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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녀 애니. (3/19)
  • 2. 하녀 애니.

    다음 날도 올리비아의 일상은 별채 청소로 시작되었다. 먼지를 터느라 뒷전으로 미뤄 놓았던 빨래부터 해야 했다. 새벽이라 빨래를 하긴 춥지만 지금 시작해야 햇볕이 제일 좋은 정오에 빨랫감을 널 수 있을 테니까.

    갈가리 찢겨 도저히 다시 사용하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은 제외하고, 쓸 만한 것을 골라 고용인들이 머무는 건물 뒤의 빨래터로 향했다. 상태가 나쁜 물건이 많아 나중에 모자라지 않을까 걱정이다.

    백작가 정도 크기의 저택엔 빨래 담당 하녀들이 따로 있었다. 하지만 올리비아는 그들에게 부탁하지 못했다. 같은 하녀조차도 올리비아를 싫어했다. 왜 싫어하는지 이유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부터 받아 온 냉대에 익숙한 그녀는 까닭을 알 생각조차 없었다. 말해 봤자 들어주지 않으니 그냥 직접 해 왔다. 규모가 있는 가문은 원활한 일의 진행을 위해 전부 분담해서 자신이 맡은 일만 했다. 하지만 자신의 편이 없는 올리비아는 뭐든 혼자 해야 했다.

    빨래터에는 마법 수도관이 있어 물은 금방 받을 수 있었다. 다만, 뜨거운 물을 사용하기 위해선 직접 덥혀야 했다. 이곳에서 솥은 두 개고 이는 전부 빨래 담당 하녀들이 사용하고 있었다.

    올리비아가 빨래를 들고 다가오자 몇몇이 그녀가 솥에 다가가는지 흘끔흘끔 주시했다. 정확히 솥이 하녀들의 소유물은 아니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물을 받고 장작을 지펴 끓여 낸 것이다. 그런 것을 허락 없이 사용하는 것은 누구나 싫어했다.

    “안녕하세요, 저 뜨거운 물 좀 사용해도 될까요?”

    이미 빨래를 하고 있던 빨래 담당 하녀에게 다가가 공손히 인사한 후 물었다. 올리비아의 등장에 흘긋 보고 아는 척도 하지 않았던 하녀가 새치름하게 물었다.

    “무슨 빨랫감이 그렇게 많아?”

    “별채 청소를 맡아서요.”

    올리비아의 입에서 나온 별채 청소 이야기에 빨래 담당 하녀들이 ‘뜬금없이 별채 청소?’라는 황당한 얼굴을 했다가 ‘쯧, 또 무슨 실수를 했길래. 그런 처벌을 받니?’로 바뀌었다.

    종종 그녀가 실수한 벌로 자질구레한 일이나 창고 청소를 했기에 그러려니 했다. 아직 도련님의 귀환 소식을 모르는 이들은 또 벌 청소를 한다 여기는 거였다. 올리비아 일에 신경을 쓰는 것만큼 덧없는 일도 없다고 생각하는 하녀들이었다.

    “써도 되는데, 뒷사람을 위해 다시 물은 채워 놔. 장작도 좀 채워 넣고.”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빨래할 때 더러운 물 안 튀게 조심하고!”

    “네! 신경 쓸게요!”

    뜨거운 물 사용이 안 된다고 하면 어쩌나 걱정하던 올리비아가 손쉬운 허락에 환하게 답하고 뜨거운 물을 뜨기 위해 솥으로 향했다. 사실, 이들에겐 전적이 있었다.

    빨래 담당 하녀가 올리비아를 골탕 먹이려고 일부러 뜨거운 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었고, 덕분에 빨래를 깨끗하게 하지 못한 올리비아는 하녀장님께 혼쭐이 났었다.

    또 그런 일이 있을까 봐 긴장하고 있던 올리비아는 선뜻한 허락에 종종종 뛰어다녔다. 예전에 그 일을 눈치챈 하녀장님에게 혼쭐이 났었던 빨래 담당 하녀들이 그냥 들어준 것이지만, 이를 모르는 올리비아는 모든 게 잘되는 것 같았다.

    요즘 운이 좋았다. 카밀라 하녀님도 물품을 쉽게 내주시고, 뜨거운 물 사용 허락도 이리 빠르다니! 올리비아는 정말 소박한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었다.

    즐거움을 뒤로하고 올리비아는 커다란 들통에 커튼을 넣고 데지 않게 조심하며 뜨거운 물을 퍼다 날랐다. 들통에 자작하게 물이 차자 한쪽에 마련된 세제를 넣었다. 작년에 새로 나온 물건인데 묵은 때가 얼마나 훌륭하게 지워지는지, 처음 이것을 들여왔을 때 빨래 담당 하녀들이 극찬했다.

    물론 빨래를 자주 하는 올리비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건 허락 없이 사용할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의 빨래를 직접 하니 다른 사람들도 세제의 사용은 묵과했다.

    묵은 때가 불 동안 마법 수도관에 가서 물을 받아다가 솥을 채웠다. 물통이 작아 여러 번 왔다 갔다 해야 했다. 물이 차자 다시 뚜껑을 닫고 장작을 가져다가 불씨에 넣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인다고 해도 무거운 물을 나르니 꽤 시간이 지났다. 들통에 넣었던 세제가 녹아 빨랫감에 묻은 땟국물이 나왔다. 뜨거운 물이 살짝 식은 것을 확인하고 올리비아가 신발을 벗었다.

    치마를 걷어붙이자 희고 가느다란 종아리가 밖으로 드러났다. 부실한 식단 탓에 살이 찔 틈이 없었고 바지런히 일로 단련되어 군살 하나 없이 매끈했다. 살랑이는 몸짓도 아닌데 요염한 자태였다. 남자들이 보았다면 군침을 삼켰을 터인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곳엔 여자뿐이었다.

    올리비아는 들통 안에 들어가 발을 움직였다. 물이 통 바깥으로 튀지 않게 주의하며 꼼꼼하게 밟았다. 넣어 두었던 세제가 섞이며 거품이 생겨났다. 회색빛으로 물들었던 천도 제 색깔을 내기 시작했다.

    묵은 때임에도 예전에 비해 쉽게 빨래가 되는 것 같았다. 역시 이 세제는 하녀들의 삶을 편하게 해 주는 신개념 물건이다.

    하릴없이 반복적으로 발을 놀리다 보니 올리비아는 어제의 일이 번뜩 떠올랐다. 낯선 침입자와의 만남. 그의 잡아먹을 거라던 무시무시한 경고. 그게 무서워 올리비아는 결국 아무에게도 남자에 대해 말하지 못했다.

    집사님에게 침입자가 있었음을 당연히 고해야 함에도 말이다. 다행히 누구도 그녀를 신경 쓰지 않아 굳이 물어보는 사람도 없었기에 비밀을 지키기엔 수월했다.

    남자를 떠올리다 보니 마지막에 볼에 한 입맞춤까지 생각났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왜 그런 행동을 했을까?’

    남의 뺨을 조심스럽게 매만지기도 했다. 올리비아가 누군가와 그런 친밀한 행위를 한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이따금 귀여워해 줬을 때 빼고는 없었다. 다들 올리비아를 싫어했고, 무슨 더러운 물건처럼 거리를 두려 했다.

    타인과의 가까운 접촉은 낯설면서 설렜다. 뺨에서 따스했던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괜스레 올리비아의 얼굴이 빨갛게 변했다. 그러고 보니 남자가 허락도 없이 입을 맞추고 껴안았다.

    그런 걸 뭐라고 하더라? 무례하다. 맞다, 그 남자는 무례했다. 그리고 무례한 남자가 한 행동을 뭐라고 그랬더라? 분명히 같은 방 하녀들이 말했는데.

    ‘어? 그렇구나! 강간! 나 강간당한 거구나!’

    올리비아는 뒤늦게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충격에 빠졌다. 세상에 낯선 남자에게 강간당하고 하룻밤이 지나도록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얼마나 멍청했단 말인가! 아무리 무지한 올리비아도 여자와 남자가 유별하다는 것은 안다. 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함부로 접촉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여자를 희롱하는 나쁜 사람에게 화내지도 못했다. 하녀들에게 바보, 바보 소리를 듣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아둔했다니.

    올리비아는 주먹으로 제 머리를 때렸다. 그걸 보고 빨래 담당 하녀들이 멍청함이 지나쳐 미친 거 아니냐고 수군거렸지만 생각에 빠진 올리비아는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런데 강간당한 게 맞긴 한가? 아닌가?’

    들었던 것과 다른 것 같아 문득 의문이 들었다. 올리비아는 워낙 타인과 접촉이 적었던 탓에 모든 점에 경험이 부족했다. 특히 하녀라는 신분 때문에 따로 성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즉, 그녀의 지식은 다른 하녀들의 수다에서 얻은 것이었다.

    하녀들은 여러 명이 한 방을 사용하는 공동생활을 했다. 보통 일과에 지쳐 잠들기 바빠 수다를 많이 떨지 않지만 여러 명이 모여 함께 잠드는데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과년한 처자들의 대화에 이성에 대한 내용이 빠질 리가 없었다. 일만 하는 하녀들에게 잠자리만큼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주제는 찾기 힘들었다. 누군가 경험을 하면 그것을 거리낌 없이 풀어냈고 다들 그렇게 성경험에 대해 배워 나갔다.

    올리비아는 하녀들의 대화에 같이 참여하지는 못 해도 침대에 누워서 잠든 척하며 주워들을 수는 있었다. 아니, 듣고 싶지 않아도 좁은 공간에 같이 있으니 들을 수밖에 없었다.

    저택에 손님이 왔던 어느 날 밤.

    같은 방을 쓰는 애니가 밤늦게 불려 갔다 두어 시간 뒤에 돌아왔다. 늦은 밤임에도 씻고 나온 듯 머리카락은 젖어 있었고, 두 눈은 상기되어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방금 정사를 치르고 온 야릇함이 흘러나왔다. 아까 애니를 보던 손님의 심상치 않았던 표정을 기억한 다른 하녀는 상황을 전부 알아챘다.

    애니는 본채 하녀들을 돕는 일을 해 윗사람 눈에 띄기 쉬운 편이었고, 풍만한 가슴과 도톰하고 선정적인 입술을 가져 요염하게 생겼다. 덕분에 색욕이 강한 사람들의 눈길을 종종 끌었다. 거기다 본인도 그 일을 적극적으로 원했다. 애니는 열두 명이나 되는 같은 방을 쓰는 하녀들 중에서 제일 많은 밤시중을 들었다.

    “어머, 어머! 오늘 온 손님에게 안기고 온 거니?”

    다른 하녀들이 다가가 이야기를 풀어 보라 종용했다.

    “그럼, 당연하지. 이 시간에 나갔다 올 일이 그것밖에 더 있니?”

    “어우야! 역시, 애니야. 어디 이야기 좀 해 봐.”

    하녀들이 흥미를 보이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은 애니는 조금 전 겪은 경험을 농염하고 자극적이게 풀어냈다.

    “아아, 확실히 젊으니까 조금 낫더라. 그래서 그런가? 이번 귀족 나리가 얼마나 엉큼한지.”

    “꺄아!”

    애니의 솔직한 고백에 경험이 있는 하녀든, 없는 하녀든 다들 소리 죽인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화들짝 놀라 서로서로 조용할 것을 당부했다. 밤늦게 수다 떨다 하녀장님에게 걸렸다간 혼도 나고 내일 일이 두 배로 뛴다는 것은 다들 아는 사실이었다.

    “대단했다는 거야?”

    “그래서 어떻게 했어?”

    “아아,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애니의 과장된 목소리에 다른 하녀들이 숨죽여 반응했다. 잠든 척하고 있던 올리비아마저 왜인지 긴장감에 귀를 기울였다.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자 우쭐해진 애니가 본격적으로 음란한 이야기를 꺼냈다.

    * * *

    애니는 백작가를 방문한 무슨 자작이라는 젊은 남자를 조심스러운 눈길로 평가했다. 여기서 ‘젊은’이란 표현은 여태 상대했던 귀족치고 젊다는 것이지 정말 팽팽한 젊은이를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만 한 딸이 있을 늙다리였지만 여태껏 보아 온 손님 중에서는 젊은 편에 속했다.

    그리고 눈가가 붉은 것이 색욕이 강해 보였다. 애니는 오늘 밤 이 남자에게 안기리라 결정했다.

    애니는 자신이 하녀인 점이 너무 싫었다. 태생이라 어쩔 수 없지만 이렇게 평생 허드렛일을 하며 남의 노예로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가 가진 유일한 무기를 이용하기로 했다. 작위를 가진 귀족을 발견하면 거리낌 없이 안겼다.

    남자를 밝히는 것도, 늙다리들의 욕구를 만족시켜야 하는 수치스러운 일을 즐기는 것도 아니었다. 귀족 나리를 꾀어 정실로 들어가겠다는 무모한 생각도 없었다. 그저 남의 몸종 노릇만 벗어나면 되었다. 자신을 첩실로 거둬 작은 집 한 채와 먹고살 정도의 돈만 쥐여 줄 사람이라면 누구나 괜찮았다.

    하녀가 가지기엔 꽤 무모한 욕심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녀를 데려가겠다는 손님이 생길 거라 애니는 굳게 믿었다.

    애니가 손님의 눈에 띄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본채 일을 도왔고 귀족에게 심부름할 때가 많았다. 적당한 귀족을 발견하고 하녀를 도와 차를 나르다가 슬쩍 큰 몸짓으로 주의를 끌면 끝이었다.

    달칵!

    이처럼 실수로 놓친 것처럼 찻잔을 크게 내려놓자 그녀의 존재를 신경 쓰지도 않던 귀족 나리의 눈길이 애니를 향해 쏟아졌다. 그때 양손을 가운데로 모아 마주 잡으며 가슴이 몰리도록 팔로 모은다. 그리고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이는 거다.

    “죄송합니다. 나리.”

    이때 과하게 허리를 숙여선 안 됐다. 적당해야 얼굴과 몸매가 드러나 귀족의 시선을 끌 수 있었다.

    애니는 제 매력을 잘 알았다. 유독 커서 가슴이 두드러져 보이는 몸매에 고양이처럼 올라간 눈매, 섹시한 입술과 어울리는 눈가에 박힌 점 등이 남자를 자극한다는 것도. 같이 배를 맞춘 남자들 전부가 그 부분을 찬양하며 물고 빨아 댔다.

    역시나 이번에도 그녀의 예상대로 귀족 나리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진득하고 욕망 가득한 눈길에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외모를 살핀다는 것에 절로 올라가려는 입꼬리를 애써 내렸다.

    “괜찮다. 그런데 시녀가 아니라 하녀더냐?”

    평민인 시녀와 노예인 하녀는 우선 복장이 달랐다. 그리고 가장 큰 차이점은 발목에 달린 종속의 발찌가 있었다. 애니는 그 두 가지를 전부 가지고 있어 척 봐도 하녀였다. 자작은 전부 알아챘으면서도 의도를 담아 부러 묻는 것이었다.

    “예. 나리.”

    차분한 대답에 귀족 나리의 ‘음’ 하는 목울림이 들렸다. 이때 손님을 접대하고 있던 총관이 나서 준다. 여러 번 있었던 일이라 이제는 쿵짝이 제법 맞았다.

    “천한 것이 이런 실수를 하다니! 얼른 나가 보거라.”

    일부러 총관이 과장되게 말할 때 인사하고 물러난다.

    “자작님 기분 상하셨는지요. 제가 나중에 혼쭐을 내겠습니다.”

    총관이 손님의 비위를 맞추는 척하며 떠보기를 했다. 애니는 최대한 느리게 움직여 작전대로 되었는지 둘의 대화에 주의를 기울였다. 느리게 닫히는 문 사이로 둘의 대화가 들려왔다.

    “아니다. 크게 혼내지 말게. 실수할 수 있지.”

    귀족이 하녀에게 따로 질문하고 실수에 관대하게 구는 경우는 하나뿐이었다. 총관은 속으로 혀를 찼다. 애니의 의도적인 실수에 어떻게 흘러갈지 짐작은 했지만 이렇게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예상대로 흘러갈 줄이야.

    사내새끼들이 조금 반반하다 싶은 계집만 보면 아랫도리 간수를 제대로 못 해서 큰일이다. 그래서 제가 살기 편하지만. 총관은 속에서 올라오는 고소를 숨기며 귀족에게 물었다.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흠, 하녀치곤 쓸 만한 미색이군.”

    빤한 속내에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자작 한 명을 구슬리는 데 하녀 한 명이면 백작가에선 이득이었다. 달라는 것도 아니고 하루 품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달라는 것도 딱히 백작가의 직계 사내가 총애하는 여인만 아니라면 수를 쓰기 편했다. 총관은 자작이 기뻐할 말을 전했다.

    “오늘 밤 저택에 머무시지요. 저 아이더러 밤에 시중을 들라 하겠습니다.”

    “크흠, 갑작스럽게 머물게 되면 백작님께 폐가 아닐까 싶소만.”

    은밀한 제안에 덥석 응하고 싶은 속내를 숨긴 채 자작이 점잖을 떨었다. 여기서 그럼 그냥 가시지요 했다가는 경을 친다. 그냥 하는 말이라는 것을 아는 총관은 자작에게 듣기 좋은 소리를 날렸다.

    “주인님도 자작이 머무는 것을 기꺼워하실 겁니다.”

    “험험, 그럼 오늘 하루 신세 좀 지겠소.”

    자작의 반응을 확인하고 애니는 미소 지으며 문을 완전히 닫았다. 그렇게 그녀의 계획대로 밤에 손님용 침실에 불려 갔다.

    “오늘 밤 시중을 들라 명받았습니다.”

    애니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있는 자작에게 공손히 말했다. 이렇게 몸을 내던진 것이 한두 번이 아니라 긴장과 수치심은 없었다. 이런 일로 모욕감을 느껴야 하면 제 존재 자체를 치욕스럽게 느껴야 했다.

    귀족에게 노예의 신분은 가축이나 다름없다. 자신들의 재산일 뿐이고, 필요한 일에 써먹을 뿐이다. 다만, 가축과 다르게 대화가 통한다는 차이점이 있을 뿐. 그만큼 노예의 삶은 열악했다.

    몇몇 시녀들이 그녀를 보고 남자만 보면 정신 못 차리고 다리 벌리는 싸구려 창녀라 뒤에서 욕했다. 그래도 애니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네들은 평민이니까 그렇게 콧대 높은 척도 할 수 있는 거다.

    실수했다고 채찍을 맞지 않아도 되고, 밥을 굶지 않아도 돼서 할 수 있는 오만한 말이다. 개돼지만도 못한 제 처지를 잘 알기에 애니는 언제나 현실을 벗어나려 아등바등 굴었다.

    침실이란 공간 탓인지, 이미 애니가 안길 목적으로 온 걸 알아서 그런지 자작은 음욕을 숨기지 않았다. 번들번들하게 색욕에 물든 남자의 눈길은 징그러웠다. 어느새 여자의 몸을 탐할 생각으로 정신없는 짐승 한 마리만 남았다.

    “전부 벗고, 이리 오너라.”

    명령대로 애니가 하녀복을 벗고 수줍은 표정으로 침대에 올라서려고 하자, 자작은 버럭 성을 냈다.

    “어허! 전부 벗으라 하지 않았느냐!”

    남아 있는 속옷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아니, 벗고 올라가면 어떻고, 침대 위에서 벗으면 어떻다고 큰소리를 낸단 말인가. 별것도 아닌 것에 귀족의 권위를 내세우려는 꼴이 같잖아 짜증은 났지만, 애니는 그 감정을 드러내지 않았다. 제 인생을 구원해 줄 동아줄인지도 모르는데 단순한 기분으로 그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리 없었다.

    “죄송합니다.”

    닳고 닳은 애니는 오히려 더 수줍은 표정으로 남은 속옷을 벗어 냈다. 한쪽 팔로 가슴을 감싸고, 반대쪽 손바닥으로 수풀을 덮어 사내의 음욕을 도발하는 자세를 했다. 제 말대로 된 것이 기쁜지 자작의 얼굴에 흡족함이 차올랐다.

    침대로 올라가 자작의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애니는 무엇이든 뜻대로 하라고 순종적인 자세를 취했다. 굳이 자작의 비위를 맞추려는 것이 아니라 진짜 반항해선 안 되는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손 치워라.”

    명령에 가슴을 가린 팔을 치우자 커다란 손이 우악스럽게 살덩이를 틀어쥐었다. 하녀의 가슴 크기가 얼마나 큰지 처질 듯 내려와 그녀가 옷을 벗는 순간부터 자작은 꽉 눌러 벌주고 싶었었다.

    “음탕한 계집. 남자를 유혹하려 이런 큰 걸 달고 다닌단 말인가?”

    수치를 주려고 작정한 사람처럼 자작이 애니를 희롱했다. 대부분의 귀족들은 침실에 들면 이렇게 혹독했다. 점잖은 척 굴던 사람도 사납게 돌변해 무참하게 굴었다.

    “아닙니다. 아앗!”

    애니는 놀람이 담긴 가녀린 교성을 잊지 않고 덧붙였다. 파르르 몸을 떨며 눈물을 머금어 연약한 얼굴을 했다. 이러면 귀족들은 특히 더 흥분했다.

    웃기게도 이들은 입으로는 음탕하다 하면서도 실제로 그녀가 음탕하게 굴면 싫어했다. 적당한 수줍음 어린 태도가 그들의 흥을 돋웠다. 애니의 예상대로 자작의 손길이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더욱 무자비해졌다.

    “아니긴 뭐가 아니야? 벌써 이렇게 끝이 딱딱해졌구먼.”

    “제, 제발…….”

    여인의 애원하는 목소리에 제대로 달아오른 자작이 애니를 거칠게 눕히고 올라탔다. 한 손은 가슴을 벌주며 반대쪽 손으로 나신을 유린했다. 하녀라 그런지 귀족가의 여인네 같은 보드랍고 야들한 살결은 아니었다. 그래도 사내의 그것과 다른 계집 특유의 연함은 있어 자작은 본격적으로 즐기기로 했다.

    목덜미에 코를 박았다. 저를 모실 몸이라 총관이 씻겨 보냈는지 꽃향기가 났다. 고귀한 귀족의 은총을 받아야 하니 하녀답지 않은 호사를 누린 것 같았다. 자작은 지체 없이 손가락으로 하녀의 음부를 쑤셨다.

    “흐윽!”

    “허, 벌써 이렇게 젖었나? 음탕하도다. 음탕해!”

    매끄럽게 드나들 정도로 촉촉이 젖은 것은 아니지만 하녀의 입구는 슬슬 미끄덩거리는 액체를 뱉고 있었다. 별로 만지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아래에서 몸을 뒤트는 애니를 보며 자작은 조소했다.

    어쩐지 총관이 쉽게 시중 이야기를 꺼내더라니. 남자의 씨를 받는 게 익숙한 하녀인 모양이었다. 접대 담당 색노인가? 하긴, 그게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고위 귀족가에선 암암리에 색노를 가지고 있었다. 접대용이든, 그 가문 식솔의 전용이든.

    백작이 제아무리 현 부인을 아낀다 해도 하나쯤은 숨겨 둔 애첩이 있을 수 있었다. 사내라면 응당 여럿 여인 품어 보고 싶을 테니까.

    “아아! 나리!”

    생각하며 손가락으로 몇 번 들쑤시자 벌써 구멍이 흥건해져 성기를 집어넣기 모자람이 없었다. 절정에 달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물을 줄줄 흘리다니 천생 요부였다. 자작은 아래에서 손을 떼어 내며 명령했다.

    “벗겨라.”

    애니는 헐떡이며 몸을 일으켰다. 몸이 저릿저릿했다. 본격적으로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 혼이 빠져나갈 것 같았다. 기실 그녀가 이런 식으로 애무를 받은 적은 처음이었다.

    귀족들은 제 욕구를 풀기 바빴고, 애니가 괴로워할수록 빡빡하게 조여드는 안쪽을 좋아했다. 부러 메마른 안쪽에 고통스럽게 삽입하곤 했었기 때문에 이런 느낌은 처음이었다.

    애니는 반쯤 몽롱한 정신으로 자작의 말에 따랐다. 천천히 단추를 풀러 상의를 벗기고 하의를 벗겼다. 울뚝불뚝해져 힘차게 서 있는 성기를 보자 애니는 입을 벌렸다.

    확실히 젊음이 좋기는 좋았다. 늘 쭈그렁 할아버지들의 쪼그라들었던 작은 물건을 세우느라 힘들었었다. 그런데 애무도 전에 이렇게 위용을 과시하는 물건을 보니 침이 넘어갔다.

    그 어느 때보다 팔팔하게 서 있고 큰 모양에 애니의 눈에도 색욕이 짙게 떠올랐다. 가짜로 느끼는 척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자작의 손이 애니의 턱을 잡아 들어 올렸다.

    “이 몸의 물건이 마음에 드느냐?”

    제 속내를 읽힌 것 같아 애니의 뺨이 화끈 달아올랐다. 자작의 입가에 깊은 미소가 달렸다. 계집이 사내의 물건을 보고 황홀해할 때 남자의 자존심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음탕한 계집이 물건 볼 줄은 알았다.

    “네년이 이리 원하니 내 제대로 맛보게 해 줘야지. 어디 한번 그 입으로 잘 빨아 봐라.”

    자작의 자만심 가득한 명령에 애니가 즉시 고개를 숙여 물건을 입에 담았다. 이 또한 그녀에겐 익숙한 일이라 망설임이 없었다.

    조심스럽게 기둥을 핥자 혀끝으로 불끈불끈한 핏줄이 느껴졌다. 늙은이들 대부분은 정력이 좋지 못해 삽입 전에 꽤 입으로 봉사를 해 줘야만 넣을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졌다. 그런 것들보다 이게 차라리 나았다.

    애니는 혀를 놀려 구멍부터 뿌리 끝까지 샅샅이 핥아 냈다. 일부러 타액을 삼키지 않고 모아 충분히 질척이는 소리가 나도록 했다. 자작의 반응을 살피며 입술 끝을 조이고 위아래로 쉼 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이 하녀는 남자의 물건을 한두 번 물어 본 것이 아닌지 능숙하게 빨아 대 쾌감을 전해 줬다. 거기다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 사내에게 환장한 암캐가 따로 없다. 눈가의 점이 색을 밝히게 생겼더라니. 음란한 년. 자작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하녀의 입술의 조임과 혀 놀림에 사정감이 몰려옴을 느꼈다.

    “네년 참 맛있게도 먹는구나. 그리 맛있더냐?”

    조롱을 날린 자작이 애니의 머리를 틀어쥐고 마구 허리를 쳐올렸다.

    “욱! 우욱!”

    “훅, 후욱……. 시끄럽다. 조용히 해라. 내 친히 네가 좋아하는 것을 듬뿍 주고 있지 않으냐.”

    자작은 그녀를 신랄하게 비꼬았다.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애니는 괴로웠지만, 소리를 죽이고 견뎌 냈다. 성기가 목구멍을 칠 때마다 올라오려는 구역질과 눈물을 참았다. 자작은 애니의 고통 어린 반응에도 더욱 잔악하게 굴었다. 본인의 절정을 위해 거침없이 허리를 흔들었다.

    사타구니에 고개를 박고 있는 계집은 소중히 다뤄 줘야 하는 귀부인이 아니었다. 그 어떤 행동도, 모욕도 용납되는, 제 맘대로 성욕을 풀어도 되는 존재였다. 상대를 귀히 여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 자작의 말투에 드러났다.

    “말해 보아라. 입에 싸 줄까? 네년도 그게 좋겠지? 헉, 헉……. 사내의 씨물을 받아먹고 싶어 그리 맛있게 물고 빨지 않았느냐?”

    괴로움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애니는 애써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열렬히 원하는 것처럼. 사실 애니라고 입으로 남자의 정액을 받는 것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자작의 흥분 상태로 보아 그녀의 입속에 파정할 것이다. 그렇담 그의 흥을 깨지 않도록 원하는 척하는 것이 나았다. 그런 애니의 계산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작이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이죽거렸다.

    “학, 학……. 그렇지? 음탕한 네년은 그걸 원할 것 같았어.”

    자작은 쾌락에 온 정신을 쏟았다. 이제는 애니가 도망가지 못하게 양손으로 머리를 틀어쥐고 헤벌어진 입속에 성기를 쑤셔 박았다. 뜨끈한 입속이 기분 좋게 성기를 담아냈다. 다물지 못한 입에서 타액이 질질 흘러나와 자작의 다리 사이가 젖어 들었다. 애니가 힘겨워할수록 자작은 쾌락의 정점에 도달해 갔다.

    “욱, 우욱, 우욱!”

    “허억, 허억, 허억!”

    그녀가 호흡의 한계에 다다를 때쯤 자작의 성기가 크게 팽창하며 몽글거리는 액체를 입안에 뿜어냈다.

    애니는 정신없는 와중에 조심스럽게 입 밖으로 흐르지 않게 받아 냈다. 방출의 여운으로 바르르 떨던 자작이 사정을 끝마치고 쪼그라든 성기를 빼냈다. 정액과 타액이 섞여 끈적이는 액체가 애니의 입술과 자작의 성기에 연결되었다.

    사정의 나른함으로 쿠션이 쌓인 곳에 기대던 자작은 애니의 어정쩡한 모습을 알아챘다. 빤히 바라보는데 입술을 앙다물고 볼록하게 볼을 부풀린 얼굴을 보니 무언가 알 것 같았다.

    ‘허, 진짜 잘 길들여진 색노 아닌가.’

    자작이 애니의 턱을 잡아챘다.

    “벌려 보아라.”

    애니가 조심스럽게 입을 벌렸다. 그 안에 제가 싸 놓은 흔적을 발견한 자작은 다시 음욕이 치솟는 것을 느꼈다. 일부로 머금고 기다린 것이다. 사내를 제대로 자극할 줄 아는 걸 보니 계집이 여간내기가 아니었다. 흡족해진 자작이 낮게 웃으며 명령했다.

    “삼켜라.”

    그제야 애니의 입술이 다물리고 꿀꺽 목 뒤로 액체를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여운을 즐길 새도 없이 도발한다. 크게 들리는 소리에 자작은 속으로 앙큼한 것이라 떠올리며 또 한 번 웃음을 흘렸다. 쿠션에 등을 기대고 편히 누우며 힘 잃고 있는 제 물건을 가리켰다.

    “네 음란한 구멍은 아직 제대로 맛보지 못해 아쉬울 테지? 다시 세워라.”

    애니는 즉각 반응했다. 엎드려 자작의 성기를 물고 정성스럽게 핥았다. 양손으로 감싸고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물건을 먹는 것처럼 열성적으로 입을 놀렸다. 쯥쯥거리는 소리가 울렸다.

    자작은 킬킬킬 저속한 웃음을 연신 흘렸다. 그런 그녀의 노력을 알아주듯 물건은 빠르게 부풀었다. 자작이 애니의 머리를 밀어냈다.

    “되었다. 누워 다리를 벌려라.”

    명령대로 애니는 누운 후 다리를 벌렸다. 쩍 벌어지며 음부가 훤히 드러났다. 처음의 수줍은 척은 다 내던졌는지 수치를 모르는 자세였다. 자작이 다리 사이로 파고들며 이죽거렸다.

    “음탕한 암캐 같으니라고. 그렇게 사내의 물건을 물고 싶어 안달이 나더냐? 네 구멍은 얼마나 음란하단 말이냐.”

    애니가 참기 힘들어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자작은 그마저 용납하지 않았다. 거칠게 손목을 잡아 치워 냈다. 애니의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자 비릿한 조소를 날렸다.

    “어디서 부끄러운 척이냐. 이리, 좋아하면서.”

    입으로는 그리 조롱하며 자작은 애니의 안쪽에 제 물건을 사정없이 처박았다.

    “하윽!”

    속살을 꿰뚫고 들어오는 감각에 애니의 엉덩이가 작게 튕겨 올랐다가 내려갔다. 미끌미끌한 내벽이 꾸물꾸물 조여들며 성기를 물었다. 자작의 목에서 만족스러운 신음이 한 번 흘렀고, 본격적으로 허리를 흔들기 시작했다.

    “아응, 아읏, 아응!”

    성난 기둥이 안쪽을 찌를 때마다 애니의 입에서 자동으로 교성이 흘렀다. 고통과 쾌감이 뒤섞여 야릇한 쾌락을 주었다. 단단한 기둥이 질구를 비비고 찌르며 넓혀 갔다. 그녀는 푹푹 치받는 행위가 좋았다. 이런 쾌감은 처음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 흥건하게 아래가 젖어 들었다.

    “흐억, 흐억, 그리 좋더냐? 하, 아주 물고 놓지를 않는구나!”

    안쪽이 저릿하며 찾아오는 감각을 참지 못해 애니의 다리가 자작의 허리에 감겼다. 그 순간 자작은 성을 내며 애니의 펑퍼짐한 궁둥이를 내려쳤다.

    철썩!

    “어허! 누구 허락을 받고, 헉, 헉, 매달리느냐!”

    “아앙! 죄, 죄송! 하악, 합니다, 나리잇!”

    흰 살에 붉은 자국이 남을 정도로 센 통증이었다. 그럼에도 제 안쪽을 쑤시는 살덩이의 쾌감이 더 커서 정신을 놓은 애니가 앙앙대며 애원했다. 그러자 자작이 신경질적으로 움직임을 멈췄다.

    “아앗, 나리……. 제발, 제발! 더 해 주셔요.”

    애니가 허리를 흔들며 간청하자 자작이 다시 손바닥으로 인정사정없이 엉덩이를 내리쳤다.

    철썩!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의 고통에 정신을 차린 애니가 몸을 사리자 자작이 짜증을 냈다.

    “주제도 모르고 누가 함부로 매달리라 그랬느냐?”

    천것이 제게 매달렸다는 것으로 흥이 식은 것 같은 표정에 애니는 쾌락에 넋이 나가 실수한 것을 자책했다. 귀족들은 성욕은 제 몸에 풀어 대면서도 그녀가 안겨드는 것은 용납하지 않았다.

    “죄, 죄송합니다. 나리.”

    사죄하며 애니가 후다닥 다리를 풀었다. 아직 연결된 상태지만 지금 자작이 성내며 그녀를 쫓아내면 어떤 가혹한 벌을 받을지 두려웠다. 총관이 이런 실수를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용서해 주세요. 다시는 실수하지 않겠습니다.”

    애니가 빌었다. 볼을 한 번 씰룩인 자작이 선심 쓰는 척했다.

    “무릎 뒤쪽을 잡아라.”

    애니가 재빨리 양손으로 제 무릎 뒤쪽을 잡았다.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했는지 자작이 명령했다.

    “다리는 더 벌리고.”

    이번에도 즉시 움직였다. 허리를 밀어 넣어 안에 든 성기를 뭉근하게 흔들며 자작이 경고했다.

    “후욱, 후욱, 절대 놓지 말아라. 한 번만 더 흥을 깨면, 윽, 용서치 않을 테야.”

    “으윽, 네, 네. 알겠습니다. 흐응…….”

    애니가 비음을 흘리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만족스러운 얼굴로 자작이 행위에 열중했다. 두 번이나 내려쳐 붉게 물든 엉덩이를 움켜쥐고 거세게 추삽질했다. 검붉은 살덩이가 질컥이며 애니의 질벽을 마찰했다.

    아득한 쾌락이 또 찾아왔다. 페니스가 빠져나갈 때마다 음란한 액체가 튀는 것 같았다. 정신을 놓지 않기 위해 애니는 손에 힘을 주며 바들바들 버텼다. 불편한 자세에 애니의 몸에 힘이 들어가자 절로 아랫배가 같이 조여들었다.

    자작은 제 물건에서 퍼지는 쾌감에 이를 악물고 힘차게 움직였다. 정말 쓸 만했다. 음탕함이 지나쳐 문제긴 하지만 이 하녀 정도면 몸매도 괜찮고, 구음 실력도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얼른 씨앗을 달라 재촉하는 구멍의 조임이 나쁘지 않았다.

    색노 중에서도 훌륭하게 길들여진 암캐였다. 매일 박고 싶을 정도로. 이 정도면 진짜 백작의 시중을 드는 하녀일지 몰랐다. 그걸 떠올리자 자작은 전율했다.

    짜릿한 쾌감이 온몸으로 퍼졌다. 그 고고한 척하는 백작과 같은 구멍을 공유하고 있었다. 속된 말로 구멍동서 사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치미는 욕정을 참을 수 없었다. 황홀하게 몰려오는 쾌락에 미친 듯이 물건을 쑤셔 박았다.

    “흐응, 흐으응, 흐윽! 나리!”

    애니는 참으려던 신음이 터져 나왔다. 제 욕심만 채우는 거친 움직임에도 애니는 절정에 달했다. 발가락이 곱아드는 쾌락에 몸을 경직시키자 자작은 움찔움찔 경련하는 질벽을 가르고 깊숙이 제 물건을 쑤셔 넣어 씨를 뿌렸다.

    “크흑!”

    배설의 쾌감에 자작이 전율했다. 이미 주고 있는데 더 달라 재촉하듯 내벽이 페니스에 엉켜 들었다. 음란한 년. 남자의 정을 원하는 음란한 구멍에 마지막 한 방울까지 쏟아 내고 쪼그라든 물건을 뽑았다.

    하녀가 아래에서 넋 나간 표정으로 떨어 댔다. 자작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띠고 누워 버렸다. 여운을 음미하며 하녀의 엉덩이를 주물럭댔다. 자작에게나 애니에게나 참 흡족한 밤이었다.

    * * *

    “그렇게 짜릿한 절정에 올랐지. 연기가 아니라 제대로 느낀 건 오늘이 처음이었어.”

    아직 그 여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몽롱하게 풀린 애니의 표정에 다른 하녀들이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애니가 얼마나 맛깔나게 설명하는지 다들 다리를 꼬고 어찌할 줄 몰랐다.

    갑자기 성욕이 샘솟은 몇몇은 부러운 얼굴을 했고, 어떤 하녀는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자신도 나서리라 다짐했다. 몰래 듣고 있던 올리비아마저 정확한 내용을 이해한 것도 아니면서 야릇한 기분을 맛보았다.

    “근데 너무 과격했던 거 아니에요? 원래 막 그렇게 험하고 힘든 건가요?”

    아직 경험이 없는 신출내기 하녀가 조심히 물었다. 어린 티가 나는 어리숙한 말에 몰려 있던 하녀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물론 귀부인은 다르겠지. 우린 노예 신분인데 뭘 바라겠어?”

    “저 정도는 약과야. 우린 귀족 나리의 여인이 아닌걸.”

    “맞아. 들어 보니 오늘 애니가 모신 나리는 오히려 점잖은 편이었다고.”

    “그네들에게 우린 사창가의 창부보다 못하지. 환상을 가지지 말렴.”

    “때리면 맞고, 욕설하면 듣고, 하라면 전부 해야 해.”

    체념의 빛조차 없는 그 담담함에 신입 하녀가 실망스러운 얼굴을 했다. 다들 그녀를 다독여 줄 생각은 하지 않았다. 괜히 지금 안타깝다고 희망을 던져 줬다가 나중에 제 주제를 모르고 당돌하게 굴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현실을 빨리 가르쳐 주는 게 나았다. 다들 겪어 왔던 수순이었다.

    “그리 좋아?”

    아직도 쾌락의 여운을 숨기지 못하는 애니를 향해 누군가가 장난쳤다.

    “말해 뭐 하니?”

    애니는 씨익 웃어 보였고 하녀들은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개중 누군가가 한탄했다.

    “난 언제 남자를 품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

    “나도. 부럽다.”

    “그럴 기회도 도통 없지. 손님도 잘 안 오니까.”

    “나 실은 며칠 전에 경험 있어.”

    어느 하녀의 고백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옮겨 갔다. 올리비아가 아니었으면 백작가에서 제일 쓸모없는 하녀로 찍혔을, 두 번째로 우둔한 젠의 고백에 다들 놀랐다.

    “세상에, 젠! 누구랑?”

    애니의 다급한 외침에 젠이 놀라 우물거렸다. 모두의 주목을 받으니 당황스러운 모양이었다.

    ‘얌전한 얼굴로 호박씨 까긴. 이 앙큼한 계집이 도대체 누굴 꾀었을까?’

    애니는 살살 젠을 달랬다.

    “그냥 궁금해서 그런 거야. 우리끼리 못할 말이 뭐니? 누구야? 누구랑 잤어?”

    애니와 다른 하녀에게 밉보이고 싶지 않은 젠이 솔직히 고백했다.

    “핸더슨이랑.”

    핸더슨은 백작가의 하인이었다. 여자 노예가 하녀라면 남자 노예는 하인이었다. 즉 자신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 귀족의 품에 안겼을까 봐 잔뜩 긴장했던 애니는 맥이 빠진 소리를 냈다.

    “핸더슨? 너 그 사람 좋아했어?”

    “그건 아닌데…….”

    “그럼 왜 잤어?”

    이미 흥미를 잃은 애니가 무성의하게 되물었다. 젠이 시트를 뒤집어쓰고 얼굴만 내민 채 이야기했다.

    “밤에 소피가 마려워서 화장실 갔다가 마주쳤는데, 막 달려들었어. 그리고 입 맞추고 하지 말라고 했는데 가슴을 만지더니…….”

    “뭐? 네가 먼저 원한 것이 아니란 말이야? 그럼, 그거 추행이잖아! 너 왜 이렇게 멍청해!”

    반쯤 울먹이는 목소리에 애니가 외쳤다. 애니뿐만 아니라 다른 여인들도 분노했다.

    “그걸 가만히 뒀어?”

    “그래서 끝까지 했어?”

    열렬한 반응에 주눅이 든 젠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녀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이런 일을 쉽게 넘어가면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리할지 모르고, 그게 소문이라도 나면 당연시될지도 몰랐다.

    귀족의 욕구를 받는 일과는 엄연히 다른 상황이었다. 귀족은 신분이 달라 하녀가 모시는 걸 거부할 권리가 없었다. 하지만 하인은 같은 처지였다. 비슷하게 힘든 상황에 서로를 존중하고 챙겨 주지는 못할망정 이리 함부로 대하다니.

    젠이 어수룩한 것을 아는 핸더슨이 그녀를 이용한 것을 하녀들은 눈치챘다. 너도나도 나서서 둔한 젠에게 설교했다.

    “싫다고 확실하게 말했어야지.”

    “젠, 네 허락 없이 만지면 그건 강간이야.”

    “만지자마자 소리쳤어야지. 남녀는 유별하다고.”

    “다음번엔 절대 참지 마. 소리쳐서 우릴 불러.”

    애니가 했던 수다와는 변질된 분위기로 과열되었다. 잔소리인지, 설명인지, 설득인지 모를 하녀들의 세뇌 교육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절대 남자가 함부로 입 맞추게 하면 안 돼.”

    “몸을 만지는 것도 안 돼.”

    “음흉한 눈길을 보내면 그러지 말라고 소리쳐.”

    모두 열을 내니 젠은 그저 알았다고 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엿듣던 올리비아마저 머릿속이 멍해졌다. 젠이 아니라 자기가 하녀들에게 혼나는 것 같았다. 밤새도록 이어지는 경고에 괴로웠다.

    너무 피곤해 가물가물 잠드는 올리비아의 마지막 기억은 “남자가 몸에 손대면 무조건 강간이야!”였다.

    ‘역시, 내 몸에 손댔으니까 강간 맞지?’

    과거를 회상해 상황을 정리한 올리비아는 어젯밤의 남자를 강간범으로 낙인찍었다. 바르다면 올바르고, 틀리다면 틀린 개념을 가지게 된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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