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8/15)

2.

서진을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학생회장이라는 사람이 입학을 환영한다고 말하는 걸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문득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사실, 목소리로 웅성거리지는 않았다. 시선이 흘깃거리듯 모여드는 곳이 있었을 뿐이지.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는데, 웬 잘생긴 애 옆에 또 잘생긴 사람이 있었다. 그게 지혜가 서진을 본 첫 순간이다.

학생회장, 전교 1등, 부모님이 방송에, 인터넷에 올라왔대, 그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소곤거리는 게 종종 들렸다.

그럼에도 막상 당사자는 그 시선을 뻔히 알 텐데도 꽤나 태연했다. 아마 신입생인 것 같은 남자애 쪽은 긴장이 되는지 시선을 자주 움직였는데, 그 옆의 사람은 그런 기색이 없었다. 학생회장은 지금 단상 위에 올라가 있으니 저쪽은 아마 전 학생회장일까. 제 주변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르게도 그 분위기가 차분하기만 했다. 확실히, 분위기가 좋은 사람이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지혜는 자신과 서진이 엮일 일은 전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서진은 고3이라던데, 신입생 입장에서는 고작 2살 차이 나는 고3도 꽤나 멀어 보이기만 했다. 애초에 엮이고 말고 하는 그런 생각조차도 해 본 적이 없고. 하지만 어쩌다 보니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과정을 거쳐 연우와 사귀게 됐고, 그렇게 서진과도 알게 됐다.

어쩌다 서진이 연우에게 볼일이 있다고 반에 찾아오는 날이면, 그날 점심시간에 하는 말이라고는 모두 서진에 대한 것이었다. 서진의 부모님이 종종 방송에 출연한다는 건 알았다. 집안사람 대부분이 유명 로펌에서 한자리씩을 한다고 했고 그게 아니라면 의사, 교수, 혹은 겸임. 서진의 부모님은 그중에서도 범죄 프로그램 같은 게 있을 때 법률 조언을 하는 식으로 출연하는 경우가 꽤 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지혜도 두어 번쯤은 티비에서 본 것 같았다.

그러다가 그 부부의 아들이라며 서진의 사진이 인터넷 커뮤니티 같은 곳에 올라온 적도 있다고 했다. 알음알음 유명세를 타서 어디서는 캐스팅 담당자가 몇 개월 동안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얼굴 덕에 연우도 인기가 있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지혜와 사귀다 보니 다들 연우보다는 서진을 이야기하는 구석이 있기도 했다. 애초에 1학년과 졸업 학년은 거리가 있다 보니 더 소문처럼 이야기하는 게 있기는 했겠지만.

물론 얼굴이 문제였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서진은 꽤나 시선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지혜의 주위에 있던 친구들에게는 선배라 더 거리감이 있었겠지만, 사실 서진은 대부분의 사람과 친하면서도, 적당한 거리를 그었다.

그 깔끔하고 단정한 분위기에 다른 사람은 없겠구나 안심하면서도, 자신은 그 선 안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그 모순을 끌어내는 데 아주 탁월하기도 했다. 차라리 서진이 연애라도 했으면 다들 적당히 끊어냈겠지만, 서진은 연애도 하지 않았다. 적극적으로 다가갈 명분은 없었지만, 포기해야 할 결정적 이유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지혜의 친구들 사이에서, 사실 친구들뿐만은 아니겠지만, 서진을 꽤나 지독하게 앓은 사람이 몇 있다. 서진은 모두에게 친절했다. 그러니 설렐 기회를 만들기가 어렵지도 않았다. 특히나, 지혜의 반에는 서진이 연우를 보러 몇 번 찾아오기도 했으니 다른 아이들보다는 조금 더 볼 기회가 있기도 했고.

그렇게 그 친절함에 끌려 연예인 좋아하듯 좋아하게 된 친구들은 제게서 멀기만 한 서진을 보며 어차피 다른 사람도 안 되니까 괜찮다고 했다가, 나중에는 차라리 여자친구가 있어서 쉽게 포기하고 싶다는 심정으로 변하고는 했다.

“오빠, 뭐 찾는 거 있어요?”

지혜가 아르바이트하는 서점 입구에서 보이는 그 얼굴을 보자니 문득 처음 만났을 때가 생각나 생각이 이어지기는 했는데, 시간이 꽤나 빠르기는 했다. 서진이 고등학교 졸업반일 때 처음 만났는데, 이제는 대학교 졸업반이었다. 지혜도 대학생이었고.

“안녕.”

가벼운 인사와 함께 웃는 얼굴을 보자니 오늘 아르바이트 동료들에게 서진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겠구나 싶었다. 연우가 왔을 때도 온갖 질문을 받았고 지환이 왔을 때도 그랬는데, 확실히 주위에 잘생긴 남자가 많기는 했다. 그중 하나는 제 남자였고.

“형이 이거 전해 주라고 했는데, 내가 더 가까워서.”

전해 주는 걸 보자 저번 언젠가에 지환의 자취방에 놀러 갔다가 그대로 놓고 온 파우치였다.

“고마워요.”

아마 지혜가 고3때쯤이었던가, 지혜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지만, 언제부터인가 지환과 서진이 꽤나 친해졌다. 성향이 맞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거기다 서진과 지환이 친해지며 지혜에게 좋은 점이 꽤 있었다. 우선, 지환은 지혜가 몇 살인지도 모른다는 듯이 종종 애들이나 가지고 놀 머리 장식이나, 팔찌, 인형 같은 것들을 사 올 때가 있었는데 서진과 친해지고 나서는 부쩍 줄었다. 그런 걸 지혜에게 주겠다고 사면 서진이 미쳤냐고 당장 내려놓으라고 말린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정말 고마웠다.

“둘이 같이 있다가 왔어요?”

“아니. 아침에 받았어.”

그럼 어제도 같이 있었을까. 둘이 자주 만나는 것 같으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럼 서진의 집에서 놀았겠지. 지환은 취직을 하며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애인이 자주 온다는 이유로 지환의 집에 가려면 가족들도 미리 연락을 해야 했다. 그러니 아마 지환의 집은 아닐 테고.

“일은 괜찮아?”

“네.”

자연스러운 물음에 그만큼이나 대수롭지 않게 답한 지혜는 서진을 빤히 바라봤다.

“오빠.”

“응?”

왜 그렇게 보냐는 물음이 나올 만도 한데, 친절하기만 한 목소리에 지혜는 물었다.

“우리 오빠 애인 알아요?”

지혜가 지환의 애인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지혜보다 두 살이 많다는 것 정도였다. 아직 대학교에 다니고 있다는데, 아는 거라고는 그게 고작이었다. 서진은 지환과 친하니 지환의 애인도 알지 않을까.

사실, 지혜는 어쩌면 지환이 제 애인과 금방 헤어질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귄 초반이었던 것 같은데, 애인이 있을 때면 늘 애인과 생일을 보내는 지환이 생일임에도 불구하고 지혜를 찾아왔던 적이 있다.

모의고사 발표가 난 날이었는데, 그냥 불안해서 울면서 엄마 보고 싶고 아빠 보고 싶고 오빠 보고 싶다고 한 걸 눈치 없는 제 남자친구가 정말 가족에게 전화를 한 날이었다.

연우야 눈치가 없으니 그렇다 쳐도, 지혜가 진심으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뻔히 알았을 지환이 정말 찾아와서 뭐 하자는 건가 싶었다. 당시에는 아마 애인과 문제가 있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금껏 잘 사귀고 있었다.

“알기는 하는데, 어쩌다 보니 알게 된 거야.”

그럼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있을까? 지환은 제 애인과 나름대로 오래 사귀고 있었는데, 여태껏 한 번 본 적이 없어서 조금쯤 궁금하기도 했다. 지환이 이제 자취를 하고 있으니 우연히 지혜가 지환의 애인과 마주할 일이 없기는 했지만.

“왜?”

“맨날 애인 얘기 하는데 보여 주지는 않아서요. 사귀는 사람도 직장인이면 또 모르겠는데, 그 사람은 대학생이라고 하면서 절대 안 보여 주니까 궁금하잖아요.”

지혜는 다른 대학에 다니기는 하지만, 대학생들이 노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니 어쩌다 겹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싶기도 했다.

“내가 자기 애인 불편하게 할까 봐 그런가?”

그럴 생각은 전혀 없는데. 거기다 따지자면, 지환과 그 애인은 4살 차이고 지혜와는 2살 차이가 나니 얘기가 통한다면 지혜 쪽이 더 잘 통할 수도 있다. 설마하니 지혜가 지환의 애인을 부담스럽게 만들 리도 없고. 사실, 애인의 가족을 본다는 것 자체로 충분히 부담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건 아닐걸.”

대수롭지 않게 나온 말 뒤로 서진이 물었다.

“형이 애인 얘기를 자주 해?”

“오빠 앞에서는 안 해요? 저랑 엄마 앞에서는 엄청 해요. 아빠한테도 전화로 엄청 얘기하는 모양이던데.”

“무슨 얘기?”

“뭐, 그냥.”

지혜는 슬쩍 서진을 바라봤다. 어차피 지환과 친하니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이거 우리 오빠 애인한테 말할 거예요?”

“굳이 말할 필요가 있을까?”

“그건 그런데, 그분이 들으면 좀 부담스러울 수도 있잖아요. 가족한테 얘기하는 거니까.”

지혜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렇다고 뭐 나쁜 얘기를 했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인데, 뭐 사러 가기라도 하면 꼭 그거 자기 애인한테도 사다 줘야겠다고 그러고 외식이라도 가면 자기 애인이랑 와야겠다고 그러고. 뭐든지 다 그래요.”

그 말에 서진이 살짝 헛웃음을 짓는 듯했다가, 그 얼굴에 서서히 웃음기가 떠올랐다.

“별 얘기를 다 하네.”

“그러는 거 3개월 지나면 좀 괜찮아지겠지 싶었는데, 점점 더 심해지기만 해요.”

지혜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오빠는 그 애인분 안다고 했잖아요. 어때요?”

지혜의 물음에 서진은 난감하다는 듯이 웃었다. 그 모습을 보자면 말해 줄 생각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기 어렵지 않았다.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누가 봐도 눈이 높은 지환이 고른 사람이니 어련히 좋은 사람이기는 하겠지만, 유독 꽁꽁 숨겨 놓으니 궁금했다.

“이러다 진짜 상견례 때 볼 것 같아요.”

“그건 힘들지 않을까.”

발음이 좋은 그 목소리가 느긋하고 대수롭지 않게 들려오자 지혜는 물었다.

“왜요?”

“형이 그 사람이랑 결혼한대?”

그런 말을 한 적은 없다. 물어본 적도 없고. 지환은 아직 결혼하기에는 조금 이른 감이 있었으며, 애인이 4살 연하라면 그 사람은 더 일렀으니. 하지만, 그래도 대강 예상 가는 건 있기 마련이다.

“직접 물어본 적은 없는데, 우리 오빠 꿈이 결혼인 거 알아요?”

“응.”

서진도 알 정도면 지환이 정말 제 꿈에 진심이기는 한 모양이었다. 어째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 보면 우리 오빠 그 사람이랑 결혼할 수도 있을 것 같거든요.”

결과적으로는 그러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의도로만 따지자면 지환은 그럴 의지가 충분해 보였다. 취직하고 나서는 결혼 자금이 어쩌고 하면서 적금을 알아보던데.

“연우도 오빠 그러는 거 보면 저한테 오빠랑 그 사람 결혼할 거냐고 물어보는데.”

심지어 그 눈치 없는 연우도 지환이 그러는 꼴을 보면 너희 오빠 곧 결혼하냐고 했다. 그게 아니라 혼자 김칫국 먼저 마시고 있는 거였지만.

“그래?”

서진이 말하는 걸 보면 처음 들었다는 기색이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는 안 새는 건가. 그 성격에 분명 친구들한테도 자랑을 하고 다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기다 서진은 애인을 안다고 했고.

“그런데 오빠도 연우한테 사귀는 사람 안 알려 준다면서요.”

문득 나온 지혜의 말에 서진은 그저 웃었다. 사실 알게 된 경로가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지혜가 지환에게 연우의 이야기를 하다가 서진을 처음 봤을 때의 이야기를 했었는데, 서진도 인기가 많았다는 말을 했다. 그런데 사귀는 사람도 없어서 친구들이 마음 끊어내지도 못했다고.

그 말과 함께 서진은 이제 대학교에서 지독하게 앓는 사람을 많이 만들어 냈을 것 같다고 했는데, 막상 지환의 답은 뜻밖이었다.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걔 애인 있는데. 그렇게나 대수롭지 않게 말했었다.

연우도 모르고 있었다는데, 그 이후 서진의 부모님에게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서진이 연우에게만 대강의 이야기를 해 줬다고 했다. 자세히는 아니었고. 친구들의 옛 짝사랑 상대, 오빠의 친구, 남자친구의 형으로만 서진을 알던 지혜도 그렇게 놀랐는데 연우는 얼마나 놀랐을까.

“우리는 사귈 때 둘한테 거의 허락받는 것처럼 됐는데.”

생각해 보면 그렇기도 했다. 사귄 지 얼마 안 됐을 때 주고받던 연락을 지환에게 들켜 사자대면을 했었는데, 막상 거의 보호자처럼 굴던 서진과 지환은 제 동생들에게는 자신들의 연애 상대를 알려 주는 법이 없었다.

“억울할 건 아니지 않을까?”

그 차분하고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딱히 답할 말이 없기도 했다.

“상황이 조금 그렇기는 했는데.”

결국 반박할 건 없어 말한 지혜는, 그대로 서진을 바라봤다.

“어떤 사람이에요?”

실제로 궁금하기도 했다. 서진은 지금 사귀는 사람을 만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연애를 한 적이 없었다. 사람이 없던 것도 아닌데. 눈이 많이 높았나 싶기도 하고, 그럼 지금 사귀는 사람은 어떨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 사실, 처음부터 지혜가 궁금했던 건 아니고 연우가 하도 궁금해하기에 지혜도 조금 궁금해졌다. 들으면 연우에게 말해 줘야지.

“내가 사귀는 사람?”

“네.”

그 답에 서진은 곰곰이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내 답했다.

“좋은 사람이야.”

적당히 끊어내는 것처럼 깔끔하고 평탄한 답이기는 했지만, 지혜는 문득 생각했다.

“과분할 만큼 좋은 사람이라서.”

느끼고는 있었지만, 분위기가 꽤나 달라져 있었다.

“나도 더 나아지려고 노력하게 되거든.”

처음 만났을 때, 그리고 알고 지낸 지 꽤 됐을 때까지도, 서진의 분위기는 차분하고 깨끗하기만 했다. 교복이 그만큼이나 잘 어울리는 사람을 찾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단정하고 늘 시끄러운 학교에서도 그 곁은 어쩐지 소리가 잦아들며 조용해지는 것 같은 구석이 있었다.

지금의 서진 역시 그 분위기가 늘 그렇듯 깔끔하기는 했지만, 모두와 거리를 벌려 어디에도 섞이지 않을 것 같던 미묘한 이질감이 옅었다.

“그런 사람은 또 만날 수 없으니까.”

그 얼굴에 은은하게 담긴 웃음을 보자면,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는 소속감이 느껴졌다.

“있다고 해도, 그 사람이 아니면 만나고 싶지도 않고.”

서진을 꽤나 오래 좋아한 친구의 말을 빌려 보자면, 색 없이 물로만 덧그린 수채화 같은 사람이라고 했다. 뭔가를 그리는 것 같지만, 결국 자취를 남겨 명확히 보여 주는 건 없는, 그런 사람이라고.

서진은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지만, 얼마간 친한 사람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흔적을 남길 만큼 많은 걸 허락 해주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지혜가 느끼기에도 그랬다. 가깝다면 가장 가까울 연우마저도 그랬으니. 하지만 지금은, 지혜로서는 어떤 형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 분명한 색이 담겨 있지 않을까.

“얼마나 만났어요?”

“2년 조금 넘었어.”

꽤나 평온하게 나온 대수롭지 않은 어조였는데도, 어째 2년 사귄 사람이 말하는 투는 2개월 같았다. 애인에 대해 물을 때부터 계속 지워지지 않는 그 웃음 때문일지도 모르겠고.

“오빠.”

연애라는 건 사람을 꽤나 많이 바꾸는 게 아닐까. 우선, 지혜는 그랬다. 연우와 만나며 바뀐 게 꽤 많지 않나 싶다. 뭐든지 다 연우와 연관 짓는 버릇이 생겼다.

“그 얘기 연우한테 해줬어요?”

지금만 해도 그랬다. 서진이 얼마나 제 연인을 좋아하는지를 어렴풋이 느끼면서, 생각하는 거라고는 연우였다.

“2년 정도 만난 거야 알고 있겠지.”

“그거 말고, 오빠가 사귀는 사람 얼마나 좋아하는지.”

서진이 얼마나 연우를 잘 챙겨 줬는지, 거기다 지금도 꽤나 잘 챙겨 주고 있다는 거야 지혜도 잘 알았다. 그래서 서진을 좋아하는 것도 있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서진은 연우에게 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거기다 연우가 언젠가에는 혹시 서진이 연애를 하지 않는 이유가 자신을 챙겨 줘야 하기 때문이 아닌지 걱정하기도 했고.

“언제 한번 말해 줘요. 좋아할걸요.”

지금이야 연우도 서진의 연애를 알고 있으니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서진이 지금 얼마나 만족스러운 연애를 하는지를 알려 주면 연우가 안심하고 더 좋아할 게 뻔했다. 연우가 좋으면 당연히 지혜도 좋고.

“지환이 형을 많이 닮았네.”

문득 나온 그 말과 제게 건네진 웃음에, 지혜는 자연스레 따라 웃었다.

“그런 말 많이 들어요. 성별만 바꿔 놓으면 딱이라고.”

그러다 문득 시야에 두리번거리는 손님 하나가 걸렸다. 점원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가 볼게요.”

손님 쪽을 눈짓하며 말하자 서진이 답했다.

“그래. 나중에 보자.”

그 선선한 답에 지혜는 걸음을 옮기며 물었다.

“오빠는 이제 애인분 만나러 가요?”

“아니.”

확실히 처음 만났을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져 있었다. 역시나 친구의 말을 떠올려 보자면, 서진에게는 다가가고 싶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다고 했다. 은근히 선을 그어 놓은 걸 알고 있으니, 자신만은 그 안으로 들어가 보고 싶게 만든다고. 그리고 다른 사람은 여전히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할 테니 더 좋지 않겠냐고 하던데. 확실히 그때의 서진은 그런 사람의 심리를 자극하는 구석이 있었다.

지혜의 주변에도 처음에는 가볍게 연예인 좋아하는 것처럼 좋아하다가 결국 지독하게 앓던 사람이 몇 있는데, 대부분은 서진이 졸업하며 천천히 그만뒀다. 그래도 계속 앓는 사람은 있기 마련인데, 지혜의 친구 중 하나가 그랬다.

서진과 같은 대학에 가겠다며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결국 실패하고 재수를 했다가, 또 실패하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학점 교류를 가 볼 거라고 했다. 애인이 있다는 소리를 이미 해 주기는 해 줬는데도, 그냥 멀리서 보는 것도 좋다고. 기다리면 언젠가는 기회가 오지 않겠냐고 하던데.

“기다리러 갈 거야.”

늘 상냥하고 부드러운 태도였지만, 어쩐지 목소리에 가득한 온기가 담겨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보자니, 아무래도 오랜만에 친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기회가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잘 달래 준 후 술이나 같이 마셔 줘야겠지.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러니까, 그 시절 모두가 사랑했던 그 선배는, 이제 그 시절을 벗어나 순조로이 저 자신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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