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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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환을 처음 본 순간을 기억한다. 재수를 한 데다가 새터니 뭐니 하는 걸 모두 건너뛴 혜린은 이미 아는 사이인지 종알거리는 동기들 사이에서 가연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렸다. 도착했다면서 왜 안 오는 건지 강의실 문만 바라보고 있자, 문득 그 문 안으로 훤칠한 남자 하나가 들어왔다. 그게 혜린이 지환을 본 첫 순간이다.
2초쯤 조용해졌다가, 빠르게 대수롭지 않은 척 다시 이야기를 이어 나가는 주변과 그럼에도 아닌 척 흘깃거리는, 흘깃거리지 않더라도 온갖 신경은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게 공기로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막상 당사자는 혜린과 마찬가지로 원래 알던 친구는 없었는지 주위를 둘러보지도 않은 채 적당히 뒷줄 빈자리에 가서 앉았다. 인기가 많겠구나 싶었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 짧은 순간 느껴진 분위기도 태연하기만 했다.
사실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혜린은 자신과 지환이 데면데면한 채로 졸업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환은 분명 주위에 사람이 많을 테고, 혜린은 그걸 다 헤치면서까지 다가가고 싶지 않았으니. 하지만 혜린의 유일한 과 친구였던 가연이 지환과 게임을 하다가 만났다며 빠르게 친해졌고 그렇게 혜린도 지환을 알게 됐다.
그렇게 유독 잘생긴 과 동기가 아니라 친구로 알게 된 지환에 대한 감상은, 진실 게임의 주인공. 그런 느낌이었다. 왜, 어릴 때 수학여행 같은 거라도 가면 같은 방을 쓰는 친구들끼리 종종 진실 게임을 하지 않던가.
평소에는 누가 최지환 괜찮지 않냐고 묻는다면 잘생겼기는 해도 그래 봤자 친구라고 웃어넘기겠지만, 뒤에서는 다들 좋아하고 있을 게 뻔했다. 진실 게임이라도 하면 사실 그 방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이 몰래 좋아하고 있겠고.
물론 얼굴이 문제였겠지만,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지환은 아닌 척 꽤나 튀는 구석이 있었다. 다른 남자들이 여자애들한테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잘 보이려고 하면서도 잘 보일 노력은 하기 싫고 그냥 자기를 좋아해 주기를 바라면서도 안 좋아하는 것 같으니 괜히 자기도 관심 없는 척하면서도 사실은 엄청난 관심이 있다는 걸 숨기지도 못할 때, 지환은 정말 자연스럽게만 굴었다. 동기로서 나름의 관심은 있지만, 그 이외는 생각하지 않는다는 듯이.
그러니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다가, 종종 설레고, 앞에서는 아닌 척하지만 뒤에서는 좋아하고 있을 사람이 많겠지. 추측으로 끝난 게 아니라, 실제로도 그랬다.
혜린이야 가연을 통해 지환과 빠르게 친해졌고 정말 친구로만 지냈으니 그런 적이 없지만, 혜린과 가연을 제외한 다른 여자 동기들은 모두 한 번씩은 지환에게 끌렸음을 안다. 아닌 척하면서도.
“애인?”
시간이 꽤나 빠르기는 했다. 그렇게 처음 대학에 입학해서 첫 수업을 같이 듣던 지환이 이제는 직장 동료라니. 부서는 다르지만, 그래도 직장이 같다 보니 종종 직원식당에서 볼 때가 있었다.
“어.”
서로 피곤함을 감추지 못한 채 기계적으로 밥만 퍼먹는 도중에도 핸드폰을 보기에 물어보자 지환이 액정을 몇 번 문지르며 답했다.
“너 몇 년 사귄 거지?”
지환은 대학 졸업 학년 때부터 지금의 애인을 만나기 시작했는데, 이제 곧 지환보다 4살이 어리다는 그 친구도 졸업을 한다고 했다.
“2년 조금 더 넘었어. 얼마 전이 2주년.”
“나는 지금 연애 안 한 지가 그쯤 됐는데.”
애인이 있기는 했는데, 점점 애인을 보느니 집 가서 편하게 맥주를 마시는 게 낫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커지다가 결국 헤어졌다. 혜린이 그렇게 찌들어갈 때쯤에 지환은 활력 넘치는 연애를 시작했고.
“좋아?”
“좋아 죽지.”
거의 다 죽어갈 때는 언제고 애인 얘기가 나오니 지환의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엄청 귀여워.”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는 애인이 섬세한 성격이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소리를 종종 했는데, 언제부터인가는 그저 애인의 칭찬이 늘었다. 아마 다 잘 해결된 모양이라는 건 애인을 말하기만 하면 밝아지는 그 표정을 보면 모를 수가 없다.
“걔는 심지어 생일까지 완벽해.”
“왜? 크리스마스?”
생일에 의미를 두자면 크리스마스나 신년쯤인가 싶었는데, 막상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것보다 조금 더 확률적인 측면에서.”
“3월 14일?”
“야, 너는 진짜 글렀다.”
지환의 목소리에는 정말 구제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해 억울해졌다. 원주율이 뭐 어쨌다고. 자기가 확률이라고 했으면서.
“1001이야. 내 애인 생일.”
“대칭이네.”
“어. 귀엽지. 일 년에 딱 6번인데.”
굳이 또 귀여울 건 뭔가 싶었는데, 막상 지환은 정말로 그 숫자가 귀엽다는 기색이었다.
“1111 아닌 게 조금 아쉽다. 같은 숫자 4번 연속은 일 년에 딱 하루뿐인데.”
대칭이라기에 생각나서 말하자, 지환은 심드렁히 답했다.
“알 게 뭐야. 그래서 그게 뭐 어쨌다고.”
제 애인과 관련된 게 아니라면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또 뭔가를 말하려는 기색이었다. 가만히 놔두면 끝없이 자랑을 할 게 뻔했다. 실제로 지환은 친구들만 있는 자리에서 풀어진 채로 술을 마시면 제 애인의 자랑을 끝없이 늘어놨다. 사실 술 안 마셔도 마찬가지지만.
“결혼?”
지환이 지금 스물일곱이니 아직 결혼하기는 조금쯤 이른 감이 있지만, 일 년만 더 지나면 그때부터는 슬슬 결혼을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거기다 지환은 특히나 인생 최종 목표가 결혼이라는 소리를 처음 만났을 때부터 했다. 여건만 되면 빨리하고 싶다고도 했고.
그렇게 좋아하는 애인이니 어떤 강아지를 키우고 싶고, 집은 어떻게 할 거고, 그런 이야기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지환은 고개를 저었다.
“얘 이제야 스물넷인데.”
생각해 보면 그것도 그렇기는 했다. 혜린은 지환과 친구라 지환의 경우만 생각했는데, 상대는 이제야 스물넷이면 너무 일렀다.
“하고는 싶어?”
“어. 완전. 그런데 그런 얘기 하면 부담스러울 테니까 참는 중이지. 얘 스물여덟쯤 되면 말해 보려고. 원래 서른까지 기다려 주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기다릴 수 있을까 싶기도 하고.”
상대가 스물여덟이면 지환은 서른둘이었다. 보통 그쯤에 결혼하니 시기적으로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래도 결혼하면 그때는 그분 얼굴 볼 수 있겠다.”
사실 지환이 이런 말을 해 봤자 혜린이 크게 해 줄 말이 없는 이유는, 아직 지환의 애인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래도 지환은 제 애인을 잘 보여 주는 편이 아니기는 했다. 애인 사진을 프로필 사진으로 해 놓기 마련인 대학 때도 지환은 한 번 그래 본 적이 없었다.
프로필로 해 놓으면 남중, 남고, 공대인 제 지인들이 그걸 보고 뭐라도 얘기하는 게 끔찍하다는 아주 타당한 이유였는데, 그 대신 친한 친구들에게는 직접 자리를 마련해 종종 보여 줬다. 혜린도 지환의 전 여자친구와는 그런 식으로 몇 번 얼굴을 봤고.
하지만 지환의 현재 애인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 생각해 보면, 지환이 전 여자친구를 만날 때는 다들 같은 대학생이었으니 굳이 어렵게 자리를 마련하지 않아도 만나기가 쉽기는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애인이 대학생이고 지환과 그 주변 사람들은 직장인이니 애인이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고.
“아까워서 안 돼. 닳아.”
그 목소리와 표정에 진심이 가득해 혜린은 헛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모양이었다. 2년이면 슬슬 익숙해지는 시기가 아닌가 싶었는데, 막상 지환은 이제야 연애한 지 2개월이 지난 것처럼 굴었다.
“진짜 할 수만 있으면 잘 접어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다니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정도야?”
어이가 없어 묻자 지환의 표정이 서서히 심각해졌다.
“눈에 넣으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는데도 고민하는 모양이었다.
“그건 아프겠지.”
정말 당연한 소리를 했다. 눈에 넣으면 아프지만 주머니에 넣는 건 괜찮나. 뜬금없이 잠시나마 옛 생각을 해서 그런지, 문득 그때의 지환과 지금의 지환이 꽤나 달라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 평상복도 애인이 골라 줘?”
그러고 보면 입는 옷부터도 그랬다. 회사에 있을 때야 형식을 어느 정도 갖추는 게 당연했는데, 언제부터인가 지환은 친구들끼리 편하게 만날 때도 꽤나 깔끔하게 입고 왔다. 지환은 원래 애인이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옷차림이 다르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 캐주얼한 차림이었는데.
“골라 주는 건 아니고 그냥 걔가 선물이라면서 사 와.”
그 애인이 지환을 제 취향으로 가꾸는 모양이었다. 아마 지환도 알고 있을 테고. 지환은 관리당하는 게 어울리는 유형이기는 했다. 그러면서도 챙겨 줄 게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는 게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이번 애인은 그 둘을 모두 만족하는 모양이니 지환으로서는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했다.
“오늘은 퇴근 제시간에 하고 싶다, 진짜.”
맥락 없이 문득 탄식처럼 나온 혜린의 말에 지환이 바로 답했다.
“나도.”
더없는 진심이었다.
“애인 보러 가게?”
“당연하지.”
애인 생각을 하면 저절로 웃음이 나는지 지환은 옅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맛있는 거 만들 거라고 그러던데.”
그러고 보면 저번에도 이런 말을 듣기는 했다. 애인이 요리를 잘한다고 했던가.
“야, 돈 벌면 뭐하냐. 사 먹이라니까? 어린애한테 무슨 요리를 시켜.”
“그러니까, 나도 걔 힘든 거 싫은데 그래도 자기가 좋다잖아. 밖에서 먹으면 자기 음식 맛없는 줄 알아.”
걱정스럽고 미안하다는 기색이면서도, 은근히 제 애인이 그렇게 귀여우니 빨리 공감하라는 의도가 비쳤다.
“귀여워.”
애초에 공감해 줄 생각도 없었지만, 혜린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앓듯이 나온 그 목소리에 혜린은 지환을 빤히 바라보다가, 문득 손가락을 들어 지환을 가리켰다.
“너 그만한 애 못 만난다. 어떻게든 잘 잡고 있어.”
지환이 스스로 한 말처럼, 좋아 죽는 게 혜린의 눈으로도 정말 잘 보였다. 거기다 본인은 인정하지 않지만, 지환의 취향은 은근히 까다로웠다.
챙겨 줄 게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데, 지환은 연애에서 무조건 상대방의 말에 따르는지라 지환을 관리할 줄도 알아야 했다. 거기다 무엇보다, 본인이 연인 관계에 헌신하는 만큼, 상대도 그러기를 원했다.
꽤나 오래 사귀고 있는 현재의 애인은 그 모든 걸 만족하는 모양이니 혜린은 늘 지환에게 당부했다. 지환의 성격과 생활 반경상 그런 사람 또 만날 수 없으니 꼭 잘 잡아 놓으라고.
“나도 알아.”
그 얼굴에 늘 짓던 여상스러움이 아니라, 꽤나 무르고 다정한 웃음이 떠올랐다. 지환은 옷차림만 변한 게 아니다. 그 분위기 자체가 조금쯤 변하지 않았을까. 시간 탓만 할 수는 없겠고, 아마 곁에 있는 사람 덕이 아닌가 싶었다.
“오늘 케이크라도 사 가려고.”
원래도 지환이 애인을 꽤나 잘 신경 쓰기는 했지만, 지금처럼 별것 아닌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하며 제 애인에 관한 걸 이야기하지는 않았다.
행동이 조금 더 조심스러워졌고, 뭔가를 할 때의 기준은 모두 그걸 했을 때 제 애인이 어떻게 반응할지가 됐다. 잡혀 사는 것 같기도 하고 알아서 잡혀 주는 것 같기도 한데, 어느 쪽이든 본인은 굉장히 만족하고 있었다.
“촛불도 사고 분위기 좀 잡아 봐야지.”
“양초 말하는 거지? 예쁜 거.”
“어. 그런 거.”
지환은 대부분의 일에 자연스러운 사람이라,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있다. 아마 그런 분위기에 사람들이 더 끌렸지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의 지환은 자신이 모르는 것도 애인이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하나로 기꺼이 시도하며, 꽤나 서투른 기색을 보이는 걸 망설이지 않았다. 유부남 직장 동료들이 이야기하는 걸 듣다가, 그런 걸 하면 부인이 좋아하냐면서 주워들어 가기도 했고.
“나 얼마 전에 백화점에서 산 거 향 좋던데, 알려 줄까?”
“제품명 보내 줘.”
지환이 아는 낭만의 범위라고 한다면 촛불 켜 놓고 예쁜 케이크나 자르는 게 고작일 게 뻔했다.
“브랜드 알려 줄 테니까 거기서 추천받아. 나는 네 애인이 어떤 거 좋아하는지 모르잖아.”
대학 시절의 지환이라고 한다면, 왜인지 다듬어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분위기가 드문드문 드러났다. 남자친구가 있으면서도, 남자친구는 남자친구고 마음속에 최지환 하나 정도는 남겨 두는 거라던 동기의 말을 빌려 보자면, 그렇게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자신이 다듬어 보고 싶다고 하던데.
지금 보자면, 지금의 애인과 연애를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드문드문 거칠고 투박하던 그 분위기가 꽤나 부드럽게 다듬어져 있었다. 친구들끼리 있을 때면 종종 욕을 하기도 하고 거친 말투를 사용하기도 했는데, 지금의 지환은 평소에 그런 말투를 쓰다가 제 애인 앞에서도 튀어 나오면 큰일 난다며 누구와 있든 곱고 바른 언어생활을 유지했다. 그렇게 티가 나게, 혹은 티가 나지 않는 부분도, 누가 다듬었을지야 뻔했다.
“연애하면 뭐가 좋아?”
아직 보지도 못한 지환의 애인이 정말 대단하기는 했다. 지환은 사람 보는 눈이 꽤 좋은 편이고 맺고 끊는 것도 명확하니, 분명 좋은 사람이겠지.
“너는 뭐가 좋아서 했는데.”
오히려 되물어진 그 목소리에 혜린은 곰곰이 생각해 봤다. 적당히, 남들 하니까 했다. 관심 있어 보이면 몇 번 데이트를 하다가 고백을 받고 적당히 남들 하는 것처럼 사귀다가, 사실 할 때 돼서 한 게 크기는 했다.
“피곤해도 괜찮을 정도는 아니라 지금 안 하고 있는 거잖아.”
지환을 보자면 꽤나 신기하기도 했다. 혜린은 직장에 다니는 것만으로도 힘에 겨워 다른 건 전혀 할 생각이 들지 않는데, 지환은 연애도 꽤나 열정적으로 하고 있었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안 피곤해.”
애인을 떠올리고 있을 게 분명한 그 표정처럼, 목소리에도 서서히 웃음기가 섞였다.
“오히려 피곤했던 게 걔 만나면 다 사라지는데.”
정말 빠져도 단단히 빠졌구나 싶었다. 꼭 자기도 감당이 안 되는 것처럼.
“걔랑 있으면, 걔 말고 다른 생각이 안 나더라.”
문득, 얼마 전 연락했던 동기 하나가 생각났다. 혜린이 지환과 같은 회사라는 걸 알고는, 걔는 여전히 설레게 구냐고 그러던데. 혜린이야 지환에게 설레 본 적이 없으니 뭘 말하는지도 제대로 알 수 없었지만, 동기는 이어 몇몇만 모여서 동창회 하면 안 되냐고 묻기까지 했다. 누구를 보려는 건지는 뻔했다.
“걔처럼 나를 끝까지 몰고 갈 수 있는 애를 또 만날 수 있을 리도 없고.”
그래서 혜린은 그 동기에게, 지환이 요즘에는 아주 몸을 사리고 다닌다고 전해 줬다. 원래도 꽤나 처신을 잘하는 편이었는데, 이제는 정말 조신하다고. 어린 애인이 걱정을 많이 하는 모양이었다.
지환은 보이지도 않는데 제 애인이 불안해하는 건 싫다며 알아서 조심했다. 그걸 번거롭게 여기기보다는, 꽤나 기껍게 여길 정도였고. 그러니 동기에게는 아마 지환을 보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해 줬다. 저렇게 열심히 한 곳만을 바라보는데.
“안 차이려면 오늘은 제때 가야겠네.”
“진짜 제발 그래야지.”
그 간절한 말과 함께 문득 지환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아마도 기다리고 있던 애인의 연락인 듯, 그 표정이 단번에 풀리며 따뜻한 온기를 품었다.
“오늘은 제발 둘 다 집에 일찍 가자.”
그러니까, 그 시절 모두가 사랑했던 그 동기는, 이제 그 시절을 벗어나 순조로이 저 자신의 사랑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