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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97화 (97/100)
  • -외전 18-

    어느 날 공작은 후원하던 수도원에 다녀왔다. 그는 저택에 돌아와서도 계속 몽롱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택에서 출발했을 때와 달리 그의 몸에서는 오묘한 향이 풍겼다.

    그 후로 공작은 매일같이 수도원으로 출근하다시피 했다. 다른 일정이 있다는 건 신경도 안 쓰는 건가. 코르넬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로부터 몇 주가 지난 후, 공작은 그에게 웬 여자를 찾아오라는 명령을 내렸다.

    “여자…… 말입니까?”

    그 여자는 무슨 짓을 저질렀을까. 공작이 사랑해 주지 않는다고 해서 뺨이라도 갈겼을까. 무슨 죄를 저질렀기에 공작이 죽이려고 하는 걸까.

    “그래. 내 사랑하는 사람이거든.”

    사랑, 사랑이라니. 코르넬은 귀를 의심했다. 공작이 살인이라고 말한 것을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하고.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대체 무슨 감정의 교류가 있었기에 저 괴물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었을까. 저 사람의 입에서 나온 사랑이라는 말은 왜 이렇게 오싹하게 느껴지는 거지.

    “뭐 하나, 당장 찾으러 가지 않고.”

    공작은 자신의 측근들을 제국 전역으로 보냈다. 그러나 아무리 전국을 뒤져도 알베르트가 말한 여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시간이 흐를수록 공작은 미쳐 갔다. 코르넬이 평소의 그는 미친 것도 아니었다고 말할 정도로.

    공작은 괴물이었으나 기사로서 걱정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저러다가 술이 몸을 망칠 텐데.

    평소에는 한 번도 코르넬에게는 검을 휘두른 적이 없었으나 미쳐 버린 알베르트는 달랐다. 코르넬은 알베르트가 휘두른 검을 맞아 복부에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을 때쯤, 드디어 코르넬은 여자를 찾아냈다. 옅은 금발에 붉은 장미를 닮은 눈동자를 가진 여자였다.

    그녀는 공작의 얼굴을 보자마자 동그랗게 눈을 떴다. 그녀는 간간이 코르넬에게 원망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다. 여자는 안타깝게도 괴물에 눈에 띄어 버린 모양이었다. 가엾기도 하지.

    공작은 이후 여자를 저택으로 데려왔다. 며칠간 그들을 지켜보며 코르넬은 그들의 관계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랑……. 분명 공작이 말하기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보통 저런 걸 사랑이라고 부르던가. 코르넬은 그저 공작이 미쳐 있었기에 그의 사랑도 미쳐 버렸구나 하고 생각할 뿐이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공작은 수도에서 열리는 건국 기념제에 참석하러 저택을 나섰다. 그는 마차에 올라타며 몇 번이고 일렀다. 여자를 계속 감시하라고. 달아나지 못하도록, 잠시도 눈을 떼지 말라고.

    코르넬은 인형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은 만족스럽게 웃고는 자신의 충성스러운 기사에게 여자를 맡기고 수도로 올라갔다.

    그런데 여자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감시하던 도중, 여자는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마을이 그립다고, 매일 가던 거리들이 그립다며.

    ……그래. 안쓰러운 이였다. 원래 트리센 마을의 수도원에서 살다가 공작 때문에 5년 동안 도망 다녔다고 하지 않았나. 코르넬은 멍청하게도 고개를 끄덕여 버리고 말았다.

    수년간 스스로를 세뇌해 공작 못지않은 괴물이 됐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여자는 거리가 혼란한 틈을 타 도망쳤다.

    건국 기념제가 끝나고 저택에 돌아온 공작은 죽일 듯이 코르넬을 노려봤으나 죽이지는 않았다. 죽으면 손해인 것은 공작 본인이었다. 말을 잘 듣는 개 한 마리를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니.

    여자를 찾은 지 얼마나 됐다고 또 같은 생활이 반복됐다. 또 공작이 사랑하는 여자를 찾기 위해 전국을 뒤졌다.

    여자는 여럿의 손을 거쳐 갔다. 첫 번째는 공작이었고 그다음은 암흑가의 주인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은 성기사단장이었다. 참 다양하기도 했다.

    성기사단장까지는 괜찮았다. 그까지는 공작의 권력으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었다. 하지만 그다음이 문제였다. 신전의 성기사들은 마법사를 봤다고 했다. 마법사가 여자와 죄수를 데려갔다고.

    코르넬은 돕겠다는 명목으로 신전의 지하 감옥을 살폈다. 철창을 이리저리 살폈으나 안에서 따고 나온 것은 아니었다. 애초에 죄수는 몸을 움직일 힘도 거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여자와 함께 사라졌다고 했으니 여자가 문을 열어 줬을 테다. 하지만 평범한 여자가 도대체 어떻게 문을 딸 수가 있었을까. 성기사단장을 살해한 죄수, 그리고 성기사단장을 거슬린 돌 보듯 하던 교황.

    코르넬은 교황과 성기사단장이 어떤 관계인지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으나 부러 아는 척을 하지는 않았다. 이미 죽은 사람과 교황 사이의 정치 사움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다.

    “죄수를 쫓아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허공에서 사람이 나타나지 뭡니까. 처음에는 마물인 줄 알았더니, 마법을 쓰더군요. 마탑은 수십 년 전에 사라졌다고 들었는데…….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엇보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여자를 데려간 것이 마법사라는 사실이었다. 성기사들은 마법사가 손을 튕기자 자신들의 앞에 커다랗고 투명한 장벽이 생겼었다고 말했다. 아무리 두드리고 성력을 써 봐도 깰 수가 없었다며.

    “전하, 제발. 이번에는 정말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확신합니다. 이번에는 분명 위험할 겁니다. 마법은 사람의 힘으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공작위의 권력으로 통제 가능했던 암흑가와는 다르다는 말입니다.”

    설득하고 설득하고, 또 설득했다. 차라리 여자를 포기하시라고. 세상에는 더 좋은 사람이 많을 거라고. 이건 당신의 목숨을 위협할 일이라고, 세상에는 권력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있다고, 당신이 걱정돼 하는 말이니, 제발 좀 들으라고!

    하지만 뚫리지 않는 벽에 대고 말을 하는 기분이었다. 아무리 말을 해도 공작은 섬뜩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코르넬.”

    언제부터 개가 의견을 낼 수 있었지. 뒷말은 굳이 듣지 않아도 뻔했다.

    과거의 공작이었다면 절대 이런 짓을 벌이지 않았을 테다. 그는 이성적이었고 교활했으니까. 그랬던 그가 어쩌다가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 여자에게 미쳐서 판단력까지 잃어버린 것이 분명했다.

    코르넬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고는 기사들을 이끌고 마탑을 찾으러 출발했다. 언제는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한 적이 있었나. 전부 개처럼 공작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지.

    코르넬은 마탑으로 가기 위해 숲을 통과하며 후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인생 한번 파란만장하구나.

    그러다가 숲에서 암흑가의 주인이었던 자를 발견했다.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던 그는 기사들을 발견하더니 인상을 찌푸리고는 도망쳤다.

    그를 잡으러 가던 도중 여자를 찾았다. 왜인지 일이 술술 풀렸다. 곧 안 좋은 일이 닥치기라도 할 것처럼.

    아마 눈앞의 여자도 질긴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테다. 하지만 그건 코르넬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는 공작의 명령을 받고 그녀를 찾으러 다니는 제 자신이 가장 불쌍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불쌍하지도 않으냐는 말에서 그녀를 놓아주지 않을 수 있었던 것도 그 생각 덕분이었다. 과거였다면 또 넘어가 놓아줬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여자를 공작의 앞에 데려갔다.

    ***

    보십시오, 전하. 제가 뭐라고 했습니까.

    코르넬은 스텔라를 끌어안고 공작을 매섭게 노려보고 있는 마법사를 보며 생각했다. 마법사는 화가 많이 난 것처럼 보였다. 가주가 미친 괴물이기는 했지만 제법 잘 굴러가던 공작가가 몰락할지도 모르겠다. 코르넬은 공작의 뒤에 서서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사는 그렇게 돌아가는 듯싶더니 며칠 후 돌아와 공작가를 몰락시켰다. 사용인들은 도망치도록 내버려 뒀고 도망치지 않고 공작을 지키려고 하는 기사들은 전부 죽였다. 그래서 기사들은 대부분 공작을 지키지 않고 도망쳤다. 기사의 덕목이라던 충성은 다 어디로 갔는지.

    세상은 공작을 버렸다. 뭐, 당연한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원래 괴물의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지금까지 괴물에게 호의적이었던 세상이 이상한 거였다.

    ……나도, 도망칠까. 주인을 버리고, 도망칠까.

    “…….”

    그는 멍청하게도 그러지 못했다.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공작의 충실한 사냥개인 척 세뇌했더니 정말 그의 사냥개가 되어 버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전하.”

    “…….”

    “전하, 가셔야 합니다.”

    “…….”

    “성력을 사용하면 한동안은 마법사가 저희 위치를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전하, 그러니…….”

    일어나십시오. 코르넬은 다리를 다친 공작을 부축해 말에 태웠다.

    이틀을 자지 않고 달려 꽤 먼 곳까지 도망쳤다. 공작의 부상이 심해 도중에 멈춰야만 했다.

    마력석에 담겨 있던 성력도 이제 거의 남지 않았다. 마법사가 공작을 노리고 있으니 분명 공작에게 추적 마법을 걸어 뒀을 터였다.

    “전하.”

    “…….”

    “……전하.”

    “아. 코르넬.”

    공작은 떠날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마법사가, 죽음이 두렵지도 않은 건가. 공작은 생각에 잠긴 것처럼 고개를 숙이고, 눈을 감았다. 코르넬도 더 이상 그를 재촉하지 않고 가만히 그의 앞에 서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력석에 담겨 있던 성력이 다했는지 마력석을 밝히던 불이 꺼졌다. 코르넬은 그 순간 등 뒤에 없던 인기척이 나타났음을 느꼈다.

    그 후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고…… 그게 끝이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코르넬을 곧 자신의 의식도 끊어질 것을 알았기에 최선을 다해 공작을 바라봤다. 공작은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바라보며 은은하게 웃고 있었다.

    공포가 뭉쳐 만들어진 충성이 이렇게 끝이 났다. 코르넬은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서 눈을 감았다.

    알베르트 모니카, 당신은 내가 만난 최악의 주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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