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7-
외전 4
코르넬 스테인. 본디 그에게는 성이 없었다.
뒷골목에서 우연히 알베르트를 만나기 전까지 그의 이름은 코르넬일 뿐이었다.
그래, 우연. 그것은 전부 우연이었다. 그가 알베르트를 만난 것도, 알베르트가 그를 데려가 검을 몇 번 휘둘러 보게 했던 것도. 그리고 그를 스테인 가에 입적시킨 것까지도.
그는 알베르트를 따라가 처음으로 음식을 배불리 먹어 봤다. 코르넬은 허겁지겁 입에 음식을 집어넣으면서도 알베르트를 힐끗거렸다. 그는 턱을 괴고 자신이 음식을 먹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과 나이가 몇 살 차이 나지도 않을 것 같은데 왜 자신이 어른인 양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두 개의 금색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기분이 오묘했다.
그가 눈앞의 소년이 어린 나이에 공작위를 물려받은 공작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 후로 알베르트는 스테인 가에 코르넬을 맡긴 채 한동안 그를 찾아오지 않았다. 심지어 코르넬은 스테인 자작이 알베르트의 이름을 알려 주기 전까지는 그 소년의 이름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했다.
스테인 자작은 코르넬에게 검술을 가르쳤다. 알베르트가 자작에게 그렇게 하라 지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코르넬은 반항 않고 묵묵히 검술을 배웠다.
손바닥에 물집이 잡히고 터지기를 반복했다. 때로 검을 휘두르다가 손바닥이 찢어지기도 했다. 그런 생활이 매일 반복됐다.
스테인 자작은 엄격한 스승이었으나 좋은 사람이었다. 그의 이름이 코르넬 스테인이 되었다고 해서 그를 아들처럼 대하는 것은 아니었으나, 검술을 가르칠 때를 제외하면 그는 꽤 다정한 사람이었다.
자작은 가끔 술을 마시며 자신의 이야기를 했다. 3년 전에 저택에 불이 나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고. 코르넬은 자작이 불우한 과거를 자신에게 말해 준다고 해서 굳이 자신의 과거 이야기를 꺼내지는 않았다.
자작은 술에 취해 있지 않을 때는 알베르트, 모니카 공작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기사의 덕목은 충성이라느니, 언젠가 공작님이 너를 찾으러 올 테니 그에게 충성을 바칠 준비를 하고 있으라느니. 그에게는 귀찮은 잔소리일 뿐이었다.
알베르트가 다시 코르넬을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후였다. 당시 알베르트는 이미 소년의 티를 벗은 완연한 성인이었고, 코르넬은 여전히 앳된 티가 나는 청년이었다.
알베르트는 그에게 자신이 데려온 기사들과 싸워 볼 것을 요구했고, 코르넬은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다. 그는 알베르트가 데려온 기사들을 몇 쓰러뜨렸다.
“자작. 꽤 괜찮게 키웠군.”
“아무렴요. 어떤 분이 명령하신 건데 잘 따라야지요.”
코르넬 그는 눈치가 없는 편이 아니었다. 그는 공작과 자작이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를 보아 공작이 자신을 데려갈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의 예상은 정확히 맞아떨어졌다.
스테인 자작. 그와는 수년간 함께했으나 이제는 헤어져야만 했다. 검술을 가르칠 때만큼은 엄격했으나 그래도 꽤 친절했던 자신의 스승.
“가지, 스테인 경.”
“…….”
코르넬을 알베르트를 따라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스테인 자작이 자신을 바라보며 빙긋 웃고 있었다.
……아니, 자세히 보니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알베르트를 보며 웃고 있었다.
자작은 자신이 아니라 모니카 공작에게 친절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코르넬은 그렇게 생각하며 미련 없이 고개를 돌려 알베르트를 따라나섰다.
알베르트는 항상 그를 스테인 경이라고 불렀다. 코르넬은 알베르트의 밑에서 일을 하게 된 후 종종 스테인이라는 성을 떼고 자신의 옛 이름만을 되뇌어 봤다. 코르넬, 참 짧기도 하지.
생각해 보면 그가 가진 것은 모두 알베르트가 준 것들이었다. 식사도, 입고 있는 옷도, 심지어는 그의 이름을 구성하는 성마저도. 묘한 일이었다.
하루는 알베르트가 그를 집무실로 불렀다. 개인적으로 지시할 일이 있나 싶어 찾아가 문을 여니, 사람이 죽어 있었다.
“…….”
어쩐지 문을 열기 전부터 피에서 나는 비릿한 냄새가 나더라. 코르넬은 입을 꾹 다물었다. 수년간 매일 검술을 배웠을 뿐이지, 사람을 죽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뒷골목에서 살 때도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본 적은 많았지만, 사람이 죽는 것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
“아, 경. 왔는가.”
죽은 이들의 한가운데에는 알베르트가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죽은 이들은 모니카 공작의 전속 기사임을 나타내는 제복을 입고 있었다. 알베르트의 손에는 날카로운 검이 들려 있었고.
바닥에 쓰러져 있는 이들 중 딱 한 명 살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마저도 곧 죽을 듯이 힘겹게 숨을 몰아쉬고 있기는 했지만.
“…….”
“이들이 내 충성스러운 기사임을 연기하면서 내 정보를 빼돌리고 있더군.”
“…….”
“이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당연히 죽여야 함이 옳겠지. 아, 물론 이제 살아 있는 남은 이는 한 명밖에 없기는 하지만.”
차마 뭐라고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웃으며 인사를 했던 동료들이었다. 그런데, 그 동료들이 공작의 정보를 빼돌리고 있었다니.
공작은 천천히 코르넬에게 다가와 그의 손에 검을 쥐여 줬다. 그는 눈꼬리를 휘고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귀족이라고 불리는 자들의 미소는 전부 저랬다. 5년 전 어른처럼 보이기 위해 애쓰던 소년은 더 이상 없었다. 도대체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스테인 경. 내 충성스러운 기사.”
“……예, 전하.”
“내 기사들 중 경의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들었다. 그러니 경에게 영광스러운 기회를 주지. 감히 주인을 배반하려고 한 저자를 직접 처단하라.”
손이 덜덜 떨려왔다. 코르넬은 멍하니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사람을 죽이라고, 그것도 전날까지만 해도 함께 웃고 떠들던 동료를.
코르넬은 자신의 처지를 보며 낮게 웃었다. 자신은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사람을 죽이기를 두려워하는 기사라니. 이보다 더 우스운 일이 있을 수가 있을까.
“코, 코르…… 넬…….”
죽어 가는 기사는 억울함을 토로하려는 듯이 입을 뻐끔거렸다. 마치 자신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 아, 그래. 어쩌면 공작 전하께서 착각을 하셨을 수도 있다. 그 누구보다 그에게 강한 충성을 바치던 이들이다. 그러니 분명 오해일…….
“…….”
코르넬은 알베르트를 돌아보는 순간 딱딱하게 굳었다. 알베르트의 금색 눈동자가 맹수의 것처럼 사나웠다.
그는 강요하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저 기사를 죽여라. 코르넬은 홀린 듯이 쓰러져 있는 기사에게 다가갔다.
“코르, 넬! 나는, 나……는!”
기사는 심장에 검이 꽂혀 생명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자신의 결백을 주장했다. 물론 진실이 어떠하든 코르넬 그에게도 알베르트에게도 상관없는 일이었다.
코르넬은 알베르트에게 검을 돌려줬다. 알베르트는 검을 받아 들고는 기사의 숨이 확실히 끊어졌는지 확인했다. 코르넬은 뒤늦게 검의 손잡이 부분에 새겨져 있는 독수리 문양을 발견했다.
그가 뒷골목에 있을 적, 종종 독수리가 동물들의 사체를 뜯어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어린 나이에 본 그 모습이 얼마나 끔찍하게 느껴졌었던지.
알베르트와 참 잘 어울리는 동물이라고, 코르넬은 그렇게 생각했다.
“…….”
“바쁠 텐데 불러서 미안하군. 이제 가 봐도 좋아. 방은 하인들을 불러서 치우도록 해야겠군.”
“편히 쉬십시오, 전하.”
사람을 무더기로 죽여 놓고 편히 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코르넬은 집무실에서 벗어나 조금씩 뛰기 시작했다.
그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항상 우연에 감사했었다.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것은, 전부 우연의 덕이었으니.
다만 이번만큼은 그 우연이라는 게 너무나도 끔찍했다. 자신은 왜 동료를 죽여야 했나.
여긴 괴물의 집이다. 모니카 공작은 괴물이다. 괴물이 아니고서야, 사람이 저런 짓을 저지를 수가 없다.
그날부터 알베르트는 코르넬을 스테인 경이 아닌, 코르넬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 후로도 종종 알베르트는 코르넬을 집무실로 불러 그와 친분이 있던 사람들을 죽이도록 했다. 그는 사람을 죽이는 데 점점 무뎌졌다. 사람을 죽이면서 코르넬은 알베르트가 자신을 시험하려고 한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럴 때마다 코르넬은 스스로를 세뇌했다. 충성스러운 기사가 돼라. 전하께 충성을 바쳐. 그렇지 않으면 주인께서는 자신을 버리시리라. 괴물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와 같은 종류의 인간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렇게 살다 보니 정신없이 몇 년이 흘렀다. 아니, 정신없이라는 말보다는 챙길 정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는 말이 더 맞겠다. 그렇게 몇 년이 흐르고 나니 어느새 자신은 공작의 가장 가까운 기사가 되어 있었으며, 세간에서는 공작의 사냥개라고 불렸다.
참 이상하기도 하지. 사람들은 원래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세뇌하고 스스로의 본질을 억지로 바꾸는 것을 충성을 바치는 것을 사냥개 같다고 부르나. 코르넬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처음에는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던 공작의 성격도 점점 익숙해졌다. 공작이 또 사람을 죽였다는 이야기보다 오히려 그 미친 공작이 사랑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더 놀랄 것 같았다. 죽이고 싶은 사람이 생긴다면 모를까,
그 사람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길 리가 없었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분명히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그의 주인은 언젠가부터 이상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