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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지대에서의 생활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매일 깨진 창문을 통해 모래가 들어오기도 했고 아침에 눈을 뜨면 징그러운 마물들을 봐야 했다.
살로스가 결계를 쳐 놓은 덕에 마물들이 집까지 들어오지 못했지만 말이다.
기세 좋게 나를 삼켜 버리겠다고 선전포고하듯 말했던 살로스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잠잠했다. 그는 거의 집 안에 있는 일 없이 매일 밖에 나가 마물들을 죽였다.
?
나는 창문을 통해 가만히 서서 손가락만으로 마물들을 죽이는 살로스를 보며 생각했다.
마물이면 급이 낮은 악마나 마찬가지일 텐데. 게다가 몽마는 악마의 일종이고. 그럼 살로스는 동족을 열심히 죽이고 있는 걸까.
도대체 살로스의 머릿속은 이해할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침대에 풀썩 누웠다.
살로스는 매일 해가 진 이후 어두운 밤이 됐을 때 돌아왔다. 그의 손에는 항상 간단한 음식들이 들려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가 내게 내민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분명 배가 고프기는 한데 음식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수녀님. 왜 맨날 힘없이 누워만 있어?”
?
살로스가 축 처진 내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마물들이 우글우글하다는 것만 빼면 여기 꽤 경치가 좋아. 구경 갈래?”
나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경치는 무슨. 마물들에게 공격이라도 당하지 않으면 다행이겠다.
철쇄 탓에 깊게 파였던 손목의 상처는 아직 다 아물지 않은 것 같았다. 손목을 꾹 눌렀더니 붕대가 피로 물드는 것을 보아 알 수 있었다.
나는 붕대가 감긴 손목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반대로 살로스는 내 손목을 보며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거 뭐야, 수녀님? 다쳤어?”
내가 무어라고 답하기도 전에 그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상처 위로 그의 손이 닿아 쓰라렸다.
?
붕대를 풀자 불규칙적으로 찢어진 손목의 모습이 보였다. 고통이 잘 느껴지지 않아 신경 쓰지 않았더니 상처가 생각보다 많이 악화되어 있었다.
“…….”
살로스가 잠시 입술을 꽉 깨물며 내 손목을 내려다봤다. 이내 그는 무언가 결심한 듯한 눈빛과 함께 입을 살짝 벌리고 내 손목을 입에 물었다.
“무슨……!”
나는 곧 느껴질 끔찍한 고통을 예상하고 꾹 눈을 감았다.
하지만 고통은커녕, 느껴지는 것이라고는 살로스의 물컹한 혀뿐이었다. 그가 입안에서 혀로 내 손목을 핥는 것이 느껴졌다.
?
“흐…….”
고통은 없었으나 왜인지 입에서는 신음이 흘러나왔다. 살로스는 반대쪽 손목에도 그 행위를 반복했다.
도대체 무슨 짓이냐고 그에게 따질 생각이었다. 그러나 내 손목에 일어난 현상을 보게 되자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상처가…….”
상처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말끔하게 나았다. 커다란 흉터가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상처는 이미 깨끗하게 나아 부드러운 피부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살로스를 쳐다봤다. 나와 눈이 마주친 살로스가 눈가를 접어 웃더니 혀를 내어 입가에 묻어 있던 피를 핥았다.
“흉 남으면 수녀님 속상할 것 같아서.”
“아무리 속상해도 지금보다 더 힘들 것 같지는 않는데.”
뭐, 그래도 흉터가 남는 것보다는 낫겠다. 흉터가 남으면 원하든 원하지 않든 볼 때마다 노아를 떠올리게 될 테니까.
?
나는 감사의 의미로 살로스의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는 눈을 감고 내 손길을 받아들였다.
눈을 감고 있던 살로스가 어느 순간 눈을 뜨고 작은 목소리로 내게 속삭이듯 말했다.
“아프지 마, 수녀님.”
“이게 다 너 때문이라고는 생각도 안 하지.”
“미안해.”
살로스가 내 무릎에 기댄 채 짧게 사과했다. 이놈이 저지른 수많은 미친 짓에 비하면 보잘것없는 한마디였다.
문득 그의 은빛 머리카락을 보니 쥐어뜯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한 손에 그의 머리카락을 가득 쥐고 세게 당겼다.
“아, 아악.”
살로스가 울상을 지으며 내게 매달렸다. 나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며 손에 힘을 풀었다.
이놈의 머리카락을 전부 뽑아 대머리로 만들어도 이 답답함이 풀릴 것 같지는 않았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렇게 답답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쩌면 노아가 막아 놓은 이 답답한 숨통을 살로스로 풀어내려는 심리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좋을까. 자꾸만 노아가 떠올라서 가슴이 더더욱 답답해지기만 하는데.
이 이상 무언가를 생각하기가 싫어 나는 눈을 감고 먼지가 가득한 침대에 누웠다. 침대가 출렁이며 회색 먼지가 피어올랐다.
이 집, 언제 한번 청소라도 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내 기관지가 먼지에 막혀 호흡이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
그리고 이곳에 온 지 일주일 정도가 지났을 때, 갑자기 백색의 갑옷을 입은 무장 기사들이 국경 지대에 도착했다.
일 년에 한두 번씩 황실에서 마물들을 처리하기 위해 기사들을 파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기는 했다. 하지만 기사들이 입고 있는 갑옷은 황실에게 충성하는 기사들의 것이 아니었다.
백색 갑옷과 그 위에 새겨진 금빛 문양들. 보통 기사들이라기보다는…….
?
“으. 저게 뭐야. 성기사들이잖아.”
그래. 성기사에 가까웠다.
아니, 잠시만. 진짜 성기사들이라고?
“성기사?”
“어우, 저 하얀 갑옷 좀 봐. 보기만 해도 짜증나네.”
살로스가 두 손으로 팔을 감싸며 툴툴거렸다. 나는 그의 머리에 여전히 뿔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살로스의 힘이 약해졌을 때 그의 뿔은 모습을 감춘다. 뿔이 여전히 있다는 것은 힘이 약한 상태가 아니라는 뜻인데.
그렇다는 것은, 성기사는 몽마에게 꽤나 해로운 존재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이도 아니고 살로스가 그렇게 반응할 정도라면 말이다.
?
“괜히 여기로 왔네. 성기사들이 올 줄 알았으면 절대 안 왔을 텐데.”
대략 열 명 정도의 성기사들이 마물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태양에 의해 쫓겨나는 어둠처럼 마물들이 사그라들었다.
확실히 마물을 처리하는 데 있어서는 기사들보다 성기사들이 더 쓸모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성기사들은 신전 밖으로 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 어째서.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처음 보는 성기사들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아.”
그때였다. 성기사들 중 한 명과 눈이 마주친 것은.
?
밝은 밀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였다. 마물들에게 둘러싸여 미친 듯이 그것들을 도륙하던 남자가 문득 이쪽을 바라봤다.
“…….”
순간 남자는 차가운 얼음이 녹는 것처럼 부드럽게 웃었다. 나는 홀린 듯이 그의 미소를 응시했다.
이상하다.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이 집은 살로스가 쳐 놓은 결계에 의해 보호받고 있었다. 분명 이전에 살로스가 내게 말하기를, 마물과 인간은 결계 안에 무엇이 있는지 볼 수 없다고 했었다.
?
그런데 저 남자, 성기사는 나와 눈이 마주치고 싱긋 웃기까지 했다.
아무리 성기사라고 해도 살로스 정도 되는 고위 몽마가 쳐 놓은 결계 너머를 자연스럽게 볼 수가 있나.
나까지 마물로 생각해서 죽이려고 들까 봐 괜히 소름이 끼쳐서 나는 얼른 창문이 없는 쪽으로 도망치듯 이동했다.
살로스는 여전히 창문 앞에 붙어 성기사들을 욕하는 내용의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창문 앞에 있으면 성기사들한테 보이지 않아?”
“수녀님, 걱정도 참. 쟤네는 결계 안에 뭐가 있는지 못 봐.”
그럼 나와 눈이 마주친 남자는 도대체 뭐란 말인가. 나는 만약을 대비해 살로스를 끌고 밖에서 우리를 보지 못하도록 안쪽으로 들어왔다.
“왜 그래 수녀님?”
“어떤 남자랑 눈이 마주쳤어.”
그때, 나는 내 행동에서 이상함을 찾아냈다. 엄격한 기준에 따라 선발되는 성기사를 두려워하고 몽마에게 의지하려고 하다니.
하지만 분명 눈이 마주쳤을 때 본 남자의 눈동자는 선한 성기사의 것이 아니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 싸늘하던 눈동자가.
?
또다시 그 눈동자가 머릿속에 떠오르길래 얼른 고개를 붕붕 저어 그 생각을 털어 냈다. 살로스는 고민하는 듯이 턱을 쥐고는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쟤네 쫓아 줄까?”
그 말을 듣고 나는 다급하게 살로스의 소매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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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마주친 게 우연이 아니라면 몽마의 결계 너머를 볼 정도로 어마어마한 성력을 가진 성기사일 테다. 만약 그런 자를 쫓으려다가 오히려 살로스가 공격받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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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
신에게도 의지하지 않았던 내가 이제는 몽마 따위에게 의지하고 있다.
의지의 대상. 그것은 처음에는 노아였고 이제는 살로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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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무엇이 나를 의지하지 않고는 살 수 없도록 만들었을까. 그 이유를 떠올리려고 애썼더니 갑자기 너무 억울했다.
나도 누군가에게 의지하지 않아도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쩌다가 알베르트라는 미친놈을 만나서 상황이 전부 이렇게 됐다.
제국의 공작인 알베르트의 영향력은 너무나도 강력했다. 만약 살로스의 힘이 없었다면 5년은커녕 1년도 안 돼서 잡혔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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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아직 살로스가 필요했다. 아직 알베르트로부터 나를 숨겨 줄 수 있을 만한 힘이 필요했다.
단지 그뿐이었다. 내가 그에게 의지하는 이유는 오직 그것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가지 마.”
하지만 내 입에서 나온 목소리가 생각보다 간절했다. 마치 애원하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그러자 살로스가 의외라는 듯 눈을 깜빡였다. 하지만 그는 이내 예쁘게 빙긋 웃으며 내 옆에 풀썩 앉았다.
“그래, 뭐. 수녀님이 가지 말라고 하는데 안 가야지.”
“…….”
“근데 여기 마음에 안 든다. 그치? 성기사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좀 시끄럽네.”
금방 다른 곳을 찾아볼게. 살로스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들은 후에야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었다.
성기사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해 보이는 남자. 그런 사람을 근처에 두고 편히 생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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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문 틈 사이로 마물들이 고통에 찬 비명을 지르는 것이 들려왔다. 나는 그것을 듣지 않기 위해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곧 떠나는 거다, 곧.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며칠 후 커다란 재앙이 나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