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도깨비를 줍다
“그러니까 이게 뭔지 말해주지 않겠느냐?”
이현이 주머니 안에서 꺼낸 것은 도토리였다.
그가 꺼내 놓은 도토리를 동이와 사내가 물끄러미 쳐다봤다.
“도토리가 아닙니까.”
대답한 것은 동이였다.
사내는 이현과 대화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사내는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하지만 이현은 어쩔 수 없이 만나준다.
이현이 자신들에게 이 살 곳을 마련해주었기 때문이다.
동이가 도깨비가 된 지금은 살 곳을 굳이 가리지 않고 어디에서나 살아도 되지만 그래도 사내는, 그리고 동이는 이 산이 마음에 들었다.
정을 붙이니 고향처럼 된 것이다.
“그냥 도토리가 아니다.”
이현이 심각한 표정으로 도토리를 노려봤다.
“한밤중에 혼자서 돌아다니는 도토리다.”
“도토리가 돌아다녀요?”
“그래. 도토리가 한밤중에 저 혼자 온 집안을 돌아다니는데… 솔직히… 무섭구나.”
이현의 눈이 겁에 질려 있는 것은 동이도 알아차렸다.
“그래봤자 도토리이지 않습니까.”
“도토리니까 더 무섭지. 평범한 도토리는 돌아다니지 않는단 말이다.”
“이 도토리를 어디서 주우셨습니까?”
“그것이….”
이현이 속사정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며칠 전의 일이었다고 한다.
이현이 도성으로 가서 왕을 알현하고 그간 세운 공로에 대한 상을 받은 후에 어사품을 가득 실은 마차와 함께 이곳 남쪽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고 한다.
사흘길이 걸리는지라 도중에 어느 산 밑에서 여정을 풀고 하룻밤 묵어가는데 한밤중에 그만 잠이 깬 것이다.
잠도 깨고 달도 밝고 할 일도 없어서 밤 산책이나 하자는 생각에 숲으로 들어갔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풀벌레의 소리가 곱고 달빛이 나뭇잎에 부딪치는 것이 어여뻐서 노래를 부르며 유유자적 걷고 있을 때 나무에서 도토리가 하나 툭 떨어졌다.
그런데 도토리가 떨어질 계절이 아니었다.
도토리는 가을에 떨어지는 법인데 하필이면 계절은 봄이었다.
봄에 무슨 도토리가 있을까 싶어 허리를 숙여 구경을 하려는데 나무 위에서 쪼르르 내려온 청설모라는 놈이 도토리를 냅다 주워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청설모의 앞발에 잡힌 도토리가 꼭 비명을 지르는 것처럼 느껴져서 청설모를 향해서 돌을 던졌더니 그 청설모가 도토리만 놓고 도망쳐버렸다.
청설모가 버리고 간 도토리를 주워 이리저리 살펴도 그저 평범한 도토리인데 이상하게 계속 눈길이 가서 결국에는 손으로 집어 들어 주머니 안에 넣었다.
봄에 만난 도토리이기도 하고 생긴 것이 동글동글한 것이 귀여워서 주머니에 넣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돌아온 첫날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밤마다 도토리가 온 집안을 데굴데굴 굴러다니다가 아침이 되면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 조용한 도토리로 돌아왔다.
너무 무서워서 도토리를 내다 버렸는데 밤이 되니 머리맡에 얌전히 돌아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어찌할 길이 없어서 이현이 결국은 도토리를 가지고 동이와 사내를 찾아왔다.
이들은 도깨비이니 이 도토리를 어찌할지 방법을 알 것 같아서였다.
“원래 산에서는 아무것이나 주워서는 안 되는 법인데….”
사내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왜 그렇소?”
이현이 놀라 사내를 쳐다봤다.
“산에 있는 것들은 모두 어느 정도 정기를 머금은 것이라 그것이 계절에 역하여 드문 것이라면 더더욱 영물에 가까워 그런 것을 사람이 주우면 사람의 정기에 영향을 받아버리니, 함부로 주워가는 것이 아니지.”
“그러면 이 도토리가 돌아다니는 것이 내 탓이라는 것이요?”
“사람도 도깨비도 그래서 산에서는 함부로 뭘 줍는 게 아니요. 그리고 주웠으면 책임을 져야지.”
사내가 동이를 쳐다봤다.
사내는 오래 전에 산에서 동이를 주웠다.
그리고 지금은 서로 가시버시를 맺어 살고 있다.
줍는다는 것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라는 걸 몸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토리는… 주워도 될 줄 알았소….”
이현이 덜덜 떨며 도토리를 쳐다봤다.
이현은 총독이지만 실은 겁이 많은 사내다.
겁도 많고 인정도 많아서 동이의 미친 소리에 귀를 기울여줬고, 마지막 날에는 동이가 살 길도 열어줬었다.
그런 사내이니 지금 얼마나 무섭겠는가.
“이 도토리는….”
동이가 도토리를 살며시 들어올렸다.
그리고 방긋 웃었다.
“여자애네요.”
“뭣이라?!”
이현이 놀라 뒤로 나자빠졌다.
도토리도 여자가 있나?
“아주 작고 귀여운 여자애네요. 보세요.”
“어디 보자….”
사내도 동이의 손에서 도토리를 받아들고 유심히 살폈다.
그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태어나서 그렇지, 여자애가 틀림없군. 나중에 고운 도깨비가 되겠어.”
“도, 도, 도깨비가 된다고?”
이현의 얼굴이 더 파랗게 질렸다.
“도깨비는 이런 식으로도 태어나는 법이라서, 아마 이 도토리는 나중에 좋은 도깨비가 될 거다.”
사내가 이현에게 도토리를 건네줬다.
“그때까지 소중하게 키우거라. 그 작은 도토리, 아니 도깨비가 인간인 너를 선택했으니까.”
선택. 도깨비. 여자 아이. 그 단어들의 나열에 이미 이현의 정신이 휘청거렸다.
대체 자신이 뭘 주웠단 말인가.
“축하드려요. 이다음에 도깨비 신부를 얻으시겠어요. 아, 장가는 드셨나요?”
동이의 말에 이현이 고개를 저었다.
“다행이네요.”
동이가 진심으로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사내도 흡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이현은 제 손바닥 위에 올려진 도토리를 보며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숲에서 산책을 하다가 도깨비 신부를 얻다니, 그게 말이 되는 소린가.
게다가 자신은 이미 나이가 서른이 넘었다.
그런데 이 도토리는 아직, 한 살도 되어 보이지 않는다.
이게 말이 되는가?
그런 이현의 생각을 꿰뚫어보듯 사내가 말을 덧붙였다.
“주머니에 항상 넣고 다니면 정기를 더 많이 받아서 일 년 안에 사람의 형상으로 변할 거다. 그때는 신부를 삼아도 될 정도겠지.”
아니, 이 무슨 해괴망측한 소리란 말인가.
일 년 안에 자라다니.
일 년 안에 신부가 될 정도로 자란다고?
“도깨비라는 것이 다 그렇지.”
사내가 웃었다.
그리고 동이도 웃었다.
그러나 이현만 웃지 못했다.
하다못해 이현의 손바닥 위에 올려진 도토리조차 살짝 흔들리며 웃었는데 말이다.
남쪽 지방을 다스리는 총독 이현이 어느 날 숲에서 도토리를 주웠다.
아니, 아기 도깨비를 주웠다.
그리고 꼭 일 년 지난 어느 날, 남쪽 총독 이현이 도깨비 신부를 아내로 맞이했으니, 그 비밀스러운 혼례에는 독각산에서 사는 도깨비 내외만 참석했다고 한다.
누가 믿겠는가.
도토리가 도깨비가 되었다고.
누가 믿겠는가.
도깨비가 인간의 신부가 되었다고.
하지만 인간이 도깨비의 신부가 되는데, 도깨비가 인간의 신부가 되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래서 총독 이현이 행복했냐고?
행복했으니 도토리 같은 신부와 함께 백년해로를 하지 않았을까.
도깨비 신부와 백년해로 한 후에 벼슬관작을 버리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졌으니 사람들은 이현이 그의 신부와 함께 독각산으로 들어가서 도깨비 내외와 함께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그리 말했다.
독각산에는 도깨비가 산다.
도깨비와 그의 신부가 산다.
독각산 도깨비가 만들어준 방죽 덕분에 남쪽 지방에서는 홍수가 그치고, 가뭄이 사라지고, 풍년이 이어졌다. 사람들이 가끔 옛 이야기를 할 때마다 도깨비의 이야기를 했으니, 독각산에는 겁 많고 잘 속아 넘어가지만 힘이 세고 정이 넘치는 금빛 눈의 도깨비가 산다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메밀묵을 좋아하고, 말 피를 싫어하고,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다지는 도깨비의 이야기는 그로부터 한참이나 세월이 지난 후에야 세간에 퍼지게 되었다.
한참이나 지난 후에.
<도깨비 신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