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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세요, 아가씨-3화 (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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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베르트와 했을 때는 쾌락도 꽤나 존재했지만 고통 또한 뒤따랐다. 하지만 지금은 고통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쾌락뿐이었다.

    도대체 내 위에서 열심히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 남자는 누구일까. 일단 알베르트의 목소리는 아니었는데.

    그때, 남자가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속삭였다.

    ?“머리 굴리지 마. 전부 티 나니까.”

    주변이 전부 컴컴한데 그걸 어떻게 아는 거지.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붙잡힌 손을 빼내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남자의 무지막지한 힘에 눌린 손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느낀 남자가 허리를 쳐올리는 속도만 빨라졌을 뿐이었다.

    손이 움직이지 않으니 이번에는 입술을 꾹 깨물어 신음을 참았다. 그러자 갑자기 입안에 남자의 물컹한 혀가 침입했다.

    헉. 남자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야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내가 숨이 차 헐떡이자 그제야 제 입을 떼 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침대 옆 테이블을 더듬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수도원에서 관계를 맺을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야겠다. 이쯤에 성냥이 있을 텐데…….

    남자는 허릿짓을 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였다. 아읏, 흣. 나는 흘러나오는 신음을 억누르며 성냥을 집었다.

    ?

    하지만 남자에 비해 작은 이 몸뚱이가 자꾸 흔들리는 탓에 성냥에 불을 붙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보였다. 그때, 남자가 내 작게 웃으며 야살스럽게 말했다.

    ?“수녀님, 성냥은 왜 들고 있는 거야? 내 얼굴 보고 싶어서 그래?”

    그러더니 그는 내 손에서 성냥을 뺏은 후 스스로 성냥에 불을 붙였다.

    ?“…….”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남자는 어두운 은발을 가진 미청년이었다. 다만, 그의 머리에는 어두운 색의 뿔이 두 개 달려 있었다.

    ?“…….”

    이건 꿈이다. 그래, 꿈이야. 사람 머리에 뿔이 달려 있을 리가 없지. 다시 잠들자. 나는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눈을 꾹 감았다.

    ?“내 얼굴 보고 싶어 했잖아. 왜 안 봐?”

    ??“내 꿈에서 나가.”

    내가 꿈속의 악마를 향해 단호한 어조로 말하자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는 성냥으로 옆에 놓인 촛대에 붙을 붙이며 말했다.

    ?“꿈인 거 어떻게 알았어? 보통 사람들은 못 알아차리던데.”

    ??“…….”

    ??“근데, 눈 떠 봐. 섹스는 계속해야 할 거 아냐.”

    꿈은 보통 경험을 기준으로 두고 만들어진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는 저런 요사스러운 말을 하는 남자를 만난 적이 없는데 왜 저런 게 내 꿈에 나오는 거야.

    ?“눈 안 뜨면 내일 꿈속에도 찾아온다.”

    그 말을 듣고 나는 무의식적으로 바로 눈을 떴다. 그걸 보고는 남자가 또다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내가 네가 누군지 어떻게 알아……. 내가 짜게 식은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자 남자는 입꼬리를 끌어올려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름은 살로스, 몽마야.”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그러니까, 얘가 방금 몽마라고 자기소개한 거 맞지?

    ?“신과 성녀 앞에서 신나게 섹스를 하고 있더라. 재밌었어?”

    ?

    정상적인 주제는 아니지만 일단 살로스라는 몽마는 내게 대화를 시도하려는 것 같았다. 그래, 대화로 이 상황을 해결하는 거야. 나는 상체를 일으키며 내 아래에 연결되어 있던 살로스의 물건을 빼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가 세게 물건을 내 아래에 박아 넣는 탓에 나는 앞으로 쓰러지며 그의 목에 매달리고 말았다.

    ?“아윽!”

    ??“어라, 수녀님 방금 나한테 안긴 거야?”

    ?

    너한테 안긴 게 아니라 너 때문에 쓰러진 거잖아……! 화를 내려고 했으나 허리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이를 악물며 그의 목을 더 세게 끌어안았다.

    살로스는 빙긋 웃으며 흐응, 하는 소리를 내더니 그 상태로 허릿짓을 시작했다. 망할. 대화가 통하는 상대인가 싶었더니 이놈도 알베르트 과인가 보다. 적어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긴, 몽마라는 존재에게 정상적인 사고를 바라는 게 애초에 무리였을지도.

    ?

    내가 몸을 지탱하기 위해 살로스의 목을 더욱 세게 끌어안자 그는 커다란 두 손으로 내 허리를 쥐고 쳐올렸다. 허리를 감싼 옷 위로 간지러운 감각이 느껴졌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나는 쾌락에 가득 차 헐떡이며 살로스의 목을 안고 있는데 막상 그는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괜히 분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오히려 야살스럽게 웃으며 내게 말을 걸었다.

    ?“신 앞에서 당당하게 섹스를 한 성직자는 수녀님이 처음이야. 신기하지?”

    ?

    아니, 전혀 신기하지 않았으며 애초에 당당하게 하지 않았다. 내가 손톱을 세워 살로스의 등을 긁으며 분노를 표하자 무엇이 웃긴지 그는 또다시 터트리며 말했다.

    ?“수녀님, 고양이 같다.”

    ?

    그러더니 그는 축 늘어져 있던 내 팔을 그의 입에 가져다 댄 후 가볍게 입 맞췄다. 분명 가벼운 입맞춤일 뿐이었는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것마저도 농밀하게 느껴졌다.

    ?“손끝이 분홍색이네. 진짜 고양이인가?”

    ?

    그는 내 손끝을 꾹꾹 누르기 시작했다. 멋대로 꿈속에 들어와 놓고 이제는 동물 취급이라니.

    그러면서도 그는 허릿짓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허릿짓을 하는 내내 신음 한 번 내지 않더니, 절정에 다다랐을 때쯤에야 조용히 흐응, 하는 소리를 냈다.

    ?“아, 하응……! 응, 윽!”

    ?

    몸이 거세게 뒤흔들리더니 따듯한 액체가 몸 안에 퍼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의 존재를 알아채기도 전에 살로스는 나를 안아 들어 침대에 눕혔다. 여전히 그의 물건은 내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나저나 여기는 수도원인데 어떻게 몽마가 찾아올 수 있는 거지. 악마나 몽마는 수도원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그건 힘이 약한 하급 몽마들한테나 해당하는 이야기고.”

    내 마음을 읽기라도 했는지 대뜸 살로스가 내 궁금증에 대한 답을 내뱉었다. 내가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바라보자 그는 내 눈가를 문지르며 이마에 입 맞췄다.

    ?“이 꿈은 내가 만든 공간인데 내가 수녀님 생각 하나 못 읽겠어?”

    ?

    헉. 그럼 내가 생각하는 것들이 전부 들린다는 말인가. 괜히 소름이 돋았다.

    ?“더 하고 싶은데…… 곧 아침이 찾아와서 못하겠네. 아쉽다.”

    ??“…….”

    ??“그런 앙칼진 표정 짓지 마. 내일 또 찾아올 테니까.”

    ??“아니, 찾아오지 마.”

    내가 단호하게 말하자 살로스가 눈꼬리를 휘며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내 아래에 들어와 있던 그의 물건이 천천히 움직였다.

    ?“……읏.”

    ??“아까 좋아서 헐떡대던 사람이 누구더라.”

    ?

    나는 입술을 깨물며 꾹 눈을 감았다. 그러자 곧 그는 장난이었다는 듯 내 볼을 툭툭 건드렸다.

    ?“그래도 수녀님이 이 상황을 벗어날 방법이 세 가지 있기는 해.”

    ??“뭐? 그게 어떤…….”

    ??“수녀님에 대한 내 흥미가 떨어지거나, 수녀님이 내게 반하거나, 수녀님이 죽거나.”

    ?

    마지막 방법은 너무 극단적인 거 아닌가. 일단 첫 번째 방법이 가장 가능성이 커 보였다.

    ?“나는 두 번째 방법이 가장 쉬울 거라고 생각해.”

    ??“내가 너한테 반하면 어떻게 되는데?”

    ??“죽을 때까지 꿈속에서 나랑 섹스하는 거지.”

    ??“달라지는 게 없잖아, 인마.”

    ?

    그럼에도 살로스는 해맑게 웃었다. 하지만 내 눈에는 뻔뻔한 미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

    ?“그럼, 내일 밤에 보자. 수녀님.”

    ?

    살로스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잠에서 깨어났다.

    몸을 일으키자 아래에서 흘러나온 물이 끈적거리는 소리를 내며 제 존재를 알렸다.

    ?“…….”

    ?

    주신 렌다이시여, 만약 정말로 당신이 존재하신다면 부디 제 평화로웠던 일상을 돌려주십시오.

    크흡. 나는 얼굴을 양손에 박고 나오지 않는 눈물을 쥐어짰다. 이미 관계를 두 번이나 맺은 수녀의 기도 따위를 신께서 들어 주실 리가 없다.

    ***

    꿈속에서도 그 짓을 해서 그런지 잠을 잤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이 피폐했다. 내가 빗자루질을 하고 있는 건가, 잠을 자고 있는 건가.

    옆에서 나를 지켜보던 애니카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되겠어. 너 잠 깨라고 내가 냉수라도 한 잔 가져올게.”

    ?

    내가 대답을 하기도 전에 그녀는 주방으로 뛰어갔다.

    ……설마 청소하기 싫어서 시간을 끌려고 냉수를 핑계로 도망간 건 아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적어도 나보다는 훨씬 더 성실한 성격이니까.

    ?

    그나저나 피곤해서 그런지 바닥을 밟고 있는 발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으으, 정신 차리자. 머리를 양쪽으로 흔들며 다짐했으나 다리는 결국 스텝이 꼬여 서로 얽히고 말았다.

    ?“아.”

    넘어진다. 나는 곧 이어질 고통을 기다리며 다치면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고 기대했다. 하지만 넘어지던 몸은 어느 순간 멈췄다.

    누가 잡아 주기라도 한 건가? 주변을 살폈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끙끙거리는 소리가 들려온 곳은 내 시야보다 훨씬 낮은 아래쪽이었다.

    ?“노아?”

    ?

    흑발에 푸른 눈. 노아는 수도원 안에 위치한 고아원에 사는, 아직 열세 살밖에 먹지 않은 어린 소년이었다.

    그런데 그가 내 뒤에 서서 내가 넘어지지 않도록 작은 손으로 힘겹게 내 등을 받치고 있었다. 사실 받치고 있다기보다는 밀고 있는 것에 가까웠지만.

    계속 이러고 있다가는 함께 넘어질 것 같아서 자세를 바로 했다. 나는 똑바로 선 후 노아를 바라봤다. 아직 키가 작아 한참 고개를 숙여야 그와 눈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여기는 무슨 일이야?”

    그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나를 잘 따랐다. 시간만 나면 나를 찾아오는 것이 꽤 귀여워 간식을 몇 개 쥐여 주기도 했다.

    노아는 잠시 입을 우물거리며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다가 말했다.

    ?“애니카 누나가 그랬어. 스텔라 누나가 피곤해 보인다고.”

    그렇게 말하며 불쑥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작은 손을 바라보자 그는 내 손에 무언가를 쥐여 줬다.

    그나저나 애니카는 냉수 한 잔 가지러 간다면서 내가 피곤한 걸 동네방네 알리고 다니는 모양이다. 돌아오면 잔소리해야지, 라고 생각하며 손에 있는 것을 확인했다.

    노아가 내게 준 것은 바로 노란색 종이로 포장된 사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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