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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66화 (66/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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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르넬은 마차의 문을 열고 얼른 들어가라는 듯이 내게 눈짓했다. 내가 짐마차를 힐끗거리며 망설이자 코르넬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기사들을 시켜 상처를 치료하고 약이라도 먹일 테니 제발 고집 좀 그만 부리십시오. 제 목이 날아가는 걸 보고 싶으신 겁니까?”

    코르넬이 말하는 그 목을 날리는 상대는 아마 알베르트일 것이다. 공작의 사냥개니 뭐니 칭호는 성대해도 알베르트가 코르넬에게 친절하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순순히 마차 안으로 들어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그럼, 쉬십시오.”

    쿵. 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나는 좁은 마차 안에서 겨우 스트레칭을 한 후에 의자에 풀썩 눕듯이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나는 코르넬의 저 쉬라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코르넬은 이 마차에 한 번도 타 본 적이 없는 것 같았다.

    마차를 타고 달리는 며칠 동안 잠을 제대로 잔 날이 단 하루도 없었다. 매일같이 노아의 부상이 악화되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잠들었고, 그 걱정 때문에 금방 깨어났다.

    게다가 아무리 의자가 넓고 푹신하다고는 해도 결국 마차는 마차였다. 침대 위에서 자는 것보다는 훨씬 좁고 불편했다. 마차 안에서는 몇 시간을 자든 한번 자고 일어나면 온몸이 뻐근했다.

    차라리 나도 짐마차에 태워 달라고 코르넬에게 부탁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적어도 짐마차는 먼지가 많기는 해도 내가 타고 있는 마차보다는 훨씬 넓었으니까.

    코르넬이 정말로 기사들을 시켜 노아를 치료해 준 모양인지, 그 다음번에 마차에서 내려 노아에게 데려갔을 때 그의 상태는 훨씬 호전돼 있었다.

    다만 기사들이 무슨 조치를 취한 것인지 아무리 깨워도 노아는 일어나지 않았다.

    괜찮은 거 맞겠지……?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도 노아의 심장은 정상적으로 뛰고 있었고 호흡도 안정적이었다.

    코르넬이 위험하다느니 뭐라느니, 그런 소리를 할 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이렇게 보니 확실히 기사들이 노아를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이 체감됐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 돼도 이상하게 곧 알베르트를 만나야 한다는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마 곧 아리안이 와서 멋지게 우리를 구해 줄 거라는 기대에 차 있는 건가?

    물론 기대를 하고 있기는 했다. 지금은 나도 노아도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냥, 그냥…… 새삼 내가 아리안에게 많이 의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꼈을 뿐이었다.

    나는 몸을 구겨 의자 위에 누웠다. 팔다리를 다 펴기에는 마차가 좁아서 다리를 접어야만 완전히 누울 수 있었다.

    그 후로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아침이 밝으면 노아를 만났다. 그리고 다시 달이 뜨고 다시 달이 졌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드디어 마차가 부드러운 길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어쩐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지금까지는 쭉 거친 길 위를 달렸었는데.

    나는 불안한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기를 쓰며 열리지도 않는 작은 창에 얼굴을 구겨 넣었다. 익숙한 길거리, 익숙한 숲. 그리고 익숙한 마을.

    그토록 돌아오고 싶었지만 절대로 돌아오고 싶지 않기도 했던 곳에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지금까지 태평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니카 공작저에 도착하기 전에 아리안이 와 줄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녀는 뛰어난 실력을 가진 마법사니까, 당연히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리안은 아직 우리를 찾지 못했다. 찾지 않은 건지 찾지 못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덥지도 않은데 갑자기 뺨을 타고 땀이 흘러내렸다. 아마 알베르트를 만나야 한다는 예정된 미래 때문에 긴장해서 흐르는 식은땀일 것이다.

    제발 내가 잘못 본 것이기를 빌었으나 곧 모니카 공작가 집사의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코르넬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게다가 마차도 어느새 멈춰 있었다. 기사들이 목적지에 도착해 하나둘 말에서 내리는 중인지, 주변이 점점 시끄러워졌다.

    그때 짧은 노크 소리가 울려 퍼졌다. 나는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노크 소리의 주인공이 코르넬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도착했습니다.”

    코르넬이 도착했다는 말을 하는 건 출발한 이후로 처음이었다. 결국 그의 말은 모니카 공작저에 도착했다는 뜻이었다.

    이런. 개미가 되어 어딘가로 숨어 버리고 싶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아리안과 같은 마법사가 아니었다. 나는 가만히 앉아 문을 여는 코르넬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

    “공작 전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작이 할 일도 없나? 알베르트는 왜 허구한 날 나를 기다리고만 있는 거야? 코르넬에게 그렇게 따져 묻고 싶었다.

    물론 나도 안다. 이 비난이 섞인 질문을 받아야 하는 건 정확히 말하자면 알베르트라는 걸. 이건 그저 화풀이일 뿐이라는 걸.

    집사 대신 코르넬이 나를 안내했다. 그는 한 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고 성큼성큼 걸어 위층으로 올라갔다. 나는 천천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늪지대 위를 걷는 것처럼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소설 내용처럼 여주랑 만나서 잘 살지, 왜 계속 나를 찾는 거야. 이제야 겨우 조금 잘 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수준이 됐는데 왜 또 나를 찾은 거냐고.

    코르넬은 한참을 걸어가다 복도의 중앙쯤에 있는 문 앞에 섰다. 그는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문을 두드렸다. 마차의 문을 두드릴 때보다는 조금 더 힘 있는 노크였다.

    “공작 전하. 코르넬 스테인입니다.”

    대답이 없었으나 코르넬은 그것이 허락의 표시라도 되는 것처럼 멋대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는 내게 자신을 따라서 들어오라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기사들의 귀환으로 인해 떠들썩한 바깥과는 달리 방 안은 고요했다. 나는 찬찬히 고개를 돌리며 알베르트를 찾았다. 그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자고 있었다.

    “저는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전하께서 깨어나실 때까지 이곳에서 기다리십시오.”

    코르넬은 조심히 문을 닫고 나갔다. 결국 나만 방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서 있게 됐다.

    설마 내가 알베르트가 잠든 사이 또 도망칠까 봐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다는 건가. 나를 동정한다고 생각했는데 또 왜 이렇게 박하게 구는 건지.

    나는 어쩔 수 없이 방안을 돌아다니며 방안 구조물들을 구경했다. 알베르트가 깨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가만히 서 있기도 뭐했다.

    나는 그때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에서 노아를 찾을 때와 같이 붉은 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노아와 일정 거리 이상 멀어졌을 때 목걸이에서 다시 빛이 뿜어져 나온 것으로 보아, 아마 돌에서 빛이 나오는 조건은 다른 돌과의 거리인 것 같았다.

    다행히 빛은 바로 아래쪽을 향하고 있었다. 노아가 아래층에 있다는 뜻이었다. 끔찍한 비명 따위가 들리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문을 하고 있는 것 같지도 않았다.

    나는 조금 안심하고 다시 방 안을 둘러봤다. 방에는 여러 물건이 진열되어 있었다. 노아의 오두막에 있던 그 방과 비슷했다.

    쭉 진열장들을 둘러보다가 나는 어딘가 익숙한 물건을 발견했다.

    이전에 내가 도망칠 때 훔쳤던 것과 비슷하게 생긴 보석이었다. 보석의 윗부분에는 작게 독수리가 새겨져 있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단순히 비슷한 것을 넘어 내가 가지고 있던 것과 거의 똑같아 보였다. 특히 체인 부분의 이 흠집. 오래전 내가 보석을 바닥에 떨어뜨렸을 때 생긴 흠집이었다.

    당시 노아는 나에게 보석의 존재를 들킨 후부터는 내 눈치를 보지 않고 보석을 들고 다녔다. 그는 손안의 보석을 깨뜨려 버리고 싶다는 것처럼 세게 쥐고 며칠 동안 오두막을 들락거렸었다.

    그러다가 어느 날, 보석이 사라졌다. 노아는 더 이상 보석을 가지고 다니지 않았다. 그 후로 나는 그 보석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이후에 노아가 암흑가의 주인이란 걸 알았을 때에야 그가 보석을 암흑가에 두고 왔거나 암흑가의 은밀한 보석상 같은 곳에 팔았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왜냐하면 모니카 공작가를 의미하는 독수리가 새겨진 보석을 아무 보석상에나 팔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훔친 것으로 오해받았을 것이다. 내가 훔친 보석이긴 하니까 결과적으로 훔친 건 맞으려나.

    그런데 이 보석이 왜 알베르트에게 돌아왔는지는 모를 일이다. 뭐,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기는 하다. 알베르트가 암흑가에 쳐들어가서 다시 받아왔는지 돈을 주고 샀는지는 나랑 상관이 없다.

    나는 다시 보석을 진열장에 올려놨다. 하지만 팔을 거둬들이며 소매가 보석에 부딪힌 탓에, 보석이 진열장 바깥으로 미끄러졌다.

    덜그럭, 하는 소음과 함께 보석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얼른 알베르트가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생각했다.

    아, 망했다.

    감겨 있던 알베르트의 눈꺼풀이 천천히 열렸다. 그는 가만히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나를 향했다.

    알베르트가 나를 발견하고는 점점 눈의 크기를 키웠다.

    “스텔라, 당신…….”

    그는 나를 다시 만난 게 감격스럽다는 듯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는데, 나는 도저히 그의 머릿속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저런 반가운 표정을 짓는 거지. 알베르트는 억지로 끌려온 나를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연인쯤으로 생각하고 있는 걸까. 미친놈의 정서는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아니라 그냥 모르겠다.

    아무튼 그는 적어도 5년 동안 나를 찾아다녔을 때만큼 황폐한 몰골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당연한 일이었다. 신전에서 알베르트가 허무하게 나를 놓친 뒤로는 불과 몇 개월밖에 흐르지 않았으니까.

    알베르트는 천천히 나를 향해 걸어왔다. 그 걸음걸이를 보고 나도 모르게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 시체처럼 비틀거리며 걸어오는 알베르트의 모습이 마치 광기에 휩싸인 것처럼 보여서.

    “새장에 가둬 놓으려고 해도 자꾸만 빠져나가 버리고…….”

    나는 당신의 소유물 같은 게 아니라는 말은 이제 더 해 봤자 진부하기만 할 것 같아서 하지 않았다. 이미 여러 번 했던 말이다. 말로 해서 들을 사람이었으면 진작에 들었겠지.

    “다리를 부러뜨려야 도망가지 않을까…….”

    “…….”

    일단 알베르트가 나를 먼 여행길에서 돌아온 연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건 분명해졌다. 세상의 어느 연인이 상대에게 다리를 부러뜨려 버리겠다는 말을 하겠는가.

    “다리가 부러지면 기어서라도 도망가겠죠.”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 내가 하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니잖아……. 나는 무려 공작 앞에서 건방지게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예전이었다면 상상도 못 했을 행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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