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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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한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정신없이 갈려 나가다 보니 벌써 졸업 학년이었다. 그래도 꼬박꼬박 계절 학기를 들은 덕에 제때 졸업을 할 수는 있는 게 위안이면 위안이었고 그 와중에 얼마 전 여자친구와 헤어진 건 재앙이었다.
[형! 형이 준 목돌이 욕이나게 쓰고 있어요ㅋㅋ]
[마침 곱셈추위라]
그리고 연우와 지혜가 고3이 됐음에도 헤어지지 않았다는 건, 따지자면 위험요소 정도일까.
[꽃샘추위라기에는 아직 겨울이잖아]
[그래도 요긴하게 쓰고 있다니 다행이네]
2월의 끝물이라 이제 곧 개강할 텐데, 얘들은 도대체 어떻게 되려나. 생각하면 나오는 건 한숨뿐이었다.
[왜승모도 예쁘다고 했어요 나중에 서진이 형한테도 사줘야겠다면서ㅋㅋㅋ]
지환은 여전히 서진과도 주 2회는 보고 있었다. 사회봉사는 한 학기만 하고 끝나기는 했지만, 과외는 계속했으니.
[근데 서진이형이랑 열락이 안된다고 그랬어요]
[2틀전에 전화했다는데 아직도 답이 없데요]
[저랑도 열락 안되는데 집주소도 기역안나고ㅠ]
지환은 인상을 찌푸리고 그 글자의 나열을 찬찬히 훑었다. 되, 돼를 맞췄네. 당연히 우연이겠지만, 놀라웠다. 물론, 다른 건 다 엉망이었다.
[이틀이면 좀 기다려 걔 대학생인데 뭘 걱정해]
그만큼 큰 남자 대학생이 며칠 연락 좀 안 되는 게 뭐 큰 문제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그게 서진이라고 생각하니 조금 미묘하기는 했다. 지환의 친구들이야 과제 끝나고 48시간쯤은 거의 기절하듯 보내는 생활을 했으니 이틀쯤 연락 없는 게 큰일은 아니었는데, 아무래도 서진은 조금 다르지 않나 싶기도 했다.
[뺑손이 같은거라도 당한거 아닌가 걱정돼요ㅠㅠㅠ]
사촌 형을 생각하는 마음이 참 살뜰하기는 했는데, 지환은 가만히 액정을 바라보다가, 이내 손가락을 움직였다.
[너 나한테 걔 보러 가달라고 연락했지]
[넹ㅠㅠ]
그리고 이어진 토끼 이모티콘에 지환은 인상을 구겼다. 이모티콘 자체는 귀여웠는데, 그걸 보낸 게 이제 지환과 키가 똑같아진 연우였다.
[존나 안 귀엽다]
똑같은 이모티콘을 지혜가 보낼 때는 정말 귀엽던데, 지금은 귀엽기는커녕 떨떠름하기만 했다.
[어차피 과외 같이하니까 만나면 대충 확인할게]
[언제 만나요?]
그 물음에 지환은 그제야 자신이 현재 민승의 과외를 잠시 쉬고 있다는 걸 기억해 냈다. 민승과 민혁은 부모님과 함께 개학 전까지 해외여행을 가 있었다.
[3월 개학하면]
[형 신뢰지만 그거는 너무 늦지 안나요?]
지환은 연우의 물음을 들여다봤다. 지환을 신뢰하기는 하지만 그건 너무 늦다는 건가. 신뢰하지만을 잘못 쓴 건가? 아니면 실례지만을 잘못 쓴 건가?
[소 읽고 뇌 약간 고친다고]
[서진이형 무슨 일 있으면어케여ㅠ]
소를 읽기는 어떻게 읽을까. 소를 읽는다고 할 정도면 뇌를 좀 고쳐야 할 필요성은 있을 텐데. 믿기지 않게도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거겠지. 이제 지환이 연우를 본 지도 2년이었다. 뭘 고쳐 주려는 의욕은 사라진 지가 오래였다.
[아니면 그냥 저한테 서진이형 주소 알려주면 제가 갈게요]
[나도 걔 주소는 모르는데 그냥 어느 골목에서 들어가는지만 알고]
자주 데려다주기는 했지만, 집 주소까지 아는 건 아니었다.
[한서진 부모님은 주소 아는 거 아니야?]
[형이 알아서 집구하고 다 아라서해서 모른대요ㅠㅠㅠ]
아무리 그래도 아들 사는 집에 한 번도 안 갈 수가 있나? 지환만 해도 우선 집을 알아보러 갈 때는 부모님과 함께했고 살림살이를 사는 것도 그랬다. 그러고도 모자라 한 달에 한 번씩은 지환이 멀쩡하게 사나 확인하러 부모님이 방문하셨고. 사실 자취를 할 만큼 학교와 먼 거리도 아니라 부모님이 집에 방문하는 게 더 쉽기는 했겠지만, 그건 서진의 집도 마찬가지다.
[알았어 내가 한번 찾아볼게]
[형 진짜 고마워요ㅠㅠㅠㅠ]
그리고 온갖 이모티콘이 날아들자 지환은 떨떠름하게 채팅창을 벗어났다.
* * *
서진은 지환의 연락도 받지 않았다. 그래 봤자 같은 집에서 과외를 하고 학교도 같은지라 알아낼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는데, 그 증거로 지환은 얼마간 떨어진 곳에서 서진을 발견하고는 성큼성큼 다가가 그 어깨를 붙들었다.
“멀쩡하네.”
지환은 그대로 서진을 쭉 훑었다. 팔도 멀쩡하고 다리도 멀쩡하고 얼굴도 멀쩡하고 다 멀쩡했다.
“형?”
얼떨떨하게 지환을 바라보는 서진의 모습에 지환은 물었다.
“너 집 어디야?”
“네? 형이 그걸 왜.”
얼핏 당황스러움이 담긴 목소리에 지환은 우선 서진을 끌고 공원 밖으로 나가며 답했다.
“너 너희 부모님한테도 주소 안 알려 줬다며? 그래 놓고 나흘을 연락 두절이고.”
지환의 말에 서진이 순순히 끌려오면서 말했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요?”
선선히 걷던 서진이 문득 걸음을 멈추자 지환은 서진을 돌아봤다.
“당연히 정연우가 알려 줬겠죠.”
미묘하게 굳어진 표정과 얼마간의 짜증이 담긴 목소리에 지환이 서진을 바라보자 서진은 그대로 물었다.
“저는 어떻게 찾았어요?”
지환의 친구 중에 자취하는 사람이 몇인데. 거기다 어차피 자취하는 곳도 다 거기서 거기였다. 오가며 얼마든지 생사 정도는 확인 가능했다. 거기다 서진은 겉모습 자체가 꽤나 특징적이라서, 서진을 모르더라도 물어보면 다들 ‘아, 혹시 걔인가?’ 하며 유추할 만했다.
실제로도 서진을 직접 알지는 못하는 친구들에게도 혹시 지나가면서 주위에 잘생긴 애 돌아다니는 거 못 봤냐고 하면 잘생긴 애가 한둘이냐고 하다가도, 그냥 잘생긴 애 말고 엄청나게 잘생긴 애라고 하면 혹시 걔냐며 서서히 특징을 짓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지환보다도 키가 크다고 하면 몇몇은 대강 그게 서진인 것 같다고 말해 줬고.
“너 봤다는 사람 두어 명 있던데. 너 맨날 이 공원에서 산책한다고.”
“누가요?”
“너는 모를걸.”
대수롭지 않은 지환의 목소리에 서진이 지환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멀쩡한 거 알았으면 가세요.”
그러면서 지환의 반대쪽으로 등을 돌려 걷는 모습에 지환은 어이가 없어 짧은 헛웃음을 지으며 서진을 따라갔다.
“거기 너희 집 쪽 아닐 텐데.”
“저희 집 알지도 못하잖아요.”
“골목 초입은 알지. 네가 가는 게 그쪽은 아니고. 지름길도 아니고.”
지환이 서진의 패딩 멱살을 잡아끌자 서진이 당황스러운 모양인지 몸을 살짝 굽히며 지환을 바라봤다.
“집 좀 가자. 너 이렇게 입은 거 보면 추위도 많이 타는 모양인데 잘도 매일 산책 나왔네.”
이제 곧 3월이라고는 해도 아직 춥기는 했다. 그렇기는 한데, 추위를 거의 타지 않는 지환이 얇은 옷 위에 패딩 하나만 걸친 것에 비해 서진은 패딩 안에 집업을 또 입고 목도리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이렇게 편하게 입은 서진을 보는 것도 처음이기는 했다.
“형이 무슨 상관이에요.”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여 지환에게 이끌려 걷는 채로도 서진이 말을 이었다.
“정연우한테는 제가 연락할 테니까 형은 이제 가요.”
“너는 상도덕이라는 게 없냐? 내가 너 찾으러 여기까지 왔으면 걱정시켜서 미안하다고 차라도 한잔하고 가라고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 말에 서진이 다시 걸음을 멈췄다. 지환은 지금껏 저보다 키가 큰 사람을 몇 만나 본 적이 없는데, 지환 정도 되는 사람이 끌어도 끌려오지 않는 몸뚱이는 정말이지 낯설었다.
“걱정 안 했잖아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처음에는 군대 앞두고 싱숭생숭한가 싶었는데, 서진이 휴학한다는 소리를 들은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연우도 서진이 군대 간다는 말은 하지 않았고. 애초에 그랬으면 지환에게 연락하지도 않았겠지만.
그 생각을 하고 나니 지환도 나름대로 걱정이 됐다. 지환이 연우를 알게 된 지 2년이 지난 만큼, 서진을 알게 된 지도 그만한 시간이 지났다. 물론, 제대로 알고 지낸 기간이라고 한다면 1년쯤이겠고 그게 제대로 알고 지낸 건 맞냐고 묻는다면 자신 있게 답하지는 못하겠지만.
“연우 때문에 온 거잖아요.”
“너 정연우랑 싸웠냐?”
문득 나간 지환의 물음에 서진은 입을 다물고 그저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방향이라 지환은 서진을 따라가며 말했다.
“화해하기 싫으면 하지 마.”
사실 싸운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으면 연우에게서 어련히 다 티가 났겠는데, 연우는 그런 기색이 없었다. 그냥 서진이 일방적으로 연우를 싫어하는 거겠지. 그 이전부터 그런 티는 어렴풋이 드러났다.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드러내나 싶기는 했지만, 어쨌든 아예 모르던 건 아니었다.
“우리 아빠도 3년 전인가, 하여간에 몇 년 전에 막내 삼촌이랑 의절했어. 삼촌 이제 제사에도 안 오고 명절에도 안 봐.”
정확히 몇 년 전인지까지 기억하는 건 아니었는데, 어쨌든 그때는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즐거운 명절날 고성이 오가고 너 그럴 거면 호적 파라는 말까지 나왔다.
“형제끼리도 그러고 사는데 사촌끼리라고 못 할 거 있냐.”
그 말에도 서진은 아무런 답이 없었다.
“형은 연우 좋아하잖아요.”
말없이 걷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떨어진 서진의 목소리에 지환은 서진을 바라봤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나는 지금 너랑 얘기하는 건데.”
“연우 때문에 저 찾아온 거잖아요.”
“그럼 걔가 나한테 지 부모님 찾아 달라고 하면 내가 찾아 줬을 것 같냐?”
지환은 결국 인상을 찌푸렸다. 왜 계속 연우 얘기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너니까 찾은 거 아니야.”
도대체 왜 이런 말까지 직접 해야 하는지 이유도 알 수가 없었지만, 지환은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래도 지금껏 본 정이 있는데.”
한 학기는 꼬박 주 2회를 봤으며 그중 주 1회는 봉사도 같이했다. 그 와중에 같이 차 타고 간 적이 셀 수도 없고 그러면서 나눈 대화도 수도 없다. 봉사가 끝나고서도 과외 덕에 주 2회는 계속 봤고. 지환은 그간 웬만한 제 과 후배만큼이나 서진을 자주 봤다.
“연우가 말 안 했으면 안 찾았을 거잖아요.”
도대체 지환의 말을 들은 건지도 알 수 없는 그 목소리에 지환이 답했다.
“그랬겠냐? 민혁이 과외 선생 없다고 그러면 너 소개한 게 난데 물 먹일 거냐고 물어보려고라도 찾았겠지.”
“과외는 먼저 그만두겠다고 말했으면요?”
서진은 어째 연우와 다른 의미로 답답했다.
“너 왜 이렇게 답답하냐?”
결국 지환이 묻자 서진이 그대로 답했다.
“저는 연우처럼 아무 생각도 없이 사는 게 아니니까요.”
“아니, 그러니까 왜 계속 정연우 얘기가 나오는데?”
말을 하면 계속 연우 얘기만 하더니, 이제는 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너랑 얘기하는 거야. 걔는 내 동생 남친이고 너는 내 후배잖아.”
거기다 작년에는 지환이 하도 갈려 나가느라 연우를 제대로 보지도 못했다. 감시하려고 통학을 택한 건데, 그 본분은 전혀 지키지도 못했고. 그 와중에도 학점을 날릴 수는 없으니 사회봉사는 했고 돈은 벌어야 했으니 과외를 하면서 서진은 꼬박꼬박 만났다.
“저보고 동생 남친 사촌 형이라고 했잖아요.”
그 목소리에 지환은 다소 어이가 없어졌다. 지환이 서진을 그렇게 소개한 적이 분명 있기는 했을 텐데, 그래 봤자 벌써 일 년이 지났다.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나. 그리고 그것도 사실이기는 한데 그게 뭐 어쨌다고.
“그때는 우리 안 친했잖아.”
그럼에도 왜인지 달래듯 말하자 서진이 물었다.
“지금은 친해요?”
얼핏 비꼬는 것 같은 목소리에 지환은 바로 답했다.
“그건 네가 알지 않겠냐?”
지환은 그대로 서진의 손을 눈짓했다. 패딩 안에 또 집업을 입고 목도리까지 한 것에 비해 손은 그저 맨손이었는데, 몸이 원래 차가운지 창백한 그 손에서 손가락 끝이 유독 붉었다.
“손은 주머니에 넣든가 해. 보는 내가 다 아프네.”
지환의 말에 서진이 그제야 제 손을 바라보더니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런데 넌 군대 안 가?”
그냥 연우가 말하지 않았든가, 몰랐을 뿐이지 사실 군대 가기 전에 마음이 싱숭생숭한 게 맞았던 건가 의심이 돼 묻자 서진이 걸음을 옮기며 답했다.
“안 가요.”
“왜? 다들 1학년 마치고 갈 텐데. 좀 미루려고?”
지환만 해도 1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고 아예 대학원 갈 생각으로 미루는 경우가 아니라면 제 동기들도 대부분이 그랬다. 동기들과 복학 시기가 맞지 않으면 그 나름대로 불편하기도 했고.
“저 외국인이라 군대 안 가요.”
“와.”
생각지도 못한 말에 지환이 짧게 감탄하자 서진이 흘깃 지환을 바라봤다.
“좋겠네.”
그대로의 진심에 서진이 조금쯤 인상을 찌푸렸다.
“뭐라고 안 하네요.”
꼭 지환이 뭐라도 말할 걸 예상했다는 어투였다.
“그럼 뭐라고 해? 군대는 안 갈 수 있으면 안 가면 좋지.”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으면 편한 게 좋았다. 지환이야 그냥 곧이곧대로 다녀왔고 다른 방법이 있었더라도 그냥 갔을 것 같기는 했지만.
“어느 나라 사람인데?”
“미국이요. 태어나기는 하와이에서 태어났죠. 그때가 부모님 안식년이라.”
그 말에 지환은 서진을 바라봤다.
“너 그런데 이런 거 나한테 말해도 돼?”
지환은 서진의 부모님을 처음 봤을 때부터 묘하게 익숙하다고 느꼈었는데, 티비에서 몇 번 봤기 때문이라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었다. 서진의 부모님은 둘 다 교수인데, 방송에도 꽤 출연하셨다. 그런 부부의 아들이 외국인이라 군대도 안 간다고 하면 분명 우선 욕하고 보는 사람들이 있을 텐데.
“없는 말 한 것도 아니잖아요.”
“그렇기는 한데, 내가 다른 데 말하면 어쩌려고?”
“상관없으니까 말한 거예요.”
둘 다 보폭이 큰 탓에 이제 그간 지환이 서진을 내려 주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본인들이 저지른 일인데 무슨 결과가 오든 본인들이 감당하셔야지.”
묘하게 의욕 없는 목소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성인이 되면 자기 행동과 말에 책임을 지는 거잖아요.”
자취방이 대로변과 그리 떨어져 있지는 않았던 모양인지 서진이 건물 앞에 멈춰 서 공동현관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런 게 책임감이라는 거 아닌가?”
길게 뻗은 손가락이 터치패드를 누르는 그 여상스러운 태도와 마찬가지로 대수롭지 않은 말투에 지환은 왜인지 조금 불안해졌다. 얘 조금 위험한 거 아닌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 * *
지환은 서진의 집을 쭉 훑어봤다. 다른 자취생들이 대부분 그렇듯 그냥 원룸일 줄 알았는데, 투룸인 데다가 꽤 컸다. 부모님부터가 방송에 나올 정도로 저명한 데다 서진과 연우가 하고 다니는 걸 보면서도 꽤 풍족한 편이라는 거야 진작 알았지만.
“그래서 무슨 일인데?”
거실에 들어가 앉으며 묻자 서진이 외투를 벗고는 바로 욕실에 들어가 손을 씻고 나왔다. 그 청결한 모습에 지환도 괜한 경각심에 손을 씻고 나오자 서진이 어느새 실내복으로 갈아입고 가벼운 차림으로 지환을 바라봤다.
“너 되게 깔끔하게 산다.”
지환도 꽤나 깔끔한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혼자 살 때는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산다고 해도 조금은 흐트러져 있었는데, 서진의 집은 단정하기만 했다. 어정쩡하게 소파에 앉았는데, 서진은 그저 지환을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런 말도 없었다.
그 무표정한 얼굴에 지환은 가만히 서진을 바라봤다. 들여보내 줬으면 이제 꺼지라는 무언의 압박인가. 멀쩡한 소파 놔두고 굳이 부엌 의자에 앉은 꼴이 지환과 떨어져 있고 싶다는 의지를 너무도 잘 표명해 다소 재수 없었다.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하기 힘들면 학교 상담 센터 있거든. 거기도 괜찮다더라. 혹시라도 학교에 알려질 거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고.”
꽤나 진지하게 나온 지환의 말에 서진이 평온하게 물었다.
“제가 자살이라도 할 것 같아요?”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는데, 그래도 생각해 보면 원래 저렇게 앞에서는 얌전하게 다니면서 완벽한 척하는 애들이 어느 날 칼 들고 설치는 법이기는 했다. 그 칼이 남한테 향할지 자기한테 향할지는 또 모르는 일이기는 했지만.
“갑자기 연락 두절되고 그러니까 그러지. 경대 애들도 너랑 연락 안 된다고 하고.”
지환이 아는 사람 중 신입생 때 야심차게 공대 복수전공을 해 보겠다고 도전했다가 나가떨어진 경영대 애가 있지 않았나 싶어 기억을 거슬러 연락처를 찾아 한 번 물어봤는데, 그 사람 많은 경영대에서 학번도, 학년도 다른데 서진을 알고 있다고 했다. 연락은 자기들도 안 된다고 했고.
“제가 이러다 죽으면 꿈자리라도 뒤숭숭할 것 같아서 그래요?”
“말 그렇게 싸가지 없게 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거의 감탄스럽게 말하자 서진이 비스듬히 턱을 괴더니 천천히 말했다.
“형이 하나 있어요.”
갑작스럽게 무슨 말을 하는 건가 싶어 지환은 서진을 바라봤다.
“저랑은 열두 살 차이 나는데, 형이 스물다섯에 사시합격을 했어요.”
서진에게 형이 있다는 소리는 들은 적이 없다. 연우도 그런 말은 한 적이 없고 서진의 본가 거실에 있는 가족사진에서도 연우와 서진이 서진의 부모님과 같이 있을 뿐 다른 사람은 없었다. 거기다 서진의 집에는 곳곳에 가족끼리 찍은 사진이 꽤 있었는데, 그곳에서도 다른 사람은 본 적은 없다.
“부모님은 사람이 겸손해야 한다며 그걸 가지고 자랑을 하지는 않으셨어요. 어디서 현수막 하겠다고 해도 그거 뭐 큰일이라고 그러냐고 하셨고.”
평이한 어조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사실 겉으로만 그랬죠.”
서진은 이어 지환에게 물었다.
“우리 부모님이 책 쓴 거 아세요?”
“아니.”
“십 년도 더 전이니까 모를 만하기는 해요. 왜, 그때쯤에 한창 자기계발서 유행했잖아요. 자식 하버드 보내는 법, 그런 제목들 많이 나오고.”
지환은 참고 서적이나 교과서가 아니라면 인생에서 한 번도 책과 인연이 있던 적이 없기는 하지만, 그랬던 것 같기는 했다.
“딱 쓰기 좋았죠. 친가 외가 양쪽 다 사람들이 의사, 법조인, 교수거든요. 아니면 겸업하든가. 로펌에서 모셔 가고 방송 나오고. 거기서 벗어나는 사람이 없으니까 저 집안에는 뭐가 있나 보다 사람들이 그러는 거죠. 그거 가지고 집안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책 쓴 거예요. 공부하는 분위기 만드는 법, 그런 거.”
분명 지환이 서진에게 무슨 일이 있냐고 묻기는 했지만, 이렇게 집안 사정까지 듣는 건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자기 자식이 공부 못하면 큰일이잖아요. 책까지 썼는데. 나름대로 잘 팔렸다고는 했는데, 돈 벌려고 쓴 건 아니거든요. 그냥 명예랑 인정 때문이었지.”
언제 한 번 제대로 제 이야기를 하는 법이 없던 서진은 정작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서는 더없이 건조하기만 했다.
“그래도 형이 잘되기는 했어요. 수능도 만점이었나, 하나 틀렸었나. 아마 만점이었겠죠. 하나라도 틀렸으면 분명 저한테 네가 형보다 낫다고 했을 텐데 그런 소리는 없었으니까. 거기다 스물다섯에 사시 합격이면 최연소는 아니어도 빠른 건 분명하고. 대학 생활을 즐기다가 시험 봤다고 하면 딱 맞죠.”
서진이 그대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연수원을 안 갔어요.”
이제 사법시험도 폐지됐으며 무엇보다 지환은 이과라 문과가 어떤 방식으로 법조인이 되는지를 자세히 아는 편이 아니지만, 서진이 말하는 걸 보니 연수원이 중요한 모양이었다.
“난리가 났죠. 부모님 뜻 한 번 거슬러 본 적 없으니까 착하게 사시까지는 봤는데, 연수원 들어가서 직업까지 그렇게 갖는 건 도저히 못 하겠다는 거예요. 거기다 때마침 원어민 교수랑 눈이 맞았다더라고요.”
서진은 그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다.
“그 교수가 호주 사람이라던데, 결혼하겠다고 같이 따라갔어요. 그렇게 끝나서 지금 뭐 하고 사는지는 모르고.”
요즘 세상에 외국으로 간다고 연락이 끊길 일이 뭐 있나 싶으면서도, 의도적으로 연을 끊었다면 충분히 가능하기는 했다. 서진의 말을 들어보면 아마도 후자 쪽이겠고.
“그래도 형이 사시까지 합격은 했으니까 친척들한테는 애가 머리는 좋은데 가정에 충실해지고 싶어서 부인 따라갔다고 그러기는 해요. 그래 봤자 형이 연수원 안 가겠다고 한 그 순간부터 없는 자식 된 거죠. 주위에서 또 무슨 생각을 할까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겠어요.”
부모 된 입장으로 속상할 수도 있겠다 싶기는 한데, 연 끊을 정도인가 싶으면서도, 모든 집안이 같은 모습은 아니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기는 했다. 역시 집안 문제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지환이 겉으로 보기에는 꽤나 화목한 집안이었는데.
“그때가 형이 스물다섯이었으니까 저는 열셋이었는데, 그쯤 되면 아예 눈치 없을 나이는 아니잖아요.”
열셋이면 얼마든지 눈치가 없어도 괜찮은 나이였는데, 서진은 그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다.
“어렴풋이 좆 됐구나 싶었죠.”
서진이 욕을 쓰는 걸 들은 건 지금이 처음이었는데, 막상 그 내용과 단어와는 달리 서진의 표정은 무표정하기만 했으며 목소리 역시 그랬다.
“실제로도 그랬어요.”
문득 서진과 지환의 시선이 마주했다.
“형이 부족한 거 없이 커서 그랬다면서, 세상 무서운 줄을 모른다고 합리적으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더라고요. 저한테.”
지환이 계속 서진을 바라보고 있던 것에 비해 서진은 시선을 조금 내려 지환이 앉은 소파쯤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막상 시선이 마주치자 괜한 압박감이 느껴졌다.
“뭐라도 하려면 부모님 설득을 시켜야 했어요. 합리적으로. 일종의 투자 유치였죠. 그 덕에 어릴 때부터 발표라면 질리게 했고.”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였고 별다른 게 담기지도 않은 표정이었는데도, 꼭 금방이라도 모든 게 허물어질 듯 아슬했다.
“그렇다고 학대를 당했다는 건 아니에요. 다들 곱게 자라신 분이라 필수적인 건 다 기본으로 하는데, 그냥 주말에 좀 놀고 싶다고 하면 그걸 설득시켜야 했다는 거죠. 아니면 반장을 하기 싫다거나, 선택 과목은 음악보다 미술로 하고 싶다거나 하는 거. 이렇게 말하니까 진짜 별거 아니기는 하네.”
지환이 궁금한 건 그런 것이다. 그래서, 지금 본인이 위태롭다는 걸 서진은 알까. 알고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고 아니라면,
“형이 떠나기 전에 한 번 만나기는 했어요. 학교 앞으로 찾아왔더라고요. 한참 자기 사정을 말해 주면서 이해해 달라고 하다가 연락처를 줬어요. 저 하나 정도는 자기가 어떻게든 할 수 있다면서 언제든 연락하라더라고요.”
잠시간 마주했던 서진의 시선이 다시 조금쯤 아래로 내려갔다.
“어차피 연락도 해 본 적 없기는 한데, 고등학교 때 아예 없앴어요.”
언젠가부터 모든 것에 미묘하게 허탈한 태도를 보이던 서진은 지금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모든 이야기는,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누군가에게는 더없이 큰 의미를 담을 수 있다.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사람이 있다면, 결국 제 삶의 한 부분으로 만들게 되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서진은 아마도 후자의 사람일 텐데, 그럼에도 서진은 그 모든 게 제 삶에 좋든, 나쁘든,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그때 연우가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초등학교 때까지야 그렇다 쳐도 그때부터는 슬슬 공부도 하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연우는 아무래도 그게 안 되고.”
서진은 연우와 겨우 두 살 차이면서 꼭 자식을 말하는 것처럼 말했다.
“연우네 부모님은 포기가 빨라서, 아예 외국으로 가면서 연우가 우리 집에서 같이 살게 됐어요. 그전부터도 반쯤 같이 살기는 했지만.”
연우가 하는 말과 서진이 하는 말은 미묘하게 달랐다. 연우는 부모님이 외국에서 교수로 있는데 연우는 적응하기 힘드니 한국에 남아 있는 거라고 했고 서진은 꼭, 연우의 부모님이 얼마간의 의도를 담아 연우와 떨어져 산다는 듯이 말했다.
같은 현상이 일어나더라도 주체에 따라 해석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어쩌면 연우의 시선이 맞을지도, 어쩌면 서진의 시선이 맞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둘 다 아닐 수도 있고. 하지만 그래 봤자 그 해석이 본인에게는 진실이다.
그리고 지환은 원본을 모르고 전해 듣는 이야기만 들어야 하는 청자다. 지환은 저 자신만의 해석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지환은 그저 들었다.
“부모님은 주위 시선을 많이 의식하시는 분들이라 조카를 잘 돌봐야 했는데, 이왕이면 자기 아들이 모자란 사촌 동생을 잘 돌봐주는 게 모양새가 좋잖아요. 거기다 자기 자식 성격은 무조건 좋아 보여야 하는 법이거든요. 인성 문제에는 꼭 부모님 욕이 따라 나오기 마련이니까.”
아무리 같은 집에서 산다고 해도 사촌 형이 사촌 동생을 꽤나 세심하게 살핀다고 생각했는데, 서진은 그 이야기를 하면서도 그저 무표정했다.
“형이 설마 그걸 몰랐을까요. 자기 없으면 열두 살이나 어린 자기 동생이 어떻게 될지 설마 정말 몰랐을까. 그래 놓고 죄책감 느끼기는 싫어서 힘들면 연락하라고 연락처만 주면 모든 게 해결되나. 그랬으면 부모님 말씀대로 형이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거죠.”
발음이 또렷하고 나직한 목소리가 그대로 이어졌다.
“그래도 선례가 있으니까, 저도 스무 살까지만 버티고 성인 되면 털고 나오려고 했어요. 그런다고 해도 그 이후가 문제니까 대학은 잘 가야 했고 나가기 전까지 최대한 많이 끌어와야 하니까 착하게 굴면서 돈 좀 모아 놓고. 그래 봤자 사실 이것도 다 부모님이 해 준 거기는 하죠.”
한번 집을 훑은 서진의 시선이 문득 다시 지환과 닿았다.
“그렇게 스무 살 돼서 벗어났는데, 얼마 전에야 그런 생각이 든 거예요. 별로 달라진 게 없더라고.”
그 무감한 태도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스무 살이면 정말 어린 나이인데. 스무 살은 성인이지만, 성인도 아니다. 애초에 대학생을 성인 취급해 주는 사람이 거의 없기는 하지만, 스무 살은 그 대학생도 성인 취급하지 않는 나이인데, 그 나이에는 그 이전을 습관처럼 답습하는 게 당연했다. 단적으로는, 교수님한테도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때인데. 서진은 꼭 그게 큰 잘못이라는 듯이 말했다. 그러니까, 주위의 잘못이 아니라 저 자신의 잘못이라는 듯이.
“나는 여전히 정연우 챙기고 있고 부모님이 잘난 아들 데리고 자랑하러 가면 옆에서 웃으면서 별거 아니라고 겸손 떨고. 이제는 정말 벗어나고 싶어서 학생회는 안 했는데, 고작 그거 안 한 거 가지고 큰 반항이라도 한 것 같고. 그 와중에 또 습관대로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건 여전하고. 사람은 싫은데, 그래도 안 만나면 꼭 뒤떨어진 것 같더라고요.”
성격이 정말 좋네. 서진이 말하는 걸 듣다 보니 그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런 이야기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다들 아예 자기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거나,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데 서진은 적어도 자신이 뭘 어떻게 느끼는지는 알고 있었다. 왜 지환에게 말해 주는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도 있고.
“집만 나오면 다 해결인 줄 알았는데 형이랑 같은 피를 받아서 그런지 저도 뭘 모르는 건 똑같았죠.”
그런 것 치고 자기 자신한테는 꽤나 삭막한 평가를 한다 싶어 지환이 조금 인상을 찌푸렸는데, 서진이 문득 웃었다.
“왜 이런 얘기 형한테 하나 싶죠.”
그 생각을 하기는 했지만, 단어 그대로의 궁금증일 뿐이었다.
“이런 얘기 할 사이 아닌데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럼에도 나온 서진의 목소리는 꼭 지환의 생각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단정적이기만 했다.
“너는 왜 남의 생각을 그렇게 단정 지어?”
“형은 연우랑 알잖아요.”
어째 뭐만 말하려고 하면 다 연우의 이야기로 돌아갔다. 지환이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서진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걔가 저 물어보면 그냥 잘 산다고 해요. 그냥 너랑 연락 안 하는 거라고.”
확실히 연우에게 서진을 찾아보겠다고 했으니 뭐라고 말을 해 주기는 할 텐데, 서진이 말한 대로 말하기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었다.
“그럼 걔 울 텐데.”
입만 다물고 있으면 몇몇은 이미 성인으로 볼 얼굴과 웬만한 성인보다도 더 큰 몸을 하고서도 연우는 아닌 척 여린 게 아니라 그냥 대놓고 마음이 약했다.
“그러든 말든 신경 쓸 필요 없잖아요.”
서진의 얼굴에 옅게라도 매달려 있던 웃음이 어느새 자취를 감췄다.
“처음에는 형처럼 책임감 없는 인간이 되는 게 싫었어요.”
어조랄 것도 없이 목소리가 뚝 떨어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저는 애초에 책임질 것도 없더라고요. 정연우가 내 친동생도 아니고. 걔는 자기 부모가 책임져야죠. 그게 아니더라도 고작 사촌 형인 내가 책임질 건 아니고. 그러니까 그만할래요.”
그거야 지환이라고 굳이 서진에게 무언가를 말할 생각은 없었다. 각자의 사정은 각자의 사정이다. 그럼에도 지환의 앞에는 서진이 있다.
“내 생각에는.”
문득 떨어진 지환의 목소리에 서진은 지환의 말이 이어지기도 전에 물었다.
“뭐요. 내가 참아야 된다고?”
“누가 그렇대?”
바로 나온 반박에 서진 역시 망설임 없이 물었다.
“그것도 아니면 별것도 아닌데 힘든 척한다고?”
서진의 목소리는 꽤나 복잡한 구석이 있었다. 아무것도 상관없다는 듯이 건조하면서도, 얼마간 예민함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지환은 서진이 원하는 게 뭔지 알 수 없었다.
“네가 너무 착하게 살아서 그런 것 같다.”
그러니 지환은 그저 자신이 느끼는 바를 말했다.
“무슨,”
무표정하던 얼굴이 살짝 찌푸려지는 것을 보며 지환은 서진의 말이 이어지기 전에 먼저 말했다.
“우선 담배를 한 대 피워 보자.”
“네?”
당황스러움이 묻어나는 그 목소리에 지환은 바로 물었다.
“너 스트레스 받으면 뭐 해?”
“그냥.”
도대체 왜 묻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에도 지환이 가만히 서진의 답을 종용하듯 바라보자 서진이 겨우 말을 이었다.
“자는데요.”
그 대답에 지환은 탄식과 함께 고개를 저었다.
“이래서 모범생들이 안 된다니까.”
지환은 한번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서진에게로 다가갔다.
“한 시간쯤 뒤에 다시 올 테니까 전화 받아.”
“네?”
그대로 서진을 지나친 지환은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다시 서진을 바라보며 문을 열었다.
“연락받으라고.”
지금까지는 서진을 계속 보면서도 별생각이 없었는데, 알고 보니 꽤나 귀여운 구석이 있었다. 자신이 굉장히 예쁘고 깨끗한 방식으로 사고한다는 걸 모르는 게 특히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