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치세요, 아가씨-70화 (70/100)

-70-

“저, 그, 그, 차림으로 어디를 가시려고요……?”

“이 저택 감옥.”

내가 뻔뻔하게 대답하자 하녀가 안 된다고 기겁을 하며 나를 끌어당겼다. 감옥이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그래 봤자 감옥 곳곳에 기사들이 깔려 있을 텐데.

하지만 그게 문제가 아니었던 건지, 하녀는 잠옷 차림이던 나를 목욕시키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혔다. 그녀는 내 옷을 갈아입힌 후에야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줬다.

……그냥 위험성의 문제가 아니라 잠옷 차림이었던 게 문제였던 걸까.

이전에 모니카 저택에서 머무를 때 이곳의 위치를 외워 뒀었다. 나는 기억을 천천히 더듬으며 감옥을 찾아 헤맸다.

그리고 마침내 찾아낸 감옥 입구에는, 코르넬이 기세등등하게 서 있었다.

“아.”

“코르넬.”

“당신이 왜 여기까지…….”

“제가 감옥에 올 이유가 뭐가 있겠나요.”

“또 당신의 동생을 찾으러 오셨습니까?”

그럼 내가 노아의 일이 아니면 무슨 일로 어둡고 음침한 감옥까지 찾아왔겠나.

“당신이 또 놈을 찾는 모습을 보면 전하께서 분노하실 겁니다.”

“상관없어요. 이미 외출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온 거니까요.”

“……입이 가벼운 하녀들을 벌해야겠군요.”

나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 많은 하녀 중에 누가 나한테 그 소식을 전해 줬는지 어떻게 찾겠다고.

“돌아가십시오. 들여보내 드릴 수 없습니다.”

“코르넬. 기사들이 빽빽하게 지키고 있는 곳에서 내가 뭘 할 수 있겠어요?”

“안 됩니다.”

“코르넬.”

“…….”

“코르넬.”

“…….”

“저한테 말 걸지 마십시오. 이 모습이 전하의 눈에 보이면 안 됩니다.”

어떻게든 설득해 보려고 했으나 코르넬은 단호했다. 그는 심지어 대답조차도 해 주지 않았다.

내가 끝까지 버티고 서자 그는 나를 무시하는 대신 애원하기로 마음먹는지, 애원하는 목소리로 나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애원하는 주체가 바뀌어 있었다.

“제발…… 저한테 말을 시키지 말아 주십시오.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전하께서 보시면 또 저를 갈구실 겁니다.”

“당신이 공작님에게 어떻게 갈굼을 당하든 뭘 당하든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왜 저런 너무하다는 표정을 짓는 건지.

“어쨌든 안 됩니다. 돌아가십시오.”

적당히 들여보내 준다면 노아와 간단한 대화만 나누고 나올 생각이었는데, 코르넬의 강경한 태도에 결국 오기가 생겼다.

세상에 안 되는 게 어딨어! 나는 이를 악물고 문틈 사이로 돌진했다.

물론 당연하게도 억지로 길을 뚫으려다가 실패하고 기사에게 붙잡혔다. 나는 코르넬과 다른 한 기사에게 두 팔을 붙잡힌 채 방으로 끌려왔다.

나를 방에 데려다 놓은 코르넬은 문을 닫고 나가려다 말고 다시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는 지친 얼굴로 애원했다.

“제발 얌전히 계십시오, 제발.”

제발. 그놈의 제발. 코르넬은 제발을 몇 번이나 강조하고 나서야 방문을 닫았다.

알베르트가 명령하면 발등에도 입을 맞출 개새끼. 나는 문이 닫히는 순간에 조용히 그렇게 중얼거렸다. 당연히 코르넬이 내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러나저러나 코르넬은 뛰어난 기사였다. 그만큼 그는 청각도 발달해 있을 것이다. 코르넬이 들었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피어올랐으나 곧 아무래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날 밤, 알베르트는 또다시 나를 찾아왔다. 그는 나를 몰아붙이며 노아가 그렇게도 보고 싶냐고 나를 다그쳤다.

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아. 내가 노아를 찾고 있다는 걸 코르넬이 알베르트에게 알렸구나. 하기야 개새끼 근성이 변하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날에도 나는 코르넬을 만나기 위해 꿋꿋하게 감옥을 찾아갔다. 그는 나를 보며 질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정이니 연민이니 하는 것들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인 듯한 얼굴이었다.

“노아를 만나게 해 줘요.”

“안 됩니다.”

“그럼 왜 안 되는 건지 이유나 들어 보죠.”

코르넬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의문이 들었다. 한숨을 쉬고 싶은 건 나인데 왜 오히려 코르넬이 한숨을 쉬는 건지.

“……놈은 지금 이곳에 없습니다.”

“네?”

“이곳으로 오셔 봤자 놈은 이곳에 없다는 말입니다. 감옥 앞에서 놈을 만나겠다고 아무리 고집을 부리셔도 놈은 이곳에 없습니다.”

“그럼 어디에…….”

거기까지 말하다가 코르넬이 이 질문에 답해 줄 리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입을 다물었다.

감옥에 없다면 어디에 있는 거지? 감옥이 아닌 저택 내부의 어딘가? 그것도 아니면, 저택 밖에 있나?

나는 목걸이를 찾기 위해 얼른 품 안을 뒤졌다.

하지만 목걸이는 몸 어디에도 없었다. 한순간에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내가 목걸이를 어디에 뒀더라. 목욕할 때에도 뺀 적이 없었는데, 설마 줄이 끊어져 어딘가에 버려졌나?

나는 눈을 감고 찬찬히 기억을 더듬었다. 분명 알베르트가 찾아올 때까지도 목걸이를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도대체 조금의 값어치도 없을 것 같은 이 목걸이는 무슨…….]

알베르트가 흘리듯 했던 말이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알베르트가 그렇게 말하고 나서 목걸이 줄을 끊었고…… 그다음에 어떻게 했더라. 내 기억이 맞다면 그는 분명 목걸이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졌을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곧바로 방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느릿하던 걸음이 서서히 빨라졌다.

만약 하녀가 이미 방을 치웠으면 어떡하지? 그러게 방을 나오기 전에 바닥을 좀 쳐다볼걸. 바닥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는지 좀 볼걸.

나는 방에 도착하자마자 바닥을 샅샅이 살폈다. 하지만 발견할 수 있는 건 작은 먼지뿐이었다.

다시 뒤통수를 맞은 듯 정신이 멍해졌다. 이미 버린 게 분명했다. 얼굴도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누구한테 목걸이의 행방을 물어봐야 하지. 나도 모르게 손톱을 잘근잘근 씹었다.

그때 방 한쪽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그제야 나는 방을 치우고 있던 하녀를 발견했다.

저 하녀라면 목걸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을지도. 나는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아, 아가씨. 뭐 찾으시는 거 있으세요?”

연한 갈색 머리칼의 하녀는 나를 아가씨라고 불렀다. 아리안도 종종 나를 ‘이 멍청한 아가씨야’ 혹은 ‘이 바보 같은 아가씨야’라고 부르기는 했다. 하지만 그 호칭과는 별개로 아가씨라고 불리는 것은 어색했다.

나는 잠시 눈앞의 하녀를 살폈다. 노아보다도 어린 듯한 작은 소녀였다.

“……혹시 바닥에서 빨간색 목걸이를 봤나 해서.”

“아, 그 빨간색 목걸이요? 바닥에 떨어져 있길래 저 서랍에 넣어 놨어요.”

나는 하녀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서랍을 쳐다봤다. 바닥과 그사이에 조그만 틈도 없는, 아주 무거워 보이는 서랍이었다.

“아. 고마워.”

“네. 필요하신 거 있으시면 또 불러 주세요.”

첫 번째 서랍을 여니 바로 목걸이가 보였다. 빛은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래서 아까는 빛이 보이지 않았던 거구나. 노아가 내가 머무르고 있는 층보다 더 아래에 있기 때문에.

나는 곧장 빛을 따라 뛰었다. 빛은 저택 밖을 가리키고 있었다.

꽤 소란스럽게 달려 나갔지만 나를 막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밖에도 저택을 지키는 기사들이 많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애초에 공작저에서 일하는 대부분의 사용인들은 알베르트와 내가 맺은 관계가 종적인 관계가 아니라 횡적인 관계라고 믿고 있는 듯했다.

알베르트와 나의 관계를 아는 것도 코르넬을 포함하여 모니카 공작가의 기사 중 극히 소수일 뿐이었다.

빛을 따라 도착한 곳은 마구간 앞이었다. 마구간 앞에는 그곳을 지키는 기사가 한 명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수상한 장소였다.

나는 마구간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숨어 기사가 다른 곳으로 가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렸다. 중간에 다른 기사와 교대하는 시간이 분명 있을 텐데…….

하늘이 주홍색으로 물들었을 때쯤 커다란 종소리가 저택 내에 울려 퍼졌다. 기사는 크게 하품을 하며 느릿한 걸음을 하며 어딘가로 사라졌다.

아마 교대할 기사를 만나러 가는 것일 테다. 기회는 이때뿐이었다. 지금 저 안을 뒤지지 못한다면 새로운 기사가 와서 이 앞을 지킬 것이다.

나는 조심히 주변을 살피고 마구간으로 돌진했다.

그리고 마구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나는 입을 막을 수밖에 없었다. 밖으로 보기에는 마구간이었으나 안은 달랐다.

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니 바닥에는 누구의 것인지 모를 살덩어리들이 흩어져 있었다. 감옥…… 감옥인가. 아니, 감옥은 아니었다. 여기저기에서 역겨운 살냄새가 풍겼다.

그래, 고문실. 고문실이라고 칭하는 것이 더 맞겠다. 그리고 고문실의 한가운데에는 노아가 묶여 있었다.

이럴 거면 치료는 왜 해 줬던 건가 싶을 정도로 끔찍한 몰골이었다. 하마터면 이런 때에 구역질을 할 뻔했다.

나는 최대한 조용히 그를 흔들어 깨웠다. 곧 눈을 뜨기는 했으나 무슨 약이라도 쓴 건지 노아의 눈은 몽롱했다.

“노아, 일어나. 지금 가야 해.”

노아의 팔과 다리를 묶은 밧줄은 근처에 떨어져 있던 칼로 끊었다. 이곳에서 꽤 오래 이러고 있었는지 노아는 자리에서 일어나고도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너, 저번에 성기사들한테 썼던 그 향 아직도 있어?”

진작 기사들에게 뺏겼을 것 같기는 했으나 혹시 모르니 물어봤다.

그러자 노아가 품 안 깊숙한 곳을 뒤적이더니 작은 크기의 향을 하나 꺼냈다. 기사들이 저곳까지 뒤지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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