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도망치세요, 아가씨-39화 (39/100)

-39-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

대답을 바라지는 않았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져서, 스스로에게 한 말이었으니까.

?

하지만 오히려 살로스는 자신이 내 상황을 대신 겪고 있는 것처럼 이를 악물고 괴로워했다. 역시 그는 몽마인 것에 비하면 너무 감정적이다.

?

??“내가 뭐라도 할게. 내가 그놈을 이길 수 없더라도 일단 어떻게든, 무엇이든 일단 해 볼게.”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걸 알면 그냥 아무것도 하지 마. 무능력한 상태에서는 괜히 나서 봤자 손해를 볼 뿐이야.”

??“아니면,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내가 실체화를 해서 문을 부술게. 수녀님이 도망칠 수 있도록.”

??“멍청한 소리 하지 마. 테오필을 죽이지 않으면 뭘 하든 전부 원래대로 돌아갈 게 분명하니까.”

??

테오필은 살로스의 강력한 결계를 뚫고 살로스의 기운을 느낄 정도로 모든 기운을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어디로 가든 내 기운, 혹은 살로스의 기운을 따라 따라올 것이다.

?

내가 무너지는 것을 보기 위해서.

?

??“그냥 기다려.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으면 언젠가 작은 기회라도 오겠지.”

하지만 살로스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괴롭다고 이렇게 서럽게 우는 건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그냥 일단 너는 살아 있기만 해. 네가 죽도록 밉기는 해도 지금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존재가 너밖에 없어.”

??“……응.”

??

살로스는 아주 조심스럽게 나를 끌어안았다. 그리고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내 어깨에 비볐다. 옷이 엉망이 된 것을 보고 짜증을 내려고 했으나 곧 이곳이 꿈속이라는 걸 깨닫고 한숨만 푹 내쉬었다.

?

어느 정도 힘을 회복한 건지 살로스는 매일 꿈속에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꿈속에서의 시간을 테오필을 욕하는 데에 쓰곤 했다.

항상 대화를 이끄는 것은 나였고 들어 주는 것은 살로스였다.

?

최근 들어 살로스는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처음 만났을 때보다 훨씬 차분해졌고, 말수가 줄어들었다. 처음 만났을 때의 말이 많던 살로스가 상상이 되지 않을 지경이었다.

?

처음 그의 변화를 마주했을 때는 조금 어색했다. 시끄럽고 부산스러운 살로스에게 익숙해진 탓이었을까.

?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변화한 그에게 적응했다. 몽마가 감정을 가지고 기뻐하는 것도, 슬퍼하는 것도 이제는 별로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

??“네가 오두막에서 했던 말이 생각나네.”

??“내가, 했던 말?”

??“나를 삼켜 버리겠다면서 떵떵거리던 그때 말이야.”

??

삼키기는 무슨. 나는 허탈하게 웃었다. 입에서 노인의 것을 닮은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

??“……그때는 뭣도 모르고.”

??“수천 년을 살아왔다고 했으면서 철이 덜 들 수가 있나.”

??

그를 탓하는 종류의 말이기는 했으나 절반 정도는 농담이었다. 살로스도 농담이라는 것을 눈치챘는지 내 타박에도 그다지 속상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

??“요즘도 매일 날 지켜보고 있어?”

살로스가 고개를 저어 부정을 표했다. 이유를 물었으나 그는 꾹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

?“그래, 뭐. 주제에 프라이버시가 있다는 게 웃기기는 하지만 존중은 해 줄게.”

??“뭐? 주제에? 수녀님 완전 너무한 거 알아?”

??

그날은 왜인지 부쩍 꿈속에서 기분이 좋았다. 꿈속에서 살로스와 가볍게 장난도 쳤고, 소소한 대화도 매끄럽게 진행됐다.

?

하지만 꿈에서 깨어났을 때가 문제였다. 무거운 철문을 열고 들어온 테오필은 나를 밀쳐 침대 위로 쓰러뜨렸다.

?

나는 여전히 그때 테오필이 왜 그렇게 분노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

아니, 애초에 미친놈의 정서와 그 이유 따위는 이해하고 싶지도 않았다. 테오필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할 뿐, 그 행동에 논리는 전혀 없었다.

그냥 이후에 내가 본 그의 행동이 테오필에 대한 나의 살의를 더 키워 줬을 뿐이었다.

?

***

?

노아는 그의 앞으로 새로 들어온 서류를 한 장씩 넘기며 읽었다.

?

두껍게 쌓인 서류 중 절반의 절반 정도는 스테판이 올린 서류였다. 그것들은 전부 스텔라의 행방에 관한 것들이었다.

?

그는 스텔라를 찾더라도 알베르트에게 보고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는 스텔라를 공작에게 넘기느니 차라리 암흑가를 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

애초에 암흑가에 대한 애정은 조금도 없었고, 암흑가를 유지하라는 반 미리엄의 유지를 이을 생각도 버린 지 오래였기 때문에.

?

다만 이번에는 흔적이 너무 없었다. 이전에 스텔라를 찾지 못했던 것은 당시 그가 암흑가를 얻기 전이었다고 치자. 하지만 지금은?

?

지금 그는 암흑가를 손에 넣은 후였다. 몇 달 정도만 허비하면 금방 스텔라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스텔라가 노아를 떠나던 그때, 그녀는 머리에 뿔이 달린 이상한 남자가 함께였다. 그리고 그들은 마법으로 추정되는 무언가를 사용해 어딘가로 사라졌다.

?

그 무언가 때문에 흔적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어디로 갔는지는커녕 언제 어떻게 어느 길을 따라 이동했는지조차도 알 수 없었다.

?

도대체 어디로 간 거냐고. 서류는 읽어 봤자 거짓된 증언들뿐이었다. 누나를 봤다면서. 증언하는 놈들은 죄다 거짓말쟁이들뿐이다. 노아는 쓸모없는 서류를 던져 버리며 그렇게 생각했다.

?

온 제국을 뒤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국경 지대와 같이 일반인들의 출입이 제한된 공간도 있었으니.

?

평소였다면 스텔라가 그런 곳까지 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마법을 사용해 이동했다. 적어도 누구나 갈 수 있는 평범한 곳으로 가지는 않았을 테다.

?

대체 누나는 어디로 간 걸까. 노아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증언이라고 올라온 것들은 죄다 믿을 수 없는 내용들뿐이니, 도대체 무엇을 믿어야 할까.

?

그때, 누군가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그의 집무실에 쳐들어왔다. 노아는 얼굴을 완전히 구기며 집무실에 침입한 상대를 노려봤다.

문을 열고 들어온 상대는 스테판이었다. 그는 급하게 뛰어온 건지 꽤나 힘들어 보였다.

?

다른 이였으면 이미 성을 냈을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침입자가 스테판이라는 것을 확인한 노아는 한숨을 내쉬는 것으로 대체했다.

?

노아가 보고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까딱였다.

?

??“시, 신전. 신전입니다. 중앙 신전으로 가 보셔야 합니다.”

??

중앙 신전? 갑자기 중앙 신전이라니?

?

하도 급하게 들어오길래 무슨 중대한 소식을 가져온 줄 알았더니 시답잖은 소리뿐이군. 노아는 목소리를 낮게 깔고 으르렁대며 경고했다.

?

??“스테판. 장난 상대를 잘못 골랐군. 안타깝게도 내게는 사람을 찾겠답시고 신에게 기도하는 취미는 없는지라.”

??“그게 아닙니다. 중앙 신전의 성기사들 중 친분이 있는 자가 있는데, 스텔라 님의 초상화를 보여 줬을 때 거의 비슷한 얼굴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또 들을 가치도 없는 거짓 증언을 가져와 나를 귀찮게 하는 거라면, 이번에는 각오해야 할 것이다.”

??

긴장한 스테판의 목울대가 크게 꿀렁거렸다. 그만큼 노아의 얼굴과 목소리는 피곤과 분노에 절어 있었다.

?

??“성기사단의 단장이 국경 지대에서 데려온 한 아가씨가 있는데, 몽마에게 시달리던 것을 성기사 단장이 구해 준 모양입니다.”

??

그 말을 듣자마자 노아는 박차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날 그때, 스텔라가 도망치기 직전 대화하고 있던 남자의 외양이 떠올랐다.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았으나 머리에 어두운 빛깔의 커다란 뿔이 달려 있었다.

국경 지대, 그리고 몽마.

그가 뒤져 보지 못한 장소들 중 대표적인 곳을 한 곳 대라고 한다면 그는 분명 국경 지대라고 답할 것이다.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기도 했고, 위험하니 스텔라가 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탓이었다.

??“자세히 말해 보도록.”

??

그제야 노아는 스테판의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 볼 마음이 생겼다. 스테판은 성기사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부 노아에게 전했다.

?

노아는 곧장 말을 몰고 중앙 신전으로 향했다. 이동하는 동안 황실에서 운영하는 이동 마법진을 이용하니 도착하는 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

그러나 문제는 마지막에 생겼다. 성기사 단장을 만나게 해 달라는 말에도 성기사들은 그를 막아설 뿐이었다.

?

젠장. 너무 급하게 오느라 이런 일을 생각 못 했다. 스테판을 함께 데리고 왔으면 좋았을 텐데.

?

쯧. 노아가 혀를 찰 때마다 성기사들이 몸을 움찔거렸다.

?

그는 스스로 암흑가의 주인임을 밝히는 일이 없었다. 그러므로 성기사들은 노아의 고급스럽고 깔끔한 옷을 보고 귀족이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

제아무리 황제와 교황이 독립적 권력 주체라고는 해도 완전히 서로를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특히 성기사를 포함한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성력을 대가로 귀족들에게 불법적으로 재산을 받는 경우가 허다했다.

?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단장님께 여쭙고 오겠습니다.”

??

성기사 단장에게 다녀오겠다던 성기사는 정말로 금방 돌아왔다. 그는 단장의 허락을 받았다며 노아를 신전 안쪽으로 안내했다.

?

바로 스텔라에게 데려다 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가 도착한 곳은 신전 내부에 위치한 작은 응접실이었다.

?

잠시 후 문이 열리더니 건장한 체격을 가진 남자가 들어왔다. 제복의 화려한 장식을 보니 아마 그가 단장인 것 같다고, 노아는 생각했다.

?

단장이라는 자의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성직자가 사람을 대할 때 저렇게 인상을 찌푸리기도 한다는 건 오늘 처음 알게 됐다.

?

??“저는 무슨 일로 찾으셨습니까?”

??“사람을 찾으러 왔습니다.”

??“사람을 찾으시려거든 황성으로 가시지, 왜 신전으로 오셨습니까?”

??“신전에 머무르고 있을 누나를 찾기 위함입니다.”

??

노아를 바라보던 상대의 눈이 점점 커졌다. 그는 꽤 놀랐다는 듯한 얼굴로 노아를 쳐다봤다.

??“허. 아아. 그렇군.”

??

그는 알 수 없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때때로 혼자 웃었다.

?

??“감히 이곳에 올 생각을 하다니. 이런 뻔뻔한 것을 다 봤나.”

??“그게 무슨 말이지?”

??“암흑가를 다스리는 더러운 범죄자가 감히 신성한 신전에 찾아올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군.”

??

허? 노아는 기가 차다는 듯 숨을 뱉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자세하고 알고 있으니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했다.

??“내 정체는 어떻게 알았지? 건방지게 사람의 뒷조사라도 했나?”

??“누나를 찾기 위해 그 먼 곳에서 이곳까지 친히 찾아오시다니. 이것 참 세기의 애절한 짝사랑이로군.”

?

단장은 노아의 말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시하며 흰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응접실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그는 웃음 한 점 없는 딱딱한 목소리로 협박하듯 중얼거렸다.

?

??“당장 나가라. 너 같은 더러운 것은 신전에 출입할 수 없으니.”

??

노아는 그대로 신전에서 쫓겨났다. 범죄자, 더러운 것.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하는 말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들이었다.

?

하지만 그가 노아를 무엇이라고 부르든,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사실만은 확실했다.

?

일단 오늘은 물러나도록 할까. 준비를 철저하게 한 후에 다시 오는 것도 나쁜 방법은 아닐 테니까.?

노아는 백색의 신전을 잠시 응시하다가 신전을 등지고 말에 올라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