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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오필이 내 이름을 부르는 것보다는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부러 부정하지는 않았다.
?
테오필의 표정을 보니 내가 로즈라는 이름에 만족했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젠장. 완전 최악이잖아.
그나저나 살로스는 어떻게 된 걸까. 죽은 것 같지는 않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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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이 살로스가 쓰러졌던 자리로 향했다. 테오필은 내 시선의 방향을 알아차렸는지 내 손을 잡고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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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신전이라니. 그곳으로 가면 알베르트나 노아에게 발각될 가능성도 커질 텐데. 아니, 그냥 애초에 테오필을 따라가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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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가 걷지 않고 버티면 테오필은 나를 어깨에 둘러메고 걸었다. 집 밖, 즉 국경 지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
테오필과 함께 있던 다른 성기사들도 없었고 국경 지대를 가득 채우고 있던 징그러운 마물들도 없었다.
?
다만 테오필의 것으로 보이는 백마 한 마리만이 홀로 서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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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나를 던지듯이 백마에 태웠다. 갑자기 시야가 높아지니 어지러웠다.
?
?“저를 데려가면 당신만 손해일 텐데요. 성기사가 신전에 여자를 데려가다니, 평판이 걱정되지도 않으세요?”
??
테오필을 협박하기 위해 한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미소 지으며 답했다.
?“글쎄요. 당신은 몽마에게 시달리던 불쌍한 아가씨가 될 테고, 전 그런 아가씨를 구한 용감한 성기사라고 불릴 테니까요.”
??
테오필은 내 뒤에 앉아 한쪽 팔로는 내 허리를 감고 다른 한 손으로는 말을 몰았다. 짜증나게도 성기사의 팔은 쇠사슬처럼 단단했다.
?
국경 지대에서 출발한 이후 나는 계속 탈출을 시도했다. 테오필이 잠든 사이 도망치고 목욕을 하러 간 사이 도망쳤으며 먹을 것을 구하러 갔을 때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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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테오필은 언제나 나를 찾아냈다. 나무 뒤에 숨어도 찾았고 그렇게 높지 않은 절벽 아래로 뛰어내려 도망쳐도 금방 나를 찾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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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나에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도대체 나한테서 느껴지는 그 기운이 무엇이길래 이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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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다섯 번째로 탈출을 시도한 나를 찾아냈을 때, 테오필은 손으로 내 발목을 쥐고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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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아프겠지만 참으십시오. 신전에 도착하면 치료해 드릴 테니.”
??
그리고 그는, 내 발목을 부러뜨렸다.
?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발목에서 아무런 감각도 느껴지지 않았던 순간도 잠시, 미칠 듯이 끔찍한 고통이 발목에서부터 위로 올라왔다.
?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기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고통이 너무나도 끔찍해서 차마 입을 다물 수도 없었다.
그때 나를 내려다보던 테오필의 표정은 어떻던가. 그의 눈동자는 마치 짐승을 바라보는 것처럼 덤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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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멀쩡한 사람의 발목을 부러뜨려 놓고 저런 무덤덤한 표정을 지을 수가 있지?
?
이런 끔찍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눈앞의 사람을 죽여 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짜증 날 정도로 담담한 얼굴이 증오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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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로즈. 이러다가 주변 마을 사람들이 전부 잠에서 깨어나겠어요. 신전에 도착해서 당신이 도망치지 못하게 된다면 전부 치료해 줄게요. 난 성력을 가진 성기사니까.”
??
아니, 너 같은 게 성기사일 리가 없다. 분명 성기사는 정의롭고 친절하다고 배웠으니까. 중앙 신전에서 신을 모시는 자가 이런 짓을 저지를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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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퉁퉁 부어오른 내 두 발목을 붕대로 세게 감았다. 발목은 작은 접촉에서 통증을 호소했다. 그때마다 비명이 튀어나왔다.
?
발목이 부러진 순간부터 나는 무력해졌다. 움직이지도, 도망치지도 못했다. 테오필은 그런 나를 보며 만족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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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지대에서 출발한 지 2주 하고도 나흘이 지났을 때 우리는 중앙 신전에 도착했다.
?
테오필은 신전에 도착하기 직전에 성력으로 내 발목을 치료하고 붕대를 풀었다. 그 모습을 보니 헛웃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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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신 그는 내 어깨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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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잠시만 조용히 있어요.”
나는 천천히 손으로 발목을 쓸었다. 뼈가 부러진 자리는 말끔하게 나았지만 당시에 겪었던 고통은 아직도 생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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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과 나를 보고 몇몇 성기사들이 다급하게 뛰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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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필은 그들에게 사정은 나중에 설명하겠다고 말하며 나를 어떤 방으로 데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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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보기에 방문은 말끔했지만 내부는 감옥을 개조한 것처럼 보이는 방이었다. 문은 죄수의 탈출을 막으려는 것처럼 쇠로 만들어진 무거운 철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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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그곳에 가두다시피 한 테오필은 잠시 뒤에 돌아왔다.
?“순진하고 멍청한 것들. 형편없는 연극을 잘도 믿더군요.”
?“…….”
?“로즈. 당신은 몽마에게 시달리던 가련한 아가씨고 나는 그런 당신을 보호해 주는 성기사예요.”
??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신전 사람들이 믿는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으나 신전이 잠잠한 것으로 보아 모두 테오필의 말을 믿는 모양이었다.
?
테오필이 다시 내 어깨를 가볍게 건드리자 다시 목소리가 나왔다.
?
한때 살로스에게 시달리기는 했었다. 다만 몽마에게 시달리던 가련한 아가씨라니. 그렇게 가련하게 불리기는 싫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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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정말 그가 싫었다. 살로스의 모든 것이 너무 싫었다. 물론 지금까지 그 마음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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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의지할 곳이 살로스밖에 없었다. 의지할 곳이 몽마뿐이라니, 듣기에 이상한 말이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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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로스는 죽었을까요.”
?“살로스가 그 몽마의 이름입니까?”
??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테오필은 잠시 흐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입을 열었다.
?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성력을 쓰기는 했지만 몽마는 그렇게 쉽게 죽지 않으니까요. 성검으로 가슴 부근을 찔러야 죽을 겁니다.”
?“그런가요.”
?“설마, 몽마를 걱정하시는 겁니까?”
??
테오필이 우습다는 듯 웃음을 흘렸다. 무엇이 그렇게 웃긴지, 그는 소리 내어 크게 웃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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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있다고 소문은 들었는데, 그걸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사랑이라고요?”
?“예. 사랑 말입니다, 사랑.”
?“난 살로스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아니요, 당신은 그 몽마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자가 더 잘 아는 법이죠.”
??
이런. 명색이 성기사라는 놈이 개소리를 잘도 지껄이는구나.
?
?“내 마음은 내가 가장 잘 알아요. 난 살로스를 사랑하지 않아요. 의지할 상대가 필요했을 뿐이지.”
?“그것도 그것대로 웃기군요. 의지할 상대가 없어 몽마에게 의지하는 생이라니.”
??
테오필의 말투는 마치 나를 비꼬는 것 같았다. 내가 살아온 날들을 비하하고 무시하는 것처럼.
?
?“내 상황에 놓여 본 적이 없다면 쉽게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상황이야 뻔하죠. 기댈 곳이 몽마밖에 없다면 얼마나 엉망으로 인생을 살았겠어요.”
??
아니, 아니다. 조금 게으르게 살기는 했어도 결코 엉망으로 산 적은 없었다.
어느 날 만난 공작에 의해 평화롭던 인생이 바뀌고, 갑자기 찾아온 몽마 때문에 휴식도 제대 로 취하지 못하며 아끼던 동생이 나를 배신하고 농락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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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이런 인생을 살아 봤을 리가 없잖아. 전부 꿰뚫어 본다는 듯이 행동하는 눈앞의 남자 때문에 불쾌했다.
?
?“나를 언제까지 이곳에 둘 거예요.”
?“말씀드렸잖습니까. 흥미가 생긴 물건은 가지고 가는 버릇이 있다고.”
?“…….”
?“아마 제 흥미가 떨어질 때까지, 아닐까요.”
??
감옥같이 생긴 이 방에는 크지 않은 침대가 하나 놓여 있었다. 테오필은 나를 들어 올려 침대 위에 앉혔다. 그리고 그는 내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침대에 연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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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목이 부러졌을 때와 상황이 비슷했다. 도망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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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눈을 피하지 마세요. 당신이 거짓을 말하고 있다는 걸 증명할 뿐이에요.”
?“…….”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로즈, 당신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제국에서 멀리 떨어진 왕국? 그게 아니라면 바다 한가운데에 동떨어진 섬?”
?“뭐, 그 비슷한 곳이에요.”
??
나는 진실을 말하기보다 대충 얼버무리는 것을 택했다.
?
?“그렇습니까.”
??
테오필은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나를 이 방에 내버려 둔 채로 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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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이라도 두드리며 누군가 도와 달라고 외쳐 보고 싶었지만 발목을 붙잡고 있는 족쇄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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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잠들면 꿈속에서 살로스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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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꿈속에서 내가 만난 것은 암흑뿐이었다. 암흑 속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살로스를 만날 수는 없었다. 감옥처럼 생긴 방 안에서 다시 눈을 뜨자 절망감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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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정말로 감옥 같았다. 죄인을 가두기 위해 만들어진 감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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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죄인이 아닌데, 내가 왜 이런 곳에 갇혀 있어야 하는 걸까. 그것도 죄인처럼 발목에 족쇄를 차고.
하아.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뱉었다.
시간을 알 수 없게 하기 위함인지 방에는 작은 창문마저도 없었다. 내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는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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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무거운 철문이 열리고 테오필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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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 잠자리는 어땠습니까?”
?“거지 같았어요.”
내 대답을 들은 테오필이 과장된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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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다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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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느 부분이 그렇게 웃긴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작게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자 테오필은 둔탁한 물건을 바닥에 떨어뜨려 내 관심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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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는 테오필이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이는 책 두 권이 떨어져 있었다.
?“이게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대답하지 않았음에도 테오필은 주절주절 설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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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당신을 이곳에 두고 돌아간 후 신전 도서관에서 사제들의 기록들을 찾아봤습니다. 당신과 비슷한 사례를 찾기 위해서요.”
??
테오필은 두 권의 책 중 한 권을 조심히 펼쳤다. 한 장씩 넘기며 내용을 훑어보던 그는 마침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책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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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테오필이 강경하게 책을 들이미는 바람에 결국 억지로 받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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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어로 적힌 책이 아니니 당신도 읽을 수 있을 겁니다.”
??
책의 제목은 <에반 일대기>였는데, 테오필이 펼친 페이지의 내용은 이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