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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 할아범. 집에 없어?”
아리안은 작은 오두막의 문을 쿵쿵, 하고 두드렸다. 문은 아리안의 키보다도 훨씬 작아, 그 높이가 그녀의 어깨 정도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문을 왜 이렇게 작게 만들어서는…….”
그녀는 문을 노려보며 혀를 차다가 다시 문을 세게 두드렸다. 안에 있는 사람이 나올 때까지 멈추지 않겠다는 듯이, 그녀는 문을 부숴 버릴 것처럼 계속 두드렸다.
“할아범!”
“나간다, 나가!”
집 안에서 갈라진 목소리가 들려오고 쿵쿵 바닥을 밟고 뛰어오는 소리가 들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문이 벌컥 열렸다.
그곳에는 백발을 짧게 자른 노인이 서 있었다. 아리안은 그를 내려다보며 짧게 휘파람을 불었다.
“어라, 할아범. 못 본 사이에 더 늙은 것 같은데.”
“네놈이 이상하게 늙지 않는 것뿐이겠지!”
“오랜만에 보는데 왜 보자마자 성질이야.”
노인이 아리안의 발을 향해 지팡이를 휘둘렀으나 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가볍게 그 공격을 피했다.
“좀 들어갈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어딜 들어와!”
“르비아! 벨라프가 또 깽판을……!”
아리안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말을 멈췄다.
그 틈을 타 노인은 지팡이로 신나게 아리안을 두들겨 팼다.
“아, 아! 나이를 먹더니 성격만 더 괴팍해져서는!”
“그러게 누가 남의 부인 이름을 찍찍 부르래?!”
르비아. 그것은 수년 전에 죽은 노인의 아내가 가지고 있던 이름이었다.
노인은 한참 아리안을 두들겨 패고 나서야 지팡이를 내렸다. 물론 아리안은 그렇게 두들겨 맞고도 멀쩡하게 노인의 뒤를 따라 집으로 들어왔다.
아리안이 노인을 향해 씨익 이를 드러내며 웃자 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아리안을 째려봤다.
“할아범. 내가 할 말이 있어서 왔는데.”
“…….”
“할아범?”
“할아범은 무슨 할아범이야, 나보다 나이도 많은 게!”
“아, 그래그래 알겠어. 벨라프. 이제 됐지?”
이제 됐냐는 물음에도 노인, 아니 벨라프는 조개처럼 입을 꾹 닫고 불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아리안을 노려봤다.
“어떻게 부르든 불쾌한 건 마찬가지로군.”
“알겠어 할아범.”
아리안이 옆에서 뭐라고 지껄이든 말든 벨라프는 느릿느릿 걸어 흔들의자에 주저앉았다. 그는 햇빛이 잘 들어오는 자리에서 눈을 감고 바닥을 한 번 발로 찼다.
흔들의자가 앞뒤로 흔들거리기 시작했다.
“들여보내 놓고 혼자 감상에 빠져 있는 건 대체 뭐야.”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조금도 달라지지 않은 걸 보고 놀라기는 했다.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내가 그렇지 뭐.”
“부러워. 르비아한테도 그런 능력이 있었다면…….”
“뭐? 능력?”
아리안은 웃음을 터뜨렸다. 즐거워서 웃는 것이라기보다는, 어이가 없어 터뜨린 실소에 더 가까웠다.
“할아범. 이건 능력이 아니라 저주야. 이것보다 더 끔찍한 저주가 세상에 어디 있겠어?”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 중 그녀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미 수명이 다해 죽고 없었다. 그나마 오래 살아남고 있는 것은 벨라프뿐이었다.
벨라프는 아리안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슬슬 죽을 때가 됐는데 왜 죽지를 않는 건지…….”
아리안은 괜히 고약한 말을 뱉었다.
“나한테 저주가 옮기라도 했나 보지. 맨날 나한테 성질만 내더니 쌤통이다.”
하지만 벨라프는 이번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아직도 눈을 지그시 감고 흔들의자가 흔들리는 대로 함께 흔들리고 있었다.
“……할아범, 아니 벨라프. 자지만 말고 내 말 좀 들어 봐.”
“시끄러워.”
“르비아를 처음 만났을 때 말이야. 신기한 향이 났잖아.”
르비아의 이름이 나오자 벨라프는 눈을 번쩍 뜨며 아리안을 쳐다봤다.
“이제야 이야기를 좀 들어 줄 생각이 생겼나 보네. 근데 유감이지만 르비아를 살릴 수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야.”
“……그건 이미 포기한 지 오래야.”
“최근에 내가 르비아하고 비슷한 사람을 만났거든.”
“르비아하고 비슷한 사람이 또 있다고?”
“으음. 최근에 처음 만난 건 아닌가? 하여튼.”
이제 벨라프는 아리안이 서 있는 쪽으로 완전히 몸을 돌린 상태였다.
“르비아보다 향이 훨씬 강하기는 한데, 하여튼 향이 난다는 건 똑같아.”
“지금까지 고생 좀 했겠군그래.”
“했지. 엄청 많이.”
아리안은 마치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콧등을 찌푸렸다. 집에 들어온 후로 쭉 서 있던 그녀는 마침내 앉을 만한 곳을 찾았다.
그 앉을 만한 곳이 자신의 침대라는 것을 깨달은 벨라프는 화를 내며 작은 나무 의자를 그녀에게 던졌다.
“나이도 많이 먹었으면서 힘도 좋네.”
의자가 너무 낮잖아. 아리안은 좁은 의자 위에 겨우 커다란 몸을 구겨 앉으며 불평했다.
“네가 르비아의 향을 없앨 때 썼던 그 이상한 마법 있잖아. 그거 좀 알려 줘.”
“알려 주는 건 어렵지 않다만…….”
“않다만?”
“시전자의 몸에 무리가 갈 텐데.”
“고작 마법 좀 쓴다고 내가 죽기라도 하겠어?”
“죽지는 않겠지. 대신…….”
벨라프에게서 말이 없었다. 웃음으로 가득 차 있던 아리안의 표정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갔고, 허공에서 아리안과 벨라프의 시선이 부딪혔다.
“나처럼 되겠지.”
본래 벨라프는 아리안과 같은 마법사였다. 강하고, 영리하며 초월적인 능력을 가진 마법사.
벨라프가 마법을 잃은 것은 그가 그토록 사랑하던 르비아를 만난 이후였다.
마법사들은 사람을 향으로 구분할 수 있다. 마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감각이 더 민감한 건지, 마법사들만의 고유한 능력인 건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르비아에게서는 한 번도 맡아 본 적이 없는 향이 났다. 그녀는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향 때문에 정신적으로, 그리고 육체적으로 힘겨워하고 있었다.
처음 마탑의 마법사들이 다른 세상이라는 새로운 세상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르비아가 그들의 눈에 띈 탓이었다. 마법사들은 끝까지 르비아를 추궁해 결국 그녀가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알아냈다.
그들이 사는 곳을 제외하고도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마법사들은 세계를 서로 연결하는 마법에 대해 미친 듯이 연구하기 시작했다. 다른 세상이라는 말은 호기심 많은 마법사들에게 퍽 신기한 개념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녀와 사랑에 빠진 벨라프는 다른 마법사들과 뜻을 함께하지 않고 르비아를 위한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녀를 힘들게 하는 향을 없애기 위해.
그 과정을 전부 옆에서 지켜봤던 아리안은 이렇게 생각했다.
꼴값 떨고 있네. 사랑이 뭐라고.
벨라프는 마침내 향을 없앨 수 있는 마법을 발견했고, 곧바로 향을 없앴다. 그리고 태어나기를 마법사로 태어나 평생 마법이 존재하는 삶을 살았던 그는 그날 르비아를 구한 대가로 마법을 잃었다.
벨라프는 르비아를 자유롭게 만들어 줬다며 기뻐하면서도 마법을 잃었다는 슬픔을 이기지 못하고 서럽게 울었다.
“머저리.”
마법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만나 꽤 오랜 시간을 함께했던 동료가 마법을 잃었다는 사실은 아리안에게도 절망적이었다.
그때 아리안은 위로 대신 모진 말을 뱉었고, 벨라프는 다음날 마탑을 떠났다.
아리안이 벨라프와 르비아를 다시 만난 것은 수년이 흐른 뒤였다. 그들은 깊은 숲속에 작은 오두막을 짓고 살고 있었다.
“아리안?”
르비아가 벨라프보다 먼저 그녀를 알아봤다. 르비아를 다시 만났을 때, 아리안은 벨라프가 새로운 여자를 만난 것이라고 착각했다.
그만큼 오랜만에 만난 르비아는 너무나도 달라져 있었다.
저렇게 밝은 사람이었나. 르비아가 입가에 미소를 머금을 때면 사랑스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아리안은 달라진 르비아에게 금방 빠져들었다.
르비아가 세상을 떠났을 때 아리안이 벨라프보다 서럽게 울었을 정도이니, 그만큼 아리안의 르비아에 대한 애정의 정도가 엄청났다는 것이다.
스텔라의 그 향만 없앨 수 있다면 스텔라도 르비아처럼 밝아질 거고, 눈꼬리를 접으면서 웃을 수 있을 거고, 그리고 또…… 하여튼 더 행복해질 수 있겠지. 아리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마법을 사용하면서 산 건 고작 이십 년이었어. 그런데도 한순간에 마법이 사라지니 아직까지도 어색하다고. 그런데 너는 어떻지?”
“그건…….”
“난 네가 정확히 몇 년을 살아왔는지 모른다. 하지만 수백, 혹은 수천 년을 살아왔다는 것쯤은 알 수 있어.”
“음. 맞아. 그건 나도 모르겠어. 500살부터는 세지도 않았거든.”
“그런데 그런 네가 마법 없이 살 수 있겠나? 수백, 수천 년을 함께한 마법을?”
물론 힘겨울 것이다. 힘겹다뿐이겠는가.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고 불편할 테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녀가 스텔라의 향을 없애 주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이건 내 속죄거든.”
“뭐? 그게 무슨 소리지?”
“무슨 소리기는, 말 그대로지.”
“시간이 지날수록 이해할 수 없는 소리만 하는군.”
“그러는 넌 시간이 지날수록 무뚝뚝해지는 것 같아.”
둘은 의미 없는 말싸움을 나눴다. 벨라프도 말을 험하게 하기는 했지만 산속에서의 적적한 생활 중에 말동무가 찾아와 꽤 기쁜 듯이 보였다.
벨라프는 오래전 연구했던 마법에 대해 적어 놓은 종이를 찾아 집을 뒤졌다. 그의 작은 오두막은 아리안의 어지러운 방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나서…… 도대체 어디 있는지…….”
“어떻게 생긴 건데?”
“아마 붉은색 책 사이에 끼워져 있을 거다. 이쪽 어디에 뒀던 것 같은데…….”
그때 아리안이 딱, 하는 소리가 나도록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어디선가 바람이 불어오더니 벨라프가 뒤지던 책장을 훑고 지나갔다.
파묻혀 있던 수많은 책 중 붉은색 표지를 가진 책이 빠져 나와 아리안의 손 위에 떨어졌다. 벨라프가 찾던 바로 그 책이었다.
벨라프는 모든 게 부질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아리안의 손 위에 떨어진 책을 응시했다.
“……마법이 편하긴 편하군.”
“부럽지 할아범?”
“어차피 너도 곧 잃을 마법. 지금 신나게 즐기는 게 좋을 거다.”
“아직 안 잃었으면 됐지 뭐.”
“뚫린 입이라고 말은 잘하는군.”
벨라프는 주머니에서 안경을 꺼내 쓰고 인상을 쓴 채로 한 장 한 장 책을 넘겼다. 책의 내용이 전부 벨라프의 글씨로 적혀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쓴 책이 분명했다.
“여기 있군.”
그는 책 사이에 끼워져 있던 종이를 꺼내 아리안에게 건넸다. 가장자리가 누런 것을 보니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도대체 몇 년 전이지. 벨라프가 스무 살일 때였으니, 60년도 더 지난 때였나. 아리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종이를 받았다.
“허? 뭐가 이렇게 까다로워?”
“그럼 그런 복잡한 마법을 사용하는 데 마법을 사용할 네 몸뚱이와 주문만 있으면 될 거라고 생각했나?”
하지만 생각보다 필요한 재료가 많았다. 뭐, 정령의 눈물? 이건 지금까지 살면서 나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건데.
아리안이 종이에 적힌 재료를 읽어 내리며 툴툴거리자 벨라프가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고생깨나 하겠군.”
그 말을 마지막으로 벨라프는 아리안을 집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재료 목록을 읽어 보는 사이에 집에서 내쫓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