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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69화 (6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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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야 할 것이다. 알베르트가 나를 용서한다면. 알베르트에게 용서받아야 한다는 것이 웃기기는 했지만 하여튼.

하지만 알베르트를 따르는 추종자들이 나를 용서하지 않겠지. 예를 들면 코르넬이라든가. 충성에 미친 사냥개 같은 놈들. 같잖은 동정에 잠시 흔들려도 개는 결국 개다.

“어때요, 공작님. 이런 말을 듣고도 몸이 달아오르시나요? 성관계 한 번과 혀를 바꾸시겠어요?”

“……확실히, 당신은 변했습니다.”

“칭찬으로 들을게요.”

흐리멍덩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던 알베르트는 어느새 맑은 눈동자로 나를 훑고 있었다. 그 짧은 시간 만에 술이 깬 모양이었다.

하기야 혀를 씹어 버리겠다느니 뭐라느니, 살해 협박 그 비슷한 것을 듣고도 술에 취해 정신머리를 제대로 가누지 못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겠지.

알베르트는 기다란 손가락을 뻗어 내 입안에 넣었다. 나는 가만히 그의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봤다. 네가 무슨 짓을 하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자, 라는 느낌이었다.

그의 손가락이 내 입안을 쓸어내릴 때, 문득 궁금증이 하나 들었다. 내가 지금 여기서 알베르트의 손가락을 물어서 잘리게 만든다면.

만약 나 때문에 알베르트의 손가락이 잘린다면 그는 이 자리에서 바로 나를 죽일까. 그게 아니면 잠시 동안의 유예 기간을 주고 그 후에 공개적으로 나를 죽일까.

그것도 아니면, 알베르트가 내 치아들을 전부 뽑아 버릴까. 다시는 그의 몸에 상처를 낼 수 없도록.

나는 여전히 알베르트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도망치는 것 외에는 그를 거슬러 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알 수 없었다. 그가 내 어느 정도의 행동까지 용서해 줄지, 그리고 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처벌의 강도는 어떠할지.

결국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알베르트의 손가락을 세게 씹어 버리기로 결정했다. 뭐, 바로 죽이지는 않겠지. 며칠 후에 나를 죽인다고 해도 그때쯤이면 아리안이 와 줄 테고.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태도는 좋지 않은데. 만약 아리안이 나를 구하러 오지 않는다면 어쩌려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옅게 웃었다.

그리고 턱에 세게 힘을 주고 입안에 들어온 알베르트의 손가락을 씹으려던 순간이었다. 잠시 방 안에 찝찝한 정적이 흘렀다. 눈동자를 굴려 바라본 알베르트의 표정은 마치 악마와도 같았다.

알베르트가 악마처럼 웃었다. 그래, 악마. 매혹적이나 동시에 추악하고 달콤하나 동시에 끔찍했다. 그런 미소였다.

“내 손가락 하나와 놈의 목숨을 뒤바꾸겠다면야 굳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그는 이미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알베르트의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주변을 울리는 것만 같았다. 분명 알베르트는 내 눈앞의 한 명뿐인데, 마치 여럿에게 둘러싸인 기분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굳어 버릴 수밖에 없었다. 굳게 다물었던 입도 천천히 벌어졌다. 그 모습을 본 알베르트는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까딱였다.

노아는 내 앞길을 막는 방해물 같았다. 어떤 행동을 하려고 하든 노아가 걸려 있는 이상 나는 멈춰야 했으니.

“그놈이 도대체 당신에게 뭐라고…….”

그러게. 알베르트의 말이 맞았다. 도대체 노아가 나에게 뭐라고. 도대체 수년 전 작은 오두막에서 죽어가던 어린애가 나한테 갖는 의미가 뭐라고 나는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그때 알베르트의 몸이 기우뚱 기울어졌다. 아마 술에 취해 다리에 힘이 풀린 것 같았다. 혀를 씹어 버리겠다는 말을 듣고 눈빛이 말끔해진 것 같았는데, 내 착각이었나.

하필 넘어져도 이쪽으로 넘어질 건 뭐지. 나는 알베르트의 몸에 밀려 함께 뒤로 넘어갔다.

하지만 바닥에 부딪히기 직전에 알베르트가 내 등을 받친 덕분에 고통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다만 알베르트의 얼굴을 바로 앞에서 보는 기분이란 그다지 유쾌하지는 않았다.

물컹하고 축축한 혀가 입안에 들어왔다. 깨물어 버리려고 생각하다가도 알베르트가 협박했던 내용이 떠올랐다.

취해서 넘어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

알베르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자신의 아래에 깔려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여자를 내려다봤다.

짜증 나 죽겠다는 표정도 사랑스러웠다. 자신을 노려보는 표정도 사랑스러웠다. 언제부터 그렇게 느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녀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웠다.

알베르트는 여자를 내려다보며 암흑가에서 봤던 범죄자들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하나같이 약에 취해 꿈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시 그는 그들을 약에 중독되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한심한 존재들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

약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만약 약에 취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알베르트는 그렇게 생각하며 스텔라를 끌어안았다. 스텔라가 자신의 품 안에서 발버둥 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미약한 움직임도 노아를 들먹이자 금방 멎어 들었다. 굳어 버린 스텔라의 몸에서 그의 몸을 타고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다. 스텔라의 몸은 따스했다.

아주 조금이지만 노아, 그놈에게 감사한 마음도, 불쾌한 마음도 들었다. 놈이 없었다면 스텔라가 지금 이곳에 있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

물론 감사한 마음은 극히 일부일 뿐이고, 불쾌한 쪽이 훨씬 더 크기는 했다. 도대체 그놈이 뭐라고 스텔라가 이렇게까지 하는지. 그것도 놈이 저지른 짓에 대하여 전부 알고도. 정말 도대체 그놈이 뭐라고 놈의 이름을 들먹이면 스텔라가 모든 걸 내려놓지.

스텔라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다가 힘이 빠진 건지, 포기한 건지 곧 얌전해졌다. 알베르트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스텔라의 이마 위에 가볍게 입 맞췄다.

“협박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입도 못 맞출 뻔했습니다. 씁쓸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아니, 잠깐. 씁쓸하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관계의 시작이 그러했으니 당연한 거 아니겠나요.”

그들의 관계가 시작된 것은 수년 전 수도원 기도실에서의 협박이었다. 협박으로 시작된 관계는 협박으로 지속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알베르트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정말로 그의 말대로 씁쓸한 것뿐이었다. 스텔라가 듣는다면 기함할 소리이기는 했지만 이것은 진심이었다.

알베르트는 스텔라의 다리를 양쪽으로 활짝 벌렸다. 반투명한 잠옷 너머로 스텔라의 새하얀 피부가 선명하게 보였다.

알베르트는 상체를 숙여 스텔라와 몸을 겹쳤다. 서로의 배가 맞닿은 기분이란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만족스러웠다. 알베르트는 그저 그 온기가 좋았다.

알베르트의 손가락이 그녀의 아래를 비집고 들어갔다. 자신의 손가락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물고 있는 것만 같다고, 알베르트는 생각했다.

“스텔라.”

“…….”

“대답해요, 스텔라.”

스텔라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그녀는 눈을 꾹 감은 채로 입술을 세게 물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입술이 터져 피가 나올 것 같은데도.

후우. 알베르트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는 자신의 성기를 구멍에 맞추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굵은 물건이 꽉 막힌 입구를 뚫고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는 숨을 급하게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와인을 마구 들이켠 탓에 시야가 명확하지 않아서 스텔라의 표정이 또렷하게 보이지는 않았다.

뭐, 대충 얼굴을 찡그리고 있겠지. 그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허릿짓을 시작했다.

스텔라와 그의 몸이 부딪힐 때마다 그녀의 몸이 앞뒤로 움직였다. 간간이 신음이 섞인 울음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알베르트가 뜨거운 숨을 뱉었다. 이 기분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무언가 텅 빈 것이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어느 순간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길래 아래를 내려다 봤더니 스텔라는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다. 마차를 타고 오느라 피곤했나.

최대한 조심히 데려오라고 코르넬에게 말해 뒀던 것 같은데. 알베르트는 잠시 허공을 응시하다가 웃으며 스텔라의 뺨을 쓰다듬었다.

***

눈을 떴을 때 알베르트는 없었다. 나는 멍하니 허공을 응시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지. 막 깨어난 탓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다들 잠들었을 깊은 밤에 알베르트가 나를 찾아왔고, 그는 가져온 와인을 마셨고…… 아, 그래. 또 짐승 같은 행위가 이어졌었지.

어느 순간부터 의식이 희미해졌다. 아래에서는 알베르트의 물건이 들어갔다 나오기를 끊임없이 반복했다.

바닥은 딱딱했고 등은 차가웠다. 바닥에 러그라도 깔려 있었으면 좀 더 나았을 텐데…….

허리를 움직이는 데 정신이 팔려 있던 알베르트가 문득 내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의 표정이 마치 더러운 것을 본 것처럼 구겨졌다.

목걸이에서는 희미한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알베르트의 눈에는 빛이 보이지 않을 테니 얼마나 다행인가.

그는 내 목걸이를 매만지며 짜증스럽게 말했다.

“도대체 조금의 값어치도 없을 것 같은 이 목걸이는 무슨…….”

그거야 난파선에서 주운 목걸이니까 당연하지. 오래전 알베르트가 내게 선물했던 값비싼 보석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게 당연했다.

하여튼 그게 내가 기억하는 알베르트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그 후로 정신을 잃었다. 며칠 동안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해 피곤함이 쌓인 탓에 잠이 든 건지, 혹은 알베르트의 지나친 성욕을 이기지 못하고 지쳐 기절한 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꿈 한번 꾸지 않고 깊게 잠들었다. 더 이상 잠을 자지 못하겠다고 느낄 정도로 눈이 뻐근할 때쯤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어느새 들어온 하녀가 방을 청소하고 있었다.

이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 기분이었다. 아래가 욱신거리길래 이불을 살짝 들어 보니 아래에는 여전히 알베르트의 것이 분명한 액이 남아 있었다.

뺨에 주근깨가 있는, 어쩐지 어렸을 때의 애니카를 닮은 하녀였다.

“알, 아니, 공작님은?”

“볼일이 있으셔서 외출하셨다고 들었어요.”

마침 알베르트도 저택에 없었다.

그래. 노아. 노아를 보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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