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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도대체 무슨. 노아가 머리를 부여잡고 일어나려는 순간, 바실이 그의 위에 올라탄 후 다시 한번 그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주먹에 맞은 머리가 땅에 처박혔다. 노아는 조용히 신음하며 바실을 노려봤다. 놈은 겨우 떨림을 참으면서도 꼴좋다는 듯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멍청한 것이 감히 저를 내려다보고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몸을 일으키려고 해도 계속해서 날아오는 주먹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느새 상황은 역전됐다. 바실은 자신이 궁지에 몰린 만큼 주먹을 휘둘렀다.
노아는 무기력하게 그 공격을 맞고만 있었다. 이제는 신음 하나 낼 수 없을 만큼 얼굴이 쓰라렸다.
“수녀님께 말씀드린다고? 웃기지 마!”
놈은 얼굴을 잔뜩 구긴 채로 노아를 비웃었다.
나한테 무기력하게 맞고 있는 주제에. 그가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
감히 저런 머저리 따위가 더러운 손으로 자신을 때리고 있다는 사실이 불쾌했다. 또한, 깔끔하던 그의 셔츠는 흙먼지가 묻어 지저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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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무엇보다도 놈에게 맞고 있는 얼굴이 가장 아팠다. 바실은 곧 자신이 아무리 노아를 때려도 말릴 사람 하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주먹질에 박차를 가했다.
아직 그의 약점을 쥐고 있는 것은 노아인데도. 멍청한 놈. 노아는 목구멍 안에서 그 말을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러나 아무리 바실의 약점을 쥔 것이 노아라고 하더라도 이렇게 계속 맞다가는 약점을 발설하기도 전에 얼굴 뼈가 부러져 병원 신세를 져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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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을 밀쳐 내기 위해 팔을 휘둘러 보기도 했으나 쓸모없는 짓이었다.
봐, 신은 존재하지 않는걸.
?
신은 당신께서 손수 빚은 아이가 고통받더라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아, 그게 아니면 당신을 섬기는 정도에 따라 당신의 아이들을 편폐하시기라도 하는 걸까.
주신 렌다이시여, 당신은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겁니까?
생각이 바뀌었다. 신은 존재할지도 모른다.
?
하지만 구원의 대상이 그가 아닌 것뿐이었다. 신과 별은 존재하지만 그들이 비추는 것이 그가 아니라 다른 이였을 뿐이었다.
하기야, 신과 별이 어둡고 음침한 동굴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하기는 하겠는가.
노아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비열한 악당처럼 웃었다.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지금만 버티면 저 멍청한 것을 골려 줄 수 있다는 생각 덕분에.
“야, 거기 뭐하는 거야?”
그때였다. 얇고 통통 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바실이 주먹질을 멈추고 위를 올려다봤다.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 누군가는 노아와 바실의 바로 앞에 도착해서야 걸음을 멈췄다.
노아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것을 바라봤다. 그곳에는 연한 금발을 가진 한 소녀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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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진짜 세상이 말세다, 말세야. 어린놈이 수도원에서 미쳤다고 주먹질이라니.”
?
그렇게 말하는 그녀 또한 그리 나이가 많은 것 같지는 않았다. 노아는 터진 입술을 꾹 깨물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봤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었다.
“얀마, 안 비켜?”
그녀는 상당히 거칠게 발로 바실을 툭툭 찼다.
“스, 스텔라 누나.”
“분명 나는 너희 나이 때 수녀님한테 인성 교육 같은 것도 받았던 것 같은데. 넌 안 받았어? 그래서 애들 패고 다니냐?”
그 말을 들은 바실은 후다닥 노아의 위에서 내려왔다.
“아니, 그게 아니라. 얘가 먼저 시비 걸었단 말이야.”
웃기는 소리를 하는군. 노아는 소매로 입술을 문질러 닦으며 생각했다.
“응, 그래그래. 판단은 수녀님이 하시겠지. 넌 미리 가서 고해성사나 하고 있는 게 좋을 거야.”
?
소녀는 바실의 등을 세게 밀었다. 그러자 바실은 마치 저가 피해자인 양 울상을 지으며 어딘가로 뛰어가 버렸다.
“어, 그러니까…… 괜찮아?”
소녀는 어정쩡한 표정을 지으며 노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마 바실의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자신이 느끼고 있는 듯했다.
?
그러나 그는 소녀의 손을 무시하고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손을 잡고 일어나서 위로의 말 따위나 들을 시간에 차라리 낮잠이나 자러 가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러자 소녀가 머쓱하게 웃으며 손을 거뒀다. 노아는 소녀를 뒤로한 채 걸음을 옮겼다.
?
그때였다. 소녀는 노아의 등을 바라보며 아, 하는 소리를 냈다.
“쟤 걔구나, 3년 전에 오두막에 있던 애.”
상대에게 들리지 않게 하려고 작게 중얼거렸지만 노아에게는 그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3년 전, 오두막. 오로지 노아 그 자신과 그를 구원했던 별만이 알고 있는 그날의 이야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등 너머의 소녀를 바라봤다. 그날 봤던 것만큼 찬란하게 빛나는 머리카락은 아니었으나 분명히 그때 그 사람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그녀의 외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3년 전 그를 바라보던 붉은 눈동자와 그를 일으켰던 두 손, 괜찮냐고 묻던 그 작은 입.
보잘것없다고 여겼던 그녀의 모든 것이 이제 전부 특별하게 보였다.
바실이 저 소녀를 뭐라고 불렀더라. 관심이 없어서 제대로 듣지 않았었다. 노아는 홀로 골똘히 생각했다.
?
[스, 스텔라 누나!]
그래, 스텔라. 스텔라였다.
노아는 묵묵히 닫혀 있던 입을 벌려 웃었다. 그 미소 덕분에 그는 여느 순수한 소년들과 같이 어리숙하고 천진난만하게 보였다.
반짝이는 눈동자와 머리카락과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그는 느릿하게 스텔라를 향해 다가갔다.
“도와 줘서 고마워, 스텔라 누나.”
스텔라는 손바닥 뒤집듯 바뀐 노아의 태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
“내 이름은 어떻게 알았……. 아, 바실.”
?
그녀는 잠시 눈동자를 굴리며 손가락으로 얼굴을 긁적였다.
스텔라의 입에서 멍청한 바실의 이름이 나왔다는 것이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노아는 입 안쪽의 살을 잘근 씹었다.
“이런 일 많았어?”
이런 일. 굳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노아는 망설이는 척 잠시 고민하다가 조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
물론 전부 거짓일 뿐이었다. 바실도 노아에게 자주 시비를 걸기는 했으나 오히려 거듭해서 복수하며 소소하게 바실을 괴롭혔던 것은 노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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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 그 자식이 진짜…….”
?
스텔라는 바실에게 달려가 머리라도 한 대 쥐어박을 것처럼 소매를 걷어붙였다.
?
안 돼, 가지 마. 그 멍청한 놈한테 가지 마. 노아가 쭉 손을 뻗었지만 스텔라는 이미 성큼 걸음을 옮긴 후였다.
또다시 별을 놓칠 수는 없었다. 노아는 힘이 잘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힘껏 바닥을 밀며 스텔라의 등을 끌어안았다.
?
“엥?”
무언가가 저를 세게 끌어안자 스텔라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뒤를 돌아봤다. 그녀보다 훨씬 작은 소년이 간절하게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고 있었다.
?
“뭐, 뭐야. 왜 그래.”
“가지 마, 누나. 나 두고 가지 마.”
그녀는 조그마한 소년의 등이 잘게 떨리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뭉개지듯 얻어맞은 얼굴, 그리고 줄줄 흘러내리는 피.
아마 소년은 그녀가 어딘가로 가 버린 사이에 바실이 돌아와 그를 위협할까 봐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그녀가 그저 넘겨짚어 예상한 것일 뿐이었지만.
?
“그……. 알겠어. 일단 얼굴부터 치료하러 가자.”
?
스텔라가 작은 손으로 노아의 어깨를 잡고 그를 수도원의 치료실로 이끌었다. 노아는 고개를 푹 숙이고 순순히 그녀를 따라갔다.
수년간 그가 의심하던 진리는 드디어 그 실체를 드러냈다. 신은 그를 구원하지 않았으나 별은 실제로 존재하며 그를 구원했다.
?
인간의 욕심은 참으로 광활하다. 그동안 그의 소원이 별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면, 이제 그는 별을 시야에 넣고 손으로 쥐는 것을 원했다.
노아는 얼굴에 남아 있던 어리숙한 웃음을 삼키고는 어깨에 올려진 스텔라의 손을 붙잡았다.
온기가 느껴졌다.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온기가, 3년 전 그의 아비에게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온기가.
“아,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뭐였지?”
“노아.”
도망친 그의 어미가 지어 줬던 이름. 3년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이름을 처음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
“노아, 그렇구나. 예쁜 이름이네.”
그 순간에는 그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온다는 사실이 까무러치게 기뻤다.
***
?
그 후 노아는 모든 관심을 스텔라에게 쏟아부었다. 그녀가 어디에서 어떻게 누구와 생활하는지. 그것이 그의 모든 관심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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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누나.”
“아, 노아구나. 안녕.”
그녀를 눈에 담는 것은 기쁘다 못해 황홀했다. 햇살을 받고 밝게 빛나는 그녀의 모습이 마치 별 같아서, 그래서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제는 사람들이 왜 신에게 그렇게 간절하게 매달리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검은 세상에서 유일한 빛이 바로 신이고 별인데, 어찌 매달리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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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두 번이나 노아를 구원했다. 자신의 편이라곤 아무도 없던 세상에서 스텔라는 노아의 유일한 빛이었으니. 그의 세상을 구성하는 것은 스텔라가 유일했다.
물론, 그것이 스텔라에게도 해당되는 것은 아니었다.
“애니카아. 나 심심해.”
“나 책 읽고 있잖아. 가서 필립하고 놀아.”
“아, 그럴까?”
스텔라는 벽 뒤에 있던 노아를 발견하지 못했는지 어딘가로 후다닥 뛰어가 버렸다. 노아는 멀어져 가는 스텔라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조심히 손안의 꽃을 쓰다듬었다.
조그마한 노란색 꽃잎. 스텔라를 닮아 조심히 꺾어 온 것이었다. 그녀에게 선물하기 위해 꽃잎이 구겨지지 않도록, 손 위에 살며시 올려놓고 가져왔는데.
손안에 들어 있던 꽃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노아는 그것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였다.
그러나 꽃을 쥐는 작은 손에는 의도치 않게 힘이 들어갔다. 결국 노란 꽃은 그의 손안에서 힘없이 으스러지고 말았다.
뭉개진 꽃을 빤히 바라보던 노아는 이내 꽃을 주머니에 대충 쑤셔 넣은 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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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실은 언젠가부터 구석에 처박혀 조용히 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괴롭히는 것도, 건방지게 소리지르는 것도 그만두고.
“형아, 형아들.”
“노아? 무슨 일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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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울먹이며 친분이 있는 손위의 소년들을 찾아갔다. 그리고 억지로 눈물을 흘려 그들의 동정을 이끌어 냈다. 바실을 배척할 때 그러했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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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는 벽 뒤에 숨어 그들이 필립을 구석에 몰아넣고 협박하는 모습을 보며 싱긋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