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 똑똑하지요? (8/19)

7. 똑똑하지요?

올리비아는 오랜만에 화가 났다. 순응하며 흐지부지 살아가는 그녀치고 놀라운 일이었다. 올리비아를 둘러싼 환경은 늘 좋지 않았다.

둔한 성격 탓에 천덕꾸러기 신세로 불합리한 취급을 받는 걸 알면서도, 가끔 욱하는 감정은 있어도 크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구박을 당해도 억울한 마음은 생겼지만 나쁜 소리 하고 싶을 정도로 상대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참지 못하고 빽 소리 지르고 말았다.

물론, 그 결과가 좋지 못했고, 그래서 올리비아의 기분은 더 좋지 않았다. 그 일은 우연히 본채에서 마주친 로라의 한마디에서 시작되었다.

* * *

“도련님 저 본채에 다녀올게요.”

전에 총관님 명령으로 귀족의 밤시중을 들 뻔한 다음부터 올리비아는 도련님에게 허락을 받고 본채에 가야 했다. 말없이 가면 혼쭐을 내 줄 거라고 해서 이렇게 일일이 보고해야만 했다.

“왜?”

에이든 도련님이 벌떡 일어나 날카롭게 물었다.

“도련님이 새 책이 필요하시다면서요.”

아까 도련님이 새 책을 원하셨다. 제게 달라붙어 있거나 매일 뒹굴뒹굴하시는 거 같은데 언제 읽는지 가져다드리는 족족 다 읽었다 말하신다.

‘설마, 읽지 않으면서 일 시키려고 새 책을 가져오라고 하신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저와 다르게 멀리서 공부하고 왔을 정도로 똑똑한 도련님이니까 제가 없는 사이에 금세 읽으셨을 거라고 믿었다.

“아, 그랬지. 그래. 다녀와.”

에이든 도련님이 허락하자 올리비아는 본채로 향했다. 빨리 움직여야 했다. 늦게 오면 그걸로 또 혼났다.

본채는 오늘도 어수선했다. 데이빗 도련님의 생일 축하연이 현재 진행형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하는 사람 입장에선 힘들었다. 무슨 생일을 그리 길게 축하하냐고 하녀들이 수군거릴 때 누가 그랬다. 백작가가 왕국 구석에 있어서 그렇다고.

콜린스 백작가는 수도 생활을 하기엔 퍽 부유한 가문이 아니다. 하지만 귀하게 여기는 아들의 기를 살리고 싶은 백작 부인의 욕심에 주변의 귀족들이 놀랄 만큼 대단하게 연회를 연 거란 소리가 들렸다.

결론은, 일하는 사람들만 죽어라 고생하는 거다. 물론 별채에서 지내는 올리비아는 평화로웠지만. 지금도 본채 하녀들은 다들 바삐 일하고 있었다.

언제나 궂은일을 도맡아 하던 올리비아는 최근 평온한 생활이 이어져 놀라고 있었다. 올리비아는 에이든 도련님의 전담 하녀가 된 게 참 다행이라고 여겼다. 시도 때도 없이 도련님의 욕구를 받아 줘야 해서 가끔 피곤하지만, 그래도 다른 사람의 일을 넘겨받지는 않으니 할 만했다. 그리고 최근엔 도련님과 하는 행위가 기분이 좋기도 했고.

더불어 낯선 귀족의 시중을 들지 않는 것도 좋았다. 에이든 도련님이 아니라면 전에 그 이상한 귀족에게처럼 험한 꼴을 당할지도 모른다. 올리비아는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다시 생각해도 징그럽고 끔찍했다.

‘그러고 보면 이상하네. 도련님도 그 귀족이랑 비슷한 행동을 하는데 왜 기분이 나쁘지 않을까? 말은 퉁명스럽게 하셔도 때리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가?’

뭔가 알 것 같으면서도 모를 것 같은 기분이다. 올리비아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본채 안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손님이 있어 어수선한 터라 괜히 신경을 거슬렸다간 호되게 혼날지도 몰랐다.

먼저 집사님께 들러 허락을 받았다. 집사님은 에이든 도련님이 필요하다고 하면 다 들어주어서 좋았다. 가끔 도련님 시중을 제대로 들고 있냐고 물어서 무서울 때도 있지만. 어쨌든 오늘도 집사님에게 수월하게 허락을 받고 서재로 움직였다.

하지만 서재엔 이미 선객이 있었다. 손님이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상대가 올리비아를 호의적으로 바라보지 않는 인물이라 문제였다.

“어머, 올리비아 오랜만이다?”

바로 주방에서 같이 일하던 로라였다. 한동안 마주치지 않아서 좋았는데. 올리비아는 그녀가 화를 내기 전에 인사했다.

“네. 언니 오랜만이에요.”

“너 별채에서 둘째 도련님 전담 하녀가 되었다면서?”

“네.”

“승진했네. 축하해.”

로라에게 칭찬을 듣게 될 줄 몰라서 올리비아는 눈만 깜빡였다. 어수룩하게 서 있자 로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넌 축하를 해 줘도 그러니?”

“아,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됐다. 말을 해서 뭐 하니.”

그렇게 퉁명스럽게 답하면서도 로라의 눈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빤히 바라보는 시선이 뭘 묻는지 몰라 올리비아는 안절부절못했다.

“언니는 잘 지내셨어요?”

“나? 엄청 잘 지냈지.”

질문을 기다렸던 건지 로라의 목소리가 활짝 폈다. 그녀는 코끝을 으쓱 올리고 우쭐함을 드러냈다.

“난 첫째 도련님인 데이빗 도련님의 전담 하녀가 되었거든.”

일반적인 상황으론 하녀인 로라가 첫째 도련님의 시중을 드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올리비아가 에이든 도련님의 시중을 드는 것처럼 엄청 특별한 경우였다. 저런 이유면 콧대를 세울 만한 일이었다.

“축하드려요.”

“후후, 곧 더 축하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지.”

로라의 목소린 들떠 있었다. 자랑하고 싶어 입이 근질근질했는지 올리비아가 묻지 않았음에도 로라는 술술 이야기를 꺼냈다.

“밤시중까지 들고 있거든. 내가 마음에 드시는지 최근엔 나만 찾고 계셔. 이러다 나도 백작 부인 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어.”

로라는 우연히 술 취한 데이빗 도련님을 밖에서 발견했다. 만취한 도련님은 도저히 혼자 걷지 못할 상태였고 로라는 그를 침실까지 부축했다.

그때 데이빗 도련님은 술기운에 로라에게 손을 뻗었다. 로라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현 백작 부인의 출신이 그렇다 보니 저택의 하녀들은 이런 망상을 하곤 했다.

출신으로 뭐라고 하지는 못할 테니, 나도 백작 부인이 될 수 있을지 몰라. 본부인이 아니더라도 현 백작님만큼 아껴 주겠지. 이런 헛된 희망 말이다.

“그러시군요.”

올리비아는 로라가 데이빗 도련님의 밤시중을 들든, 백작 부인이 되든 상관이 없었다. 태어날 때부터 노예였기에 ‘그냥 해야 하는 일 아닌가?’ 이런 생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무성의한 반응이 나왔고, 그 태도가 로라의 심기를 건드렸다.

사실 로라는 예전부터 올리비아가 정말 싫었다. 맹한 얼굴로 멍청히 구는데 도저히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찜찜했다. 그녀는 보는 것만으로 기이한 불쾌감을 주었다. 그리고 반반한 얼굴로 저 홀로 늘 고고한 척 구는 것도 싫었다.

둘째 도련님이 끼고돈다더니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이미 하녀들 사이에 올리비아가 둘째 도련님의 총애를 받는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하녀들 사이에서 여왕벌 노릇을 하던 애니의 계략으로 다른 귀족에게 안길 뻔한 올리비아를 둘째 도련님이 직접 찾아가 빼내 왔단 이야기는 하녀들 사이에선 비밀도 아니었다.

‘그래도 그렇지. 올리비아 주제에 고개를 빳빳이 들어?’

둘 다 백작가의 씨물을 받는다고 자신이 저와 같은 처지인 줄 아나 보다. 천만의 말씀이다. 올리비아가 받는 것은 백작가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자의 것이고, 자신이 받는 것은 무려 백작가 후계자의 씨물이었다.

차원이 다른 것이다. 줄도 제대로 못 잡은 것이 알랑거릴 줄 모르고. 로라의 입매가 비틀렸다.

“네가 아직 현실을 모르는 것 같은데, 데이빗 도련님은 네가 상대하는 둘째 도련님과는 다른 대단한 분이시야. 매일 빈둥거리는 놈팡이랑 같은 취급하지 말라고.”

얼른 책을 챙겨 돌아가려던 올리비아는 로라의 말에 멈칫했다. 지금 에이든 도련님에게 뭐라고 한 거야? 놈팡이? 물론 에이든 도련님이 그녀의 말처럼 매일 빈둥거리긴 해도 그렇지. 어떻게 도련님을 저렇게 낮잡아 말한단 말인가.

“말조심하세요. 우리가 모시는 백작가의 도련님이세요.”

“뭐? 말조심하세요? 너 진짜 겁이 없어졌구나? 둘째 도련님? 그 사람이 뭐가 대단하다고? 멍청하고 능력이라곤 쥐뿔도 없는 사람이라 곧 백작가에서 내쳐질 사람이잖아!”

겁이 없는 사람은 로라였다. 어떻게 백작가 내에서 백작의 아들을 낮잡아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사실 올리비아는 멍청하단 소리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래서 멍청하다는 말을 들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심한 욕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로라가 에이든 도련님을 멍청하다고 하는 말에는 참을 수 없이 화가 났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에이든 도련님은 똑똑해요! 좋은 곳에서 공부하고 오셨단 말이에요.”

올리비아의 반박에 로라야말로 어이가 없었다. 그동안 그렇게 구박해도 큰소리 하나 없더니 둘째 도련님을 욕하는 소리엔 저렇게 반응하다니.

설마 둘째 도련님께 무언가 약속받은 거라도 있나? 그래 봤자 어차피 헛된 일이겠지. 자신이 백작 부인이 된다면 올리비아를 제일 먼저 내칠 거다.

“그럼, 뭐 해? 증명을 해야지! 둘째 도련님 돌아오신 뒤로 매일 별채에서 빈둥거리기만 하잖아! 밖에서 공부하고 왔다면서 하는 일도 없는 게 이상한 거 아니야? 보나마나 뻔하지 밖에서도 저렇게 놀면서 시간만 보내다 왔겠지.”

“아니에요! 에이든 도련님은 대단해요!”

반박할 말을 찾지 못한 올리비아는 그저 아니란 외침만을 했다. 그 빈약한 증명에 로라의 콧대가 더욱 높아졌다.

“아니긴 뭘 아니야? 증명해 보라니까? 데이빗 도련님은 말이야 얼마 전에 엄청난 거래를 성공했어. 덕분에 우리 영지가 이번 겨울에 식량 걱정은 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고! 네 도련님과는 차원이 다르게 영지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셨지. 우리 데이빗 도련님이 더 대단하다고!”

할 말이 없는 올리비아는 억울한 눈으로 로라를 쏘아보았다. 아까부터 이상하게 로라가 에이든 도련님을 무시하는 게 화가 났다.

에이든 도련님은 멍청한 자신과 다르게 똑똑했다. 어려운 책도 끊임없이 읽으시고 밖에서 공부도 하고 오셨는데! 에이든 도련님이 대단하다고 하고 싶은데, 첫째 도련님보다 훨씬 대단하다고 하고 싶은데.

말주변도 없어서 올리비아는 로라의 말에 반박하기 힘들었다.

“우리 에이든 도련님도 대단해요! 데이빗 도련님이야말로 좋은 곳에서 공부한 적 없잖아요!”

올리비아가 팩 소리치고 한쪽에 놓인 책을 들고 서재를 뛰쳐나갔다. 얼마나 잽싸게 도망치는지 금세 시선에서 사라졌다. 홀로 남은 로라는 어이없어서 입술 사이로 헛바람만 내뱉었다. 그러다가 생각하면 할수록 화가 나서 복수를 다짐했다.

“저게 감히 소리를 쳐? 두고 봐. 나중에 혼쭐을 내 줄 테다.”

나중에 데이빗 도련님의 아이를 갖게 되면 꼭 저년을 혼내 주리라. 아니, 그 전이라도 잡히면 쥐어박고 말 테다.

로라가 눈에 불을 켜고 욕하는 것도 모르고 올리비아는 씩씩거리며 별채로 향했다. 에이든 도련님이 무시당한 게 왜 이렇게 화가 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첫째 도련님이 왜 얄미운지도 모르겠고. 올리비아는 어릴 때부터 저택에서 자랐지만 첫째 도련님을 제대로 마주한 적이 없었다. 워낙 궂은일을 도맡아 했기에 곱게 취급받는 도련님과는 만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불만이 없어야 하는데, 방금 로라의 말에 괜히 첫째 도련님이 싫어졌다.

‘에이든 도련님도 멋진데! 밖에서 공부도 많이 하고 온 똑똑한 사람인데! 이런 책 하루면 다 볼 정도로 똑똑한데! 나한테 케이크도 주는 착한 사람인데!’

올리비아는 왜 화가 났는지 잘 모르겠으면서도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그 감정은 별채에 돌아와서 일을 하면서도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더 화가 나서 속상했다.

이렇게 화난 적은 처음이라 올리비아는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그래서였다. 막 서재로 들어온 도련님에게 겁도 없이 질문을 한 것은.

“도련님! 도련님은 똑똑하지요?”

“응?”

뜬금없는 올리비아의 질문에 에이든은 의문을 드러냈다. 갑자기 올리비아가 왜 이런 질문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얼굴에 열을 올린 채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씩씩거리는 올리비아를 보니 마냥 무시할 수 없었다.

순수하단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착해 빠진 아이가 감정을 드러낼 정도면 꽤 큰일이 있었던 것 같았다. 그게 자신이 똑똑한 것과 무슨 상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에이든은 우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무릎을 툭툭 두드렸다. 올리비아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순순히 다리를 벌리고 에이든의 무릎에 올라탔다.

그동안 잘 교육시킨 효과에 에이든은 뿌듯함을 느끼며 낭창한 허리를 끌어당겼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아까 로라가 데이빗 도련님만 대단하다고…….”

올리비아의 씩씩거리는 음성에 에이든은 놀랐다. 어쩐지 뒤이어 이어질 말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이런 점도 어릴 때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무조건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모습이 그때와 똑같았다.

에이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누가 저를 욕하든, 무능력한 버러지 취급하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이 저택에 신경 쓸 ‘사람’은 올리비아뿐이다.

‘나머지는 인간도 아니지.’

인간도 아닌 것들이 욕한다고 신경 쓸 필요가 있나? 그런 존재들이 뭐라고 하든 간지럽지도 않았다. 그래도 올리비아가 자신을 위해 이렇게 화를 내 주니 마음이 벅찼다.

“왜? 누가 내가 무능하다고 욕이라도 해?”

“헉!”

올리비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제 입을 틀어막았다. 로라가 한 행동은 에이든 도련님의 욕이 맞았고, 이건 걸리면 그냥 넘어가지 않을 일이었다. 아무리 로라가 미워도 자신이 말을 옮겨 혼나게 할 수는 없었다.

올리비아는 뒤늦게 제 실수를 알아차렸다. 감정이 격해져서 도련님께 이른 것처럼 되어 버렸다. 로라가 한 짓이 얄밉지만, 자신 때문에 그녀가 혼난다면 큰일이다. 하녀들 사이에서의 규칙을 어긴 거다.

올리비아에게 떠오른 아차 하는 기색에 에이든은 걱정하지 말라고 그녀의 등허리를 훑어 내렸다.

“그런 거로 안 혼내.”

하지만 막상 에이든 도련님이 이렇게 너그럽게 말하니 올리비아는 실망이었다. 로라가 혼나는 건 무서운데, 그래도 한 짓이 얄미워 그냥 넘어가는 게 아쉬웠다.

올리비아가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그마저도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에이든은 올리비아의 입술을 머금었다.

키스에 익숙해져 자연스럽게 벌어지는 입술 안쪽으로 파고들며 고른 치열을 훑었다. 올리비아의 팔이 올라와 에이든의 목을 감싸 왔다. 마중 나온 혀끝을 마주 대자 올리비아가 몸을 더욱 기대 왔다. 점막 안쪽을 살살 긁어 주자 올리비아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리고 살살 엉덩이를 흔들었다. 정확히는 에이든의 허벅지에 제 다리 사이를 비볐다. 쾌락을 추구하는 본능적인 몸짓이었다. 이 얼마나 야해서 사랑스러운지.

에이든은 올리비아의 치마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말랑한 허벅지를 더듬었다. 이 살결의 감촉을 뭐라고 표현할까? 꼭 만져 달라고 애원하는 것처럼 손끝에 착 달라붙었다. 보들보들하니 정말 좋다.

느릿하게 매만지다 손을 올려 올리비아의 속옷을 단번에 잡아당겼다. 키스에 응하면서 올리비아가 자연스럽게 엉덩이를 들어 속옷을 벗기는 걸 도왔다. 능숙해진 호응이 아주 에이든을 미치게 했다. 끝까지 벗길 여유가 없었다. 대충 무릎까지 속옷을 끌어 내린 후 다리 사이로 손을 넣었다.

올리비아가 아직 제대로 흥분하지 않아 입구가 바짝 말라 있었다. 밀지 안으로 바로 손을 넣으려 했지만 너무 준비가 안 돼 있어 갈라진 틈을 서서히 문질렀다. 점막의 매끈함이 느껴지는 여린 살이 손끝에서 뭉개졌다. 자극할수록 올리비아의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흐응…….”

남는 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자 올리비아의 콧소리가 울렸다. 손안 가득 차는 탄력 있는 가슴을 한번 쥐어짜듯 잡았다가 놓고 올리비아가 뒤로 넘어가지 않도록 등을 받쳤다.

아래를 자극하던 손으로 계속 살살 긁어 주자 슬슬 입구가 촉촉해졌다. 미끈거리며 젖어 드는 감촉에 에이든은 쉴 새 없이 입구를 손가락으로 비볐다. 넣을 듯 말 듯 지분거리자 올리비아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으, 으응…….”

달뜬 올리비아의 신음에 에이든은 허겁지겁 올리비아의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이상한 일이다. 올리비아에게선 늘 아찔한 유혹의 향이 풍기는 것 같았다.

벌을 꾀는 꽃처럼 향긋하고 달콤한 향이 번져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자극하는 것 같았다. 그사이 한결 매끄러워진 안쪽으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쑥 하면서 빨아들인 내벽이 손가락을 끊어 버릴 것처럼 압박했다.

“미치겠다. 엄청 조여.”

매일,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쑤셔 박았어도 이 조임은 느슨해질 줄을 몰랐다.

“응, 응, 으응, 흐응!”

빠르게 앞뒤로 손가락을 쑤시자 그 움직임에 맞춰 올리비아가 콧소리를 냈다. 눈앞의 흰 목덜미를 이빨로 살짝 긁자 올리비아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더욱 훤히 드러났다. 진짜 물어뜯고 싶을 정도로 색스러워 원초적 욕구를 자극했다.

마음이 다급해진 에이든이 더욱 빠르게 올리비아의 안을 헤집었다. 에이든의 거친 손놀림을 올리비아는 무던하게 받아 냈다. 행위에 익숙해진 올리비아가 빠르게 흥분했다.

찔꺽이는 소리가 울렸다. 쉼 없이 애액을 토해 내 들쑤시는 손가락이 흠뻑 젖을 정도였지만 아직도 입구는 좁았다. 하긴, 언제나 그랬다.

집적 성기로 쑤셔 가며 넓히기 전까지 올리비아의 안쪽은 늘 이렇게 좁았다. 그래서 언제나 빼기 아쉬웠다. 정액을 모조리 쏟아 넣은 후에도 오래도록 올리비아의 안에 묻고 있고 싶었다. 물론, 올리비아는 재깍 떨어져 나가 시중을 들려고 해서 문제지만.

에이든은 손가락을 휘저으며 올리비아가 받아들일 수 있을지 가늠했다. 끈적끈적하게 애액이 손가락에 엉켰다. 이 정도면 넣는 건 빠듯하지만 곧 수월하게 받아들일 거였다.

에이든이 다급하게 손가락을 빼내고 자신의 바지춤을 풀었다. 옷 틈으로 성기만 꺼낸 후 올리비아의 엉덩이를 이끌어 귀두를 입구에 대고 문질렀다.

성기 끝에 야들야들한 살이 걸렸다. 씨발, 입구가 빠끔거리며 어서 넣어 달라고 음란하게 재촉했다. 에이든은 욕망에 숨넘어갈 것 같으면서도 올리비아를 향해 물었다.

“어떻게 할까?”

올리비아의 흰 뺨이 발긋하게 물들었다. 눈동자가 몽롱하게 풀린 걸 보니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대신 본능적으로 움직였다. 흥분된 몸을 주체 못하는지 자꾸 엉덩이를 들썩였다. 그럴수록 끝이 살짝 삽입되었다가 빠져나오며 자극되어 에이든도 죽을 것 같았다.

이성이 끊어질 것 같지만 그는 올리비아가 직접 넣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안달이 난 올리비아가 애원했다.

“아, 넣어 주세요. 제발.”

드디어 올리비아의 입에서 원하던 말이 들리자 에이든은 힘껏 성기를 밀어 넣었다.

“아흑!”

푹 소리가 날 정도로 단번에 삽입해 올리비아의 상체가 에이든에게 쏠렸다. 비좁다 여겼던 길을 뚫고 에이든의 성기가 완벽하게 자리를 잡았다. 격하게 올라오는 호흡과 반대로 치마 아래에서 두 사람의 성기는 은밀하고도 빈틈없이 맞닿았다.

에이든은 제멋대로 허리를 흔들고 싶은 욕구를 가까스로 내리눌렀다. 입구에서부터 빠끔거리며 재촉하더니 안쪽으로 들어가자 쫀득하게 아래를 삼켰다. 이성이 나갈 것 같았다.

대신 올리비아의 골반을 꽉 끌어 내리며 더욱 깊숙이 성기를 밀어 넣었다. 이미 한계까지 닿은 상태인데 안쪽이 뭉근하게 눌리는 감각에 올리비아의 엉덩이가 들썩이려 했다. 하지만 에이든의 손과 지긋하게 밀어 올리는 골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아아…….”

올리비아가 머리를 흔들며 입술 사이로 아득한 쾌락이 밴 탄성을 내뱉었다. 그제야 에이든은 숨을 골랐다. 모든 인내심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안쪽이 재촉하듯 꿈틀거렸다. 내벽이 쉼 없이 페니스를 빨아 댔다. 하지만 아직 움직일 때가 아니다. 올리비아가 삽입에 익숙해지도록 조금 더 참아야 했다. 처음엔 버거워해도 이렇게 조금 기다리면 올리비아는 준비가 되었다.

헥헥거리는 숨결을 내뱉는 작은 입술을 에이든은 삼켰다. 입술이 뭉개져 버릴 것같이 맞물렸다. 진짜 한입에 삼켜 버리고 싶다. 올리비아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에이든은 시시때때로 사납고 난폭한 기분을 느꼈다. 전부 먹어 치워 버리고 싶었다.

몇 번을 해도 이 감각은 익숙해지기는커녕 더 좋아져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삽입 후 키스는 더욱 달콤했다. 위에서 혀끝은 야하게 움직였고, 아래에선 쉼 없이 성기를 쪽쪽 빨아 당기며 자극했다. 아플 정도로 조여드는 감각은 야릇한 쾌락으로 변했다.

끊임없이 움찔거리며 성기를 주무르는 내벽의 움직임은 터질 듯 차오른 씨물을 얼른 제게 쏟아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이러다 처음의 실수를 또 할 것 같았다.

물론, 삽입 후 벌써 3초는 지났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쌀 것 같았다.

“큭, 그만 좀 조여…….”

에이든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바르르 떨리던 올리비아의 안쪽이 또 움찔하며 꾹 조여들었다.

“안, 안 조였는, 흐응…….”

말은 아니라고 하는데 올리비아의 몸은 달리 말했다. 움직이지도 않았는데 얕은 절정에 달했는지 내벽이 경련하듯 움직였고, 결합된 부위에선 울컥거리며 애액이 흘렀다.

에이든은 양손 모두 치마 아래로 넣어 펑퍼짐한 엉덩이 살을 꽉 잡아당겼다. 보드랍고 풍만한 살이 손바닥 안에서 찰싹 달라붙었다.

올리비아는 안이고 밖이고 아주 에이든의 온몸에 착 감겼다. 꼭 저를 위해 맞춰진 사람처럼. 그러면서 입으로는 아니라고 하니 얼마나 얄미운가.

“거짓말하지 마, 지금도 이렇게 내 물건을 물고 빨고 있잖아.”

그렇게 말하며 에이든은 손으로 올리비아의 엉덩이를 들었다고 놓았다. 성기가 조금 뽑혔다가 다시 질 내부에 박혀 들었다.

“흐앗!”

갑자기 생긴 자극에 올리비아의 상체가 에이든에게로 쏠렸다. 어깨에 기댄 머리가 응석 부리듯 비비적거렸다.

그리고 내벽의 움직임은 더 꿈틀거렸다. 얼른 제대로 시작하란 신호에 에이든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허리를 빠르게 쳐올렸다. 하, 씨발.

“이것 봐, 응? 이렇게 재촉하면서, 웃, 아니라고 우길래?”

순간 꽉 조이는 터라 에이든은 아득한 쾌락을 맛봤다. 이런 솔직한 몸의 반응이 에이든은 기꺼웠다. 오롯이 올리비아를 자신이 차지한 것 같아서 만족스러웠다.

“흐응, 하, 하지만 도, 도련님이 자꾸 이러니까……. 으흥!”

“뭘? 응? 내가 뭘 했다고?”

올리비아의 귀에 대고 에이든이 짓궂게 물었다. 올리비아를 놀리는 음성이지만, 이미 쾌락에 빠진 그녀는 알아채지 못했다.

“아, 거기……읏! 거기 찌르면……흐읏, 기분 좋아서…….”

오히려 무릎에 힘을 주고 위아래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제 쾌락을 좇는 올리비아였다. 이 순간 그러면서 기분이 좋다는 야해 빠진 말을 하다니.

에이든은 더욱 격하게 허리를 추켜올렸다. 바지춤만 푸른 채 결합된 상태라 맨살끼리 부딪히는 찰진 소리가 아니라 천으로 소음이 줄어든 턱턱거리는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그게 더 조급하게 느껴져서 바삐 허리를 흔들어야 했다.

에이든은 일부러 올리비아가 잘 느끼는 방향으로 추삽질했다. 올리비아가 쾌감을 좇아 엉뚱한 방향으로 엉덩이를 흔들어 대서 엇나가지 않도록 잘 조준해야만 했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올리비아가 휘둘렸다.

“하아, 올리비아 기분 좋아서, 응? 좋아서 조일 수밖에 없어? 그렇게 좋아?”

“응, 응……. 네. 아, 거기, 흥…….”

좋다는 올리비아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 없었다. 도대체 얜 뭘 먹고 이렇게 예쁜 건지. 아주 존재 자체가 환장하게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았다.

“올리비아, 올리비아, 내 예쁜 올리비아.”

에이든이 감싸 쥔 엉덩이를 놓고 올리비아의 등을 꽉 끌어안았다. 품에 쏙 들어오는 게 참으로 만족스러웠다.

그 와중에 올리비아는 더 큰 쾌락을 좇듯 끊임없이 엉덩이를 들썩이고 가슴을 비비고 있었다. 더 자극받고 싶어 하는 모습에 픽, 웃음이 나왔다.

“가슴 만져 줘?”

“네. 어서…….”

올리비아는 가슴만 만져도 절정에 달할 만큼 가슴도 약했다. 그러고 보니 다급하게 삽입하느라 가슴 애무를 덜 해 줬더니 이렇게 안달이 나나 보다. 맨가슴을 만져 주고 싶지만 다급해서 옷을 벗기기 힘들었다. 에이든은 그냥 옷 위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으아앙…….”

우뚝 솟은 유두가 짓눌리자 올리비아가 바르르 떨었다. 손가락을 이용해 유두 위를 집요하게 지분거리자 올리비아의 뒤틀림이 더 강해졌다. 물론 지금도 좋았지만 에이든은 부족함을 느꼈다. 올리비아를 안은 채 다리에 힘주어 일어섰다.

“아앗!”

갑자기 붕 뜨는 감각에 올리비아가 비명을 지르며 에이든의 어깨에 다급하게 매달렸다. 그 상태로 몸을 돌린 에이든은 올리비아를 소파에 눕혔다.

눕혔다고 해도 아예 소파 위로 올라간 게 아니라 앉는 곳에 등을 걸치게 한 터라 하체는 에이든에게 붙잡혀 붕 뜬 상태였다. 불안정한 자세에 올리비아가 반사적으로 다리에 힘을 줘 에이든의 허리에 감았다.

“도, 도련님!”

이렇게 온 힘으로 매달리면 사랑스러워서 미치겠다. 가까스로 버티면서 저를 올려다보는 올리비아의 시선에 에이든은 더욱 불끈 욕망이 치솟았다.

제멋대로 뒤집어진 치마를 아예 훌렁 걷어 버렸다. 그러자 제 물건을 음란하게 물어 쥐고 있는 부위가 적나라하게 보였다. 에이든은 올리비아의 치마 아래에서 은밀히 결합되는 것도 좋아하지만 이렇게 결합된 부위를 노골적으로 보는 것도 좋아했다.

둘이 온전한 하나가 되었다는 걸 눈으로 확인할 때마다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그리고 이미 물고 있으면서도 부족하다는 듯이 우물우물거리는 곳을 보면 그렇게 열이 쏠렸다.

지금도 어서 움직여 달라 재촉하듯 입구가 꿈틀거렸다.

“순진한 얼굴로 아주 야해 빠졌어.”

올리비아를 약 올린 에이든이 허리를 길게 뺐다. 올리비아의 안쪽에 숨겨져 있던 성기가 끈적이는 액체로 뒤범벅된 상태로 천천히 드러났다. 완전히 빠지기 전에 다시 안쪽으로 짓쳐 넣었다.

“흑!”

“크흑!”

안쪽이 꾹 조이며 에이든을 쾌락의 끝으로 몰아넣었다.

“큭, 진짜 잡아먹겠네. 아주 물어뜯지?”

페니스를 끊어 버릴 것처럼 조여 오는 내벽에 눈이 뒤집힌 에이든이 제멋대로 허리를 놀렸다. 격한 추삽질을 반복했다.

급격한 움직임에 성기가 빠질 때마다 발갛게 익은 속살이 딸려 나왔다. 놓치기 싫다는 듯 빠져나가는 성기에 내벽이 음란하게 끝까지 달라붙는다. 에이든은 이를 악문 채 올리비아의 안을 쑤시고 또 쑤셨다. 올리비아의 숨넘어가는 호흡이 느껴졌다.

“으응, 하응……. 거기, 좋아…….”

에이든은 제 페니스를 올리비아의 가장 깊숙한 곳을 노리고 찔러 댔다. 거센 허리 짓에 올리비아의 양 허벅지가 허공에 제멋대로 튀어 올랐다.

“도, 도련님, 읏! 어서, 어서 싸 주세요…….”

올리비아가 절정이 머지않은 순간 이렇게 말하면 에이든은 자신이 가르치긴 했지만 미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부족했다. 만점짜리 애원이 아니다.

“윽, 어디에? 응? 어디에 싸 줄까?”

“아윽, 안에……. 흣, 안에 정액 싸 주세요.”

씨발, 진짜. 에이든이 환장할 수밖에 없는 애원이다.

“네가 원한다면, 윽, 기꺼이.”

달달 무섭게 떨리는 내벽의 움직임에 에이든은 마지막으로 짓쳐 들어갔다. 자신의 성기가 전부 삼켜져 보이지 않도록 끝까지 밀어 넣은 상태로 정액을 토해 냈다.

쏟아지는 정액이 참 맛있다는 듯 쭉쭉 빨아 당기는 내벽의 움직임에 에이든의 발끝이 곱아들었다. 뒷덜미를 강제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 것처럼 아득한 쾌감에 눈앞이 흐려졌다.

“씨발, 큭!”

에이든은 허리를 한 번 더 추켜올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쾌감에 잠식된 건 올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제 안에 퍼지는 것이 만드는 절정의 여운에 입을 벌리고 헐떡였다.

쾌감을 여실히 드러내는 올리비아의 얼굴이 야했다. 사정 중임에도 모두 올리비아의 안쪽에 쏟아 넣고 싶었다. 한 방울도 밖에 흘려보내고 싶지 않았다. 에이든은 힘 죽은 페니스가 빠지지 않도록 포동포동한 올리비아의 엉덩이를 더욱 바짝 당기며 허리를 숙였다.

“한 방울도 흘리지 말고 받아 마셔.”

“하아, 네!”

올리비아의 다리가 호응하듯 에이든의 허리에 감기며 힘껏 당겼다. 정말로 한 방울도 흘리지 않겠다는 것 같아서 에이든은 기뻤다. 허리를 숙여 입술을 찾자 자연스럽게 혀를 빨아 당기는 올리비아의 행동에 에이든은 또 웃었다.

자신에게 물든 솔직하고 음란한 몸이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올리비아의 엉덩이가 쾌락의 잔재를 좇아 슬금슬금 흔들렸다. 더 짙은 결합을 원하는 건지, 더 비벼지고 싶은 건지 모를 움직임이었다. 야하긴.

진짜 빼고 싶지 않다. 교미밖에 모르는 짐승처럼 평생 이렇게 올리비아의 몸속에 파묻혀 살고 싶었다. 이렇게 결합되어 있다가 내키면 흔들고 싸는 거다.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았다.

에이든은 절정의 여운에 가늘게 떨리는 올리비아의 몸을 꽉 끌어안고 계속 여린 입술을 탐했다. 올리비아의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건 타액이 아니라 꿀이었다. 달콤해서 떨어질 수 없었다.

에이든이 개처럼 핥는 동안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언제나처럼 올리비아였다. 그녀는 게걸스럽고 끈질기게 입술에 매달리는 에이든의 어깨를 밀어냈다.

“하아, 도련님 그만해요.”

아직 오늘 할 일 다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노닥거리고 말았다. 요즘 생활이 편해졌다고 올리비아는 좋을 대로 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녀는 공동생활을 했다. 그녀가 계속 일을 안 하면 다른 하녀들이 더 일을 해야 하고, 그건 다른 하녀들에게 불만이 생긴단 소리였다.

그것도 아니면 불쑥 들이닥친 집사님이나 하녀장님한테 혼날 수도 있었다. 아무리 도련님이 괜찮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안 한 거라 혼나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도련님은 좋은데 너무 달라붙었다. 몸이 노곤노곤할 정도로 찾아오는 쾌락이 좋긴 하지만 적당히란 걸 모르고 귀찮을 정도로 매달린다. 지금 말리지 않으면 한 번 더 하자고 할지도 몰랐다.

다시금 입술을 붙여 오는 도련님을 피해 올리비아는 고개를 돌렸다.

“아직 대낮이에요. 하아……. 저 할 일 많다고요.”

사정의 여운으로 달떠 있던 에이든의 표정이 날카롭게 변했다. 지금 꼭 저런 말을 해야 하나? 이 좋은 순간에? 만족스러운 섹스에 기분이 좋았던 에이든은 자꾸 밀어내는 올리비아의 행동에 뚱해졌다.

“너!”

“이따, 밤에 해요.”

올리비아가 찔끔해서 외쳤다. 불만을 쏟아 내려던 에이든은 이어지는 말에 투덜거림을 삼켰다. 올리비아가 이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하는 말임을 알지만, 그녀가 먼저 하자고 조른 것 같아 가슴이 뻐근했다.

가슴이 그러니 더불어 성기도 순식간에 뻐근해졌다. 방금 사정한 적 없단 것처럼 금세 부피를 키웠다. 그러자 결합된 내벽이 꼬물 움직였다. 또 하고 싶다. 제 욕심을 채우고 싶어 눈을 번들거리던 에이든은 올리비아의 눈초리가 초조하게 변하는 걸 발견했다.

직접 품고 있는 물건의 반응을 모를 리 없었다.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올리비아를 보고 참기로 했다. 지금 한다면 올리비아가 거절은 하지 않겠지만 저녁에 힘들다고 제대로 호응하지 않을 거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법.

물론 순순히 물러난다는 소린 아니다. 이미 발기한 물건은 죽여야 했다. 아직 제 허리에 매달린 올리비아의 허벅지를 느릿하게 매만졌다.

“다리 힘 풀어야지.”

올리비아는 여전히 소파에 등을 기대고 에이든에게 하체가 붙들린 채 떠 있는 자세였다. 떨어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올리비아는 다리에 힘을 빼지 못하고 에이든에게 매달린 상태였다.

“하지만…….”

“허리 잡았어. 나 믿고 힘 풀어.”

에이든의 손이 단단히 받친 걸 인식한 올리비아의 다리에서 힘이 서서히 풀렸다. 에이든은 다리를 굽히며 천천히 올리비아의 발이 땅에 닿도록 했다. 그리고 상체를 일으키려는 올리비아의 어깨를 눌렀다.

“일어서지 말고. 발에 힘주고 버텨.”

언제나 그렇듯 올리비아는 영문을 모르면서도 에이든이 시킨 걸 거부하지 않았다.

“네.”

올리비아가 등과 허벅지에 힘주고 버틴 걸 확인한 에이든이 느릿하게 성기를 뽑아냈다. 아까 치마를 걷어 올린 덕분에 시야를 가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올리비아가 다리를 쩍 벌린 상태라 정액과 애액으로 범벅된 기둥이 빠져나오는 모습이 여과 없이 보였다.

“흐으…….”

에이든의 느릿한 움직임에 올리비아의 안쪽이 나가지 말라는 듯 성기에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씨발, 그냥 빼내는 게 아니라 욕심껏 다시 쑤시고 싶다. 아주 더 해 달라고 애원하는 것 같았다.

‘이러면서 그만하자는 게 말이 돼?’

속으로 악이 써졌다. 하지만 에이든은 인내심을 끌어 올렸다. 성기를 완전히 뽑아내자 아직 다물어지지 않은 입구에서 주룩 정액이 음란하게 흘러내렸다.

속살이 벌겋게 익어 벌름거리며 사내의 정액을 쏟아 내는 여자의 음부는 야하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였다. 에이든은 자세가 불편해 일어나려는 올리비아의 무릎을 잡았다.

“계속 그대로 있어.”

“하지만 불편해요.”

등만 기댄 채 허리를 허공에 띄우고 발바닥으로 버티는 자세가 편한 게 아니란 건 에이든도 안다. 하지만 자기가 세웠으면 책임져야 할 것 아닌가. 올리비아의 요구대로 더 하지 않기로 했어도 이미 터질 것 같은 물건은 달래 줘야 했다.

“이거 풀어 줘야 할 것 아니야. 그만하고 싶다며.”

올리비아 흘긋 고개를 내려 다시 발기한 에이든의 페니스를 확인했다. 또 커져 있구나 하는 맹한 표정에 에이든은 더욱 자극받았다. 제 손으로 퉁퉁 부은 페니스를 감싸 쥐며 명령했다.

“내가 쌀 때까지 다리 벌리고 있어.”

“왜요?”

“눈요기할 게 있어야 빨리 쌀 것 아니야. 기다려 금방 쌀 테니까.”

말을 끝내자마자 에이든은 제 물건을 쥐고 흔들었다. 이미 질척하게 젖은 터라 손을 쓰는데 무리는 없었다. 하지만 올리비아의 안쪽에 묻었을 때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부족한 감각에 손에 더욱 힘을 줬다.

척척 젖은 살이 마찰하는 소리와 더불어 올리비아의 색색거리는 숨소리만 허공에 울렸다. 에이든은 올리비아의 음부를 뚫어질 듯 응시했다. 그 노골적인 시선을 느낀 올리비아의 입구가 움찔움찔 흔들렸고, 그게 마치 약 올리는 것처럼 보여 에이든은 짜증까지 났다.

“씹, 싸는 건 안에다가 할 거다.”

“네. 도련님 마음대로 하세요.”

말은 참 잘도 한다. 삽입하고 흔들지를 못하는데 그게 어떻게 자신의 마음대로인가? 그리고 정액은 받겠다면서 섹스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돼? 미칠 듯이 저 구멍을 쑤시고 싶어 탐난다. 당장 넣어도 되는 눅진하게 풀린 구멍인데 넣지 못한다는 사실이 안타깝고 짜증 났다.

‘씨발 먹으라고 벌려 줘도 못 먹네. 내가 병신 새끼지.’

그러면서도 에이든은 올리비아를 눈으로만 탐했다. 쩍 벌린 자세 탓에 입구가 완벽하게 다물어지지 못해 계속 찔끔찔끔 정액이 흘러나왔고, 그걸 흘리지 않으려 의식적으로 힘을 주는 음란한 모습에 미칠 것만 같았다. 이따 밤에 마음껏 탐할 수 있다는 일념으로 에이든은 제 페니스를 자극했다.

‘저러면 기분 좋은가?’

올리비아는 에이든 도련님을 조심히 살폈다. 미간을 찌푸리고 성기를 흔드는 도련님의 얼굴이 야릇했다. 자신의 안에 들어와 움직일 때와는 또 다른 표정이었다.

올리비아는 이상하게 입안에 침이 고였다. 방금 전까지 저걸 품고 있었던 다리 사이가 근질거렸다. 저릿저릿하면서 휑한 기분에 다시 물고 싶은 거 같았다.

에이든의 눈은 올리비아의 그 움직임을 고스란히 훑었다. 유혹하듯 움직이는 음부에 사정감이 몰려왔다. 확실히 눈앞에 좋은 게 있으니 욕구는 빨리 차올랐다. 에이든은 제 페니스를 뽑아 버릴 것처럼 손을 털며 올리비아에게 외쳤다.

“흣, 무릎 더 벌려.”

힘주어 벌리는 무릎을 확인할 새도 없이 에이든은 제 성기를 올리비아의 구멍 안으로 다급하게 쑤셔 넣었다.

“웃!”

빠른 삽입에 억눌린 신음을 흘리는 올리비아의 골반을 잡고 에이든은 제대로 파고들었다. 뿌리 끝까지 삽입하자 꾸물 조여드는 감촉이 역시 달랐다.

이 좋은 것을 참았다니, 에이든은 제 어리석음에 화가 날 지경이다. 어떻게 이렇게 좋을 수 있을지 놀라울 정도로 올리비아의 안은 늘 황홀했다. 가장 깊은 곳에 성기를 쑤셔 넣은 에이든은 재촉하듯 압박하는 내벽에 한 번 허리를 크게 짓쳐 넣으며 사정했다.

“윽, 진짜 최고야…….”

단지 넣고만 있을 뿐인데 제 손으로 힘껏 조이는 것보다 아득한 쾌락에 에이든의 허리가 느리게 유영했다. 조금이라도 더 달콤함을 맛보고 싶어서 하는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그 정돈 받아 주겠다는 건지 올리비아도 얌전히 사정을 마치길 기다렸다. 두 번째 사정임에도 쏟아지는 정액의 양은 많았다.

울컥이며 제 몸 안에 쏟아지는 정액을 받아 내는 올리비아의 양 뺨은 붉게 달아올랐고 눈동자엔 기이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음란함의 불꽃이 피어오른 것 같아 에이든은 느릿하게 허리를 돌렸다.

마찰되며 피어오르는 찌릿함에 에이든은 멈추지 못했다. 그러자 젖은 두 성기의 마찰로 쿨쩍이는 음란한 소리가 퍼졌다. 순간 올리비아의 내벽도 노골적으로 움찔움찔 떨렸다.

‘흥분했구나!’

씨발, 사정만 하고 빼려고 했는데 올리비아가 반응하니 다시 설 것 같았다. 두 번이나 사정했음에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마지막 행위가 자위였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 조임을 아는데, 자위로 만족이 되겠냐고. 아니면 이렇게 물어 대질 말던가.

“올리비아, 여기 완전 더 해 달라고 난리인데 제대로 할까?”

에이든은 성기를 살짝 뺐다가 밀어 넣으며 물었다.

“……웃, 아니요.”

잠시 갈등의 눈빛을 보내던 올리비아가 잔인하게 거절했다. 아둔한 주제에 이럴 땐 단호했다. 하지만 에이든은 포기하지 않고 뭉근하게 엉덩이를 흔들어 올리비아가 좋아하는 곳을 자극했다. 이젠 내벽이 아예 경련하듯 떨렸다.

“정말 아니야? 지금 얼른 쑤셔 달라고 내 물건 물어뜯고 난리 났는데?”

발갛게 달아오른 뺨으로 눈동자만 데굴데굴 굴리던 올리비아가 작지만 단호하게 거절했다.

“안 돼요. 지금 말고 밤에 해요.”

독하다 독해. 아직은 잠자리를 적극적으로 즐길 정도가 아니라서 그런가, 올리비아의 생각엔 변함이 없었다. 올리비아가 먼저 성욕에 물들어 해 달라고 조를 정도로 얼른 더 제대로 길들이든가 해야지.

여기서 더 자극한다고 올리비아의 마음이 변할 것 같지는 않아 에이든은 부루퉁한 얼굴로 성기를 뽑아냈다. 더 해 봤자 혼자 달아올라 본인만 더 힘들 걸 안 탓이다. 입구를 막고 있던 물건이 빠지자 페니스에 엉켜 흐르는 것 말고도 벌어진 입구 사이로 정액이 흘렀다.

에이든은 재빨리 흐르는 정액을 손가락으로 쓸어 다시 올리비아의 안으로 집어넣었다.

“기껏 안에 싸 줬더니 왜 질질 흘려? 아깝게.”

“으응, 그냥 흐르는데…….”

“그냥 흐르는 게 어디 있어? 네가 제대로 안 조이니까 그러지. 내 물건은 잘만 물더니 왜 이렇게 벌어졌어?”

손가락을 빼내면 다시 흘러나와 몇 번이고 쓸어 넣었다. 그래도 계속 흘러나와 에이든은 희고 포동포동한 엉덩이를 아프지 않게 때렸다. 짝 소리에 맞춰 안쪽이 꾹 다물리며 손가락을 물었다.

“그래, 이렇게 힘줘야 안 흘리지. 잘하면서 왜 그래?”

몇 번 손가락을 쑤시듯 움직이니 확실히 아까와 다른 조임이었다. 올리비아가 애처롭게 표정을 찡그렸다. 에이든이 손가락을 완전히 빼내자 그제야 흐르는 게 없었다.

“힘든데요.”

올리비아가 불만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잔뜩 아랫배에 힘을 준 게 안쓰러워 보이긴 하지만 저렇게 다 흘려 버리면 기껏 깊숙한 곳에 싸 준 보람이 없지 않은가.

임신할 때까진 최대한 오래 제 씨물을 품고 있어야 했다. 사실 에이든이 올리비아를 끊임없이 탐하는 이유는 임신시키기 위해서였다. 올리비아가 얼른 자신의 아이를 품길 바라서 가장 깊숙한 곳에 시도 때도 없이 사정하는데, 아직까지 소식이 없었다. 올리비아가 너무 말라서 그런 건가 싶어서 잘 먹였다.

또 다른 이유로 행위가 너무 격렬해서 그런 건가 싶어서 자제하면서 해 봐도 임신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지. 지금보다 더 많이 쌀 수 있도록 노력해야지. 에이든은 굳세게 다짐했다.

“흘리지 않게 조심해.”

마지막까지 욕심을 지우지 못한 에이든은 올리비아에게 경고하며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

드디어 두 발로 제대로 서게 된 올리비아가 느슨한 한숨을 쉬었다. 허리가 욱신거려 주먹 쥔 손으로 허리를 콩콩 두드렸다. 한 번만 했어도 자세가 힘들었던 탓인지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래도 끝난 게 어딘가. 끈질기게 지분거리는 도련님치고는 빠른 물러섬이라 올리비아는 안도했다.

에이든은 올리비아와 자리를 바꿔 방금 전까지 그녀가 누워 있던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옷을 추스르지 않아 분비물이 묻은 성기를 그대로 드러내 놓은, 뒤처리할 생각은 조금도 하지 않는 방만한 자세였다.

그 난잡한 모습으로도 에이든의 미모는 가릴 수 없었다. 오히려 정사 후의 살짝 내리깐 눈과 느슨하게 풀린 입술 끝이 관능적으로 보였다. 눈이 마주치는 순간 공기 중에 떠도는 묘한 야릇함. 계속 시선을 마주 보고 있으면 한입에 꼴깍 잡아먹혀질 것 같은 기분.

올리비아는 긴장감에 침을 삼켰다. 도련님의 말씀대로 다리 사이에 잔뜩 힘을 주고 있음에도 무언가 주룩 흐르는 느낌이다. 이미 한 차례 욕구를 채웠으면서도 도련님은 더 하고 싶다는 듯한 탐욕스러운 시선이었다.

올리비아는 본능적으로 에이든 도련님의 눈을 피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끈적이는 액체로 뒤범벅인 도련님의 성기를 닦았다. 젖은 수건이 아니라 깔끔하게 닦이지 않았다.

“음, 됐어. 할 일 많다며.”

에이든의 목소리는 퉁명스러웠다. 딴에는 더 하고 싶지만 너 때문에 참는 거야, 라는 신호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 속에 담긴 뜻을 읽지 못했다.

방금 한 말을 정말 됐다는 소리로 알아들었다. 닦는 걸 멈추고 에이든의 바지를 정리했다. 그리고 치마 안쪽으로 손을 넣어 제 다리 사이를 대충 훔치고 바닥에 떨어진 속옷을 찾아 다리에 꿰었다.

할 일은 제대로 못했는데 도련님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고 말았다. 서둘러도 저녁 전까지 오늘 치 일을 마치기 빠듯했다.

“저 그럼 일하러 가 볼게요.”

그렇게 말한 올리비아는 에이든이 답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나가 버렸다. 남은 에이든이 황망할 정도로 재빠른 움직임이었다. 키스라도 해 주고 가지. 꼭 잠자리 후 버림받은 것 같지 않은가.

올리비아가 원래 그런 성격이란 걸 알지만 섹스 후 미련 없이 홀랑 나가 버리는 행동에 에이든은 가끔 서운했다. 하지만 화내서 뭐 하리. 올리비아는 아무 생각도 없을 텐데. 에이든은 허탈한 웃음만 흘렸다.

에이든이 소파에 기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올리비아가 앞에 있으면 정신이 없어서 안을 땐 모르지만 막상 행위가 끝나고 나면 피곤하긴 했다.

“진짜 발정 난 짐승 새끼도 아니고 조금 자제하면 안 됩니까? 지켜보는 사람도 생각해야지요.”

에이든이 막 눈을 감고 쉬려는 찰나, 불쾌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들렸다. 훼방꾼의 등장에 에이든은 신경질적으로 눈을 떴다. 가만히 내버려 뒀더니 저놈은 갈수록 깐죽거림이 커졌다.

“관음증 있어? 뭘 훔쳐봐?”

“제가 훔쳐보고 싶어서 훔쳐봤습니까? 제가 있는 거 뻔히 알면서 하녀의 치마를 들춘 사람이 누굽니까?”

케일럽은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하지만 상대는 에이든이었다.

“들춘 거 봤으면 뭘 할지 알아차려야 하고, 알아차렸으면 알아서 자리를 비키면 되지. 그렇게 눈치가 없어서 호위 기사 하겠어?”

부끄러움 따위는 세상에 없다고 생각하는 뻔뻔한 성격을 가진 에이든 말이다.

“호위 기사라서 붙어 있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케일럽이 답답하다는 듯 외쳤다. ‘나도 남의 성생활을 보고 싶지 않다고!’라는 케일럽의 간절한 마음과 다르게 에이든에게 그는 그저 관음꾼일 뿐이다. 억울해하거나 말거나, 관심 없으니까 꺼지라고 하고 싶지만 에이든은 필요한 게 있었다.

“이 저택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읊어 봐.”

‘댁이 발정 난 개새끼처럼 하녀와 시도 때도 없이 붙어먹은 것 말입니까?’

케일럽은 격한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런 천박한 말을 떠올린 스스로가 싫었다. 자신은 완벽한 기사였는데 갈수록 에이든과 수준이 비슷해지는 것 같아서 짜증 났다.

그리고 어차피 케일럽이 지적해 봤자 에이든은 꿈쩍도 안 할 거니까 말해 봤자 입만 아프다.

“저택 사람들 동향 말입니까?”

“그래. 지금처럼 엉큼하게 훔쳐보고 있을 거 아니야.”

‘네가 물어볼 걸 아니까 훔쳐보는 거 아니냐!’

케일럽은 또 속으로 발끈했다. 그는 긍지 높은 기사였다. 실제로도 기사단에서 유능하다 칭송받았고 그만큼 스스로가 기사임에 엄청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몰래 잠입해서 정보를 수집하는 건 그의 업무가 아니었다.

하지만 에이든 때문에 자꾸 잠입하고 몰래 훔쳐보는 일을 하게 된다. 에이든의 호위가 된 후부터 검술 실력보다는 발끈하는 마음을 다스리는 인내심과 잠입 실력만 늘어 가는 것 같았다. 이러다가 직업을 전향하겠다.

물론 최근 진짜 정보원들을 충원받아 이제 더는 잠입 실력이 늘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어쨌든 케일럽은 점차 기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어 가는 것 같아 위기감을 느꼈다.

“언제까지 생각할 거야? 아는 거 없어?”

에이든의 다시 이어지는 질문에 케일럽은 상념에서 깨어나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형님이란 분이…….”

“누가 형님이야?”

말을 자르고 들어오는 신경질적인 에이든의 음성에 케일럽은 재빨리 단어를 수정했다.

“백작가의 첫째 도련님이 큰 거래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이건 지적할 마음이 없는지 치솟던 에이든의 눈썹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래도 불만으로 꿈틀거리는 에이든의 표정을 확인하며 케일럽은 말조심할 것을 다짐했다.

“무슨 거래?”

“야만족과 식량 거래를 한답니다.”

“부족한 식량을 얻을 수 있을 테니 난리가 났겠군.”

콜린스 백작가의 영지는 입지가 좋지 못했다. 왕국의 수도와 멀리 떨어져 있었고, 토지는 식물을 키우기 적합하지 않아서 자체적으로 식량을 수급하기 힘들었다. 그렇다고 바다가 인접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여러모로 영지를 발전시키기 힘든 위치였다.

영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 비옥한 토지가 널려 있지만 안타깝게도 그곳은 왕국의 영역이 아니었다. 왕국 사람들이 미개하다 여기는 야만족들의 영토.

그곳에선 씨를 뿌리기만 해도 식물이 쑥쑥 자라 식량이 넘쳐 나도록 생산되었다. 하지만 야만족들은 쉽사리 타국과 교역을 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월등한 신체 능력을 가져서 전쟁으로 토지를 빼앗는 것 또한 쉽지 않았다. 왕실에서 대대적으로 도와줘 야만족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할 게 아니라면 백작가로선 비옥한 토지를 얻을 방안이 없었다. 그러던 차에 야만족과의 거래 소식이라니?

백작가로선 식량난을 해소할 수 있다는 천금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자연스럽게 그 거래를 성사시킨 ‘백작가의 도련님’의 위명이 높아질 수밖에.

그렇게 보면 정말 빌어먹을 영지다. 땅 구석이 워낙 척박해 작물도 키울 수 없어, 그렇다고 광물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게 아니면 유명한 특산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뭐 하나 돈이 나올 구석이 없는 거지 같은 영지였다. 말 그대로 가난하고 쓸모없는 영지.

이것도 영지라고 애지중지하는 꼴을 보면 에이든은 같잖았다. 이따위 영지, 그였다면 진작 팔아 치웠을 거다. 그리고 그걸로 돈이 되는 투자를 했겠지.

에이든은 영지에 도움이 되는 일은 조금도 할 생각이 없었다. 이 백작가 사람들에게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영지민들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도 없었다. 이미 에이든은 백작가를 조금도 자신의 가족이라 여기지 않았기에 모든 감정을 털었다.

어차피 떠날 생각인데 남에게 좋은 일 시켜 줄 필요는 더더욱 없지 않은가. 하지만 올리비아가 저렇게 서운해하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 영지에 좋은 일은 더럽게 하기 싫지만. 올리비아를 위해서라면 못할 게 없지.

“그럼, 이 일로 놈에 대한 평판이 얼마나 달라졌지?”

“백작가에서 의도적으로 소문을 퍼트리고 있습니다. 덕분에 주변 귀족들과 영지민들의 첫째 도련님에 대한 인식이 모두 좋아졌습니다.”

왜 다급하게 소문을 퍼트리고 다니는지를 깨달은 에이든이 비죽 입매를 비틀었다. 자신이 돌아와서 그렇다. 후계자 자리가 위협받을까 봐. 굴러들어 온 돌이 박힌 돌 빼낼까 봐 용을 쓴다. 따지고 보면 저쪽이 굴러들어 온 돌이면서.

“편지 하나 전할 수 있지?”

에이든이 검지 하나만 세워 손가락을 위로 들어 보였다. 그 의미를 알아챈 케일럽의 표정이 뚱해졌지만 답만은 착실히 내놓았다.

“가능합니다.”

“편지지와 펜.”

물건을 대령하라는 에이든의 오만한 명령에 케일럽은 치를 떨면서도 행동에 옮겼다. 에이든은 슥슥 요구 사항을 빠르게 적어 케일럽에게 건넸다. 밀봉하지 않은 상태 그대로 편지지만 건네는 행동에 케일럽의 표정이 또 일그러졌다.

“이거 읽어도 되는 겁니까?”

그분에게 보내는 거면서 왜 밀봉도 하지 않고 주냐는 의미였지만 에이든은 대수롭지 않게 굴었다.

“읽어도 돼. 어차피 알게 될 사실인데 뭐.”

허락을 받자마자 케일럽은 편지 내용을 재빠르게 훑었다. 그분이 총애하는 놈인 건 알지만 그걸 믿고 또 어떤 건방진 부탁을 하려는 건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에이든이 요청한 걸 확인한 순간!

“이, 이걸 해 달라는 겁니까?”

케일럽은 이 편지는 도저히 보낼 수 없다는 듯 품에 안고 버럭 외쳤다. 사실 그가 모시는 분에게 에이든의 요구는 엄청 힘든 일은 아니었다.

이미 권력의 정점에 서신 분인데 무언들 못할까. 다만, 케일럽은 그분이 에이든에게 이런 혜택을 주는 게 너무 싫었다. 옹졸한 마음이라 해도 할 수 없었다.

이건 차별이었다. 저렇게 제멋대로 사는 에이든도 얻을 거 다 얻으며 편하고 좋게 사는데, 자신 같은 충성스럽고 청렴한 기사는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오히려 정규 기사 업무에 주어지는 각종 수당도 받지 못하고, 저런 무도한 사람의 뒤치다꺼리나 하고 있었다.

어쩐지 손해 보는 느낌이다. 바르게 사는 게 더 불합리한 일 같았다. 최근 케일럽이 진지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걸 떠나서 어쨌든 에이든이 이런 걸 받는 게 싫었다.

“너무 과한 요구 아닙니까!”

케일럽의 외침에 에이든은 그를 향해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걸 판단할 사람은 네가 아니지.”

어차피 결정은 위에서 하는 것, 이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에이든을 보며 케일럽은 부릅떴던 눈을 허물어뜨렸다.

눈물이 차올라 습기 찬 눈으로 구겨진 편지를 최대한 반듯하게 폈다. 모시는 분에게 이런 상태의 편지를 올릴 수 없어 구김을 없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주섬주섬 편지 봉투에 넣어 밀봉했다. 거기까지 하고도 미련을 버리지 못한 케일럽은 다시금 에이든을 한번 쳐다봤다.

“정말 이걸 보내야 합니까?”

케일럽은 최대한 호소력 짙은 그렁그렁한 눈빛을 보냈다. 그 가련한 모습을 보며 에이든은 화사한 미소를 돌려주었다.

“보내.”

세상이 무너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케일럽을 뒤로하고 에이든은 생각에 잠겼다. 이왕 얻어 낼 것 좋은 것을 얻어야 했다. 특히, 그놈이 해낸 것보다 훨씬 더 좋은 걸로. 그래야만 올리비아가 기뻐할 테니까.

케일럽은 창문으로 걸어가 손짓했다. 신호가 끝나기 무섭게 눈을 빼고 온통 검은색인 잠행복을 입은 사람이 소리 없이 내려앉았다. 에이든이 하도 자질구레하게 시키는 일이 많아 따로 요청했던 정보원이었다. 케일럽은 서글픈 표정으로 정보원에게 편지를 건넸다.

“전달해 주십시오.”

편지를 받아 돌아가려던 정보원은 멈칫했다. 적당히 힘을 줘도 편지지가 제 손에 온전히 떨어지지 않았다. 케일럽이 손가락에 힘을 주고 버티는 거였다. 정보원이 무슨 짓이냐고 의아하게 봤지만, 케일럽은 더욱 서글픈 표정으로 편지지를 바라볼 뿐이었다. 끝까지 손가락 끝에 힘을 빼지 않으며 에이든이 올리비아에게 질척이는 것보다 더 구질구질하게 굴었다.

하지만 잠행인도 만만치 않은 성격이었다. 그는 손에 살짝 힘을 빼서 케일럽이 방심하게 만들고 그 틈을 찾아 잽싸게 편지를 빼앗듯 가져갔다. 아차 하는 순간 손에서 놓친 편지를 케일럽이 안타깝게 바라봤지만 잠행인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그런 케일럽의 구질구질한 모습이 보기 싫어진 에이든이 외쳤다.

“그만 질질 짜.”

“안 울었습니다.”

눈물은 그렁그렁하지만 흐르지는 않았기에 에이든은 케일럽의 말꼬리를 잡지 않았다. 그저 혀를 찼다.

“줄지 안 줄지도 모르는데 왜 벌써부터 그래?”

“당연히 주실 것 아닙니까.”

또 이런 면에선 이성적이란 게 웃겼다.

‘아니지. 받을 걸 아니까 저렇게 싫어하는 건가?’

에이든은 고개를 외로 꼬았다.

“내가 뭘 얻는 게 그렇게 배 아파?”

“당연히 배 아프지 안 아프겠습니까? 전 이렇게 누구 뒤치다꺼리하며 월급은 쥐똥만큼 받는데, 그쪽은 편지 하나로 엄청난 혜택을 받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윗분의 편애가 부러운 것보다 그 편애의 결과로 얻는 부산물이 부러웠던 거군. 에이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케일럽은 보면 볼수록 참 웃기는 놈이라 생각되었다.

소속이 달라서 저리 깝죽거리는 줄 알았는데 성격인가 보다. 적당히 속물적인 성격이 싫은 건 아니었다. 도리어 딱딱한 기사도를 외치는 놈보다 저런 성격이 훨씬 나았다.

“내가 적당히 챙겨 줄게.”

“……정말이십니까?”

이렇게 협상의 여지도 있고. 에이든은 빙긋 웃음을 지었다.

“나 이런 거로는 거짓말 안 해.”

“충성을 바치진 못해도 성의는 보이겠습니다.”

고민의 여지도 없이 케일럽이 진지하게 대답했다. 뻔히 보이는 반응에 에이든은 키득거렸다.

처음 호위 기사라고 케일럽을 소개받았을 때 오래 함께할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케일럽이 그를 호위하는 건 이곳에 머물 때뿐이라 들었다. 임시직이기 때문에 에이든도 케일럽의 행동을 크게 강제하지 않았다. 어차피 제자리로 돌아갈 사람이라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는데, 케일럽은 꽤 재밌는 인물 같았다.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는데.”

“무엇이 말입니까?”

별로 중요한 사항은 아니지만. 어쩐지 케일럽의 태도가 조금 공손해진 것 같았다.

“아까 그놈이 켈타족이랑 거래를 성공했다고 그랬지?”

“켈타족이요?”

“아까 야만족이라 불렀던 이들. 제대로 부르면 켈타족이야.”

야만족은 왕국에서 켈타족을 낮잡아 부르는 말이었다. 하지만 대다수의 왕국 사람들의 생각처럼 켈타족은 미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제대로 가지고 있었다. 타인의 독특한 문화성을 존중하지 못하고 누군가를 낮잡기 위해 쓰는 단어는 사용하지 않는 게 맞았다.

에이든의 설명에 케일럽의 눈동자에 네가 그런 것도 알아? 하는 의외의 기색이 떠올랐다. 그러다 에이든의 시선과 마주치자 화급하게 눈을 피했다.

“네. 거래에 성공했다고 들었습니다.”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말입니까?”

케일럽은 그 거래가 이상하단 걸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켈타족은 말이야. 외부와의 교류를 엄청 싫어한단 말이지. 거래 이야기를 꺼내려던 전령이 위협받은 적도 있다고.”

“그 정도였습니까?”

케일럽은 이 지역 토박이가 아니니 켈타족의 배타성을 모를 만했다.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지키기 위해서인지 그들은 굉장히 폐쇄적이었다. 게다가 자급자족이 충분히 가능한 이들이라 교역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 이들이 갑자기 거래를 하기로 했다? 무언가가 있었다.

“그동안 거래 불가를 소리 높여 외치던 이들이 왜 갑자기 거래를 하겠다고 했을까?”

“아……. 야만, 켈타족 쪽에서 무언가 찾는 게 있다는 것 같습니다.”

에이든의 날카로운 눈빛에 케일럽은 잽싸게 야만족을 부르는 호칭을 바꿨지만, 결국 에이든의 짜증을 정면으로 받아야만 했다.

“그런 이야기를 먼저 해야지!”

아니, 이 집안이 잘되든, 망하든 신경 쓰지 않을 거라면서 그게 왜 중요하단 말인가. 그리고 호위 기사인 자신이 그런 것까지 챙겨야 한단 말인가! 케일럽은 속에서 올라오는 불만을 꾹꾹 눌렀다. 물론 에이든은 케일럽이 불만 어린 표정을 짓든 말든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들이 찾는 게 뭐래?”

“알 수 없습니다.”

“뭐?”

케일럽의 딱딱한 대답에 에이든이 의문 어린 목소리를 냈다. 정말 모르는 거냐, 알아보지 않은 거냐를 묻는 태도에 케일럽은 짧게 덧붙였다.

“그건 거래를 한 당사자인 첫째 도련님도 모를걸요?”

거래인데, 거래 내역을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에이든의 상식으론 이해할 수 없었다.

“모른다고? 도대체 거래가 어떻게 이루어진 거야?”

“뭘 찾아 달라는 게 아니라 찾는 데 협조하기로 했답니다. 통행증 발급과 영지에서 마찰이 일어날 시 살짝 무마해 주는 선으로요.”

케일럽의 설명을 다 들은 에이든은 헛웃음을 흘렸다. 추상적인 거래는 어디로 어떻게 튈지 모르는 거였다. 막상 도와주기로 했는데, 켈타족이 찾는 것이 그냥 넘겨주기 힘든 중요한 것이면 어떡하려고 그러는가? 가령 국가의 보물이라든가, 고위 귀족의 목숨이라든가.

이런 뒷일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식량을 얻기 위해 무작정 거래한 것 같았다. 데이빗이 사고를 쳤으면 그걸 다른 사람이 말려야 할 텐데 그마저도 없었다. 쯧쯧, 이놈의 영지는 머리 쓸 줄 아는 사람도 없나 보다.

“거래 참 거지같이 했네.”

계약 시 세부 사항을 잘 적었다면 모르겠지만 과연 그런 걸 했을까 의문이다. 그저 불가능이라 불리던 일을 해낸 ‘업적’이 필요했겠지. 자신을 경계하느라 제대로 따지지도 않고 부랴부랴 일을 처리했을 것 같았다.

모르겠다. 남이 거래를 잘했든 망쳤든 신경 쓸 일도 아니고. 설혹 영지에 무슨 일이 생기면 일이 커지기 전에 이곳을 튀면 된다. 백작가가 져야 할 책임을 에이든은 가볍게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쪽은 무시할 수 없었다. 왕국 사람들이 야만족이라 비하하며 켈타족을 무시하지만 그들의 저력은 그렇게 가볍게 넘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초원을 질주하며 야생과 가까이 사는 이들이기에 그들의 전투 능력은 무시할 수 없었다. 왕국민들과 기본적으로 가진 신체 능력이 달랐다.

괜히 왕국에서 그들을 야만족이라 비하하며 거리를 두게 만들었겠는가. 오히려 쓸데없는 충돌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런 짓을 저지른 거다.

직접 찾아가 깽판 치듯 거하게 시비를 걸지 않는 이상 켈타족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자신들의 평화를 위해 차분한 점이 그들의 성향이었다. 그렇게 성질을 죽이며 웅크리고 있던 자들이 움직이게 만들 정도의 일이라…….

“역시 신경은 쓰이니까. 켈타족이 원하는 게 무언지 좀 찾아봐.”

“알겠습니다.”

에이든의 명령에 케일럽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선선히 대답했다. 아니면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아하니 아까 말한 ‘적당히 챙겨 준다’의 영향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른 건 뭐 없어?”

에이든의 질문에 케일럽이 멈칫했다. 실은 아까부터 보고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인 일이 있었다. 상황을 보면 보고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또 보고를 하면 에이든이 상황을 더 크게 만들 것 같았다.

백작저에 예상치 못한 거물 손님이 도착했다. 절대 이곳에 있어선 안 되는 인물이었다. 그에 대해 에이든에게 보고하면 하녀 한 명 데리고 조용히 떠나려던 계획은 틀어질 거였다.

케일럽은 처음 이곳에 올 때의 계획대로 적당히 안전하게 에이든의 호위만 하다 돌아가고 싶었다. 예상외의 상황에 갑자기 계획이 변경되는 건 사양이었다.

그 손님과 에이든이 만날 일이 없어 보이니 지금 보고하지 않으면 진짜로 없었던 일이 될지도 모른다.

“없습니다.”

잠시 고민하던 케일럽은 모른 척하기로 했다.

“정말 없어?”

“네. 정말 없습니다.”

케일럽의 멈칫거림을 본 에이든이 되물었지만 그는 단호하게 답했다. 에이든을 보며 케일럽은 최근 절실하게 깨달았다. 세상은 편하게 사는 게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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