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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22화 (2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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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이 이렇게 무능력한 줄은 몰랐군.”

“…….”

“스테인 경. 경도 입이 있으니 무어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언뜻 들으면 실수를 저지른 기사를 다그치는 듯한 가벼운 말투였다.

하지만 코르넬은 알고 있었다. 알베르트는 당장이라도 코르넬의 목을 베어 버리고 싶다는 충동을 겨우 억누르고 있었다.

코르넬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알베르트와 함께했다. 그 수 년 동안 알베르트는 매일 친근한 말투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스테인 경. 딱딱하기 짝이 없는 호칭이었다.

물론 이것은 명백히 코르넬의 잘못이었다. 가주의 명령을 어기고 스텔라를 저택 밖으로 데리고 나갔고, 그녀는 도망쳤다.

하지만 코르넬은 차마 사과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을 하더라도 알베르트가 그의 목을 베어 버릴 것 같았기에.

고요한 침묵을 깬 것은 알베르트였다. 그는 쯧, 하고 혀를 차더니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나가.”

“……죄송합니다.”

코르넬이 딱딱하게 경례했으나 알베르트는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코르넬이 집무실에서 나갈 때까지 이마만 짚고 있었다.

탁. 백색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 닫히고 또다시 침묵이 찾아왔다.

이럴 줄 알았다면 수도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 건국 기념제. 그것이 무엇이라고 스텔라를 두고 수도로 갔을까.

?

그녀를 찾는 데 자그마치 5년이 걸렸다. 셀 수도 없이 많은 하루가 지나갔고 계절이 수십 번 변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자신이 얼마나 망가져서 살았는지는 코르넬이 가장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어떻게 감히.

알베르트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자 흰 장갑이 피로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작은 통증 따위 신경쓸 때가 아니었다.

막막했다. 도대체 어떻게 스텔라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녀는 내게 관심 하나 없으니, 스스로 돌아올 리가 없다.

알베르트는 혼자 그 말을 되뇌다가 작게 웃으며 눈을 감았다.

어쩌다가 그녀에게 빠져서. 어쩌다가, 언제든 날아갈 수 있는 작은 새에게 마음을 빼앗겨서.

스텔라의 목에 얼굴을 묻으면 언제나 달콤한 향이 났다. 그 향을 맡고 있지 않을 때는 항상 그 향이 떠올라 알베르트를 괴롭혔다.

어서 향을 맡으라고, 스텔라를 차지하라고.

하지만 새는 다시 그의 곁을 떠났다. 어디인지도 모르는 곳으로 도망쳤다.

천사 같은 외형을 가진 공작은 무너지듯 의자에 앉았다. 언제나 세상을 그를 위주로 돌아갔는데, 이상하게도 스텔라를 만난 후부터는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

?

여러 감정이 섞인 한숨이 알베르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는 감기는 눈을 겨우 뜨며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코르넬의 보고에 따르면 스텔라는 사람이 많은 야시장에서 도망쳤다. 집사는 야시장에 있던 사람들의 제보를 듣고 보고서를 작성해 그에게 올렸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 것들뿐이었다. 제보는 전부 엉망이었고 서로 들어맞지 않았다.

그러던 중 그의 눈길을 사로잡은 문장이 있었으니. 바로 스텔라가 암흑가로 향하는 것을 봤다는 제보였다.

하지만 알베르트는 고개를 저었다. 설마 암흑가로 들어갔을 리가. 애써 그 문장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다음 제보를 읽어 보려고 했으나 자꾸만 그 문장이 신경쓰였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보고서를 책상에 내려놓았다.

확실히 해서 나쁠 건 없겠지. 알베르트는 문을 바라보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코르넬을 불렀다.

“코르넬 스테인.”

코르넬은 그의 부름에 답하지도, 집무실 안으로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알베르트는 코르넬이 문 앞에 서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작은 인기척이 문 앞에서 느껴졌다.

“스텔라가 암흑가로 향했다는 제보가 있군.”

“…….”

“암흑가의 반 미리엄에게 연락을 넣어라.”

“반 미리엄…… 말씀이십니까.”

“그래.”

코르넬은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자신의 주인이 암흑가의 주인이라는 음흉한 자를 찾아가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빠른 시일 내로 찾아가겠다는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

알베르트의 얼굴이 불쾌하다는 듯 구겨졌다. 알베르트는 그것을 알 리가 없는 코르넬에게 짜증스럽게 답했다.

“내가 그깟 늙은이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

?

얼굴을 직접 본 적은 없으나 기사들이 유추하여 그렸던 수배지의 교활하게 생긴 노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코르넬은 그제서야 알베르트가 한 말의 의미를 알아차리고 자신이 한 말을 정정했다.

“죄송합니다. 빠른 시일 내로 찾아오라는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제국의 공작이라는 자가 직접 범죄자를 찾아갈 수는 없었다. 공작의 격을 떨어트리는 짓이나 마찬가지였으니.

아니, 애초에 공작이 범죄자와 만나는 것 자체가 제국과 황실을 반역하는 행동이기는 했다.

하지만 범죄자 따위와 연통할 정도로, 알베르트는 그토록 간절했다. 손에 쥐면 모래처럼 빠져나가는 그녀를 다시 찾는 것이.

***

“아.”

“아니, 나 혼자 먹을 수 있는데.”

“아.”

?

이런 망할. 내가 아무리 괜찮다고 손을 저어도 노아의 얼굴은 단호하게 굳어 있었다.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내 앞에 위치한 수저를 바라봤다.

?

작고 귀여운 수저에는 따스한 수프가 담겨 있었다. 고소하고 담백할 것 같은 훌륭한 수프였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손은 이렇게 멀쩡한데 왜 먹여 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것.

?

그걸 알리기 위해 노아의 눈앞에 손을 대고 손가락을 접었다가 펴는 것을 반복했다. 그러나 노아는 여전히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오히려 수저를 내 입에 더욱 가까이할 뿐이었다.

“아.”

?

아무리 그를 설득해도 이 수저가 거둬질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나는 결국 못마땅한 얼굴을 하며 입을 벌렸다.

?

확실히 수프는 맛있었다. 수프의 맛을 음미하며 입을 우물거리자 노아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

뭔데, 저 미소는. 혹시 노아가 있는지도 몰랐던 내 엄마였던 걸까.

나는 소설 속 세상에서 고아로 태어나 고아원에서 자랐다. 그런 내게 엄마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노아는 남자잖아. 엄마라니. 그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헤실 웃음이 나왔다.

?

그런데도 노아의 행동만 보면 마치 그가 내 엄마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착하다.”

그렇게 말하면서 노아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대체 지금 나랑 뭐 하자는 거지.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물었다.

?

“노아. 네가 지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내가 네 동생이 아니라 네가 내 동생인…….”

?

단호하게 말을 꺼냈지만 말을 끝까지 마칠 수는 없었다. 노아가 손을 뻗어 내 입술을 매만졌기 때문이었다.

“……무슨.”

왜인지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그의 손에 닿은 부분이 뜨거웠다.

?

곧 노아의 손이 내 입술에서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다가 작게 웃었다.

“수프가 묻어 있길래.”

거짓말. 언뜻 보였던 그의 손가락에는 아무것도 묻어 있지 않았다. 노아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나처럼 심장이 빠르게 뛰고 있을까.

아니, 아니야. 나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

내가 처음 노아를 알게 된 것은 그가 다섯 살일 때였다. 그렇게 어렸을 때부터 노아를 봐 왔는데 내가 어떻게 이런 감정을 가질 수가 있지.

나는 최대한 이 추악한 감정을 마음속 깊은 곳에 억눌렀다. 이건 그냥 그 수렁에서 나를 구해 줬다는 것에 대한 고마운 마음일 뿐일 것이다. 나는 그렇게 단정 지었다.

아. 눈이 마주쳤다. 푸른 눈이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마주하며 어색하게 웃자 노아도 나를 보며 빙긋 웃었다.

나는 노아라는 방패를 이용해 며칠 전의 기억을 지워 버리려고 애썼다. 그의 친절함을 이용해 열심히 기억을 지웠다.

아니, 사실 기억하기 싫은 것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기억이 머릿속에서 잊힐 리가 없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집중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내 앞에 보이는 것은 노아의 부드러운 미소뿐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내가 그 미소를 동생의 다정함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 그 부드러운 미소를 볼 때마다 자꾸만 추악한 감정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아.”

또다시 노아의 차분한 음성이 들려왔다. 눈앞에는 수프를 담은 수저가 보였다.

나는 들어 있는 것도 없는 입을 우물거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따듯한 수프가 들어와 입안을 채웠다.

노아가 나를 구해 줬다는 것에 대한 감정은 감사뿐이어야 한다. 그런데 어쩌다가 그 이상의 감정을 느껴 버렸을까.

나도 스스로의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런 감정은 사랑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했다.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열어 보려고 시도했다가 끝내 열지 못했던 방문이 생각났다. 그동안 잊고 있었는데 드디어 물어볼 기회가 생겼다.

“노아.”

“응?”

“부엌에 있는 문 있잖아. 그 안에는 뭐가 있어?”

나는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금방 돌아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창고로 쓰는 방이라든가, 먼지가 가득한 더러운 방이라든가.

하지만 노아는 잠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시 다물었다. 붉은 입술은 굳게 닫힌 후 다시 열리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슬슬 이 상황이 어색하게 느껴질 만큼 긴 침묵이 흘렀다. 설마 내가 던진 이 질문이 답하기 곤란한 질문이었을까.

“누나.”

노아가 짧게 나를 불렀다.

“열려고 하지 마.”

그 대상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노아가 무엇을 말하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그의 시선이 힐끗 부엌에 있는 나무문을 향했다.

“안 열 거지, 응? 나랑 하는 약속이야.”

어쩐지 그는 불안한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내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나는 조금 머뭇거리다가 천천히 새끼손가락을 그의 것에 감았다. 두 손가락이 서로 얽힌 부분이 왜인지 어색했다.

?

“고마워.”

?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감사를 받은 기분이란 오묘했다. 무어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나는 그저 웃었다.

?

노아는 더 이상 내게 수프를 먹을 것을 강요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이미 내 배는 그가 준 음식들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더 먹으면 오히려 음식들이 역류할지도.

?

“누나는 몸이 다 나으면 어떻게 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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