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권-프롤로그 (1/19)
  • 프롤로그

    "읏, 하응......"

    금빛 탁상 위에 엎드린 레니에는 뒤에서부터 밀려 들어오는 거근에 덩어리진 신음을 숫제 흩뿌렸다.

    혹시 새어 나간 소리를 누군가 듣기라도 할까 봐 어떻게든 틀어막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았다. 오히려, 억누르면 억누를수록 그 의도를 알아챈 양 사내는 손가락을 쑤셔 넣어 강제로 입술을 벌렸다. 우악스러운 손길을 타고 신음이 타액처럼 질질샜다.

    "그, 흐, 그만...... 헉!"

    사람의 성기라기보단 말의 그것을 떠올리게 하는 페니스가 감사나운 기세로 자궁을 찔러 댄다. 퍽 소리가 날 정도로 강하게 박힐 때마다 레니에는 무심코 기침을 터뜨렸다. 이러다가 배속이 엉망이 될까봐 두려워질 정도로 묵직한 침입이었다.

    "'그만'은."

    "흐으, 흡."

    "네 입에서 나올 말이 아니지......"

    나른하고도 오만한 목소리가 귀를 버겁게 찔렀다. 엎어진 채 성복이 헝클어질 대로 헝클어진 레니에와 달리 완벽한 차림새로 선 사내가 그녀의 등에 가슴팍을 바짝 붙여 왔다.

    "내가 그만하고 싶을 때가, 그만인 거야."

    "훗, 앙, 아......!"

    "안 그래, 레니에?"

    다정하게 이름을 부르지만, 허리를 쳐올리는 행동거지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그녀를 몇 번이나 절정의 벼랑으로 이끌어 떨어뜨릴 박정한 태세를 보인다.

    그가 탁상과 맞닿은 그녀의 가슴 밑으로 손을 비집어 넣었다. 어떻게든 틈을 벌리지 않으려 애쓴 것이 무색하게, 거칠게 파고든 사내의 손이 젖가슴을 움켜쥐었다. 부러 젖꼭지부터 건드려 오는 것이, 성적인 의도가 다분히 넘쳐나는 손길이었다.

    "읏, 응."

    반응하고 싶지 않아도 이미 수차례의 교접으로 그는 저를 달뜨게 하는 방법을 익히 아는 바였다. 언젠가는 끝날 행위라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레니에는 혀를 깨물고 싶은 심정을 가까스로 견뎠다.

    그때, 집무실 문밖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안 돼. 잠깐, 흣, 잠깐."

    몸이 뒤흔들리는 와중에도 기척을 기가 막히게 알아챈 레니에는 오한이 쭉 끼쳤다.

    만약 이 사내에게 옷자락이 까뒤집힌 채로 겁탈당하고 있는 것을 누군가에게 들키게 된다면 어찌 될까. 결과야 불 보듯 뻔했다. 모든 게 끝이었다. 교황으로서도, 여자로서도, 그 어떤 의미로든지.

    절대 문이 열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왜. 들킬까 봐 겁나?"

    레니에의 섬망 같은 불안을 감지한 사내가 킬킬거리며 웃었다. 저질스러운 태도였다.

    다행히 기척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었는지, 오래지 않아 사라졌다. 하지만 그 착각이 일으킨 반항은 되레 사내를 자극하는 역효과를 낳았다.

    계속되는 저항이 거슬렸는지 사내가 저를 마주 보게끔 그녀의 몸을 뒤집었다. 탁상에 등을 대고 누워 가랑이가 훤히 드러날 만큼 다리가 벌어졌다. 허벅지 사이가 점액질 범벅이 되어 축축했다.

    찐득하게 젖은 사이로 역시나, 수말의 좆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검붉은 성기가 자리하고 있었다. 흉흉하고 포악한 사내의 성정을 빼닮은 것이었다.

    그를 마주 보기 싫어 레니에는 고개를 비틀었다. 그러자 비소를 머금은 사내가 억지로 턱을 그러쥐어 저와 눈을 맞추게 했다. 그로도 모자라 입술을 틈 없이 맞물려 왔다.

    예전이었으면 기겁했을 키스는 이제 배를 맞추는 일에 비해 너무나 손쉬운 행위였다. 신의 것이나 다름없는 이 몸이 더러워진다는 사실에 죄책감도 느낄 수 없었다.

    그건 이 남자에게 그간 얼마나 짓밟히며, 짓눌리고, 짓먹혔는지를 가리키는 방증과도 같았다.

    입술이 맞물렸다가 벌어지며 혀가 외설적으로 뒤엉켰다. 타액이 엉키며 쩍쩍거리는 소리가 났다. 막무가내로 휘저어대는 혀 놀림에 레니에의 입술이 축추근해졌다.

    "하, 빠, 빨리......"

    말려도 들을 사내가 아니니 차라리 채근을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밤도 아니고, 더군다나 침실도 아니니 최대한 빨리 이 거북한 행위를 끝내고 싶었다.

    그녀답지 않은 재촉에 사내의 입꼬리가 흡족하게 휘말린다.

    레니에는 그 얼굴을 아스라이 응시했다. 흔들리는 시야에도 지나치게 빼어난 외양이라는 것만큼은 똑똑히 느껴졌다.

    하지만 저 번지르르한 가죽 안에 뭐가 담긴지 너무도 잘 알기에 그저 끔찍했다. 아마 저 대리석 같은 살갖을 벌리면 새빨간 혈액이 아닌 검은 안개가 스멀스멀 피어오를 것이다.

    악, 그 본질 자체의 안개가.

    "입은 싫다는데 보지는 잘 받아먹네. 이러면 내숭으로밖에 안 느껴지는데."

    당장 뺨을 후려갈기고 싶은 망발을 내뱉은 그가 레니에의 엉덩이를 감싸 쥐었다. 이보다 더 빨라질 수 있을까 의심하던 피스톤질이 더없이 가속했다. 금빛 탁상이 부러질 것처럼 위태로이 흔들렸다.

    퍽, 퍽. 그는 허리를 앞뒤로 추켜올리며 좁은 질 안을 쑤셔 댔다. 찌꺽찌걱거리며 결합부를 타고 흐르는 물소리가 귀를 괴롭게 울린다.

    땀에 젖은 피부가 찰싹, 하고 마찰되었다가 떨어지는 야살스러운 소리를 내며 내부를 쩌렁하게 울렸다. 레니에는 제발 이 소리가 저 문 바깥에 들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다.

    마침내 사내가 몸을 단단하게 굳혔다. 그는 태초부터 한 몸이었던 것처럼 레니에와 하복부를 완벽하게 짜 맞춘 채로, 그녀의 안에 길게 사출했다. 뜨겁고 질척한 것이 안을 적시는 감각은 거북했다. 아마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헉, 하아...... 흣."

    사내의 사정은 길었다. 이렇게 깊숙이 삽입한 채로 파정하면...... 뒷일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아 입술을 꾹 감쳐물었다. 회임은 정말 끔찍한 일이지만, 이미 이 사내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일만으로도 감당하기 벅찼다.

    그는 정액의 배출이 끝나고서야 슬그머니 성기를 빼냈다. 애액과 뒤섞인 백탁의 걸쭉한 액체가 구멍 바깥으로 줄줄 새어 나왔다. 그는 흘러내린 그것들을 귀두로 훑어 모조리 다시 삽입했다. 집착적이며 악취미적이었다.

    사내는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을 속셈인 양 그녀를 탁상 밑으로 끌어 내렸다. 얼떨결에 무릎을 꿇고 앉은 그녀를 칭찬하듯 머리를 쓰다듬은 그가 희뿌연 액으로 범벅된 성기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야한 냄새가 훅 끼쳐 왔다.

    "윗구멍 솜씨 좀 늘었나 볼까?"

    그가 레니에의 금발을 한 손에 움켜쥐고는 나지막이 종용했다.

    그때, 갑자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소스라치게 놀란 레니에는 저도 모르게 그를 뿌리친 뒤 몸을 벌떡 일으켰다. 그리고 엉망으로 헝클어진 성복을 서둘러 정돈했다. 손이 덜덜 떨리고 다리가 후들거려서 꽤 애를 먹었다. 겨우 단추를 채운 뒤 본 사내는 바지춤을 제외하고는 모두 번듯해서, 굳이 정리할 것도 없었다.

    늘 이랬다. 그는 전혀 잃는 것 없이 언제나 저만 손해였다.

    “성하? 들어가도 될까요?"

    레니에는 다급히 탁상을 돌아보았다. 제발 아무런 흔적도 남지 않아 주기를 바란 금빛 탁상은 제 음부에서 흐른 물로 번들번들했다. 서둘러 닦을 것을 찾는데 그보다 한발 앞서 사내가 움직였다.

    그는 손가락으로 음탕한 흔적을 쓱 쓸더니만 그것을 전부 핥아 먹었다. 일부러 쩝쩝 소리를 내며 핥아 가는 게 경악스러웠다. 가만히 보고 있기 힘들 정도로 조야한 장면에 레니에는 입술을 깨물며 눈을 피했다.

    그 흔적이 사라졌음쯤 레니에는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죠?"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방문자는 그녀를 보필하는 사제였다.

    "곧 오후 예배가 시작됩니다."

    "알겠습니다."

    짤막하게 던진 대답에는 여전히 열기가 배어 있었다. 레니에는 혹여나 조금 전 은밀한 행위를 들킬까 제 발이 저려 흠칫했으나 별말 없는 사제를 보니 다행히 티가 난 건 아닌 듯했다.

    사제는 이윽고 그녀의 어깨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그녀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큰 사내, 정확히 말하자면 성도의 손님이 대체 왜 여기있는지 모르겠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여느 때처럼 입 밖으로 의문을 표하진 않았다.

    교황의 뜻이 곧 신의 뜻이라 믿는 저들은 언제나 의아함을 바깥으로 내비치지 않았다. 호기심이 들어도 다 뜻이 있겠거니 하며 받아들였다. 다행이라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지는 굴종이었다.

    왜냐하면, 저리 굴지 않았다면 레니에에게 일어난 끔찍한 일을 알아채 줄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대로 그를 포함한 모두가 아무것도 모른 채 넘어가주기를 바라기도 했다.

    집무실을 빠져나와 복도를 걷던 레니에는 창을 바라보았다. 투명한 유리 위로 제 얼굴이 비쳤다. 핏기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창백했다. 원래도 하얀 편이지만, 요즘은 정말 피죽도 못 먹은 것처럼 보였다.

    레니에는 앞서 걸어가는 사제의 등을 바라보았다. 그를 포함한 이들에게 수도 없이 외치고 싶은 말이 머릿속에 둥둥 떠다녔다.

    이곳, 신의 땅인 성도에 악마가 있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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