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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81화 (81/100)

-외전 2-

그녀는 가족과 함께했던 집 안에 숨어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죽은 듯이 조용하게, 그저 자신이 사랑하는 마법을 연구하며 살았다.

배를 곯으면 죽을까 싶어 몇 주간 식사를 하지 않았다. 잠을 자지 않으면 죽을까 싶어 일주일간 잠을 자지 않기도 했다.

그래도 그녀는 죽지 않았다. 몸에 힘이 조금 없을 뿐, 살아가는 데 큰 지장이 있지는 않았다.

세지 않았기에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십 년 정도가 흘렀다. 아리안은 그동안 집에만 처박혀 마법뿐만 아니라 약초도 연구했다. 약초를 이리저리 섞어 만든 약물은 사람의 몸에 효과가 좋았다.

아리안은 아주 가끔 약초를 캐러 밖으로 나갔다. 마법을 이용해 이동했기에 마을 사람들의 눈에 띄지는 않았으나 가끔 숲에서 놀던 아이들과 마주쳤다.

아리안은 아이들과 마주치면 가만히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는 했다. 아주 오래전, 숲에서 뛰놀던 티타와 에슨을 보는 것만 같았다.

아리안을 만났던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가 제 부모들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줬다. 숲에서 한 여자를 만났다.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였다. 신기하게 생긴 풀을 캐고 있더라.

아리안을 본 아이들이 하나둘 늘어났다. 아리안이 아이들을 대할 때는 한없이 편하게 대하던 탓이었다.

그럴수록 아리안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아리안은 겨우 십 년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은 것뿐이었으나 마을 사람들에게 십 년은 길었다. 이제 친절하던 그녀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은 우물가에 모여 아리안의 이야기를 했다. 상점에서 물건을 사다가 아리안의 이야기를 했고, 밭을 갈다가 아리안의 이야기를 했다.

가족들이 다 늙어 죽는 동안 조금도 늙지 않더라. 이상한 능력을 사용해서 커다란 통나무를 옮기더라. 그러다가 들키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말끝을 흐리며 웃더라.

마녀, 저 집에 사는 여자는 마녀가 분명하다. 홀로 늙지 않고 이상한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보니 저것은 마녀다.

어느 순간부터 아리안과 그녀의 가족들이 살던 집은 마녀의 집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은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에 짓눌리고 움츠러들어 아무도 아리안에게 다가가지 않았다.

당시 왕국에는 마을에 전염병이 돌 때 애꿎은 여자들을 마녀로 몰아 처형하는 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아리안은 집안에서만 숨어 사느라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또한 아리안의 마을에는 아직 전영볌이 돌지 않아 마녀사냥도 일어난 적 없었다. 그저 소문으로 다른 마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더라,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 정도로 눈이 세차게 내리는 날이었다. 달도 뜨지 않은 아주 어두운 밤, 아리안은 그날도 잠을 자지 않고 약초를 연구하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 콩콩 문을 두드렸다. 어른이 두드렸다고 하기에는 가벼웠다. 오히려 어린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이 더 어울리는 조그마한 소리였다.

이전에 숲에서 만난 애들인가? 아리안은 아이들이 실수로 솥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얼른 솥의 뚜껑을 닫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건 마을의 아이들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의 아이들이 서서 덜덜 떨며 아리안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니?”

아리안은 위아래로 아이들을 훑어보다가 눈을 크게 떴다. 그들이 온몸에 흥건하게 피를 흘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단 들어오렴.”

아이들은 아리안의 눈치를 살피더니 쭈뼛쭈뼛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가장 큰 아이는 자신도 어린 주제에 더 어린아이를 업고 있었다.

아리안은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묵묵히 그들의 상처를 치료해 줬다. 치료할 때는 그녀가 약초를 연구하다가 만든 약을 사용했다.

이는 아리안이 상처를 잘 입지 않는 자신의 몸에 겨우 상처를 내고 실험해 본 약이었다. 역시나 약은 아이들에게도 잘 들었다.

상처는 아침이 되기도 전에 금방 아물었다. 아리안은 아이들이 잠들 때까지 계속 지켜봤다. 아이들은 그 시선을 오히려 부담스러워하던 것 같기는 했지만.

그렇게 밤이 지나고 해가 떴다. 가장 큰 아이가 제일 먼저 일어나 그녀에게 들여보내 줘서 고맙다고 인사를 했다.

문을 두드린 것은 총 세 명이었는데, 여자아이 둘과 남자아이 하나였다. 셋은 형제인지 모두 비슷한 어두운 갈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가장 큰 아이가 더듬더듬 자신들을 소개했다.

“저, 저는 에비타고…… 얘는 안젤라, 그리고 얘는 카를이에요.”

“그래, 그렇구나. 너는 에비타. 너는 안젤라. 그리고 너는 카를.”

“어제는 정말 감사했어요. 다른 분들은 아무도 저희를 들여보내 주시지 않았거든요…….”

“그나저나 어제 그렇게 늦은 시간에 이 마을에는 무슨 일로.”

에비타는 입술을 달싹이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들은 이곳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을에서 왔다는 것, 그곳에서 전염병이 유행했다는 것, 그들의 어미는 마녀로 몰려 처형당했다는 것, 아비는 제 아내를 구하려다가 함께 처형당했다는 것.

어린아이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지나치게 잔혹한 일들이었다. 아리안은 한동안 전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멍하니 에비타의 얼굴만 쳐다봤다.

아리안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처음으로 마녀사냥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그녀가 바깥에 관심이 없던 십 년 동안 세상은 너무나도 많이 바뀌어 있었다.

전염병은 사람이 조절할 수 있는 게 아닌데 그걸 가지고 사람을 마녀로 몰아가다니. 아리안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물론 믿고 싶지 않은 것뿐이지,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전날 아이들이 온몸에 피를 두르고 있던 것이 그 증거가 됐다.

아리안은 기꺼이 아이들을 거둬 키웠다. 갈 곳을 잃은 아이들도 내심 아리안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눈치였다.

그 후로 다시 시간이 흘렀다.

당연하게도 아리안의 시간은 흐르지 않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은 쉬지 않고 흘렀다. 추운 겨울이 몇 번이나 지나가고 또다시 십 년의 세월이 흘렀다.

아리안이 밖으로 잘 나가지 않으니 아이들도 집 안에 있는 것을 좋아했다. 아리안은 심심해하는 카를을 달래기 위해 아이들에게 약초에 대해 알려 줬다.

종종 아이들은 아리안을 대신하여 약초를 캐러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마녀의 집에서 나온 아이들을 보고 자기들끼리 이렇게 속삭였다.

마녀가 어린 마녀들을 불러왔다. 자신들이 이 마을을 지배하려는 거야, 저들은 우리를 전부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물론 집에서 잘 나오지 않는 아리안이나 에비타, 안젤라, 카를이 마을의 술렁임을 알 리가 없었다. 애초에 안다고 해도 그런 터무니없는 소문에 관심 따위를 할애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약초였다.

안젤라는 약초를 구별하는 데 재능이 있었다. 에비타는 후각이 좋아 약초가 피어 있는 곳을 곧잘 찾아내고는 했다. 그리고 카를은 그것들을 잘 조합해 훌륭한 포션들을 만들었다.

물론 수십 년간 약초와 포션을 연구한 아리안에게는 못 미치는 실력이었으나 모두 의원을 해도 될 정도로 실력이 좋았다.

시간이 꽤 흐른 만큼 그들은 십 년 전 벌어졌던 참사에 대해서도 무덤덤해졌다. 그들은 종종 비가 오는 날에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그 일에 대해 이야기하고는 했다.

특히 카를은 당시 사람들이 자신들이 도망치는 걸 보고는 마녀의 자식들은 똑같이 마녀라며, 마녀들을 놓치지 말고 전부 잡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던 이야기를 하는 걸 좋아했다.

“그 사람들은 저를 보면서도 마녀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여자도 아닌데. 이상한 일이죠.”

“푸핫.”

안젤라가 잘못 만든 딱딱한 빵을 질겅질겅 씹어먹던 에비타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녀는 결국 입에 들어 있는 빵을 뿜으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악! 누나! 지금 더럽게 뭐 하는 짓이야!”

“아니, 갑자기 그때 그 바보 같던 일이 생각나서.”

카를이 더럽다며 기겁을 하자 에비타는 카를을 마구 때리며 꺽꺽 웃었다. 웃으면서 옆 사람을 때리는 에비타의 버릇을 아주 잘 알고 있던 안젤라는 이미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도망친 후였다.

“푸핫, 하하. 진짜 바보들 아니야? 완전 웃기지 않아요, 아리안?”

본인들이 덤덤하게 말하는데 상황을 진중하게 만들고 싶은 생각은 없었기에 아리안은 그냥 그들을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아리안.”

그때 안젤라가 아리안의 옆을 스쳐 지나가며 속삭였다. 안젤라가 아리안보다 훨씬 키가 작았기 때문에 귀에 명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못 들을 정도는 아니었다.

아리안은 멍하니 에비타, 안젤라, 그리고 카를을 지켜보다가 빙긋 웃었다. 가족들을 먼저 떠나보낸 뒤로 새로운 가족을 얻은 기분이었다.

***

왕국에 지독한 전염병이 또다시 유행했다.

전염병이 지나는 자리는 하나같이 고요했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전부 죽어 흙으로 돌아가거나 불에 타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매번 운 좋게 전염병을 피해가던 아리안의 마을도 이번만큼은 예외가 아니었다.

시작은 강 주변에서 뛰어놀다가 목이 말라 강물을 떠먹은 아이였다.

아이는 며칠 후 제 어미와 조잘조잘 이야기를 하다가 픽 쓰러졌다.

아이는 제 어미에게 병을 옮겼고 그녀는 남편에게 병을 옮겼다. 그는 제 일터 동료에게 병을 옮겼다. 그렇게 하나둘 마을 사람들은 병에 걸려 죽어가기 시작했다.

“우리 조시도 병에 걸렸다고! 이게 가능해?! 이런 병은 태어나서 평생 본 적도 없어!”

“우리 가족은 나 빼고 전부 침상에 누워 있어. 간호를 해 주고 싶어도 나까지 병에 걸릴까 봐 들어갈 수가 없다고!”

“마녀! 마녀의 짓이야. 마녀가 한 짓이 아니고서야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없다고!”

소란스러운 마을과 달리 하늘은 잔잔했다. 바람은 불고 구름은 여유롭게 푸르른 하늘을 쓸고 지나간다. 하늘을 가득히 메우는 태양은 적당히 눈부셨다.

사람들은 어리석고 충동적이었다. 어두컴컴한 한밤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오르는 분노만큼 뜨거운 횃불을 들었다. 병을 퍼뜨린 괘씸한 마녀를 불태워 버리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아리안은 불에 타도 죽지 않는 저주를 받은 데다가, 당시 아리안은 약초를 캐느라 집에 없었다.

집을 지키고 있던 것은 아이들이었다. 에비타, 안젤라, 카를. 아무런 능력도 없는, 그저 약초를 좋아하는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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