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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터덜터덜 걸어 응접실로 향했다. 응접실 안으로 들어서자 다리를 꼬고 고급스럽게 앉아 있는 알베르트의 모습이 보였다.
?“문 잠그고 와요. 섹스할 거니까.”
?
응접실에서 문 잠그고 섹스하겠다는 말을 저렇게 당당하게 할 수 있다니. 그 대상이 나만 아니었어도 손뼉을 쳐 줬을 것이다. 다만 그 대상이 나인지라 차마 웃을 수 없다는 것.
?“공작님.”
??“말씀하십시오.”
??“만약 제가 수도원에서 쫓겨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
?
알베르트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 너무나도 빠르게 답했다.
?“일단 당신을 모니카 공작저로 데려갈 겁니다. 아무도 당신을 볼 수 없도록, 당신이 누구도 볼 수 없도록 방에만 가둬 놓고 싶어요.”
?
여기까지는 충분히 예상했던 내용이었다. 그가 지금까지 입버릇처럼 말했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언제든 당신과 섹스할 수 있도록 아래를 기구로 채워 넣는 건 어떨까요. 당신이 흥분해서 제게 애원하는 걸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군요.”
??“……미친.”
나도 모르게 욕설이 튀어나왔다. 그거 여주랑 하던 거잖아. 왜 나한테 하려고 해. 그런 거 좋아하는 여주랑 하라고.
?“그거 범죄인 거 아세요?”
??“모를 리가 있겠나요.”
알베르트가 악마처럼 미소 지으며 내 옷에 달린 단추를 풀었다. 나는 그때 진심으로 고민했다. 아무리 알베르트가 공작이라지만 이 새끼의 실체를 하나하나 세상에 밝히면 사회에서 매장되지 않을까, 라고.
관계를 맺을 때는 미칠 듯한 쾌락이 내 몸을 덮쳤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관계가 끝나면 차마 형용할 수 없는 수많은 부정적인 감정들이 나를 찾아왔다.
이 짓도 지겹다, 이제는. 진심으로.
나는 알베르트의 밑에서 거세게 흔들리며 딴생각을 했다. 이제는 입에서 나오는 신음도 참지 않았다.
처음에 알베르트가 내가 신음을 참는 모습을 좋아하길래, 그런 걸 좋아하는 취향일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래서 신음도 마구 흘려 보았으나, 그는 여전했다.
오히려 지금 그는 더 기뻐 보였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거지. 누군가에게 들킬까 조마조마하고, 쫓겨나면 알베르트에게 납치라도 당할까 조마조마하고.
?
낮에는 알베르트, 그리고 밤에는 살로스. 나는 둘에게 매일 시달렸다. 정신을 잃기 직전까지 박히다가 겨우 풀려나는 일상.
그런 생활이 하루, 이틀…… 벌써 한 달이나 반복됐다. 미치겠다, 진짜로.
살로스는 꿈이니까 그렇다고 치자. 알베르트가 가장 큰 문제였다.
알베르트는 매일 수도원을 찾아왔다. 정말로 매일. 그리고 차마 말로 할 수 없는…… 그 짓을 매일 했다. 무슨 네가 에너자이저냐.
이런 생활이 한 달 동안 반복됐다. 일주일도 아니고, 한 달.
나는 매일 기도실에서 알베르트가 복상사하기를 기도했지만 신께서는 내 기도를 들어 주지 않으셨다. 차라리 내가 체력이 달려서 죽는 게 더 빠를 것 같았다.
그래서 결심했다. 수도원을 떠나자고, 도망치자고.
어차피 이 아슬아슬한 관계는 언젠가 모두에게 밝혀질 것이다. 손가락질받으며 쫓겨나고 알베르트에게 거둬지느니 모든 것을 비밀로 하고 스스로 나가는 편이 나았다.
?
나는 약 일주일 동안 계획을 세운 뒤 신부님에게 떠나겠노라고 선언했다. 신부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그 이유를 물었다.
?“더 많은 걸 경험해 보고 싶어서요.”
사실 그냥 알베르트 때문이었지만.
신부님은 내 안녕을 빌며 눈물 흘려 주었다.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나는 떠나야만 했다.
?“떠난다고?!”
??“응.”
??“이, 이 나쁜 계집애! 평생 나랑 같이 산다며!”
애니카는 내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고 펑펑 울었다. 나는 나중에 돈을 많이 벌어서 데리러 오겠다는 말로 그녀를 진정시켰다.
?“편지, 꼭 보내. 아흑. 내가 간간이 만나러 갈 테니까. 흑.”
??“그건 안 될 것 같은데…….”
?
혹여 편지를 통해 알베르트가 나를 찾아오면 곤란했다. 하지만 내 말을 오해한 애니카가 더 서럽게 울기 시작했다.
아, 진짜 어떡하지. 알베르트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없고.
결국 나는 손가락으로 약속 도장까지 찍은 후에야 애니카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정말로 떠날 시간이었다. 깊은 밤. 아무도 모르게 떠나기에는 최고로 좋은 시간 아니겠는가.
나는 수도원 밖으로 걸음을 옮기다가 잠시 행동을 멈췄다.
?
노아. 노아에게만은 꼭 마지막 인사를 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조심스럽게 고아원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늦은 밤이라서 그런지 고아원의 모든 아이들은 잠들어 있었다. 노아는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받으며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
마지막 인사는 하지 못했지만 나는 노아의 부드러운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속삭였다.
?“안녕, 노아.”
??
그리고 나는 알베르트가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수도원을 떠났다. 수녀복을 벗고, 수수한 원피스를 입은 채로.
남주야, 너는 여주랑 행복하게 살거라.
***
나는 걷고, 걷고 또 걸었다. 교통이 활성화되어 있는 도시를 향해 열심히 걸었다. 이곳에서 마차를 타고 최대한 멀리 벗어나고 싶었으니.
하지만 도시는 생각보다 멀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주일에 한 번씩 마을에 오는 마차를 타고 갈걸.
그렇게 생각하다가 나는 고개를 빠르게 저었다.
알베르트가 언제 나를 찾으러 올지 모르는데 한가하게 마을에서 마차를 기다리겠다니.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걷다 보니 어느새 하늘 높이 떠 있는 달이 금방이라도 내게 손을 흔들 것만 같은 밤이 되어 있었다. 헉, 언제 밤이 된 거야.
?
급하게 주변을 둘러봤으나 보이는 마을은 없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울창한 숲의 나무들뿐.
뭐, 어쩔 수 없나. 나는 한숨을 푹 쉬며 적당한 나무에 기대어 앉았다. 가방에 넣어 놓았던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자 금방 눈이 감기기 시작했다. 아으, 잠들면 살로스를 만나게 될 텐데.
하지만 내 의지와 다르게 내 눈은 결국 완전히 감기고 말았다.
?
?***
?
?“우리 수녀님, 겁도 없어라. 숲에서 잠들 생각이나 하고.”
?
또다시 살로스가 싱긋 웃으며 내 앞에 나타났다. 절망스럽다. 나는 으으, 하고 한탄하며 이마를 짚었다. 그러자 살로스가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와, 진짜 너무하네! 오늘 종일 수녀님 지켜 준 게 누구인 줄 알아? 나거든?! 수녀님한테 접근하는 놈들 전부 마법으로 혼내 줬단 말이야!”
??“뭐?”
??“뭐긴 뭐야. 수녀님 완전히 공공물 될 뻔했다는 말이지.”
?
그리고 살로스가 낄낄대며 웃었다. 그와 대비되게, 나는 얼굴을 잔뜩 구겼다. 어떻게 말을 저렇게 저급하게 할 수가 있지.
?“여러 사람이랑 같이 쓰고 싶지는 않거든.”
??“…….”
??“그나저나, 야외에서 섹스라. 새롭네.”
?
진짜 어떻게 저런 발상을 할 수가 있을까. 진심으로 놀라웠다.
하지만 지금 하면 내일 피곤해서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게 분명했다. 도망침으로써 알베르트와의 관계를 끊어 낸 것처럼, 살로스와의 관계도 거부할 수 있지 않을까.
?“살로스.”
?
나는 나지막이 그를 불렀다. 평소였다면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을 그가, 왜인지 조용했다.
그러다가 그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좋다.”
??“뭐?”
??“수녀님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오니까 좋아.”
?
잠시만. 내가 방금 그를 이름으로 불렀었나? 나는 뒤늦게 내 실수를 알아차리고 작게 혀를 찼다. 아무리 피곤해도 저 몽마 놈 이름을 부를 생각을 하다니.
?“왜 불렀어? 이렇게 예쁘게 내 이름을 불러 주니까, 수녀님이 부탁하는 건 다 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
??“하기 싫어.”
??“응?”
??“섹스, 하기 싫다고.”
진심이었다. 하긴,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섹스하기 싫다는 말이 진심이 아닐 때도 있었나. 항상 진심이었지.
그러자 살로스가 뻔뻔하게 웃으며 말했다.
?“음, 그건 들어주기 싫은데. 나 야외에서 해 보고 싶었단 말이야.”
??“…….”
??“이리 와, 수녀님.”
?
또다시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살로스에게 걸어갔다. 그는 다가오는 나를 기꺼이 끌어안았다.
?“하지만 기분이 좋으니까.”
??“…….”
??“상을 줄게. 수녀님이 지금 가장 원하는 걸 들어 줄 거야.”
?
원하는 것을 들어주겠노라고 말해 놓고 살로스는 내게 소원을 묻지 않았다. 내가 지금 가장 원하는 게 뭔 줄 알고 소원을 들어주겠다는 거야?
하지만 살로스는 비릿하게 웃을 뿐이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봤다.
알베르트도, 살로스도 길거리에서 스쳐 가듯 본 평범한 남자들이었다면 내가 이렇게 그들을 싫어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대로라면 만날 일조차 없는 존재들과 얽혀 버렸다. 알베르트와 마주쳤기 때문에 그와 섹스했고, 그와 섹스한 탓에 살로스를 만났다.
섹스. 내가 그들을 미워하는 이유였다. 가늘고 길게 살고 싶은 나에게 왜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치는 거냐고. 그들은 내 속마음을 존중해 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체념했다. 그래도 알베르트에게서 벗어났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내 위에서 열심히 허릿짓을 하는 살로스를 바라보다가 눈을 감았다.
***
?“스텔라 수녀님께서 떠나셨다는 말씀이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이곳을 떠나 더 많은 걸 배워 보고 싶다더군요. 참 기특하지 않습니까.”
?
신부는 그렇게 말하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와 대비되게, 알베르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떠났다. 스텔라가 떠났다.
그의 아래에서 엉엉 울며 애원하던 작은 새가, 주인을 피해 새장을 탈출했다. 적어도 알베르트는 이 상황을 그렇게 생각했다.
눈물이 가득 고여 있는 그 붉은 눈을 마주할 때는 얼마나 황홀했던가. 혀로 그 눈을 핥으면 움찔대던 그 하얀 몸은 얼마나 사랑스럽던가.
평생 느껴 본 적 없는 감정이었다. 스텔라. 그녀는 알베르트를 난폭하게 만들었다. 정신을 차리지 못하게, 마치 중독된 것처럼 미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그녀가 떠났다.
그녀가 어디로 갔느냐고 물었으나 신부는 모른다고 답할 뿐이었다.
?
알베르트는 주먹을 세게 쥐었다. 계속 무어라고 떠드는 신부는 더 이상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알베르트는 신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몸을 돌려 방에서 나가 버렸다.
?“고, 공작님?”
?
신부가 다급하게 그를 불렀으나 알베르트가 다시 돌아오는 일 따위는 없었다. 대신 문틈 사이로 건장한 공작보다 훨씬 작은 어린아이가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