응할 수가 없었다.
칸은 비론의 채근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레니에를 야금야금 탐하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녀의 오금을 붙잡은 채 비좁진 구멍 안을 자늑자늑하게 휘저어 댔다. 물론, 얼굴은 여전히 풍만한 가슴살에 처박혀 있었다.
“하아, 흐!”
폐부가 터질 만큼 격렬한 삽입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성기의 부피가 워낙 크다 보니 저절로 숨이 벅차졌다. 발버둥을 치다가 그만, 가장자리로 밀려난 레니에의 목이 꺾일 듯이 침대 아래로 젖혀졌다. 선이 연한 목덜미가 유약하게 두드러졌다.
머리끝으로 피가 쏠려서인지 그녀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발갛게 물들었다. 버거움을 느끼고 물에 빠진 사람처럼 허공을 향해 손을 허우적대자 칸이 웃으며 레니에를 침대 위로 건져 주었다.
드디어 들썽거리는 젖가슴에 묻어 둔 얼굴을 들어 올린 그가 새빨간 혀로 제 입술을 느릿하게 축였다. 요요한 미소가 흡족스러움을 대변했다. 지금껏 입 안을 감돌던 모유의 맛이 썩 만족스러운 얼굴이다.
“아기 말인데.”
허리 짓을 잠시 중단한 칸이 그녀의 머리맡을 짚은 채로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
“슬슬 참모들에게 보낼 생각이야.”
“……뭐?”
이제야 정상적으로 돌아온 자세에 달뜬 호흡을 갈무리하던 레니에의 표정이 대번 얼어붙었다. 흡사 제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듯.
“다음 왕좌에 오를 녀석이야. 세상에 났으니 그 자리를 거머쥘 자격이 있는지 검증을 치를 필요성이 있지. 참모들이 성장을 보좌하며 그를 진행할 거다.”
“그게 무슨 마, 말도 안 되는…… 아기야. 아직 갓난아기라고!”
눈앞이 핑 도는 아찔함을 느끼며 레니에는 다급히 고개를 저었다. 품에 안았던 생명체는 누가 곁에서 챙겨 주지 않으면 목 하나 홀로 가누지 못할 만큼 유약한 존재였다.
그런 아기를, 어디론가 데려가겠다니.
요 며칠 간신히 활기를 찾은 낯빛이 빠르게 허물어져 갔다. 성기사 루벤을 잃을 때처럼, 그의 악한 힘 아래에 친부가 굴복하던 때처럼, 저를 따스하게 대해 주던 이들의 목이 그의 손에 의해 날아갔을 때처럼.
익숙하여 신물이 나는 절망이 다시 그녀의 심장을 거뭇하게 태우고 있었다.
“싫어, 싫어!”
아기는 내 것이야. 내 아이. 악마가 아닌 인간. 악이 아닌 사람. 내가 키우면 악마가 되지 않을지 모를 존재. 나의 유일한 버팀목. 이 암흑의 세상에서 간신히 발견해 낸 나의 희망이라고!
형용 못 할 격렬한 항변이 담긴 눈길로 레니에는 고개를 가로젓기를 반복했다. 점점이 부서져 버린 녹안 사이에 금방이라도 꺼질 듯 연약한 빛이 번쩍거린다.
칸은 그것을 똑똑히 들여다보고 있었다. 일찍이 체념으로 얼룩졌던 동공에 다시금 깃든 이채. 그건 그녀에겐 희망, 그에게는 기회였다. 이내 한쪽 입매를 비틀 듯이 휜 칸은 손을 한 번 휘저었다.
그의 손짓을 따라 지금껏 단단히 쳐져 있던 휘장이 제멋대로 벌어졌다.
이윽고 어두컴컴한 천에 가려져 있던 침실의 전경이 어렴풋이 드러났을 때, 레니에의 가슴은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쌕쌕거리는 숨소리를 내며 요람에서 자고 있어야 할 헤레브가 비론의 품에 안겨 있던 탓이었다.
“안 돼…….”
레니에는 그제야 그의 수하가 왜 침실에 있었는지를 깨달았다. 칸의 지시에 의해, 자신이 배 아파 낳은 아기를 데려가려고 들어온 것이었다. 곤하게 잠들어 안겨 있는 아기의 모습 위로, 그에게 붙잡힌 채 무력하게 꿇려 있던 루벤의 모습의 환각처럼 어른거렸다.
“안 돼! 싫어, 싫어! 싫다고! 데려가지 마. 내 아기야. 내 아기라고……!”
그녀는 애지중지 숨겨 온 것을 강탈당하는 이처럼 격렬하게 반응했다. 눈가로 피가 잔뜩 몰려 뜨겁게 달아올랐다. 상체를 벌떡 일으켰으나 어깨를 잡아 침대 위로 내리누르는 칸의 손길에 의해 제지당했다.
빛바랜 녹안에 물기가 고이며 차츰 번들거렸다. 그녀를 깔아뭉갠 포식자는 언제나처럼 그걸 물끄러미 관망하고 있었다.
“제발, 제발. 헤레브를 데려가지 마. 내 아기, 내 아기를 이곳에 둬. 내가 볼 수 있는, 흑, 곳에.”
“네가 직접 키우고 싶어?”
칸은 마치 선택권을 주려는 것처럼 나긋하게 물었다. 헝클어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는 손길은 결코 어미에게서 새끼를 뺏어 가려는 무뢰한 같지 않았다. 그러나 그 여유로운 눈동자는 범상치 않은 광기를 휘두르고 있었다.
패닉에 잠긴 레니에는 그의 적안이 평소보다 더욱 집요하고 예리해진 것을 미처 눈치채지 못한 채,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레니에, 넌 우리 아기를 싫어했잖아.”
“아니야. 아냐. 나는…… 부탁이야. 여기에 둬. 내게서 뺏어 가지 마. 제발…….”
이제 더 이상 이 악마에게 자존심 다 내버리고 비는 일 따위 없으리라 여겼는데 어찌하여 상황은 또다시 이리 비극적으로 흘러가는 것일까.
깊은 고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지금은 그저 그를 막는 데에 여념이 없었다. 헤레브를 뺏기고 싶지 않았다. 그녀가 낳은 아기고, 그녀의 희망이며, 이곳에서 그녀와 유일하게 같을지 모를 존재였다.
시시각각으로 무너져 내리는 레니에를 멀거니 응시하던 칸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은 건 그때였다.
“그럼 사랑한다고 해 봐.”
어쩔 줄 몰라 하며 벌벌 떨리던 몸은 그가 평온하게 내미는 조건에 쩍 굳어 버렸다. 갈피를 잡지 못해 요동치던 눈동자가 망부석인 양 경직되어 그를 담았다.
“뭐……?”
“날 사랑한다고 말해 보라고.”
레니에는 무심코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건 일종의 습관이었다. 그가 원하는 방향으로는 절대 끌려가지 않겠다는. 이를테면, 그가 간절히 바라는 그 말은 혀를 깨무는 한이 있더라도 하지 않겠다는 고집에서 기인한 습관.
그의 가슴팍 위에 얹어진 레니에의 손끝이 바르르 떨렸다. 아, 이제야. 이제야 이 악마가 무얼 원하고 이런 짓거리를 펼쳤는지 이해가 갔다.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는 제 핏줄까지 서슴지 않고 이용하는 작자였다.
여전히 그는, 레니에로서는 넘을 수 없는 암벽처럼 굳건했다. 물기로 얼룩진 그녀의 눈동자가 암벽에 부딪친 나룻배처럼 초라하게 가라앉았다.
칸은 딱딱하게 경직된 그녀의 입매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
“…….”
한참을 기다려도 레니에의 입술에는 미동이 없었다. 그건 그 무엇보다도 확실한 대답이었다. 지난날, 너 같은 걸 사랑할 리가 없지 않겠느냐는 그녀의 서릿발 같은 항변이 불현듯 떠올랐다.
마치 그때의 상황이 다시 반복되는 듯해, 판판한 칸의 미간에 짙은 굴곡이 새겨졌다.
그 신호를 일종의 경고처럼 받아들인 건지 그의 가슴팍을 움켜쥔 레니에의 손끝이 움푹 오므라들었다. 그녀의 속에 내재된 무언가 또한 그렇게 무참히 일그러졌다. 그건 모든 걸 잃은 레니에에게 유일하게 남은 자존심이었다. 결국 이렇게 볼품없이 무너지게 될 거였다면 왜 세우고 있었던 건지 자괴감이 드는, 그런, 자존심.
“사…….”
“…….”
“사랑해…….”
레니에는 스스로 입술을 벌리고 있음에도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귀를 스치는 단어가 생경해서 전신에 우둘투둘한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사랑? 사랑한다고?
누구를? 이 악마를? 이 개 같은 자식을? 당장 목을 졸라 버리고 싶은 놈을? 그럴 리가 없잖아. 그를 사랑할 리가 없잖아. 그런데 왜 말해? 왜 이런 거짓말을 해? 차라리 혀를 깨무는 게 나을 것 같은 말을, 왜 하는데?
“사랑해.”
헤레브를, 구해야 하니까.
아기가 악에 물드는 것만큼은 절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
그러니 말해야 했다. 이건 형태만 그럴싸한, 속이 빈 고백이나 다름없었다. 아니, 고백도 아니다. 그저 기도를 울려 만들어 내는 무미건조한 말일 뿐이다. 반으로 갈라 안을 들여다보면 그 무엇으로도 채워져 있지 않을 그런 문장.
칸의 동공이 일순 사납게 비틀렸다. 그는 사랑이 아니라 죄를 고백하는 신자처럼 덜덜 떠는 레니에의 턱을 그러쥐었다.
“다시.”
“사, 랑해.”
“또 말해 봐.”
“사랑해…….”
거듭하여 들을 때마다 그의 속이 뜨겁게 차오르며 동시에 빠듯하게 비틀렸다. 만약 아랫도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면 맥없이 사정에 임했을 만큼 격렬한 쾌락이 몰아쳤다.
끝끝내 버티던 자존심까지 무너뜨리며 그녀의 모든 걸 속박하고자 했고, 지금 이 순간 그 원대한 야망을 달성했다.
“비론.”
그의 나직한 호명에 어느새 문가까지 다다른 비론은 조용히 돌아와 아기를 내려놓았다. 레니에의 시선이 요람 안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몸체로 쏠렸다.
제 눈앞에서 꼬물대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숨을 내쉴 수가 있었다. 이제야.
“흐읏……!”
핏줄이 불거진 페니스가 수축한 구멍을 재차 짓치며 파고들었다.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섹스가 재개되었다. 시트를 움켜쥔 레니에의 손마디가 허옇게 질렸다. 탄탄한 체구로부터 기인하는 허릿심에 나약한 여체는 휘청거리듯 흔들렸다.
그럼에도 레니에는 애처로운 눈빛으로 오직 요람 속만 들여다보았다. 제 자존심을 무너뜨려서 지킨 존재가 무사한지 살피는 중이었다.
그게 못내 언짢았는지 칸이 레니에의 턱을 그러쥐어 제게로 돌렸다. 입술이 뜨겁게 맞부딪쳤다. 잡아먹힐 듯한 키스였다. 그는 숨결 사이사이로 질식할 정도의 밀도 높은 감정을 쏟아부었다.
시트를 움켜쥔 레니에의 팔 위로 칸의 손이 드리웠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사이로 그의 손가락이 넝쿨처럼 파고들었다. 그건 아주 작은 족쇄가 틈틈이 끼워지는 느낌과 비슷했다.
“아흐윽!”
레니에의 높은 교성과 함께 성기가 자궁구에 닿을 만큼 깊숙이 삽입되었다. 그의 욕망을 닮은 씨물이 왈칵 쏟아져 그녀의 내부를 음습하게 채웠다.
칸은 길게 이어지는 사출을 즐기며 그녀의 뺨과 목덜미에 마구잡이로 키스를 퍼부었다.
“거짓이라도 상관없어.”
“…….”
“기꺼이 속아 주지. 수십 번도, 골백번도 더.”
허울뿐인 고백이라는 건 둘 다 잘 알고 있었다. 그녀만큼이나 그도 익히 체감하는 바였다. 그럼에도 칸은 좋았다. 흡족했다. 그런 빈껍데기 같은 것이라도 레니에의 입에서 제가 바라 마지않던 말을 끄집어냈다는 게 감격스러웠다.
“그러니 앞으로 매일 말해 줘, 레니에.”
뭣보다 빈껍데기라도 상관없는 이유는, 그 안에 담길 감정은 제가 채우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제 속에 들끓는 이 열기가 무척이나 뜨거웠기에 그녀의 온도까지 더해질 필요는 없었다.
끓어오르다 못해 넘치는 게 바로 칸의, 그의, 악마의 사랑이었다.
“나도 사랑해.”
꼭 눈 가리고 아웅 하듯, 위에서부터 뜨거운 숨결과 함께 고백이 쏟아진다. 그녀의 이성은 안도에, 본능은 역겨움에 물씬 잠겼다. 아기를 뺏기지 않은 건 다행이지만 끝내 그의 술수에 넘어갔다는 게 견딜 수 없는 역함을 자아냈다.
그러니 희망 따위 품지 말라 하지 않았느냐고, 속에 깃든 절망이 낄낄대며 저를 비웃는 것만 같았다.
* * *
정사가 끝나고 칸이 사라진 침실 속.
밤꽃 향이 질퍽하게 감도는 침대 위에서 레니에는 죽은 듯이 누워 있었다. 그 모습은 황폐한 폐허 속을 홀로 지키던 고성(古城)이 볼품없이 무너진 것과 진배없었다. 넋이 나간 눈빛으로 한참이나 허공을 응시하던 그녀는 얼마간 후 더듬더듬 상체를 일으켰다.
후들거리는 두 다리를 내디뎌 간신히 요람에 다다랐다.
“헤레브…….”
야수에게 물린 것처럼 울혈 자국이 얼룩덜룩하게 생긴 두 팔을 뻗어 새근새근 잠든 아기를 껴안았다. 그 온기를 되찾으니 반으로 갈라져 고통만 호소하던 심장이 조금은 평온함을 되찾는 것도 같았다.
아기를 껴안은 채로 요람에 등을 기대고 풀썩 주저앉은 레니에는 느릿하게 입술을 달싹거렸다.
“사랑…….”
목이 쉬도록 신음을 내지르는 와중에도 악마가 연거푸 입에 올리도록 종용한 단어가 잇새로 맺혔다. 레니에의 시선이 미끄러지듯이 흘러내려 제 품에 안겨 잠든 헤레브에게 가 닿았다.
“사랑해.”
“…….”
“내가 사랑하는 건 너뿐이야.”
그 목 졸라 죽여 버리고 싶은 악마가 아니라 너야, 헤레브. 나를 ‘레니에’로서 살아갈 수 있게 해 주는 존재. 나에게 남은 희망이자 미련은 너밖에 없으니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레니에는 젖내가 나는 아기를 토닥거리며 공허해진 눈동자로 연신 그 말을 머금어 되뇌었다. 적막만 감도는 내부에 쇳소리의 고백이 꼭 세뇌를 거는 주문처럼 맥없이 떠돌아다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