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철컥, 하고 바지 버클이 풀리는 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바지 사이로 드러난 테오필의 물건이 위아래로 껄떡거렸다.
?
그것을 보고 얼굴을 찌푸릴 뻔한 것을 겨우 정신력으로 참아 냈다. 대신 나는 눈을 반쯤 감아 시야를 흐리게 만드는 길을 택했다.
?
“당신이 무엇이길래, 공작에 몽마에 암흑가의 주인까지 당신에게 빠져 있는지.”
?
아. 팔에 테오필의 손이 닿았다. 그는 한 손으로 내 팔을 짓누르며 나를 침대에 눕혔다. 바로 앞에 테오필의 얼굴이 보였다. 너무 가까운 거리인지라 눈을 반쯤 감아도 얼굴이 생생하게 보였다.
?
나는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테오필과 시선을 맞췄다. 테오필의 행동 하나하나에는 배려라고는 조금도 깃들어 있지 않아 거칠었다.
곧이어 아래에 끔찍한 고통이 느껴졌다. 아래를 풀어 주지도 않은 채로 자신의 물건을 삽입한 것이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고통을 참았다.
?
테오필이 움직일 때마다 뻑뻑한 아래가 비명을 지르는 것만 같았다. 나는 고통을 참기 위해 버티는 척하며 테오필의 팔에 깊게 손톱을 박아 넣었다.
?
그러나 성기사의 몸에 생긴 상처는 일부러 치료하지 않아도 금세 스스로 회복됐다. 테오필은 그런 자잘한 상처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
언제까지 버텨야 기회가 오려나. 테오필의 심장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하지만 앞에서 찌른다면 단검을 휘두르기도 전에 그에게 막힐 것이 분명했다.
?
가장 정확한 방법은 그를 두 팔로 안은 채 뒤에서 심장을 찌르는 것이라고,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다만 아직 틈이 보이지 않았다.
테오필은 홀로 허릿짓을 하다가 마침내 움직임을 멈추고 깊은숨을 뱉었다.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동자는 고요했다.
그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보다는 조소에 가깝기는 했지만.
?
그 비웃음이 나를 향하는 것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테오필의 웃음은 마치 그 스스로를 비웃는 것처럼 보였다.
?
툭. 무언가 묵직한 것이 어깨 위로 떨어졌다. 테오필이 자신의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댄 것이었다. 벌레가 몸 위를 기어 다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
당장 이 역겨운 머리를 치우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지금이 바로 내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기회였다.
?
테오필을 끌어안는 것처럼 두 손을 그의 등 위에 올렸다. 그리고 한 손만을 이용해 조심히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러자 찌르기 쉽게 오른손 안에 딱 단검이 들어왔다.
?
후. 망설일 시간 따위는 없다는 것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도 모르는 사이 몸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
아니, 떨어서는 안 된다. 이제 완전히 마음을 정했다. 이곳에서 나갈 수 있는 길은 이것밖에 없고, 내가 해야 하는 일도 이것밖에 없다.
?
나는 테오필의 심장을 찌르기 위해 단검을 높이 들었다.
?
하지만 나는 그때 조금도 망설이지 말고 바로 테오필을 찔렀어야 했다. 잠시의 망설임은 곧 가까운 길을 멀리 돌아서 가게 만들었다.
?
검이 테오필의 심장을 향해 비스듬하게 곤두박질치는 순간, 테오필이 다시 몸을 일으켰다. 단검은 테오필의 심장이 아닌 다른 곳을 찌르고 말았다.
?
‘그’ 테오필이 비명을 질렀다. 상처에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가 단검에 찔린 옆구리를 부여잡고 침대 위를 굴렀다.
?
나는 당연히 그가 바로 성력을 이용해 부상을 치료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기회가 물거품이 됐다고 생각하며 망연자실했다. 하지만.
?
“대체, 쿨럭. 지금 뭘로, 찌른, 거야.”
?
그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으며 왈칵 피를 토했다. 옆구리를 감싼 테오필의 손에서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기는 했으나 옆구리는 여전히 끔찍하게 찢어진 상태였다.
?
“상처가 낫지를 않, 윽…….”
?
그 순간 아직 기회가 남아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떨어뜨렸던 검을 다시 손안에 쥐었다. 쇠로 만들어진 손잡이는 차가웠다.
?
제대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테오필의 숨을 완전히 끊어 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입술을 물어뜯으며 매섭게 나를 노려봤다.
?
“감히…… 이딴 재밌지도 않은…… 장난을…….”
?
젠장. 실로 대단한 정신력이라고 칭찬해야 하려나. 그는 피를 뚝뚝 흘리면서도 다리에 힘을 주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과정에서 몇 번 휘청거리기도 했다.
?
검을 쥔 손은 성큼성큼 다가온 테오필에게 금방 잡히고 말았다. 그는 내 손에서 단검을 빼앗은 후 멀리 던져 버렸다.
?
날아간 단검은 벽에 부딪혀 바닥에 떨어졌다.
“저런 무기는, 어디서, 구했지……?”
“…….”
?
그는 쥐어짜듯 말을 하는 것도 힘겨워 보였다.
“그 몽마, 하아. 놈이 주고 간 건가…….”
?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시야를 가리자 테오필은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넘겼다. 한 바퀴를 구른 테오필의 눈동자가 다시 나를 향했다.
?
쯧. 테오필은 나지막이 혀를 찼다. 그의 시선을 오롯이 한 몸에 받게 되자 몸이 덜덜 떨려 왔다. 이렇게 표독한 표정의 테오필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
“자꾸만 다른 생각을 하는 이 머리통을 어떻게 해야 하지…….”
?
테오필이 내 머리를 툭툭 건드리며 중얼거렸다.
?
“목을 졸라서 다시는 아무 말도 못 하게 해야 하나.”
“…….”
“그래, 그거야. 그거 좋군.”
?
뭐? 이어질 테오필의 행동에 대비하기도 전에 그의 억센 손이 내 목을 감쌌다.
?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금방이라도 목이 부러질 것만 같았다.
?
이러다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이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것처럼 내 목을 쥔 테오필의 손목을 두 손으로 감쌌다.
?
그리고 곧장 검은 문양이 그려진 손바닥을 문질렀다. 그러자 내 손과 이어져 있던 테오필의 손목 안에서 단검이 나타났다. 내 것이 아닌 살가죽을 꿰뚫는 소리가 들렸고, 바로 테오필의 신음이 이어졌다.
?
테오필은 손목을 붙잡고 비틀거렸다. 이번에도 그의 성력이 통하지 않는 상처였다.
?
피를 너무 많이 흘린 탓인지 테오필은 잠시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쓰러졌다. 특히 손목에서 지혈하지도 못할 정도로 많은 양의 피가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그에게 다가갔다. 만약 그를 죽이게 된다면 마지막 인사로 해 주고 싶은 말이 많았었다.
“나를…… 죽, 이면…… 당신은 살인자가 되는 거야…….”
“…….”
“성기사를…… 신의 저주, 를 받고 싶어……?”
?
그 말이 내 머리를 세게 때린 것만 같았다. 살인자, 그리고 신의 저주. 만약 내가 테오필을 죽이면 신은 나에게 저주를 내릴까?
신은 공평하지 않아 저 속이 뒤틀린 괴물에게는 성력이라는 축복을 선물했고 나에게는 비극이라고 부를 만한 상황을 선물했다. 내가 자신의 사랑하는 아이를 죽였다는 걸 알면 나에게 저주를 내릴까?
“…….”
?
검이 테오필의 살을 뚫고 들어갈 때마다 살을 찢는 감각이 생생하게 느껴졌었다. 이미 죽은 동물의 고기를 자르는 것과는 다른 감각이었다.
?
나는 단검을 쥔 손을 내려다봤다. 아까 잠시 테오필의 손목을 잡고 있었던 탓에 손은 테오필의 피로 흥건했다.
뒤늦게 테오필이 한 말이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만약 그를 죽이면 신의 저주를 받지는 않더라도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죄책감 때문에 평생 괴롭게 살 것이다.
정신이 멍했다. 내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잘 모르겠다. 눈앞을 물들인 붉은 피는 여전히 비현실적이었다.
?
단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려 왔다. 꽤나 용감하게 테오필을 찔렀던 당시의 격한 감정은 사그라든 지 오래였다.
?
내가, 사람을 찔렀다. 테오필은 이미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지금 그를 찌른다면 그를 완전히 죽일 수 있을 것이고 지금 그를 구한다면 그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테오필이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서운 건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그를 처음 찔렀을 때는 오히려 후련했으니까.
?
그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두려운 걸까. 앞으로 꼬리표처럼 나를 따라다닐 살인자라는 명칭이 무서운 건가?
?
아마 이게 맞는 것 같았다. 살인자라고 불리고 싶지 않았다. 이런 쓰레기를 죽였다는 이유로 처벌받고 싶지도 않았다.
?
테오필이 저지른 죄악들에 비하면 내가 한 짓은 비교적 가벼운 죄 아닌가? 그렇게 애써 자기합리화를 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어쨌든 이대로 두면 나는 사람을 죽인 살인자가 될 것이었다.
?
내 행동에 대해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 내가 테오필 때문에 겪은 고통들, 그리고 앞으로 겪을 고통이 너무 억울할 뿐이었다.
?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도망칠까.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철문이 굳게 닫혀 있는 탓에 도망칠 수도 없었다.
?
게다가 피로 물든 단검은 이제 제 쓸모를 다했다는 듯, 손바닥을 아무리 문질러도 사라지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 있었다.
문을 열고 도망치려는 시도도 해 봤으나 애초에 안쪽에는 문고리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테오필도 항상 나갈 때는 성력을 이용해 문을 열었었다.
?
나는 그저 기다렸다. 다른 성기사들이 이상함을 느끼고 방에 들어와 나를 체포할 것을 말이다.
?
코를 찌르던 피비린내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나는 피로 얼룩진 손을 이불에 문질러 닦았다. 피가 딱딱하게 굳어 잘 닦이지 않았다.
“끄으…….”
침묵 속에서 테오필이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나는 묵묵히 그것을 지켜보고만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죽을 테다.
?
방 안에는 시간을 알 수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
덜컹.
?
무거운 철문이 열리는 소리에 다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테오필이 오랫동안 나오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성기사들이 들어온 것일 테지.
?
그들이 우악스럽게 나를 체포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런 소리도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
그제야 나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백색 갑옷을 입은 성기사들이 아니라, 노아였다.
?
노아? 노아라니. 도대체 노아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
노아는 입을 꾹 다물고 묵묵히 나를 지켜봤다. 나는 입을 달싹이다가 먼저 말을 건넸다.
?
“……여기는 왜 왔어.”
“……누나를 찾으려고 왔지. 누나가, 너무 보고 싶으니까.”
“가. 다시 돌아가.”
?
하지만 노아는 발에 못이 박힌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
“가, 가라고. 가란 말이야!”
?
내 입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마치 애원하는 것처럼 들렸다.
?
애초에 중앙 신전의 삼엄한 경비를 뚫고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만난 성기사들은 전부 기절시키고 온 건지 노아의 뒤로 바닥에 쓰러져 있는 성기사들이 보였다.
?
저렇게 하면 침입했다는 사실을 금방 들킬 텐데. 나도, 노아도 들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
“돌아가. 이러다가 너도 잡힌다고.”
?
네 이기심이 밉기는 하다. 하지만 네가 겨우 나를 찾으러 왔다가, 나를 이유로 체포된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
노아는 등을 돌려 돌아가는 대신 걸음을 크게 벌려 내게 다가왔다.
쓰러져 있던 테오필도 천천히 고개를 들어 노아를 바라봤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 힘겹게 말했다.
?
“살…… 려……. 나를…… 살려…….”
노아를 죽이겠다고 협박하던 테오필이 이제 그에게 자신을 살리라고 애원에 가까운 명령을 하고 있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를 노려봤다. 태도가 저렇게 쉽게 바뀔 수 있다니, 인간이라는 것은 얼마나 간사한가.
?
그러나 노아는 말없이 바닥에 떨어진 단검을 주웠다. 테오필의 피로 얼룩져 있는 그 단검을.
도대체 저 검으로 무슨 짓을 하려는 거지. 마음속으로 질문을 던지는 순간, 노아가 검을 머리 위로 들어 올려 힘껏 테오필의 머리를 찔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