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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구가 안으로 더욱 깊숙이 들어오며 배를 찔렀다. 현실이었다면 분명 고통스러웠을 테지만 꿈이라서 그런지 쾌락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악마를 믿는 게 아니었어. 심지어 그냥 악마도 아니고, 몽마는 성욕의 악마잖아. 내가 그런 놈을 믿다니. 멍청했다.
내가 살로스의 팔을 잡고 부들부들 떨자 그는 웃으며 내 손등에 입 맞췄다. 그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지는 순간이 어찌나 야릇하던지.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에 힘이 풀렸다. 잠시 멍하니 살로스의 얼굴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자 그것을 본 살로스가 느릿하게 내 눈을 핥았다. 힉. 나는 눈을 꾹 감았다.
?“눈가가 촉촉해졌어.”
??“윽, 손가락이나 빼고, 흐, 말해.”
??“울어 봐. 눈 촉촉한 거 보고 싶어.”?
?
가관이었다. 내 눈이 촉촉해지는 걸 보고 싶다는 이유로 울어 보라고?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아. 아니면 아래로 내 거 먹으면서 우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마침내 살로스는 내 아래에서 기구를 뺀 후 바지 버클을 끌렀다. 와중에 몽마는 도대체 왜 옷을 입는 거지.
?“이걸 넣은 인간한테는 감사해야겠네. 이거 덕분에 이미 수녀님 아래가 축축하니까.”
??“누구, 알베르트?”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
감사는 개뿔. 천하의 쌍놈이라고 불러도 모자란 놈에게 감사라니.
갑자기 살로스가 내 위로 그대로 엎어지더니 내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수녀님, 빨리 정기 좀 나눠 줘.”
??“무거우니까 비켜.”
??“정기가 모여야 현실에서도 수녀님을 만날 수 있단 말이야.”
?
살로스는 어린아이처럼 칭얼거렸다.
아니, 그나저나 잠시만. 내가 잘못 들은 건가?
?“현실에서도 만날 수 있다고?”
??“응. 수녀님한테서 충분히 정기를 얻으면 실체화할 수 있어.”
진짜로, 정말로 완전 싫었다. 현실에서 만나는 건 지긋지긋한 알베르트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런데 현실에서 이 미친 몽마까지 만나야 한다고? 싫다. 안 된다, 절대.
나는 있는 힘껏 살로스를 밀친 후 후다닥 방문을 향해 달렸다. 그런데 등 뒤에서 그의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수녀님.”
?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굳어 방문을 열 수가 없었다. 무서워서 몸이 굳은 게 아니라, 진짜로 몸이 움직이지를 않았다.
?“내가 전에 말했던 것 같은데.”
??“…….”
??“여기는 내가 만든 공간이라고.”
갑자기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나는 몸을 돌려 살로스에게 다가갔다. 살로스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팔을 벌렸고, 나는 그의 품에 폭 안겼다.
?“수녀님이 반항해도 전부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는 소리야. 내가 만든 공간이니까.”
??“…….”
??“지금까지 수녀님 몸을 마음대로 다루지 않은 건 수녀님의 반응이 재밌어서였어. 근데, 이렇게 말을 안 들으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내가 저것도 수녀님 아래에서 꺼내 줬는데?”
?
그럼 살로스가 원한다면 나를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뜻인가. 내 생각을 읽었는지 살로스가 쿡쿡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 어떡할까. 말 안 듣는 우리 수녀님.”
?
살로스가 비릿하게 웃었다. 왠지 불안한 기분이 스멀스멀 몸을 타고 올라왔다.
?“요즘 밧줄로 묶고 섹스하는 게 재밌어 보이던데.”
?
그러더니 살로스가 손가락을 휘둘러 얇은 밧줄을 만들어 냈다. 아, 설마. 아니겠지. 나는 그에게 안긴 채로 식은땀을 흘렸다.
***
설마가 사람 잡는다고 하던가. 역시 옛말 틀린 거 하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살로스는 내 손을 뒤로 묶은 후 미친 듯이 쳐올렸다. 울어 보라고, 눈 촉촉한 게 보고 싶다고 말한 게 진심일 줄 내가 알았겠는가.
정말로 힘들어 죽는 줄 알았다. 살로스의 굵은 물건이 아래에 삽입될 때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마침내 내가 제발 그만해 달라고 애원하며 눈물 흘리자 그제야 살로스는 만족한 듯 내 뺨에 입을 맞췄다.
꿈속에서 관계를 가졌음에도 피곤했다. 그리고 낮에는 다시 알베르트가 찾아와 나를 괴롭혔다.
?
?“기구는 어떻게 빼셨습니까? 다른 자와 관계라도 가졌습니까?”
??“그럴 리, 가 없잖아요, 흣. 그리고 설사 그렇다고 해도 공작님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무어라고 더 따지려고 했지만 알베르트가 거칠게 입을 맞추는 바람에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진짜 피곤해 죽겠다. 이러다가 진짜로 관계를 가지다가 죽은 수녀로 역사에 남는 건 아닐까. 나는 알베르트의 위에서 아무렇게나 흔들리며 상념에 빠졌다.
?“나한테, 집중하세요.”
??“제가 왜요.”
?
괜히 반항심이 들었다. 내가 왜 이놈이 원하는 대로 전부 따라 줘야 한다는 말인가. 나는 오히려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알베르트가 인상을 찡그리더니 더 세게 허릿짓을 했다. 그 탓에 나는 힘없이 앞으로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알베르트의 품에 안기며 몸을 바들바들 떨자 그는 내 얼굴 여기저기에 가볍게 키스했다. 아오, 진짜. 이 미친놈이.
?“수녀님이, 당신이 수도원에서 쫓겨났으면 좋겠어요.”
?
뜬금없이 그게 무슨 말이지. 나는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겨우 일으키며 알베르트와 시선을 맞췄다. 그의 눈빛은 답지 않게 진지했다.
?“모두가 더럽다고 당신을 욕하고 손가락질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모두가 당신을 증오하면 당신은 나만의 것이 될 수 있을 텐데.”
?
순간 섬뜩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알베르트의 눈빛이 마치 먹이를 눈앞에 둔 뱀의 것처럼 공허하고, 날카로워서.
알베르트가 집착이 강하다는 것은 이미 소설에서 읽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여주 한정이었다고. 대체 나한테 왜 이래.
품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그는 다시 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몇 번이고 발버둥 쳤지만, 전부 의미 없는 행동이었다.
?“저한테 왜 이러세요?”
??“모르겠어요, 모르겠는데.”
알베르트가 말을 흘리며 내 입에 혀를 집어넣었다. 갑자기 들어온 혀에 놀라 나도 모르게 그의 혀를 깨물고 말았다.
?“…….”
그는 나른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떼 냈다. 그는 나를 뚫어져라 응시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
?“모르겠는데, 갖고 싶어요. 나만 보게 하고 싶고, 나만 보고 싶어.”
알베르트의 그 말에는 진득한 소유욕이 묻어 있었다.
잠시만. 소설 속에서 알베르트가 원래 이렇게 어두운 분위기를 가진 사람이었나. 소설은 그냥 여주랑 남주가 변태 짓이나 하는 가벼운 내용이었단 말이야.
이 정도면 피폐 소설이었다고 해도 믿겠네.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할 것 같은 이 숨 막히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은.
알베르트의 입안에서 흘러내리는 끈적거리는 피뿐이었다.
?
***
정원에 쌓인 낙엽을 쓸고 있는데, 아직 짧은 다리를 열심히 움직이며 멀리서 총총 걸어오는 노아가 보였다.
?“아, 노아. 안녕. 좋은 아침이야.”
?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노아는 머뭇거리다가 등 뒤에 숨겼던 것을 내게 건넸다.
?“꽃?”
??“누나처럼 예뻐서 꺾어왔어.”
노아가 그렇게 말하며 빙긋 웃었다.
으윽, 내 심장. 귀여워 죽겠다. 나는 잠시 비틀거리다가 겨우 바르게 섰다. 노란색 꽃잎. 줄기가 아무렇게나 자란 것을 보니 길에 핀 들꽃 같았다.
내게도 이 예쁜 꽃을 보여 주고 싶어서 이렇게 꺾어서 가져다준 것은 기특했다. 하지만 수도원은 어린아이들에게 생명은 소중한 것이라고 가르치는 곳이었다.
수녀님들이 아이들을 교육했던 것처럼 나도 노아에게 충고를 하나 해 주기로 결심했다.
?“꽃 정말 예쁘다, 노아.”
??“그렇지?”
??“응. 그런데 예쁘다고 해서 다 이렇게 꺾어 버리면 안 돼. 보는 우리는 즐겁지만 꽃은 아플 테니까.”
?
그러자 노아의 표정이 점차 오묘해졌다. 아차. 너무 혼내는 것처럼 말해서 시무룩해진 건가.
하지만 그의 표정은 서운하기보다는 의문스러운 것에 가까웠다. 노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내게 물었다.
?“왜 안 돼?”
??“응?”
?
왜 안 되느냐는 질문이 돌아올 줄은 몰랐다. 보통 어린아이들은 이럴 때 꽃에 사과하며 훈훈하게 끝내지 않았었나.
그러나 노아는 예외였다.
?“나는 꽃의 고통을 느끼지 못해. 꽃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나는 꽃이 아니니까.”
??“…….”
??“내가 원하면 꽃을 꺾어서 가질 거야. 어디에도 가지 못하게 꽃병에 넣어서 보관할래.”
?
꽃은 발이 없어서 아무 데도 가지 못한다만…….
그나저나 열세 살 어린아이가 말하기에는 꽤나 섬뜩한 대답이었다. 꽃에 사과하며 훈훈하게 마무리하려다가 오히려 그의 대답 때문에 말문만 막혔다. 이를 어쩐다.
에라, 모르겠다. 좀 무책임하기는 하지만 이럴 때는 자리를 피하는 게 최고지.
?“아, 맞다. 나 부엌 청소해야 하는데. 그럼 안녕, 노아. 다음에 보자.”
나는 노아의 대답을 들지도 않고 손에 빗자루를 든 채로 잽싸게 정원을 빠져 나왔다. 역시 어린애들을 가르치는 건 나랑 잘 안 맞는 것 같다.
최대한 빨리 정원에서 도망치느라 그때는 몰랐다. 어린아이의 지독한 시선이 집요하게 나를 쫓고 있었다는 사실을.
***
?“누나. 스텔라 누나.”
?
작은 형체가 내 치마에 달려와 폭 안겼다. 검은 머리통이 부드러운 치마에 얼굴을 비볐다.
그러자 무심한 표정을 하고는 그 모습을 지켜보던 애니카가 빗자루를 땅에 고정하고 몸을 기대며 말했다.
?“또 노아네. 하여간 너는 참 스텔라를 좋아하는 것 같아.”
??“너 설마 또 수업 시간에 몰래 나온 건 아니지?”
??“아니야. 나 숙제까지 다 하고 왔어.”
??“그래그래, 알겠어. 잘했네.”
?
오늘은 바로 성녀 세티아 탄생을 기념하는 바로 전날이기 때문에 외부인이 수도원에 출입할 수 없는 날이었다.
어흑. 내가 진짜 이날만을 기다리며 살았다고. 아마도 오늘이 매일 찾아오는 알베르트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일 것이다.
?
내일 기념일에 수도원을 찾는 손님들을 맞기 위해 평소보다 더 빡세게 청소를 하고 있기는 하지만 뭐, 이 정도쯤이야.
?
노아는 어느새 자신의 키만 한 빗자루를 들고 와 함께 바닥을 쓸고 있었다. 애니카와 나는 그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며 발을 동동 굴렀다.
?
?“오늘 밤에 마을에서는 불꽃놀이 한다던데, 수도원에서는 그런 거 안 하려나.”
??“수도원에서 불꽃놀이는 무슨. 빨리 청소나 해.”
??“건물 꼭대기에서 보면 보이겠지?”
??“청소나 하라니까.”
?
애니카가 계속 옆에서 잔소리를 했으나 내게는 들리지 않았다. 이미 내 머릿속은 형형색색의 화려한 불꽃놀이로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