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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같이 보러 갈 거지, 응?”
??“내일 하루 종일 바쁠 게 뻔한데 미리 자 둬야지.”
?
말은 저렇게 해도 애니카는 사실 정이 많고 유한 성격이기 때문에 계속 조르면 같이 가 줄 게 뻔했다. 나는 애니카의 팔을 매달려 그녀를 설득했다.
?
?“스텔라. 잘 들어.”
??“응. 말해 봐.”
??“작년에도 네가 불꽃놀이 보자고 해서 탄생 기념일 전날에 잠 안 자고 불꽃놀이 봤었지?”
??“응.”
??“그리고 기념일 당일에 내가 어떻게 됐었지?”
??“쓰러졌었지. 피곤해서.”
??“그걸 알면서 나한테 불꽃놀이를 보러 가자고 하냐!”
?
억. 나는 애니카가 휘두른 팔에 튕겨 나가 저 멀리로 널브러졌다. 이럴 수가. 애니카는 작년에 피곤함에 절어 쓰러졌던 기억이 머리에 콕 박힌 탓인지 내 생각 외로 단호했다.
?“정 보러 가고 싶으면 노아랑 보러 가든지. 나는 또 쓰러지기 싫으니까.”
??“그냥 자기 체력이 바닥인 거면서…….”
??“뭐라고?”
??“허허, 아무것도 아닙니다.”
?
나는 매섭게 눈을 뜨고 나를 노려보는 애니카를 피해 노아에게 다가갔다.
?
?“어때, 노아. 같이 불꽃놀이 보러 갈래?”
?
그러자 노아는 세차게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런 격렬한 반응이라니. 애니카와 너무 상반되는 반응이었다.
?“들키면 혼나고 자러 가라는 말이나 들을 게 뻔하니까 조심히, 몰래 나와야 해. 오늘 밤 열한 시에 수도원 건물 꼭대기에서. 알겠지?”
??“으휴, 진짜 좋은 거 가르친다.”
??“칭찬 고마워 애니카.”
?
애니카를 향해 찡긋 윙크를 하자 애니카가 갑자기 얼굴을 찌푸리더니 ‘으이구!’ 따위의 소리를 내며 내 등짝을 마구 때렸다. 아니, 갑자기 왜 때리는 거야.
?“그럼 이따 보자. 밤 열한 시야, 밤 열한 시.”
??“으응. 이따 봐, 누나.”
?
노아와 나는 서로에게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아직 점심도 되지 않았는데 불꽃놀이에 대한 기대 때문에 기분이 마구 솟구쳤다.
?***
?
?“흐읍…….”
?
창밖은 어두웠다. 나는 숨소리조차 아끼며 걸음을 내디뎠다. 나무로 만들어진 바닥이 내 무게를 받을 때마다 삐그덕, 하고 울었다.
?
수도원이 낡으니 이런 단점이 있구나. 몰래 돌아다니기에 최악의 환경이었다.
?
차라리 노아처럼 무게라도 덜 나가면 조금은 수월했으려나. 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며 홀로 킥킥 웃었다.
?
걷다 보니 어느새 다른 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도착했다. 밤에 보는 계단은 꽤나 을씨년스러웠다. 갑자기 유령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삐그덕, 삐그덕. 낮에는 알지 못했는데 밤에 걸으며 들으니 계단은 바닥보다 더 요란하게 소리를 질렀다. 진짜 분위기 왜 이래.
?
진짜 유령이라도 튀어나오면 어쩌지. 악마도 있고 마법도 있는 이 세상에 유령이 없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
?“흐어악!”
?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실제로 흰 천을 두른 것 같은 유령의 형체가 내 앞에 나타났다. 나는 놀라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벽에 찰싹 붙었다.
?
잠깐만. 흰 천을 두른 것 같은?
?
?“누나 괜찮아?”
?
누군가 안에서 나풀대는 천을 살짝 젖히더니 모습을 드러냈다. 천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유령이 아니라, 노아였다.
?
?“도대체 왜 그러고 다니는 거야…….”
?
어흐흑. 진짜 놀랐다고…….
?“혹시 누나 추우면 주려고…….”
?
기특하기는 한데 손에 들고 다니면 되는 걸 굳이 그걸 몸에 두르고 다녀야겠니……. 나는 차마 이를 소리 내어 말하지는 못하고 내적 눈물을 흘렸다.
?“거기 누구니!”
?
그때였다. 내 비명을 들은 건지, 아래층에서 수녀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노아. 빨리 가자.”
?
우리는 까치발을 하고 후다닥 꼭대기 층으로 향했다.
?
?***
??
꼭대기 층은 그다지 특별하지 않았다. 평범한 집들의 다락방처럼 생긴 곳이었다.
?
이미 마을에서의 불꽃놀이는 시작한 상태였다. 불꽃놀이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요란한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
?“윽. 먼지.”
?
잘 사용하지 않는 곳이라서 그런지 먼지가 가득했다. 우리는 작은 창문을 열어 먼지를 대강 털어내고 방을 환기했다.
?
?“직접 가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어쩔 수 없지. 밤에는 외출이 금지되니까. 이렇게 보는 걸로 만족해야지, 뭐.”
?
밤이라 창문을 타고 찬 공기가 들어왔다. 내가 살짝 몸을 떨자 노아는 자신의 어깨를 덮고 있던 흰 천, 아니 담요를 내 어깨에 덮어 두었다.
?
이 녀석 젠틀한 것 좀 보게. 다 자라면 인기 좀 있을 것 같다. 나는 담요를 활짝 벌리며 노아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
그러자 노아가 배시시 웃으며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아이의 체온은 따듯했다.
?
?“…….”
??“…….”
?
그리고 한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아마 우리 둘 다 불꽃놀이에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리고 저 멀리에서 붉은색 불꽃이 날아올라 사방으로 불꽃을 뿜어내자, 노아가 시선을 창밖에 고정한 채로 말했다.
?
?“누나랑 이렇게 있으니까 좋다.”
?
불꽃놀이를 보러 와서 좋다는 말인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나도’라고 대답했다.
?
?“나는 세상에서 누나가 제일 좋아.”
?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마음속으로 낄낄 웃었다. 과연 저 말이 언제까지 가려나. 한 2년만 지나도 친구들이랑 노느라 나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
?“그래, 그래. 누나도 노아가 제일 좋아.”
??
그러니 나중에 친구들이랑 놀다가도 가끔 말이라도 걸어 주렴.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 같은 심정이었다.
?
이제 슬슬 마을의 불꽃놀이도 끝나가는 분위기였다. 화려하게 물들었던 하늘이 점점 어두워졌다.
?
?“우리도 이제 방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
내 어깨에 기대고 있던 노아를 톡톡 두드렸다. 그러나 노아는 잠든 것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색색거리며 규칙적으로 호흡하고 있을 뿐이었다.
?
……잠든 것처럼이 아니라 진짜 잠든 것 같은데.
?
나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과연 내가 잠든 노아를 업고 들키지 않은 채로 그의 방으로 데려다줄 수 있는 확률은 얼마나 될까.
?
솔직히 0에 가까웠다. 살짝만 밟아도 삐거덕거리는 바닥이 나와 노아를 합칠 무게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었다.
?
에이, 모르겠다. 나는 그냥 노아를 바닥에 눕히고 나도 벌렁 누웠다.
?
잠은 오지 않았다. 어차피 잠들면 살로스를 만날 게 분명해서 눈을 감지도 않았다.
?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밤의 찬 공기를 이겨 내기 위해 노아에게 딱 달라붙었다. 노아의 등에서 심장이 빠르게 뛰는 소리가 들렸다.
?
이 정도면 어디 아픈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의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혹시 잠든 게 아니라 아파서 쓰러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열도 없고, 호흡도 정상적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심하고 다시 그의 옆에 누웠다.
?
꽤 신나는 밤이었다. 불꽃놀이가 끝나도 마을에서는 축제가 이어지고 있는지 불빛이 번쩍였다. 나는 창문을 통해 한참 그 광경을 구경하고 있었다.
?
내일이 되면 다시 수도원은 문을 열고 손님들을 맞을 것이다. 특히 내일은 성녀 세티아의 탄생 기념일이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수도원으로 몰려들 거고.
?
아마 그중에는 알베르트도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그를 떠올리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
나는 아직도 그날 그때 정원에 있었던 것을 후회한다. 거기에 있지만 않았어도 알베르트를 만날 일은 없었을 텐데.
하지만 후회해 봤자 무엇하겠는가. 이미 엎지른 물인 것을.
?
에휴. 나는 깊은 한숨을 뱉고는 눈을 감았다.
?
잠들지 않았음에도 시간은 빠르게 지나갔다. 어느새 달이 사라지고 밝은 해가 산 위로 서서히 떠 오르고 있었다.
?
?“노아. 일어나. 아침, 아니 새벽이야. 내려가야지.”
?
노아의 어깨를 살살 흔들어 깨우자 그가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
우리는 조심히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서로 방이 다르기 때문에 인사를 하며 헤어지려는 찰나, 누군가 험악한 얼굴로 벽 뒤에서 튀어나왔다.
?
?“헉. 수, 수녀님.”
?
어제 내 비명을 듣고 쫓아왔던 수녀님이었다.
?
?“스텔라. 그리고 노아. 도대체 이렇게 이른 아침에 방에 있지 않고 무슨 일이니?”
??“아, 일찍 일어나서 청소라도 해 놓으려고 나왔어요.”
??“그런데 왜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거지?”
?
윽. 이미 다 알고 있다는 눈빛이었다.
결국 노아와 나는 수녀님의 압박을 이기지 못하고 어제 우리가 저지른 일들을 전부 털어놓고 말았다.
?
그 벌로 우리는 종일 주방에 처박혀 손님들에게 대접하는 쿠키를 굽는 일만 주야장천 했다. 다행인 건 주방에만 있었던 덕분에 알베르트를 만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뭐, 그래도 나쁘지는 않았다. 수녀님이 감시하고 있지 않을 때는 몰래 쿠키도 몇 개 집어먹었으니까.
?
게다가 가장 좋았던 것은, 어제 노아와 불꽃놀이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었다. 쿠키를 굽다가 눈이 마주치자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짓궂게 웃었다.
***
?“스텔라. 요즘 많이 피곤해 보이는데 무슨 일 있어?”
휴식실에서 벽에 기대어 있던 애니카가 내게 물었다.
무슨 일. 무슨 일이라. 무슨 일은 참 많았다. 낮에는 알베르트에게 시달리고 밤에는 살로스에게 시달리고. 다만 그걸 소리 내 말할 수가 없을 뿐.
?“아니, 아니야. 별일 없어.”
??“좀 자고 올래? 내가 대신 일 하고 있을게.”
??“아, 아니!”
?
나도 모르게 빼액 소리를 질렀다. 애니카가 당황하여 눈만 깜빡였다.
?“아, 미안.”
?
하지만 잠들면 다시 살로스를 만나게 될 것이다. 꿈속에서 다시 그와 관계를 가지면 쉬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스텔라. 공작님께서 찾으신단다.”
?
아아, 또다. 또 알베르트는 수도원을 안내해 달라는 이유로 나를 불렀다.
피곤한 얼굴을 겨우 지우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애니카가 음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 솔직히 말해 봐. 공작님이랑 네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은데.”
??“없거든? 내가 물론 신앙심은 바닥이지만 그런 미친 짓을 할 리가.”
?
연애를 넘어서 그런 짓을 하고 있지만. 하지만 차마 그 사실을 밝힐 수는 없었다.
신을 모시는 몸으로 남자와 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나는 수도원에서 쫓겨날 테니까. 그럼 나는 알베르트의 저택에 갇혀 쉴 새도 없이 그와 관계를 가져야 할지도 모른다.
어우, 최악이다. 지금도 힘든데 그렇게 된다면 정말 힘들어서 눈도 못 뜰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