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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40화 (40/100)

-40-

“부르셨습니까, 성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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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빙긋 웃으며 한쪽 무릎을 꿇어 눈앞의 교황에게 예의를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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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예, 성하. 하문하십시오.”

“경이 국경 지대에서 한 여자를 데리고 온 이야기가 신전에 자자하더군.”

“그렇습니까.”

“경, 제정신인가?”

교황이 미미하게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이어지는 타박에도 테오필은 여전히 당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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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이 갑자기 성기사들을 마물 토벌에 보내라고 했을 때도 믿고 보냈네. 그런데 도대체 이게 무엇인가? 신전에 여자를 데려오다니?”

“아니요, 성하. 그게 아니잖습니까.”

“무슨 말이지.”

“저를 믿으신 것이 아니라 저를 두려워하신 것이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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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침묵이 일었다. 교황은 눈을 매섭게 뜬 채 테오필을 노려보고 있었고, 테오필은 그저 웃으며 이에 맞설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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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몽마에게 고통받는 아가씨가 있길래 도움을 드린 것뿐입니다.”

“그 여자를 신전까지 데려올 필요는 없었을 텐데.”

“또 몽마에게 시달리실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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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하든 테오필, 그는 순순히 타인의 말을 인정하는 성격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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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으신 듯하니,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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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고개를 살짝 숙이는 것만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교황에게 등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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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 아주 기고만장하군.”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지금 성하의 강력한 권력을 이룩하는 데에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이 바로 저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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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마지막으로 테오필은 그대로 알현실을 빠져나왔다.

망할 영감 같으니라고. 늙더니 말이 많아졌군. 테오필은 다른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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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스텔라의 방으로 향하던 도중, 한 성기사가 급하게 그를 찾았다. 어느 귀족이 찾아왔는데 그가 만나 봐야 할 것 같다는 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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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 귀족이라. 오늘 나를 찾아올 귀족이 있던가.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응접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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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온 것은 흑발과 푸른 눈동자를 가진 훤칠한 남자였다. 흑발에 푸른 눈동자? 왜인지 익숙한 외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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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역시나, 그의 예상대로였다. 남자는 자신의 누나를 찾으러 신전에 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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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의 남자가 찾고 있다는 그 누나는 스텔라일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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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자가 바로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소리였다. 범죄자가 뻔뻔하게도 제 발로 신전에 들어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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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나가라. 너 같은 더러운 것은 신전에 출입할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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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있으면 스텔라, 그녀가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녀를 내어 달라니. 말도 안 되는 요청이었다.

말 많은 교황부터 멋모르고 신전에 찾아온 어린 범죄자까지. 그날따라 그를 귀찮게 하는 것들이 많았다.

시답잖은 것들이 그를 귀찮게 만드는 것이 불쾌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짜증이 마구 치밀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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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노아를 쫓아낸 후 곧장 스텔라의 방으로 향했다. 문을 박차듯 열고 들어가자 문과 벽이 서로 부딪혔다. 그 소리에 놀란 스텔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올려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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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스텔라를 넘어뜨리고 그녀를 탐했다. 거친 말을 쏟아붓고 목덜미를 물어뜯어 상처입혔다.

“스텔라, 오늘은 제가 아주 재미있는 이야기를 가져왔는데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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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그녀는 자신이 아끼는 동생이 신전에 찾아왔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만약 그 소식과 함께, 그를 죽여 버리겠다고 말하면 눈앞의 이 여자는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오늘 당신이 그렇게도 아끼는 동생이 찾아왔습니다.”

예상대로 스텔라는 놀라서 눈을 크게 뜨며 테오필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아직 앳된 티를 버리지 못한 어린 청년이더군요,”

그리고 그는 일부러 입꼬리를 끌어올려 간사한 괴물처럼 웃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텔라가 그의 의도를 알아챌 수 있도록.

“누나를 찾으러 왔다는 모습이 얼마나 순수하던지.”

후후. 테오필의 입에서 바람이 새는 듯한 웃음이 나왔다.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스텔라.”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지금 돌려서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동생을 죽이지 말아 달라고, 살려 달라고 애원해 보라는 겁니다.”

사랑하는 동생이라. 테오필은 자신이 말하고도 기분이 바닥까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누나를 찾으러 왔다고? 웃겨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그렇게 애절한 표정으로 누나를 찾으러 왔다고 말하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놈이 말한 만큼 간단한 관계는 아닌 것 같았다.

도대체 둘의 관계는 무엇일까. 무슨 일이 있었길래 둘 사이의 감정이 그렇게 복잡하게 짜여 있는 거지?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교황을 만났을 때, 그리고 노아를 만났을 때에 이어 테오필의 기분이 더욱 아래로 가라앉았다. 쯧. 그가 혀를 차자 스텔라가 움찔 몸을 떠는 모습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고 그는 생각했다.

아, 그래. 이 여자한테 풀면 되겠다.

테오필은 그녀에게 손을 뻗었다. 하얀 목은 한 손으로도 충분히 압박을 가할 수 있을 정도로 가늘었다.

스텔라가 발버둥 치자 그는 웃음을 터뜨리며 속삭였다. 스텔라, 발버둥 치는 게 벌레 같아요. 계속된 압박에 스텔라의 눈이 붉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죽이려는 생각은 없었다. 벌써 죽이기에는 아직 마음에 드는 모습을 충분히 보지 못했으니까.

끝내 스텔라는 숨통을 조이는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테오필은 눈물로 얼룩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며 만족스럽다는 듯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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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그의 앞에서 절대 울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던 그녀가 결국 서러운 것을 전부 뱉어 내듯 울었다. 테오필은 그것이 좋았다. 그의 영향으로 그녀가 변화하는 것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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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서럽게 우는 스텔라를 내버려 두고 방에서 나왔다. 오늘은 즐겁게 잠자리에 들 수 있을 것 같다고, 그렇게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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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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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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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테오필에게서 벗어나거나 그를 죽이기 전에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런데 너무 힘들고 서러워서 울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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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는 최대한 울음을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여기는 꿈속이니까 조금은 울어도 괜찮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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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실에서 눈물을 다 흘려 버린 탓인지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것 때문에 더 답답했다. 이 꽉 막힌 마음을 풀 방법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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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는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도 없으니, 이 답답한 마음이 풀리기를 바라며 소리를 지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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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보이는 벽을 두드리며 소리를 지르는데, 갑자기 꿈속임에도 등을 타고 온기가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뒤에서 나를 끌어안은 살로스의 얼굴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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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녀님…….”

“……살로스.”

“미안해, 내가 미안해……. 내가 도와줄 수가 없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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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답함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으나 살로스가 말하는 것을 듣기 위해 잠시 입을 다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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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말라고도 안 할 거고 소리 지르지 말라고도 안 할 거야. 그런 위로는 쓸모가 없는 걸 아니까. 그냥, 너무 괴로워하지는 마. 수녀님이 더 힘들어지는 길이니까…….”

살로스는 그렇게 한 문장씩 조심히 말을 꺼냈다. 나는 그저 가만히 그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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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왜 그랬었는지 모르겠어. 처음 만났을 때 내가 그러지 않았다면 지금이랑은 상황이 달랐을 텐데…….”

“…….”

“미안해. 만약 시간을 돌릴 수 있으면 절대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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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스가 하는 말은 왜인지 작별 인사같이 느껴졌다. 마치 서로 악감정을 가졌던 이들이 떠나갈 때 감정을 정리하는 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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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나 일단 가 볼게. 잘 있어, 수녀님.”

“…….”

“아니, 아니지. 이번에는 좀 다르게 불러 보려고 했는데.”

“…….”

“안녕, 잘 있어. 스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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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처럼 이야기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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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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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스에게 제대로 인사를 건네기도 전에 암흑이 찾아왔다. 이는 곧 살로스가 내 꿈속에서 떠났음을 의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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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아침이 찾아오지는 않았을 텐데, 왜 벌써 가 버린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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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참 암흑 속에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역시나 창문이 없어 나를 비추는 것은 희미한 촛불 빛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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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에 불을 더 붙여 방 안을 밝혔다. 내부가 밝아지자 서서히 공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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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이 흐른 몸은 씻지 못해 찝찝했다. 물수건으로라도 몸을 닦아 내기 위해 몸을 일으키는데, 손바닥의 검은 문양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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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잠시만. 검은 문양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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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에는 십자 모양의 검은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십자 모양이라기보다는 손잡이가 달린 검의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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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뭐지? 문질러 닦으면 지워질까 싶어 옷 소매로 문양을 세게 문질렀다.

그러자 문양은 금세 지워졌다. 하지만 문양이 지워지는 동시에 허공에서 예리한 단검이 나타나 바닥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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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이 조금만 옆에 있었다면 단검을 맞아 잘릴 뻔했다. 나는 발이 잘리지 않은 것에 대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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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이 검은 또 뭐지. 갑자기 허공에서 튀어나오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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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검의 중앙에는 살로스의 눈동자 색을 닮은 보라색 보석이 박혀 있었다. 나는 유심히 그 보석을 관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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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한 일이었다. 손바닥 위의 문양이 사라지고 대신 단검이 나오다니. 그 검은 문양과 이 단검이 무슨 관련이라도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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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다시 문양이 있던 자리를 다른 손으로 문질렀다. 이렇게 갑자기 흔적 하나 없이 사라질 수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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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다시 단검으로 시선을 돌렸을 때, 이미 단검은 사라지고 없었다. 갑자기 나타났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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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쯤 나는 문양과 단검의 관련성을 눈치챘다. 단검이 사라지자 손바닥에는 다시 문양이 나타났다. 다시 문양을 문지르자 단검이 나타났고 또 다시 손바닥을 문지르자 단검이 사라졌다.

아마 이 문양이 위치한 부분을 문지르면 단검이 사라지고 나타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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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테오필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만약 그가 방심한 틈을 타 이 단검으로 공격하면, 그를 죽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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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까지 쭉 테오필을 죽이고 싶었다. 그가 나를 이곳에 데려왔을 때부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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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막 막상 기회가 오니 두려웠다. 과연 내가 테오필을 죽이고도 들키지 않고 도망칠 수 있을까? 만약 성기사들로부터 도망쳐도 과연 죄책감으로부터는 도망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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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아니야. 뭘 고민하는 거야. 이건 신께서 주신 기회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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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죽이는 거다. 테오필이 들어오면 그를 죽이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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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인지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죄를 저지른 이를 죽이려는 것뿐인데 왜 이렇게 손이 떨리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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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테오필이 저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오기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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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꽤 지난 뒤, 문틈 사이로 테오필이 걸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걷는다고 하기에는 조금 빨랐다 뛰고 있다고 하기에는 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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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음 소리가 완전히 가까워졌을 때, 나는 손바닥에 그려진 문양을 다시 한번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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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정신이 나간 것처럼 미친 듯이 웃었다. 예상을 벗어난 그의 행동은 나를 당황시키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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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도대체 어떻게 행동했기에 몽마마저도 당신에게 미치게 만들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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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마구 지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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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가, 인간을 위해 목숨을 바치다니. 그런 일이 가능할 줄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스텔라. 그 몽마가 제 꿈에 찾아왔습니다, 그 멍청한 몽마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십니까? 다짜고짜 제게 덤벼들지 뭡니까. 자신이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

“어떻게 하면 저도 당신에게 미칠 수 있습니까? 그 다른 세계의 기운을 계속 들이키면 가능할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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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걸 왜 나한테 물어. 나는 당장 단검을 꺼내고 싶은 충동을 겨우 눌러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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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모르죠. 살로스처럼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관계를 가지면 미칠 수 있을지도.”

“……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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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헛웃음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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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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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소설 속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악당처럼 비소를 뱉었다. 테오필이 셔츠 단추를 풀며 다가오는 모습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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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텔라, 당신. 오늘따라 이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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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테오필이 내 생각을 꿰뚫어 본 줄 알았다. 나는 거세게 두근거리는 심장을 애써 진정시키며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래서 싫어요?”

“글쎄요. 그건 봐야 알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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