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 얕은 오해 (6/20)
  • 5. 얕은 오해

    둘은 연못가에서 한참을 서로의 울음을 달래며 보낸다. 류드밀라는 처음에는 당황해서 꼭 껴안고 있는 것밖에 못 하다가 그의 울음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그를 달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그녀는 그가 한 행동들 중에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것을 떠올린다.

    “루슬란 님, 전 괜찮으니까 울지 마세요.”

    말. 그의 다정하고 차분한 말이 가장 위로가 되었다. 그래서 그녀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 본다.

    “오히려 제가 죄송해요…… 루슬란 님과 한 약조를 두 번이나 어겼잖아요. 거짓말도 하고, 도망치기까지 했는데.”

    “내가 잘못해서 한 행동들이었잖아요.”

    별것 아닌 말들이었지만 그도 똑같이 위로를 받고 고개를 살짝 든다. 무언가에 홀린 듯,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눈물을 닦아 내어 준다. 그 손길은 가벼워서 새의 날개가 스치는 듯하지만 루슬란은 고마워하며 눈을 감고 그녀가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다.

    눈물을 다 닦은 류드밀라가 손길을 거두자 그가 그녀의 손을 쥐고 만지작거리다 제안해 온다.

    “추운데 이제 들어가실까요?”

    “좋아요.”

    느리게 눈을 감았다가 뜨자 그들은 어느새 그의 침대 위에 기대앉아 있다. 침묵이 고된 여행길에 지친 새처럼 그들 사이에 내려앉은 가운데 그는 추운 곳에 있다 와 빨개진 그녀의 손발을 녹이는 데 여념이 없다. 그가 목에 낸 생채기에도 약초를 붙여 준다. 부드러운 손길에 긴장이 풀린 그녀는 그의 몸에 기대고 고른 숨을 내쉰다.

    먼저 평화로운 침묵을 깬 것은 루슬란이다.

    “궁금한 것이 있어요. 힘든 질문일 테니 대답하기 싫으시면 안 하셔도 되어요.”

    “물어보셔요.”

    “왜 하필이면 숨을 끊으려고 했나요? 무슨 일이 있어도 난 그대를 죽이지 않았을 텐데.”

    그의 눈빛은 결국에는 자신을 믿지 못한 게 아니냐고 묻는 듯하다. 류드밀라는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린다. 지금은 그의 품 안에 안겨 있어 한없이 포근하지만, 그때를 생각하자 두려운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난다.

    그러다 별안간 어떤 음울한 깨달음이 그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내가 죽음보다 더한 짓을 그대에게 할까 봐, 그래서 죽음을 선택했던 거군요.”

    그제야 비로소 류드밀라는 그동안 내내 루슬란의 목소리에 담겨 있었던 감정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감정이 상처 입은 기색이란 사실을 알게 된다.

    그는 내내 그녀에게 상처 받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가 그를 겁내 하는 모습에, 그의 다정함을 믿지 못하고 계속 두려워하는 것에, 약조를 지키지 않고 그에게서 벗어나려 한 행동들에. 그래서 그도 마침내 그에 걸맞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녀의 두려움에 걸맞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어그러진 마음을 풀어 줄 수 있는 건 그녀뿐이다. 그래서 그녀는 손을 뻗는다. 아직도 그가 무섭지만, 그때 그 후원에서 질문에 답했을 때처럼, 신록을 위해 나섰을 때처럼 용기를 내어 본다.

    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쥔다. 그리고 제 입술에 가져다 대 손마디에 입맞춤을 남긴다. 감사함과 존경을 담은 그 몸짓에 그의 얼굴에서 슬픈 기색이 옅어진다.

    “아직도 전 루슬란 님이 조금은 두려워요. 하지만 그때도 말씀드렸잖아요. 제가 더 이상 겁내 하지 않을, 그날까지 곁에 있어 주세요.”

    “그럼요. 나는 그날까지는 물론이고 영원토록 그대 곁에 있을 거랍니다.”

    그 나지막한 고백에 그녀는 가슴이 따스해져 사르르 웃는다.

    “사랑해요, 루슬란 님.”

    행복하게 웃는 얼굴로 말하자 그는 그녀를 와락 껴안고 싶은 마음을 억누른다. 그러면 사슴 같은 그녀가 놀라지 않을까 싶어서. 대신 제 몸에 기댄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그렇게 조금이나마 자신의 사랑을 전한다.

    “루슬란 님?”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그녀가 부르자 그가 고개를 앞으로 기울여 그녀와 눈을 마주쳐 온다.

    “무슨 일이신가요?”

    “그, 저…….”

    별안간 영물을 질투하게 하지 말라는 그의 말이 생각나 머뭇거리자 그는 다 안다는 듯 웃음 짓는다.

    “티크혼이 어디 있는지 궁금하시군요.”

    “이, 이름을 어떻게……?”

    “내가 어미를 찾게 도와주니 이름을 알려 주더군요. 황궁에서 기르던 신록은 모두 풀어 주었어요. 전부터 하고 싶었던 일이지만 명분이 없었는데, 그대가 내게 이유를 만들어 주었군요.”

    신록을 모두 풀어 줬다는 말에 그녀는 놀라고 기뻐서 두 손을 꼭 맞잡는다. 작별 인사를 못 한 것이 섭섭하긴 했지만 그래도 티크혼이 어딘가에서 어미와 함께 자유롭게 하늘을 날고 있을 거라 생각하니 행복하다. 그러다 또다시 그에 대한 걱정이 불쑥 치솟는다.

    “호, 혹시 황제 폐하께서 루슬란 님께 뭐라 그러시진 않았나요?”

    “신록을 풀어 준 일을 가지고요?”

    그는 잠시 그녀에게 진실을 말해 줘야 하나 고민한다. 그녀를 걱정시키기 싫었지만 거짓말을 하지 않기로 한 약조는 그에게도 해당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결국 약조를 지키기로 결심을 내린다.

    “조금 역정을 내긴 했지만 크게 문제 될 건 없었어요. 내가 잘 해결했으니 걱정하지 마셔요.”

    “다행이에요.”

    안심한 그녀는 곧이어 피로가 몰려와 그의 품 안에서 나른하게 안겨 있다. 긴장을 했다가 한꺼번에 그 긴장이 사라져서 그런지 피로는 홍수처럼 그녀를 가만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녀는 조금만 더 깨어 있고 싶어 안간힘을 쓰며 정신을 꼭 붙든다.

    “루슬란 님께서는 참 아름다우신 것 같아요.”

    그녀가 쏟아지는 잠을 물리치며 웅얼웅얼 말한다.

    “많이 졸리신가 보군요.”

    그는 픽 웃고는 몸을 기울여 그녀의 귀에다 속삭인다.

    “제 눈에는 그대가 더 아름다워요.”

    간질간질한 말을 평소라면 잘 듣지 못했을 텐데 잠이 밀려오는 지금 그녀는 응석을 부린다.

    “어떻게 아름다운가요?”

    루슬란의 엄지가 그녀의 눈 밑을 부드럽게 스친다.

    “먼저 눈이 있지요. 정원에 흐드러지게 핀 수수꽃다리나 화단을 가득 메운 히아신스의 보라색도 아닌 것이, 정말 아름다워요. 굳이 비교하자면 해 뜨기 전 새벽하늘에서 일렁이는 보랏빛이나 북쪽 하늘에서 춤추는 오로라의 보랏빛이라고나 할까요.”

    그가 말한 그 크고 둥근 눈을 깜박이며 그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오로라를 상상한다. 거울 속 자신의 눈은 분명 오로라보단 덜 예쁠 텐데 그렇게 말해 주는 것이 감사하게 느껴진다.

    “다음에는 코도 있지요. 발치에서 자라는 별꽃처럼 자그마한 데다 토끼의 코처럼 앙증맞아요. 또 입술도 있지요. 평소에는 창백한데 제가 이렇게 하면.”

    그는 다시 한번 몸을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느리게 그녀의 입술을 빨아 삼킨다.

    “분홍빛이 도는 것이 그렇게 어여쁠 수가 없어요. 제가 말한 것 말고도 그대 몸에는 안 예쁜 구석이 없답니다. 그대의 심성은 또 얼마나 고운지. 제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예요. 어떤가요, 지금은 궁금증이 풀리셨나요?”

    가만히 달콤한 말들을 듣고 있던 그녀는 그의 손을 찾아 꼭 쥐고 반대 손으로 장난스레 손등을 간질인다.

    “저도, 저도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럼 해 보셔요.”

    용기를 얻은 그녀는 평소에도 늘 생각해 왔던 그의 아름다운 외모에 대한 칭찬을 조심스레 풀어놓는다.

    “루슬란 님의 눈은 창백한 겨울 햇볕이 조금이나마 온기를 주기 위해 강물에 비칠 때 반짝이는 은빛 같아요. 그래서 강물에 손을 넣어 한 움큼 물을 뜨면 그 안에서 햇살 조각들이 반짝일 것 같아요. 또 징검다리를 건널 때 발아래서 물고기들이 헤엄치며 간간이 비늘을 반짝이는데 그 은빛 같기도 해요.”

    그녀가 말한 반짝이는 눈이 느리게 휘어진다. 그녀의 오물오물 움직이는 입술도, 손등에 와 닿는 손길도, 그에게 들려주는 조심스러운 말들도 그를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든다.

    “루슬란 님의 머리카락은 바닥에 끌리며 세상의 모든 먼지를 거둬서 사라지게 만드는 것 같아요. 새까매서 절 빨아들일 듯 홀리기도 하고, 한없이 매끄러워 그 안에 얼굴을 묻으면 마치 시원한 물에 세수하는 것 같기도 해요. 손가락에 감고 장난치면 절 부드럽게 간질이는 것이 장난기도 많고요.”

    그녀는 그의 손등 대신 긴 머리카락 타래 하나를 잡아 손에 휘감는다. 비단같이 고운 결이 손에 착 감긴다. 그는 고개를 기울여 길고 긴 머리카락이 그녀 주위를 커튼처럼 드리우게 하고 그녀는 웃음을 터트리며 그 안에 숨어 버린다.

    그런 모습이 얼마나 루슬란의 음심을 자극하는지 그녀는 모를 것이다. 그는 평소처럼 태연한 미소를 짓고선 그녀의 말을 경청한다.

    “루슬란 님의 입술은 머리카락처럼 늘 장난기를 담고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 있어요. 고양이의 입처럼요. 그래서 볼 때마다 또 어떤 다정하고 장난스러운 말을 건네 올지 늘 궁금하게 만들어요. 또 평소에는 창백하지만 제가 이렇게 하면.”

    그러며 그녀는 그에게 먼저 입술을 포갠다. 혀는 두려워 넣지 못하고 입술만 지분거리는 것을 그가 달래고 달래 혀를 섞게 한다. 그럼에도 먼저 키스를 한 것이 대견하고 행복해하는 그이다.

    “꽃처럼 분홍빛이 도는 것이 너무 예뻐요.”

    루슬란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폭 끌어안는다. 가슴이 두근거려 하지 못한 말이, 그의 마음이 전해지게 하기 위해서. 그녀는 그의 머리카락을 놓고 제 허리에 두른 손을 만지작거린다.

    “루슬란 님께서는 오로라를 실제로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럼요. 언젠가는 그대와 함께 보고 싶을 정도로 아름다웠어요.”

    옛 기억을 떠올리듯 그의 은빛 눈동자가 잠시 아련해진다.

    잠시 생각하던 류드밀라가 주저하다가 말문을 연다.

    “제가 황궁 밖을 벗어나도 되나요? 오로라를 보려면 밖으로 나가야 할 텐데 어떡하죠?”

    “언젠가는. 언젠가는 꼭 제가 그대를 자유롭게 만들 거예요. 지금은 황궁의 껍데기라 이곳에 묶여 있지만 내가 다르게 할 겁니다.”

    “지금은 제가 자유롭지 않다는 말씀이시군요.”

    순식간에 걱정으로 어두워지는 그의 얼굴을 본 그녀가 서둘러 그를 안심시킨다.

    “전, 저는 정말이지 괜찮아요. 원래라면 밖에조차 나가 볼 수 없었을 텐데, 어느새 후원까지 가 봤잖아요. 루슬란 님의 마법 덕분에 신기한 곳도 많이 보았고요.”

    “후원은 완전한 밖이 아니랍니다. 전 그대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한테도요. 그래서 그대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것이고, 그래서 그대를 위해 새로운 제국을 세우겠다고 약속한 것이에요.”

    “감사해요.”

    그녀는 그런 다정하고 무시무시한 말에 뭐라 대답해야 될지 몰라 다만 고맙다고 한다. 제국을 새로 세운다니, 그녀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곤 상상하기만 해도 무서울 정도로 엄청난 일이다. 그러나 그의 마법을 본 그녀로서는 그게 빈말이 아닌 것을 알기에 더 두렵다.

    그래서 잠이 조금씩 달아나려 하는데 그가 콧등을 부드럽게 쓸어 준다. 그 손길에 거짓말처럼 사라졌던 잠이 다시금 몰려온다.

    “이제는 주무셔요, 나의 껍데기 님.”

    “루슬란 님께서도 피곤하실 텐데 쉬세요.”

    그를 걱정하는 말에 살짝 입꼬리를 올린 루슬란은 그녀를 토닥이고 류드밀라는 곧 깊은 잠에 빠져든다.

    류드밀라는 어찌나 푹 잤던지 하루의 삼분의 이를 자며 흘려보낸 후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난다.

    그날 저녁에는 끔찍한 일이 벌어진다.

    ***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시작된다. 실컷 자고 새벽에 깨어난 류드밀라의 곁에는 루슬란이 있고 그는 둥둥 떠 있는 아침 쟁반에서 블리니 하나를 집는다. 잼을 발라 건네자 잘 받아먹은 그녀는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왜 그러시나요?”

    “그냥, 너무 다 행복해서요.”

    블루베리 잼을 입가에서 닦아 내면서 그녀가 빨개진 얼굴을 숨기려 고개를 푹 숙인다.

    “뭐가 그렇게 행복하신가요?”

    “루슬란 님께서 제 곁에 있다는 것이요.”

    그녀의 고운 목소리와 말은 들어도, 들어도 질리지 않는다. 그는 입을 가리는 그녀의 손을 조심스레 밀어내곤 입술을 포갠다. 고른 치열을 훑고 매끈한 입천장을 혀로 핥아 올리며 그는 곰곰이 생각에 잠긴다. 어떻게 하면 그의 껍데기 님을 오늘도 쾌락에 울고 기쁨에 웃게 만들 수 있을까.

    그의 느린 손길이 그녀의 옷을 벗겨 내고 따뜻하게 몸을 밀착시켜 온다. 이제 더 이상 떨지 않는 그녀는 그에게 안겨 들고 얇은 로브 너머로 전해지는 체온을 느낀다.

    “이러다 또 잠드실 건가요?”

    그녀가 안겨만 있자 그가 나지막이 놀린다.

    “아, 아니에요…….”

    “누워 보셔요.”

    류드밀라는 시키는 대로 포옹을 풀고 침대에 기댄다. 그는 바로 앉아 있는데 저 혼자 편한 자세를 취하는 것 같아 무엄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그렇게 하라 그랬으니.

    몸을 눕히자 제 벗은 몸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 약간은 무섭다. 그가 손으로 다리를 부드럽게 벌리게 하자 두려움은 더 심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을 다잡는다. 전에 정사에서 느꼈던 쾌락이 떠오르자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아니, 사실 더 불편해진다. 어쩐지 불편하고 부담감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는 기분이 하나도 좋지 않았는데 저 혼자만 느낀 것 같아 걱정된다. 그래서 이런저런 쓸데없는 걱정에 휩싸여 그녀는 그가 뭘 하는지 제대로 보지 못하고, 혀가 아래에 닿았을 때 외마디 비명을 내지른다.

    말캉한 감촉이 제일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배운 그곳에서 느껴지고 그녀의 얼굴은 순식간에 달아오른다.

    “루, 루슬란 님…… ”

    그가 고개를 들자 하얗고 투명한 애액이 분홍빛 입술에 묻어 있다. 그가 천천히 입가에 미소를 띠자 애액이 이슬처럼 맑게 빛난다.

    “제가 이리하는 게 싫으신가요?”

    “아니, 그건 아니에요…….”

    그가 다시 아래를 핥아 올리자 그녀는 작은 신음을 뱉어 내며 허리를 비틀다 활처럼 휜다. 그 반응에 만족스러워진 그는 꽃잎들을 헤치고 더 안쪽까지 파고든다.

    가장 여린 살덩이끼리 만나서 엉켜드는 질척한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그녀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한다. 온몸이 달아올라 정신이 아득해지고 꿈꾸는 듯이 몽롱해진다.

    그러면서 이상한 기분이 든다. 이걸로는 완벽히 만족하지 못할 것 같다. 더 큰 게 들어와 안을 헤집어 줬음 했다. 그러나 그녀는 차마 그런 말들을 입 밖에 내지 못한다. 다만 보채듯이 다리를 더 활짝 벌리고 그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릴 뿐이다.

    그녀의 의중을 파악한 그가 고개를 빼꼼 든다.

    “제가 어떻게 해 주길 원하시나요?”

    류드밀라는 그 무서운 말을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울먹거린다. 입가에서 만난 손을 꼼지락대면서. 그가 핥아 주지 않자 허전해진 아래는 자꾸만 더 큰 것을 그에게서 바라는데,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서럽게 우는 것이 고작이다.

    “말해 보세요, 나의 껍데기 님.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시길래, 그렇게 말도 못 하고 울고만 계시나요.”

    그가 그녀에게로 몸을 밀착시키고 손가락 하나가 아래를 파고든다.

    “이렇게 해 줬으면 좋겠나요?”

    “그, 그것도 좋지만, 아흣, 루슬란 님…….”

    그녀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어깨에 머리를 기댄다. 그리고 눈을 질끈 감는다. 감히 다른 것을 바라는 자신이 부끄럽고도 부끄럽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그러나 그녀의 예민한 몸은 벌써 더 젖어 들며 제멋대로 허리를 움직이고 있다. 결국 그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그녀는 눈물을 흩뿌리며 와락 그에게 안겨 버린다. 우는 자신을 보여 주기 싫어 더 품에 파고든다. 그러면서도 그가 화를 낼까 무서워 흘러내린 것을 닦는다.

    한 번에 두려움을 없애기에는 역시 무리인 모양이다. 그런 그녀가 안타까운 마음에 루슬란은 조곤조곤 달래 준다.

    “괜찮아요, 정말로. 그러니 계속 울어도 되어요.”

    한 줌에 안기는 작디작은 그녀가 너무나 어여뻐 그는 그녀와 사랑에 빠져들기를 멈추지 못한다. 빠져들고 빠져들어도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안으로 부드럽게 들어왔을 때는 그녀의 울음도 조금 잦아든 후이다. 그토록 바라던 것이었지만 아직은 조금 버거워 눈물도 찔끔 다시 난다. 하지만 그녀는 힘을 풀고 그가 편하게 배려해 준다. 관계에서 처음으로 상대를 생각하게 된 그녀가 대견스러워 그는 자제력을 한층 더 발휘한다.

    이번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느리게 몸을 움직이며 그녀가 아프지 않도록 하는데 자그마한 손이 그를 끌어당긴다.

    “전 괜찮으니…… 루슬란 님께서 하고픈 대로 하세요.”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를 배려하려 힘을 푸니 오히려 그의 것을 담고 있기가 한층 쉬워져 그녀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자 그가 허리 짓을 조금 빨리한다. 그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안을 뭉근하게 쳐올리는 감각이 점점 강해지고 그녀는 헐떡이며 그를 더 가까이 끌어당긴다. 그리고 아래만으로도 부족한지 입맞춤을 해 온다.

    혀가 얽혀 들며 그녀가 얼마나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있는지 다 전해져 온다. 그는 얼마나 고르게 숨 쉬고 있는지도.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그가 헉헉거리는 그녀를 어르고 달랜다.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고 허리 짓을 조금 천천히 하고. 다른 손으로는 허리가 아프지 않게 받쳐 준다. 그 손길에 고마움을 느낄 새도 없이 그녀는 쾌락에 빠져든다.

    류드밀라는 절정에 다다라 조그마한 신음을 흘리며 몸을 바르르 떨고는 까무룩 기절한다. 그는 잠든 그녀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안을 긁어내고 모든 필요한 것을 직접 다 해 준다. 다시 침대에 눕히고는 옆에 저도 누워 기다린다. 그녀가 다시 깨어나 그를 보고 웃을 수 있을 때를.

    잠에서 깬 류드밀라는 제 몸을 다정하게 끌어안는 손길을 느낀다. 그녀는 졸린 눈을 하고 배시시 웃는다. 그런데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슬픈 얼굴과 마주하자 놀라고 두려워진다.

    “무슨 일인가요?”

    “황제가 날 부른답니다. 가야 해요.”

    큰일은 아닌 듯하여 안심은 된다. 그러나 그녀를 내버려 두고 가야 한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슬픈 얼굴을 하는 그를 보니 마음 한구석이 몽글몽글해진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그의 코끝에다가 입맞춤을 한다.

    “잘 다녀오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의 슬픈 표정이 사르르 풀린다.

    “그러실래요? 그래도 피곤하면 다시 주무셔요.”

    “전 루슬란 님을 기다릴래요.”

    그녀가 씩씩하게 대꾸한다.

    “고마워요.”

    그도 그녀의 뺨에 작별 인사를 남긴 후 홀연히 사라진다. 그가 그녀에게서 등 돌리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이 방법을 택했다는 것을 아는 그녀는 또다시 부끄럽고 행복해져 제 몸을 끌어안는다.

    그가 없는 방은 참으로 고요하고 크다. 그 위압적인 모습이 싫어 그녀는 침대에 몸을 누이고 뒹굴거린다. 눈을 감고 있으면 그의 체향이 남은 옆자리에 그가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득 몸을 씻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몸을 일으키는 그녀에게 노크 소리가 들려온다. 처음에는 루슬란일까 하고 기대해 보지만 그라면 노크를 하지 않을 것이다. 그다음 생각은 혹시 마녀일까 싶어 그녀는 겁에 질린다.

    어쩌지. 문에는 마법이 걸려 있어 나는 여는 법을 모르는데. 그러나 가운을 걸친 그녀가 문가까지 가자 은빛 문양이 반짝이더니 사라진다. 마법이 잠시 풀려서 열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껏 긴장됨을 느끼며 문을 당겨 연 류드밀라는 그녀보다 조금 어린 시녀를 발견한다.

    “안녕하세요.”

    예의 바르게 인사한 시녀가 밖을 가리킨다.

    “루슬란 님께서 절 보내셨어요. 류드밀라 님께서 심심하실 테니 후원을 구경시켜 드리라고요.”

    “하지만 후원은 저번에 갔어요.”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묻자 시녀가 샐쭉하게 미소 짓는다.

    “아직 가을의 후원은 보지 못하셨잖아요.”

    가을… 계절감도 없이 살아오던 그녀에게 그 말은 새로운 기대감을 품게 만든다.

    류드밀라는 시녀를 따라 후원으로 향한다. 가면서 시녀의 이름도 물어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눈다.

    가을을 맞이한 정원에는 신비로운 안개가 깔려 있다. 국화의 강하고 어지러운 향긋한 냄새가 온통 맴돌고 갈색과 은색이 어우러져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시녀가 향하는 대로 후원 덤불 사이를 헤치고 간 류드밀라는 그만 얼어붙고 만다. 정자 기둥에 기대선 마녀 제복을 입은 여인과 키스하고 있는 남자가 보인다. 그리고 그 남자는 그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땅에 끌리는 긴 검은 머리에 그녀가 매일 보는 문양이 새겨진 로브를 입고 있다.

    그녀는 새된 비명을 내지르다 제 입을 틀어막는다. 다행히 그들은 서로에게 푹 빠져 소리를 듣지 못한다. 찬란하고 곧은 금발이 허리를 덮는 여인이 살짝 웃으며 남자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긴다. 남자는 그녀의 귓가에 뭔가를 속삭이고 여인은 낮은 웃음을 터트린다.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녀는 흐느끼면서 뒷걸음질 친다. 먼저 앞서가 있던 시녀가 돌아보며 괜찮으시냐고 물어 오지만, 류드밀라는 대답할 경황이 없다.

    그 후로 어떻게 방까지 돌아왔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복도를 내달린 것도, 계단을 쓰러질 듯 뛰어 올라간 것도, 문을 열고 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던진 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침대의 부드러운 감촉에 루슬란이 얼마나 그녀에게 다정했는지 기억나 서러워서 울음을 터트린다.

    이제 그 다정함도 끝이 나겠지. 그가 다른 사랑을 찾았으니 말이다.

    이런 일을 예상했어야 한다. 그가 그토록 아름다운데.

    저보다 더 예쁘고 더 착하고 더 능력 있는 여인이 나타날 것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그의 잘못은 아니었다. 류드밀라는 이렇게 생각한다. 같은 여자가 봐도 그녀보다 더 아름답고 마녀일 정도로 마법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 터인데. 그가 빠져든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한심해. 그를 변호해 주다가 그녀는 이런 생각도 든다. 네가 더 잘했어야지. 그가 다른 이에게 가지 못하도록 네가 더 잘했어야지. 류드밀라는 그제야 제대로 된 울음을 터트린다.

    내가 무얼 잘못한 것일까.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행동을 했을까. 그를 기분 나쁘게 만드는 말을 했을까. 내가 맨날 울기만 하여 나에게 질린 것은 아닐까.

    그러나 간사하게도 이런 것들보다 더 그녀를 겁에 질리게 하는 것이 있다.

    이제 나는 어떻게 되는 걸까. 루슬란이 마녀와 사랑에 빠져 나를 버린다면 나는 죽게 되겠지. 그에게 살해당했다는 여인들보다 더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에게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는데, 절망이 뭔지도 배우겠구나.

    류드밀라는 침대에서 몸을 웅크리고 한참을 운다. 감히 루슬란을 원망하지는 못한다. 그저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절망감에 휩싸여 망연히 눈물을 쏟아 낼 뿐이다.

    자꾸만 그 끔찍한 장면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녀에게 향했을 때는 한없이 기뻤던 그의 다정한 말과 손짓들이 다른 이에게 향하니 지울 수 없는 악몽 같다.

    난 멍청해. 난 구제 불능이야. 난 아름답지 않아. 난 맨날 울기만 해. 그러니 루슬란 님께서 날 버렸지. 끝없는 자기혐오가 그녀를 안에서부터 좀먹는다.

    하도 우느라 목이 쉬어서 꺽꺽거리며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들을 사람이 없지만 스스로가 한심하고 창피해 견딜 수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라도 그녀를 발견해 위로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그 누군가가 루슬란은 아니길.

    숨이 막혀 오자 차라리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러면 이 모든 고통에서 해방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가슴이 불타오르는 듯하자 그녀의 삶에 대한 집착이 눈을 뜬다.

    겨우 베개에서 얼굴을 뗀 그녀는 대신 옆으로 돌아누워 제 무릎을 껴안고 몸을 동그랗게 만다.

    그녀가 울다 지쳐 잠들 때까지 루슬란은 돌아오지 않는다.

    다음 날 깨어난 그녀는 눈을 뜨기가 무섭다. 이대로 버려진 것은 아닌지. 눈을 떠도 곁에 그가 없으면 어떻게 할지. 또 그가 있어도 어떻게 할지 두렵다.

    그때 서늘한 손이 그녀의 어깨에 살포시 내려앉는다.

    “잘 주무셨나요, 나의 껍데기 님?”

    그녀는 예전과 다를 바 없는 똑같이 다정한 목소리에 더 겁을 집어먹고 눈을 뜨지 못한다. 그가 그녀 눈에 말라붙은 끈적이는 소금기와 부은 눈을 발견한 것도 그쯤이다.

    “저런. 왜 그리 눈이 부을 정도로 심하게 우신 건가요?”

    그제야 류드밀라는 알아차린다. 그가 평소와 다름없이 그녀를 대해 주는 이유는 전날의 광경을 그녀가 보았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는 그저 모르는 척 원래대로 행동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다행이라는 생각밖에는 들지 않는다. 그의 마음이 그녀에게서 떠나갔을지라도 그는 아직 그녀를 내칠 생각이 없어 보였기에.

    살기만을 원하던 그녀의 삶에 새로운 목적과 희망을 심어 준 그이지만, 그녀는 다시 목숨만을 부지하기를 바라는 상태로 돌아와 있다.

    살고 싶다. 살아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눈물이 말라붙어 떼어지지 않는 눈을 힘들게 뜨고 억지로 슬픈 미소를 지어 보인다.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워서….”

    그녀의 말은 반쪽짜리 진실이어서 그는 그녀의 거짓말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저 안타깝고 미안한 마음에 휩싸여 눈물 자국을 손으로 쓸어 주다 그녀를 조심스레 안아 준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늦었죠. 다음부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 혼자 밤을 지새우게 하지 않을게요.”

    “아니에요, 그저 못난 저의 어리광일 뿐인걸요.”

    생각보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평소처럼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그런 자신에게 몸이 살짝 떨려 올 정도로 짙은 혐오감을 느끼면서도 그녀는 그 양심의 가책을 모른 척한다.

    그는 여전히 걱정스러워하며 그녀의 안색을 다시 한번 살핀다.

    “씻으러 갈까요, 우리? 눈물 자국을 보니 내가 너무 마음이 아파요.”

    “좋아요.”

    그가 그녀를 안아 들고 류드밀라는 놀라서 작은 비명을 내지르며 그에게 매달린다. 키가 큰 그에게 안기자 평소보다 세상을 더 높은 곳에서 보게 된다. 그 변화가 낯설고 무섭다.

    변하지 않은 그도 무섭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자약할 수가 있을까. 전날 밤에는 다른 이에게 사랑을 속삭여 놓고서 어떻게 지금은 그녀를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대할 수 있을까.

    그러나 불경한 생각은 그만해야 한다. 그가 마음이 떠났으면 그건 류드밀라의 잘못이고 불찰이다. 애초에 그를 유혹해서 씨를 받게 길러진 몸인데.

    그녀는 욕실로 향하는 그의 품에 얌전히 안겨 있으면서 다짐한다. 그녀는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뜻을 거스르면 안 된다고.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미워하거나, 원망하면 안 된다고. 그녀는 애초에 타인을 원망할 수 있게 만들어진 생명이 아니었다. 그런 그녀가 다짐까지 해야 할 정도면 정말 궁지에 내몰렸다는 소리이다.

    욕실에 들어서자 욕조에 이미 물이 가득 차 수증기를 모락모락 내뿜고 있다.

    “이것도 마법으로……?”

    불현듯 마녀에게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은 경고가 기억나 그녀가 불안해하며 묻는다.

    “아니요. 그대가 잘 때 내가 혹시 몰라 받아 놓은 것이랍니다.”

    여전히 불안한 기색을 거두지 못하고 안긴 채로 몸을 트는 그녀가 귀여워 그는 목덜미에 입을 맞춰 주곤 말을 이어 나간다.

    “나도 알아요. 껍데기 여인의 몸에 직접 마법이 닿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만약 마법이 한번 닿으면 몸이 마법을 다 흡수해 강한 마법사와 교배해도 마법 능력을 가진 아이를 못 낳게 되지요.”

    “그건 아니어요. 흡수된다 해도 마법 능력을 가진 아이를 낳을 수는 있지만 그 아이의 능력이 루슬란 님과 같은 강력한 마법사가 되기에는 부족하게 되겠죠. 그뿐이에요.”

    그녀는 마녀에게서 외울 때까지 들은 사실을 되풀이해 그의 말을 고쳐 준다. 이 사실은 정말이지 중요해 마녀들이 몇 번이고 강조한 것이어서 아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의 몸에 만약 마법이 직접적으로 닿으면 그녀는 황궁에서 보살핌을 받을 이유를 잃는 것이다. 거의 그녀의 존재 가치를 부정당하는 거나 마찬가지이다.

    이동 마법이나 부양 마법, 환상 마법처럼 약한 마법들은 괜찮지만 마법으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거나, 마법으로 치료를 받으면 교배했을 때 강력한 마법 능력을 담아내는 껍데기의 유일한 장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그녀를 내려놓고 옷을 천천히 벗겨 주며 루슬란이 무심한 목소리로 대꾸한다.

    “그렇군요. 그건 나도 몰랐네요. 하지만 나에게는 상관없어요.”

    “네?”

    “나에게는 상관없다고요.”

    그가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다시 말해 준다. 그녀는 나신을 떨며 그를 빤히 쳐다본다.

    “하지만 제가 존재하는 이유는, 루슬란 님께서 제 안에 씨를 남겨야 할 이유는…….”

    “그래요. 교배를 해서 강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이죠. 제국의 모두가 그걸 원하고 있기도 하고요. 마법에 닿지 않았으면 마법을 그대로 내보내는 껍데기 여인의 몸에서 자라난, 무한히 강력한 내 아이를요.”

    그녀를 다시 안아 올려 욕조에 내려놓으며 그가 다정하게 속삭인다.

    “하지만 난 우리의 아이가 어떻든지 상관 안 해요. 그대가 낳은 아이는 어떤 아이여도 사랑스러울 테니까요.”

    뜻밖의 말에 그녀는 절망감이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도 잊고 놀라서 입만 뻐끔거린다.

    평생을, 그녀는 마법사와의 교배를 위해서 살아야 한다고 배웠다. 그게 그녀가 황궁에서 길러진 이유였고, 마녀들이 그녀를 가르치고 먹이고 입힌 이유였다. 마법사와 교배해서 강력한 자손을 남기기 위해서.

    그런데 그는 이제 그녀가 어떤 아이를 낳든 상관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분이 나빠야 했다. 그녀의 필요성을, 그녀의 존재 이유를 부정당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녀는 배 속에서 몽글몽글한 것이 가득 차오르고 나비가 날갯짓하는 기분에 어쩔 줄을 몰라 한다.

    그녀의 기뻐하는 기색을 느낀 그는 살짝 웃으며 저도 욕조에 들어와 그녀 옆에 몸을 기댄다.

    그녀는 그에게 마음 놓고 기대지 못한다. 배 속에서 나비가 춤추듯 하는 감각과는 별개로 아직도 슬픈 절망감이 먹구름을 드리운다. 그래도 머리를 어깨에 기대게 이끄는 손길에는 순순히 응한다. 타인의 말을 거부하는 성정은 그녀에게서 사라진 지 오래였으니.

    그 작은 변화에도 예민한 그는 알아차린다. 그녀가 뭔가 달라졌음을 깨달은 그에게서 걱정이 다시 피어오를 무렵 그녀는 결국 작은 울음을 터트린다.

    아까의 기뻤던 감정이 슬픔으로 변질된 것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다. 왜 그녀는 그에게서 이토록 아름다운 말을 듣고서도 안심하지 못하는 걸까. 왜 그의 다정한 말에 순수한 미소로 답해 주지 못하는 걸까. 왜 그녀는 그 무서운 장면을 잊지 못하고 과거의 일로 현재를 더럽히는 것일까.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그녀 자신만이 안다. 그녀는 언제나 그랬듯이 겁에 질려 버린 것이다. 그녀가 누리게 된 모든 것, 생명을 포함해서 그것들을 빼앗길까. 여전히 두려운 것이다.

    그 두려움은 그녀로 하여금 맨 정신으로는 감히 하지 못할 일들을 하게 만든다.

    루슬란이 눈물을 닦아 주려 뻗은 손을 그녀는 겁에 질려 쳐 낸다. 그런 그녀에게 전과 달리 화도 내지 않고 그는 조곤조곤 타이른다.

    “인간이 왜 우는 줄 아시나요? 슬프다고 남에게 알려, 위로받고 도움받기 위해서예요. 도움받는 걸 두려워하지 마셔요, 나의 껍데기 님. 그대가 우는 게 나 때문이라면 정말 미안해요.”

    그는 더 이상 손을 뻗지 않은 채 차분히 그녀의 울음이 잦아들기를 기다린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내가 도울 수 있게 이유를 말해 줘요.”

    어떻게 이유를 말할까. 어떻게 그가 마녀와 키스하는 장면을 봤다고 말해야 할까. 그녀는 더 심하게 흐느끼면서 다시 한번 뻗어지는 그의 손을 움켜쥐고 거기 제 얼굴을 묻는다.

    “죄송, 죄송해요…. 죄송해요, 루슬란 님.”

    그녀는 내내 그녀 안을 갉아먹던 감정들을 정리하지 못한다. 그가 밉고 싫다. 그를 원망하고 싶다. 그러지 못해서 괴로운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더 숨이 막혀 오는 것이다. 이런 감정을 그에게 느끼는 자신이 역겹다.

    그런 그녀의 마음을 알 리 없는 그는 다른 손으로 그녀의 뒷머리를 안타까워하며 쓰다듬어 준다.

    “뭐가 그리 죄송할까요. 그대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제가 거짓말을 했어요…….”

    그 말에 그의 얼굴이 미세하게 찌푸려진다. 지금 상황에서 마음 같아서는 어떤 거짓말을 해도 괜찮다고 하고 싶었으나 그는 그녀와 맺은 약조가 있다. 한 입으로 두말을 할 수는 없는 법이라 그는 갈등하다 겨우 최선책을 생각해 낸다.

    “사실을 말해 봐요, 그럼 마음이 한결 편해지지 않을까요?”

    그 말에 더 겁에 질린 그녀는 딸꾹질까지 하면서 온몸을 떤다. 눈물범벅인 작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며 그녀는 최선을 다해 지금 감정을 털어놓으려 한다.

    “루, 루슬란 님을 워, 원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마,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싫고 무섭고…… 혐오스러웠어요…. 루슬란 님이 미웠는데…….”

    서서히 굳어지는 그의 얼굴을 보고 더 겁에 질린 그녀가 더 심하게 울먹이며 알 수 없는 말들을 뱉어 낸다. 그러나 뒤엉킨 단어들 속에서 미움과 서러움의 감정을 읽어 낸 그는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린다.

    그녀가 더 이상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되었구나. 그런데도 그걸 들키면 쫓겨날까 두려워 그에게 숨겨 왔구나. 그런데도 그가 그 마음을 알아채 주지 못하여 그가 원망스러웠구나.

    루슬란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던 손을 거둔다. 그녀가 묻고 울고 있던 손도 빼낸다. 그는 전혀 달라지지 않은 여전히 다정한 목소리로, 조곤조곤 그녀가 항상 두려워했던 말을 꺼낸다.

    “그럼 그대를 놓아줄게요, 나의 껍데기 님.”

    류드밀라에게 그에게 향하던 마음이 변한 이유를 묻고 싶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우는 모습은 이제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그는, 그녀를 놓아주기로 결심한다.

    다정하지만 상냥하지는 않은 그 말에 류드밀라는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흐느낀다.

    “아니에요, 그 뜻이 아니에요. 싫어요. 절 놓지 마세요…….”

    “내가 밉고 싫다고 하셨잖아요.”

    그녀가 다시 고개를 흔들면서 입을 열려 하자 그의 표정이 조금은 딱딱해진다.

    “쉬이- 거짓말은 하지 마셔요.”

    “하지만, 하지만…….”

    “알아요, 그대가 무슨 감정을 느끼는지. 내가 미운지 좋은지 아직 잘 모르겠죠? 그동안 내가 계속 다정하게 대해 줘서 그대가 혼란스러울 수도 있었어요. 그건 정말 미안해요. 하지만 조금이라도 싫은 감정이 든다면 나와 더 이상 엮이지 않는 편이 그대에게도 훨씬 나아요.”

    그가 그녀에게서 천천히 몸을 떼고 물러선다.

    “안 돼요, 안 돼요, 안 된다고요.”

    뭐가 안 된다는 건지도 모르면서 그녀는 말을 마구 뱉어 낸다. 저를 버리지 마세요. 저를 내치지 마세요. 제가 원래 있던 그 음울한 곳으로 돌아가게 하지 마세요. 제발요. 속으로는 미처 하지 못한 애원들을 끊임없이 되풀이해 본다.

    그는 조금 떨어진 상태에서 몸을 기울여 그녀의 이마에 입맞춤을 남긴다. 정신이 없어 그녀는 그의 얼굴에서 눈물이 투둑 떨어져 내리는 것도 보지 못한다.

    “잘 가요, 나의 껍데기 님. 그동안 나와 있어 줘서 고마웠어요. 그대의 몸에 평화가 깃들기를.”

    그가 그녀에게 손을 뻗고 그가 그녀를 다른 여인들처럼 죽이려 한다고 생각한 류드밀라는 눈을 질끈 감는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녀는 더 이상 욕실에 있지 않다.

    그의 침실보다 훨씬 작은 방의 침대 위로 이동해 온 것이다. 울음을 그치지 못하고 훌쩍이며 그녀는 방을 둘러본다. 그가 나를 이곳으로 보냈구나. 여긴 어디지? 나를 왜 죽이지 않고 다른 곳으로 보냈을까? 의문과 두려움이 머릿속을 가득 메운다.

    방문 테두리가 파란색으로 깜박거린다. 그 문이 열리자 빛은 이내 사라진다. 그것이 루슬란이 남긴 마지막 흔적 같아서 더 서럽고 슬퍼진 그녀는 목 놓아 운다.

    “이런, 이번 애는 전보다 상태가 더 심각하잖아.”

    누군가 혀를 끌끌 차는 소리에 그녀는 눈물을 훔치고 문가를 돌아본다. 그곳에는 허리가 굽은 은발의 노파와 류드밀라보다 조금 나이 든 여인이 서 있다. 혀를 찼던 노파는 낡은 숄을 여미며 약간 머뭇거리는 듯싶은 여인의 등을 떠민다.

    “어서, 가서 달래 주렴. 새로 온 아이잖니.”

    노파가 못마땅하게 지켜보는 가운데 여인이 주저하다 침대 가로 다가온다. 류드밀라는 겁을 집어먹고 뒤쪽으로 물러서다 침대 반대편에 쿵 하고 떨어진다.

    결국 침대를 돌아 그녀 바로 앞까지 다가온 여인이 그녀 앞에 쭈그리고 앉아 손을 내민다.

    “안녕. 나는 스베틀라나야. 너처럼 껍데기 여인이지. 아니 여인이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만 울고 내 말을 들어 봐.”

    “그렇게 무심하게 대하면 퍽이나 네 말을 듣겠구나.”

    노파가 성을 내며 지팡이를 쿵쿵 짚으며 류드밀라에게로 다가온다. 여인보다 노파가 더 무서웠던 류드밀라는 침대 옆 구석으로 몸을 숨긴다. 그동안에도 눈물은 쉼 없이 흘러내린다.

    “다, 당신들은 누구세요? 여긴 어디죠? 왜 제가 여기로 온 건가요?”

    자신을 스베틀라나라고 소개한 여인이 손을 거두고 차분히 그녀를 응시한다.

    “내가 설명해 줄게. 너도 아마 마법사에게 교배하러 보내졌을 거야, 그렇지? 마법사는 껍데기 여인들과 교배하는 대신에 그들을 이곳으로 보내. 산속에 있는 작은 공동체 마을인데, 이곳에는 지금까지 그에게 보내졌던 모든 여인들이 살고 있어.”

    혼란스럽고 두려운 와중에도 류드밀라는 천천히 이해가 되기 시작한다. 루슬란은 그에게로 보내진 껍데기 여인들을 죽이는 대신 모두 이곳으로 보내고 소문만 무시무시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자신이 그의 뜻을 거스르자 더 이상 아껴 줄 필요가 없어 이곳으로 보낸 것이고.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쏟아 낸다.

    “저, 저는 돌아가야 해요. 루슬란 님께 가서 사과해야 해요.”

    노파가 지팡이에 기댄 채 고개를 갸우뚱한다.

    “이런 경우는 또 처음 보네. 루슬란 님이 누구신데?”

    자신이 루슬란과 가까워지기 전엔 이름을 몰랐던 것처럼 그들도 그의 이름을 모를 거란 생각이 문득 든다.

    “저를 이곳에 보내신 마법사님이요.”

    류드밀라의 대답을 들은 노파는 얼굴을 찡그린다.

    “그분은 우리와 직접 소통하지 않으신단다. 사과를 하려 해도 할 수 없을 거다. 가엾게도 두려움 때문에 조금 정신이 없는 모양이야. 스베티야 네가 달래 주고 적응을 도우렴, 나는 가 보마.”

    “가 보세요, 할머니.”

    전처럼 그 유난히 차분한 목소리로 대꾸한 스베틀라나는 다시 류드밀라를 돌아본다.

    “그래도 울음은 그쳐서 다행이야. 일어날 수 있겠니?”

    그녀는 고개를 조심스레 끄덕이곤 다리에 힘을 준다. 그에게서 버림받았다는 충격에 다리가 후들거리지만 겨우 일어선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눈길로 그런 그녀를 지켜보던 스베틀라나도 몸을 일으킨다.

    방을 가로질러 구석에 걸려 있던 가운을 가져와 그녀의 몸에 둘러 준다. 껍데기들이 늘 입던 새하얀 가운과는 달리 이 가운은 누런빛이 돌고 약간 거칠다. 불평 없이 소박한 옷을 입은 그녀는 스베틀라나를 따라 방을 나온다.

    밖은 고요했던 방 안과는 달리 분주하다. 바쁘게 긴 복도를 가로지르는 여인들 손에는 무언가가 항상 들려 있다. 무거워 보이는 빨랫감, 식사로 나올 목을 비튼 수탉, 빗물 새는 지붕을 고칠 도구 상자 등등.

    스베틀라나는 그런 일감들이라도 되는 것처럼 류드밀라의 손을 잡고 그녀를 어디론가 이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아까의 방과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는 작은 방이다. 다만 그녀가 껍데기 때 쓰던 것처럼 한 방에 여러 침대가 있을 뿐이다. 그래도 이곳은 한 방을 여섯 명이 아니라 두 명이서 나눠 쓰게 되어 있다.

    “앞으로 너랑 내가 이곳을 같이 쓸 거야. 나는 아까 소개했듯이 스베틀라나이고, 스베티야로 불러도 돼. 너는 이름이 뭐니?”

    “류드밀라예요.”

    스베틀라나가 눈살을 찌푸리자 그녀는 움츠러든다.

    “존댓말은 쓸 필요 없어. 여기서 우리는 모두 똑같은 여인들일 뿐이니까.”

    “네, 아, 알았어.”

    “그럼 오늘부터 네가 할 일을 알려 줄게. 일단 오늘은 날 따라다니면서 이곳 생활에 대해 배울 거야. 밥은 어디서 먹는지, 일에는 뭐가 있고 어떻게 하면 되는지, 길을 찾는 법과 우리가 따르는 규칙들도 배울 거고. 질문이 있으면 언제든지 해. 난 그래도 이곳에서 너랑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까.”

    스베틀라나는 약간 비뚠 미소를 지어 보이고 류드밀라의 여린 마음은 조금은 안심한다.

    “아직 아침 시간이 안 지났으니까, 아침부터 먹으러 가자.”

    식사하는 곳으로 향하면서 스베틀라나는 지나치는 모든 것에 대한 설명을 해 준다.

    “우리 방이 있었던 곳은 수면동이야. 우리가 지금 향하는 곳은 식사동이고. 원래는 밖에 테이블을 놓고 식사를 하지만 지금은 너무 추워서 안에서 먹는 거야. 수면동과 식사동을 합쳐서 생활동이라 불러. 저 복도를 따라 가면 작업동이 나오는데, 거기서 온갖 일들을 배우게 될 거야. 그중에서 네가 제일 잘하는 일을 하면 돼.”

    “잘하는 일이 없으면 어떡해?”

    겁에 질린 류드밀라가 조그맣게 묻자 스베틀라나는 단호하게 대꾸한다.

    “모든 사람은 저마다 잘하는 일 한 가지씩은 있어.”

    그러고는 건물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기 시작한다.

    “우리 공동체에는 건물이 여럿 있지만 특이한 점은 모두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는 거야. 때문에 길만 잘 찾고, 방향만 잘 잡으면 어디로든 갈 수가 있어. 그래서 우리는 이곳을 거미줄이라고 불러. 신기하지?”

    “으, 응…….”

    주변 환경이 갑자기 바뀐 나머지 혼란스럽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이것이 이제 그녀의 새로운 삶이다. 루슬란이 없는 삶. 그녀가 살아온 시간들 중 루슬란과 함께한 시간이 차지하는 실질적인 양은 적었지만 그의 부재가 너무나도 크게 느껴진다.

    “저기, 스베틀라나, 나는 진짜 못 돌아가는 거야?”

    길 가다가 우뚝 멈춰 선 여인이 눈을 크게 뜨고 그녀를 돌아본다.

    “정말 거기로 돌아가고 싶어? 황궁으로? 돌아가면 너는 죽게 될 거야. 마법사의 씨를 받지 못했잖아.”

    “방법은, 방법은 있는 거지?”

    “이건 ‘거미’들이 논의할 사안이야. 나한테 물어보지 마.”

    거미들이 누구냐고 그녀가 묻기도 전에 스베틀라나는 다시 몸을 획 돌려 멀어져 간다. 류드밀라는 앞장서 가는 그녀를 서둘러 따라잡는다.

    “오늘 저녁에 의식을 치를 때 거미들을 만나게 될 거야. 그때 잘 말해 봐. 거미들은 우리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8명을 말해. 그들이 거미줄의 중대사를 결정하고 거미줄의 아이들을 돌봐 줘.”

    “왜 그분들을 거미라고 부르는 거야?”

    “이곳 건물의 구조가 거미줄처럼 서로 다 이어져 있어서, 이곳을 관리하는 분들을 거미라 부르는 거야.”

    류드밀라는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는 얼굴을 한다.

    “그럼 아까 방에 있던 분도…….”

    “맞아. 우리는 거미를 다 할머니라고 불러. 아무튼 그분도 거미야. 새로운 아이가 올 때면 항상 거미가 지켜봐 주거든.”

    류드밀라는 조용해진다. 비록 스베틀라나에게 물어보긴 했지만 아직도 그녀는 마음을 확실하게 정하지 못했다. 그녀가 돌아가서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루슬란 님께 사과하고는, 그러고는? 그의 마음은 이미 그 마녀에게로 가 있는데, 그녀가 사과한들 뭐가 달라질까.

    하지만 그를 봐야 한다. 죽어도 그의 곁에서 죽고 살아도 그의 곁에서 살아야 한다. 만약 살 수 있으면. 만약 그가 곁을 내주고 허락해 준다면. 그녀는 이 생각을 하고 나서 스스로 놀란다. 루슬란에게서 멀어진 후에야 그를 향한 마음을 알아차리게 되자 한없이 서글퍼진다.

    그런데 만약 그가 곁을 내주고 허락하지 않는다면? 이미 마음이 떠났는데도 그녀가 상처 받을까 봐 계속 붙잡아 두다, 그녀가 싫은 기색을 내비치자 옳다구나 하고 내친 거라면? 그녀는 처음으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하고 아직은 그 결정에 따르는 책임을 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류드밀라가 고민에 빠져 있을 동안 그들은 식당에 다다른다.

    “자, 여기가 식당이야.”

    고소한 버터 냄새가 거대한 홀 안에서 솔솔 풍겨 오고 그녀는 상념에서 깨어난다. 그래, 일단은 먹고 기운을 차리고 나서 생각하자. 전에는 단 한 번도 부린 적 없던 식탐을 지금은 부리고 싶을 정도로 배가 고픈 것이 막 느껴진다.

    그녀의 넋이 나간 얼굴을 본 스베틀라나가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웃음을 킥킥거리며 내보인다.

    “원래 먼 거리를 이동하는 마법을 당하면 배가 고파져. 나도 첫날에는 엄청 배가 고팠어. 많이 먹어, 많이 먹는다고 뭐라 그럴 사람은 아무도 없어.”

    홀 안으로 발을 들여놓은 류드밀라의 입이 딱 벌어진다. 홀에는 수백 명의 껍데기 여인들이 돌아다니고 있다. 복도를 가로질러 오면서 본 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은 숫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한꺼번에 본 것은 처음이라 그녀는 인파에 압도당한다.

    은발의 물결들. 곱슬거리는 은발, 곧은 은발, 긴 은발과 짧은 은발. 가는 은발과 굵은 은발. 그리고 색색깔 눈동자의 물결. 검은색, 갈색, 파란색, 초록색, 노란색, 빨간색까지. 그 밖에도 키가 큰 껍데기와 작은 이들, 통통한 이들과 마른 이들 등등.

    그들 모두가 살아 숨 쉬고 있다. 어디 살아 숨 쉬는 것뿐이랴. 웃고 떠들고 소리 지르고 속살거리고. 어떤 이들은 활기차게 돌아다니고 어떤 이들은 차분히 식사를 하고 있다. 그 모든 사람들이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채로 있었다는 것이 놀랍고 신기하다.

    그녀는 알고 지내다가, 같은 방을 쓰다가 루슬란에게 보내진 친구가 있는지 고개를 휘휘 돌려 찾아보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찾기가 힘들다. 다시 한번 그 인파에 압도당해 들어가기가 망설여진다. 두려움이 불쑥불쑥 솟아오른다.

    류드밀라가 들어가지 못하고 머뭇거리자 스베틀라나가 이해한다는 듯 또다시 웃으며 그녀를 부드럽게 잡아끈다.

    “거미줄에 온 걸 환영해, 류드밀라.”

    류드밀라는 천천히 홀 안으로 발을 들여놓고 그 순간 소리가 그녀를 집어삼킨다. 고운 소리, 약간은 쉰 소리, 낮은 소리 높은 소리, 가는 소리 굵은 소리. 목소리들과 식기가 부딪히는 맑은 소리들이 합쳐져서 따스하고 왁자지껄한 분위기를 만들어 낸다.

    같은 방을 쓰던 이들 외에는 다른 껍데기를 만난 적이 거의 없던 그녀에게는 이런 단체적인 분위기가 너무나도 생소하다. 하지만 전에 느꼈던 두려움은 조금씩 사그라진다.

    요리에서 나는 온기도 전해진다. 류드밀라는 눈을 감고 소리와 온기와 냄새에 한껏 취한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스베틀라나는 이미 그녀를 지나쳐 간 후이다.

    종종걸음으로 스베틀라나를 따라가며 그녀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하나를 빤히 쳐다본다. 자기와 똑같은 껍데기들을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기쁨을 억누를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기쁨에는 그림자가 존재한다. 루슬란 없이도 이런 기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슬프다. 그래도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하며 스베틀라나 뒤를 쫓아간다.

    스베틀라나는 커다란 트레이에서 접시와 냅킨, 포크와 나이프를 집어 류드밀라에게 건넨다.

    “먹고 싶은 음식을 각 트레이에서 골라서 담고 빈자리로 가면 돼. 알겠니?”

    “응.”

    류드밀라는 접시를 받아 들고 어디로 향해야 될지 몰라 잠시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그러다 레몬 타르트가 구석에 있는 것을 발견한다. 이것을 보자마자 루슬란이 떠오른다.

    가슴이 먹먹해지며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른다. 포크와 나이프를 든 손으로 눈물을 훔친 그녀는 일부러 그쪽에서 등을 돌린 채 다른 음식들을 살펴본다. 온갖 빵 종류와 그 위에 발라 먹을 잼과 꿀, 크림과 치즈가 즐비하다. 아침이라서 그런지 요리보다는 파이와 샐러드가 주를 이루고 있다.

    제일 익숙한 호밀 빵을 하나 집어 들고 블루베리 잼과 마멀레이드를 한 스푼씩 얹은 그녀는 빈 곳을 찾아 안쪽까지 들어간다. 자리에 앉기 무섭게 스베틀라나가 불쑥 나타나 ‘시’라 불리는 양배추 수프 그릇을 건넨다.

    “먹어. 하루를 살아가려면 배 속을 따듯하게 해야 돼.”

    “고마워.”

    나이프로 서투르게 잼을 바르며 그녀가 감사 인사를 한다. 황궁에서는 한 번도 빵에 잼을 바르는 사치를 누려 보지 못했고, 루슬란과 있을 때는 그가 모든 걸 다 해 줬기에 그녀는 동작 하나하나가 다 서투르다.

    스베틀라나는 온갖 파이와 샐러드를 가득 담아 와서 먹는다. 큰 키에 걸맞게 많이 먹는 그녀를 신기한 듯 바라보다 류드밀라도 빵을 한입 베어 문다. 약간 거칠긴 하지만 잼의 달콤함에 혀가 녹는 듯하다.

    수프 그릇에 담겨 있던 숟가락으로 한입 떠먹자 스베틀라나의 말대로 기력이 난다. 배 속에서 시작된 따뜻함이 온몸 구석구석까지 번져 나가며 힘을 준다. 그녀가 막 빵을 수프에 담가 먹으려는데 낯선 목소리가 들려온다.

    “스베티야, 얘가 그 새로운 애야?”

    “딱 보면 모르겠니.”

    한결같이 차분하게 대답한 스베틀라나는 피로츠키를 한입 베어 문다. 그녀에게서 더 시선을 올리자 반짝이는 은발을 뒷목까지 짧게 자른 여인이 보인다. 키가 매우 작은 그녀는 스베틀라나의 어깨를 장난스레 짚고 있다가 초록색 시선을 류드밀라에게로 향한다.

    류드밀라는 움찔하며 다시 눈길을 내리깔고 주목받으면 늘 그래 왔듯이 몸을 웅크린다.

    “얘, 넌 이름이 뭐니?”

    “루, 류드밀라예요.”

    어느새 초록 눈의 여인 주위는 다른 껍데기들이 몰려들어 부산스러워져 있다.

    “너 되게 예쁘게 생겼다.”

    제일 먼저 류드밀라를 구경하러 온 초록 눈의 껍데기가 불쑥 말한다.

    “리타, 그런 말을 면전에 하면 어떡해?”

    “왜 안 되는데?”

    “애가 부끄러워하잖아. 봐봐, 얼굴 빨개진 거.”

    갈색 눈을 가진 통통한 껍데기가 안쓰럽다는 듯 말하고 다른 이들도 저마다 한마디씩 하며 주위는 더 소란스러워진다. 그럴수록 류드밀라는 더 겁을 집어먹는다. 그들의 속삭임과 수다가 호의적인지 악의적인지 구분이 가지 않는다.

    “그만! 애 식사 좀 하게 내버려 둬!”

    참다못한 스베틀라나가 벌떡 일어서서 고함을 지른다.

    큰 소리에 놀라 눈물은 쏙 들어간다. 더 이상 맛을 느끼지 못하고 빵과 수프를 입에 대충 넣고 삼킨 그녀는 스베틀라나를 따라 일어선다. 그녀는 앞서가다가 미안해하면서 뒤를 흘끔 돌아본다.

    “미안, 내 친구들이 좀 짓궂어. 여기 모든 껍데기들이 다 그런 건 아냐.”

    “괜찮아.”

    아직도 약간 정신이 없는 류드밀라가 멍하니 대꾸한다. 일단 괜찮다는 말을 듣자 스베틀라는 평소의 침착한 태도로 돌아온다.

    “이제 우리가 일하는 곳들을 둘러볼 거야. 그중에서 너랑 맞는 일을 찾으면, 내일부터 그 일을 하게 되는 거지.”

    “알겠어.”

    그리고 그들은 주방부터 시작해 거미줄의 온 구석을 다 돌아다닌다. 류드밀라는 주방에서 수프를 저어 보기도 하고, 직조실에서 베틀 앞에 앉아 직물을 짜 보기도 하고, 못질을 해 보기도 한다. 한 번은 힘에 겨운 나머지 비처럼 쏟아지는 땀을 닦자 스베틀라나가 한숨을 쉰다.

    “넌 아무래도 몸이 약해서 이런 일은 안 어울려.”

    그래서 류드밀라는 거미들의 거처로 가서 수발을 들어 보기도 하고, 말동무가 되어 보기도 한다. 그녀가 세 번째로 차를 엎지르고 더듬거리며 사과하자 이번에는 거미들이 손사래를 친다.

    “다른 곳에 가 보렴, 아이야.”

    그래서 류드밀라는 청소도 해 보고, 빨래도 해 본다. 가벼운 허드렛일이지만 여전히 그녀는 꼼꼼하지 못하고 체력도 약하다. 그녀가 몇 번이나 짠 수건을 스베틀라나가 한 번 짜자 물이 바닥에 흥건히 고인다.

    “안 되겠다. 넌 허드렛일도 못 하겠어.”

    류드밀라는 절망감에 빠져 금방이라도 울 듯한 표정으로 스베틀라나를 따라간다. 그때 발에 뭔가가 차인다. 동글동글한 도자기 인형이다.

    “미안! 그게 굴러가 버렸네. 이리 와서 다시 줄래?”

    문이 열려 있는 방으로 들어가니 한곳에서는 도자기를 빚고 있고 한 구석에서는 다 구운 도자기를 칠하고 있다. 도자기를 칠하던 여인에게 인형을 건넨 그녀는 잠시 머뭇거린다.

    그리고 살면서 처음으로, 스스로 나서서 뭔가를 제안해 본다.

    “저, 제가 여기서 일해 볼 수 있을까요?”

    “반말을 하래도!”

    뒤에서 그녀가 보이지 않자 따라 들어온 스베틀라나가 야단친다. 순식간에 움츠러든 류드밀라를 보고 도자기를 칠하던 여인이 달래듯이 손을 내민다.

    “이리 와서 앉아 봐, 그럼. 이렇게 붓을 들고, 물감에 찍어서…… 겉 색을 먼저 입히는 거야.”

    류드밀라는 작은 붓으로 빨간색을 인형에 칠한다. 손끝에서 새로운 색깔이 나타나는 것이 신기해서 가슴이 벅차오른다. 마치 루슬란의 손길 아래서 그녀의 머리카락 색이 바뀌었듯이 마법을 부리는 기분이다.

    “꽤 잘하는데?”

    도자기 칠하던 여인이 말하자 류드밀라는 신이 난 아이처럼 맑은 얼굴을 하고 스베틀라나를 돌아본다. 칭찬을 들어 본 적이 없어 가슴이 두근거린다.

    차분하던 스베틀라나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른다.

    “그래 그럼. 내가 말했지,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 맞는 일이 있다고.”

    “응, 그랬지.”

    행복하게 마주 웃어 준 류드밀라는 다시 도자기 인형을 칠하기 시작한다.

    “난 가 볼게. 점심때 되면 홀로 내려와, 같이 먹게.”

    “좋아.”

    스베틀라나가 가고 나서 류드밀라는 한참을 말없이 도자기 칠하는 여인이 알려 준 대로 인형에 색을 입힌다. 빨간 두건을 씌워 주고, 은색 곱슬거리는 머리카락과 꼭 맞잡은 뽀얀 손을 칠해 준다. 루슬란과 있을 때는 주로 침대에만 있었는데, 이런 일을 해 보니 신기하고 재미있게 시간이 흘러간다.

    그녀가 인형이 자신을 나타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여인이 시키는 대로 눈을 보라색으로 거의 다 칠했을 때이다.

    한 손에 다 들어오는 작은 인형인데도 섬세하게 표현된 이목구비가 자신과 너무나도 닮아 있다.

    “이거, 이게 저 맞나요?”

    “그럼.”

    맞은편에 앉아 좀 더 작은 인형을 칠하던 여인이 살짝 웃는다.

    “그리고 반말을 쓰도록 해. 여기서는 모두가 다 똑같으니까.”

    “으응. 그런데 왜 나랑 똑같이 생긴 인형을 만드는 거야?”

    “오늘 밤 의식 때 쓰려고. 오늘 밤 너는 더 이상 황실의 소유가 아니게 될 거야. 그들이 네게 걸어 놓은 굴레에서 벗어나게 되는 거지. 자세한 건 설명해 줄 수 없어. 그러니 그런 것 말고 내 이름을 물어보는 건 어떠니?”

    몇 시간이나 함께 인형을 칠했으면서 여인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사실에 얼굴이 홧홧해진다. 류드밀라는 서둘러 입을 다시 연다.

    “이름이 뭐야?”

    “난 알리나. 너는?”

    “나는 류드밀라야.”

    “얼굴처럼 예쁜 이름이네.”

    그 전까지 한가득했던 질문이 그 칭찬에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점심이 가까워지고 손목이 슬슬 아플 무렵 다시 그 질문들이 생각난다.

    “알리나, 내가 오기 전에 어떻게 인형을 만들고 있었어?”

    “거미들은 예지 능력이 있어. 네가 동물들이랑 말하는 것처럼, 마법과는 상관없는. 거미들이 꿈에서 본 너를 그려 주면 우리가 만드는 거야.”

    “그렇구나. 그러면 이 인형은 새로운 껍데기가 올 때만 만드는 거야?”

    알리나는 잠시 칠하던 인형을 세워 두고 기지개를 쭉 켠다.

    “아니. 평소에는 다른 인형들을 그려서 상인에게 넘겨. 그럼 그가 시장에서 인형을 팔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사다 줘.”

    “상인? 바깥에서 오는 사람이야?”

    “응. 우리의 존재를 비밀로 지켜 줘서 안전해. 걱정하지 마.”

    류드밀라의 별안간 높아진 목소리를 다른 이유 때문이라고 오해한 알리나가 안심시킨다. 류드밀라의 마음은 딴 곳으로 향해 있다.

    “그 상인은 바깥으로 가는 길을 알겠네.”

    “음, 그렇겠지?”

    그녀의 의도를 알아챈 알리나는 걱정스럽게 그녀를 쳐다본다.

    “밖에 나가고 싶은 건 아니지?”

    거미들에게 다시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달라고 말할 생각이라는 사실은 숨기고 그녀가 고개를 흔든다.

    “아니, 아냐. 그냥 궁금했을 뿐이야.”

    “그래. 바깥은 위험해. 우리 같은 껍데기들은 머리카락 색 때문에 눈에 더 잘 띄어서 더더욱.”

    “왜 위험한데?”

    알리나는 점심을 먹으러 갈 생각인지 주변을 천천히 정리하며 계속 말한다.

    “너 때는 마녀들이 그런 걸 안 가르쳐 줬나 보구나.”

    “뭐를?”

    조바심이 난 류드밀라가 캐묻는다.

    “껍데기들이 제국에서 어떤 취급을 받는지.”

    “그건 나도 알아. 우리는 마법사와 교배하기 위해 길러져서…….”

    “아니, 그런 거 말고.”

    씁쓸하게 말을 자른 알리나가 자꾸만 말을 하려다 머뭇거린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눈치여서 류드밀라는 인내심 있게 기다린다. 그녀 평생 제일 긴 기다림이 마침내 끝나고 알리나는 입을 뗀다.

    “이그나티 제국에서 껍데기는, 악마가 낳은 존재였어. 마법을 할 줄 아는 게 너무나도 당연한데, 악마의 저주를 받아 마법을 못 하는 채로 태어났다고 모두가 여겼지. 게다가 노인처럼 하얗게 세어 버린 은색 머리가 얼마나 섬뜩해, 그렇지?”

    자신의 머리카락을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던 류드밀라는 움찔 떨면서 제 머리카락을 매만진다.

    “그래서 태어나자마자 죽임을 당하거나 가축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며 길러져서 어딘가로 팔려 나갔지. 그러던 어느 날 마법사가 우리랑 교배하면 강한 자손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어떤 마녀가 연구해 낸 거야. 그래서 그때부터 다들 껍데기 여인을 구하려고 안달이 나 있었어.”

    처음 안 사실에 놀라는 사이 알리나는 이야기를 계속해 나간다.

    “그런데 껍데기는 황궁에서 기를 수가 없었어. 어린 껍데기가 아무거나 만지다가 마법에 물이 들면 어떡해.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 나이가 찬 껍데기들을 찾아내어 철이 든 후에야 데려왔지. 그리고 중요한 기억은 모두 지운 채 말을 잘 듣는 여인으로 키운 거야. 마법사와 교배할 수 있을 때까지.”

    알리나의 검은색 눈이 우울한 빛을 띠고 깊어진다. 그 눈동자를 마주한 류드밀라는 겁에 질린 제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 말은, 넌 황궁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라는 소리야. 너도 가족이나 친구, 그리고 집이 있었을 거야. 그들이 그 모든 걸 네게서 빼앗아 버린 거야, 류드밀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