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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5년 전에 아무 말도 안 하고 떠나서 화난 건가. 조심히 노아의 표정을 살폈으나 그는 그저 예쁘게 웃을 뿐이었다.
?
그나저나 언제까지 이렇게 끌어안고 있으려는 거지. 나를 부쩍 잘 따랐으니 반가운 마음은 이해하겠는데, 이건 좀 과하지 않은가.
“노아, 반가운 건 알겠는데 일단 좀 놓고 대화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노아의 팔을 떼어냈다. 그러자 노아는 순순히 내게서 멀어졌다.
그런데 이걸 순순히 멀어졌다고 볼 수 있나. 그는 몇 걸음 뒤로 물러나면서도 내 소매 끝을 잡고 있었다.
“난 누나 되게 보고 싶었는데.”
“…….”
“누나는 아니었어?”
아, 아니. 당연히 보고 싶었는데……. 내가 말끝을 흐리자 노아가 한 걸음 다가오며 물었다.
“공작을 사랑해? 그래서 함께 돌아온 거야?”
도대체 어떻게 착각을 하면 내가 알베르트를 사랑한다고 생각할 수가 있지.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부정하려는 순간, 등 뒤에서 알베르트의 귀족적인 향이 밀려왔다.
따듯한 온기가 느껴지는 커다란 손이 내 눈을 덮더니, 시야가 어두워졌다. 알베르트가 내 눈을 덮은 채로 속삭였다.
?
“스텔라.”
“아.”
“지금 내게서 도망친 겁니까? 내 말을 무시하고?”
알베르트가 내 눈을 가린 탓에 내 시야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이따금 바람이 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
내 눈을 덮고 있던 그의 손을 떼어낸 것은 노아였다. 노아가 알베르트의 손을 떼어내자 알베르트가 불쾌한 듯 얼굴을 구겼다.
“안녕하십니까, 공작님.”
노아가 정중하게 그에게 인사하자 알베르트는 오히려 혐오 가득한 얼굴로 노아를 내려다봤다. 아니, 내려다봤다는 말은 둘의 키가 비슷하니 옳지 않은 말이겠다.
알베르트는 귀족 특유의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턱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노아는 그에 맞서 순박하게 웃을 뿐이었다.
한참 동안 노아를 노려보던 알베르트는 마침내 혀를 차며 매서운 눈빛을 거뒀다. 그는 내 허리를 팔로 감싸며 나를 잡아당겼다.
“갑시다, 스텔라.”
“아니, 잠깐만요.”
그때, 노아가 손을 뻗어 다시 한번 내 소매 끝을 잡았다. 나를 잡아끌던 알베르트가 걸음을 멈추고 노아가 쥐고 있는 내 소매를 응시했다.
“어이가 없군. 가진 거라곤 아무것도 없는 고아 따위가.”
“……공작님.”
“그 손, 당장 놔.”
명령. 그것은 명령이었다. 그는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천천히 붙들고 있던 소매에서 손을 떼어냈다.
“안녕히, 가십시오. 공작님. 부디 수도원에서 편안히 쉬다 가시길.”
노아는 그렇게 말하며 분명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저걸 웃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어딘가 불쾌한 듯이, 일그러진 웃음이었다.
어느 정도 노아와 거리가 벌어지자, 알베르트가 으득, 이를 갈며 중얼거리듯 물었다.
“도대체 저 새끼는 누구입니까?”
?
저 새끼라니. 고상한 공작님께서 쓰실 법한 단어는 아니었다.
?
“노아라고, 저를 잘 따르던 동생이에요.”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만나지 마십시오.”
“도대체 공작님께서 무슨 권리로 이래라저래라 명령하시는 거예요?”
애니카도, 노아도. 내가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아끼는 사람들을 고작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만나지 말라고?
그에게 나를 통제할 권리가 있나?
아니, 없었다. 그럴 권리 따위, 그에게 없다.
“제가 공작님한테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서, 공작님의 소유물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나는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물론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대신 그는 나를 번쩍 안아 들고 수도원 내부를 향해 걸었다. 갑자기 시야가 높아져 당황스러웠다. 동시에 누군가 볼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들었다.
크게 소리질러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는 없었다. 작게 반항해 봤으나 그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걸어 알베르트가 향한 곳은, 5년 전 우리가 처음으로 관계를 맺었던 기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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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 한 톨 없는 기도실. 그 앞에는 성녀와 주신 렌다의 모습을 조각한 섬세한 석상들이 서 있었다.
갑자기 여기는 왜……. 불길한 기분이 마음속에서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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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는 기도실의 긴 나무의자에 나를 내려놓았다. 기도실의 문을 굳게 닫은 그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는 내 위로 몸을 가까이하더니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 목에 팔을 두르십시오.”
그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단호해서 나도 모르게 순순히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말았다. 그는 내가 그의 목에 팔을 두른 것을 확인하고는 내 허벅지를 활짝 벌렸다.
“아, 아니. 잠시만요.”
심지어 문도 제대로 닫혀 있지 않은 상태인데 말이다. 내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으나 알베르트는 내 부름을 무시하고 억지로 내 아래에 그의 물건을 박았다.
?
건조한 아래에 두꺼운 물건이 들어오자 엄청난 고통이 나를 덮쳤다. 나는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고통에 찬 신음을 흘렸다.
갑자기 이렇게 예고도 없이 물건을 박은 것은 처음이었다. 아무리 거칠게 관계를 맺어도 아래를 풀어 주는 것이 보통이었는데, 도대체 어째서.
알베르트조차도 움직이는 것이 힘겨운지 낮게 신음을 흘리며 느릿하게 물건을 밀어 넣었다.
?
왜 자신의 목에 팔을 감으라고 했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이 망할 놈의 목을 졸라서 죽여 버려야겠다. 나는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어깨로 문질러 닦았다.
분해서 그의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줬지만 제대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알베르트를 끌어안은 것 같은 꼴이 되어 버렸다.
“하윽, 흑. 윽. 이, 나쁜 놈…….”
알베르트는 나쁜 놈이라는 말이 훈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희미하게 웃었다.
그의 목을 세게 끌어안을수록 그는 허릿짓에 속도를 올렸다. 나는 종이처럼 흔들리며 알베르트의 의지대로 움직였다.
입에서는 계속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쾌락에 의한 신음이 아닌, 고통에 의한 신음이.
하지만 언뜻 들으면 기분이 좋아서 내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만큼 이 상황은 미묘한 상황이었고, 내 입에서 나오는 신음은 애매한 소리였다.
지금의 알베르트는 아마도 화가 난 것 같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가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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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공작님한테서 도망치지 않는다고 해서, 공작님의 소유물인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에이, 설마. 설마 저 몇 마디 때문에 이렇게 화가 났다고? 소설의 주인공씩이나 되는 사람이 그렇게 속이 좁으면 쓰나.
하지만 그것 외에는 알베르트의 기분을 상하게 할 것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아마 저 말 때문에 화가 난 게 맞는 것 같았다.
으휴, 그래. 내가 사지 멀쩡하게 공작저를 탈출하려면 이 정도에서 물러나 줘야겠다. 대충 그를 달래고 회유시키려는 생각으로 고개를 든 순간, 내 시야에는 알베르트가 아닌 다른 이가 눈에 들어왔다.
“…….”
살짝 열린 문틈 사이로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나는 그 시선이 누구의 것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
노아. 그 푸른 시선의 주인은 분명 노아였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하고 몸이 굳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알베르트의 허릿짓 탓에 몸은 계속 움직이고 있었으나, 내 의지는 아니었다.
노아의 시선은 완전히 나를 향하고 있었다. 그가 지금 무슨 표정을 짓고 있지? 흔들리는 눈동자로 그를 바라봤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제발, 제발 나를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나를 네가 몰랐으면 좋겠어.
애니카 그리고 노아만큼은 이런 모습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알베르트의 이상한 연극에 맞춰 줄지언정, 그 추악한 내면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제발 나를 못 봤다고 말해 줘. 제발, 그냥 가던 길을 따라서 나를 보지 못했던 것처럼 계속 걸어. 나를 외면하고 이곳에서 벗어나.
나는 간절히 빌었다. 노아가 나를 지나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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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내 간절한 소원을 무시하듯, 노아는 석상처럼 그곳에 서 있었다. 조금도 움직이지 않은 채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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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선이 오랜 시간 기도실의 나무문을 향하자, 알베르트도 그 방향을 힐끗 바라봤다. 그도 노아를 발견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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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 공작님……. 이제 제발 그만…….”
나는 알베르트의 목을 끌어안고 애원했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노아가 보는 앞에서, 그리고 신성한 기도실에서 이런 추악한 짓을 저지르는 걸 멈춰 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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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알베르트는 오히려 교활하게 웃으며 그의 물건을 깊게 내 안에 박았다. 그 탓에 몸이 찌르르, 울렸다.
나는 계속 노아를 응시했다. 그가 어서 가기만을 기다리며.
그러다가 문득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무런 감정도 깃들어 있지 않은 노아의 푸른색 눈이 내 눈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더니 노아는 고운 미간을 찌푸리며 그 자리를 떠났다. 그 표정은 무엇이었을까. 경멸, 혹은 혐오였을지도 모른다.
눈을 꾹 감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내렸다. 더 이상 애원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멍하니 몸이 흔들리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
알베르트는 그것이 마음에 드는지 허릿짓에 속력을 가했다. 그의 눈동자는 그 본질을 알 수 없는 정욕으로 물들어 있었다.
***
불쾌하다. 수년 전에도 스텔라를 담고 있던 저 푸른 눈동자가. 넓고 광대하나 동시에 공허하여 그 안에 담긴 의도를 알 수가 없다.
노아. 그 어린 것은 5년 전에도 그런 눈빛으로 알베르트를 바라봤다. 마치 그가 자신의 경쟁자라도 된다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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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시선은 항상 스텔라를 따라갔다. 알베르트가 스텔라를 안는 그 순간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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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어째서 자신의 것을 빼앗겼다는 듯한 얼굴을 하고 있지? 스텔라는 나의 것인데, 너 같은 것은 결코 넘볼 수 없는 대상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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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의 눈빛을 읽을 수는 없었으나 표정은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의 표정은 마치 소동물을 앞에 둔 맹수와도 같았다.
가장 위험한 부류.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거짓말쟁이.
그래서 알베르트는 스텔라에게 노아를 멀리하라고 일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다소 중요한 설명을 생략하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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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스텔라는 그의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그에게는 자신을 강제할 권리가 없다며 알베르트를 거부했다.
알베르트는 힐끗 노아를 바라봤다. 그들의 대화가 들리지 않을 정도로 노아와 그들 사이의 거리는 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노아는 다 알고 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너 따위는 스텔라에게 있어 자신보다 우위를 차지할 수 없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베르트는 주먹을 꽉 쥐고 잠시 고민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알베르트는 저 건방진 것에게 스텔라가 누구의 것인지 보여 주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는 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기도실에서 스텔라를 탐했다. 일부러 누군가 보란 듯이 문도 잠그지 않은 채로.
그의 생각대로 어리석고 어린 짐승은 질투에 가득 찬 눈빛으로 그들의 정사를 지켜봤다. 그래, 제아무리 어른인 척해 봤자 막 성년을 지난 어린 짐승일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