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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타이오스 (1/5)

1. 타이오스

누나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에도 누나를 보고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깨달았을 정도로.

누나. 디아메데스에 대해 명확하게 떠올릴 수 있는 기억은 10살 때였다. 그 순간의 바람, 빛,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 눈빛. 모든 것들이 머릿속에 새겨지듯 박혀 버렸으니까.

그날,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마 공부가 싫어서 도망쳤던 것 같다.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다가 가장 넓고, 복잡한 미로 정원 속으로 들어갔다. 얼마나 정원 속에서 헤매고 있었을까. 타이오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급히 몸을 숨겼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매일같이 듣고 있는 목소리였으니까.

‘누나?’

누나도 공부하기 싫어서 도망쳤을까. 조금 반가운 마음에 깜짝 놀래 줄 생각으로 고개를 살짝 내민 순간, 타이오스는 그 자리에 얼어붙어야 했다. 디아메데스가 어떤 남자와 달라붙어 있었으니까.

그녀의 가는 팔이 남자의 어깨 위에 얹혀 있었고, 남자의 손이 등허리를 매만지듯 쓸어내렸다. 드레스 자락을 꾹 누르면서 다리 사이를 파고든 남자의 허벅지가 눈에 들어왔다.

고개를 살짝 젖히고, 입술을 맞댄 채 살짝 눈을 감고 있는 얼굴은 너무도 아름다워서 성스러워 보일 지경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붉게 물든 혀가 얼핏 보였다. 타이오스는 눈을 뗄 수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가슴이 거칠게 쿵쿵 뛰었다.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오르고,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저건, 부모님이 하는 거잖아.’

얼마나 그 모습을 보고 있었을까. 질척하고 끈적한 소리가 멈추더니 남자가 조금 더 고개를 숙였다. 고개를 젖힌 디아메데스의 등 뒤로 백금발이 흘러내리고, 파르르 떨리던 속눈썹이 천천히 위로 올라갔다. 어머니를 꼭 닮은 새파란 눈동자가 모습을 드러내더니 곧바로 그와 시선을 맞춰왔다.

“흡.”

온몸이 얼어붙었다. 봐서는 안 될 것을 봤다. 어린 마음에도 그것만큼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리고,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난 순간, 그녀가 웃었다.

분명한 미소였다. 발갛게 물든 입술 끝이 살짝 올라가고, 반짝이는 속눈썹이 팔랑거리며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치 보란 듯이 남자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등 위로 가느다란 손가락이 옷을 움켜쥐고, 신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타이오스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그날 밤, 그는 이유 모를 열에 들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

그날 이후로 그는 몇 번이고 디아메데스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아니, 발견했다고 보는 건 옳지 않았다. 봐도 상관없다는 듯 혹은 봐 달라는 듯, 드러내 놓고 하곤 했으니까.

끈적한 키스를 하고, 서로의 피부를 더듬고. 누나의 행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더 대담해졌다. 타이오스는 오늘도 남부끄러운 줄 모르고 남자와 얽혀 있는 디아메데스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봤다.

성인이 된 후 여자는 아무것도 거리낄 것이 없다는 듯 행동했다. 새하얀 허벅지를 꽉 움켜쥔 단단한 손가락이 보이고, 흥분에 남자의 등이 거칠게 들썩였다. 자국을 남기듯 손톱을 세워 넓은 등을 긁어내리는 디아메데스의 손가락이 유독 야하게 보였다.

“하아…….”

흥분한 듯 나른한 숨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짐승같이 헐떡이는 남자의 숨소리가 저열하다 생각했다. 자리를 벗어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타이오스는 누나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그랬듯 새파란 눈동자가 그를 똑바로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친 순간, 디아메데스가 혀끝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입술을 천천히 핥아 올렸다. 머릿속부터 손끝까지 저릿한 감각이 퍼져 나갔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려 왔다.

“디아메데스.”

그녀의 이름을 부른 남자가 참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들어 입술을 맞댔다.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남자의 머리카락을 쓸어내린 여자가 눈을 살짝 감았다 뜨곤, 다시 타이오스를 쳐다봤다.

머릿속이 엉망진창이었다. 온몸에 퍼져 나가는 열기는 무엇일까. 새하얀 살 위를 파고드는 손가락을 멀거니 보던 그는 도망치듯 그 자리를 벗어났다.

***

누나. 아니, 그 여자는 난잡하기 짝이 없다. 그것이 평생 디아메데스를 지켜본 타이오스의 결론이었다. 난잡하다거나, 음란하다는 말을 모르던 때는 그녀에 대한 정의를 내릴 수 없었지만 이젠 알 수 있었다.

디아메데스 라스카는 문란한 여자다. 언제나 남자와 뒤엉켜 있고, 언제나 그 상대가 바뀐다. 그것을 모두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곁에는 남자가 끊이질 않았다. 라스카 소후작이라는 지위가 없었더라면 더 심했을 게 분명했다. 지금은 감히 손을 내밀지 못하는 놈들까지 전부 다 손을 뻗었을 테니까.

남녀 간의 행위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고. 매일같이 다른 남자와 엉켜 있는 모습을 보면서, 타이오스는 디아메데스에 대한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어릴 적에는 몰랐던 그 감정. 그것은 분명 단정치 못한 여자에 대한 경멸이리라.

무심코 걸음을 옮기던 타이오스는 앞쪽에서 들리는 작은 신음소리에 걸음을 멈췄다.

“아, 으응…….”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였지만, 그것이 누구의 소리인지는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수풀을 살짝 젖혔다. 풀 냄새가 훅 풍겨 왔다. 녹색 잔디 위에 흐트러진 백금발. 남자의 허리를 끌어안은 가느다란 종아리. 등을 더듬듯이 살짝 뻗은 손.

“하…… 읏.”

남자의 신음소리가 들렸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새하얀 다리가 움찔거리며 떨리는 게 보였다.

‘또…….’

난잡한 여자. 타이오스는 다시 한번 누나라는 여자를 멸시했다. 며칠 전에 봤던 남자와 또 다른 남자였다. 밀려 올라간 남자의 셔츠와, 느슨하게 풀린 벨트 때문에 음란하게 움직이는 허리가 고스란히 보였다.

“읏, 하아…….”

헐떡이는 신음소리를 흘린 디아메데스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남자의 어깨 너머로 그를 빤히 바라보는 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저것은 또 웃고 있었다. 마치 자길 지켜보는 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 흣!”

절정에 다다른 듯 훤히 드러난 다리가 파르르 떨리는 게 보였다. 발갛게 물든 뺨과 흥분에 흐려진 새파란 눈동자가 천천히 백금색의 속눈썹에 잠겨 들었다. 타이오스는 그녀를 경멸했다. 멸시했다. 무시하고, 경시했다.

“으읏, 하……하아.”

남자가 짐승 같은 숨소리를 내뱉곤, 디아메데스의 가슴 위에 고개를 파묻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뒷목을 스치듯이 올라와 머리카락을 쓸어내려 주었다.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그의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누나는 또다시 타이오스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너도 이렇게 가슴에 얼굴을 파묻고, 자신의 품 안에서 절정을 맞고 싶지 않냐는 듯이.

타이오스는 살짝 젖히고 있던 수풀을 놔버렸다. 녹색 잎이 두 사람의 모습을 가려주었다. 여전히 ‘누나’라는 여자는 난잡하고, 음란하고, 빌어먹게도 아름다웠다.

***

“디아메데스!”

격정적인 외침이 성을 쩌렁쩌렁 울렸다. 모든 이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시선을 돌렸듯 타이오스 역시 검을 휘두르던 걸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정확히 디아메데스의 방이 있는 창문 아래에 한 남자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온몸을 던져 청혼하는 남자들은 이틀이 멀다 하고 나타났고, 청혼장은 일 년 내내 성을 따듯하게 해 줄 만큼 쌓여 있었으니까.

‘또야.’

타이오스는 턱까지 흘러내린 땀을 손등으로 닦아냈다. 창가에 선 디아메데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에 가닥가닥 휘날리는 찬란한 머리카락. 세계 최고의 조각가도 표현해내지 못할 아름다운 얼굴. 느슨하게 흘러내린 숄 때문에 한층 더 가녀려 보이는 어깨와 창문을 붙잡은 섬세한 손가락. 타이오스는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오, 디아메데스.”

그저 모습을 드러낸 것만으로도 벅차오른 듯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다시 한번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잊을 수 없었습니다.”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구구절절 늘어놓는 목소리에 타이오스는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진부하군.’

저런 말로 사랑을 고백한 남자는 어지간한 마을의 인구보다 많았다. 주변에서 그 고백을 듣고 있던 사람들이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디아메데스는 살짝 미소 지으면서 남자를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게 더 잔인한 짓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어차피 거절할 거면서 왜 미소 지어 주고 있단 말인가. 누나의 반응이 긍정적인 답이라 생각했는지 남자의 목소리에 점점 더 자신감이 넘쳐흘렀다.

“저와 결혼해 주십시오.”

그가 무언가를 내밀었다. 멀리서도 반짝임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보니 반지인 모양이었다. 타이오스는 다시 한번 턱 아래로 흘러내린 땀을 닦아냈다.

“고마워요.”

디아메데스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디아메데스. 저의 청혼을…….”

“하지만 결혼할 수 없어요.”

‘그럼 그렇지.’

그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제 남자가 보여줄 반응은 크게 세 가지였다.

첫째. 다른 사랑하는 사람이 있냐며 절망한다.

둘째. 자기의 어디가 마음에 안 드냐며 절망한다.

셋째.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죽어 버리겠다고 말한다.

“……어째서입니까.”

방금까지, 조금 전까지 녹아내릴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으면서. 그 입으로 거절의 말을 내뱉었다는 걸 믿을 수 없는지 남자의 목소리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당신의 사랑만으로는 살 수 없으니까요.”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을까. 타이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가 그 누구보다 사랑하겠습니다.”

“부족해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 어떤 것이라도 구해다 주겠습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까, 디아메데스. 제발…….”

“당신은 아니야.”

잔인할 정도로 단호하게 말하는 그 얼굴에는 여전히 아름다운 미소가 가득 서려 있었다. 디아메데스가 창문을 다시 닫으려고 한 순간, 남자가 벌떡 일어섰다.

‘죽겠다고 하겠군.’

타이오스는 덤덤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디아메데스!”

떨리는 목소리는 제법 결사적이었다.

“당신이 날 거부한다면, 차라리 죽겠습니다. 당신이 없는 삶은 의미가 없으니까 말입니다.”

그 말에 창문을 반쯤 닫던 디아메데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 얼굴에 가득한 웃음은 잔인하고, 여전히 아름다웠다.

“불쌍한 사람.”

그 말과 함께 짐짓 슬픈 표정을 지어 보인 그녀가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해 보였다.

“당신은 나의 영혼이며 빛이고…….”

뻔하디 뻔한 말이 흘러나왔다. 그 말을 전부 기다려 주지도 않은 여자가 뚝 자르듯이 말을 꺼냈다.

“앞으로의 인생은 의미가 없겠네요.”

“……예?”

“내가 없는 삶은 의미가 없다고 했잖아요. 당신의 삶에는 내가 없을 테니까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말이죠. 불쌍한 사람.”

타이오스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는 충격을 받은 듯 뒤로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자신만만하게 들어 올리고 있던 반지가 반짝이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럼 안녕.”

잔인할 정도로 밝게 미소 지은 디아메데스가 창문을 닫아 버렸다. 남자가 비틀거리는 게 보였다. 타이오스는 인상을 슬쩍 찌푸렸다.

‘죽지나 않으면 좋을 텐데.’

저런 잔인한 거절에 상처받은 남자들이 한둘이었던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도 여럿이었다. 아니면 정말 말 그대로 상사병에 죽어 버리던지. 그는 단단히 닫혀 있는 창문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커튼 틈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새파란 눈동자가 보였다.

시선이 마주쳤다. 아니, 마주친 것 같았다. 타이오스는 한 남자를 절망하게 만들어 놓고, 빙긋 미소 짓고 있는 붉은 입술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나는 끔찍하게 아름답고, 잔인했다.

***

“타이오스.”

“아버지.”

타이오스가 우뚝 멈춰 섰다. 아버지 일리온이 따라오라는 듯 작게 손짓했다.

“어제 디아에게 청혼한 남자가 있었다고 들었다.”

“네.”

그 남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는 아버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머니가 생각나는 잘생긴 얼굴이었다.

‘사랑하면 닮는다더니.’

닮은 만큼 사랑하는 거라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세상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이일 게 분명했다. 색은 조금 다르지만 두 분 다 금발이기도 하고, 어딘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었다. 마치 남매처럼.

타이오스는 무심코, 누나 디아메데스를 떠올렸다. 두 사람은 그리 닮지 않았다. 모두가 찬란한 금발을 가지고 있는 데 비해 그는 어째서인지 검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가족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건 아버지의 검은 눈을 꼭 닮았다는 것 정도일까.

‘아름답다’는 말이 그 누구보다 어울리는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디아메데스와는 달리, 타이오스는 오히려 조금 더 선이 굵은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가족이 맞나 잠시 의심할 정도로. 물론, 일리온은 단 한 번도 그 사실을 의심한 적 없었지만.

“그 남자가 죽었다고 하는구나.”

별로 놀랍지도 않은 소식에 그냥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 말을 꺼내는 아버지 역시 크게 걱정하는 투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했다. 누나가 성인이 되고, 수많은 남자들의 청혼이 이어지면서 죽는 경우도 꽤나 많았으니까.

‘이번이 몇 번째였지.’

100까지는 제대로 세었는데 그 뒤로는 세는 것조차 귀찮아져서 포기했다.

“그래도 오랜만이네요.”

“그렇지. 내가 수습하러 가야 하지만, 오늘은 네가 수습해 주면 좋겠다.”

“누나는요?”

“디아가 무슨 잘못이 있겠니.”

타이오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그건 맞는 말이긴 했다. 누군가 청혼했고, 거절했을 뿐이다. 그것에 상심하여 죽든 말든 그건 그녀와 상관없었다.

‘왜 말끔하게 인정하고 떨어지는 남자는 없는 걸까.’

하지만 그것이 디아메데스의 끔찍한 매력이었다. 그녀에게 한번 빠져든 남자는 포기라는 걸 몰랐다. 자신을 죽이든지 아니면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질질 끌든지. 그것도 아니면 누나를 죽이려 들든지.

“알겠어요. 아버지.”

“나가기 전에 키레네에게 잠시 들르도록 하고. 네 얼굴을 오랫동안 못 봤다고 말하더구나.”

“네.”

타이오스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일리온은 그에게 뒤처리를 맡기곤 또다시 나가버렸다. 그는 천천히 어머니가 자주 머무는 방으로 가 문을 두드렸다.

“어머니. 안에 계세요?”

“타이오스?”

“네.”

“들어와.”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소파에 반쯤 누워 있는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쿠션 위로 흘러내린 반짝이는 색 옅은 금빛 머리카락. 새파랗게 반짝이는 파란 눈동자. 디아메데스와 꼭 닮은 얼굴.

“오랜만에 뵙는 것 같네요. 어머니.”

타이오스가 천천히 고개를 숙여 늘 하던 대로 뺨 위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으, 응.”

살짝 굳은 듯한 대답이 돌아왔다.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는 그를 불편해했다. 왜인지는 알 수 없었다. 맞은편 소파에 앉자마자 키레네가 그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정말, 일리온을 안 닮는구나.”

미묘한 표정에 시선을 내리깔았다. 그건 타이오스도 잘 알고 있었다. 어머니에게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아버지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자신은 대체 누구를 닮은 거냐고. 라스카 후작가의 초상화를 아무리 봐도 타이오스를 닮은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그 물음에 일리온은 조금 난처한 듯 웃더니 비밀이라며 귓가에 속삭였다.

‘너는 키레네의 아버지를 닮았어.’

왜 비밀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 무서웠다. 그리고 어머니의 다른 ‘가족’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기에,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만 새겼을 뿐.

“잘 지내고 계시죠?”

“응.”

짧은 대답 다음에 침묵이 흘렀다. 타이오스는 앞에 있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옛날에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녀는 더욱 순수해지는 것 같았다.

‘난잡한 누나랑은 다르지.’

어머니에게는 평생 아버지뿐이지 않았던가. 아무 남자와 끌어안고 뒹굴기를 꺼리지 않는 디아메데스와는 비교할 수 없었다. 아니, 비교하는 것 자체가 모욕이었다. 그래서인지 키레네는 오히려 아직도 소녀같이 보였고, 누나는 그 누구보다도 유혹적인 미소를 지을 줄 아는 성숙함을 가지고 있었다.

“타이오스.”

키레네가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네.”

“너는 일리온의 아들이야.”

“알고 있어요. 어머니.”

“그래. 그렇지.”

어딘가 대화가 미묘하게 어긋난다고 생각했다. 당연한 사실을 말해서 무엇할까. 어머니가 몸을 기울여 가까이 다가갔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하아.”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버린 듯한 한숨을 내쉰 그녀가 눈을 깜박였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아주, 아주 피곤해 보였다. 그와 함께 있는 이 시간이 견디기 버겁다는 듯.

“……쉬세요. 어머니.”

타이오스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가 성인이 될수록 키레네는 아들을 더욱 어려워했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아버지를 닮지 않아서? 어머니의 아버지. 즉, 할아버지를 닮아 있어서?

‘모르겠어.’

그 누구에게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의문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애초에 부모님이 어떻게 만나서 결혼하게 되었는지부터 들을 수 없었으니까. 타이오스는 눈을 깜박이는 어머니에게 인사를 건넨 뒤, 문을 나섰다.

“후우.”

긴 한숨을 내쉰 그는 천천히 성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죽은 남자의 뒤처리를 해야 했다.

***

해야 할 일은 금세 끝났다. 시신을 수습하고, 남겨 놓은 물건을 모아 상자에 담은 뒤, 집으로 돌려보내 주는 것뿐이었으니까. 타이오스는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은 유일한 물건을 꽉 쥐었다.

‘유서라.’

어떤 말이 적혀 있는지 대충 훑어봐서 알고 있었다. 디아메데스가 자신을 거절한 것에 대한 절망. 다시는 그녀와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에 대한 비참함. 디아메데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런 그녀를 자신이 얼마나 열렬히 사랑하고 있는지를 밝힌 격렬한 문장들.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디아메데스에 대한 말뿐이었다. 이런 것을 시신과 함께 돌려보내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뻔히 알고 있었기에 보낼 수 없었다. 수많은 청혼장과 함께 불쏘시개로 쓰든, 아니면 그냥 태워 없애든, 그것도 아니면 누나에게 전해주든 하는 편이 나으리라.

타이오스는 종이를 구겨 쥐었다.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냥 방에 가서 유서를 태워 버릴 생각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는데, 잘 쓰지 않는 방 안쪽에서 작은 기척이 났다.

“…….”

멈춰 서서 가만히 귀를 기울이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아!”

“하, 읏. 디아메데스 님. 하아…….”

“더, 앗……거기, 흑!”

손에 쥐어진 유서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평소라면 그냥 경멸하듯 문을 한번 쳐다보고 지나쳤을 텐데. 오늘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타이오스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밖에서 듣고 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 안에 있는 두 사람은 헐떡이는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가 방문 앞에 우뚝 섰다. 문틈으로 흘러나오는 소리가 조금 더 확실해졌다.

‘디아메데스 님이라.’

성에서 일하는 남자인가. 아니면 잠시 일 때문에 성에 들른 마을 남자? 아니면 기사. 짧은 생각을 마친 그가 문을 열려고 했다. 덜컥,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긴 소리가 났다.

“디, 디아메데스 님. 방금…….”

“괜찮아. 어차피 잠겨 있잖아.”

살짝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 끝낼 거야? 응?”

“아, 아닙니다.”

“하아, 응! 흥분했어? 으응…….”

문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가슴이 터질 정도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리곤 한 발 뒤로 물러서서 있는 힘껏 문을 걷어찼다. 잠긴 문고리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열렸다. 동그래진 두 쌍의 눈이 타이오스를 쳐다봤다.

“타이오스?”

“타, 타이오스 님.”

두 사람이 동시에 그의 이름을 불렀다. 커튼을 전부 쳐 놓아 어둑한 방 안에서도 디아메데스의 뽀얀 허벅지만큼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얼어붙어 있던 남자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키더니, 쩔쩔매면서 옷을 챙겨 입었다.

“왜, 괜찮아.”

“디아메데스 님…….”

그가 타이오스의 눈치를 힐끗 보고, 바닥에 떨어진 셔츠를 주워 들었다. 벌어진 앞섶 사이로 보이는 검붉은 살덩어리는 놀라서인지 반쯤 수그러들어 있었다.

“죄, 죄송합니다.”

남자가 옷을 제대로 정리하지도 못하고, 쏜살같이 나가버렸다. 혀를 가볍게 찬 디아메데스가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리본이 전부 풀려 벌어진 드레스 사이로 부드러워 보이는 가슴이 꽉 차 있었다. 천천히 치맛자락을 아래로 내리는 손길에 말랑해 보이는 허벅지가 점점 모습을 감췄다.

타이오스는 말없이 그녀를 쳐다보기만 했다.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가락으로 대충 빗어 내린 누나가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왜 그러는데.”

“왜?”

조금 짜증 난 듯한 얼굴로 그를 노려본 디아메데스가 가슴 쪽의 리본을 쭉 잡아당겼다. 느슨하게 풀려 있던 천이 팽팽하게 당겨지며 깊은 가슴골을 만들어냈다. 고개를 살짝 흔들어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 여자가 발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을 이로 살짝 깨물었다. 가슴 쪽의 끈을 매는 걸 멀거니 쳐다보고 있으니 누나가 피식 웃었다.

“거기 있는 것 좀 집어 줄래?”

“…….”

타이오스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건, 속옷이었다. 음란한 액체로 질척하게 젖어 있는 부분이 눈에 확 들어오는 더러운 속옷. 그는 그것을 집어 들어 건네는 대신 발로 짓밟았다. 새하얀 천이 금세 더러워졌다.

“뭐 하는 짓이야.”

디아메데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타이오스의 손에 쥐여 있던 종이가 다시 한번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는 구겨진 종이를 디아메데스에게 집어던졌다. 종이뭉치가 봉긋하게 솟은 가슴 위를 툭 치고 허벅지 위로 떨어졌다.

“뭐야.”

“읽어 봐.”

짜증 난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린 누나가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펼쳤다. 빠르게 글을 훑어 내린 디아메데스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래서?”

“오늘 죽은 남자가 남긴 유서야.”

그 말에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눈을 깜박인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어제 그 남자구나?”

“웃음이 나와?”

“그럼 내가 이 남자를 위해 울어야 해?”

“하다못해 잠시 묵념 정도는 해 줄 수도 있잖아.”

“내가 왜?”

정말 모르겠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땀에 젖은 목덜미에 금빛 머리카락이 달라붙었다.

“누나 때문에 죽었잖아.”

“나 때문이라니.”

우스운 소리를 들었다는 듯 디아메데스가 소리 내어 웃었다. 비단 스타킹에 감싸인 발끝이 타이오스의 발목을 툭 건드렸다.

“나는 죽으라 한 적 없어. 그리고, 만약 내가 죽으라고 말했다 해도 그 남자가 죽은 게 내 탓이야?”

그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 남자의 이름도 모르잖아.”

“응 몰라.”

당당히 말한 여자가 유서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에드워드라고 쓰여 있네.”

“…….”

“너도 몰랐잖아.”

“그 남자가 내게 청혼한 건 아니니까.”

“청혼했다는 이유만으로 그 남자의 이름을 기억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지. 타이오스.”

발끝이 천천히 종아리를 훑으며 올라왔다. 무릎쯤까지 올라온 다리에 드레스 자락이 밀려 올라갔다. 소복한 눈이 쌓인 듯 새하얀 허벅지가 다시 슬쩍 모습을 드러냈다.

“그래. 누나가 잘못한 건 없겠지.”

발끝이 닿은 곳마다 화상을 입은 것만 같았다.

“아버지도 늘 누나에게 약하시고.”

어머니를 꼭 닮은 딸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이오스는 무릎 안쪽으로 들어온 발끝에 허리를 숙였다. 한 손으로 감싸고도 남는 가느다란 발목을 움켜쥐어 내팽개쳤다. 디아메데스가 웃는 소리가 들렸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생각이야.”

“글쎄.”

말려 올라간 드레스 자락 밑으로 부드러워 보이는 허벅지가 유독 눈에 들어왔다. 다리를 꼬아 앉은 그녀가 느릿한 고갯짓으로 머리카락을 어깨 뒤로 넘겼다.

“왜.”

“뭐가 왜야.”

“내가 신경 쓰이니?”

그 말에 타이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신경 쓰인다. 그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냥 짜증 나는 것뿐이야.’

이런 더러운 여자가 누나라는 게, 가족이라는 게, 경멸스러웠다. 수많은 남자들을 거느리고,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거침없이 입을 맞추고, 다리를 벌리고, 그 밑에서 헐떡이면서 신음하고.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있다는 걸 깨달은 그는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깊이 팬 손톱자국이 너무 붉어서 피가 흐를 것만 같았다.

‘짜증 나.’

화가 났다. 그냥 그뿐이었다. 그녀는 더럽고, 난잡하고, 음탕한 여자니까. 그런 여자가 ‘누나’라는 사실에 화가 났을 뿐이다. 타이오스는 손바닥에서 시선을 떼고, 인상을 찌푸렸다.

“더러워.”

그 말에 디아메데스는 다시 웃었다. 그러더니 그녀가 조금 상체를 숙이고, 손을 붙잡아 왔다.

“타이오스. 누나가 싫니?”

가련한 척하는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슬픈 듯 꾸며낸 표정. 눈물이 흐를 듯 축축해진 눈동자. 가볍게 떨리는 어깨. 그런데도 불구하고 애달파지는 가슴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 얼굴을 가진 여자였으니까.

“읏.”

그는 그녀의 손을 뿌리쳤다. 붙잡혔던 손이 간질간질했다. 손톱으로 피부를 박박 긁어낸 타이오스가 이를 꽉 악물었다.

“불쌍한 척하지 마.”

“나는 그저, 날 사랑하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뿐이야.”

“하.”

어이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뿌리치지 못하는 것뿐이다? 그럼 그 말은 이 세상 모든 남자와 다 잠자리를 갖겠다는 뜻이라도 되나. 타이오스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디아메데스가 손끝으로 유서를 잘게 찢기 시작했다.

“죽은 남자의 연서라니. 기분 나빠.”

“…….”

“그리고 이거 나에게 갖다준 거. 아버지가 알면 뭐라고 하실지 무섭지도 않아?”

“어차피 알고 있잖아. 누나 이름 적어 놓고 죽은 남자가 한둘이야?”

“난 죽으라고 한 적 없어.”

“그렇겠지.”

빈정거렸지만, 그 말로 무언가를 바꿀 수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이 누나에 대해 뭐라고 말하는지 알아?”

“알아.”

“…….”

“아름답다고 말하지.”

타이오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녀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겼을 테니까. 친동생인 그조차도 누나가 ‘아름답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타인은 오죽할까.

“사랑한다고 말하고.”

디아메데스가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허벅지 위로 말려 올라가 있던 드레스 자락이 사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떨어졌다. 발끝을 뻗어 바닥에 널브러진 구두를 툭 건드린 그녀가 자그마한 발을 신발 안으로 밀어 넣었다.

모든 행동 하나하나가 색정적으로 보였다. 그렇게 보이길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냥 몸에 밴 움직임인지 알 수 없었다. 타이오스는 조금 멍한 기분으로 구두를 신는 발끝을 쳐다봤다.

“마지막으로는 결혼해 달라고 말해.”

그녀가 싱긋 웃었다. 시선을 아래로 향해 고개를 숙이니, 그의 발아래 엉망으로 짓밟혀 있는 속옷이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드레스 속에 은밀한 곳을 가려줄 것을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는 것이 뒤늦게 떠올랐으니까.

“그 말을 하는 건 아니겠지. 타이오스.”

디아메데스가 그의 앞에 바짝 붙어 섰다. 가슴께까지밖에 안 오는 작고, 가녀린 여자였다. 그런데도 저도 모르게 뒤로 반쯤 물러서던 타이오스는 입술을 꽉 깨물고, 새파란 눈을 마주했다.

“그래.”

무슨 말을 하고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새파란 눈동자가 한번 깜박일 때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착각이 들었다. 뒤늦게, 무슨 대화를 나누고 있었는지 기억났다.

“누나가 안 보는 곳에서 다들 누나를 창녀라고 불러. 라스카 후작가의 창녀라고.”

“그래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

이를 악물었다. 언제 손을 뻗었을까. 손가락 사이로 하늘하늘한 백금발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듯 매끄러운 머리카락을 꽉 움켜쥐었다.

“더러운 창녀 같으니.”

그녀는 또다시 무구한 표정을 지으며,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난잡하고, 음란한 창녀.”

살짝 벌어진 입술이 눈에 들어왔다. 새파란 눈동자가 가까워진 게 착각인 줄 알았는데, 어느새 두 사람의 숨소리가 뒤엉키고 있었다.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디아메데스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푸른 눈 속에 잠겨 죽어 가듯 숨이 막혀 왔다. 뜨거운 숨결이 입술을 간질이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키스할 것처럼 고개를 살짝 기울인 여자가 입술이 닿기 직전까지 다가왔다. 뜨거운 숨이 누구의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입술 끝이 살짝 치켜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세상 남자들이랑 다 섹스해도 너랑은 안 할 것 같아서 화가 나?”

웃음기 어린 속삭임에 순식간에 머리끝까지 열기가 확 솟아올랐다. 타이오스는 디아메데스를 거칠게 밀쳐냈다. 소파에 다시 풀썩 앉은 그녀가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눈물이 그렁그렁할 정도로 크게 웃은 여자가 그를 올려다봤다. 한순간이라도 저 더러운 것과 입을 맞출 뻔했다는 사실에 자괴감이 들 지경이었다. 어째서 가만히 있었을까. 어째서 고개를 숙였던 걸까.

“빌어먹을.”

타이오스가 이를 악물었다. 화가 났다.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정말이야?”

디아메데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난 누나가 혐오스러워.”

“그래?”

“경멸하고 멸시해.”

“흐응.”

“더러운 여자.”

그녀는 그런 말 따윈 ‘아름답다’는 말 만큼이나 지겹다는 듯 시큰둥한 표정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그냥 저 꼴이 화가 나는 것뿐이야.’

그것 말고는 화가 날 이유가 없지 않은가. 난잡하고, 음란한 것이 ‘누나’라는 사실에 부끄러운 것뿐이다. 타이오스는 스스로를 이해시켰다.

“그러니까 그만해.”

“뭘?”

“이딴 짓. 그만하라고.”

그는 짓밟혀 더러워진 속옷을 걷어찼다. 하늘거리며 날아간 천이 디아메데스의 발치에 떨어졌다.

“왜?”

“그걸 몰라서 물어?”

“왜 그래야 하는데.”

“…….”

“난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좋아.”

“왜. 누나를 사랑한다는 말만 하면. 그 누구와 섹스를 해도 괜찮아?”

“안 될 이유가 뭐가 있는데?”

안 될 이유는 없다. 누나는 성인이었고, 남자들 역시 성인이었으니까. 물론 귀족으로서, 다른 가문의 남자와 결혼을 할 때 책잡힐 수는 있겠지만 ‘그 유명한’ 디아메데스인데. 심지어는 라스카 소후작인데. 누가 그녀의 행실에 대해 따지고 들까.

타이오스는 엉망으로 헝클어진 머릿속에 작은 신음을 흘리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그렇게 남자가 좋아?”

가느다란 어깨를 세게 붙잡고, 흔들었다. 한번 치밀어 오른 화는 도저히 가라앉을 기색이 보이질 않았다. 한 줌도 안 되는 가녀린 몸이 부서질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남자가 좋은 거냐고! 그래? 남자가 없으면 미쳐 버릴 것 같아?”

“타이오스.”

“그게 아니면 뭔데!”

왜 화를 내고 있는지조차 의문이었지만 온몸이 뜨끈뜨끈했다. 가슴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 것처럼. 타이오스의 격렬한 목소리에 디아메데스가 눈을 깜박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날 사랑해 주는 사람이 좋아.”

“하…….”

결국 도돌이표였다. 그는 힘껏 쥐고 있던 어깨를 놔주었다. 붉게 손자국이 남은 피부가 눈에 거슬렸다.

“왜. 부모님의 사랑으로는 부족해? 왜 그 사랑을 다른 남자들로 채우는데.”

“너는 그 사랑이, 이 사랑과 같다고 생각해?”

“다를 게 뭔데!”

“나는 아버지랑 섹스할 생각 없어.”

“하.”

말문이 막혔다. 사랑에 반드시 섹스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인가. 아니, 아버지와의 섹스를 입에 담았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울렁거렸다. 그런 상상이라도 해 본 적이 있다는 말인 건지. 디아메데스가 이 세상 모든 남자와 잠자리를 한다 해도 아버지는 ‘남자’에서 예외일 거라 생각했건만. 그녀는 또 그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토할 것 같았다.

“더러워.”

타이오스가 입을 가렸다. 여자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이런 격렬한 거부반응을 보일 줄은 상상도 못 한 것처럼.

“누나는 사랑만 주면 그 누구든 상관없는 거야?”

“아버지랑은 할 생각 없다고 말했잖아.”

“그럼 아버지가 다른 남자들과 ‘같은’ 사랑을 주면 할 생각이냐고!”

목소리가 높아졌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주체할 수 없었다. 할 수만 있다면, 저 가느다란 목을 움켜쥐고 조르고 싶었다. 손끝이 덜덜 떨렸다.

“흐응.”

아니라는 대답 대신 긴 콧소리만이 흘러나왔다.

“더러운 여자.”

타이오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것 말고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저것을 뭐라고 표현할 수 있을까. 더럽다는 말조차 약하게 느껴졌다.

“너도 나를 좋아하잖아.”

디아메데스가 당연하다는 듯 말하곤 고개를 갸우뚱 기울였다.

“뭐?”

“날 사랑하잖아. 타이오스.”

누나, 아니, 여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시선에는 손톱만큼의 의심조차 없었다. 마치, 그가 그녀를 사랑하는 게 아주 ‘당연한’ 일이라는 듯.

“미쳤구나.”

딱딱한 말이 튀어나왔다. 사랑한다? 다른 누구도 아닌 디아메데스를 사랑한다? 그건 정말 미친 말이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경멸할 뿐.

“언제나. 언제나.”

흥얼거리듯이 언제나, 라는 말을 몇 번이고 반복한 누나가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나를 바라보고 있잖아.”

“그런 적 없어.”

심장이 쿵쿵 뛰었다. 이것이 어떤 기분인지 짐작할 수조차 없었다. 불쾌함인가. 아니면 정말 사랑이라도 하는 건가. 타이오스는 이를 악물었다. 그녀가 잡아끄는 손길을 뿌리쳐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바짝 당기는 손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커튼 사이로 스며들어 오는 가느다란 빛줄기가 디아메데스의 머리 뒤편으로 쏟아졌다. 천사 같았다. 그 속에 있는 것이 얼마나 음란한 것인지 잠시 잊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찬란하게 반짝이는 머리카락, 그림자 속에서 더욱 빛나는 푸른 눈. 새하얀 피부. 그리고 살냄새와 섞인 좋은 향기.

“…….”

타이오스는 숨을 멈췄다. 새파란 눈동자가 똑바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를 사랑하지?”

“…….”

정신 나간 여자라고 비웃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빙빙 돌았지만, 혀끝은 뻣뻣하게 굳어 있기만 했다. 대답이 없다는 것 자체가 긍정이라 생각했는지 디아메데스가 녹아내릴 듯한 웃음을 지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점점 팔을 타고 올라왔다. 어깨를 스치는 손길에 온몸이 저릿했다. 어느새 허리를 숙여 누나에게 가까워져 있다는 걸 깨달았다.

‘가족에게도 손을 뻗는 더러운 여자야.’

머릿속에 그 말이 뱅글뱅글 돌았다.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였다.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온몸을 죄어 오는 것만 같았다. 당장 벗어나야 했다. 다시 한번 두 사람의 숨이 뒤섞였다. 디아메데스가 내뱉는 숨마저 달콤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그는 눈을 크게 떴다. 있는 힘껏 눈앞의 여자를 밀어냈다.

“하아…… 하아…….”

가슴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다. 숨이 턱턱 막혀 왔다. 그런 타이오스의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디아메데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저 여자는 그를 놀린 것뿐이었다. 다른 남자에게 하듯이 가볍게 덫을 놓고, 그것에 걸려드는 것을 즐기는 것뿐이었다. 머릿속이 폭발할 듯이 달아올랐다.

“창녀 같으니.”

그 말에 디아메데스는 또다시 웃었다. 참을 수 없는 것처럼.

“사랑한다고 말하면 키스 정도는 해 줄 수 있어. 타이오스.”

타이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어떤 일이 있어도 내가 누나를 사랑하게 되는 일은 없을 거야.”

한 글자 한 글자 씹어 뱉듯이 말한 그는 그대로 방을 나섰다. 등 뒤에서 여전히 디아메데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

달라지는 것 따윈 없었다. 청혼장은 매일 산더미같이 쌓였고, 용기 있는 몇몇은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와 디아메데스에게 반지나 꽃 따위를 내밀면서 청혼했다. 물론, 개중에 정말 죽는 이도 있었다. 흔하진 않지만, 그리 드물지도 않은 정도로.

오늘도 누군가가 디아메데스에게 청혼을 하고 있었다. 그것도 정원 한가운데에서. 타이오스는 복도 창 너머로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제대로 된 목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한쪽 무릎을 꿇은 데다가, 커다란 꽃다발과 반지까지 준비한 걸 보면 청혼하는 게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죽진 않겠지.’

그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왜 매번 보는 상황임에도 무시할 수 없는 건지. 타이오스는 짜증스럽게 머리카락을 쓸어 올렸다.

‘또 죽으면 귀찮아지니까. 그것뿐이야.’

그래. 그래서 신경 쓰이는 것뿐이다. 예전 일이긴 하지만 정말로 죽을 거라면서 디아메데스의 눈앞에서 자기 심장을 찌른 경우도 있었으니까. 그는 스스로를 애써 납득시켰다. 멀리서도 누나의 웃음이 눈에 잘 들어왔다. 그녀가 미소 지을 때면 마치 그 주변에만 빛이 비추는 것처럼 환하게 밝혀졌으니까. 눈이 깜박일 때마다 긴 속눈썹이 반짝였다.

남자가 간절한 얼굴로 청혼을 했다. 꽃다발과 반지를 재차 내밀었으나, 디아메데스는 고개를 저었다. 남자의 얼굴에 가득 찬 충격을 알 수 있었다. 타이오스는 팔짱을 끼고 창에 기댔다. 디아메데스의 앞에서 일어난 남자의 어깨가 축 처졌다.

‘역시나.’

순하게 생긴 남자가 돌아서려는 순간, 성 쪽을 바라보던 새파란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 그가 흠칫 놀라자 누나가 남자에게 다가가 손을 뻗었다.

‘뭐지?’

꽃다발을 빼앗아 든 디아메데스가 활짝 미소 지으면서 뭐라고 속삭였다. 남자가 복잡한 얼굴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거침없이 한 걸음 더 다가가서, 살짝 고개를 들어 올리고 그의 뺨에 키스했다.

남자의 얼굴이 터질 듯이 달아올랐다. 그가 다시 무릎을 꿇으려고 했지만, 디아메데스가 먼저 손목을 잡아끌었다. 타이오스는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은 길이 아닌 곳으로 향했다. 수풀을 헤치고 들어간 두 사람의 몸이 딱 달라붙었다.

“…….”

타이오스는 입을 꾹 다물었다. 저도 모르는 새 이를 악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얼굴을 쓸어내린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두 사람은 벌써 정원 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백금색의 머리카락이 반짝이며 빛났다. 가느다란 몸은 남자의 등에 가려져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의 등 뒤로 길게 뻗어 나온 다리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하.”

타이오스는 헛웃음을 지었다. 디아메데스가 어떻게 하든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세게 주먹을 쥐었다.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사랑하고 있지 않냐고 묻던 디아메데스의 목소리가 귓가에 웅웅 울렸다.

그는 저 빌어먹을 창녀를 사랑하지 않았다. 아니, 사랑하지 않아야 했다. 누나니까. 가족이니까. 더러운 여자니까. 타이오스의 입술 사이로 낮은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는 이를 악물고, 복도를 내달렸다. 단숨에 정원에 다다른 그는 거침없이 걸음을 옮겨 두 사람이 있는 곳으로 들어갔다. 거친 발소리에 남자의 말이 들려왔다.

“디아메데스. 누가 오는 것 같습니다.”

“괜찮아요. 그냥 지나갈 거예요.”

“하지만…….”

그 말이 다 끝나기 전에 타이오스가 수풀을 젖히고 안쪽으로 성큼 들어갔다. 두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닿았다.

“……헉.”

남자가 놀란 듯 숨을 급히 들이마셨다. 디아메데스가 타이오스를 힐끗 보더니, 남자의 옷깃을 다시 끌어당겼다.

“동생이에요.”

“그, 그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태연히 섹스를 할 수 있는 누나와는 다르게, 그는 얼굴을 확 붉히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디아메데스가 다시 입을 맞추려던 순간, 타이오스는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 일으켜 세웠다. 바닥에 누워 있는 여자가 새파란 눈으로 그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꺼져.”

그 말에 남자가 도망치듯 나가 버렸다. 아직 옷을 벗진 않은 듯 셔츠 단추만 살짝 풀린 채였다. 디아메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꺼지라니. 하르엔 백작에게 말이 심하네.”

“일어나.”

그 말에도 그녀는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보란 듯 팔을 벌리고 누워서 그를 바라보기만 했다.

“일어나.”

“내쫓아 버린 건 너무하잖아.”

“청혼 거절했잖아.”

“보고 있었어?”

다 알고 있었으면서. 타이오스는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무구한 얼굴을 하는 여자의 가증스러운 모습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거절한 남자를 왜 끌어들이는 건데.”

“내 마음이야.”

“…….”

“날 그렇게나 사랑한다잖아.”

“하. 사랑이 그렇게 부족해?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걸로는 충분하지 않아?”

그 말에 디아메데스가 몸을 일으켰다. 머리카락에 엉겨 붙은 풀잎조차 그녀를 더욱 아름답게 만들 뿐이었다. 타이오스는 턱이 아플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끔찍한 일이었다.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기도 했다.

“사랑만 주면, 누구라도 괜찮은 거야?”

저번에 물었던 것을 다시 물었다. 입에 담는 것조차 불쾌하지만, 어쨌든 누나는 아버지는 ‘그런’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

“아버지만 아니면.”

디아메데스가 쿡쿡 웃었다. 온몸에 달라붙은 녹색 잎 때문에 그녀는 요정처럼 보였다. 타이오스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손톱에 패인 손바닥에서 끈적한 피가 흘러나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 생각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지만 그 말이 아니고서는 누나에게 든 감정을 설명할 수 없었다.

타이오스 라스카는 누나를 사랑하고 있었다. 더러운 여자. 음란하기 짝이 없는 창녀. 남자들과의 추문이 끊이질 않는 문란한 것.

“그럼 그 사랑, 내가 주면 될 거 아니야.”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이를 악물고 내뱉는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뜬 디아메데스가 이내 웃었다.

“네가?”

“그래.”

짧게 대답한 타이오스는 누나에게 성큼 다가갔다. 머릿속이 빙글빙글 돌았다. 풀 냄새가 나는 머리카락을 움켜쥔 그가 입을 맞췄다. 입술이 꾹 닿았다. 디아메데스에게는 몇 번째인지 모르겠지만, 타이오스에게는 첫 키스였다. 부드러운 입술이 살짝 벌어지는가 싶더니, 자그마한 혀가 끈적하게 그의 입술을 핥아 왔다.

“읏.”

그 행동에 더 놀란 건 그였다. 누나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 혀를 내밀어 핥아 왔다. 얼굴이 확 달아오름과 동시에 머릿속이 멍해졌다. 정말 ‘아무나’ 상관없는 듯했다. 사랑만 주면 그 상대가 동생이어도 괜찮다는 건가. 타이오스는 있는 힘껏 디아메데스를 떠밀었다.

“아!”

짧은 신음과 함께 그녀가 뒤로 풀썩 쓰러졌다. 머릿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화가 나는 것 같기도 했고, 흥분 같기도 했다. 누나 앞에서는 모든 것이 다 엉망진창이었다.

“정말 아무나 상관없었던 거야? 그래?”

“너는 날 사랑하잖아.”

숨이 턱 막혀 왔다. 타이오스는 쓰러진 여자를 노려봤다.

“역겨워.”

“키스해줘. 타이오스.”

그녀가 얼른 다가오라는 듯 팔을 벌렸다. 그 품 안에 달려들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게 끔찍해졌다. 토할 것 같았다. 누나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는 게. 잠시나마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려 그런 말을 내뱉었다는 게. 그리고 디아메데스가 그를 순순히 받아들였다는 게.

타이오스는 입을 틀어막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는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

무심코 앞을 바라보니 디아메데스가 걸어오고 있었다.

“윽.”

타이오스는 저도 모르게 시선을 조금 돌렸다. 누나가 웃는 소리가 들려,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그날 이후, 디아메데스는 그에게 한 걸음도 다가오지 않았다. 타이오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의 일은 없었던 것처럼, 두 사람은 그냥 지나쳤다. 누나가 지나치는 그 순간 내내 숨을 꽉 참고 있던 그는 한참 후에야 숨을 토해냈다. 해서는 안 될 말을 하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그 순간 사랑해 주겠다고 말했던 것이 다시 떠올라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자길 사랑하지 않냐며 당연하다는 듯 묻던 목소리. 안아달라는 듯 벌리던 팔. 타이오스는 이를 꽉 물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하…….”

사랑이라는 말을 한번 쏟아내 놓고 나니 전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 말을 하면 안 됐다. 그냥 경멸했어야 했다. 손바닥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피가 흐를 정도로 꽉 움켜쥐고 있던 자국은 이제 딱지로 남아 있었다. 타이오스는 그것을 뜯어냈다. 아직 다 아물지 못한 상처에서 피가 조금 배어 나왔다.

‘말도 안 돼.’

디아메데스가 어떤 여자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누나에 대한 기억만큼은 선명했으니까. 누군가와 입을 맞추던 모습. 다리를 벌리고 다른 남자를 끌어안고 있는 모습. 그런 꼴은 질리도록 보지 않았던가.

타이오스는 방울진 피를 신경질적으로 닦아냈다. 그 여자는 가까이해선 안 될 존재였다. 그 끝이 좋지 못하다는 건 뻔한 일이었으니까. 그의 이가 빠득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갈렸다.

“하아…….”

또다시 한숨이 터져 나왔다. 다시 주먹을 움켜쥔 그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하늘하늘 흔들리는 백금색의 머리카락에 눈앞이 어지러워졌다.

***

타이오스는 성큼성큼 성안을 걸었다.

‘근래에는 조금 잠잠하네.’

누군가와 뒤엉켜 바닥을 구르고 있는 꼴을 못 봤다. 그새 정신이라도 차린 걸까 싶어 헛웃음이 나왔다. 동생이 사랑해 주겠다고 말한 것이 충격이었나. 아니면 뭔가 마음이 바뀔 만 한 일이라도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한 순간, 살짝 열린 문틈 사이가 눈에 들어왔다.

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다. 성의 모든 사람이 꼼꼼하게 문을 닫고 다니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반 뼘쯤 열려 있는 그 틈을 본 순간, 타이오스의 심장이 쿵 뛰었다.

본능에 가까운 감각이었다. 저 안에, 디아메데스가 있다. 저긴 누나의 침실도 아니었고, 보통 가족들이 사용하는 휴게실이나 서재도 아니었다. 당연히 응접실도 아니었고. 타이오스는 홀린 듯 문으로 성큼 다가갔다.

“하아, 응…….”

작은 신음소리가 들렸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들었던 신음소리에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그의 착각이었다. 디아메데스는 변하지 않았다. 헛웃음이 흘러나와 이를 꽉 악문 타이오스는 문을 세게 걷어찼다.

“헉…….”

놀란 듯 숨을 들이켜는 소리와 함께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흥분으로 가득 찬 얼굴에 속이 뒤집혔다.

“하아…… 하…….”

디아메데스가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새파란 눈 속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뭐 하는 짓이야.”

그 말에 남자가 허둥지둥 몸을 일으켰다.

“으응…….”

질척이는 소리와 함께, 누나가 얕게 신음했다. 음란하게 젖어 있는 허벅지 안쪽이 반짝였다.

“타, 타이오스 님.”

남자가 시뻘게진 얼굴로 바지를 올렸다. 검붉은 살덩어리를 억지로 꾹꾹 욱여넣은 그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누군지 알고 있었다. 기사단의 남자였으니까. 떨어져 있는 셔츠를 집어 든 그가 옷도 못 입은 채 도망쳤다.

“너야말로 뭐 하는 짓이야.”

디아메데스가 피식 웃었다.

“그만둔 거 아니었어?”

“내가 언제 그만둔다고 말했어?”

“…….”

“그 사랑, 주겠다며.”

벌어진 다리를 수습할 생각도 없는지 소파 등받이에 한쪽 다리를 걸친 여자가 나른한 얼굴로 소파에 누웠다. 백금빛 머리카락이 바닥으로 사르르 흘러내렸다. 타이오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난잡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거의 벗겨진 드레스 위로 봉긋 솟아오른 가슴이 유독 더 눈에 띄었다. 땀에 젖은 이마에 달라붙은 머리카락. 발갛게 부풀어 오른 채 가쁜 숨을 내쉬는 입술. 나른하게 깜박이는 속눈썹.

타이오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끈적하게 달라붙는 듯한 냄새가 났다. 마치 꽃이 향기를 풍기듯 디아메데스는 제 살냄새를 풍겼다. 그것이 마치 흥분제처럼 그의 온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손끝이 움찔거리며 떨려 왔다.

“네가 아무것도 안 주잖아.”

“……하.”

어디서부터 뒤틀린 건지 혼란스러웠다. 디아메데스의 존재 자체가? 아니면 누나에게도 발정하는 그의 정신이. 타이오스는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주면. 어쩔 건데.”

“글쎄. 네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다르겠지.”

누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살짝 넘긴 그녀가 제 입술을 매만지고, 손을 더 아래로 내렸다. 가슴 위를 살짝 누르며 지나친 손끝이 조금 더 배 위를 스쳐 지나갔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숨을 쉬는 것조차 잊은 채 멀거니 그 손을 따라 시선을 움직이니 벌어진 다리 사이로 내려갔다.

“……읏.”

드레스 자락에 살짝 덮여 있는 그곳을 손끝으로 꾹 누르자, 천이 젖어 드는 게 눈에 들어왔다.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는 디아메데스의 목소리에 타이오스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견딜 수 없을 만큼 부끄럽고, 참담했다. 그는 이를 악물고 천천히 내뱉었다.

“더러워.”

그 말에 누나가 다시 웃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 걸까. 경멸하면서도 결국은 시선을 떼지 못하는 그의 꼴이? 아니면 친누나에게 욕정하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이 창녀.”

그 말에 디아메데스가 다시 웃더니 고개를 젖혔다. 가느다란 목덜미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아름다운 선이었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새하얀 목덜미에 흐릿하게 남아 있는 붉은 자국은 마치 꽃잎 같았다.

“이리 와. 타이오스.”

그녀가 속삭이듯 말했다. 백금색의 속눈썹이 깜박깜박 움직였다. 조종당하는 인형처럼 천천히 다가간 타이오스는 다시 한번 이를 악물었다.

“누나는 음란하고 난잡해.”

“알아.”

순순히 인정한 디아메데스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였다. 살냄새가 짙게 풍겼다. 하얀 살결은 너무 부드러워 보여서 한입 크게 베어 물고 싶었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봉긋 솟은 가슴이 그의 가슴에 짓눌리고, 매끈한 종아리가 허리를 감싸 안았다.

“하…….”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냥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디아메데스의 가슴에 고개를 파묻고 싶었다. 타이오스가 그녀의 새파란 눈동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먼저 행동하진 않겠다는 듯. 디아메데스는 그저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어떻게 할지 얼른 정하라는 듯이.

결론은 하나뿐이었다. 세상의 어떤 남자가 그녀에게 굴복하지 않을 수 있을까. 타이오스는 입술을 벌리고, 가느다란 목덜미를 잘근 깨물었다. 생각보다도 더 부드러웠다. 팔딱이는 맥박이 혀끝에 느껴졌다. 달콤한 살냄새에 머릿속이 어질어질했다.

“으응…….”

작게 신음한 디아메데스가 그의 뒷목을 쓰다듬고, 등을 끌어안았다. 허리 아래쪽부터 머리끝까지 전율이 흘렀다.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개처럼 피부를 핥고, 더듬거리며 입술을 찾았다. 혀가 끈적하게 얽혀들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허우적거리는 그를 부드럽게 감아 당긴 누나가 천천히 혀를 이끌었다. 볼 안쪽의 여린 점막을 훑고, 입천장을 간질이는 법. 그리고 혀를 맞비비면서 서로의 숨을 나누는 법. 타이오스는 정신없이 디아메데스를 쫓았다. 다리 사이가 뻐근했다.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바지가 갑갑해지고, 심장은 터질 듯이 거칠게 뛰었다.

“하아, 응…….”

작게 헐떡인 여자가 그의 등허리를 문지르고, 벨트를 풀었다. 찰칵하는 소리가 났다. 안쪽에서 이미 커다랗게 부풀어 있는 자지를 꺼내는 손길만으로도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헉. 흐윽…….”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였다. 해 본 적은 없지만, 남녀 간의 정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건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눈앞에 있는 ‘누나’라는 여자가 매번 그에게 보여주었던 거니까.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더욱 흥분했다. 아름다운 그의 피붙이. 디아메데스. 여자. 모든 것들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이미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자지를 살짝 쥐고 훑어 올리는 손길에 사정하지 않기 위해서 이를 악물어야 했다.

“하, 하아…….”

헐떡이는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부드러운 귀두를 만지고, 끈적한 액체가 흘러나오는 구멍을 손끝으로 세게 문지른 디아메데스가 쿡쿡 웃으면서 그의 혀를 살짝 깨물었다. 날카로운 그 자극에 온몸이 움찔 떨려왔다.

“타이오스.”

쿠퍼액에 끈적끈적하게 젖은 손으로 자지를 움켜쥔 여자가 속삭이듯 그의 이름을 불렀다.

“하아…….”

자위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자극이었다. 다른 이의 손길. 부드러운 몸. 달콤한 살냄새. 달뜬 숨소리. 타이오스가 디아메데스의 허벅지를 꽉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살 안으로 손가락이 파고드는 감각만으로도 또다시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천천히…….”

신음 섞인 목소리가 귓가에 달라붙었다. 타이오스는 미끈거리는 허벅지 안쪽을 더듬었다. 흥건할 정도로 흘러나온 애액에 손가락이 미끄러졌다. 처음 만져 보는 누나의 은밀한 부분은 생각보다도 더 뜨겁고, 축축했다.

“하.”

그저 만진 것뿐인데 머릿속까지 쾌감으로 가득 찼다. 움찔거리는 내벽의 움직임. 디아메데스의 입술 사이에서 흘러나오는 달뜬 신음. 뜨겁고도 부드러운 육체. 손가락을 꽉 조이는 움직임. 참을 수가 없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있는 자지를 움찔거리는 입구에 갖다 대자,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흐윽…….”

타이오스가 이를 악물었다. 디아메데스의 몸속은 말로 표현할 수조차 없는 쾌락으로 가득 차 있었다. 녹아내릴 듯 뜨거운 내벽이 표피에 달라붙어, 자지를 더욱 안쪽으로 끌어당겼다. 납작한 배 위에 얼핏 보이는 불룩한 형태에 입술이 바짝 말라왔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타이오스는 꽉 맞붙은 살을 쳐다봤다. 누나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그의 자지가 뿌리 끝까지 들어가 있었다. 친남매인데. 그녀는 그의 삶 내내 ‘누나’였는데.

“하, 하아…….”

움직이지 않았음에도 안쪽이 움찔거리며 자지를 조여 왔다. 그저 넣은 것뿐인데. 벌써부터 사정감이 치밀어 올랐다.

“으응, 아…….”

가느다란 허리가 움찔거리며 흔들렸다. 볼록하게 솟은 배 위를 손바닥으로 문지른 디아메데스가 작게 신음하면서 그의 가슴 위를 더듬었다. 단추가 뜯겨나가고, 탄탄하게 단련된 몸이 드러났다. 부드러운 손길이 천천히 아래로 내려오다가, 움찔거리는 배 위에 닿았다.

누나가, 아니, 여자가 웃었다.

여자. 타이오스는 헐떡이면서 부드러운 가슴을 움켜쥐었다. 손안에 가득 감기는 살의 감촉이 좋았다. 볼록 솟아오른 젖꼭지를 입에 가득 물고, 빨아들였다. 혀로 단단해진 유두를 건드릴 때마다 디아메데스의 온몸이 꽉 조여들었다.

“하, 읏…….”

허리를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참을 수가 없었다. 타이오스는 뜨겁게 죄어 오는 감각에 낮은 신음을 흘렸다. 억지로 꾹꾹 참아 왔던 쾌감을 터트리듯 분출했다.

“아…….”

“으응! 아, 타이오스!”

온몸에 힘이 꽉 들어갔다. 가슴을 세게 움켜쥐고, 여린 젖꼭지를 잘근잘근 깨물었다. 비명인지 신음인지 모를 디아메데스의 목소리가 울렸다. 등을 긁어내리는 손톱의 감각에 소름이 끼쳤다.

“헉…….”

한번 사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랫도리가 뻐근했다. 정액으로 질퍽하게 젖은 내벽이 조금 더 미끈거렸다. 꽉 조여 올 때마다 밖으로 밀려나는 듯한 느낌에 자지를 더욱 안쪽으로 밀어 넣어야 했다.

타이오스가 천천히 밖으로 빠져나왔다. 오물오물 물어대는 감각에 미칠 것만 같았다.

“흐으, 하…….”

달아올라서 뜨겁게 조일 때마다 머릿속까지 엉망으로 녹아내렸다. 그동안 자위로 얻었던 감각은 쾌락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었다. 안쪽을 푹 찔러 올리자 배 속에 가득 싸 놓은 정액이 바깥으로 밀려 나왔다.

철퍽거리는 소리를 내며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하얀 거품이 일었다. 달큰한 살냄새에 비릿한 정액 냄새가 뒤섞였다.

“하아, 앗, 응…….”

디아메데스가 헐떡이면서 고개를 젖혔다. 땀에 흠뻑 젖은 육체가 번들거렸다. 혀를 대고 핥아 올릴 때마다 그녀를 집어삼키고 싶었다. 타이오스는 신음을 흘리고 있는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저릿했다.

빠져나올 때마다 놔주고 싶지 않다는 듯 꽉 조여 오고, 안쪽을 깊숙이 찌를 때면 부드럽게 감싸 왔다. 머릿속에 남는 것은 오직 디아메데스가 주는 쾌락뿐이었다.

“으응, 타이오스…….”

신음 섞인 달콤한 부름에 대답 대신 말랑한 살을 입에 가득 물었다. 허리가 흔들릴 때마다 철퍽거리는 소리가 났다. 끈적하게 달라붙어 오는 감각은 불쾌하다기보단 너무도 자극적이었다.

허벅지에 닿는 엉덩이의 감촉. 흥건하게 흘러내리다 못해 소파까지 질척하게 적신 하얀 액체. 삐걱거리는 소리.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였다. 숨이 막혀 왔다. 디아메데스의 모든 것을 갖고 싶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그저 세게 끌어안았다.

퍽 하는 거친 소리와 함께 안쪽을 거칠게 찔러 올릴 때마다 손톱이 등을 긁어내렸다. 피가 날 정도로 세게 상처 입혀 주었으면 했다. 따끔거릴 때마다 누나와의 정사를 떠올리게 될 테니까.

“아, 아!”

깊은 곳 끝까지 자지를 밀어 넣고, 안쪽을 문지르듯 휘젓자 디아메데스의 신음이 날카로워졌다. 온몸이 파르르 떨리며, 보지가 세게 조여 왔다. 부들부들 떨리는 목덜미에 고개를 파묻고 가느다란 몸을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읏, 윽…….”

타이오스의 입술 사이로 긴 신음이 흘러나왔다. 또다시 사정한 그는 숨을 헐떡였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 짜내려는 듯 움찔거리는 내벽에 살덩어리는 다시 뻣뻣하게 달아올랐다. 쾌락을 처음 맛본 그의 몸은 끝을 모르고 흥분했다. 타이오스는 아직도 절정의 여운이 다 가시지 않은 여자의 몸속을 더욱 깊이 파고들었다.

“흐윽! 아, 타이오스. 흣. 아!”

가느다란 허벅지 안쪽이 파들파들 떨리는 게 느껴졌다. 볼록하게 솟은 배 위를 문지르면서 고개를 숙여 누나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누나.”

타이오스는 신음하듯 그녀를 불렀다. 디아메데스라는 이름보다 누나라는 명칭이 더 익숙한 여자였다. 더러운 창녀. 음란한 매춘부. 난잡한 창부. 그는 발갛게 물든 입술을 꽉 깨물었다. 허리 아래가 전부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어떻게 허리를 움직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짐승처럼 몇 번이고 자지를 찔러 넣었다. 손 안 가득 백금색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부드러운 살을 짓씹었다. 디아메데스의 손톱이 그의 등을 거칠게 할퀴었다.

***

“하아……하…….”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엉망진창인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헝클어진 머리카락. 발갛게 부풀어 오른 입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에 남은 붉은 자국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하얀 액체로 흠뻑 젖은 다리 사이는 음란하기 짝이 없었다.

등이 따끔거렸다. 비릿한 정액 냄새 사이로, 피 냄새가 옅게 풍겼다. 다리를 벌리고 누워 있는 디아메데스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또다시 다리 사이가 뻐근해졌다. 고개를 숙여 땀이 배어 나온 어깨를 혀로 핥자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만해.”

“…….”

그건 무슨 뜻일까. 타이오스가 그녀의 시선을 마주하자 여자가 그를 살짝 밀어냈다. 가벼운 손짓에 풀썩 쓰러진 남자가 멍청한 표정을 지었다. 재미있는 일이 생각났다는 듯, 디아메데스가 그의 위로 올라왔다. 몸 안쪽에 몇 번이고 사정한 탓에 다리 사이로 정액이 주륵 흘러내렸다.

“빼 줘.”

“……뭐?”

“네가 싸 놓은 거잖아.”

그녀가 다리를 벌렸다. 정액과 애액이 뒤섞여 일어난 하얀 거품이 붉게 달아오른 살 위를 음란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의 손을 잡아끌어 다리 사이에 갖다 댄 디아메데스가 쿡쿡 웃는 소리가 들렸다.

타이오스는 미끈거리는 입구 위에 닿은 손가락을 천천히 움직였다. 여전히 안쪽은 부드럽고, 질척였다. 자지를 빨아들이듯 손가락을 집어삼킨 구멍이 움찔거리며 수축했다. 정액과 엉긴 애액이 그의 손바닥 가득 흘러내리고, 손목까지 적셔왔다.

“하아, 하…….”

두 사람의 입술 사이로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내내 자지로 넓혔던 곳이지만 손가락을 꽉 물어 오는 감각은 여전했다. 손가락으로 입구를 넓히고, 주름진 내벽을 긁어내렸다. 비릿한 냄새가 풍겼다.

디아메데스의 벌어진 허벅지가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졌다. 위로 시선을 돌리니 봉긋 솟은 가슴이 흔들거리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녀와 함께 있는 내내 수그러들지 않은 타이오스의 자지가 다시 한번 부르르 떨려왔다.

“……안쪽까지 긁어내야 하잖아.”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입술이 바짝 말라 왔다. 벌써 몇 번이고 몸을 겹쳤지만, 누나의 앞에서는 여전히 쾌감에 어쩔 줄 몰라 하는 어린애가 된 것 같았다.

“안쪽까지?”

재미있는 말을 들었다는 듯 쿡쿡 웃은 디아메데스가 그의 어깨를 잡아 눌렀다.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가슴이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이미 어떤 쾌락을 얻을 수 있는지 알고 있는 자지가 움찔거리며 요동쳤다.

“누나…….”

온몸이 폭발할 것만 같았다. 타이오스가 애원하듯 속삭였다. 수많은 남자들이 그랬듯 그녀의 자비를 바라면서 매달렸다. 고개를 숙여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춰준 여자가 이미 질척하게 젖어 있는 자지를 손으로 훑어 올렸다.

예민한 귀두 끝에 뜨거운 구멍이 닿았다. 허리를 슬쩍 흔들자 디아메데스가 입술을 혀로 한번 핥곤 단번에 자지를 집어삼켰다.

“헉…….”

“으응…….”

두 사람의 거친 숨소리가 동시에 튀어나왔다. 철퍽,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살이 맞닿았다.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미끈거리는 정액이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흐윽, 하…….”

타이오스는 누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붙잡았다. 자지를 꽉 물어 당기는 감각에 정신이 흐트러졌다. 두 사람의 몸은 온통 땀과 정액으로 끈적거렸다. 피부가 달라붙었다가 떨어질 때마다 오히려 더 닿고 싶었다. 눈앞에서 흔들거리는 커다란 가슴을 꽉 움켜쥐고, 허리를 쳐올렸다.

“아, 아!”

디아메데스에게서 달콤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소파가 다시 삐걱거리면서 흔들렸다.

***

결국 두 사람이 멈춘 건 해가 진 뒤였다.

“하아…….”

나른한 한숨을 토해낸 디아메데스가 체액으로 흠뻑 젖은 소파에 길게 누웠다. 그 모습조차도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타이오스는 끈적한 몸 위에 그냥 옷을 걸쳐 입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누나가 손을 뻗었다.

“…….”

두 사람 사이에 대화 따윈 없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알 수 없었다. 나신 그대로 일어난 누나가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다시 입술이 맞닿았다.

“읍, 하아…….”

“응…….”

질척거리며 혀가 뒤섞였다. 자그마한 머리를 꽉 움켜쥐고, 정신없이 빨려 들어갔다. 말랑한 혀를 빨아 당겨 잘근잘근 씹고, 부풀어 오른 입술을 핥았다. 가쁜 숨소리가 뒤엉켰다. 또다시 흥분에 휩싸인 타이오스는 가느다란 허리를 세게 끌어안다가 눈을 깜박였다.

“……저녁 시간이야.”

“알아.”

디아메데스가 싱긋 웃었다.

“이상하게 생각하실 거야.”

“흐응…….”

그는 바닥에 떨어진 옷을 주워들었다. 다시 입을 만한 꼴은 아니었지만 당장 갈아입을 옷이 없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가 드레스를 다시 끌어올려 입혀 주자 디아메데스가 또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엉망인 꼴로도 아름답다는 것이 끔찍했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녀는 언제나 모든 이들을 수렁에 빠지게 만들 테니까. 타이오스는 아직도 정사의 열기가 남아 있는 여자의 뺨을 거칠게 문질렀다. 손끝에 스치는 입술의 희미한 감촉만으로도 정신이 아찔해졌다.

“가야 해.”

“뭐라고 말씀드릴 거야?”

“뭐?”

“어머니와 아버지께 뭐라고 말씀드릴 거냐고.”

“미쳤어?”

목소리가 높아졌다. 디아메데스가 난잡하게 구는 것이야 이미 알고 있으니 넘어간다 쳐도, 동생인 그와 섹스를 하는 게 용납될 리가 없지 않은가.

“누나는 그럼 나와의 관계를 밝힐 생각이었어?”

그 말에 그녀는 싱긋 미소 지었다.

“그럼 너는 날 못 가져.”

“…….”

“싫다는 남자에게 매달리고 싶진 않아.”

디아메데스가 그의 손을 탁 쳐 냈다. 그리곤 스스로 끈을 조여 드레스를 입었다.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대충 빗어 내린 그녀가 별다른 말도 없이 문밖으로 나가 버렸다. 타이오스는 그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분명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는 흔적도 없이 빠져나갔다. 주먹을 꽉 쥐었지만, 잡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디아메데스.”

씹어뱉듯 이름을 끊어 불렀다. 대답 따윈 없었다. 방 안의 뜨거운 열기가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가만히 서 있던 타이오스는 한참 뒤에야 방으로 돌아갔다. 몸을 씻으려고 물을 끼얹자마자 등에 따끔한 고통이 느껴졌다. 손으로 등을 더듬거리며 거울에 비춰보자 붉게 남은 손톱자국이 눈에 들어왔다. 디아메데스와 함께 있었던 순간이 다시 떠올랐다. 만족을 모르는 살덩어리가 다시 단단하게 부풀어 올랐다.

“하아…….”

타이오스는 긴 한숨을 내쉬면서 자지를 움켜쥐었다. 눈을 감고 누나의 모습을 떠올렸다. 따끔거리는 등의 고통이 흥분으로 다가왔다.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뜨거운 그 속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이 달아올랐다.

“읏.”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디아메데스의 손길이 떠올랐다. 가느다랗고 섬세한 손가락. 부드럽게 표피를 쓸어내리던 감각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아래쪽이 뻐근해졌다.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였다. 부드러운 몸이 달라붙어 있는 것만 같았다.

“헉…….”

달뜬 숨을 토해내고 손을 아래위로 거칠게 흔들었다. 샅에 손이 탁 닿는 소리가 울렸다. 온몸에 땀이 배어 나왔다. 물과 뒤섞인 땀이 턱 아래로 방울져 떨어졌다. 분명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누나의 몸을 잘근잘근 씹어 삼켰다.

모든 것을 알아냈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새롭지도, 흥분되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으나 그건 오산이었다. 오히려 그 몸으로 얻을 수 있는 쾌락이 어떤 것인지 알아 버렸다. 머릿속에 그 감촉이 떠오르는 것만으로도 온몸이 저릿해졌다.

“윽…….”

고개를 젖혔다. 섹스를 하듯 허리를 거칠게 움직였다. 터질 듯이 부풀 어오른 자지를 쥐고 있는 손가락이 움찔거리며 떨려옴과 동시에 정액이 세게 튀었다.

“헉, 하…….”

타이오스는 하얀 액체를 멀거니 바라봤다. 벌써 몇 번째 사정인지 세어보다가 포기했다. 디아메데스는 정말 끔찍한 여자였다. 그동안 그녀와 몸을 섞고, 죽을 듯이 매달리던 남자들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른 여자의 몸 따윈 모르지만, 누나보다 기분 좋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얼굴. 그 표정. 그 몸짓과 몸.

다시 빳빳하게 달아오르려는 자지를 내려다본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차가운 물을 머리 위에 그냥 들이부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달아오른 몸을 식힐 수 없었다.

“젠장…….”

낮게 중얼거리고 뼛속까지 시린 찬물을 몇 번이고 머리 위에 쏟아부었다. 잡생각을 겨우 덜어 낸 그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건 식사 시간 직전이었다. 옷을 갈아입은 뒤, 아직도 젖은 머리카락을 살짝 털어 낸 타이오스가 식당 문을 열었다.

“늦었구나.”

“죄송해요.”

짧게 대답한 그는 의자에 앉았다. 여느 때와 같은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맞은편에 앉은 디아메데스가 그를 쳐다보곤 입꼬리를 살짝 끌어올렸다. 그 표정을 못 본 척 한 타이오스가 눈을 내리깔았다.

그가 샤워를 하며 어떻게든 몸의 열을 식혀보려 발버둥 치는 동안 누나는 느긋하게 몸을 씻은 모양이었다. 색이 옅은 금빛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꼬아 틀어 올린 것을 보면. 아까 입고 있던 드레스 대신, 조금 더 얌전해 보이는 걸 걸치고 있었다. 가슴 부분이 쇄골까지 올라오는 형태였지만, 그 아래 터질 듯이 부풀어 오른 가슴을 감출 수는 없었다.

타이오스는 저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팽팽해진 천 아래 있는 것이 얼마나 부드러운지, 어떤 달콤한 냄새가 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손가락이 움츠러들었다.

“타이오스.”

“네.”

무슨 얘기를 하고 있었던 건지 기억나지 않았다. 일리온의 부름에 고개를 번쩍 든 타이오스가 눈을 깜박였다. 맞은편에 앉은 디아메데스가 소리 죽여 웃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오늘은 연무장에 안 보이던데.”

“아.”

순간 말문이 막혔다. 태연하게 거짓말을 늘어놓는 누나처럼은 될 수 없었다. 거기다가 변명을 할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그렇다고 해서 진실을 말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냥, 일이 좀. 읏.”

얼버무리면서 어물거린 순간, 그의 발목에 무언가가 툭 닿았다. 매끄러운 감촉이었다. 피부 위를 살짝 문지른 발끝이 천천히 다리 안쪽을 타고 올라갔다.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연애라도 하는 것 아닐까요?”

재미있는 농담이라도 하는 듯 디아메데스가 싱긋 웃으면서 턱을 괴었다. 식탁 밑으로 동생의 다리를 더듬으면서 하는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태연한 목소리였다.

“그래. 타이오스 너도 성인이구나.”

일리온이 새삼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결혼을 해도 이상하지 않지.”

타이오스는 입술을 달싹였다. 아직 디아메데스가 결혼하지 않았기에 부모님은 그에게 결혼에 대한 얘기를 꺼낸 적이 없었다. 그가 누나를 살짝 노려보자 그녀가 사르르 녹을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어디 한번 말해 봐’라고 말하는 것처럼.

“네가 마음에 둔 사람이 있다면 부담 갖지 말고 말해도 된다.”

일리온이 옅게 웃었다. 그동안 조용히 포크를 만지작거리고만 있던 키레네가 디아메데스를 쳐다봤다.

“디아는 결혼하지 않을 생각이야?”

“글쎄요.”

글쎄라는 건 대체 무슨 뜻일까. 그동안 수많은 청혼장을 불사르고,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을 비참하게 만들어 목숨까지 버리게 만든 여자가 아닌가. 그런데 ‘싫다’도 아니고 ‘글쎄’라니. 타이오스는 맞은편의 누나를 가만히 쳐다봤다.

시선이 마주쳤다. 디아메데스가 또다시 미소 지었다. 웃는 것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또다시 아래쪽이 뻐근해졌다. 그 순간, 무릎 안쪽을 쓰다듬던 발끝이 허벅지로 미끄러져 들어왔다.

“헉.”

타이오스는 반사적으로 포크를 꽉 움켜쥐었다. 이 상황을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부모님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제 결혼이 급할 건 없잖아요.”

아무렇지 않게 툭 내뱉는 목소리와 달리 실크 스타킹에 감싸인 발이 천천히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바지 안쪽에서 단단하게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를 발가락으로 쓸어내리는 감각에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신음하지 않기 위해 이를 악물고 참아야 했다. 아마 이곳에 부모님이 안 계셨다면 당장이라도 가느다란 발목을 잡아끌고 드레스를 걷어 올렸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아직도 청혼장은 지겹게 들어오잖아요?”

“네 생각이 그렇다면야.”

일리온이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자 키레네가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디아. 한 사람과 함께하는 게 좋아.”

“물론 그렇겠죠. 어머니에겐 아버지뿐이잖아요.”

그 말에 어머니가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뜻일지 생각하려는 순간, 발가락이 타이오스의 자지를 세게 훑어 내렸다.

“……후우.”

포크를 쥔 손에 힘이 꽉 들어갔다. 당장이라도 발목을 잡아끌고, 매끄러운 스타킹으로 감싸인 발에 살덩어리를 마구 비벼 질척하게 만들고 싶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타이오스가 이를 악물고 누나를 바라봤지만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이었다.

식탁 아래로는 동생을 희롱하면서, 입으로는 태연한 대화를 주고받는다. 그 내용을 조금도 이해할 수 없었다. 모든 감각이 아래쪽으로 쏠린 것만 같았다. 그를 제외한 세 가족이 가볍게 웃는 소리가 들렸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만 요란하게 울렸다. 발끝이 기둥을 쓸어 올리다가, 말랑한 귀두를 꾹 누르며 자극했다. 바지 속은 이미 질척질척했다. 이대로 사정해 버리진 않을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진 타이오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타이오스?”

어머니가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 몸이 좀 안 좋아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되지도 않는 핑계를 대고 도망치듯 식당을 빠져나왔다. 걱정스러운 아버지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졌다.

타이오스는 숨을 헐떡이면서 방까지 내달렸다. 그는 문을 쾅 닫자마자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살덩어리를 꺼내 손에 쥐었다. 입술 사이로 낮은 욕설이 흘러나왔다. 금세 그의 손안에 미적지근한 정액이 가득 쏟아졌다.

***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타이오스는 입술을 꾹 다물었다. 생각해 봐야 답이 나오는 문제는 아니었다. 누나와 붙어먹고, 어떤 결과를 낼 수 있을까. 인정받을 수 있는 관계도 아닐 뿐더러 애초에 시작해서도 안 되는 관계였다.

“하…….”

그날 이후로 그는 디아메데스와 몇 번 더 몸을 섞었다. 누나는 언제나와 똑같았다. 서슴없이 그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췄다. 아무것도 두렵지 않은 것처럼. 수치심이라곤 없는 여자와 타이오스가 같을 수는 없었다. 그는 수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것이 누나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가릴 수는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어쩌자는 거야.’

디아메데스는 그냥 부모님에게 밝히길 원했다. 그러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아버지도 충격을 받긴 하겠지만, 더 걱정되는 건 어머니였다. 평생을 순수하게 살아오신 분이었다. 근친상간이라는 끔찍한 진실을 알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두렵기도 했다.

아니. 전부 다 변명이었다. 그냥 싫었다. 부모님의 얘기는 다 핑계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 모든 것이 밝혀지면 두 사람은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 있었다. 세상 어느 누가 남매간의 관계를 인정해 준단 말인가.

‘차라리 경멸했을 때 떠났어야 했어.’

다른 누군가를 빨리 만나서 결혼하든 아니면 멀리 여행을 가든 아예 디아메데스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갔어야 했다. 그때는 그저 ‘누나’라는 존재가 끔찍하다고만 생각했으니까 쉽게 떠날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떠난다는 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속이 뒤집혔다. 타이오스가 사라지고 나면 디아메데스는 어떻게 할까.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아도 뻔했다. 몸을 섞은 여자가 하나뿐인 그와는 다르게 그녀는 또다시 서슴없이 다른 남자의 등을 끌어안고, 다리를 벌리겠지.

더러운 창녀. 욕을 내뱉으면서도 흥분하는 자신을 비웃은 타이오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창녀여도 누나를 원했다. 끔찍한 여자라고 생각하면서도 디아메데스의 모든 것을 원하고 있었다. 그녀가 내뱉는 숨마저도 아까워서 전부 들이마시고 싶을 만큼.

“하…….”

자괴감과 비참함이 뒤섞였다. 그가 이마를 짚은 순간, 복도 저 끝 모퉁이에 조금 튀어나와 있는 드레스 자락이 보였다.

“…….”

그것의 주인이 누구인지 굳이 가서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타이오스는 조금 나아진 기분으로 발소리를 죽여 성큼성큼 다가갔다. 정말 안 보인다고 생각하는 누나가 조금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가 소리 죽여 웃으며 모퉁이를 돌았다. 그리고 디아메데스를 발견한 순간, 타이오스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아.”

달뜬 신음소리가 짧게 울렸다.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드레스 안쪽에 고개를 파묻고 있던 남자가 부스럭거리면서 고개를 내밀었다. 음란한 액체로 흠뻑 젖은 입술이 번들거렸다.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는지 너무도 명확했다. 분노에 눈앞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타이오스는 주먹을 꽉 움켜쥐고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무슨 짓이야.”

“무슨 짓을 하는 것 같은데?”

뺨이 발갛게 물든 여자가 싱긋 웃었다. 눈치를 슬쩍 보곤 입술을 혀끝으로 핥은 남자가 일어나려고 했다. 그러자 디아메데스는 거침없이 그의 머리카락을 붙잡아 다리 사이로 끌어당겼다.

“조금 더 해 줘. 응?”

바로 앞에 동생이 있는 것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 누나가 달뜬 목소리로 속삭였다. 남자가 머뭇거리며 부드러운 허벅지를 움켜쥐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바스락거리는 천 소리가 들렸다. 타이오스는 이를 꽉 악물었다.

그를 똑바로 바라보는 새파란 눈동자가 말하는 건 하나뿐이었다. 네가 어쩔 건데. 비웃는 듯한 그 눈빛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타이오스는 더 생각할 것도 없이 디아메데스의 팔을 거칠게 잡아끌었다.

“아!”

짧은 비명과 함께 누나가 비틀거렸다.

“디아메데스 님!”

남자가 당황한 얼굴로 일어섰다. 타이오스는 그를 노려봤다. 따라오던 발소리가 뚝 멈췄다.

“이거 놔. 타이오스.”

“…….”

“타이오스!”

디아메데스가 바르작거리면서 팔을 빼내려고 했다. 빈방에 그녀를 밀어 넣은 그가 문을 잠갔다.

“네가, 읍, 응!”

화를 내려는 입술에 입을 맞췄다. 혀를 밀어 넣고 말을 전부 짓뭉개버리자, 가느다란 손가락이 타이오스의 옷깃을 꽉 움켜쥐었다. 조금 전까지 다른 남자와 뒹군 여자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분명 다른 남자의 타액이 남아 있을 게 뻔한데도 누나의 입 속은 너무도 달았다.

타이오스는 혀를 세게 빨아들이고, 잘근잘근 깨물었다. 디아메데스를 벽에 세게 밀어붙이고 드레스를 걷어 올렸다. 매끈한 다리를 허리에 감고 이미 질척하게 젖어 있는 다리 사이를 더듬었다.

“으응, 응…….”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흥분에 부푼 내벽이 꿈틀거리면서 손가락을 꽉 죄어 왔다. 타이오스는 더 기다리지 않고 이미 커다랗게 부푼 자지를 안으로 쑤셔 넣었다.

“흐윽!”

이것만을 기다려 왔다는 듯 디아메데스의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그에게 바짝 달라붙어 매달리는 그녀의 온몸이 뜨거웠다. 바르르 떨리는 어깨를 세게 끌어안자 앓는 듯한 신음이 흘렀다. 살덩어리를 꽉 옥죄어 오는 감각에 머릿속이 금세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조금 전, 머리끝까지 차올랐던 분노가 전부 흥분의 불길로 변해 버린 것만 같았다.

“하…….”

낮게 한숨을 내쉰 타이오스가 거칠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 흐윽! 아, 앗!”

안쪽 깊숙한 곳까지 찔러 올릴 때마다 가느다란 허리가 벌벌 떨렸다. 팽팽하게 당겨진 천 너머로도 젖꼭지가 단단히 부풀어 올랐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끈을 거칠게 죽 당기자 갑갑하게 죄어져 있던 천이 단번에 풀어져 버렸다.

발갛게 물든 유두가 유독 탐스럽게 보였다. 붉은 입술이 끈적한 숨을 토해내고, 가느다란 팔이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 엉망으로 머리카락을 헤집는 손길에 더 흥분했다.

“헉, 하아…….”

“으응, 아!”

디아메데스가 바르작거렸다. 쾌락으로 흐려진 새파란 눈이 좋았다. 모든 것을 비출 듯 투명하다가도 쾌락에 흐려질 때면 그 어떤 때보다 유혹적인 바다색이 되었다. 죽는 것도 모르고 무심코 뛰어들 만큼.

타이오스가 허리를 움직였다. 철퍽거리며 젖은 살이 맞닿는 소리가 울렸다.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이 벽에 달라붙었다. 땀에 촉촉하게 젖은 어깨는 깨물면 달콤한 즙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하…….”

거칠게 안쪽 깊숙한 곳까지 찔러 올릴 때마다 누나는 꼬챙이에 꿰이기라도 한 것처럼 바르작거렸다. 허리에 닿은 허벅지가 벌벌 떨리고, 발끝에서 달랑거리던 구두가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다.

타이오스는 가느다란 허리를 세게 끌어안고, 다시 입술을 겹쳤다. 물어뜯듯이 혀를 꽉 깨물자, 고통과 쾌락이 뒤섞인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내벽이 움찔거리면서 자지에 달라붙어 왔다. 허리를 빼낼 때마다 쾌감에 헐떡여야 했다.

“누나, 누나…….”

“읏, 아……흐윽!”

쾌락에 휩쓸린 신음소리만 들려왔다. 그는 엉망으로 흐트러진 금빛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다가 꽉 움켜쥐었다. 누나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사랑해 준다고 했고, 거절하지 않았으니 그것으로 전부 된 거라고 혼자 이해했다.

“어떻게…….”

“앗, 아!”

그동안 남자와 뒹구는 꼴을 못 본 이유는 그 모든 것을 끊었기 때문이 아니었던가. 그냥 타이오스가 모르는 곳에서 지금까지와 같이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들자 욕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아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그의 자지가 깊은 곳까지 푹 찔러 올렸다. 음란하기 짝이 없는 여자가 바르작거리며 안쪽을 조여댔다. 뜨거운 속살이 흐물흐물 녹아 달라붙었다. 질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부족해? 그래? 응?”

“하아……흣.”

달아오른 뺨을 한 여자는 지독하게도 사랑스러웠다. 빼곡한 속눈썹을 팔랑거리며 눈을 깜박인 디아메데스가 배시시 미소 지었다.

“그럼, 너 혼자 날 가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순간 허리를 움직이는 것조차 잊을 정도로 커다란 충격이었다. 두 사람의 입술 사이에서 헐떡이는 숨소리만이 흘러나왔다. 가만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란한 구멍은 자지를 빨아들였다. 사정감이 치밀었다.

이를 악물고 모든 것을 참아낸 타이오스는 손에 힘을 줬다. 디아메데스가 고개를 젖혔다. 미소 짓고 있는 입술이 끔찍하고, 잔인했다.

“난잡한 창녀.”

“그래도 너는 나를 사랑하잖아.”

절대 변하지 않을 진실이라는 듯 당당한 목소리였다. 아니라고 하고 싶었다. 더러운 여자라고 경멸하면서 내팽개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이를 악물고 더욱 안쪽으로 자지를 밀어 넣었다.

“흐윽! 아!”

날카로운 신음을 흘린 누나가 웃음을 터뜨렸다.

“음탕한 여자.”

“하아, 하……그게 끝이야? 읏!”

“나는 누나를 경멸해.”

그게 사실이 아니라는 건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디아메데스가 또다시 웃었다. 타이오스는 몇 번이고 욕을 내뱉었다.

더러운 것. 아무 남자에게나 다리를 벌리는 음란한 악마.

그는 웃음소리를 내는 입술을 거칠게 빨아들이고,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숨이 막힌 누나가 그에게 온전히 매달릴 때까지. 신음하며 헐떡이는 그녀의 온몸이 꽉 조여 왔다. 허리 아래부터 피어오른 쾌감이 머릿속까지 마구잡이로 휘저어댔다.

“남자라면, 아니. 자지가 좋은 거지.”

“읍, 으읍…… 아읏!”

“누나는 그 누구도 구할 수 없어.”

“구원 같은 거, 바란 적도 없어.”

“지옥에나 가.”

“네가 같이 갈 거잖아.”

디아메데스가 헐떡이면서 속삭였다. 악마의 속삭임이었다.

‘아니. 이미 지옥에 떨어져 있지.’

이 상황이 지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몸을 섞을 때는 천국 같다가도, 떨어지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그와의 관계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또 다른 남자를 만날 테지. 그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타이오스의 심장이 불지옥에 떨어졌다.

견딜 수 없는 작열통에 몸부림치듯 허리를 움직였다. 가느다란 몸이 거칠게 흔들리고, 철퍽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타이오스는 디아메데스를 으스러져라 끌어안았다. 아무리 몸을 맞대고 있어도 정말 누나를 가진 것 같지 않았다. 끔찍한 기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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