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외전-1장 (14/19)

1장

상석에 앉은 칸의 얼굴이 권태로웠다.

어두운 전경에 물든 듯 색채감을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그는 장죽을 깊게 물었다가 놓았다. 일자를 그리는 입매 사이로 뿌연 연기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그는 거만하게 다리를 꼰 자세로 드넓은 만찬장을 내려다보았다. 저 밑바닥의 홍등가처럼 붉은 샹들리에가 번쩍이는 실내의 전경은 그야말로 화려하고 끔찍한 난교 그 자체였다.

악마들은 어렴풋이 인간의 형상을 띠고 있으나 그들과는 분명히 다른, 위화감이 드는 면이 존재했다. 이를테면 이마에 뿔이 돋아나거나 눈 전체가 시뻘건 식으로. 그 낯선 형태로 인간이 아님을 드러낸 악마들은, 저들끼리 음욕과 음주를 요란하게 벌이며 야음의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둘이서 하는 건 우스운 수준이고, 셋이나 넷이 달라붙어 스스럼없이 성기를 애무하고 허리를 흔들며 그야말로 천박함의 끝을 선보이고 있었다.

그들의 낱낱에 언뜻 스치는 건 무아지경과 극도의 쾌락뿐이었다. 색으로 따지자면 지나치게 붉고 화려한. 인간을 닮은 외피이나, 그들이라면 마땅히 지니고 있을 이성은 단 한 자락도 발견할 수 없었다.

악으로 뭉친 존재란 이러했다. 끝없는 타락을 추구하고, 그 사이로 겹겹이 끼는 쾌락을 오로지 일생에 단 한 번 맛볼 수 있는 것처럼 황홀하게 즐겼다. 그 외에는 삶의 본질을 헤아려 보고자 하는 일말의 욕구 따위 없는 존재들이었다.

“…….”

그 가운데서 칸만은 조금 달랐다. 무료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장죽을 꼬나문 채 깊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야릇한 교성이 산발적으로 튀는 걸 듣고 있자니 제 침실에 가둬 둔 어여쁜 새 한 마리가 떠올랐다. 그가 손수 날개를 자르고 발목을 부서뜨리는 식으로 제 곁에 둔 작고 유약한 새.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십니까?”

장죽의 희부연 연기 틈으로 비론의 음성이 비집어 들어왔다. 칸은 악마가 다른 악마의 성기를 먹음직스레 빠는 걸 심드렁히 지켜보며 읊조렸다.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단 말이지.”

“……신부님 말씀이십니까?”

신부님.

칸은 그가 내뱉는 호칭을 혀끝으로 한 번 굴려 보았다. 썩 마음에 든다. 레니에가 완벽히 제 것이 되었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호칭이기에.

후계를 출산한 후 의식을 치르게 되면 그 호칭은 왕비로 바뀌어 그를 더더욱 흡족하게 만들리라.

“웃는 얼굴이 보고 싶은데.”

요즈음 숱하게 상념에 젖어 드는 건 그와 같은 까닭이었다. 인간계에 있을 때의 기억은 예상치 못한 순간 돌연 떠올라 그를 덮쳤다.

당시 칸은 말로 표현 못 할 만큼 하루하루가 즐거웠다.

시시하고 하잘것없는 이 왕의 자리와는 달리, 레니에를 손에 넣는 과정은 갖가지 감정을 떠안겨 주는 황홀함만이 가득했었다.

레니에가 자신의 손아귀 안에서 조금씩 조금씩 무너지던 모습이 얼마나 예뻤던가. 그렇게 닳고 마모된 와중에도 제게서 달아나려고 하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아래가 벌떡 설 만큼 흥분됐다.

그 기억을 되짚어 보자면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레니에가 성기사를 보며 미소를 짓던 순간이었다. 사냥을 위해 떠났던 길목, 그녀가 그 좆같은 새끼를 보며 웃던 얼굴은 불현듯 상기돼 요 며칠 이따금 눈앞에 어른거렸다.

물론 레니에는 웃는 것보다 우는 게 훨씬 아름다웠다.

절망에 차 숨도 내쉬지 못하고 흐느끼는 거나, 제 페니스를 구멍으로 한가득 문 채 어쩔 수 없는 성적 자극에 몸부림치며 훌쩍대는 건 그에게 매번 새롭고 짜릿한 쾌락을 안겨 주었다.

‘그래도 한 번쯤은.’

슬픔의 곡조처럼 휘어진 입꼬리가 위로 말리는 게 보고 싶었다.

성기사를 향해 웃던 그때의 레니에는 마치 잔잔하게 부는 봄바람처럼 살랑거리고 있었다. 칸은 나긋나긋한 봄바람 따위 질색이지만, 그 객체가 레니에라면 한 번쯤은 맞아도 괜찮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아니, 사실은.

존재하는 모든 순간의 그녀를 소유하고 싶다는 쪽이 옳았다. 레니에 발루아의 생은 오로지 저만이 독차지해야 했다.

“…….”

말간 얼굴에 뜬 미소를 곱씹고 있자니 칸은 아랫도리가 묵직하니 당겨옴을 느꼈다. 품이 넉넉한 의복을 입고 있다고 해도 성기의 크기가 여간 큰 게 아니라서 윤곽이 또렷하게 도드라졌다.

그렇다고 그가 그걸 파렴치하게 여기며 급히 가리는 일이 있을 리 만무했다. 눈앞에 헐벗은 채 몸을 뒤섞는 악마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가득했다. 그만큼 악마들은 성과 관련하여 스스로의 반응을 숨기려 드는 법이 없었다.

그들에게 섹스는 식사를 하는 것과 같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이다. 인간이 식사하는 장면을 숨기지 않는 것처럼 그들 또한 본연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무얼 해야 웃을까.”

“단순히 보고 싶으신 거면 정신 마법을 거시지요.”

칸이 비론을 흘겨보았다. 장죽을 입에서 떼어 낸 그가 마뜩잖단 얼굴로 쯔쯧, 혀를 찼다.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태도였다.

“내가 보고 싶은 건 진짜라고.”

그건, 마법으로 이끌어 낸 반응이 가짜라는 걸 익히 안다는 태도였다.

“날 보고 스스로 웃는 게 보고 싶어.”

울음을 가졌으니 웃음도 가져야 마땅했다. 부정을 사로잡았으니 긍정마저도 온전히 제게 속하기를 바랐다. 그냥 그 여자의 육체부터 정신까지 모두 다 제게 속박되었으면 좋겠는 심정이었다.

아예 하나가 되어 버리면 더 좋을 것 같아.

그 방법이 없다는 게, 아니, 당장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작금 들어 아쉬운 부분이었다. 끝없이 되뇌고 있자니 보고 싶어졌다. 칸은 장죽을 입에 문 채로 몸을 일으켰다. 악마들은 저들끼리의 식사를 즐기느라 왕이 자리를 뜨는 것도 알아채지 못했다.

창밖으로 흐릿한 잿빛의 달이 두둥실 떠올라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어스름한 달이 안개 같은 구름 사이로 유일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날은 이곳 마계에서 축제나 다름없었다. 그날에만 열리는 만찬은 그야말로 순도 높은 쾌락과 퇴폐를 추구하는 자리이기에 칸은 수하들의 무례를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저, 저 또한 한시라도 빨리 침실로 돌아가 제 새를 끌어안고 음탕하게 뒹굴고 싶단 생각뿐이었다.

* * *

이마에 뿔이 박힌 어린 시종이 조용히 물러났다.

광활한 침실 내부에 그가 피는 장죽의 향이 너저분하게 퍼졌다. 아직도 미미하게 남은 밤꽃 향이 그와 엉망으로 뒤섞여 후각을 가시처럼 찔렀다. 칸은 장죽을 깊게 빨아들였다가 놓으며 뚜벅뚜벅 침대로 다가갔다. 그가 한 발씩 옮길 때마다 침상을 가리기 위해 드리운 휘장은 저절로 걷혀졌다.

그 사이로 이불에 가려지다 만 하얗고 마른 등이 차츰 모습을 드러냈다.

입이 심심해서 물고 있던 장죽은 한순간 쓸모가 없어졌다. 그는 그것을 어깨 너머로 아무렇게나 내던졌다. 그리고 이제야 맛볼 수 있는 것을 찾았다는 양 히죽 웃으며 침상으로 올라왔다.

가녀린 여인은 그에게 등을 노출한 채로 누워 있었다. 칸은 비단 재질의 겉옷을 벗어 던지며 훤히 드러난 여인의 날갯죽지 위에 입을 맞췄다. 야윈 살갗을 타고 올라온 그가 맥박이 여실히 느껴지는 부위에 입술을 비볐다.

그녀가 살아 숨 쉰다는 기분 좋은 박자. 칸은 웃음을 만개한 채로 레니에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잠들었나?”

그는 이미 그녀가 깨어 있다는 걸 알면서도 능청스럽게 중얼거렸다. 말랑한 귓불을 입에 넣어 우물우물 씹다가 귓바퀴 속으로 혀를 밀어 넣어 안을 휘저었다. 그러자 자는 듯, 죽은 듯 미동 없던 몸이 미약하게 움찔거렸다.

그는 손을 앞으로 뻗어 부풀어 오른 배를 쓰다듬었다. 이제 출산이 코앞으로 다가오며 그녀의 배 또한 가릴 수 없이 솟아났다. 여타의 산모처럼 터질 듯 부풀어 오른 건 아니었으나 워낙 체구가 작고 뼈대가 얇아서인지 그녀가 짊어지기엔 굉장히 무거워 보였다.

칸은 배를 둥글게 어루만지며 슬그머니 마력을 흘려보냈다. 회임 초기만 하더라도 태아는 제 자신을 지키려는 것처럼, 다가오는 아비의 마력에 한없는 거부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슬슬 해산이 다가오자 스스로 마력을 다루는 법을 익힌 모양인지 생명은 아비의 힘에 기꺼운 반응을 보였다.

배 속에서 잔잔한 태동이 인 것이다.

“조만간이겠군.”

악마는 대게 마력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그 시기는 천차만별이었다.

칸은 이 세상에 나고부터 마력이라는 힘과 그를 운용하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나 레니에가 품은 그의 후계는, 어미의 양막 속에서부터 그 방법을 깨우쳤다. 그건 차기 왕좌에 앉을 존재로서 실로 부족함 없는 자질이었다.

배꼽 근처를 어루만지던 칸의 손이 슬그머니 밑으로 빠지기 시작한 건 그쯤이었다.

머리 색처럼 옅은 음모 사이로 길쭉한 손가락이 포식자같이 파고들었다. 도톰하게 부어 다물린 음순을 갈라 사이로 불거진 음핵을 꺼냈다. 그것을 손끝으로 뭉근하게 자극해 주자 레니에의 몸 곳곳에 힘이 들어간다.

“흣…….”

베개에 얼굴을 숨긴 그녀가 얕게 헐떡거렸다. 칸은 자신을 고집스레 외면하는 그녀의 태도에 짜증이 인 듯 머리 밑에 끼워 둔 팔로 저를 돌아보게끔 만들었다.

진녹빛이지만 체념으로 말미암아 거뭇하게 보이는 눈동자와 마주치자마자 아랫도리가 주체할 도리 없이 뻐근해졌다. 여지없는 발기의 전조. 어둑하고 무기력한 레니에의 낯은 무엇보다도 그를 흥분하게 만드는 자극제였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입술을 틈 없이 겹친 채로 그녀의 숨을 죄다 빨아 먹고 있었다.

“으…… 읍.”

두터운 혀가 잇새를 멋대로 파고들어 내부를 휘저었다. 타액이 뒤엉켜 드는 끈적한 소리가 쪽쪽대는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녀가 간신히 덮고 있던 이불이 침대 밑으로 추락했다. 그는 터질 듯 두툼하게 발기한 성기를 뽀얀 엉덩이 위에 대고 함부로 문질렀다.

“자는 척은 끝?”

“하아, 하…….”

“그럼 이제 나랑 놀아 줘야지.”

야릇하게 웃은 칸이 벌떡 일어나 그녀 위로 올라탔다. 꾹 맞붙은 다리를 활짝 벌리게 하고 그 사이로 육중한 체구를 끼워 넣는다. 천장을 향하게끔 누운 레니에의 전신이 그의 시야에 속속들이 박혔다.

칸은 정염이 득시글하게 밴 천박한 눈길로 레니에의 몸 어딘가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바로 실핏줄이 도드라질 만큼 둥그렇게 부푼 뱃가죽, 배꼽 위의 부근이었다. 아마도 그의 새끼가 자라고 있을 자궁이 위치한.

그 부위에 유려한 필체의 검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침실만 나가면 어쩜 그리 생각이 나는지.”

바로 칸의 이름이었다.

기름한 손가락이 복숭앗빛 유두를 간지럽혔다. 곧 음률을 그리듯 미끄러져 내려가 새까만 문신 위에 닿았다. 그는 나른한 손길로 제 이름을 덧그렸다.

“하으읏……!”

레니에의 허리가 파드득 휘어진다. 축 늘어져 있던 게 믿기지 않을 만큼, 불에 덴 듯 빠른 반응이었다. 복부에 새겨 놓은 문신은 그녀를 급속도로 흥분 상태에 이르게 하는 성감 고조 마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빙글 웃으며 양 젖구멍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살살 돌려 주었다. 금세 뾰족이 돋아난 그것이 퉁겨지며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문란하게 놀아났다.

막달이 다가와 애 젖 먹일 준비를 하는지, 말랑한 유방이 요 근래 선을 더욱 짙게 그리며 부풀었다. 유두는 또 어떠하고. 평소보다 진하게 물든 건 물론이거니와 살짝 만져만 줘도 당장 유즙을 질질 흘릴 듯 도도록이 곤두선 채였다.

“꼭 만져 달라고 애원하듯 몸집을 부풀린 모양새군. 밤새 빨아 줬는데도 부족한가 보지?”

보이는 것만치 단단하게 올라선 그것은 나긋하게 비벼 줄 때마다 마른침을 삼키게 했다. 아직은 나오지 않는 모유가 상상만으로 입 안을 바짝 마르게 한 탓이었다.

레니에는 고개를 옆으로 돌린 채로 헐떡거렸다. 흥분하고 싶지 않아도 그가 계속 문신을 건드리는 바람에 속절없이 달뜨게 된다. 이건 그녀의 의지나 기력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흣, 으응.”

“만찬에 왔으면 다른 놈들 보는 앞에서 질리도록 빨아 줬을 텐데. 아니지, 거기엔 네 젖꼭지만 봐도 환장해서 달려들 놈 천지니까.”

“흐으아, 아, 그, 그만…….”

자는 척을 할 때는 시체처럼 조용하더니 좀만 건드려 주니 곧바로 생기를 찾는다. 생기라기에는, 많이 음란한 편이지만.

아까부터 계속 문신을 지분거렸더니 레니에는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히끅히끅거렸다. 혼탁하게 풀린 동공이 정말 저러다가 뒤집어 까질 것 같아서 칸은 적당히 하고 손을 떼어 냈다.

그는 나긋한 시선으로 부푼 배를 응시하다가, 슬그머니 밑으로 향했다. 손가락에 엉키면 기분 좋은 음모 아래로 훤히 드러난 구멍이 물을 함빡 머금은 채 옴찔대고 있었다.

“먹여 달라고 보채기는.”

칸의 목울대가 험하게 꿀렁거렸다. 야살스럽기 그지없는 전경은 언제나 그를 조갈증 앓는 짐승의 상태로 만들었다.

그는 입술을 혀로 축이며 벌건 빛으로 벌름대는 질구 속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하나만 집어넣어 휘저어도 쿨쩍쿨쩍대는 게 가히 방탕하고 탐욕스러웠다. 평소보다 반응이 빠른 건 성감 고조 마법으로 몸의 상태를 극도로 달아오르게 한 탓일 터.

“아, 흑…….”

곧바로 하나를 더 찔러 넣어 안이 부어오를 만큼 빠르고 깊게 긁어 주자 레니에는 허리를 띄우며 파들파들 경련했다. 쫀득한 질벽은 쑥 파고들어 괴롭히는 손가락을 환영하듯 질금질금 조여 물었다.

칸은 제 손가락을 피스톤질 할 때의 성기처럼 짧은 박자로 쑤셔 넣고 빼길 반복했다.

“흑, 앗, 으…….”

철퍽철퍽대며 안에 우묵하게 고인 음액이 손바닥까지 흠뻑 적시며 튀어 올랐다.

험하게 쏟아지는 음액에도 굴하지 않고 칸은 극진한 기세로 애무에 임했다. 그러모은 두 손가락 밑동까지 전부 집어넣어 가위질하듯 안에서 쭉 벌렸다가 질 주름이 펴질 만큼 집요하게 문질러 주었다.

“하, 으, 그, 응, 그만, 아……! 아!”

“나 목말라, 레니에.”

감당키 버거운 자극으로 흐리멍덩해졌던 레니에의 눈동자가 삽시간 혼란과 당혹으로 물든다. 그간 벌어진 숱한 정사를 토대로, 그가 하는 말의 저의를 정확히 알아들은 것이었다.

본능적인 거부감에 그녀는 몸을 비틀었다. 그러나 칸은 허벅지를 단단히 움킨 채로 추삽질의 속도를 높혔다.

“읏, 핫! 하으읍!”

잠시간 이성이 돌아온 레니에의 이채가 다시 점점이 깨져 녹아내리고 있었다. 이윽고 칸은 완전히 달아올라 전율에 떠는 질 속에서 손가락을 거침없이 빼냈다.

요도가 기이하게 벌름대는 걸 발견한 그가 지체할 겨를 없이 보지에 입을 가져다 댔다. 흥분도의 고지에 다다라 쫄쫄 흘러넘치는 애액이 모조리 그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칸은 음부에 고개를 깊게 처박은 채로 꿀꺽꿀꺽 게걸스레 삼켜 냈다. 야만적인 선을 그리는 울대뼈가 몇 번이나 만족스레 꿀렁거렸다.

“아흣, 으으응……!”

분수처럼 탁 터져 줄줄 흐르는 액이 멎었음에도 그는 욕심을 거두지 못하듯 안으로 혀를 밀어넣었다.

간밤의 정사로 여태껏 달아올라 있는 내벽이 농염하게 자극당하자 레니에는 쾌락에 절여진 채 흐느꼈다. 음험한 혓바닥이 안에 고여 있는 흥분액까지 모조리 긁어내 목 뒤로 삼키게끔 했다.

통통하게 부어오른 음부를 난잡하게 핥아 댄 그는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다는 듯 혀를 넓적하게 펴 주변까지 싹싹 훑었다.

이윽고 성에 찰 만큼 목을 축인 그가 육식 짐승같이 날렵하게 몸을 일으킨 뒤, 레니에의 턱을 그러쥐어 혀를 밀어 넣었다. 종전까지 그녀의 아랫구멍을 후비던 혀가 이제는 입속을 농락하고 있었다. 레니에가 눈꺼풀을 떨며 신음하는 걸 보는 칸의 눈꼬리가 휘어졌다.

“어때, 맛있지?”

쪽, 하며 입술을 떼는 것과 동시에 들리는 천박한 조롱에 레니에는 대꾸 없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언제 그의 손길에 함락당하여 헐떡거렸느냐는 듯 차갑기 그지없는 태도다. 경멸심 가득한 싸늘한 외면에도 칸은 꿋꿋하게 그녀의 뺨을 물고 빨다가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녀에게 눈을 꽂아 둔 채로, 그는 아까부터 너무 빳빳하게 서서 아플 지경인 바지춤을 풀어 헤쳤다. 천이 스치는 소리와 함께 짙고 빽빽한 수풀 사이로 용맹하게 고개를 치든 페니스가 드러났다. 그는 선단에서 울컥 뿜어져 나온 걸쭉한 액을 기둥에 골고루 펴 바르며 물었다.

“오늘도 식사를 걸렀다지?”

“…….”

“왜. 또 자결할 셈인가?”

“…….”

“한데 어떡하나. 그런 방식으로는 쉽게 안 죽을걸?”

허벅지를 벌려 그 하얀 피부 위에 귀두를 슬슬 비벼 대며 그가 신랄하게 지껄였다. 나긋한 어조이나 실상 의미는 날 선 칼날이 따로 없었다.

베개를 꾹 그러쥔 레니에는 마치 아무런 말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처럼 눈꺼풀을 꾹 감았다. 칸은 지옥문 앞에라도 당도한 사람처럼 창백하게 질린 그 얼굴을 보며 뾰족하게 깎인 웃음을 머금었다.

마계로 끌고 온 이후부터 레니에는 죽음에 다다르기 위한 갖은 방법을 다 썼다. 혀를 힘껏 깨물어 입 안을 피범벅으로 만든 적도 있고, 발악하는 짐승처럼 목덜미 아래를 손톱으로 마구 긁어 대 살갗이 너덜너덜해진 적도 있다. 또, 매일 대령되는 식사용 접시를 깨뜨려 서슴없이 손목을 그은 적도 있었다.

하나 그 정도를 예상 못 할 칸이 아니었다. 그가 그녀의 발목에 채워 놓은 족쇄는 이러한 사고를 대비하여 조건부 마법이 발동되는 마도구였다. 그녀의 몸에 자그마한 상처라도 생긴다면 누구의 개입 없이도 저절로 치료가 되는.

한 번은 그 족쇄의 쇠사슬을 이용해 목을 조른 일도 있었다. 그때를 생각하면 어찌나 어이가 없어지는지. 그나마 실낱같은 아량을 베푼다고 쇠사슬의 길이를 제법 늘여 놓은 칸의 실책이었다. 그날 이후 쇠사슬의 길이는 침대로부터 한 발짝도 멀어질 수 없을 만큼 짧아졌다.

“괜한 일로 애쓰지 마. 넌 내게서 절대 벗어날 수 없으니.”

칸은 저를 외면한 뺨 위에 쪽쪽, 잘도 입을 맞추며 레니에의 한쪽 다리를 안아 올렸다. 발목에 채워진 족쇄, 그로부터 연결된 흑빛 쇠사슬이 철겅거리는 스산한 소리를 냈다.

“우리 아기도 있는데 잘 먹어야지.”

족쇄가 둘러싸인 발목을 덧그리던 칸의 손가락이 이윽고 위로 올라와 내밀한 안쪽으로 향했다. 애액으로 젖어 번들거리는 음순 사이를 나긋하게 문질러 주더니 손가락으로 날개를 쭉 벌렸다.

“식사는 자꾸 거르니 내가 직접 먹여 주지.”

주인의 맘도 모르고 야속하게 벌름대는 보지 구멍이 사랑스러웠다. 여기다 내내 입술을 처박은 채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들 만큼.

“속에 정액이라도 채워 놓으면 배가 좀 덜 고프지 않겠나?”

섹스와 질내 사정을 암시하는 원색적인 말투였다. 아기 주먹만 한 크기의 귀두를 조금씩 밀어 넣자 레니에는 몸을 떨며 불안정한 호흡을 내뱉었다.

칸은 빠듯한 압박감을 느끼고, 입 안에서 긁어모은 타액을 성기가 결합되는 부위에 뱉었다. 그리고 반쯤 밀어 넣은 귀두를 자잘하게 앞뒤로 흔들어 접합부에 타액을 골고루 펴 발랐다.

“그렇게 개처럼 박아 댔는데도 여전히 조이다니.”

“하으읏……!”

“늘 생각하는 거지만, 교황이 아니라 창부를 했어야 할 몸인데, 이건.”

성기 사이로 늘어 붙는 끈적한 타액을 손가락으로 옮긴 그가 도도록이 선 음핵을 지긋하게 문질러 주며 지껄였다.

“교황으로 지낼 때도 이렇게 밑구멍 벌름대고 그랬나? 기도하면서도? 성서를 읽으면서도?”

일부러 치욕스러운 말을 던져 주자 눈물이 고인 눈가가 붉게 달아오른 채 파르르 떤다. 제 딴에는 외면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으면서도 가만 보면 쉽게 자극당했다. 그 점이 칸에게는 더없이 사랑스러웠지만.

“그 시간에 남을 위해 기도하는 것보다 보지로 좆이나 빨아 주는 게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네.”

끝내 미간을 와락 찌푸리는 그녀를 지켜보는 칸의 얼굴이 낙락했다.

“그럼, 후우…… 네 속살에 빠져 신을 영접한 것보다 더 황홀했을 텐데. 안 그래?”

우롱하는 와중에도 슬금슬금 진입하던 성기가 마침내 푹! 하고 뿌리 끝까지 파고들었다. 흐물흐물해지도록 충분히 풀어놓은 덕분인지, 반쯤 삽입했을 때 허릿심으로만 밀어 넣자 깊숙하게도 들어갔다.

“아응!”

“읏, 제길.”

깊은 곳끼리 진득하게 맞물리자 서로의 입에서 동시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칸은 굵직한 페니스에 쫀득하게 엉겨 붙는 내벽을 느끼고 묵직한 탄성을 터뜨렸다. 언제 박아도 좁진 이 안은 미끄덩거리는 와중에도 그의 것을 착실히 물어 조였다.

“그래도, 하아, 어디 다른 새끼들 좆으로 만족이나 했겠어?”

레니에의 한쪽 다리를 제 어깨에 걸친 그가 부푼 배에 무리가 가지 않게끔 상체를 기울이며 처덕처덕 치대기 시작했다. 하얀 나신이 무력하게 흔들리며 풍만하게 달아오른 유방이 들썽거렸다. 그에게 있어 완벽한 눈요깃거리인지라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아으, 흐, 으!”

“지금껏 이 구멍으로는 내 것만 먹어 봤으니, 얇은 거 넣어 봤자 감흥도 없을 거야.”

제 성기가 다른 사내들의 것보다 월등히 크다는 자부심이 뿜어져 나오는 으스댐이었다.

“흣! 아, 아앙!”

“너, 후, 이렇게 자지러지게 해 줄 새낀 나밖에 없다고. 응?”

칸은 제 눈앞에서 젖꼭지가 떨어져 나가라 흔들리는 젖가슴을 황홀하게 응시했다. 물씬 깨물어 대는 구멍에서 반쯤 빼낸 성기를 잽싸게 도로 짓쳐 넣으며 덜렁거리는 유방을 움켜쥐었다. 다른 손으로는 문신이 그려진 곳을 어루만지며 그는 결합부를 쳐다봤다.

핏줄 터지도록 발기한 남근이 구멍 밖으로 빠질 때마다 벌건 내벽이 군침처럼 애액을 뚝뚝 흘리며 들러붙었다. 다시 찔러 넣어 주면 좋다고 안에서 움찔움찔 빨아 댄다. 이대로 머리가 회까닥 돌아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기분 좋은 내부였다.

“으응, 앙, 아, 아!”

날 샌 교성이 밤처럼 까만 침실을 요란하게 뒤흔들었다. 그새 물기로 번들번들해진 허벅지가 단단한 사내의 장골과 맞닿아 철벅, 철벅 영글찬 소리를 냈다.

“흣, 아으응……!”

순간, 레니에가 전신을 경직시키며 안을 꽉 수축했다. 질 주름 하나하나가 페니스에 휘감기는 듯한 아찔하고 극락적인 쾌락. 치미는 사정감을 가까스로 참은 칸은 허리 짓을 느릿하게 변모하며 레니에를 내려다보았다.

가벼우면서도 폭발적인 절정에 다다른 듯 허벅지에 바짝 힘을 준 그녀가 잔경련에 떨고 있었다.

“아, 수, 숨 막…….”

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한번 뒤집어 까지려는 걸 발견한 칸은 다급하게 배 위에서 손을 뗐다. 성감을 고조시키며 동시에 무아지경으로 박아 댔더니 견디기 버거울 정도의 쾌락에 휩쓸린 것이었다.

“아무리 좋아도 숨은 쉬어야지.”

칸이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어 주며 콧잔등에 입술을 맞췄다. 꺽꺽대던 숨소리가 조금씩 제자리로 돌아왔다. 헐떡거리는 숨결마저도 모조리 빨아먹고 싶을 만큼 야했다.

그는 불안정하게 들썩이는 레니에의 가슴팍이 잦아들기를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터질 듯 꿈틀대는 폐부를 따라 아기가 들이찬 배마저도 오르락내리락했다. 이 와중에도 페니스를 밑동까지 삼킨 질벽은 더 긁어 달라는 듯 뭉근하고 뜨겁게 달라붙어 왔다.

“하아, 너, 회임한 채로 박으니까 더 꼴리는 거 알아?”

칸은 음란한 자맥질을 재개하며 속삭였다.

요즘 매일같이 드는 생각이자 진심이었다. 제 새끼를 배 속에 품은 채 흔드는 대로 뒤흔들리는 여자의 모든 것이 그를 속수무책으로 동하게 만들었다.

숨이 부족해 쪼그라든 심장이 제 모습을 되찾으며 동시에 이성도 어느 정도 돌아온 레니에가 눈물 섞인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레니에의 눈빛이 제게 향하는 것만으로도 안에 든 성기가 부풀었다. 꿈틀꿈틀. 거무튀튀한 고환에 가득 담긴 정액을 당장 쏘아 보내고 싶다는 양 원색적인 반응을 내비친다.

“너 때문에 돌아 버리겠다고…….”

하루하루 갈증은 잦아들 일 없이 심해져만 간다. 그녀의 몸과 마음을 철저히 부서뜨리고 끝내 제 손아귀에 쥐었는데도 욕심은 잦아들지가 않는다.

칸은 열락과 난폭한 기질이 버무려진 눈동자로 레니에를 마주했다. 그녀는 그 시선을 감당하기 벅찬지 바르르 떨다가 끝내 눈을 질끈 감아 버린다. 저를 향한 혐오감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을 멀거니 응시하던 칸이 불쑥 말했다.

“사랑해, 레니에.”

힘을 준 채 잠겨 있던 그녀의 눈꺼풀이 경악하듯 들렸다. 당황과 절망으로 잠겨 파르르 떠는 녹안이 어여뻤다.

“너도 말해.”

“…….”

“날 사랑한다고 말해 봐.”

그가 다정함이 뚝뚝 떨어지는 손길로 흐트러진 머리칼을 쓸어 넘겨 주며 속살거렸다. 커다란 손바닥이 애정을 듬뿍 품은 양 레니에의 뺨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입구를 벌리며 조붓한 안을 찌르고 들어오는 추삽질은 멎지 않았다. 그런데도 레니에는 목석처럼 굳어서 그를 아스라이 응시하기만 했다.

아, 그래.

칸은 그 순간에야 깨달았다. 그녀의 미소가 보고 싶었다기보다는, 저처럼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맹목적으로 굴며 눈만 마주쳐도 몸이 달아오르는. 그녀를 떠올리기만 해도 비이상적으로 발광하는 이 심장 박동이 단지 저만의 반응이 아니기를 바라서.

“별거 아니야. 레니에. 그냥, 하아, 입 밖으로 꺼내기만 하면 돼.”

그는 악마임을 증명하듯 유혹적이고 달큰한 목소리로 종용했다. 유리알 같은 레니에의 눈동자에 점점 눈물이 차올랐다. 간단한 채근에도 그녀는 오직 시커먼 나락만을 앞에 둔 사람처럼 흐느꼈다.

“너 같은, 거.”

그에게 붙잡혀 아래가 짜 맞춰진 채 흔들리는 와중에도, 노려보는 시선 하나만큼은 확고했다. 그래서인지 칸은 어느새 저도 모르게 추삽질을 멈추고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온몸의 감각과 신경이 그녀의 반응에 속박되었다.

“사랑, 할 리가 없잖아…….”

울음에 먹혀 반쯤 뭉개진 발음이었지만 알아듣는 데에는 무리가 없었다.

두 사람을 감싼 달뜬 분위기가 순식간에 냉각되었다. 칸의 기세가 금방 폭발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살벌하게 변한 이유에서였다.

레니에는 그의 즐거움과 기대를 단번에 꺾고서는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체념과 좌절로 물든 눈동자 위로는 그 어떠한 이채도 감돌지 않았다. 빛바랜 양 시들어 있을 뿐이었다.

“……하.”

오래지 않아 칸이 실소를 터뜨렸다. 그는 눈가를 감싸 쥔 채 헛웃음을 연발했다. 담뱃재 향과 밤꽃 향이 정신 어지러워질 만큼 뒤섞인 실내, 그 위로 킬킬대는 그의 웃음소리가 음산하게 퍼졌다.

그러다가 칸은, 불시에 허리를 퍽 쳐올렸다.

“흑!”

“그래. 오늘 어디 한번 죽어나 보자.”

“아, 아흣! 아!”

아까만 해도 텐션을 즐기듯 여유롭게 이어지던 정사가 순식간에 잡아먹힐 듯 맹렬하고 사납게 돌변했다. 퍽, 퍽, 퍽! 칸은 부러 몸을 딱 맞대어 그녀의 뱃가죽에 그려진 문신을 비비며 미친 속도로 성기를 박아 넣었다.

잠시 초점이 잡혔던 레니에의 눈동자가 금세 혼탁하게 풀어지며 그녀는 전신을 벌벌 떨었다. 귀 뒤가 얼얼해질 정도로 범람하는 쾌락에, 침도 삼키지 못하고 몸서리를 친다. 쾌감도 과하면 고통이 된다. 그 증거인 양 레니에는 고통 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다.

“헉, 아, 아, 아앙!”

“큿, 하아.”

“그, 흐, 그만, 제, 아아!”

칸은 저를 붙잡으려는 레니에의 손을 이리저리 피하며 교묘하고 잽싸게 안을 치댔다. 차진 피스톤질을 환영하듯 그녀의 엉덩잇살이 움푹 수축해 그의 것을 오물오물 삼켜 댔다.

몸마저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격렬한 속도로 인해 철퍽거리는 결합부는 액과 액이 뭉치고 얽힌 거품 범벅이었다. 찐득하게 맞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젖은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하게 퍼졌다.

체위를 바꾸려던 그는 솟아오른 그녀의 배를 인지하고 멈칫했다.

그녀와의 행위를 방해받을 때마다 제 씨를 받아 잉태된 저 생명마저 죽여 버리고 싶다는 충동이 심심찮게 피어오르고는 했다. 그게 누군들, 저와 그녀 사이를 방해하는 것들은 용서할 생각이 없었다.

특히나 오늘은 레니에의 불퉁한 답으로 심기가 완전히 비틀린 채라 더더욱 골이 났다.

“비론에게 듣자 하니, 막달에 다다르면 말이지.”

“읏, 응……! 아앗, 흑, 앗!”

“자지로 자궁을 쳐 주면 애가 더 빨리 나온다더군.”

“흣, 아, 아앗! 아응, 흐으……!”

“빨리 낳고 싶지? 나도 그래.”

그러니 한동안은 잘 생각하지 마.

무더운 숨결과 함께 쑤셔 박히는 무자비한 음성에 레니에는 눈물을 삼키며 헐떡거렸다. 지독한 마찰로 후끈 달아오른 아래나, 연신 울어서 따가운 눈가나, 원치 않는 자극에 빠듯하게 조여오는 젖가슴이나.

진작 희망을 내버렸음에도 연거푸 지끈대는 마음이나.

아프지 않은 구석이 없는 섹스였다.

* * *

얼마나 이어진 지 알 수가 없는 정사였다.

원래 살던 세상에서는 그래도 해가 뜨고 지는 걸로 말미암아 시간의 흐름을 얼추 짐작이 가능했다. 그러나 여기는 그 쨍쨍한 해도 뜨지 않는 암흑의 세계였다. 그러니 기절했다가 눈을 떠도 당최 얼마큼의 시간이 지난 건지를 알 수가 없었다.

“아, 아아……!”

무릎을 세운 그녀의 가랑이 사이에 칸의 머리가 우뚝 솟아 있었다. 회음부가 벌어지도록 엉덩이를 잡아 벌린 채로 그는 질기게도 아래를 빨고 맛봤다. 쾌락은 때론 잔물결처럼, 때론 노도처럼 끝없이 밀려들었다.

이럴 때마다 레니에는 제가 살아 있는 건지 죽어 있는 건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귀를 스치는 스스로의 신음은 망령의 비명 같았고, 몸을 달구는 열기는 죽어 가는 심장의 마지막 맥동 같았다.

이미 한 차례 쏟아 낸 애액만으로 침대 시트가 흠뻑 젖어 축축할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흘려 댔으니 이제 나올 것도 없는데, 그는 먹이를 찾아 땅을 파헤치는 짐승처럼 연거푸 보지로 입술을 들이밀고 좁은 구멍에 혀를 쑤셔 박았다.

정사가 오늘따라 더 집요하게 이어지고 있음에는 레니에의 탓도 어느 정도 있었다.

<사랑한다고 하면 그만해 주지.>

칸은 사정이 한 번씩 끝날 때마다 그리 말했다. 그때마다 함께 맞이한, 원치 않는 절정에 바들바들 떨며 레니에는 얼굴을 베개 위에 깊숙이 박았다. 그 말을 할 바에야 혀 깨물고 죽겠다는 기색이 역력한 반응이었다.

<사랑해, 레니에.>

<흣…….>

<사랑한다고 해 봐. 응? 어려운 거 아니잖아.>

그는 사탕발림하듯 저자세로 애걸도 하고.

<진짜 이렇게 박아 대다가 네 보지 찢어질지도 모르는데.>

<아, 아, 앗! 앙!>

<이래도 안 해? 어?>

본색을 감추지 못하듯 머리채를 휘어잡은 채 포악하게도 나오고.

<젠장 할, 네 멋대로 해. 어차피 넌 내 거야.>

<흑, 흐으으, 그만, 제…… 흑. 제발.>

<사랑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렇지? 하아, 평생 이렇게 붙어먹고 살면 그만이지.>

결국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결과를 제 식대로 합리화하기도 했다. 그의 고집이 그러한 방식으로 마무리됐을 즈음, 정사도 끝을 맺었다.

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 체액으로 범벅되어 기진맥진해하는 그녀를 번쩍 안아 무릎에 앉혔다. 힘이 다 빠진 몸을 옆으로 돌려 기대게 한 뒤, 그는 땀으로 젖은 그녀의 머리칼을 쓸어넘겼다. 야윈 얼굴이 금발 사이로 드러났다. 아직까지도 쾌감의 여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눈빛이 흐리멍덩했다.

협탁 위에 놓인 물잔을 들어 올린 칸이 그걸 한가득 머금더니 레니에의 턱을 그러쥐며 입을 맞췄다. 레니에는 거부하고 싶은 듯 손끝을 움찔 떨었으나 결국 그의 무력 앞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고집하고는.”

“…….”

“우리 애가 부디 네 고집은 안 닮았으면 좋겠군.”

안 마시려는 물을 혀까지 함께 밀어 넣어 삼키게끔 한 그가 조용히 뇌까렸다.

칸은 이후로도 엉덩이를 주물럭거리며 한참이나 레니에의 얼굴과 목에 입을 맞췄다.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대하는 듯한 태도에 레니에는 역겨움을 느끼고 슬금슬금 피했으나 기력이 다한 몸으로는 한계가 있었다.

칸은 그녀의 갸름한 턱을 쥐어 올려 저와 눈을 맞추게 했다.

깨진 유리의 잔해처럼 처참하기만 한 눈동자는, 예전만 해도 감돌던 청명하고 따사로운 기색이 완연히 사라졌다. 희망이나 소망 따위는 옛적에 버려 버린 양 지독히도 어두운 체념과 절망만 깃들어 있었다.

<정신 마법을 거시지요.>

비론의 터무니없는 제안까지 회고하게 될 정도로 그는 그녀의 관심과 반응에 목말랐다. 애초 영혼이 텅 빈 이런 꼴로 만든 게 그였지만, 탐욕만 가득한 악마이니만큼 이기심은 끝이 없었다.

“아기 이름은 생각해 봤나?”

입술 위에 잔키스를 남기며 묻자 레니에는 말없이 눈을 내리깔았다. 명백한 대화 거부 반응임을 알지만 칸은 개의치 않았다.

“뭐, 차차 생각해 보면 되겠지. 네가 원하는 대로 지어도 상관없어.”

꽤나 넓은 아량을 가진 척 뇌까린 그가 손을 내려 통통하게 부어오른 레니에의 젖꼭지를 어루만졌다.

“그게 나올 때쯤이면 여기서 모유도 나오겠군.”

칸은 또다시 입 안이 말라옴을 느끼고 혀로 입술을 축였다. 좀처럼 그녀를 놓질 못하겠는지, 그는 젖꼭지를 손가락 사이에 끼워 비비며 입술을 몇 번 더 지분대고서야 그녀를 침대 위에 눕혀 주었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차림새를 다시 원상태로 하는 동안 그의 시선은 내내 침상에 박혀 있었다. 제게서 등을 돌리고 누운 여자의 체구가 혹한의 바람에 잔뜩 말린 풀잎처럼 가냘프고 연약했다.

저리도 유약하면서 고집은 또 은근히 세.

어쩌면 그건 이제 마지막 한 자락 남은 자존심일지도 모르겠다. 악마에게 모든 걸 뺏겼다고 할지라도 마음만큼은 내주지 않겠다는.

아아, 레니에는 역시나 하나는 알고 둘은 몰랐다.

그녀가 그럴수록 칸의 호승심은 더더욱 불타는 꼴이었다. 기본적으로 남을 제 발끝에 굴복시키고 자신에게로 완벽히 종속시키는 데에서 솟구치는 쾌락을 느끼는 게 악마들이었다. 관계 하나 없는 타인도 그러한데 사랑이란 특별한 감정을 품은 대상은 오죽할까.

<사랑할 리가 없잖아.>

다만, 이번에는 호승심보다 짜증이 먼저 치밀어 오르는 게 문제였다. 그녀가 눈물에 젖은 와중에도 저를 노려보며 하던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에 돌조각이 콱 박히는 것 같다.

낯설어서 골이 나고 그래서 조바심이 샘솟는.

칸은 침대 위로 올라가 그녀의 목덜미에 입을 맞췄다. 잠들지 않았으나 그녀는 또 시체처럼 죽은 척을 하려는지 움찔대는 기색 하나 없다. 그 자리에 세워진 무덤처럼 꼿꼿한 산송장의 모습이 따로 없었다.

그 자그마한 머리통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며, 칸은 그녀가 가장 끔찍하고 질색하게 생각하는 말을 나지막이 흘려보냈다.

“사랑해.”

레니에의 호흡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가늘어진다. 사랑 고백을 받은 여자라고는 생각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커먼 암흑 속으로 침잠하고 침체되어 간다.

오늘도 여전히, 일방통행의 감정이 그녀의 목을 단두대처럼 조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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