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런데 동이야. 네 그 삼촌이라는 이는 요즘도 드문드문 오니?”
옆에서 함께 빨래를 하던 아낙의 물음에 열심히 빨래를 문지르던 동이가 얼굴을 들었다.
“아저씨요?”
“그래. 전에는 계속 같이 살더니 요즘은 어째 얼굴 보기가 힘들어?”
“먼 곳에서 장사를 해서 그래요.”
“어린 것이 혼자 있는 것이 좋은 건 아닌데….”
“그러게 말이야. 얼른 시집을 가는 것이 좋은데, 동이 너만 좋다면 내가 중매를 설까?”
“저는 됐어요. 괜찮아요.”
“그러다가 혼기를 놓치면 어떡하려고.”
“때가 되면 가겠죠.”
동이가 쓱쓱 문질러 빤 빨래를 함지에 담고 일어섰다.
이렇게 아낙들의 관심이 제게 쏟아질 때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서둘러 이 빨래터를 떠나는 것이다.
“먼저 돌아갈게요.”
“그래, 가라.”
“밤에 문단속 잘하고.”
빨래가 든 함지를 머리에 인 동이가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동이는 올해로 열아홉 살이다.
동이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외진 곳에 자리를 잡고 있다.
아버지는 어려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일곱 살 적에 집을 나갔다.
돈을 벌러 갔다고 했지만 자신을 버리고 집을 나갔다는 것을 동이도 이제는 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돈을 벌러 갔다는 말을 믿었지만 열두 살 때인가, 동네 아낙들이 [쯧쯧, 저 어린 것을 버리고 혼자 살겠다고 도망친 년이 제정신인가 몰라.]라고 말하는 것을 우연히 듣고는 자신이 버려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버려진 것은 일곱 살 때이지만 그렇다고 혼자 살아온 것도 아니다.
엄마가 저를 버리고 집을 나간 후부터 동이를 돌봐준 것은 먼 친척 아저씨다.
죽은 아버지 쪽의 먼 친척이라는 아저씨 덕분에 동이는 지금까지 아무 걱정 없이 살아올 수 있었다.
몇 년을 이어 가뭄이 들어도 그 아저씨는 지게에 가득 물을 길어왔고, 흉년이 들어 다들 먹을 것이 없어 아우성을 칠 때도 그 사내는 어김없이 양식을 구해왔다.
재주가 좋은 사내라 지금까지 동이는 끼니를 굶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끼니를 굶지 않은 것만 아니라 옷도 항상 새 옷으로 지어 입었고, 겨울에는 헛간 가득 장작을 쌓아놓고 군불이 절절 끓는 방에서 추운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양식을 구해오는 것도, 필요한 것들을 사들고 오는 것도, 장작을 준비하는 것도, 집을 수리하는 것도 전부 그 사내의 몫이었다.
그 사내는 동이에게 있어서는 아버지였고 어머니였다.
그 사내가 아니었으면 동이는 진즉에 굶어죽던가 얼어 죽었을 것이다.
그 사내는 항상 동이와 함께 살았는데 2년 전부터는 먼 곳에서 장사를 하겠다며 집을 오래 비우는 날이 많아졌다.
그 전에는 장사라든가, 오래 집을 비운다든가 하는 일이 전혀 없던 사내였다.
그런데 꼭 2년 전부터 장사를 한다는 이유로 집을 떠나면 두 달에 한 번 정도 돌아왔다가 일주일 정도 머무르고 또 다시 집을 떠났다.
사내가 집에 돌아오면 동이는 그게 너무 기쁘다.
그러다가 사내가 다시 집을 떠나면 그때부터는 목에 빠져라 사내만 기다린다.
[장사하러 가지 않으면 안 되나요?]
[그러면 굶자고?]
[농사를 짓고 살면 되지요.]
예전에는 무엇을 먹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 사내가 어떻게 양식을 구해오는지 동이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내가 손에 들고 돌아오던 굴비며, 고기며, 달걀이며 그런 것들을 무슨 돈으로 샀는지도 전혀 몰랐다.
어렸을 때는 그저 그 사내가 가지고 오는 것들이 좋아서 그게 어디서 난 것인지 전혀 궁금하지도 않았었다.
때마다 입혀주는 색색저고리며, 꽃신이며, 솜을 잔뜩 넣은 겨울옷이며 그런 것들이 무슨 돈으로 사온 것인지 물어볼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2년 전 장사를 하겠다고 떠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장사를 한 것도 아니었다.
그 사내가 장사를 하겠다고 떠난 다음에야 동이는 그 사내가 그동안 자신에게 해주었던 그 모든 것이 어디에서 난 것일까 생각하게 되었다.
“어?”
빨래 함지를 머리에 이고 집 가까이 이른 동이의 눈이 커졌다.
울타리의 문이 열려있고 마당에 한 사내가 서 있었다.
“아저씨!”
그 사내가 돌아왔다.
지난 번 장사를 떠난 후 꼭 2달 반 만이다.
함지를 내려놓고 달려간 동이가 사내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
“언제 오셨어요?”
사내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로 동이가 얼굴을 들었다.
“지금 막 왔다.”
이 먼 친척 사내를 알게 된 지 벌써 12년이나 지났는데 이 사내는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
원래 사내들이 나이를 천천히 먹는 것인지 아니면 이 사내가 유난히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이 사내는 어렸을 때의 기억 속에 있는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별일 없었지?”
“그럼요. 이번에는 오래 계시다 갈 거죠?”
“글쎄다.”
“겨울인데, 또 가시려구요?”
이제 곧 겨울이다.
벌써 산에는 낙엽이 저물고 있다.
잎이 무성하던 나무들은 이제 앙상한 가지로 변해가고 있고 빨래터의 우물물은 손을 새빨갛게 만들 정도로 차가워졌다.
곧 겨울이다.
당장 내일 눈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이미 겨울은 성큼 눈앞에 다가와 있다.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떠돌아다니는 것도 힘들잖아요.”
“그래도 장사를 멈출 수는 없지.”
“봄이 될 때까지 만이라도 여기 계시면 안 돼요? 장작도 헛간에 잔뜩 있고 겨울 동안 먹을 양식도 많은데 그냥 여기서 겨울을 지내세요.”
동이가 은근히 사내를 졸랐다.
지난겨울은 사내 없이 혼자 지내야만 했었다.
겨울바람이 아무리 매서워도 사내와 함께 있어서 매서운 줄도 모르고 무서운 줄도 몰랐는데 혼자 지내는 겨울은 무척이나 무서웠었다.
한밤중에 바람이 방문을 덜컹덜컹 잡아 흔들면 잠에서 깨어나 문고리를 꼭 잡고 있는 날도 있었다.
혼자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웠었다.
“혼자 겨울을 보내는 것은 무섭단 말이에요.”
“그럴까?”
무섭다는 말에 마음이 약해진 것일까.
사내는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겨울은 여기서 나야지, 그럼.”
“정말이요?”
사내의 대답에 동이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
“약속했어요. 이번 겨울은 여기에서 나는 거예요? 이제 봄까지 어디 가시면 안 돼요. 알겠죠?”
“그래. 그래야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르는 동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사내가 조용히 웃었다.
그러나 사내의 표정이 영 밝은 것만은 아니었다.
* * *
“이번에는 어디까지 다녀오셨어요?”
사내가 누울 이부자리를 펴며 동이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예전에는 사내가 동이의 이부자리를 펴주었지만 이제는 동이가 사내의 이부자리를 펴준다.
이제 동이는 더는 어린 아이가 아니다.
예전에는 어디를 가든 사내의 손을 꼭 잡고 다녔었다.
큰 바람이라도 불면 한밤중에 깨어 울음을 터트리며 사내가 누운 이불 안으로 파고 들기도 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천둥 번개가 친다고 밤에 무서워서 깨는 일은 없다.
다만 한밤중에 방문을 흔드는 큰 바람은 무섭지만, 사내에게 밤새 문고리를 잡고 있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말을 하면 아직 어리다며 웃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바다까지 다녀왔었지.”
“정말이요? 나도 바다에 가고 싶은데….”
“나중에 같이 한 번 가자구나. 기회가 된다면.”
“봄에 같이 갈까요?”
“그때까지 생각해보자.”
사내는 쉽게 그러자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동이는 그게 서운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장사를 하려고 떠날 수는 있다.
하지만 왜 같이 가자고 하지 않는 걸까.
2년 전, 사내가 처음으로 장사를 하려고 떠났을 때 동이는 버림받은 기분을 한참 동안이나 느껴야만 했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서러운 기분이었다.
엄마가 저를 버리고 갔다는 것을 알았을 때의 기분과 장사를 하겠다며 사내가 떠난 후의 기분은 비슷했다.
그 기분은 사내가 돌아온 후에야 겨우 가라앉힐 수 있었다.
이제 동이에게 있어서 가족은 이 사내뿐이다.
이 사내가 자신의 삼촌인지, 아니면 삼촌의 사촌인지, 어떻게 되는 먼 친척인지는 동이도 잘 모른다.
아버지의 고종사촌의 아들이라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되는 관계인지는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버지의 고종사촌이라면 아버지의 고모의 아들이 낳은 아들이라는 뜻인데, 아버지의 고모라면 동이에는 고모할머니가 된다.
고모할머니가 낳은 아들이 자신과 몇 촌인지는 모르겠다.
또 그 아들이 낳은 아들이니 대체 자신과는 몇 촌일까.
이런 경우도 친척의 범주에 드는 건지 모르겠지만 먼 친척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그런 것이 중요하지는 않다.
“다 됐어요.”
동이가 나란히 편 두 개의 이부자리 중 벽 쪽의 이부자리에 올라가 앉았다.
이 작은 초가집에는 방이 한 칸뿐이다.
예전에는 사내와 동이가 한 방을 써도 넉넉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이불 두 채를 펴면 방이 꽉 찬다.
그만큼 동이도 자랐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내의 체격이 워낙 크기 때문에 더더욱 방이 좁아 보였다.
사내가 허리를 쭉 펴고 일어서면 천정에 머리가 닿을 정도니 이쯤 되면 집을 넓혀야 할지도 모른다.
“아저씨.”
펴놓은 요 위에 누워 이불을 덮는 사내를 보며 촛불을 끄기 직전 동이가 문득 생각이 난 것처럼 말했다.
“봄이 되면 집을 넓힐까요?”
“왜?”
“방이 좁아서요. 천정도 더 높이고 방도 두 칸 만들고… 그럴까요?”
“방을 두 칸 만들 것이 아니라 네가 시집을 가야지.”
“시집 안 가요.”
촛불을 후 불어서 끈 동이가 자리에 누웠다.
그리고 사내를 향해 돌아 눕고는 한 번 더 말했다.
“시집 안 가요. 그냥 아저씨랑 살래요.”
“시집을 가야지, 그래도.”
어둠 속에서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는 동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목소리다.
사내는 모를 것이다.
동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사내는 아마 모를 것이다.
주변의 아낙들은 동이에게 얼른 시집을 가라고 말하지만 동이는 그러고 싶지 않다.
천년만년 이 사내와 함께 살고 싶다.
먼 친척이라서 머리 올리고 가시버시 맺을 수 없다는 것을 물론 알고 있다.
겉으로는 동안이라 저와 일곱 살 아니면 여덟 살 정도밖에 차이가 안 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저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은 그렇지 않다.
어렸을 때 꼭 잡았던 손의 온기를 동이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
어렸을 때는 이 사내가 커다란 나무 같아서 좋았고 지금은 이 사내가 그저 좋다.
가까이 가면 풍기는 체취가 좋고, 저를 향해 웃는 눈매가 좋고, 상냥한 목소리가 좋다.
이렇게 좋은 사람이 곁에 있는데 왜 모르는 이에게 시집을 가야 하는가.
“봄이 되기 전에 신랑감을 찾아줘야겠구나.”
“안 간다니까 자꾸 그래요. 안 가요, 시집.”
동이도 고집이 있다.
한 번 안 간다면 안 간다.
“얼른 자거라.”
“아저씨.”
불러도 이제 사내는 대답이 없다.
시집을 안 간다는 제 말에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동이도 알고 있다.
“아저씨.”
그래도 다시 한 번 불러봤다.
여전히 돌아오는 대답은 없다.
“잘 자요, 아저씨.”
하지만 대답해주지 않아도 이미 이 작은 방 안에 사내의 체취가, 숨결이 바람처럼 떠돌고 있다는 사실에 동이는 이미 만족하고 있다.
제 귀에 사내의 숨소리가 들리고, 제 눈 안에 사내의 윤곽이 들어오고 있다.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사내가 누워있다.
그것만으로도 족하다.
“전 아저씨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사내는 모를 것이다.
동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것 두 가지는 바로 그와 도깨비라는 것을 사내는 모를 것이다.
동이는 도깨비를 좋아한다.
어렸을 때 딱 한 번 숲에서 본 도깨비를 지금까지 동이는 잊지 않고 있다.
그 금빛의 눈동자에 뾰족한 송곳니를 지금도 기억한다.
저를 집까지 업어다줬던 상냥한 도깨비였다.
그리고 이 사내를 좋아한다.
도깨비가 저를 업어다 준 그 다음날 저를 찾아왔던 이 사내를 동이는 누구보다 좋아한다.
어렸을 때는 보호자였지만, 지금은 더 이상 보호자로 이 사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은 절대로 꺼내지 못하겠지만 동이는 이 사내를 [사내]로 좋아한다.
두근거리고 설레는 이 마음은 그녀가 이 사내를 [사내]로 좋아한다는 증거다.
어쩌면 사내도 그걸 알고 있지 않을까.
왜냐하면, 사내가 장사를 하겠다며 떠난 2년 전이 바로 동이가 처음으로 그를 [사내]로 좋아하기 시작한 때였으니까 말이다.
동이가 그를 사내로 인식하던 그 해에 사내는 장사를 하겠다며 이 집을 떠났다.
마치 다 알고 있다는 듯, 그래서 거리를 두는 것처럼 그렇게 떠났다.
하지만 그럴지라도 동이의 마음은 여전하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 마음은 여전히 설레고 있다.
“잘 자요, 아저씨.”
동이가 눈을 감았다.
기분 좋은 졸음이 밀려오고 있었다.
* * *
“아저씨?”
눈을 뜨자마자 동이는 옆의 이부자리가 비어있는 것을 깨달았다.
“아저씨?”
방문을 급하게 열자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 사내가 동이를 쳐다봤다.
“왜 그러느냐?”
“말도 없이 가신 줄 알았잖아요.”
“봄까지 있겠다고 약속했잖느냐.”
“그렇긴 하지만….”
간밤에 꿈을 꿨다.
사내가 멀리 멀리 떠나는 꿈이었다.
꿈에서 깨어보니 사내가 옆에 없어서 동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아침밥을 지어야지….”
괜히 혼자 놀란 것이 민망스러워 동이가 밤새 헝클어진 머리를 매만지며 밖으로 나왔다.
“밥은 내가 얹어 놓았다. 너는 더 쉬어라.”
“제가 하려고 했는데 왜 하셨어요.”
“내가 너보다 더 잘하니까.”
그 말은 맞는 말이다.
사내는 음식을 잘해서 동이는 어려서부터 맛난 것만 먹고 자랐다.
어쩌면 그리 음식을 잘하는지 하는 음식마다 그렇게 맛이 좋았다.
“그러면 빨래라도 할래요. 아저씨 벗어놓은 옷은 어디 있어요?”
“천천히 하래도.”
“저도 부지런해요.”
기어이 방 밖으로 나온 동이가 마루 한편에 벗어놓은 사내의 옷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냄새….’
부엌으로 들어온 동이가 사내의 옷에 얼굴을 묻고 체취를 맡았다.
만약 이 모습을 사내가 보면 뭐라고 할까.
“응?”
그때 동이가 옷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왜 옷에 피가 묻었지?”
아주 조금이지만 소매에 묻은 것은 확실하게 피다.
“어딜 다치기라도 하셨나?”
그 사내는 아파도 내색도 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어딜 다치신 걸까. 내가 확인할 수도 없고.’
어딜 다쳤냐며 다짜고짜 팔을 붙들고 확인해볼 수도 없다.
‘이 정도 피면 아주 작게 긁힌 걸까?’
아주 작은 상처라면 염려하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뭘 하고 있느냐?”
부엌을 들여다보는 사내의 목소리에 동이가 얼른 들고 있던 옷을 함지에 넣었다.
“빠, 빨래를 하고 오려구요.”
당황한 목소리가 들켰을까 싶어 동이가 함지를 머리에 이었다.
“아침밥도 먹지 않고 무슨 빨래.”
“빨리 하고 와서 아침을 늦게 먹어도 괜찮아요. 원래 아침밥은 늦게 먹는 걸요.”
“빨래는 천천히 해도 되는 것을 왜 서둘러.”
“아침에 가면 빨래터에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서요.”
이건 거짓말이 아니다.
빨래터는 작은 우물을 둥그렇게 둘러싸고 동네 아낙들이 전부 나와서 빨래를 하기 때문에 항상 자리가 부족하다.
동이는 늘 그 틈새에 끼어 얼마 되지 않는 빨래를 하고 집에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렇게 아침 일찍 가면 자리가 다른 때보다 넉넉해서 많은 양의 빨래를 여유있게 할 수가 있다.
오늘은 사내가 가져온 옷들도 빨아야 하고 무엇보다 2달 동안 묵혀뒀던 사내의 이불깃을 가져다 빨 생각이다.
어제는 미처 준비하지 못해서 눅눅한 이불을 펴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오늘 밤에는 새로 빤 보송한 이불을 덮어주고픈 것이 동이의 마음이다.
“다녀올게요.”
“내가 들어줄까?”
동이가 머리에 이는 함지를 보며 사내가 손을 뻗었지만 동이가 이내 그 손을 피해 마당으로 나섰다.
“다녀올게요.”
활짝 웃으며 동이가 울타리를 나가자 사내가 들고 있던 도끼를 한쪽에 내려놓고 마루에 걸터앉았다.
“사람의 아이는 빨리 자라는구나….”
마냥 어릴 줄 알았던 아이는 어느새 불쑥 자라 장성한 처녀가 되었다.
빨래 함지를 머리에 이고 울타리를 나서서 멀어지는 동이의 뒷모습을 눈에 담으며 사내가 한숨을 내쉬었다.
“빨리 시집을 보내야지.”
이제 열아홉 살이니 벌써 시집을 가고도 남을 나이다.
보통 열일곱 살이나 열여덟 살이면 시집을 간다는데 동이는 벌써 열아홉 살이다.
스무 살을 넘기기 전에 시집을 보내야 좋은 곳에 보내지 않겠는가.
봐둔 곳도 있다.
이 동네에 의원 노릇을 하는 자의 둘째 아들이 사내가 보기에는 딱 좋았다.
나이는 스물두 살인데 아직 장가를 들지 않았고, 성품도 좋고, 인물도 좋고, 또 글공부를 해서 큰 도시에 나가 벼슬을 할 거라고 말하고 다니는 것을 보니 동이의 짝으로는 안성맞춤이다.
사내는 동이를 벌써 12년이나 보살펴왔다.
물론 12년이라고 해봤자 사내가 살아온 천 년이 넘는 시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어째서인지 자신이 도깨비로 살아온 천 년보다 동이와 함께 산 12년이 진짜 사는 것처럼 느껴졌다.
도깨비로 살아온 삶이 허망한 세월이었다면 동이와 함께 산 시간들은 그 한순간 한순간이 모두 뇌리에 박혀 기억으로 남아있다.
머잖아 동이를 시집보내고 다시 숲의 도깨비로 돌아가는 날이 와도, 그리고 백 년이 지나고 다시 천 년이 지나도 동이와 지냈던 시간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선물이다.
사내는 곧잘 그런 생각을 하곤 한다.
동이는 사내에게 있어서는 선물이다.
어느 날 툭 떨어진 도토리처럼, 자신의 삶에 툭 떨어진 선물이다.
동이가 제 삶에 들어옴으로서 사내의 메마른 삶은 촉촉해졌다.
웃고 설레고 그리워하는 법을 알게 되었다.
“시집을 보내야 하는데….”
사내가 다시 한숨을 쉬었다.
“어찌 이리 보내기가 싫은 걸까….”
이제는 더는 어린 아이가 아닌 동이가 자꾸 눈에 밟혀서 시집이나 보낼 수 있을까.
어젯밤에도 제 옆에서 이불을 덮고 새근새근 숨을 쉬며 자던 그 어여쁜 아이를 시집이나 보낼 수 있을까.
보내고 나면,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듯 허전해서 제대로 숨 쉬며 살아갈 수나 있을까.
“내가 얼마나 더 옆에 있어줄 수 있을까.”
이제 곧 한계다.
아니, 이미 한계다.
도깨비인 자신이 사람인 동이 곁에 있어줄 수 있는 시간은 이제 거의 끝났다.
실은 예전에 그 시간이 끝났음에도 무리해서 곁에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버틸 수는 없다.
자신은 이제 곧 사라져야 하고 자신이 사라진 자리에서 대신 동이를 지켜줄 수 있는 이가 있어야 한다.
도깨비가 아닌 사람이 그 자리에 대신 서 주어야 한다.
“어쩌다가 속에 욕심이 가득 찼을까….”
사내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욕심이라는 것을 부려본 적이 없다.
원하는 것을 가지기 위해 치열하게 뭔가를 해본 적도 없다.
인간들이 그렇게나 가지기 원하는 금붙이 은붙이를 마음대로 만들어내고, 필요하면 하룻밤 사이에 작은 산도 없애고 만들 수 있다.
강의 물줄기를 바꿔놓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고 땅 위에 있는 것들 중에서 사내의 목숨을 위협할 수 있는 것들은 거의 없다.
먹지 않아도 되니 먹을 것에 집착하지 않아도 되고, 인간들처럼 지붕이 있는 집이나 금은보화에도 관심이 없다.
재물과 명예에 관심이 없고, 바람처럼 자유로우니 묶일 이유도 없고, 제약을 받을 이유도 없이 살아왔다.
그건 외로운 삶이었지만 반면에 홀가분한 삶이기도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삶이 무겁다.
동이에게 묶여 있기 때문이고, 동이에 대한 욕심으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무거운 지금이 더 좋다.
동이를 떠나면, 작은 사람의 아이가 없는 삶을 자신은 견딜 수 있을까.
* * *
“그거 들었어? 어젯밤에 글쎄 관아 마구간에 묶어 뒀던 말이 짐승에게 뜯어 먹혔다지 뭐야.”
“아니, 그 높은 담장을 넘어와서 말을 물어 죽였다고?”
이른 아침인데도 우물가의 빨래터에는 빨래를 하러 온 아낙들이 이미 두 명이나 되었다.
그 두 명 옆에서 얌전히 빨래를 하던 동이가 그녀들의 말에 슬쩍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그게 사람의 소행은 절대 아닌 것이 말을 물어 죽이고 피만 쏙 빼 먹었다네?”
“아니, 다른 건 안 건드리고 피만 뽑아 먹었다고? 그게 무슨 해괴망측한 일이래?”
“그러니까 이게 짐승의 소행이다, 아니다 도깨비의 소행이다, 그런 말들이 지금 분분하다고 하더라고.”
“도깨비네, 도깨비여. 도깨비가 아니면 짐승이 어찌 그런 짓을 해.”
“그러게 말이야. 한참을 잠잠하더니 또 그러네.”
“또? 전에도 이런 일이 있었어?”
“몰라? 두 달 전인가? 그때도 역참의 말이 세 마리나 그렇게 물려 죽었었잖아. 그리고 그 몇 달 전에도 누구네 집 말이 그렇게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지 아마?”
“에구머니나. 그러면 이 근방에 도깨비가 계속 돌아다니면서 그런 짓을 한다는 거네. 무서워서 어째? 사람은 물어 죽인 적이 없고?”
“지금까지 사람을 물어 죽였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지만 말만 해코지 하겠어? 말을 그렇게 잡아먹었으면 다른 것도 잡아먹지 않겠어?”
“밤에 문단속을 잘해야 하겠네. 얘야, 동이야.”
“네?”
두 아낙의 대화를 듣던 동이가 놀라 퍼뜩 고개를 들었다.
사실 아낙들이 [도깨비의 짓]이라고 하는 말에 조금은 화가 나 있었다.
동이가 아는 도깨비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도깨비는 사람을 잡아먹지도 않는다.
어렸을 때 동이가 만났던 도깨비는 상냥하고 다정했었다.
오히려 자신을 호랑이에게서 지켜주고 집까지 데려와주었던 도깨비다.
그런데 그런 도깨비가 말을 잡아먹고 사람까지 잡아먹는다고?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
“네, 아주머니.”
“너도 밤에 잘 때 문단속 단단히 하고 자거라. 동네에 흉흉한 일이 일어나니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지.”
“네, 그렇게 할게요.”
“그런데 오늘 아침에 네 집 앞을 지나다보니 웬 사내가 마당에서 장작을 패고 있던데, 그 삼촌이라는 이가 온 거냐?”
“네, 어제 오셨어요.”
“인물이 참 훤하게 잘났던데. 장가는 든 거냐?”
아낙의 말에서 욕심이 묻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나도 봤지. 몇 살이나 먹었기에 그렇게 젊은 것이더냐? 내가 보기에 서른은 안 넘겼을 것 같던데 네 삼촌이라는 이가 몇 살이냐?”
“그건 저도 잘….”
“장가 안 든 건 맞지?”
“네….”
“그러면 장가 들 마음이 없나 한번 물어 보거라. 동네에 젊은 과부가 많은데 그 정도로 잘생긴 사내면 과부들이 혹하지 않겠니?”
“인물만 잘났나. 체격은 또 얼마나 좋고. 그런 사내가 지금까지 장가를 안 가고 있으면 안 되는 법이지.”
어느새 대화의 주제는 어젯밤에 물려 죽은 말의 이야기에서 동이의 [삼촌]에게로 옮아왔다.
아낙들이 제게 묻는 말을 그저 [네, 네]하고 넘기며 동이가 빨래를 벅벅 문질렀다.
‘장가라니. 아저씨는 장가 가실 마음이 없는데….’
물론 장가에 대해서 물어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봄이 되기 전에 신랑감을 찾아줘야겠구나.]
어젯밤에 사내가 제게 한 말이 계속 마음에 걸린다.
시집갈 마음은 조금도 없는데 사내는 자꾸만 시집을 가라고 한다.
‘설마 날 보내고 아저씨도 장가를 가려고 그러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어쩌면 자신이 마음에 걸려서 그 사내는 아직 장가를 못 가고 있는 걸 수도 있다.
자신을 시집보내고 홀가분해지면 그도 장가를 가려는 것일 수도 있다.
‘싫은데….’
다른 이에게 시집을 가는 것도 싫고 그 사내가 다른 여인에게 장가를 드는 것도 싫다.
‘날 아내로 삼아달라고 하면 기겁을 하겠지.’
먼 친척이라고 하지만 친척은 친척이다.
만약 그 사내와 자신이 부부의 연을 맺으면 그건 돌을 맞아 죽어도 할 말이 없는 부도덕한 짓이 될 것이다.
‘하지만 좋은 걸 어떡해….’
누가 뭐라고 해도 그 사내가 좋은 것을 어찌하란 말인가.
어려서는 그저 좋았고, 곁에 있으면 안심이 되는 사내였지만 조금씩 자라가며 마음은 바뀌었다.
다른 소녀들이 또래의 소년들을 보며 얼굴을 붉힐 때 동이는 사내를 보며 귀가 붉어지곤 했었다.
자신이 사내를 좋아한다는 마음을 자각한 것은 사내가 첫 장사를 떠났다가 돌아온 날이었다.
두 달 만에 돌아온 사내를 보는 순간 동이는 제가 그를 [사내]로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자각했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다.
제 마음을 알면 사내가 영영 도망칠 것 같아서다.
“에구, 그러다가 천이 상하겠다.”
“아….”
아낙의 말에 동이가 그제야 제가 방망이를 너무 세게 내리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이미 소매에 묻은 핏자국도 지워졌는데 자신은 다른 생각을 하느라 빨래를 계속 방망이로 내리치고 있었다.
찬물에 빨면 사라지는 핏자국처럼 마음도 쉽게 씻겨 내려가면 좋으련만, 미련한 마음은 그렇게 쉽게 사라지지도 않았다.